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지 : 현대어본 조선 왕실의 소설 2
임치균.배영환 옮김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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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애독자라면 유비가 삼국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분사하고 제갈공명이 신출귀몰한 책략을 발휘했음에도 북벌에 실패한 것에 애통함을 지닐 것이다. 글 솜씨가 좋은 이라면 유비와 제갈공명을 각색하여 자신만의 삼국지연의를 써보고 싶은 욕망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작가도 그러하였음에 틀림없다.

 

작품의 전반부는 임성 일행이 바다에 표류하면서 온갖 요괴를 물리치는 반복되는 이야기다. 이무기, , 원숭이, 여우, 바다의 잡괴 등이 천년을 살거나 사람의 진액을 빼앗아 흉악무도한 요괴가 되었다. 종황의 기지와 도술로 위기에서 벗어나고 요괴를 무찌르는 과정은 임성 일행이 시련을 통해 천명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웅변한다. 바다 가운데서 옥새를 얻고, 서해 용왕이 이를 빼앗으려다 오히려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는 대목에서 두드러진다.

 

소인이 알아뵙지 못하고 하늘이 정한 일을 범하였으니 그 죄 만 번 죽어도 오히려 가볍다 할 것입니다. (P.114)

 

후반부는 임성 무리가 미지의 태원 땅에 도착하여 서안국을 시발로 태원 전체를 통일하는 장대한 위업을 기술하고 있다. 중원에서는 자신의 땅이 천하의 중심이지만 태원에서는 태원이 곧 천하의 가운데다.

 

참으로 괴이하도다. 천하에 다만 태원이 있다는 것만 알 뿐인데, 또다시 중원이라는 곳이 있다니요? (P.142)

 

임성이 서안국을 평정하고 대흥왕에 즉위하는 장면은 촉의 제위에 오르는 유비를 연상시키는데, 이 작품의 주요 대목은 <삼국지연의>를 의식적으로 모방하고 있다. 더불어 본문에서 유비와 제갈공명 등을 되풀이 언급한다. 귀신의 섬에서 두 요괴를 무찌르기 위해 태극진을 펼치는 종황은 제갈공명에 다름 아니며, 서강대전은 적벽대전의 판박이다. 종황과 안정국의 진법 대결은 공명과 중달의 그것과 마찬가지며, 명라성 밖 골짜기의 전투는 제갈량이 호로곡과 반사곡에서 사마중달을 화약으로 폭사시키려던 계책과 동일하다. 곧 이 작품에서 임성은 유비, 종황은 제갈량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태원 통일의 위업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면 시시할 것이다. 따라서 굉장한 고초를 겪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금국 장수 조충과 안정국이 대단히 뛰어난 인물임을 종황의 입을 빌어 드러낸다. 이로써 이들을 무너뜨린 종황의 공훈이 한층 두드러지는 의도도 있다. 명라성 밖 골짜기 전투에서 안정국과 금국 병사 3만 명을 폭사시킨 종황은 제갈공명처럼 탄식한다.

 

비록 나라를 위하여 부득이한 일이지만 크게 음덕이 상하였으니, 나는 천명을 누리지는 못할 것이오. (P.265)

 

연의에서 제갈공명은 천명을 누리지 못하지만 여기에서 종황은 탄식과는 무관하게 천명을 누리는 게 차이점일 뿐.

 

한 가지가 더 있는데, 쌍고검을 휘두르던 유비의 존재감은 연의 중반부 이후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이 작품에서도 초반에 임성이 대단한 능력의 인물이라고 소개되지만, 작품 내내 임성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유비와는 달리 임성은 칼 한번 휘두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종 천명을 받은 인물로 자타가 공인하는 인물이다. 이런 면에서 실질적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종황이다.

 

금국을 평정하고 최후 정벌을 위한 수백만 대군이 출정하는데 처음 서안국 출정을 위한 초라한 군세와 엄청난 대조를 보인다. 나머지 4국은 아예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을 선언한다. 이미 태원의 운세는 쇠하고 천명은 임성에게 돌아갔다는 것이 이들의 항복 논리다. 현명한 동시에 무성의하기조차 하다.

 

하늘이 임성에게 천명을 준 지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천명을 받은 사람에게 거역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뜻에 응하고 인심을 따라 무죄한 백성을 전쟁에 빠뜨리지 않는 길입니다. (P.274)

 

이 책에서 천명은 중요한 화두다. 임성 일행이 중원에서 섣불리 행동에 나서지 못한 것은 원나라 오랑캐의 천명이 다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임성 일행이 태원을 빼앗은 것은 자신들에게는 천명에 따른 정당한 행위라고 하겠으나 태원 사람들에게는 웬 날도적한테 나라를 빼앗긴 꼴이다. 천명의 무상함이 드러난다.

 

슬프다! 이 같은 충의지사가 무도한 때를 만나 힘을 다하여 임금을 섬겼지만, 하늘의 명을 어쩌지 못하고 마침내 절개를 세우고 의를 위하여 죽었구나. 어찌 하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P.268)

 

앞서 읽은 <영이록>과 마찬가지로 주석의 미비함이 깊은 이해를 저해하는 것은 여전히 아쉽다. 예컨대 종황이 금국과 대결하기 위해 출정할 때 내린 일곱 가지 군령은 도저히 요령부득이다.

 

하나는 경, 둘은 만, 셋은 대, 넷은 패, 다섯은 배, 여섯은 난, 일곱은 의이다. 이 일곱 가지는 군대의 한결같은 법이니, 만약 이를 어기는 자는 목을 벨 것이다. 모든 병사들은 명심하도록 하라. (P.206)

 

작품 초반에 중원에서 피신하려는 임성 일행은 조선에 가고자 하는데, 이상국가 조선에 대한 예찬이 그득하다.

 

저는 일찍이 동방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산수가 아름답고 뛰어난 인물이 많아 예악과 법도는 요순시대의 태평한 시절을 본받았다고 합니다.....그래서 그 나라를 하늘이 보배롭게 여기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날이 새도록 배를 타고 가서 그 어질고 착한 나라에 도착하면 차후에 능히 마음에 품은 뜻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P.24~25)

 

이 작품이 중국 소설이 아니라 조선 소설로 판단하는 유력한 근거가 위 대목이다. 중국인이라면 이 정도로 조선을 찬양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대 상 고증의 오류가 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원나라 지정 연간은 우리역사에서는 고려 말에 해당한다. 그네들이 역사를 꿰뚫는 혜안이 있지 않는 이상 교류가 활발한 고려를 모른 채 조선을 언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모험소설이자 군담소설을 좋아하면 비교적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갈 수 있고, <삼국지연의> 애호가라면 차이점과 유사점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비록 깊은 감명과 장대한 드라마는 부족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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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록 : 현대어본 조선 왕실의 소설 3
임치균.이래호 옮김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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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본 소설을 현대어로 옮겨 조선 왕실의 소설이라는 명칭으로 소개하고 있다. 목록을 보니 익히 들어보지 못한 작품들이어서 기대된다. 이 작품은 중국 송나라를 배경으로 손기라는 영웅적 인물의 활약상을 기술하고 있다.

 

위인의 탄생은 불쑥 이루어지지 않는다. 존경할만한 부모, 천상의 간택, 신비한 태몽, 그리고 앞날의 예언 등 모든 필요충분조건이 갖추어져 독자가 마땅히 그러할 수밖에 없음에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손기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손기에게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으니 초라한 외모와 어리숙한 언행이 그것이다. 손아랫동서인 소운성의 총명과 활달한 언행과는 더욱 극적으로 대비된다.

 

소운성의 희롱으로 수모를 당한 손기가 가출하여 단기간에 신선의 도를 깨우치는 과정은 간략하게 기술되는데, 신이한 자질이 그에게 내재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도교의 배경이 두드러진다. 옥황대제, 숭산 북궁, 옥허관 여도사 등은 모두 손기의 탄생과 연관되어 있다. 손기가 동서에게 신선의 도를 설명하는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어서 이 소설의 작가가 도교에 정통해 있음을 알게 해준다. 손기가 신통력을 발휘하여 업룡을 격퇴하고 천사(天師)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는 훗날의 장면도 신통력과 도술이라는 능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또한 소운성 일행이 천사부를 방문할 때 겪게 되는 그 위엄과 웅장함은 비록 과장되었지만 임금의 스승으로 일인지하의 자리에 있는 고귀한 지위를 현저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영웅은 시대와 나라가 역경에 처할 때 홀연히 나타나 세상을 구원하는 법. 손기도 이에 다르지 않다. 궁중에 뿌리 깃든 요괴인 업룡의 출현과 임금의 와병. 초월적 존재이므로 세속의 수법으로는 퇴치가 불가능하다. 결국 도술의 힘에 의존해야 하는데 당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안록산과 주전충을 낳게 할 정도로 사악함으로 가득 찬 정령이므로 범상한 도사의 능력으로는 대처할 수 없다.

 

손기가 다섯 마리의 용을 소환하기 위하여 준비를 하는 과정은 장엄함이란 측면에서 제갈량이 동남풍을 빌기 위하여 단을 쌓는 장면을 상기시킨다.

 

업룡의 머리를 베지 못하여 그 해가 백년 후 동북방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P.128)

 

업룡은 물리쳤지만 화근을 제거하지는 못하였고, 손기는 예언한다. 훗날 여진족의 금나라로 인해 송나라가 전란에 휩싸이게 됨을 암시.

 

언뜻 보기에도 허황되기 이를 데 없는 제재와 전개가 시종일관인 소설. 여기서 당대 사람들은 무슨 의미와 가치를 추구했는지 궁금하다. 단순히 재미였을까. 현대인들도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비루한 현실을 초월하는 환상 속에서 대리만족을 찾는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이 작품은 대하소설인 <소현성록>의 등장인물과 사건을 차용하여 재구성한 파생작이라고 한다. 원작이 당대에 상당히 인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을 뿐더러 원작에서 아쉬움과 동정의 대상이었던 인물을 환골탈태시키고자 하는 독자의 바램을 짐작케 한다.

 

무엇보다도 농후한 도가적 색채가 인상 깊다.

 

신선의 도는 멀고 깊어 천지와 하나이니 어찌 평범한 사관이 붓을 들어 전부를 기록할 수 있으리오? 신선의 도는 천지의 글자도 옥에 새기고 금으로 잠가 명산대천에 깊이 감추어 신령이 삼가 지키고 있다네. (P.98)

 

하늘에는 신선이 있고 인간 세상에는 재상이 있으니 천상천하의 그 귀한 것이 다를 바가 없는 법이네. (P.101)

 

미소개 소설의 대중화에 초점을 두었기에 주석이 거의 없음에도 전체적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다만 시대적, 문화적 지식이 요구되는 대목은 깊은 독해를 위하여 부가적 설명이 뒤따랐으면 한층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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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 (합본) 다림 청소년 문학
이미륵 지음, 윤문영 그림, 정규화 옮김 / 다림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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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출신의 독일 작가가 모국과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쓴 작품이다. 일찍이 범우사에서 반복하여 소개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이게 뭐지, 하며 가벼이 넘겼는데 문득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때마침 아이들에게 읽힐 만한 적당한 책도 찾고 있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펼쳐들었다.

 

구한말 황해도 해주 출신의 작가는 경성으로 유학 왔으나 삼일운동에 가담한 후 체포를 피해 유럽으로 도피한다. 독일에 정착한 작가는 현지인들에게 낯선 자신의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소개를 겸하여 자전적인 작품을 독일어로 집필한다. 이 소설은 당대 가장 빼어난 독일어 문학작품으로 평가받아 교과서에도 수록될 정도였다. 이 정도까지 대략적인 작품 소개라고 할 수 있다.

 

1940년대의 독일 사람에게 있어 작가는 낯선 나라의 일개 동양인에 불과했을 것이며, 한국, 혹은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라는 인식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아무리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식민지는 찰나에 불과하다고 강변해봤자 그들에게 먹혀들 리 없을 터이니 작가는 차라리 모국을 배경으로 아름답고 정겨운 경치와 소박하고 따뜻한 사람들, 화려하지 않지만 은근하고 독자적인 문화를 지닌 나라와 사람들을 글로써 소개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을 것이다.

 

이 예술인이 발걸음을 조금씩 옮기며 흥이 나서 조용한 밤을 향해 타령을 계속 불어 대는 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고, 말소리 또한 내지 않고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새 일본인 거리 남쪽에서는 수많은 불빛이 반짝거렸고, 북쪽의 옛 한국인 지역은 어둠 속에 잠들어 있었다. 삼각산 위에는 벨벳처럼 검은 밤하늘이 펼쳐졌고, 옛 창덕궁은 과거 속으로 잠겨 들었다. (P.164)

 

번역본만으로도 이토록 아름다운 글인데, 빼어난 독일어 원문으로 표현된 문장을 접한 이국인들의 감회는 어떨지 궁금함을 자아낼 정도다.

 

모국을 떠나온 지 약 이십 년이 지나버린 시점. 작가 자신의 입장에서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머나먼 조국에 대한 한 가닥 인연과 추억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으리라. 나이 들수록 선연해지는 향수와 어린 시절의 갖가지 추억은 그에게 가슴 속에만 담아두지 않고 글로 형상화하여 주변에 공유하길 요구하지 않았을까. 그리운 가족과 친구들을 비록 현실에서는 재회하지 못하더라도 문장 속에서나마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으리라.

 

이 작품은 또한 성장소설에 해당한다. 일개 철부지였던 소년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구한말 시골의 정서, 건강 악화로 인한 요양 생활과 일제 지배가 시작된 후 변질되는 사회 세태, 부모와 속 깊게 교감하던 장면들, 그리고 유학생활과 식민지배에 대한 반감과 전환되는 인식. 일경의 단속을 피해 불안과 초조에 숨어 지내던 체험, 그리고 목숨과 일생을 건 출국 시도. 연대기 순에 따른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어린이에서 소년을 거쳐 타지에 홀로 남게 된 당당한 청년에 이르는 성장은 개인과 시대를 함께 아우른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초기에 이르기까지 아직 때 묻지 않은 옛날의 우리네 사람들의 삶과 문화와 정서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으면 충분할 것이다. 두드러지거나 대단한 게 아님에도 문득 회상하면 정겨움이 배어나오는 그 아련함. 우리 아이들이 과연 그것을 알 수 있을까. 이미 백 년도 훌쩍 경과한 첨단 현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이. 한편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참으로 딱하고 불쌍함마저 드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작가 이미륵의 독일에서의 삶도 평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혼란과 나치의 대두, 그리고 히틀러 치하의 독일과 제2차 세계대전. 그런 그가 꿋꿋이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잊지 못할 모국과 고향, 가족에 대한 그리움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작가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지병으로 세상을 뜬 것은 차라리 다행이라고 하겠다. 비록 갓 오십을 넘은 이른 나이지만, 가뜩이나 별 볼일 없는 신생 국가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사분오열되는 모습을 목도한다면 가슴은 찢어지고 말았을 테니.

 

표제는 작가가 중국으로 탈출하며 바라본 압록강의 풍경에서 가져왔다. 이제 떠나면 다시는 보지 못할 수도 있는 모국. 국경선을 따라 쉼 없이 흐르는 강줄기는 처연함마저 안겨준다.

 

오랜 옛날부터 우리 고국을 이 무한한 만주 벌판과 분리시키고 있는 국경의 강은 쉬지 않고 흐르고 흘렀다. 이쪽은 모든 것이 크고 어둡고 진지했으나, 저쪽은 모든 것이 작고 맑게 보였다. 초가집들이 언덕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벌써 저녁 연기가 이 집 저 집의 굴뚝에서 솟아올랐다. 저 멀리 맑은 가을 하늘 아래에 산들이 잇달아 늘어서 있었다. 산은 햇빛에 빛나고 있었고, 황혼의 아름다운 빛에 물들었다가 서서히 푸른 노을 속으로 잠겨 갔다. (P.187~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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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초콜릿 공장 (양장) - 로알드 달 베스트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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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본 동명의 영화의 잔상이 뇌리하게 강렬하게 남아 있다. 원작소설 읽기에는 대체로 불리한 게 일반적이지만 이 경우는 유익한 점도 있다. 무엇보다 화려한 색채의 그로테스크함과 색채들의 선명한 대비는 상상력을 시각화하는 영상의 장점이다. 그만큼 이 소설에서 색채적 효과는 두드러진다. 초콜릿 공장뿐만 아니라 찰리의 가족과 집에서도.

 

작품은 현실을 기반한 듯 하면서 기이한 상상을 불어넣고 있다. 윌리 웡커는 초콜릿 공장을 일행에게 안내하면서 무엇이 바쁜지 연신 달음박질 한다. 언뜻 지적으로 뛰어난 듯 보이지만 허술한 구석이 노골적이다. 게다가 움파룸파 사람들이라니. 지리 교사인 솔트 부인이 알지 못하는 움파룸파에 대해 웡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희한한 얘기만 늘어놓는다. 불리하거나 원치 않을 경우에는 슬그머니 못들은 척 외면하는 습관이 곧 알 수 있다.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는 움파룸파 사람들의 노래를 통해 명백하다. 멍청한 욕심쟁이 아우구스투스 굴룹, 껌만 씹어대는 버르장머리 없고 못돼 먹은 바이올렛 뷰리가드, 버르장머리 없는 버루카 솔트, 텔레비전만 보는 마이크 티비. 특히 버루카 솔트와 마이크 티비는 그 책임이 부모에게 있음을 강조한다. 웡커가 어리석은 네 친구들이라고 부른 네 아이는 결국 중간에 탈락하고 찰리만이 끝까지 남는다. 찰리가 남게 된 이유는 네 아이와 비교하면 쉽사리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사고와 행동 면에서 다른 아이들과 전혀 다르다는 점은 비교적 길게 소개된 찰리의 가족관계와 어려운 가정형편, 그리고 웡커의 특별한 초대장을 얻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분명하다.

 

이 작품이 발표된 1960년대는 미국이 대량생산 체제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가 극도로 발전을 거듭하며 경제적으로 세계 초강대국으로 거듭나던 시절이다. 또한 사회에서 전통적 가치관이 쇠퇴하고 자유분방함이 최고의 덕목을 떠오르던 시절이다. 이를 감안하면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추론이 가능하다. 극심해지는 빈부의 격차와 사회적 가치의 불안정을 찰리네 가족과 네 아이들 가족으로 전형화하고 있다. 처음 네 장의 초대장이 발견되었을 때 이들에 대한 뉴스를 접한 찰리네 가족의 반응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또한 웡커가 찰리에게 대하는 태도가 나머지 아이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찰리의 질문에는 친절하게 답하는 반면, 다른 아이들의 말은 무시하거나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특히 마이크 티비에게 유독 정도가 심하다. 이로써 웡커가 찰리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점과 마지막 승자가 찰리임은 예정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동화의 공통점인 행복한 결말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이 현대 미국의 대표적 동화로 성공한 연유는 무엇보다 초콜릿의 힘이 크다. 각양각색의 초콜릿과 사탕, 껌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군것질거리를 소재로 하여 여기에 초콜릿 폭포와 강, 텔레비전 초콜릿, 식사대용 껌 등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결부하였으니 독자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없다. 대놓고 지적하는 따끔한 교훈과 훈계마저도 거부감을 없앨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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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체스코의 작은 꽃들 세계기독교고전 14
우골리노 지음, 박명곤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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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체스코에 관한 성자담 모음집이다. ‘작은 꽃들은 명문집을 뜻한다고 한다. 프란체스코 사후 1세기 후에 전승되고 수집한 이야기들이므로 당대의 신앙적 현장감이 그대로 남아있다. 더욱이 프란체스코뿐만 아니라 버나드 형제, 레오 형제, 주니퍼 형제와 길레스 형제들을 포함한 그의 제자들의 행적도 다수 수록하고 있어 초기 프란체스코 교회의 면모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앞서 읽은 헤르만 헤세의 프란체스코 글을 통해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책에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전 특유의 낯섦과 충실함에 놀라게 된다. 종교적 차이 여하를 떠나서 일단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다. 비이성적이고 터무니없을 것 같은 행위에서 종교적 가르침이 배어나며, 마귀를 쫓아내며 이적을 행하는 등 전설과 설화에서 기대할 법한 일화들이 가득하다.

 

이 모든 어록과 행적이 지향하는 바는 동일하다. 프란체스코가 신앙 면에서 얼마나 뛰어난지를 입증한다. 그는 말 그대로 예수를 그대로 따르고자 하였다. 가족을 버리고 자발적 가난을 추구하며, 한없는 겸손과 고행을 실천하며 묵상과 설교의 길을 따랐다. 이러한 행적을 보여주는 일화들에서 수도사들과 민중들은 1천여 년이 지나면서 때가 묻고 간과되었던 그리스도의 참 가르침이 무엇이며 이를 따르는 올바른 길이 어떠한지를 묻고 있다.

 

그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한 사람 곧 가난한 작은 거지 프란체스코를 통하여 자신의 생활과 수난을 새롭게 하시기를 원하셨다. (P.244)

 

무엇보다도 그 유명한 오상(五傷)’에 얽힌 실체를 알 수 있는데, 헤세는 언급하지 않았던 사항이다. 그는 행위와 생애 자체로써 뛰어난 전형적 인간을 찬미한 것이지, 기적과 같이 초자연적으로 인간 자체를 가리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쨌든 오상(五傷)이 있었기에 프란체스코는 사후 성인으로 추증되었고,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여지껏 존속하고 있다. 다만, 오상(五傷)을 단지 흔적에 불과한 피상적으로만 이해했는데, 프란체스코 자신에게는 큰 고통을 수반하였다고 하니 현실적 상처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너에게 나의 수난의 상징인 오상을 주어 너로 하여금 나의 기수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또한 내가 죽던 날 이 거룩한 상처의 공로로 말미암아 연옥에서 발견한 모든 영혼들을 구원해낸 것처럼, 너의 죽음의 날에 네가 연옥으로 내려가서 그 오상의 덕으로 너의 세 수도회......와 네게 헌신한 모든 사람의 영혼을 데리고 천국으로 인도해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노라. (P.218)

 

프란체스코는 계시에 따라 묵상과 전도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였다. 깨우침을 얻기 위한 수행과 묵상도 중요하지만, 자신과 수도원 내에 가둬두지 않고 어리석고 고통 받는 민중들을 구제하는 데 진력하였다. 물론 오만하고 권위적이며 시혜적인 태도가 아니라 낮은 곳에서 섬기는 자세로 말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술탄을 회개시키거나 새에게 설교하는 유명한 장면도 이러한 시각에서 전모를 이해하게 되었다. 훗날 성 안토니가 물고기에게 설교하는 장면은 이에 대응하는 대목이다.

 

서론 부분을 통해 우리는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결코 평탄하게 발전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당대부터 수행과 전도의 비중에 대한 내부적 갈등이 존재했고, 프란체스코의 사후 신앙적 분열로 이어져 커다란 혼란을 빚게 되었다는 점도 알게 된다. 따라서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 중 몇 편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다. 엘리아스 형제는 이 분열을 초래한 주동자로 작품 내에서는 철저히 배신자이자 부정적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마사의 야고보 형제가 본 나무의 환상에 따르면 보나벤투라 교황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 이 모두가 작자의 종파적 입장과 관련되어 있음을 서론의 해설에서 가리킨다. 나무의 환상은 프란체스코 사후 수도회가 고난에 처할 것이며, 프란체스코와 요한 형제를 거치 자신들에게 이어지는 정통파만이 진정한 교회의 후계자라는 입장을 명백히 반영한다.

 

주님께서 달콤한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채워 주셨기 때문에 프란체스코와 제자들은 함께 자신들의 몸을 벗어나 황홀경에 빠졌다. 그들은 죽은 사람들처럼 완전히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P.83)

 

행적들을 읽다 보니 몇 가지 반복되는 전형이 눈에 띤다. 프란체스코와 수도사들은 깊은 묵상을 통해 그리스도와 직접적 교감하고 황홀경에 빠져 기절하곤 하였다. 수행 과정에서 엄격한 절제와 고난을 무릅쓰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세상을 경멸하는 현실 경시적 인식을 일관하였는데, 청빈과 겸손은 이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그는 현세의 고난을 무릅씀이 내세의 구원에 가깝게 될 것으로 믿었다. 앞서 읽은 헤르만 헤세의 글에서 이해된 프란체스카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 작품에 따르면 밝고 유쾌하기는커녕 속세의 타락을 통렬히 비난하며 묵언과 고행의 수행으로 일관하는 음울한 수도사들이 연상된다.

 

그 모든 악과 모욕과 매질을 기쁨과 인내로써 참으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인하여 그 고난을 인내로써 참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 레오 형제요! 그것이 완전한 기쁨이라고 기록하라. (P.69)

 

승천 축일이 되자 성 프란체스코는 엄한 극기와 절제로 자신의 몸을 고행하고, 뜨거운 기도와 철야와 채찍질로 자신의 영혼을 위로하며 금식을 시작하였다. (P.208)

 

프란체스코와 그 형제들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아무래도 다른 자료들을 더 읽어봐야만 할 것 같다.

 

신자가 아닌 탓에서 가톨릭 내에서 프란체스코의 위상이 어떠한지 알지 못한다. 이 책의 저자를 포함한 수도사들은 프란체스코를 제2의 예수 또는 예수의 최측근으로 이해하는 게 분명하다. 오상(五傷)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것, 프란체스코가 계시와 이적의 능력을 보유했다는 점, 또한 그가 고난에 처하고 임종을 맞이할 때 마귀들이 넘볼 수 없을 정도로 주위에 천사들이 지키고 있었다는 등등의 언급이 그러하다.

 

이 모든 것을 떠나서 인간 자체만으로 그의 행동은 매우 탄복할 만하다. 쉽지 않은 길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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