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금애기 : 생명의 신 탄생의 신이라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휴머니스트) 202
김예선 지음, 이은주 그림, 전국국어교사모임 기획 / 휴머니스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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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와 함께 언급되는 존재가 당금애기다. 양자는 서사무가라는 근원과 주인공이 모두 여성인 공주라는 인물상의 특성을 공유한다. 반면 전자는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인 데 반해 후자는 탄생의 신이라는 차이점을 보인다. 더욱이 후자는 석가여래가 남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이채롭다. 이 책은 1968년 양평의 김용석이 구연한 <제석본풀이>를 토대로 한다.

 

당금애기 서사의 전반부는 남녀 주인공의 출생과 성장으로 구성된다. 석가여래를 서천서역국의 왕자로 설정한 대목과 석가여래가 옥황상제에게 꾸지람을 듣는 장면은 통상적 인식과 배치되어 낯설지만 매우 흥미롭다. 한편 당금애기의 아버지인 해동조선국왕이 천자의 명령으로 왕권을 잃고 귀양을 떠나는 모습은 당대 서민들의 국제관계 인식을 반영한 것이리라.

 

바리데기와 동수자 또는 무장승의 결혼은 상황상 다른 여지가 불가능하지만 어찌 되었든 당사자의 선택 행위의 결과다. 그럼에도 상대방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하여 거부할 수 없는 선택을 하도록 조장했다는 측면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당금애기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당금애기 이야기에서는 남성지배 가치의 폭력적 요소가 개입한다. 당금애기는 석가여래의 실체를 알지 못하였고, 그와 어떠한 교감도 갖지 않았다. 더욱이 노승으로 변신한 석가여래의 신통력에 감응하여 알지 못하는 사이에 아이를 잉태하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수천 년 전의 건국 기원 신화도 아닌데 당금애기는 미래를 일방적으로 차압당하고 세속의 삶에서 가족들에게도 버림받은 채 나락에 떨어져 고통을 겪는다.

 

당금애기는 이렇게 하늘로 올라가, 아이 셋을 낳아 훌륭히 키운 공으로 삼신이 되었다. 탄생의 신이 되어 온 세상을 두루 살펴 집집마다 아이를 점지하고, 순산하도록 도와주며, 태어난 아이가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보듬고 돌봐 주는 것이었다. (P.100)

 

당금애기 서사 역시 전통적인 행복한 결말 구조를 지닌다. 세 아이는 자라서 삼불제석이 되고, 당금애기는 탄생의 신이 되어 모든 게 다 잘되었다는 결말은 억지스럽다. 그 과정에서 당금애기 개인이 당하는 삶과 정신적 고난과 피폐함이 과연 타당하고 치유될 수 있다는 말인지. 당금애기 서사는 전통 봉건사회의 지배적 가치관이 무속과 교묘하게 결부되어 지배관념을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한다.

 

부록이 매우 유익하다. 당금애기 모자 중 아무도 신이 되지 않는 경우, 당금애기만 신이 되는 경우, 세쌍둥이만 신이 되는 경우, 그리고 모두가 신이 되는 경우 등 당금애기 설화의 결말이 지역마다 판이하다는 점은 단지 이본 차이만은 아닐 것이다. 또 삼승할망과 저승할망에 관한 제주도 설화도 수록하고 있어 삶과 죽음의 연관성에 대해 더 생각할 점을 제시하고 있다.

 

솔직히 당금애기 서사는 당혹스럽다. 제아무리 좋게 포장하고 해석해도 과연 이것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읽힐 만한 현재적 가치가 있는지의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옛이야기의 무조건적 수용이 아닌 비판적 읽기가 절실히 요구되는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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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공주 / 바리데기 문명텍스트 43
이경하 주해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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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돌베개)를 읽다 보니 해설 부분에서 바리데기를 망자의 저승 인도와 연계시키고 있는 대목이 이해되지 않았다. 순수한 텍스트만 놓고 보자면 동해안본에는 그렇게 해석할 만한 여지도 찾기 어렵다. 더구나 서울본과 비교해서 더욱 강조하니 이참에 서울본도 함께 읽는다. 이 책의 주해자는 돌베개판과 동일하다. 해제는 더욱 자세하고 충실하다. 주해자는 학술용의 서울대판을 대중용으로 다듬어 돌베개판으로 내놓았음이 분명하다.

 

서울본을 동해안본과 비교하면 우선 분량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더구나 제목이 말미라고 하여 전혀 상이하며, 세부적인 내용도 차이가 크다. 바리공주의 아버지를 업비대왕이라 칭하며, 바리공주를 키운 이도 산신령이 아니라 비리공덕 할비 할미다. 결혼한 상대자도 동수자가 아니라 무장승이며, 언니와 형부들 간의 갈등 장면도 여기서는 없다. 이야기로서의 완결성과 재미만 놓고 보자면 동해안본의 판정승이다. 하지만 워낙 판본의 성격이 이질적이기에 각각 독자적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바리공주의 무속적 성격은 서울본에서 보다 명확하다. 서울본은 구성면에서 보다 넋굿의 형태와 가까우며 시종일관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있다. 작중에서도 바리공주가 지옥길을 지나면서 망자에 대한 왕생천도를 비는 대목이 나타난다. 또한 부친을 회생시킨 후 인도국왕 보살이 되었다고 하여 동해안본과 비교할 때 저승신의 속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무조신 혹은 저승신으로서 주인공 바리의 성격이 보다 부각되는 각편은 서울 지역 전승본이다. (P.29)

 

업비대왕이 일곱 공주를 낳고 중병에 걸린 연유는 문복 결과를 무시하고 하늘의 뜻을 어긴 잘못이다. 바리공주는 자신을 버린 부모를 살리기 위해 온갖 시련을 겪고 서천 구약여행을 다녀온다. 효 화소는 봉건사회 틀에 수용되기 위한 안전판인 동시에 당대의 보편적 가치를 반영한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하더라도 바리공주가 버려진 신세에서 무조신이 되는 과정은 전형적 영웅 신화의 구조다. 따라서 바리공주 서사는 남성중심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 영웅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독자적 의의가 있다. 여성 영웅의 연원은 무속에서 면면히 흐르는 옛날 모계사회와 모신(母神)의 유산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치유와 포용의 여성성의 전형화는 물론 지배적 봉건 체제 내에서 억눌린 여성들 바람의 형상화로도 이해할 수 있다.

 

바리공주가 전승되는 배경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굿판에서 구연이 되던 무가(巫歌)라는 점이다. 바리데기굿은 오구굿 또는 진오기굿처럼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왕생천도를 기원하는 넋굿이다. 굿판은 무당에 의해 이루어지는 구연, 노래, 연기가 어우러지는 공연을 마을 주민들이 한데 모여 관람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대중들이 영화나 드라마의 희로애락에 공감하며 웃고 우는 것처럼 당대의 열악한 현실에서 그나마 여성들이 즐길 수 있는 시공간이 바로 굿판이다. 따라서 바리공주 서사의 페미니즘적 해석이 현대에 와서 이야기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점은 인정하더라도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바리공주를 재해석해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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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不學詩, 無以言.

詩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공자가 시()의 중요성을 언급한 <논어>의 대목들이다. 여기서의 시는 <시경>의 시를 언급한다. 굳이 공자를 소환하지 않더라도 현대의 우리가 <시경>을 읽을 이유는 많지만, 무엇보다 우리네 전통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한 축이라는 점이다. <시경> 자체의 오랜 연구는 물론, <시경>의 자구를 인용한 수많은 저작, 한자성어가 존재한다. 경복궁의 어원조차도.

 

개인적으로 한자, 한문을 익힘과 아울러 고전 공부 차원에서 <시경>을 학습하였다. 1일에 시 1편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도전한 연간 프로젝트가 엊그제 끝을 맺었으니 성공한 셈이다. 다만 국풍편은 그런대로 무난했으나 소아’, ‘대아’, ‘국송편의 시는 길이가 대폭 늘어나 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신동준 역본의 미덕은 친절함과 균형감이다. 원문에 한자 독음은 없지만, 상세한 해설을 통해 어렵거나 낯선 한자의 음과 의미를 친절하게 풀이한다. 또한 민속학적 관점을 도입하여 경전의 고리타분한 해석을 지양하지만, 기존의 주요 주석서들의 내용도 소개하여 독자로 하여금 비교 감상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 점은 국풍편이 두드러진다. 개인적 감정과 소회를 담고 있거나 연회와 제사에 사용되는 의식적이며 장중함이 드러나는 등 수록된 각 시의 스펙트럼은 무척이나 넓다. 문왕과 무왕을 포함하여 선조들을 기리는 대목은 용비어천가와 흡사할 정도로 민망하지만 당대로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305편에 대한 개별적 품평은 내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다. 이 글은 완독에 대한 기쁨과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목적일 뿐이다. 무려 이천 년을 훌쩍 뛰어넘은 시대에 불리던 노래들이다. 당대의 사람, 언어, 사고 및 문화가 현재와 결코 동일할 수 없다. 따라서 번역문을 읽더라도 각각의 시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원문을 토대로 한 글자씩 의미에 접근하더라도 요령부득인 모호한 대목은 어쩔 수 없다. 그렇더라도 소득은 크다. 어렴풋이나마 그네들이 살아가던 개인과 사회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점을 떠올린다면, 짐승과 초목 명칭의 그 다종다양함, 특히 말의 종류를 색상과 무늬에 따라 무척이나 세분하여 명칭을 부여한 점이 놀랍다. 제사의 종류와 의식 절차의 상세한 표현도 인상적이다. 표현 면에서 어()조사의 적극적 사용과 의성어, 의태어를 나타내는 자구도 흥미로웠다. <시경>의 시는 거의가 4언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훗날 중국의 시가가 5언 또는 7언으로 통일된 것과 비교하면 이질적이다. 시대와 더불어 사람들의 정서도 변모하기 마련이다.

 

참고로 올재클래식스로 나온 책인데, 7백면을 넘는 두꺼운 분량이다. 인간사랑의 정식 출간본은 1백면 가까이 더 분량이 많다. 다시 <시경>을 만날 날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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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23
김석출 구연, 이경하 역주, 전갑배 그림 / 돌베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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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이야기는 동화책을 읽은 적이 있지만 원형으로서의 바리데기실체를 명확히 확인해 보고 싶었다. 찾아보니 서울본과 동해안본으로 대별되며, 명칭도 바리데기바리공주로 차이가 있다. 이 책에 수록한 김석출 구연본은 동해안본의 대표격이다. ‘바리데기는 통상적 전통 민담이 아니다. 죽은 사람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굿판에서 무당에 의해 불리던 무가(巫歌)를 채록하였다. 무가(巫歌) 그리고 망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목적, 이 두 가지가 바리데기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성격에 해당한다.

 

서사 구조의 일관성 관점에서 볼 때 이야기 자체는 자가 모순적이다. 바리데기는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버림을 당한다. 태어날 아이가 그토록 바라던 사내가 아니라 여자임을 태몽은 명명백백하게 고지한다. 그럼에도 대왕과 부인은 그릇된 소망을 품는다. 오구대왕이 제정신을 잃을 정도로 실망한 까닭은 어쩌면 헛된 바람이 어긋난 것에 대하여 스스로에 대한 분노였으리라. 마지막 장면에서 바리데기 덕분에 죽음에서 부활한 대왕과 부인은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 외손봉사도 좋다고 하면서. 막내딸의 효성에 감탄한 덕택이겠지만, 진작에 딸만 낳았다고 실망할 일이 무엇 에랴. 여기서 당대의 전근대적 가치관을 발견할 수 있다.

 

바리데기를 바라보는 인식은 전통적 효 중시개념에서 여성영웅의 장대한 서사시로 변모하고 있다. 남아선호 사상으로 경시되고 차별받던 딸, 서천서역국의 약수를 구하기 위해 밭갈이, 빨래 등 시련을 겪고, 남모르는 남자와 선뜻 혼인을 하고 세 아이의 출산과 양육의 힘든 생의 여정을 거친다.

 

이야기는 불교와 남다른 친연성을 보여준다. 득남의 희망, 오구대왕을 살릴 방안과 바리데기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잇단 노스님의 등장 등은 다소 작위적이고 허황하지만 이야기 자체의 속성이 그러하다. 압권은 귀국 중 유사강을 건네주기 위해 부처님들이 총출동하는 대목이다. 반야선을 타는 바리데기를 묘사한 용선가’ (P.117-120) 노래는 무속이 문학과 노래, 춤이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적 속성을 지녔음을 새삼 상기시킨다.

 

바리데기서사에서 주인공이 맡았던 소임은 바로 이승을 떠난 망자들을 저승의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는 무당의 역할이기도 하다. (P.145)

 

바리데기의 역할과 관련하여 해설은 이렇게 기술하지만, 김석출 구연본에서는 상기 내용이 분명하지 않다. 바리데기의 서천서역국행은 삶을 구하기 위한 여정이지 망자를 인도해 준다는 해석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 물론 서울본 등 다른 각본을 종합 비교하면 달리 판단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책의 이야기만을 놓고 보면 그러하다. 망자가 아직 영원한 죽음의 세계에 이른 것이 아니며, 바리데기의 권능을 통해서 망자가 저승에서 이승으로 되돌아올 한 가닥 희망의 끈이 남았음을 알려주는 것. 이를 통해 망자의 넋이 조금이나마 위로될 수 있기를 바라는 행위가 바리데기굿과 오구풀이가 아닐까.

 

한편 작중의 바리데기오구의 유래를 굳이 한자와 결부시킨 대목은 견강부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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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최치원 시선 한국의 한시 1
최치원 지음, 허경진 옮김 / 평민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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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부시<시경>을 공부하다 보니 우리 한시도 틈틈이 보고 싶다. 비조에 해당하는 최치원 시선이 우선적 선택 대상이 된다. 고운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에 유학 가서 과거에 급제하고, 황소의 난 때 격문으로 문명을 떨친 후 귀국하여 신라를 중흥시키고자 하였으나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회생 불가능함을 알고 산속에 은둔하여 생을 마친다. 교과서에서 그의 유불선에 관한 글과 추야우중(秋夜雨中)’이라는 시를 배운 기억이 있다. 이 책은 1백면 남짓한 분량에 50여 편을 수록하였다. <계원필경>에 실린 시를 21, <동문선>에 실린 시를 22, <삼국사기>에 실린 5수와 <지봉유설>에 지리산 석굴 속에서 발견했다는 8수가 그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17년간을 홀로 타국에서 생활 했으니 그의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제아무리 개방적인 당나라이지만 외국인의 출세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었고, 서서히 혼란기로 접어들던 시기였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시 가운데 상당수가 그리움을 제재로 삼고 있음은 당연할 것이다. ‘봄바람’, ‘바닷가에서 봄 경치를 바라보며’, ‘동쪽 나라로 돌아가려고’, ‘고향의 벗을 만났다가 헤어지면서등등. 또한 의지가지없는 자신의 신세한탄을 읊는 시도 제법 있다. 자신의 능력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한 울분과 탄식이 드러난다. ‘진달래’, ‘산마루 가파른 바윗돌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나마 마음의 위안과 기쁨을 주던 친한 벗들과 헤어지게 되었을 때 읊은 작품들에서는 그 슬픔과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나온다. ‘고향 가는 배가 떠난다지만’, ‘진사 양섬이 헤어지며 보내 준 시를 받고서’,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오만 수재에게’, ‘벗을 강남으로 보내며등이 있다.

 

오매불망 그리던 고국에 돌아오면서 부풀었던 그의 포부와 희망이 무참히 깨졌을 때 그는 속세를 떠났다. 그의 호가 고운(孤雲)이며, 그와 관련된 장소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음을 보면 그의 방랑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단술만 즐긴다네’, ‘마음의 거울을 닦고’, ‘가을날 밤비가 내리는데’, ‘가야산에 숨어 살며와 지리산 석굴 속에서 발견했다는 8수가 그러하다.

 

최치원이 살던 시기는 당나라 후기로서 따라서 한시의 체계가 완전히 갖추어진 이후다. 따라서 그의 시 형식은 모두 5언과 7언의 절구와 율시로 통일되어 있다. 그의 작품이 깔끔하고 명료하며 장황하거나 처진 느낌이 들지 않는 연유도 내용 못지않게 형식의 영향도 크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그의 현실감각과 정치능력이 뛰어나지 못함을 탓하지만 태생적으로 그는 경세가 타입이 아니다. 난랑비 서문과 이 책에 실린 시들에서 그가 유학에 매몰되지 아니하고 도가와 불가에도 거리낌 없이 교분을 가졌음을 알면 그의 열린 시각과 가슴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래 시에서 그의 체념과 아울러 처절함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옳고 그름을 다투는 소리/귀에 들릴까 늘 두려워서/

짐짓, 흐르는 물로 하여금/온 산을 둘러싸게 하였다네. (‘가야산에 숨어 살며’,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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