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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
개빈 멘지스 지음, 조행복 옮김 / 사계절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무척 흥미로운 책이다. 서기 1421년, 중국이 세계를 발견했다는 제목인데 대충 보아하니 중국 명나라 시절의 정화 함대에 대한 연구서다. 아마도 정화 함대의 인도양 진출에 관해 과장된 홍보 문구를 사용한 것으로 짐작되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정화는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영락제의 명을 받아 전후 7회에 걸쳐 대선단(大船團)을 지휘하여 동남아시아에서 서남아시아를 거쳐 아프리카 케냐 스와힐리에 이르는 30여 국에 원정하여 수많은 외교사절이 왕래하였고 명나라의 국위를 선양하였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비단과 도자기를 가지고 열대지방의 보석, 동물, 광물 등을 교환하여 중국으로 가져와 무역상의 실리를 획득하였다."고 한다.
그런데...그런데, 저자는 타이틀 그대로 '중국이 세계를 발견하였다'고 말한다. 바르톨로뮤 디아스보다 희망봉을 먼저 발견하고,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하였으며, 마젤란보다 먼저 지구를 일주하였다! 게다가 남극과 북극지역에 대한 탐사도 하였다!
언뜻 보면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속된 말로 비주류 고고학이나 역사학에서 흔히 우기는 상상의 비약도 유분수지. 더욱이 저자는 전문 사학자도 아니다.
하지만 저자를 따라 1421년 시기를 하나씩 되짚어 보면서 나는 멘지스의 추론이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오랜동안 잠수함 장교로 근무하였고, 탐구의 시초도 중세 지도와 해도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하였다.
사실 옛지도에 남극과 북극 및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아메리카 등이 표기된 경우가 간혹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알려지지 않은 고도의 문명의 존재를 거론하기도 한다.
저자 개빈 멘지스는 관점을 달리한다. 해도(지도) 전문가로서 그의 시각은 현전하는 해도가 나타내는 지형을 당시 뱃사람의 입장에서 퍼즐 맞추듯이 하나하나 살펴본다. 그 결과 황당해 보이는 해도와 지도들은 제작자로서는 최선을 다한 정확성을 자랑할 만한 수준이었다. 다만 당시의 과학적 지식과 관찰 상의 오차로 인해 현재와는 다른 모습을 나타낼 뿐이다.
저자는 이러한 정화 함대의 발자취,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홍보 함대, 주만 함대, 주문 함대, 양경 함대의 항로를 추적한다. 그리고 고고학적 유적의 흔적과 난파한 선원들의 후손에 대한 민족학적 징표를 더듬는다. 그리고 얼마 안남은 중국의 사서와 타문명권의 유물과 동식물에서 준거를 확인한다. 또한 이러한 모든 대탐험을 추진할 만한 국가가 당시 세계에는 중국이 유일함을 확인한다.
어떤가? 너무나도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만약 이 추론이 진실이라면 세계사는 일대 혁명을 겪게될 것이다. 저자가 전문 역사학자가 아닌 덕택에 선입관에 물들지 않았기에 이러한 연구가 가능했다.
혹자는 그런 엄청난 발견이 왜 중국에서도 망각되었는가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저자의 답변은 간단하면 명쾌하다. 대탐험의 경제적 부담으로 영락제는 실권을 잃었고 후임자들은 쇄국정책을 펴고 타국에 대한 자료는 대부분 파기하였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혁신적이라서 꼼꼼한 검증이 필요하다. 주류사학계는 차라리 외면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것을 공상 소설로 간주할 지도 모른다. 아마추어의 가설이므로. 하지만 나라면, 일만 년전에 초고도의 문명 제국이 존재했다는 주장보다는 이편이 훨씬 더 사실에 가깝게 다가온다.
근래에 읽어본 책들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하였다. 600여면(부록을 빼고도 450여면)이라는 두툼함이 전혀 부담스럽게 여겨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