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2세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15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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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리처드 2세는 플랜타저넷 왕가의 마지막 왕으로 랭커스터 왕가의 헨리 4세에게 왕위를 뺏기는 비운의 군주다. 이 희곡에서도 리처드 왕은 귀족, 평민들에게 모두 미움을 받는 폭정의 임금으로 지칭된다. 작품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극중에서 리처드 왕의 악정은 등장인물들의 전언에 의존한다. 왕 자신의 말과 행동에서는 별달리 폭군의 징조를 발견할 수 없다. 극중에서 유일하고 가장 큰 잘못은 삼촌 고온트의 존의 사망에 따른 상속권을 추방당한 볼링브루크에 넘기지 않고 몰수하려고 한 행동이다. 이것이 결국 그의 몰락의 계기가 되는데, 깊이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셰익스피어 자신도 헨리 4세의 왕권 찬탈이 그렇게 정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헨리 5세는 훗날 리처드 왕의 무덤에서 부왕의 잘못을 눈물을 흘리며 사죄한다. 솔즈베리 백작, 스크로우프 경, 칼라일 주교가 리처드 왕의 편을 든 것은 그가 단순히 왕이어서가 아니라 왕으로서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보유하고 있음을 인정해서이다. 역으로 볼링브루크는 이 두 가지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볼링브루크는 전적으로 노섬벌랜드를 비롯한 타 귀족들의 도움으로 왕권을 차지할 수 있었고, 자신이 충성을 서약한 왕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왕좌를 차지하였다. 더욱이 엑스터 경을 사주하여 리처드 왕을 살해한다.

 

(칼라일 주교) 여기 고귀한 분들 중 누구든 / 고귀한 리처드를 올바르게 심판하실 만큼/ 참으로 고귀하시다면 좋겠죠. 계시더라도 그분은 스스로의 고귀함으로 / 깨달으실 것이오, 이렇게 더러운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것을. / 어떤 신하가 자신의 왕에게 언도를 내릴 수 있답니까? / 그리고 여기 앉아 계신 분 중 리처드의 신하 아닌 사람 그 누굽니까? (P.118, 41)

 

리처드 왕은 귀족들간 세력다툼의 희생양이다. 작품 서두는 모브레이와 볼링브루크의 상호 반역 고발로 시작한다. 누가 진정한 반역자인지 리처드 왕은 판정을 내려야 한다. 당대의 관습대로 양자 간 결투를 통해 승자의 정의를 인정할 수 있겠지만, 리처드 왕은 두 사람의 추방으로 처리한다. 모브레이는 영구 추방을, 볼링브루크는 6년 추방을 명한 것을 보면 사촌에 대한 상당한 배려라고 볼 수 있다. 12장 고온트의 존 대사를 통해 이들의 갈등 배경에는 리처드 왕의 또 다른 삼촌 글로스터의 죽음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가 글로스터를 죽였는가, 그리고 무엇 때문에? 리처드 왕은 왜 고온트의 존의 재산을 몰수하였는가, 단지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

 

(리처드 왕) 마치 짐의 잉글랜드가 계약 만료되면 자기[볼링브루크] 것이고, / 자기가 짐의 백성들이 생각하는 왕위 계승자라는 듯이. (P.40, 14)

 

다시 역사를 찾아보면 리처드 왕과 삼촌 간 사이가 좋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온트의 존, 글로스터는 어린 조카를 꼭두각시로 삼고 자신들을 포함한 귀족층의 지위와 세력을 확대하려고 하며, 성인이 된 리처드는 왕권 강화를 시도한다. 이런 해묵은 갈등이 고온트의 존이 죽기 직전에 리처드에게 폭언을 퍼부은 배경인 동시에 리처드가 무리해서라도 볼링브루크의 상속권을 박탈한 이유일 것이다. 볼링브루크가 반기를 들자마자 거의 모든 귀족이 그에게 합류한 까닭을 알 수 있으며, 비교적 중립적인 삼촌 요크 공작조차 후반에는 볼링브루크 편에 은근슬쩍 마지못한 듯 합세한다.

 

이렇게 볼 때 모브레이와 볼링브루크의 갈등은 재해석할 여지가 있다. 모브레이가 충신이었음과 볼링브루크의 정체를 꿰뚫어 본 혜안을. 모브레이는 영구 추방이라는 차별적 조치의 치욕과 불명예를 군말 없이 감수한다. 외국에서 왕을 원망하고 반란을 획책하기는커녕 이교도와의 성스러운 전쟁에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모브레이) 만에 하나 내가 반역자였다면, / 영생의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도 좋다, / 여기서 그렇듯 하늘에서 추방되어도 좋고. / 그러나 너의 정체는, 정말, 네가, 그리고 내가 잘 알지, / 너무도 이르게 왕께서 후회하실까 봐 걱정이다. (P.33, 13)

 

여기서 볼링브루크가 왕의 추방령을 어기며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에 상륙한 상황을 살펴본다. 자신의 상속권이 박탈되었으니 그로서는 당연히 화가 날 것이고 자신의 권리를 회복해야겠다는 동기도 충분히 인정할만하다. 공식적인 거병 사유도 자신의 권리 회복에 있다고 반복해서 주창한다. 23장과 33장에서 자신과 노섬벌랜드의 입을 통해. 이후 리처드 왕에게 확실한 세력적 우위를 확보하게 되자 그 자신과 추종세력의 태도는 완전히 바뀐다. 노섬벌랜드는 실수인 척 리처드 왕의 왕 호칭을 생략하고 말한다. 볼링브루크는 요크 공작이 리처드의 양위 의사를 전달하자마자 일말의 사양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수용 의사를 밝힌다. 그리고 양위 의사가 리처드 왕의 자발성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뻔뻔스럽게 반문한다.

 

(볼링브루크)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가 왕의 권좌에 오르겠소. (P.117, 41)

 

(볼링브루크) 자진하여 물려주는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P.121, 41)

 

독자는 볼링브루크의 일련의 언행을 통해 상속권 회복은 표면적 주장에 불과할 뿐 리처드를 무너뜨리고 왕권을 쟁취할 의도를 처음부터 품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헨리 왕의 이중성과 위선적 면모는 엑스턴을 교사하여 리처드를 살인하도록 한 행위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엑스턴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우리라. 왕의 명령을 좇아 리처드를 죽였건만 돌아온 건 온통 비난뿐. 살인 지시는 했지만 그렇더라도 살인자는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는 무엇인가? 토사구팽인가.

 

(엑스턴) 폐하 자신의 구두 지시를 받고 저는, 폐하, 이 일을 감행한 것입니다.

(헨리 왕) 독약이 필요한 것이지 독약을 사랑하는 것은 아닌 것, / 내가 그대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 비록 그가 죽기를 바랐지만, / 난 살인자를 증오하고, 살해된 그를 사랑한다. (P.162, 56)

 

작가는 귀족들, 리처드 왕의 부하들, 그리고 정원사 같은 평범한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리처드 왕이 학정과 실정을 자행하고 있음을 계속하여 상기시킨다. 정원사의 말대로 리처드가 자신의 나라를 다듬고 재배하지 않은”(P.107, 34) 잘못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것을 리처드 혼자만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건 곤란하다. 그는 실권을 틀어쥔 자신의 반대세력, 잉글랜드와 왕보다는 사욕에 더 매진하는 그들과의 싸움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런 잘못이 헨리 볼링브루크의 찬역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랭커스터 왕가에 장밋빛 미래가 약속되지 않음을 셰익스피어는 리처드 왕과 칼라일 주교의 예언을 통해 똑똑히 보여준다. 헨리 왕의 특등공신인 노섬벌랜드가 고분고분 볼링브루크에게 복종하지 않고 반역을 꾀할 것을, 칼라일 주교는 왕권을 노리는 귀족들의 잇따른 배신과 분열이 훗날 장미전쟁을 초래할 것을 각각 암시한다.

 

(칼라일 주교) 여기 있는 해러포드 경은, 당신들이 왕이라 부르지만, / 더러운 반역자요, 해러포드의 위풍당당한 왕께. / [......] / , 만일 당신들이 이 가문을 키워 이 가문에 맞세우면 / 그건 이 저주받은 대지에 내린 / 가장 비통한 분열로 드러날 거요! (P.119, 41)

 

5막은 요크 공작과 공작부인, 그들의 아들인 오멀 공작의 촌극으로 점철한다. 작가는 굳이 여기서 요크 공작 가족의 일화를 끼워 넣었을까? 요크는 리처드 왕의 신임을 받고 섭정이 되었지만 헨리에게 돌아서고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오멀은 시종일관 리처드에게 충성하고자 노력한다. 리처드 왕 복위 시도를 알아차린 요크가 아들을 반역자라고 퍼붓는 대목은 23장에서 볼링브루크와 귀족 일당을 반역자라고 매도하는 장면과 역설적으로 대비된다. 오멀은 자신의 목숨과 가문을 위해 헨리에게 굴복하지만, 반역의 기준이 무엇이고 참다운 정의가 무엇인지 새삼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1년여 전 <햄릿>으로 시작한 셰익스피어 희곡 전 작품 읽기를 이제 마친다. 일생에 한 번은 시간을 들여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문구를 떠올리며 시작했는데 확실히 그럴만하다고 동의한다. 대중적인 비극과 희극을 새롭게 음미하는 시간이었으며, 무엇보다 생소한 작품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미처 알지 못한 세계를 보는 기쁨도 컸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리처드 2>로 대단원을 끝내는 것도 훨씬 의미가 깊다. 집필 시기적, 연대기적으로 그의 최후 역사극은 <헨리 8>이지만, 강요된 인위적 화해와 밝음의 분위기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헨리 볼링브루크의 찬탈이 야기시킨 장미전쟁의 여파를 감안하면 <리처드 2>의 어둡고 비극적 분위기가 더욱 그럴듯하다.

 

작품해설에서 중대한 오류 하나만 지적하고 끝낸다.

 

헨리 3세의 세 아들 모두 왕에 오르니, 에드워드 1(치세 1272~1307), 에드워드 2(치세 1307~27), 에드워드 3(치세 1327~77)가 그들이고 에드워드 3세는 아들 일곱을 두게 되는데, (P.171-172)

 

헨리 3세의 아들은 에드워드 1세다. 에드워드 2세는 에드워드 1세의 아들이고, 에드워드 3세는 에드워드 2세의 아들이다. 즉 에드워드 3세는 헨리 3세의 증손자이다. 리처드 2세는 다시 에드워드 3세의 장손이다. 혹시나 하여 바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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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2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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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All Is True (모든 게 진실이다)

 

<헨리 5> 이후 한동안 잉글랜드 역사극을 중단한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역사극인 동시에 그의 희곡 중에서도 최만년작에 해당한다. 셰익스피어의 단독 창작이 아니라 존 플레처와의 합작으로 간주되는데, 존 플레처와의 합작은 처음이 아니라 <두 귀족 친척>도 마찬가지다.

 

셰익스피어가 오랜 시간 역사극 집필을 중단한 까닭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재위 중인 시기인 까닭에 부왕인 헨리 8세를 다루기에는 부담이 컸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튜더 왕가가 단절되고 스튜어트 왕가가 들어선 이후에야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여왕의 생모를 작품의 소재로 그것도 조심스럽게 삼을 수 있었으리라. 이 작품의 원제를 보면 다른 역사극과 분명한 차이를 보임을 알 수 있다. 왕 이름을 표제에 넣지 않았다는 사실은, 작가가 굉장히 신중을 기하였음을 보여 주는 증표다.

 

장미전쟁을 종식한 헨리 7세의 아들인 헨리 8세는 역사적으로 잉글랜드의 절대왕정을 확립시킨 인물이며, 독자적으로 종교개혁을 시행한 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작가의 눈에는 별로 마뜩잖았던 모양이다. 작품 내내 헨리 8세의 통치력과 가정사를 비판적으로 재단한다. 헨리 8세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세 인물이 왕의 변심 때문에 몰락하는 과정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게 이 극 작품의 핵심적 내용이다.

 

11장에서 인정 많으신 버킹검, 온갖 예의 전범’(P.49) 버킹검 공작은 왕의 총신인 울시 추기경과의 알력으로 등장과 동시에 파멸을 맞이한다. 이 사건은 추기경의 권세를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동시에 다른 귀족들이 더욱 단합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버킹검 공작을 비롯하여 노포크 공작, 궁내장관은 물론 신사, 평민들조차도 울시 추기경을 증오할 지경이다. 추기경과 귀족들 간의 갈등은 권력 투쟁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비천한 혈통인 주제에 고위성직자가 되었고, 왕의 총애를 얻어 모든 신하의 윗자리에 앉아 있으니 귀족들로서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궁내장관) 하늘이 언젠가는 열어 주실 겁니다 / 폐하의 눈을, 이토록 오랫동안 자고 있었지만, 제대로 / 보여 주는 거죠 이 뻔뻔스런 악인을. (P.57, 22)

 

문제는 헨리 왕이 그를 너무나 총애하여 그의 단점과 여론의 평가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12장에서 가혹한 포고령의 강제 집행을 금지하는데, 정작 왕의 승인 없이 포고령을 임의로 작성하고 시행한 당사자가 누구이며 어찌 처벌할지는 전혀 논의조차 하지 않는다. 물론 울시 추기경은 다른 의미에서 문제가 있는 인물이다. 그의 막대한 축재와 왕비 이혼 추진은 헨리 왕을 위한 충성보다는 로마 교황이 되고자 하는 자신의 개인적 야망 실현의 도구임을 드러낸다. 앤 불린보다는 프랑스 왕의 여동생을 왕의 재혼 감으로 생각하는 것도 같은 동기에서다.

 

헨리 왕이 울시 추기경에게서 마음을 떠나게 된 것조차 자신의 의사를 충실히 좇아 이혼 사안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지 않는 게 기분 나빠서일 뿐이다. 결국 헨리 왕은 능력 있는 신하가 아니라 자신의 기분과 마음에 영합하는 신하만을 가까이하는 인물이다.

 

(헨리 왕) (방백) 이제 보니 / 추기경들이 날 갖고 노는군. 싫다 / 로마의 이런 꾸물대는 지연 술책이. 학문과 인기가 높은 내 충복, 크랜머, / 네가 돌아와야겠다. 네가 다가오면 / 내 위안도 따라오느니. (P.80, 24)

 

훗날 가디너 주교가 왕비 이혼에 도움을 준 크랜머 대주교를 이단으로 탄핵하자 왕은 표면적으로 공정한 재판 절차를 진행하라고 하면서도 그에게 몰래 자신의 반지를 건네주고 결정적인 순간에 직접 개입하여 가디너와 탄핵 지지 세력을 위협한다. 그리고 반강제적으로 화해와 통합을 요구한다.

 

(헨리 왕) 그대들 중 몇몇은, 내가 알지, / 성심은커녕 앙심을 갖고, / 재판을 통해 그를 극형에 처하고 싶어 하고, 수단만 있다면. / 하지만 그대들은 결코 수단을 갖지 못할 것, 내 생전에는. (P.155, 52)

 

어찌 보면 헨리 8세는 선호와 태도가 명확한 인물이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면 아끼고 효용 가치가 낮아지면 주저 없이 버리는.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 추진이 그것이다. 겉으로는 형수와의 결혼 생활이 도덕적, 윤리적으로 마음에 거리낀다는 이유를 대고 있지만, 작가는 이전에 왕과 앤 불린의 만남, 한눈에 그녀의 미모에 반하는 왕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왕의 위선적 태도를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무려 24년간이나 결혼 생활을 유지했으며 여러 명의 자식을 낳았고, 여러모로 흠잡을 데 없다고 스스로 인정한 왕비를 뒤늦게 쫓아낸 것이다. 24장의 헨리 왕 대사는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이라고 말한 크레타인을 연상시킨다.

 

(헨리 왕) 이 세상 어느 사내가 말하기를 / 제 아내가 더 낫다 하거든, 그의 말 하나도 믿지 마라, / 그 말 한마디 분명 거짓이니. 당신이 유일하오- (P.75, 24)

 

작가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후인 앤 불린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우면서도 따끔하게 일침을 가한다. 왕비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앤 불린에 노부인은 위선 떨지 말라고 하면서. 앤 불린에 대해서는 그래도 긍정적 대사가 훨씬 더 많다. 아무래도 그녀의 딸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압권은 제4막의 대관식 장면인데, 대관식 행렬 순서를 길게 나열하는 대목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는 처음 보는 사례이다. 그만큼 헨리 왕과 앤 불린의 재혼을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독자는 이미 역사를 통해 앤 불린의 왕비 재위가 오래지 못함을 알고 있다. 그녀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음도.

 

이 작품은 대조적 면에서 캐서린 왕비와 울시 추기경의 인물 됨됨이가 돋보인다. 왕비는 시종일관 고상하고 품위 있으며, 자신을 버리려는 왕을 향한 연민과 애정, 충성의 끈을 놓지 않는다. 독자에게 이런 뛰어난 왕비를 저버리려는 헨리 왕과 울시 추기경에 비난의 마음을 생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울시 추기경은 매우 복합적이다. 그 역시 범상한 인물이 아니었음은 자타가 인정할 정도였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과 왕의 신임을 잉글랜드가 아닌 개인적 야심 추구에 사용하였다. 자신의 행위가 절대적 충성의 차원이었다고 주장하지만 그에게는 야심과 충성이 동의어로 인식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반전은 그가 권력의 정점에서 몰락한 이후다. 비로소 도덕적 각성을 하는 추기경에 대해서는 일말의 인간적 동정조차 갖게 된다. 비천한 혈통에서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출세 가도를 달려왔으니 그로서는 칼날 위를 달리는 심정으로 평생을 살아왔을 것이다. 조금의 방심과 곁눈질로도 파멸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천만. 따라서 그리피스의 평가가 객관적이며 정당하리라.

 

(그리피스) 이 추기경, / 비록 비천한 혈통이나, 의심할 여지없이 / 숱한 명예를 안을 자질이 있었습니다. 요람에서부터 / 그는 학자였고, 그것도 무르익은 훌륭한 학자였지요, / 너무나 현명하고, 말 잘하고, 설득력 있었어요, / 거만하고 졸렬했지요,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자들한테는, / 하지만 친한 이들한테는 부드럽기 여름 같았어요. (P.126, 42)

 

옮긴이는 이 작품이 드라마라기보다는 일련의, 각 개인들이 겪는 재앙이나 사건들의 나열”(P.188)이라고 평한다. <프롤로그><에필로그>에서도 이 작품이 통상적 의미의 연극과는 다른 성격을 지녔음을 반복하여 언급한다. 이것은 웃음과 즐거움을 주려고 의도한 작품이 아니라며. 인간의 행복과 영광이 절정에서 얼마나 쉽사리 빠르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독자는 캐서린 왕비와 울시 추기경의 예를 통해 이것이 허언이 아님을 알게 된다.

 

작가는 최종 막에서 크랜머 대주교의 입을 통해 공주 아기씨 엘리자베스의 행복한 미래와 밝은 앞날을 예언한다. 헨리 왕은 공주의 세례식을 통해 가디너 주교와 크랜머 대주교가 포옹하고 화해하도록 하며 의도적으로 희망스럽고 즐거운 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독자로서는 너무나 급작스럽고 마지못한 느낌이 강하다. 어둠과 슬픔에 잠겨 있던 사람에게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서 웃고 즐기며 행복한 표정을 지으라면 가당키나 하겠는가. 오히려 강요된 평화와 화해는 자연스럽지 못하기에 임시변통이며 갈등은 잠시 재에 덮였을 뿐이라는 사실, 그리고 언젠가는 표면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이 희곡이 주는 묘하며 일면 찝찝한 여운은 아마도 이러한 면에서 비롯하는 게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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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왕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14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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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가 존 왕을 주인공으로 영국 사극을 시작한 이유가 궁금하다. 역사상 존 왕에 대한 평가는 매우 박하다. 사자심장왕 리처드 1세의 동생으로 왕위를 가로채고, 프랑스 내 잉글랜드 영토를 대부분 상실하며, 로마 교황에게 파문을 당하고, 전횡을 일삼다가 귀족들의 집단 반발을 초래하는 등. 작가는 이 희곡에서 오히려 존 왕을 긍정에 가까운 쪽으로 묘사한다. 유일하게 부정적인 장면은 조카 아서를 죽이라고 교사한 데 있다. 그리고 귀족들 앞에서 자신의 사주를 부인하고 수행원 휴버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비겁한 태도를 보인다. 작가는 극중에서 아서는 자신의 실수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으로 처리한다.

 

정당한 왕위계승권이 아서에게 있다면, 할머니 일리노어 대비도 이를 인정했을 텐데 그녀는 아들 존 왕의 편을 든다. 며느리 콘스탄스와 시어머니 일리노어 대비 간의 살기등등한 21장의 대화를 보면 콘스탄스가 단순히 자기 아들의 왕위를 계승 받지 못한 것에 분개한 것보다 더 깊은 내막이 있음을 유추하게 한다. 그렇기에 일리노어 대비는 손자 아서보다 아들 존 왕을 선택한 것이리라.

 

실지왕(失地王)’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을 지닌 왕답지 않게 셰익스피어는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1차 전쟁에서 존 왕의 압도적 승리를 기록한다. 그리고 프랑스 왕세자의 입에서 존 왕을 영웅처럼 묘사하는 대사를 표현하게 한다.

 

(왕세자 루이) 그는 획득한 것을, 확고히 했어요. / 그토록 불같은 속도에, 그토록 절제된 판단력, / 그토록 격렬한 투쟁에 그토록 동요 없는 전열은, / 전례가 없는 거였어요. 누가 읽거나 본 적이 있겠어요, / 이와 유사한 전투 능력을? (P.78, 34)

 

이 작품의 또 다른 극중 중요한 갈등은 존 왕과 로마교황의 종교적 대립이다. 로마교황의 요구에 굴복하기를 거부하여 이단과 파문이라는 당대로서는 무시무시한 낙인을 기꺼이 감내하는 존 왕의 태도는 오히려 순교자적 면모도 엿보인다. 게다가 그는 로마교황의 우월적 지위를 거부하고, 부패와 탐욕에 물든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여 빈민에게 베풀어줄 계획도 표방한다. 이렇게 당당하게 교회에 맞서는 그에게서 후대 영국 국교회를 창설한 헨리 8세를 기대할 수 있다. 작가가 의도한 것 또한 동일한 뜻이라고 믿고 싶다.

 

(존 왕) 비록 그대와 나머지 왕들이 모두 그토록 질질 끌려다니며 / 이 사기꾼 마법사를 아껴 국고를 지원하고 있으나 / 나만은, 나 하나만은 싸울 것이오. / 교황에 맞서, 그리고 그의 친구를 나의 적으로 간주할 것이오. (P.62, 31)

 

(존 왕) (사생아에게) 사촌, 잉글랜드로 떠나게! 먼저 가라구, / 그리고 우리가 가기 전에, 반드시 털어야 해 / 수도원장들이 긁어모은 돈 가방을. 평화 시 살찐 갈빗대로 / 이제 배고픈 자들을 먹이는 거야. / 갇혀 있던 천사 금화들을 풀어 주라고. / 세리들을 총동원해서 말이야. (P.73, 33)

 

세속화하여 타락한 로마교회의 위세는 존 왕을 파문하고 그를 향한 반란과 살해를 부추기며 프랑스 왕에게 존 왕과의 관계를 단절하라고 강요하는 데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추기경은 왕세자 루이의 야심을 알아차리고 아서의 죽음을 계기로 잉글랜드로 쳐들어갈 것을 대놓고 유도한다. 왕세자 루이를 자신의 꼭두각시로 삼았던 것이나 오히려 자신이 들러리였음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존 왕의 복종을 끌어낸 그의 말 한마디면 프랑스군이 곧바로 철군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오히려 왕세자 루이에게서 핀잔만 얻고 만다.

 

극중에서 루이는 자신의 야심을 거의 달성할 수 있었다, 멜륀의 폭로로 드러난 패착만 아니었다면. 토사구팽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권세가 확고함을 자신할 수 있을 때만 시도해야지 자칫하면 권좌 자체가 전복될 위험이 있다. 여기서의 왕세자 루이처럼.

 

이해관계에 따라 잉글랜드 왕에게서 프랑스 왕세자로, 다시 존 왕에게로 충성과 서약이 쉽사리 왔다 갔다 하는 귀족들의 태도가 우습다. 대의명분은 존 왕의 아서 살해에 대한 분개이지만, 왕권 앞에서 부자 관계도 험악해지기 일쑤인데-역사상 리처드 1세와 존 왕의 아버지 헨리 2세와 아들들의 대립을 보라- 삼촌과 조카는 더없이 멀고 가벼운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솔즈베리를 위시한 귀족들의 태도 표변은 자신들의 안위를 생각해서일 뿐이다. 아서의 죽음 의혹은 여전히 존 왕에게 있고, 애초에 프랑스군을 오도록 만든 게 그네들이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진실한 인간상은 사생아 필립 팰컨브리지다. 리처드 1세의 사생아인 그는 극중에서 계속 사생아로 불리며, 거칠고 투박한 어투와 이해타산에 연연한 듯한 대사로 인해 일종의 악역 내지 부정적 인물이 아닐까 독자의 의심을 받는 인물이다. 모두가 삼촌 존 왕을 떠날 때도 그는 꿋꿋하게 곁을 지키고 프랑스군과의 전투에서 무시무시한 용맹을 발휘한다. 의기소침한 존 왕에게 프랑스와의 비굴한 휴전을 거부하고 강력하게 맞서 싸울 것을 촉구하기도 한다. 존 왕의 죽음에 이르러 통곡하며, 딴마음을 먹지 않고 헨리 왕자에게 누구보다 앞서 충성을 맹세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일개 독자는 자신의 의심이 그릇되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실제 역사에서 별 볼 일 없는 일개 사생아를 극중에서 주인공 존 왕과 대등한 위치로 격상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플랜타저넷가의 정통성은 존 왕에게서 헨리 3세로 이어지지만, 이것이 가능하게 한 것은 전적으로 사생아의 공로다. 명분과 정의를 주창하지만 구린내 나는 행동을 일삼는 귀족과 사제에 비한다면, 고상하고 우아함은 없을망정 진실성이라는 면에서 사생아라고 멸시받는 필립이 더 참된 인간이다. 종막 종장의 마지막 대사, 그의 입을 통해 잉글랜드의 당당한 위엄과 밝은 미래를 선언하는 중대한 역할을 작가가 그에게 맡긴 것은 참으로 타당하다.

 

(사생아) 우리 잉글랜드는 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결코, / 정복자의 오만한 발 아래 짓밟히지 않을 것이오 / 잉글랜드가 먼저 자해의 빌미를 갖지 않는 한. / 이제 이 나라 귀족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으니, / 세계의 삼면이 무장을 하고 쳐들어와도, / 우리는 그것을 물리칠 것이오. 그 어느 것도 우리를 한탄케 못하리라 / 잉글랜드가 잉글랜드에게 진실되기만 하다면. (P.151,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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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3세 셰익스피어 전집 4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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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극은 아직 완전하게 셰익스피어의 것으로 인정받고 있지 못한 작품이다. 작품해설에 따르면 세계 학계의 공인을 받게 된 게 1990년대 후반이라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단독 창작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공동 저자가 누구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희곡의 국내 번역본은 신정옥과 신상웅 두 사람뿐이다. 이렇게 국내 번역본이 드문 까닭은 셰익스피어 작품으로 공인받은 게 매우 늦어서 1997년 이전의 저본은 이 작품을 수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셰익스피어의 작품과의 뚜렷한 유사성, 사용단어의 유사성”(P.161)이 있다고 인정된다.

 

에드워드 3세는 잉글랜드와 프랑스 간 백년전쟁을 일으킨 왕이고, 이 작품은 백년전쟁의 서막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당시 잉글랜드는 프랑스 내 일정 영토를 보유하고 있고, 결혼을 통한 왕실 간 친인척 관계를 맺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적통 왕계가 끊어지자 방계인 발로와 가의 죤을 왕으로 추대했는데, 에드워드 왕은 모친이 프랑스 왕가의 적통이므로 자신이 더 왕위계승권에서 앞서기에 왕위를 요구하면서 프랑스로 쳐들어간다.

 

(에드워드 왕) 그 놈이 찬탈한 왕관은 나의 것이라고 전하라. / 그리고 그 자는 그 자리에서 바로 무릎을 굽혀야 한다고. / 내가 요구하는 것은 하찮은 공작령이 아니다, / 프랑스의 전 영토인지라. (P.19, 11)

 

셰익스피어의 사극을 연달아 읽다 보면 유사한 상황이 반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에드워드 왕 vs 죤 왕의 대치는 헨리 5vs 샤를 왕과 닮은꼴이다. 여기서 아르또와는 <헨리 5>의 캔터베리 대주교와 마찬가지로 왕의 프랑스 공격을 선동하는 역할이다. 왕권의 정당성을 주장한다는 측면에서 <헨리 6>의 요크 공작 리처드 vs 헨리 6, <헨리 5>의 해리 왕 vs 쫓겨난 리처드와 마찬가지로 양자가 모두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 권력을 가진 왕조차도 이 사실을 일정 부분 인정한다. 어디 왕뿐이랴, 귀족이나 시민조차도 그들의 주장이 꽤 타당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 왕좌에 있는 왕이 물러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누구도 자신의 왕위를 선선히 포기하지 않는다. 비록 정당성이란 면에서 약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죤 왕) 에드워드, 네가 프랑스에서 갖는 권리를 알고 있다. /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왕위를 포기할 바에야, / 이 전장이 피바다가 되고, / 우리는 도살장같이 피투성이가 될 것이다. (P.90, 33)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싸움이 벌어지면 평범한 백성 대다수가 결국 희생양이 되고 만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다. 그네들은 왕권의 정통성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직 자기네 국가를 평화롭고 살기 좋게 잘 다스려줄 수 있는 지배자를 원할 뿐이다. 그럼에도 위정자들은 자기네들의 명분과 사욕에 몰입하여 그것이 지상과제인 줄 착각한다. 최고의 가치를 지닌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재산과 생명을 몽땅 쏟아붓더라도 옳다고 여긴다.

 

(죤 왕) 한 왕국의 통치권을 잡으려고 싸우는 건 / 얼마나 몸서리치는 공포인가, 너도 알 것이다. / 대지가 아찔하게 떨 정도로 흔들리거나, / 대기가 극열한 불빛을 쏟았다가, 작열하는 것도 / 왕들이 그들의 부풀어오른 / 마음의 원한을 나타내려고 할 때처럼 / 무서운 것도 없다. (P.77, 31)

 

이 작품은 그런 끔찍한 공포를 다루고 있다. 물론 작가의 출신답게 잉글랜드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극중에서 에드워드 왕은 실수도 하지만 결국은 잉글랜드의 위엄과 명예를 전 유럽에 휘날리는 영웅적 제왕으로 묘사된다. 설즈베리 백작부인을 향한 그의 무모하고 폭력적 구애는 아슬아슬한 극단 앞에서 겨우 멈춘다. 세상의 모든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겠다는 무시무시한 결심이 왕으로서 절대적 권력과 결합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없으리라. 욕정에 맹목적으로 된 그에게는 거칠 것이 없다. 걸림돌이 된다면 백작도, 자신의 왕비도 제거하면 그뿐이다. 이처럼 12장에서 2막에 이르는 상당한 분량에서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인륜 도덕마저 무시하고 폭군으로 급전직하로 전락하는 왕과, 최후의 순간에 극적으로 성군의 자질을 회복하는 왕의 모습, 그리고 그를 향한 작가의 영웅적 고양감이다. 이후로는 더는 백작부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채롭다.

 

(에드워드 왕) 일어서요. 나의 잘못으로써 당신의 명예를 드높이고, / 장차 당신의 명성을 풍성하게 할 것이요. / 나는 이제 어리석은 꿈에서 깨어났소. / 워릭, 내 아들, 더비, 아르또와, 그리고 오들리, / 용감한 전사들, 모두 어디 있느냐? (P.67, 22)

 

에드워드 왕의 극단적 태도는 아들 에드워드 왕자에게서도 드러난다. 적군에 포위되어 금방이라도 목숨을 빼앗길 것 같은 위험천만한 상황임에도 그는 구원군을 보내지 않으며 누구라도 왕자를 돕지 말도록 명령한다. 신하들의 비난과 탄식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악의 상황을 만나더라도 사자 새끼를 키우고 싶어한다. 물론 에드워드 왕자는 부왕의 기대에 전적으로 부응한다. 그 유명한 흑태자 에드워드이므로. 뽀와따에에서 앞서 보다 더한 수적 열세와 포위에도 불구하고 왕자는 오히려 죽음 앞에서 초연하다. 물론 독자는 왕자가 결국 승전을 거둘 것임을 미리 알고 있다. 샤를르 왕자가 언급한 예언은 잉글랜드의 승리를 암시하며, 실제로 프랑스의 패배로 확인되지 않았는가.

 

(에드워드 왕자) 나는 생명을 한 푼만큼도 치지 않을 것이다. / 아니, 엄격한 죽음을 피할 생각은 반에 반 푼만큼도 하지 않는다. / 산다는 것은 죽음을 찾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노라. / 그리고 죽음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일 뿐이니까. / 시간을 지배하는 신이 하시는 마음에 따라갈 것이며, / 살거나 죽거나 다른 것이 없느니라. (P.127-128, 44)

 

이 작품은 전쟁 중임에도 기사도의 정신이 살아 있는 장면을 곳곳에 집어넣고 있어 하나의 흥미로운 볼거리로 삼는다. 설즈베리 백작의 포로가 된 빌리에가 샤를르 왕자의 권유에도 흔들리지 않고 다시 포로가 되기를 선택하는 대목, 포위된 에드워드 왕자에게 프랑스의 왕자들이 빠른 말과 기도서를 보내주는 대목, 왕자가 발행한 통행증을 지닌 설즈베리 백작 일행을 참수하려는 부왕에게 샤를르 왕자가 왕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대목들이 그러하다.

 

이 희곡은 잉글랜드의 영광을 찬미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데, 에드워드 왕자의 기도는 전승 감사 기도이며, 에드워드 왕의 평화 선언은 잉글랜드의 전승가라 할 만하다. 잉글랜드는 최대의 적인 스코틀랜드와 프랑스에 승전을 거두고 두 왕국의 국왕을 포로로 잡았으니. 하지만 왕은 알았을까? 그가 시발한 전쟁이 향후 백 년 넘게 이어져 잉글랜드의 미래를 파란만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되었을 줄을.

 

작품 자체가 원래 그러한지 아니면 번역자의 차이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작품은 꽤나 매끄럽게 읽힌다. 대사 자체도 그렇게 까다롭지 않다고 생각된다. 다만, 크래씨 전투 후에 에드워드 왕과 왕자의 대화는 해석하기 모호할뿐더러 필연성도 의문시된다.

 

(에드워드 왕) 도망가는 사냥감을 조심해서 추격하여라.- / 이건 무슨 그림이지?

(에드워드 왕자) (그림을 가리키며) 페리칸입니다. 폐하. / 구부러진 부리로 자기의 가슴에 상처 내며, / 가슴에 흐르는 핏방울로 / 둥우리에 있는 새끼 새를 키웁니다. / 제명은 시크 에 보스- ‘너도 그럴 지어다입니다. (P.103-104,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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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5세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18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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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42>의 말미에서 암시되었듯이 이 작품의 내용은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전쟁, 즉 백년전쟁을 다루고 있다. 물론 백년전쟁의 서막은 훨씬 이전에 열렸지만, 헨리 5세 때 맹렬한 기세로 점화되었다. 헨리 5세의 정복욕을 부추긴 인물은 캔터베리 대주교이다. 그는 분할상속법을 언급하며 프랑스의 정당한 왕위 계승권은 현재의 프랑스 왕이 아니라 마땅히 헨리 5세에 있음을 강변하며, 프랑스로 출병할 것을 선동하고 설득한다. 11장의 서두를 보면 알겠지만 대주교의 순수한 충정만이 아님은 독자도 알고 있으리라.

 

(캔터베리) 폐하의 것을 위해 나서서 펼치세요, 폐하의 피투성이 깃발을, / 돌아보십시오 폐하의 강력한 조상님들을. (P.21, 12)

 

(해리 왕) 프랑스는 짐의 것이니 짐에게 복종시키거나 / 산산조각을 내려 하오. 짐이 그곳에 앉아, / 크고도 풍만한 왕권으로 / 프랑스 및 그녀의 모든 왕국 수준 공작령을 지배하거나 /이 뼈를 보잘것없는 단지에 묻거나 둘 중 하나요, (P.27, 12)

 

캔터베리의 유혹에 넘어간 헨리 5세는 마침내 프랑스 정벌을 결행한다. 잉글랜드와 프랑스를 넘나드는 전쟁의 전개와 시간의 경과, 그리고 수많은 인물을 제한된 무대에 올린다는 건 불가능하다. 셰익스피어는 제2막부터 각 막의 첫 장을 0장으로 하여 코러스를 등장시킨다. 코러스의 역할은 시간과 공간을 축약시켜 사건의 배경과 경과를 보충 설명하고,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의 날개를 펼쳐서 무대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그의 다른 희곡과 구별되는 이 작품의 특징이다.

 

(코러스) 이렇게 상상의 날개를 달고 우리의 장면은 날아갑니다 / 동작의 민첩함이 / 생각의 그것 못지않게. 여러분은 보았다고 가정하세요. (P.60, 30)

 

<헨리 4> 2부작의 지배자인 존 폴스타프 경을 외면할 수 없다. <헨리 42>의 에필로그에서 폴스타프의 등장을 예고하였음에도 셰익스피어는 여기에 그를 등장시키지 않는다. 주변 인물들의 전언을 통해 그가 중병에 걸렸음을, 그리고 끝내 죽었음을 2막에서 알릴 뿐이다. 무대를 휩쓸었던 사실상의 주인공치고는 매우 초라하고 쓸쓸한 결말이다.

 

이 희곡에서 폴스타프를 대신하여 악역 또는 해학을 담당하는 인물은 피스톨과 플루얼런이다. 전쟁에 참여한 존 경의 친구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지만, 유일하게 피스톨만 살아남는다. 극중에서 피스톨은 퀴클리와 결혼하였는데, 전작에서 퀴클리가 자신과의 결혼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폴스타프를 비난한 사실과, 피스톨과 결혼하기 전에 님과 약혼한 사이였다고 하는 걸 보면 돌 티어시트만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퀴클리의 인물됨을 짐작할 수 있다. 피스톨은 여기에서도 여전히 악역이다. 바돌프와 님처럼 대놓고 악행을 저지르지 않지만 플루얼런을 욕하고 대들다 비참하게 두들겨 맞는다. 잉글랜드의 승전으로 평화조약이 체결되는 시점에 그는 자신의 거취와 장래를 고민한다. 어느 쪽이든 피스톨답다고 할 만하다.

 

웨일즈인 지휘관 플루얼런은 매우 우직하고 용감하며 참다운 군인이다. 그런 그가 극중에서 해학적 역할을 맡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어수룩하게 들리는 웨일즈 말투 때문이다. 그와 피스톨, 그와 윌리엄즈 간의 장면은 해리 왕도 합세하여 우스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아무래도 전쟁을 다룬 작품이니만치 살인과 파괴가 주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관객의 긴장을 조금이나마 완화하고자 하는 배려라고 하겠다. 한편 36장에서 플루얼런과 피스톨의 대화는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데 이것이 원문이 그러한지 옮긴이의 선택인지 궁금하다.

 

프랑스 측에서도 묘한 여운을 주는 장면이 37장에 나온다. 부르봉 공작을 두고 오를레앙 공작과 최고관이 평하는 대화다. 이것만 놓고 보자면 오를레앙은 부르봉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으며 오히려 조소와 야유를 은근슬쩍 보여준다.

 

작가는 헨리 5세를 영웅으로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정당한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적국의 국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배려의 명령, 배신자를 제 꾀에 빠지게 하고 과감히 처단하는 결단력, 지치고 부족한 병력으로 결전을 앞두고 두려움에 떠는 병사들을 위로하는 한편 왕이라는 자리의 본질에 대한 깊은 탄식을 통해 보여주는 인간적 면모. 그리고 전장에서 병사와 장수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단호한 웅변과 과감한 용기.

 

이런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승전을 낙관한 프랑스군에게 대승을 거두게 된 것이다. 자고로 영웅은 미인을 좋아하는 법, 52장에서 카트린느 공주를 향한 그의 어설픈 구애 장면은 인간적인 동시에 영웅의 허점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동시에 안겨준다.

 

프랑스 왕의 처지에서도 한판 붙어보지 않고 선선히 자신의 왕관과 영토를 내줄 수는 없는 법. 어쨌거나 무수한 목숨의 대가로 평화는 성립하고, 양국은 결혼을 매개로 한 우호 친선의 관계로 접어든다. 사랑의 결합으로 양국의 영구한 평화를 샤를 왕, 이사벨 여왕, 해리 왕 이렇게 모두가 한결같이 희망하고 피력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실제 역사는 그것이 가능한 바람이 아님을, 권력욕은 인륜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해리 왕) 오 오늘은 제발, 생각지 말아 주소서 제 아비가 / 왕관을 빼앗으면서 저질렀던 잘못을. / 제가 리처드의 시신을 새로 묻었고, / 그 위에 흘린 뉘우침의 눈물은 더 많습니다. / [......] / 지금도 리처드의 영혼을 위해 미사를 올립니다. 그 이상을 하지요, (P.110-111, 41)

 

아쟁쿠르 전투를 앞두고 승리를 절실히 간구하는 해리 왕의 입에서 뜻밖의 대사가 튀어나온다. 이게 무슨 말인가? 아버지 헨리 4세가 저지른 잘못, 그리고 자신의 뉘우침의 눈물이라니. 연대순으로 전후에 위치한 <리처드 2><헨리 6>를 연결하는 복선의 구실이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작가 또한 이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헨리 6, 강보에 쌓인 아기로 왕위에 오른 /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왕이, 이 왕을 이었으나, / 국정을 좌지우지하려는 자 너무 많더니 / 그들이 프랑스를 잃고 그의 잉글랜드를 피 흘리게 한 것은, / 우리의 무대가 종종 보여 드린 대로이니-그것들로 하여, / 이 작품을 여러분께서는 좋게 보아 주시기를.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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