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즐링
토머스 미들턴 지음, 조성관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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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영국의 희곡은 인간의 이성을 압도하는 불꽃 같은 정념이 빚어내는 결과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 결과가 비이성적 광기로 치달아 결국은 비극으로 끝나더라도 말이다. 이 작품이 전형적인 사례다.

 

약혼자 알론조와 결혼하고 귀족 부인으로서 예정된 행로를 밟아나갔을 베아트리스의 삶은 알세메로를 만나면서 완전히 달라진다. 알세메로 또한 그녀에게 호감을 갖지만 그것은 통상적인 귀족의 윤리 내에서다. 반면 그녀의 눈에 도덕이니 윤리는 더 이상 판단기준이 되지 못하고 알세메로와 결혼하겠다는 목표가 최우선적 행위 기준이 된다.

 

드플로레스는 특이한 인물이다. 젠틀맨 신분의 그가 귀족의 하인으로 전락한데다 외모는 제2막 제1장에서 자신도 인정하듯이 꽤 추하고 혐오스러울 정도다. 베아트리스의 과민한 박대와 구박은 그녀에 대한 드플로레스의 사랑을 집착으로 강화하는 기제가 되지 않았을까. 그녀의 육체를 쟁취하고자 하는 욕정을 위해서라면 그 역시 도덕과 윤리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따라서 알론조와 다이아판타를 죽이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갖지 않는다.

 

베아트리스의 경솔한 과신은 스스로를 수렁에 빠뜨리게 하며 혐오하던 드플로레스에게 자신의 처녀성을 빼앗기는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베아트리스에게 애정을 품게 될 정도다. 그토록 진절머리내던 앞 대목과 상반되는 태도의 변화다. 그들의 타락한 사랑은 최후의 장면에서 벽장 속 교성과 신음으로 절정을 이룬다. 타락한 몸과 죽음을 앞둔 처지에서 수치도 불사하는 그들의 무조건적 정념과 욕정은 경이로울 정도이며 인간 이성의 한계를 절감케 한다.

 

<왈가닥 여자>처럼 이 작품도 독립적인 서브플롯을 지니고 있다. 알리비우스와 이사벨라, 그리고 롤리오가 진행하는 정신병원 이야기다. 젊은 아내 이사벨라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병원에 가두는 알리비우스, 이사벨라를 유혹하기 위해 미치광이로 변장하고 접근하는 남자들. 이들 간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벌어지는 정신병원 내부. 이사벨라와 베아트리스의 차이는 결말에서 드러난다. 다만 관객의 웃음을 끌어내기 위해 벌이는 일련의 인물 희화화와 행동은 오늘날 관점에서는 그다지 공감을 사기 어렵다.

 

봉건사회는 여성의 정조에 지고지순의 가치를 부여한다. 신부는 처녀성, 부인은 정절을 목숨처럼 중시한다. 비단 17세기 영국뿐만 아니라 우리네 과거사 역시 그러하다. 남성우위의 가부장적 권위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악적 도덕률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 시각에서 인간이란 이성과 정념의 양면적 본성을 지니고 있기에 적절한 배분으로 삶의 기울기를 조절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볼 때 베아트리스와 디플로레스처럼 이성과 도덕을 무시하고 자기 파괴적으로 정념과 애욕을 맹렬히 추구했던 그들의 삶은 경이와 공포와 동정이 뒤섞인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알세메로) 여기 아름다운 아가씨가 추악한 창녀로 변해 있어요. 여기 충실한 하인이 죄의 주인인, 오만한 살인을 저질렀죠. [5막 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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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가닥 여자
토머스 미들턴.토머스 데커 지음, 조광순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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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e Roaring Girl>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소매치기 몰로 알려진 실존 인물을 극화하였다고 하는데, 어쨌든 ‘roaring’은 부정적 의미를 가지므로 왈가닥은 오히려 순화된 표현이다.

 

이 작품에서 두드러진 점은 인간의 이중성 내지 양면성에 대한 고찰이다. 고상한 귀족의 내면에 자리 잡은 속물근성과 세간에서 비난받는 몰의 더없이 고상하고 도덕적 품격이 대조적 본보기를 제시한다. 알렉산더 경이 아들 서배스천과 메리의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는 단 하나, 신부의 지참금이 기대 수준에 비해 적다는 것뿐이다. 신부의 아름다운 덕성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오직 금전으로만 평가할 뿐이다.

 

작가는 몰을 영웅처럼 묘사한다. 남장 복장의, 소매치기 창녀이자 쓰레기 같은 사회의 암적 인물로 취급받는 몰. 단번에 랙스턴을 제압할 만한 빼어난 칼솜씨도 지녔고 알렉산더 경의 함정에도 빠지지 않는 고매한 덕성을 지닌 그녀가 현대 여성에 못지않은 독립적 가치관을 표명하는 대목은 신선한 충격이다. 자신을 창녀처럼 취급하는 랙스턴에 분연히 대응하는 제3막 제1장이 인상적이다.

 

()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고 남성적이지만 여성적이에요. 결혼은 죽음이고 변화예요. 왜냐하면 처녀가 처녀성을 잃고 대신 남편을 얻기 때문이죠. (2막 제2, P.76)

 

() 너에게 도전함으로써 모든 남자에게 도전할 거야! 남자들이 품고 있는 최악의 증오와, 이들이 행하는 최고의 아첨과, 무지한 자들의 불쌍한 영혼을 옭아매는 이들의 금빛 마술에 대해서 말이야. (3막 제1, P.94)

 

() 내가 필요하면 남자를 사지만 남자에게 내 몸을 파는 것은 경멸해, , 내 공격을 받아. (3막 제1, P.96)

 

() 자신의 몸에 무릎을 꿇는 여자는 아내를 무서워하는 남편처럼 천박한 거야.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정신은 내 몸의 여주인이야. (3막 제1, P.97)

 

5막 제1장에서 몰과 뚜껑문, 떠버리 간의 뒷골목 은어 대화는 놀런드 남작을 포함한 귀족들의 귀에는 무척이나 흥미롭게 들릴 뿐만 아니라 독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작품해설은 이 대목에 단순한 희극적 요소 외에 심오한 의미를 덧붙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과도하다.

 

인간의 이중성 내지 양면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작가는 갤러폿 부인과 망사바느질 씨 부인 등이 등장하는 부수적 플롯을 배치한다. 정숙한 부인의 가슴에 잠재한 내밀한 욕정의 숨결과 유혹. 이를 감지하고 이용하려는 랙스턴과 참매의 행동. 여기에 갤러폿의 순수함과 망사바느질 씨의 현명함이 어우러져 상황을 해피엔딩으로 끌고 간다.

 

무엇보다 이들이 서로 주고받는 외설적이며 해학적 요소들의 은밀함이 독자와 관객의 흥미를 배가한다. 예나 지금이나 성적인 요소는 대중성에서 중요하다.

 

(랙스턴) 잘생긴 손이 담뱃대를 쥐고 있어. 누군가 내 담뱃대를 항상 쥐고 있으면 좋겠어. (2막 제1, P.48)

 

(랙스턴) ......용감한 대장이 진격과 후퇴를 충분히 빠르게만 한다면 그녀로부터 남자아이만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마일엔드에 있는 군사 훈련소에 가서 모집을 하지 않아도 돼. (2막 제1, P.57)

 

(갤러폿 부인) 30파운드가 맞아, 0 앞에 3이 있으니까. 3은 그의 스리 피스 옷이야. (3막 제2, P.106)

 

인간이기에 약점을 지니고 있으므로 인간의 이중성 내지 양면성 또한 존재 자체에 깃들인 불가피한 본성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작품에서 갤러폿과 망사바느질 씨가 자기 부인들과 랙스턴, 참매를 흔쾌히 용서하는 장면이 이해 가능하다. 어이없을 정도로 너무나 쉬운 용서는 작가의 안이함이 아닌 깊은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몰과 메리라는 이름이 서로 맞바꾸어서 사용되었는데 메리는 여성의 성모와 같은 순결함을, 몰은 여성의 창녀적 천박함을 의미한다. (P.238)

 

작품해설에 따르면 당대에는 몰과 메리를 혼용했다고 한다. 서배스천이 제1막 제1장에서 메리를 몰이라고 부르는 대목이 비로소 이해된다. 영어사전에 따르면 몰은 메리의 애칭이기도 하며, 한편으로 매춘부, 정부(情婦)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하니 확실히 양면적이다. 그렇게 보니 다니엘 디포의 소설 주인공도 몰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토머스 미들턴은 그다지 잘 알려진 희곡 작가는 아니다.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인물인데 또 다른 셰익스피어로 불릴 정도로 높이 평가받는다고 하니 그의 작품들을 읽어봄 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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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로의 결혼
보마르셰 지음, 이선화 옮김 / 비(도서출판b)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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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의 이발사>가 단편소설에 비긴다면 <피가로의 결혼>은 장편소설이다. 442장에서 592장으로 분량도 증가하여 스케일이 커졌으며 줄거리도 복잡해졌지만 무엇보다도 단층적 플롯에서 다층적 플롯으로 작품구조가 현격히 변화하였다.

 

중심 플롯은 표제와 같이 피가로와 쉬잔의 결혼이다. 문제는 두 사람의 결혼이 순탄하게 이루어지기에는 장애물이 많다는 점이다. 초야권을 부활하고 쉬잔을 차지하려는 알마비바 백작, 채무를 이유로 피가로와 결혼을 도모하는 마르슬린이 대표적이다. 후자는 졸지에 모자 관계로 확정되면서 해소되지만 백작과 쉬잔의 관계는 종막까지 이어진다. 전작에 이어지는 백작과 백작부인의 관계도 종막에 이르러서야 긍정적으로 회복되는 등 주요 등장인물 간 얽히고설킨 애정과 이해관계의 대립이 작품 추진의 원동력이다. 후속작에서 증폭되는 백작부인과 셰뤼뱅의 복선도 미리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전작에서 백작과 피가로는 동지로서 마르슬린 및 바질과 대립하는 처지라면 여기서 백작과 피가로는 외양상 한편이지만 이면으로는 치열한 암투를 전개하는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백작에 대한 피가로의 사고와 언행은 자연스레 비판적이며 하인의 태도치고는 오만불손하기조차 하다.

 

이 작품의 초연이 금지되었던 까닭 중 하나이자 중요한 특징은 사회비판적 메시지가 대사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는 데 있다. 그것도 매우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작품해설에서는 이렇게 분류하고 있다.

 

그가 작품 속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은 크게 보아 네 가지이다. 불평등한 신분제도, 여성에 대한 차별 문제, 불공정한 사법체계, 언론출판에 대한 검열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노골적으로 조롱과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귀족의 습속과 신분제도이다. (P.267)

 

(피가로) ......대 영주랍시고 당신이 뭐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줄 아나본데! ... 귀족, 재산, 혈통, 지위, 뭐 이런 것들로 기고만장해진 거지! [5막 제3]

 

3막 제15장에서는 변호사에 대한 피가로의 날 선 비판이 이어지고, 바로 제16장에서는 마르슬린이 여성 차별의 부당성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작품의 제재가 영주의 초야권이라는 점 자체가 당대 사회체제의 반동성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의 주제와 성격이 변모함에 따라 주요 인물도 변화를 겪는다. 백작은 오로지 자신의 정욕을 채우는 데 급급한 전형적 귀족의 대변자가 되며, 백작부인의 정절을 의심하며 극도로 질투하는 이중성의 체현자다. 백작부인은 전작의 당차고 생기발랄한 아가씨에서 소심하고 나약한 귀족부인으로 전락한다. 물론 후반부에는 다소간 회복되지만.

 

(백작부인) 난 이제 당신이 옛날에 그토록 열렬히 쫓아다닌 그 로진이 아니에요. 난 그저 불행하기 짝이 없는 알마비바 백작부인, 당신의 사랑을 잃고 버림받은 가련한 여인일 뿐이라고요. [2막 제19]

 

쉬잔이야말로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만하다. 피가로조차도 쉬잔에 속아 넘어가 의심하고 분노하며 한계를 보여준다고 할 때 시종일관 백작의 유혹을 거부하고 백작부인에게 충실하며 피가로에 대한 애정을 견지하는 다채로운 매력을 선사한다.

 

셰뤼뱅은 어찌 보면 숨은 주인공이다. 백작부인에 대한 연모를 품고 있는 미소년의 미숙함과 순수성. 그리고 한창 이성에 눈뜰 나이의 분출하는 에너지를 품은 그는 자신이 어째서 후속작과의 연결고리가 되는지 잘 보여준다. 이선화 번역본에서는 셰뤼뱅의 신분과 지위가 단순 시동이 아니라 하층 귀족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참고로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는 케루비노로 불린다.

 

앞선 책들과 마찬가지로 읽다 보면 문맥상의 난점이 간혹 드러난다. 이경의 번역본과 비교가 필요한 대목들이다.

 

1막 제2장을 본다. 피가로의 대사 어의가 후자에서 더 분명하다.

 

(피가로) 내가 당신 가문의 명예를 위해 진흙탕 속을 뒹굴며, 등골 빠지게 일하고 있을 때, 당신은 내 여자의 기량을 키우는 데 집중하시겠다고요!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는 상부상조로군요 [이선화 번역본]

 

(피가로) 나리 가문의 영광을 위해 제가 진흙을 뒤집어쓰고 등골 빠지게 고생하는 동안, 나리께선 쉬잔을 농락해 자식을 만들어 주시겠다니 참으로 상조하는 관계가 아닐 수 없군요. [이경의 번역본]

 

1막 제10장에서 피가로와 쉬잔의 대화는 두 번역본의 해석이 전혀 다르다. 전자는 백작이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고 옮긴이가 주석을 덧붙이고 있다.

 

(피가로) 우리가 제대로 나리 눈을 속인 건가?

(쉬잔) 눈치하고는! [이선화 번역본]

 

(피가로) 나리가 제대로 걸렸지?

(쉬잔) 당신은 정말 멋져요! [이경의 번역본]

 

2막 제2장의 백작부인과 피가로의 대화도 후자가 더욱 명료하다.

 

(백작부인) 정숙한 여인을 두고 어떻게 그런 장난질을?

(피가로) 그럴 리가요. 마님, 만약 그랬다가, 탄로 나면 큰일나게요!

(백작부인) 그러니까 내가 당신한테 고마워해야 한단 말이군요. [이선화 번역본]

 

(백작부인) 나처럼 명예를 중시하는 여자를 상대로 진실 게임을 하겠다는 거예요?

(피가로) 감히 이런 속임수를 쓸 수 있는 여자는 마님 말고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정말 명예를 지키지 못하는 여성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백작부인) 그럼 내가 감사해야겠군요. [이경의 번역본]

 

5막 제7장이다.

 

(백작) 녀석의 키스를 가로채려고 그 녀석 입술과 부딪힌 게 아니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키스한다.)

(백작부인) 제멋대로시네요! [이선화 번역본]

 

(백작) 조금 전에 내가 셰뤼뱅의 키스를 받았다고 해서 너한테 키스를 안 할 수 없지. (부인 이마에 키스한다.)

(백작부인) 저를 함부로 다루지 마세요! [이경의 번역본]

 

대단원의 제5막 제19장을 마지막으로 보겠다.

 

(백작) 자네였다고? 하하하, 사랑하는 부인, 어찌 생각하시오?

(백작부인) (멍해 있다가 정신이 들어 다정하게 말한다.) ! 그래요, 단언컨대, 평생, 재밋거리는 없을 것 같군요. [이선화 번역본]

 

(백작) 피가로가 따귀를 맞았다고? 허허, 부인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백작부인) (딴생각을 하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며 다정한 말투로) , ! 맹세하건대 실수하는 일은 평생 없어야겠지요. [이경의 번역본]

 

원래 삼부작을 한꺼번에 쭉 읽은 후 다른 번역으로 개별 작품을 하나씩 음미해 보려는 시도였다. 재독에도 불구하고 도중에 의미가 와닿지 않은 대목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하다 의외로 여러 군데서 번역상의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두 번역본 모두 양자가 애매한 대목이 혼재하여 우열을 가리기 어려우니 상보적 관계라고 해두겠다. 새삼 번역의 중요성과 아울러 어려움도 우연히 깨닫게 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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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지은 어머니 지만지 희곡선집
보마르셰 지음, 이선화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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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에 따르면 국내 초역이라고 한다. 로시니와 모차르트의 오페라 애호가라면 그리고 양자의 원작을 읽었던 독자라면 전혀 상반되는 작품 분위기에 당황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이 작품은 보마르셰가 전작의 틀을 뒤집기 위해 작심하고 썼음을 보게 된다. 이 작품은 희곡이 아니라 드라마로 분류되는데 드라마의 성격이 무엇인지는 작품해설에 잘 나와 있다.

 

드라마가 진지함과 웃음을 뒤섞으며 부르주아의 덕목을 강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이 극은 전적으로 드라마의 이상에 잘 부합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P.198)

 

백작 집안의 숨겨진 가족관계를 축으로 하여 양단에 베제아르스(베가르스)와 피가로가 자리 잡고 있다. 베제아르스는 가족관계의 비밀을 한 손에 쥐고 집안 식구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피가로는 이러한 베제아르스의 속셈을 처음부터 꿰뚫어 보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즉 백작 가족 내의 대립과 갈등 관계가 베제아르스와 피가로의 대결 구도로 연계되고 증폭하는 구조로 극이 전개된다.

 

극중 인물 베제아르스(베가르스)는 보마르셰가 관여했던 코른만 사건의 상대편 변호사 이름 베르가스를 차용하였다. 코른만 사건의 제재 자체가 이 작품과 매우 유사함을 볼 때 창작 동기에 영향을 주었음을 짐작게 한다.

 

극 중의 핵심 사안인 레옹을 낳게 한 백작 부인과 셰뤼뱅의 불륜을 보는 관점에 따라 백작과 백작부인의 고뇌와 갈등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레옹에 대한 백작의 냉정한 처사와 플로레스틴을 베제아르스와 결혼시키려는 백작의 의도도 이와 연관되어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국내 두 번역본에는 다소간 차이가 있다. 2막 제3장에서 백작은 부인의 비밀 편지를 읽는다.

 

(백작) 야밤에 당신의 기습 방문. 이어진 완력. 마지막으로 당신이 저지른 죄 - 내 죄는... [이선화 번역본]

(백작) 감히 밤늦게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하고, 우리는 격렬한 사랑을 나누는 죄를 짓고 말았어요. [이경의 번역본]

 

전자에 따르면 백작부인은 완력에 의한 희생자일 뿐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레옹을 낳게 되었다. 후자의 경우는 불륜을 저질렀음이 명확하다. 한편 백작부인은 셰뤼뱅과 주고받은 편지를 고이 보관하고 있다가 백작에게 들키고 만다. 백작부인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타르튀프는 피가로가 베제아르스를 비난하는 어조로 일컫는 별칭이다. 극 중에서 베제아르스는 백작 부부와 레옹, 플로레스틴의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외견상 그의 겸손과 절제, 정직과 현명한 지혜는 흠잡을 데가 없다. 피가로의 비난이 오히려 부당하게 인식될 정도다. 그런데 베제아르스가 스스로를 타르튀프로 인정한다면, 극의 성격은 전혀 달라질 것이다. 2막 제24장이 그러하다.

 

(베제아르스) ! 특급 스파이! 훌륭한 하인으로 위장한 깡패 중의 깡패야! 돌출 행동으로 이목을 끌면서 지참금을 가로채려는 심산이지! 이 오노레 타르튀프의 배려로 당신은 몰타의 대상들과 실랑이하느라 우리를 감시하는 짓은 끝내게 될 거요. [이선화 번역본]

 

(베가르스) 고단수 밀정이자 희대의 익살꾼인 네놈이 감히 나를 연극에 나오는 이름으로 부르며, 지참금을 가로채려고 충직한 하인 행세를 하다니. 이제 그대는 내 덕분에 우리를 감시하는 일은 그만두고, 해상 원정대의 불편함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 거야. [이경의 번역본]

 

베제아르스는 철두철미한 인물이다. 그는 철저히 자신의 속내를 감추며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20년을 계획하고 획책하였다. 피가로가 아니었다면 그는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여 진작 백작 나으리가 되었을 것이다. 완벽한 베제아르스의 치명적 실수는 쉽사리 쉬잔을 동지로 간주하여 속내를 털어놓았다는 점이다. 이 점이 작품 중 가장 허술한 대목이다. 어쨌든 쉬잔 덕분에 피가로는 베제아르스의 술수를 짐작하고 대응할 수 있었다.

 

(피가로) 그런데 그자의 실수를 유도하고 입을 틀어막는다고 뭐 뾰족한 수가 있을까? 그자는 뭐가 그렇게 자신만만한 거지? 하긴 어리석음과 허세는 같이 가는 거니까! [이선화 번역본]

 

(피가로) 하지만 그 인간이 무슨 급박한 이유가 있어 그렇게 비밀을 누설하는 실수를 저질렀을까? 뭘 믿고 그리 자신만만하지? 허영심이 지나치면 꼭 어리석을 짓을 한다니까. [이경의 번역본]

 

피가로의 제2막 제7장 대사를 들어보자. 보다 정확한 번역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극의 전개로 볼 때 후자가 보다 자연스럽고 맥락이 연결된다. 그리고 그의 야욕은 제4막 제3장에서 명확히 자신의 입으로 드러난다.

 

(베제아르스) 베제아르스! 행복한 베제아르스...! 왜 당신은 그를 베제아르스라고 부르지? 이제 그는 절반은 알마비바 백작 나리가 아니던가? (소름끼치는 어조로) 이제 한 발짝만 가면 돼, 배제아르스! 곧 너는 이제 완벽하게 그가 되는 거야.

 

마지막으로 불행한 레옹을 살펴본다. 그는 백작으로부터 냉대받는 가련하고 불쌍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로 극 중에 등장하므로 언뜻 허약하고 평범한 인물로 해석되기 십상이다. 그가 매우 명석하며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로서 새로운 세대의 전형임을 작가는 놓치지 않는다. 독서회에서 자신이 쓴 에세이를 낭독한다거나, 백작과의 대화에서 계몽인의 자질을 드러낸다.

 

어쨌든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여전히 피가로다. 이제 그는 과거의 혈기 왕성하고 자유분방한 꾀돌이는 아니다. 그만큼 나이도 들었지만 시대의 변화와 작품의 성격에 부합한 변모이다.

 

혁명을 통해 하인 계급에서 서민 계급으로 부상한 피가로는 이제 얄팍한 잇속이나 챙기는 계산적인 인간에서 신의와 충정을 중요시하는 부르주아를 대표하는 인물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 준다.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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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의 이발사
보마르셰 지음, 이선화 옮김 / 비(도서출판b)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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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마르셰의 피가로 3부작은 이경의 번역본 외에 이선화 번역본이 존재한다. 시기적으로 이선화 번역본이 먼저 출간되었으며, 이경의 번역본이 단권인 데 비해 이선화 번역본은 각 작품이 별권이라는 차이가 있다. 가성비 면에서는 이경의 번역본이 우위에 있다. 단일인에 의한 3부작 번역본이므로 자연스레 비교가 이루어진다.

 

<세비야의 이발사>의 주인공인 피가로는 작가 자신의 분신이다. 작가 해설 및 연보를 통해 알게 되는 보마르셰는 한 사람의 삶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로운 이력을 지녔다. 1막 제2장에서 피가로의 인생 편력, 특히 마드리드의 문인들에 대한 비판은 작가로서 겪었던 자신의 속내를 낱낱이 토로한다. 서민이지만 귀족을 지향하는 보마르셰와 서민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는 피가로!

 

여기서의 백작과 로진은 아직은 세속의 때가 덜 묻었다. 자칭 바람둥이 백작은 로진을 향한 지극한 사랑의 쟁취를 위해 어색해하면서도 몸을 사리지 않고 애쓴다. 로진은 후견인의 굴레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귀족 아가씨로서 세상 경험이 부족함에도 바르톨로와 당당하게 맞대결을 벌일 정도로 쉽게 당하지 않는 순발력과 재치를 발휘하는데 한편 바르톨로의 속임수에 쉽사리 넘어가는 성급한 순진함도 보여준다.

 

바르톨로는 분명 악역이지만 일말의 공감도 자아낸다. 늙은 나이에 로진과 결혼하려고 하는 주된 동기가 사랑인지 재산인지는 명확지 않으나 막판에 백작과 로진의 결혼에 동의하는 대목을 보면 재산에 대한 욕심도 큰 비중이 있었으리라. 1막 제4장에서 피가로가 늘어놓는 바르톨로에 대한 인물 묘사를 보면 까칠하고 꼬장꼬장하고 계급관념에 사로잡힌 구시대적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다만 꼼꼼하고 주도면밀하여 피가로를 위시한 주인공들이 대처하는 데 무척이나 애를 먹게 하는 만만찮은 인물임은 확실하다.

 

등장인물의 면면이나 이들이 맞닥뜨리는 상황, 주고받는 대화를 보면 분명 의도적인 희극적 요소가 다분하다. 3막 제11장이야말로 이 작품의 최고 묘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서로 다른 이유로 바질의 등장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모든 인물이 합심하여 몰아붙이는 동시에 영문을 몰라 당황해하는 바질이 빚어내는 대조가 압권이다.

 

이처럼 <세비야의 이발사>의 뛰어난 희극성이 단순히 로시니의 오페라 부파 덕분인 것만은 아닐 텐데, 마음 놓고 낄낄거릴 정도의 재미가 이경의 번역본은 부족하다. 오히려 이선화 번역본은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양자의 번역 사이에는 대사의 어조, 표현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대사 자체의 의미가 확연히 다른 경우도 심심치 않다. 전자는 문어체, 귀족적 표현이고, 후자는 구어체, 서민적 표현이라면 지나치려나. 연극 상연을 염두에 둔 작품임을 고려한다며 후자가 더 자연스럽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몇 가지 예시로 확인할 수 있다.

 

[1막 제5] 백작과 피가로의 대화

(피가로) 솔직히, 그리 나쁘진 않은데요. 다리만 좀 더 휘청휘청 대시면. (훨씬 더 술에 취한 어조로) 여기가 집이...

(백작) 어이쿠! 네 놈은 영락없는 술꾼이구나! [이선화 번역본]

 

(피가로) 사실 그리 나쁘진 않은데 술에 취해 다리가 더 풀렸으면 좋겠어요. (술에 더 취한 말투로) 이 집이 바로...

(백작) 이런! 자네는 서민 티가 나잖아. [이경의 번역본]

 

2. [2막 제7] 바르톨로의 대사

어떤 일이 사실이라 해도! 그게 사실이기를 원치 않으면, 난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우기면 그만이야. 아랫것들한테 내가 옳다는 걸 인정하게끔 만하면 되니까, 권위가 뭔지 맛 좀 보여줄까. [이선화 번역본]

 

어떤 일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내가 수용할 생각이 없으면 사실이 아닌 거야. 너희처럼 미천한 것들이 모두 옳다고 인정해 버리면 주인의 권위가 어떻게 되겠어? [이경의 번역본]

 

3. [3막 제4] 바르톨로와 백작의 대화

(바르톨로) 허구한 날 머릿속에는 엉뚱한 공상뿐이라니까요.

(백작) 어딘가 써먹을 데가 있을지 누가 압니까?

(바르톨로) 행여나! [이선화 번역본]

 

(바르톨로) 얘는 항상 낭만적인 생각만 한답니다.

(백작) 낭만적인 생각이 어떤 건지 아세요?

(바르톨로) 천만에, 내가 알 리가 있나! [이경의 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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