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진 웹스터 지음, 한영환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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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독해하는 여러 가지 관점을 나열해 본다.

 

첫째, 내용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전통적 견해. 고아원 출신의 어린 여학생이 후원자의 도움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우여곡절 끝에 후원자인 신사와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전형적인 신데렐라식 해피엔딩. 주디는 키다리 아저씨와 저비 펜들턴이 동일 인물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신의 생활과 저비와의 관계를 세세하게 편지로 알려준다. 저비는 단순한 후원자의 처지에서 처음엔 주디의 편지를 통해, 나중에는 신분을 숨긴 채 주디와의 만남을 통해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된다. 작가는 대학 생활과 친구들과의 교제를 통해 주디가 저비와 어울릴 만한 지적, 정서적 수준을 갖춘 숙녀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일종의 성장소설로 간주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커다란 기쁨들이 아니라 작은 기쁨들에서 많은 기쁨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아저씨, 저는 행복의 비결을 발견했어요. 그것은 현재를 사는 거예요. 과거를 영원히 후회하거나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에서 가능한 최대의 것을 얻는 것입니다. (P.169)

 

둘째, 남성주의적 시각. 주디처럼 똑똑한 학생이 키다리 아저씨와 저비가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록 윌로우 농장과 연극 관람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주디는 외면한다. 주디의 편지는 은연중 자신의 매력-성격, 지성 그리고 특히 미모를 어필하는 대목을 담고 있다. 주디가 예쁘지 않았다면 저비와 인연이 발전될 수 있었을까? 게다가 엄연한 사회적 신분과 연령의 차이에도 일말의 고민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있다. 꿋꿋한 지성으로 충만한 주디 애벗의 존재는 마지막 장면에서 사라지고 사랑에 들뜬 평범한 여성으로 전락하고 만다.

 

저는 예뻐요.

저는 정말 예쁩니다. 제 방에 거울을 셋이나 걸어놓고도 제가 예쁜 것을 지금까지 알지 못했다니 저도 엄청난 바보죠! (P.165)

 

우리는 이제 거짓으로 꾸민 것이 아니라, 정말 진짜 서로의 것입니다. 제가 드디어 누구의 것이 된다는 것이 야릇하지 않아요? 제가 누구의 것이 된다는 것은 아주, 아주 달콤한 듯합니다. (P.234)

 

셋째, 여성주의적 시각. 주디는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현대적 여성의 표본이다. 고아의 처지에서도 자포자기하지 않고 항상 삶을 개선하려는 자세를 보였기에 후원의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대학에 가서도 후원자의 뜻에 휘둘리지 않고 독자적인 삶의 개척 의지를 표방하고 있다. 더욱이 남성중심적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함께 진보적인 정치 성향도 내비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는 구걸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저는 정식으로 받게 된 것 이외에 따로 더 자선을 받고 싶지는 않아요. (P.115)

 

제가 참정권을 갖는다면 훌륭한 유권자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저는 지난주에 스물한 살이 되었어요. 저와 같이 정직하고, 교육을 받은, 양심적이고, 총명한 시민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다니 이 나라는 굉장히 낭비적이군요. (P.161)

 

여자도 시민입니까?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P.188)

 

왜 목사들은 남자 대학에 가서 머리를 너무 씀으로써 남성다운 기질을 말살시키지 말라고 역설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P.207)

넷째, 사회소설의 관점. 자신이 성장했던 존 그리어 고아원에 대한 주디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고아원이라는 환경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긍정적 반응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주디의 의견을 통해 당대 고아원의 실상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는 이 작품 이후 고아원에 대한 여론과 자선사업이 활발해졌다는 전언을 통해서도 단순히 작가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려고 고아원이라는 배경을 도입한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저는 일주일 내내 매일 다른 애들은 나가 노는 동안 말썽꾸러기 강아지처럼 뒷마당의 말뚝에 묶여 있었어요. (P.102)

 

상상력이 친절하고 동정심 있고 이해력 있는 사람을 만들지요. 상상력은 어려서 개발되어야 해요. 그러나 존 그리어 고아원은 상상력이 조금만 비쳐도 그것을 짓밟았어요. 그곳에서는 오직 의무감만을 장려했어요. (P.122)

 

 

문학작품 중에는 청소년기에 읽었을 때와 어른이 되어서 읽었을 때 감흥이 완전히 달라지는 유형이 꽤 있다. <키다리 아저씨>도 여기에 속한다. 불행히도 나는 어른, 그것도 중년이 되어서야 읽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서일까. 제루샤 애벗과 저비 펜들턴의 인연과 만남, 그리고 행복까지 너무 이상적으로 그려진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세상에 주디같은 신데렐라 사례가 과연 얼마나 될지. 혹시 이러한 로또식 최면에 젖어 소망과 환상을 품고 산다면 그게 여성 자체의 관점에서 바람직할 것인지. 이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 등등. 그래서 일부러 비판적 관점으로 독해를 시도했다. 소설 자체는 매우 흥미로웠다는 점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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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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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 제재와 전개는 일단 논외로 하자. 등장인물의 가치관과 윤리관에 대한 도덕적 판단도 잠시 유보하자. 오로지 순수하게 소설로서의 읽는 재미에 집중하자. 근래에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읽은 소설은 없었다. 이 책의 장점은 단연 이러한 재미에 있다.

 

평범하고 무난한 가정과 사람들의 내면이 겉보기와 달리 얼마나 복잡하고 뒤틀려 있는지! 이 소설에 등장하는 두 학생도 모두 그러하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와타나베 군은 어머니의 관심과 주목을 끌고자 기행을 벌인다. 어머니에게 다가갈 용기는 내지 못하면서도 타인의 고통과 목숨에는 무감각하기 그지없다. 뛰어난 지력과 냉혹한 감정이 결합한 그에게서 소시오패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면 기우일까. 나오키는 어떠한가.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그 높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있다.

 

유코 선생님은 어머니로서의 감정과 교사로서의 윤리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가 벌이는 제3의 선택이 작품 전체의 전개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다. 법적 구제 대신 선택한 사적 복수. 자신의 행위를 옹호하기 위한 논리는 청소년 범죄에 대한 처벌이 미약하다는 점이다. 일부 청소년들은 법망을 방패막이 삼기에 피해당사자의 개인감정으로야 충분히 공감 가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의 직업이 교사이기에 그리고 복수 방법이 상식적이지 않기에 놀라움을 안겨준다.

 

6장의 구성인데 각 장마다 다른 인물들을 화자로 선택하여 마나미의 살해와 유코 선생님의 복수를 둘러싼 제반 상황을 다양한 관점에서 독자에게 제시한다. 유코 선생님, 미즈키, 나오키의 누나와 어머니, 나오키, 슈야(와타나베 군), 그리고 다시 유코 선생님. 미즈키는 나오키와 슈야와 개인적 관련을 맺으면서 베르테르와 나오키를 잇는 연결점 역할을 맡는다.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려는 그는 슈야의 잔혹성을 입증하는 희생자가 되고 만다. 작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이라고 하겠다.

 

나오키와 슈야의 어머니는 독자에게 모성애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대한 의문을 유발한다. 자식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과 개입의 결과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자식의 양육을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적으로 재단한다면 가정과 개인에게 행복은 머나멀게 느껴진다. 한편 어머니를 향한 슈야의 그리움은 차가운 배신감으로 돌아왔다. 어린 자식을 내팽개치고 그녀가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야망의 실현 아니면 나락에서의 탈출?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철저한 이기심은 유코 선생님이 마지막 대목을 실행하게끔 유도한다.

 

1학년 B반 학생들. 슈야와 미즈키를 대상으로 한 학생들의 이지메는 학교 내 왕따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성적 판단을 내릴 능력도 없는 처지에 섣부른 감정적 대응을 벌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섬뜩하여 오히려 와타나베 군이 순교자로 비치게끔 할 정도다. 게다가 슈야가 한번 발끈하자 당당하던 기세는 어디로 가고 일시에 꼬리를 내리는 꼴이라니.

 

등장인물 중 밝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거나 보호소에 끌려가든지 가슴속에 무거운 돌덩이를 품고 여생을 살아갈 뿐이다. 흥미로우면서도 암울함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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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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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작품>

1. 인간실격 (1948)

2. 물고기비늘 옷 (1933)

3. 로마네스크 (1934)

4. 새잎 돋은 벚나무와 마술 휘파람 (1939)

5. 개 이야기 (1939)

6. 화폐 (1946)

 

드물게 보는 치열한 사소설이다. 그동안 읽었던 일본 근현대 문학작품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 작중에 배어있는 극도의 암울함, 처참함은 작가 고유의 것인지 또는 시대적 상황에 힘입은 것인지 궁금하다. 후자라면 태평양전쟁 시기 광란으로 치달아가는 당대 일본 사회에서 의식을 가진 이가 감내할 수밖에 없는 괴로움으로 해석하고 싶다.

 

타인, 불가해한 타인, 비밀투성이의 타인. (P.91)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타인과의 교류는 불가피하다. 타인이 내게 적대적인지 우호적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의 전모를 공개하는 행위는 위험을 자초하므로 우리는 적당한 가면을 뒤집어쓴다. 대다수 우리는 이를 범상하고 일상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누군가는 다르게 반응한다. 특히 소심하고 예민한 요조같은 이는. 자칫하면 가정과 사회로부터 공격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간에 대한 두려움에 항상 바들바들 떨면서, 또한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의 말과 행동에 털끝만큼도 자신감을 갖지 못한 채, 그리고 나만의 깊은 고뇌는 가슴속 작은 상자에 감춰두고서, 그 우울과 긴장을 꼭꼭 감추고 또 감추며...... (P.19)

 

주인공의 위악과 일탈에 눈살을 찌푸리는 게 당연하다. 폭음, 흡연, 약물 그리고 여색. 요조의 심정을 너그러이 이해해주고 싶다고 하더라도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던 당위성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자살까지 시도할 정도로. 인간이란 존재는 연약하다. 누군들 살면서 한 번도 절망과 자포의 경험을 가지지 못한 이는 없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 반응의 차이가 있을 뿐 그때 무언가에 기대하고 의지하고픈 마음은 허물어져 가는 자신을 지탱하려는 최후의 방어선이다. 이를 국외자의 눈으로, 사후 평가자의 엄혹한 기준으로 재단하는 게 온당한가.

 

죽고 싶다. 아예 죽어버리고 싶다. 이제는 어떻게도 내 인생을 돌이킬 수 없다. 어떤 짓을 해봐도, 무슨 짓을 해봐도 나는 점점 더 나빠질 뿐이다.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짓을 쌓아갈 뿐이다. (P.129)

 

사방을 둘러봐도 헤쳐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은 극단의 선택을 한다. 물론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제 자살은 바닥이 아니라 바닥을 찍은 이후에 실행된다고 하지만. 일본 문화가 독특하여 자살을 일종의 미덕으로 간주하는 사례가 있지만, 어쨌든 생명을 담보로 하는 행위는 진지할 수밖에 없다. 그 동기와 과정에 대해서는 당사자 외에는 누구도 섣불리 왈가왈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표제어 인간실격은 주인공 요조가 주변 사람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갇히면서 비로소 등장한다. 인간의 지위에서 실격당한 존재. 자신의 내적 진실을 향한 고뇌와 방황을 세상 사람들은 단순히 미친 것으로 판단한다는 사실. 미치지 않은 자신이 미친 사람들 틈에 섞여 있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다시 세상 사람들로부터 정상적인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리라는 사실. 이것이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절망감을 안겨준다.

 

이곳을 나가더라도 나의 이마에는 미친 사람, 아니, 폐인이라는 낙인이 찍히겠지요.

인간실격.

이제 나는 완전하게, 인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P.132)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와 요조가 이 대목에서 갈라진다. 현실의 다자이는 좌절하지 않고 어쨌든 사회로 복귀하여 작가로서의 이름을 후세에 전하지만, 작중의 요조는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갑니다.”(P.135)라고 체념하며 읊조릴 뿐이다. 철저한 패배라고 할 텐데 한 명의 광인을 바라보는 독자의 심경은 전혀 편치 않다.

 

후반부에 수록된 다섯 편의 단편은 신비적 요소가 두드러진 유형과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유형으로 양분된다. <물고기비늘 옷><새잎 돋은 벚나무와 마술 휘파람>이 전자에 속하며, 후자로는 <개 이야기><화폐>가 해당한다. 전자에서 작가는 일본 고유의 신화적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현대판 전설이라고 하겠다. 한편 <화폐>는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현실 비판적 성격이 강하다. <개 이야기><로마네스크>는 해학적 묘미가 뛰어난데, 내심과 외양의 불일치가 빚어내는 역설적 효과가 돋보인다. 개를 싫어하는 주인공이 맘에 들지 않는 개를 키울 수밖에 없도록 내몰리고 마침내는 응원하게 되는 상황이 작가 특유의 이율배반적 전개와 잘 어울린다. <로마네스크>는 선술, 싸움, 거짓말의 달인인 세 인물의 이야기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기술을 연마하지만 이루어낸 결과는 좋지 못하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반평생을 헌신한 성과가 이렇듯 허무하다면 그들의 삶의 가치는 무엇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인간실격>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매우 암울하고 빽빽함에도 의외로 웃음을 주는 대목이 곳곳에 있다. 실소(失笑) 또는 고소(苦笑)일 수도 있으나 결코 슬픔과 좌절에 매몰되지 않는 미덕을 작가는 지니고 있다. 덕분에 독자는 긴장감과 중압감에 벗어나 숨쉴 여지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수록된 단편에서는 그런 면모가 더욱 두드러진다. <인간실격>에 대한 작품해설의 평은 작품에 대한 평가를 압축하여 보여준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내적 진실에 한없이 충실하고, 자신의 결여감을 한없이 깊이 파들어 가며, 일절 타협하는 일 없이 자신을 거짓으로 위장하지 않고 또한 인간의 진실과 사랑과 정의와 미를 추구하는 주인공을 설정하여 그가 좌절하고 패배하는 과정을 통해 세속의 위선에 가득 찬 악을, 추악함을, 비인간성을 비로소 겉으로 드러냈다.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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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탐정 - 법의인류학자 다이앤 프랜스 거침없이 도전한 여성 과학자 시리즈 7
로렌 진 호핑 지음, 한국여성과총 교육홍보출판위원회 옮김 / 해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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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인류학자라는 용어 자체가 매우 생소하다. 죽은 사람의 뼈를 해석하여 뼈 주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역할이다. 이때 죽은 사람은 오래전 유골일 수도 있고 직전에 사망한 사람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자연사한 사람보다는 사고사가 많을 테니 엉망이 된 시신의 살과 뼈를 분리하는 썩 내키지 않는 작업도 감수해야 한다. 일반인보다는 감정 면에서 매우 단단해야 하겠다. 이 책의 주인공인 다이앤 프랜스는 마음속에 상자를 두고 개인적 감정을 상자에 담아 보관한 후 나중에 열어보는 방식으로 마음을 다스린다고 밝힌다.

 

이 책은 거침없이 도전한 여성 과학자시리즈로 기획되었다. 따라서 성공이라는 관점에서 다이앤 프랜스로부터 두 가지 두드러진 사항을 발견할 수 있는데, 먼저 보수적인 문화와 관습을 극복했다는 점이다. 전반부는 그녀의 유년기로 거슬러 올라가 가족 관계, 성장 환경 및 학창 시절을 연대기적으로 다룬다. 의외로 1960년 미국 사회와 가정이 남녀의 성역할에 대해 보수적이었음을 그녀의 부모로부터 알게 된다. 또 하나 여성의 한계라는 편견을 극복하고자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다는 점이다. 단지 지적 능력이 뛰어나서는 충분치 않다. 그것이 치열한 경쟁심과 호응해야 비로소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 고등학교 차석 졸업으로 이어진 그녀의 학업 노력이 이를 보여준다. 한편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여성이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혼보다는 독신이 유리할 수 있음도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의 흥미로움은 후반부에서 나온다. 그녀의 직업적, 학자적 역량이 발휘되는 사례를 통해 우리는 법의인류학의 실제 면모를 알 수 있다. 범죄를 입증하기 위해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확인하는 범죄 수사로부터 오래된 무덤에서 발굴된 뼈의 특징과 미세한 흔적을 통해 그 사람을 유추하는 인류학적 관찰에 이르기까지. 참혹하지만 긴급한 필요를 요구하는 대규모 사망 사건은 더욱 그러하다. 이 책에서 소개된 글렌우드 가스 폭발 사고, 대한항공 여객기 괌 추락사고, 그리고 2001911일의 사건 등. 수십 명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 희생자들의 폭발이나 추락으로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흩어진 사체를 하나하나 수집해서 짝을 맞추는 과정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열대지방인 경우 사체가 금방 부패하는데 사체를 먹는 벌레들과 익숙해져야 한다니.

 

생존 인물을 다루고 있으므로 통상적 전기물과 같은 결말 구조로 되어 있지 않다. 사생활에 관한 언급도 필요한 최소한만 언급한다. 독자들이 궁금한 건 주인공의 개인사 자체보다 그네들이 처한 환경과 역경을 극복하고 해당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과정일 것이므로. 다이앤 프랜스가 첫 남편과 헤어지게 된 상황은 그녀로서는 불가피했을 것이다. 자신의 커리어를 지키자면 가정의 제약을 탈피해야 하므로. 그녀로서는 말 그대로 삶을 바꾼 결정이다. 주인공을 남성으로 바꾸어 놓고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일을 계속 하려면 집에서라도 마음의 안정을 찾아야 한다”(P.172)는 명제는 유효하다.

 

상당히 생소한 직업 분야를 다루고 있으므로 이해하기에 애를 먹기에 십상이었을 텐데, 다행히 풍부한 사진 자료와 도판, 부가적 해설의 도움으로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기획과 편집이 중요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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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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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 로먼은 진정 세일즈맨이었는가?

그는 분명 세일즈맨임이 틀림없으련만 극 중의 허술하고 제멋대로인 언행을 보면 과연 성공적인 세일즈가 가능했을까에 대해 의심이 든다. 그의 언행은 시종 모순으로 가득하다. 자신의 차 셰비를 최고라고 칭송하다 이내 빌어먹을 차라고 악담하며, 비프가 올리버 사장에게서 과거에 대단한 신임을 얻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그걸 받아들이도록 아들을 윽박지른다. 찰리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하며 자신은 직장이 있다고 하면서도 이내 자신이 빈털터리임을 밝힌다. 그의 전성기 시절에 대한 성공담조차도 하워드 사장에게 인정받지 못하며 독자조차도 의심을 품을 정도다.

 

그가 외도 현장을 들킨 후 비프에게 한 변명에 따르면 자신이 외로웠다고 한다. 세일즈맨의 본질적 속성을 의미하는 표현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외근을 전전하는 별 볼 일 없는 처량한 신세의 고백으로 들린다. 찰리와 윌리의 대화를 보면 윌리의 시대착오적 사고를 알게 된다. “인상이 좋고 인기가 있다면 뭐든지...”(P.116), 즉 판매 물품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고전적 세일즈 방식이 그렇지 않았을까?

 

애초에 윌리가 세일즈맨을 직업으로 택한 동기조차 불순하다. 호텔 방에서 전화만 돌리면 비즈니스를 성사시켜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다는 안이함. 알래스카로 가서 도전해 보자는 형의 제안을 수용하지 못한 나약함. 윌리의 장례식에서 찰리는 세일즈맨은 꿈꾸는 사람”(P.173)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세일즈맨은 물품을 생산 및 제조하지 않는다. 판매에 성공하리라는 믿음과 꿈으로 매일 길을 나서지 못한다면 그는 실패한 세일즈맨이다.

 

(찰리) 윌리는 세일즈맨이었어. 세일즈맨은 인생의 바닥에 머물러 있지 않아. 볼트와 너트를 짜 맞추지도 않고, 법칙을 제시하거나 치료약을 주는 것도 아니야. 세일즈맨은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하늘에서 내려와 미소 짓는 사람이야. 사람들이 그 미소에 답하지 않으면, 그게 끝이지. 모자가 더러워지고, 그걸로 끝장이 나는 거야. 이 사람을 비난할 자는 아무도 없어. 세일즈맨은 꿈꾸는 사람이거든. 그게 필요조건이요. (P.173)

 

윌리 로먼을 통해 독자는 하나의 시대가 지나가 버렸음을 발견한다. 윌리는 사실을 직시하기를 거부하고 허상을 좇다가 스러지는 인물이다. 자신의 낡은 주택 주위에 높다란 아파트가 에워싸고 있으며, 삼십여 년을 봉직하지만 내근직도 얻지 못한 채 고정급 없이 커미션으로 버텨야 하는 처지. 두 아들은 각각 텍사스 목장의 일꾼으로, 판매 보조 바람둥이로 실망만을 안기는 현실. 게다가 미식축구 선수로 대성을 기대했던 비프의 장래가 자신으로 인해 뒤틀려 버렸다는 자책감. 나름 소시민으로서 성실하게 살아왔던 자신이 지쳐 무력한 존재로 퇴락하고 있음에 대한 절망감 등등.

 

저녁 식당에서 두 아들에게조차 버림받는 윌리가 열렬히 간구하는 것은 바로 관심이다. 가정과 세상에서 쓸모없고 무시당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러한 그를 유일하게 감싸 안는 이가 아내 린다다. 윌리가 린다에게 대하는 태도에 자식들은 격분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개의치 않는다. 이미 윌리를 이해하고 있기에.


(린다) 그이는 한 인간이야. 그리고 무언가 무서운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어. 그러니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해. (P.64)

 

(윌리) 오렌지 속만 까먹고 껍데기는 내다 버리실 참입니까. 사람은 과일 나부랭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잠시 후) 관심을 좀 기울여 주세요. (P.97)

 

이미 현실에 자리를 상실한 윌리가 기댈 곳은 추억과 회고뿐이다. 극 중에 벤이 자주 출몰하는 것은 윌리의 놓쳐버린 기회에 대한 아쉬움의 반복적 표현인 동시에 고독한 윌리가 정신적으로 의지할 존재를 과거에서 찾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가 벤에게 좋았던 그 시절-가족 간에 사랑과 믿음이 돈독하며 꿈과 희망이 미래에 드리워져 있던-로 돌아가고 싶은 심경을 토로하는 대목은 이 작품에서 극적인 결말을 향하기 위한 일순간의 예고이자 숨 고르기라고 하겠다.

 

마지막 린다의 흐느낌은 현대인의 비참한 삶을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겨우 빚을 다 갚고 온전히 내 집이 되었건만 정작 사람은 간곳없고 건물은 허름하게 변한다. 그래도 윌리로서는 다행이다. 비프와 해피가 허상의 늪에서 벗어나 올바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작가는 윌리의 보험금이 나올지 여부를 언급하지 않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 두 아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설 수 있게 되었으므로.

 

최근에 읽던 고전 희곡과 비교하면 무대 세팅과 조명, 배우의 동선 지정 등에서 매우 정치함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이 현대희곡의 특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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