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렐리아 - 지만지고전천줄 77
제라르 드 네르발 지음, 이준섭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삼독(三讀)이다. 읽을수록 색다른 묘한 작품이다.

처음엔 우려와는 달리 이해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는 무난한 작품으로 판단하였다. 이것은 섣부른 생각임이 재독(再讀)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으며, 삼독에 이르러서는 더욱 종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이 꿈과 몽상을 이야기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몽환의 안개 속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속깊은 내용이 무엇인지 점점 어려워진다.

여기서 작가는 죽음의 임박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영혼의 자서전을 쓰는 심경으로 네르발은 한줄 한줄 써내려간다. 꿈의 세계가 그러하듯 때로는 전후가 단절되는 곳도 빈번하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맥락은 여일하다. 그것은 “광기의 가면을 쓰고 있는 숙명적 진실”(P.67)인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토로했나 보다.

“어쨌든 인간의 상상력이 이 세상에서, 또는 저 세상에서 생각해 낸 그 어떤 것도 진실이 아닌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분명히 ‘보았던’ 것을 의심할 수가 없다.” (P.65)

“내가 이해하기로는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존재하며, 다만 부주의나 정신적 무질서가 그에 대한 분명한 관계들을 왜곡시키고 있을 뿐이며,...” (P.135)

네르발의 작품을 일람하면, 그는 진정한 방랑자임을 알게 된다. 현실에서건 아니면 몽상에서건. 그의 육신과 영혼은 정처없이 떠돌아다닌다. 삶이 죽음과 만나는 곳까지.

저승을 목전에 둔 이는 진지한 종교적 반추와 각오를 새기는 경우가 있다. <오렐리아>의 제2부는 사랑과 신앙의 고백과 실현이다. 네르발은 비기독교적 정신의 소유자이며, 여기에서 그리스 로마 문명과 동방 오리엔트의 신비주의 그리고 북유럽의 창세 신화까지 이음매없이 종횡한다. 따라서 문화적 배경이 받쳐주지 않는 경우에 그의 작품을 기저까지 쉽사리 이해하기란 만만한 게 아니다. 제2부에서 네르발은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지만 조금씩 정통 기독교와의 조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모성회귀(母性回歸)?

모성(母性)이야말로 네르발의 원점이다. 누차 언급하지만 상실한 모성의 갈망은 그의 작품의 추동력이다. 네르발의 영원한 여인상은 모두 모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이시스 여신에게서 이를 찾고 있다.

“나는 마리아와 같고 그대의 어머니와 같으며, 그대가 온갖 모습으로 언제나 사랑한 존재와 역시 같으니라.” (P.107)

이시스 여신은 그에게 시련의 진정한 의의를 밝혀주며, 말미에 와서는 시련은 이제 끝났음을 선언한다(P.125).

그의 심경은 기쁨으로 충만하고 감미로운 기분(P.125)이 되었다. 이제 그는 죽겠다는 결심을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더없이 평온함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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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24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10.11.24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불의 딸들
제라르 드 네르발 지음, 이준섭 엮음 / 아르테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네르발이 만년에 그의 주요 작품을 집대성한 후 붙인 표제다.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알렉상드르 뒤마에게
2. 앙젤리끄
3. 실비, 발르와의 추억
4. 제미
5. 옥따비
6. 이시스
7. 꼬리야
8. 에밀리
9. 몽상의 시

<불의 딸들>은 1990년대에 김동규 번역판이 출간된 적이 있으나, 완역본으로는 이것이 처음이다. 비상업적인 작품의 완역에 노력을 기울인 역자에게 충심으로 감사한다.

<불의 딸들>은 <오렐리아> 이전의 그의 작품세계를 결산한다. 소설, 희곡, 서신, 시 등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되는 네르발의 작품세계가 무지개처럼 찬연하게 펼쳐진다. 모성 상실, 사랑과 실패의 추억, 기독교적 가치관에 대한 거부감, 환상과 몽상에의 집착, 그리고 고향 발르와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등 작품 속에 내밀하게 표현된 네르발의 다채로운 색채 감상과 분석을 통해서 프리즘을 통과하기 전의 네르발의 종합적이며 근원적인 면모를 그려볼 수 있으면 더욱 기쁠 것이다.

각 수록작의 내용을 간단하게 촌평한다.

<알렉상드르 뒤마에게>는 이 작품집의 머리말에 해당한다. 자신의 정신이상은 예술창작에 무관하며, 오히려 환상과 비이성의 개인적 체험이 자신의 문학에 깊이와 풍요로움을 더할 것이라고 강변한다.

이어지는 작품들의 표제가 모두 여성이름이라는 데 주목하자. 네르발에게 여성은 얼굴도 보지 못한 어머니, 한번 만남으로 영원의 여인이 된 아드리엔느, 그리고 아드리엔느의 아바타인 제니 꼴롱으로 이어진다. 그의 생과 영혼은 상실한 모성과 사랑의 복구에의 갈망으로 목마르다.

<앙젤리끄>는 비소설적 소설이다. 작가는 편집자에게 보내는 서신 형식으로 대혁명 시기의 사제 뷕끄와 백작의 삶과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오리무중인 그의 자취는 곧이어 그의 고모할머니인 앙젤리끄 드 롱그발에게로 작가와 독자의 관심을 안내한다. 정신적으로 과도하게 순진한 백작의 딸 앙젤리끄와 그를 연모하는 푸주한의 아들 라 꼬르비니에르의 사랑과 도주, 그리고 고난과 슬픔의 결혼생활, 라 꼬르비니에르의 죽음 등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진다.

작가는 뷕끄와 사제를 추적하지만 초점은 앙젤리끄에 있다. 앙젤리끄는 네르발의 여인상의 전형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그녀의 애정의 일편단심과 헌신성이 현실 여인과의 사랑에 실패한 작가의 구미를 당겼는지 모르겠다. 내게는 그보다도 오히려 작가의 추적 과정에서 독일에서 파리로, 다시 서서히 발르와 지방으로 이동하는 지리적 변화가 흥미롭다. 그의 다음 작품 <실비>에서 본격적으로 산책하는 상리스, 에르므농빌, 루소의 무덤 등의 발르와 지방의 여러 지명이 스와송, 롱그발 등과 함께 처음으로 등장한다. <앙젤리끄>는 <실비>의 전주곡이다.

<실비, 발르와의 추억>은 이미 삼독(三讀)을 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제미>는 신생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언제나 고향 발르와(발루아)를 배회하던 네르발이 훌쩍 대륙을 건너뛴 점으로도 알 수 있듯이 오스트리아 작가의 작품을 번안하였다. 가난하지만 생활력이 투철한 아일랜드계 제미가 독일계 자끄와 결혼하여 충실한 생활을 하던 중, 인디언에 납치당한다. 갖은 고난에도 꿋꿋함을 잃지 않은 제미는 틈을 노려 5년 만에 탈출에 성공하여 꿈에 그리던 집에 돌아왔으나, 남편은 재혼을 하였고 아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갈 곳 없는 그녀는 다시 자신을 납치하였던 인디언 부족에게 돌아가서 자신을 연모하던 추장과 결혼하여 그들을 문명화시킨다.

<옥따비>와 <이시스>는 네르발의 동방여행의 추억과 깊은 관련이 있다. 네르발이 오리엔트 여행 중 머무르던 나폴리에서 겪은 영국여인 옥따비와의 만남을 소재로 나폴리 여인과의 과거 만남을 액자소설 형태로 구성하고 있다. 여인과의 만남과 나폴리 주변의 로마 유적, 특히 이시스 신전의 이교 체험이 <옥따비>, 이시스 여신의 사상과 의례 해설이 <이시스>의 기본 뼈대다. 그리고 두 작품을 잇는 핵심 어구는 ‘이시스’이다.

<꼬리야>는 흥미로운 희극이다. 역시 나폴리를 배경으로 하지만, 여배우 꼬리야를 둘러싼 경쟁자 파비오와 마르셀리 간에 얽힌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어 앞의 작품들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이 작품은 네르발 자신의 연애 추억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제니 꼴롱과 꼬리야는 동격의 인물이고, 파비오는 작가 자신의 분신이다. 파비오의 꼬리야 찬미 대사(P.332)는 제니 꼴롱에 대한 네르발 자신의 예찬에 다름 아니다. 그런 면에서 자신에게 여배우만을 사랑하는 것 같다고 파비오를 평하는 꼬리야의 마지막 대사는 제니 꼴롱과 네르발의 결실로 맺지 못한 사랑을 상기해 볼 때 새삼 되새겨봄직하다.

<에밀리>는 다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에밀리가 아니라 전쟁영웅 데로슈 중위이다. 죽음을 무릅쓴 무모한 돌진으로 전사한 데로슈 중위의 행위에 대한 기구한 사연이 뒤얽힌 이야기다. 약혼녀가 자신이 전장에서 총검으로 죽인 독일군 하사관의 딸이라는 것. 곧 결혼하게 될 남자가 아버지를 죽인 철천지원수라는 사실. 이것이 드러난 마당에 사랑과 인륜의 화해할 수 없는 갈등은 데로슈 중위를 자살로 몰고 간다. 작품집에 수록하기 위해 작가가 표제를 수정하여 무리하게 수록한 것이 아닐까 의구심을 갖는다.

<몽상의 시>는 ‘엘 데스디챠도’, ‘미르또’, ‘호루스’, ‘앙떼로스’, ‘델피까’, ‘아르테미스’, ‘감람산의 그리스도’, ‘황금 시’의 8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미 <보헤미아의 작은 성들>에서 한번 읽은 적이 있어 생경하지는 않지만 낯설기는 변함없다. 표제로도 알 수 있듯이 그리스‧로마 신화, 이집트 신화를 제재로 기독교 비판, 이교 정신의 찬양, 현실 탈피, 사랑의 갈구를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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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24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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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 산책과 추억 - 지만지고전천줄 40
제라르 드 네르발 지음, 이준섭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실비>는 국내에 여러 차례 소개되었으나 <산책과 추억>은 초역이다. 그런데 편집이 매우 절묘하면서 동시에 탁월하다. <실비>의 작품 성격이 바로 ‘산책과 추억’이므로.

<실비>는 이번으로 세 번째 읽는다. 처음엔 우려와는 달리 간결하며 소박한 감수성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작품 속에 내재된 환상과 영원한 여인상이 압도적인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독서, 이제는 그의 잃어버린 고향과 시절의 산책과 추억에 자연스레 관심이 쏠린다.

작품은 크게 네 번의 시제 이동을 수반하다. 12장까지 기본 시제는 현재에서 바라본 과거의 회고와 추억이다. 신문에서 우연히 보게 된 기사 두 줄로 환기된 잊고 지낸 시절. 화자는 그 추억을 찾아서 발루와로 향하여 실비를 만나고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2장은 어린 시절 아드리엔과 연결된 첫사랑의 상념을 되새긴다. 그리고 4장에서 7장까지는 수년이 경과한 후 다시 고향에 돌아와 실비와의 산책과 에피소드를 회상한다. 이어 13장과 종장은 다시 세월이 흘러 오렐리와의 교제와 이별, 발루와에서 결혼한 실비를 방문한 현재 이후의 추억담이다.

화자는 비교적 짤막한 중편에서 유년 시절에서 청년시절을 거쳐 현재까지 시기를 폭넓게 그리고 있으며, 공간적 배경도 파리와 발루와를 오가며 그 사이 샹티이, 상리스, 에르므농빌, 데마르탱 등 화자 당시에는 이미 옛 정경을 상실한 고향의 모습에 회한어린 탄식을 그치지 않는다.

대개 네르발의 작품이 그러하듯 <실비>도 죽기 수년전에 씌어져 심신이 쇠약하고 경제적으로 곤궁하던 때, 그의 심경을 반영하고 있다. 사람은 힘들 때 어릴 적 행복했던 시절을 상기한다. Belle epoch! 이 작품이 간결한 구성에도 단순하게 읽히지 않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산책과 추억>은 일종의 회고록이다. <오렐리아>와 더불어 그의 최후의 작품이다. 그리고 미완의 작이기도 하다. 발루와의 에르므농빌에는 루소의 묘가 있는데, 네르발은 루소를 존경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실비>에도 화자가 실비에게 루소의 <신 엘로이즈>를 소개하는 내용이 나온다.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의 직접적 영향이 이 작품에 엿보인다.

네르발은 스스로 삶과 작품이 밀접한 관계를 이루는 작가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자전적 글을 통해 네르발의 삶은 물론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작지만 귀중한 빛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잠시 목차를 본다.

몽마르트르 언덕(1장), 생제르맹 성관, 노래하는 모임, 젊은 시절의 작품, 초년기, 엘로이즈, 북방 여행, 샹티이(8장).

전반부 3장은 화자가 방을 구하기 위해 교외의 생제르맹으로 나가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어지는 4개의 장이 본격적인 회고록 내용이다. 마지막 장은 현재 시점에서 고향을 돌아보고 산천과 인물의 변천을 논하고 있다.

<산책과 추억>에서 정신적 위기를 겪는 네르발은 의외의 심적 평온을 가지고 담담하게 자신의 생을 반추한다.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듯이. 촛불의 마지막 깜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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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24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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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의 작은 성들 - 혜원세계시인선 21
제라르 드 네르발 지음, 윤영애 옮김 / 혜원출판사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혜원세계시인선 21

<보헤미아의 작은 성들>과 <공상시집>을 포함한 네르발의 대표적인 시 작품들을 모아놓았다. 네르발을 이해하려면 산문작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네르발은 말년까지도 시에 대한 끈을 결코 놓지 않았다. 비록 그의 시 작품이 모두 명작으로 평가받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상당히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였고, 결과적으로도 그러하였다.

그의 시 세계는 정신착란 발작 이전과 이후로 대별된다. 초기는 주로 자연과 친지에 대한 서정시 계열이라면 후기는 말기에 가까울수록 소위 <오렐리아>적이 된다. 물론 초기작도 어둡고 우울하며 미래를 예감케 하는 상념의 편린이 군데군데 반영되어 있어 화사한 맛은 별로 없다.

“다정한 마음, 조용한 미소의
어리디 어린 한 소녀
바늘로 너희 가슴 찌르고
놀란 눈으로 들여다보네.
너희들 자르는 흰 손톱으로 인해
너희들 발이 끊기고
부르르 떠는 촉각은
죽음의 고통 속에!......”  (‘나비’ 중에서, P.68)

“그러나 어림없지, - 내 젊음이 끝났으니......
나를 밝혀 주던 부드러운 빛이여, 안녕 -
향기, 소녀, 조화......
행복은 지나가고 있었네, - 행복은 달아났지!”  (‘룩셈부르그 공원의 오솔길’ 중에서, P.102)

네르발의 삶과 정신을 대변하는 단어를 하나 고르자면 그것은 바로 ‘낙오자(El Desdichado)’이다. 그의 삶을 회고하면 네르발은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자이며,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한 자이며, 사회에서 낙오자이며, 인생에 실패한 자이다.

“나는 어둠이요, - 홀아비, - 위로받을 수 X는 자,
폐허의 탑에 갇힌 아킨텐느 왕자 :
나의 유일한 별은 사라졌네 - 그리고 내 별이 총총한 루트도
멜랑콜리의 검은 태양을 지고 있네”  (‘낙오자’ 중에서, P.148)

네르발이 자신을 패배자들과 저주받은 자들의 종족에 연결시켰다는 한 주석가의 평(P.161)은 전적으로 옳다. 그는 낙오자이자 패배자였다. 현실에 실패한 사람들의 대안은 흔히 현실을 포기한다. 네르발은 몽상과 환각 속에서 잃어버린 현실을 구하였다. 이성이 삶이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면 정신착란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가 환각제를 복용하고 정신착란에 빠졌던 것은 자연스런 귀결일지도 모른다.

부모로부터의 버림은 끊임없는 모성에의 갈구로 표출된다.

현재의 괴로움은 과거로의 회귀를 자아낸다. 과거의 첫사랑(아드리엔느), 어릴 적에 지내던 고향(발루와)로.

“그리고 높은 창가엔 한 부인이.
검은색 눈의 금발머리, 옛 의상을 입고.
어쩌면 다른 생애에서 내가 이미 보았을 여인!
그리고 지금 그녀를 내가 회상하고 있을지도 모를!” (‘환상곡’ 중에서, P.58)

사랑의 실패는 영원한 여인상에 대한 헛된 집념을 남긴다. 아드리엔느, 제니 콜롱, 옥타비아, 오렐리아.

사회의 낙오자는 어떠한가. 파리, 프랑스를 떠나 이국을 동경한다. 그의 오리엔트 지향이 입증하는 대로. 그리고 유일신 기독교를 부정하고 범신론적 이교를 찬미한다. 그의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이시스와 오시리스 및 <공상시집>의 ‘미르토’, ‘호루스’, ‘앙테로스’, ‘델피카’, ‘아르테미’ 등이 모두 그러하다.

‘여호와여! 당신의 정신에 패배한 마지막 신이
지옥의 밑바닥으로부터 “오, 폭정이여!”하고 외치네,
그는 나의 조상 벨류스, 또는 내 아버지 다공이라네...”  (‘앙테로스’ 중에서, P.160)

네르발의 <공상시집>과 <실비>, <오렐리아> 등의 산문작품은 상보적 관계에 있다. 네르발을 이해하려면 같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이 시집은 네르발의 작품세계에 대해 상세한 해설과 주석을 붙이고 있어 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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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24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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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 오렐리아 (구) 문지 스펙트럼 7
제라르 드 네르발 지음, 최애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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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문학작품을 역자를 달리하여 감상하는 즐거움은 제법 있다. 우선 해당 문학작품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진지한 이해가 가능해진다. 아울러 역자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작품에 대한 인식이 비슷하나 똑같지는 않은 감흥을 제공하며, 때에 따라서는 새로운 작품을 접하는 듯 한 생경함을 주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반복에 대한 지겨움을 감내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네르발의 글을 읽으면 아직 달빛이 그 힘을 잃지 않은 늦은 밤중 내지 새벽 어스름이 연상된다. 그것은 네르발이 추구하는 꿈과 몽상의 서술이 주는 선입견만을 아닐 것이다. <실비>는 달빛이 교교한 밤이다. 대낮처럼 눈부시고 화사하지 않지만 달빛이 주는 애틋함과 마음을 정화하는 정서가 남다르다. <오렐리아>는 안개가 자욱한 새벽이다. 사위는 온통 흐릿한데 갈길 모르는 나그네는 사물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두 작품 모두 작가가 정신착란을 일으켜 요양소에서 고생을 하던 시절에 씌어졌다. <실비>가 보다 내·외적 일관성을 갖추고 간결과 투명함을 잃지 않았던 것은 아직 그의 정신이 몽상의 세계에 빠지지 않았던 듯하다. 그래서 독자는 그의 글에서 아무런 징후도 발견하지 못한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실비>의 배경이 되었던 파리 북부 근교 즉, 발루와 지방의 지도가 첨부되어 있어 작품 배경과 주인공의 여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향과 유년시절로의 회귀라는 특성상, 지리적 배경이 없으면 머릿속이 오락가락해진다. 

<오렐리아>의 비논리성과 정신적 자유분방함은 물론 몽상의 산물이다. 꿈이 낮에도 계속되는 것, 그러한 환상이 오렐리아의 전체적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다만 <칼리프 하킴 이야기>를 읽은 이후 좀 더 추가된 이해가 있다면, 그의 몽상은 단순히 정신착란 이후의 산물이 아니라 그가 더 일찍 해시시를 복용하면서 얻은 체험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 환각의 묘사 장면은 정신약물 복용 후의 환각과 놀랄 정도로 흡사하다. 그의 해시시 복용이 어느 수준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만년 정신이상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추론이다.

네르발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영원한 여인상은 복합적이다. 상실한 모성에 대한 동경, 이시스 여신으로 표상되는 오리엔트적 지향, 그리고 제니 꼴롱에 대한 이루어지지 못한(아마도 네르발 자신의 귀책사유로 인한 듯) 사랑과 그리움 등. 여기에 발루와 지방의 유년시절의 인상이 깊이 결합되어 있다.

그래서 네르발의 작품은 읽을 때마다 느낌이 미묘하게 다르다. 적절한 분량과 정서적 다양성이 주는 현실적, 예술적 기쁨이 계속하여 반복 독서를 유도하는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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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2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11.11.1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