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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 ㅣ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평점 :
<수록작품>
장편 : 나는 전설이다
단편 : 던지기 놀이, 아내의 장례식, 죽음의 사냥꾼, 마녀의 전쟁, 루피 댄스, 엄마의 방, 매드 하우스, 장례식, 어둠의 주술, 전화벨 소리
좀비는 어느덧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 작가가 변종 바이러스로 인한 시체의 부활 및 흡혈귀라는 컨셉으로 1954년 이 작품을 썼을 때 본인은 이것이 향후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로버트 네빌은 결말부에서 자신이 전설이 되었음을 외치지만 이 작품 또한 전설로 자리매김하였다.
로버트 네빌이 겪는 괴로움의 근저는 철저한 외로움이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가운데 세상에 정상적인 인간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그를 충동적인 절망감에 빠지게 한다. 작품 전반부에 반복되는 자학적 행동과 독백은 그만큼 그의 고독이 깊고 버티기에는 힘겨움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우연한 개의 발견에 그토록 열광하고 친구가 되고자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우스꽝스럽지 않고 처절한 공감을 주는 것도 이런 연유이다.
벤 코트만. 네빌의 직장 동료였던 그는 호시탐탐 네빌의 피를 노리는 흡혈귀들의 대표격이다. 작중에서 그는 네빌의 호적수다. 주인공의 계속된 수색을 교묘히 피해가면서 그는 끊임없이 네빌의 집 주변을 배회한다. 한번은 아슬아슬한 육탄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가 네빌의 손이 아니라 돌연변이 종족에 의해 무참히 살육당하는 장면에서 독자는 네빌의 동정 어린 심경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더욱 대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데.
문득 자신이야말로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이란 다수의 개념이자 다수를 위한 개념이다. 단 하나의 존재를 위한 개념이 될 수는 없다. (P.221)
루스와 그의 종족. 네빌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분명 비정상이고 생사를 불문하고 흡혈귀일 따름이다. 신 인류라 자칭하는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자신들은 죽은 존재가 아니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뿐이다. 그들에게 네빌은 누군가. 구 인류의 마지막 유물. 자신의 동족을 무참히 살해한 원수. 그는 죽어 마땅하다. 그들에게 네빌은 비정상적 존재에 불과하므로. 이제 네빌은 멸종한 구 인류의 전설로서 신 인류에게 회자될 것이다.
매드슨의 이 작품이 충격적인 것은 제재의 의외성과 선동성뿐만 아니라 결말의 비극성에 있다. 좀비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상투적인 승리담이 아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상황과 한계를 절감하고 기쁘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 철저한 비극적 장엄함이란!
같이 수록된 10편의 단편들은 작가가 지속적으로 공포, 스릴러 장르에 관심을 기울였음을 입증한다. <죽음의 사냥꾼>은 저주받은 원시 부족의 인형과 여주인공의 쫓고 쫓기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아멜리아가 간신히 인형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순간 주술에 사로잡혔음을 독자는 마지막 대목에 비로소 알게 된다. 주인공의 일상적 분노가 축적되어 집이 사악한 기운에 오염되고 만다는 설정, 그리하여 집안 물건들이 합심하여 주인공을 죽인다는 <매드 하우스>는 그다지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둠의 주술>은 줄루족의 주술에 걸린 남자를 구하기 위해 주술을 푸는 또 다른 주술 의식을 거행하는 장면에서 서양인들의 시각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비의적 요소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엿볼 수 있다. 악마가 잠재의식을 통해 주인공의 의식에 침투하여 마침내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전화벨 소리>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그의 작품들은 모두 일상적 공포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무심히 넘기는 일상의 삶 속에서 통제할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발생할 때 우리는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 공포가 묘한 관음증적 호기심을 동반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면서 슬며시 손가락 사이로 훔쳐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