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등운 : 현대어본 조선 왕실의 소설 4
임치균.이민희.이지영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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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면에 달하는 고전소설로서 보기 드문 장편이다. 주제의식적인 면에서는 뛰어난 재능의 몰락한 명가 자손이 온갖 고초를 겪다가 큰 인물이 된다는 점과 정혼한 남녀가 갖은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상호 간의 정절을 유지하다는 점에서 평범하다. 나는 이 소설을 여태껏 읽은 작품 중에서 가장 극적이며,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무수한 굴곡에 독자가 질릴 정도라고 평하고 싶다.

 

여타 작품과는 차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주배경이 청루, 즉 오늘날로 치면 유흥가 내지 집창촌이라는 점이다. 불가항력의 까닭으로 청루에 몸을 의탁하게 된 왕석작. 그를 둘러싼 환경과 그에게 닥치는 유혹을 기술하려면 자연히 청루 자체에 관한 이야기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청루의 여러 퇴폐적인 장면, 양민에서 강제로 몸을 버리고 창가로 타락한 여인들, 그리고 청루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포주 일당 등. 낙선재본이라는 조선 왕실의 소설에서 주로 여인들이 읽을 책인데 이토록 청루의 소상한 현실이 담겨 있다는 점이 의외로 놀랍다.

 

청루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후마라고 하겠다. 왕석작이 몸을 의탁한 포주의 누이이자 역시 포주인데, 청루 세계에서 온갖 인간 군상을 상대한 탓에서 사람을 대하는 기술이 능수능란하다. 선인과 악인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능력으로 왕석작 또한 후마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자칫 큰 낭패를 볼 뻔하였다.

 

후마의 말은 하나같이 자신의 속마음을 꿰뚫고 저들의 실정을 이른 것이라 아주 그럴듯해 보였다. (P.41)

 

남녀 주인공의 만남이 청루에서 비롯되었으니 웃고픈 대목이다. 숙부에게 팔리다시피 하여 청루에 오게 된 동예아와 왕석작. 비록 후마가 동예아를 창기로 만들기 위한 속임수로 혼인이 추진되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재주와 성품에 감탄하고 진정한 부부를 약속한다. 이는 몇 차례의 목숨을 건 위기에 맞닥뜨리고 황제의 명도 거슬려 가며 지키고자 하는 절대적 가치가 되어 소설 전체를 이끌어 가는 동력이 된다.

 

정조가 무가치하고 거추장스럽기 이를 데 없는 환경인 청루에서 굳센 절개가 피어난다는 점, 그리고 훗날 이들이 청루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동예아의 절개를 의심하는 뭇 사람들의 의심어린 눈초리와 세치 혀. 작가는 그들을 이렇게 평한다.

 

세상의 부녀자들이 집안에 편안히 있으면서 말마다 절개를 일컫지만은, 마침내 절개를 지켜 후세에까지 이름을 전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소? 매사에 뒤집어지는 것이 두려운 줄을 알겠소. (P.521)

 

왕석작과 특히 동예아가 숱한 위기를 겪으면서도 몸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도운 여러 여인들의 말 그대로 헌신이다. 왕석작의 유모는 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청루에 내놓았다. 하선과 혜랑은 진흙탕 속의 연꽃 같은 존재로서 두 사람을 돕기 위해 여러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동예아의 시녀인 화연을 놓칠 수 없다. 그녀야말로 주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정조마저 아끼지 않았으며 일생 충심을 다하여 헌신하였다. 작품 중에서 동예아라는 인물 구현이 다소 평면적이고 비현실적이라면 이를 극적으로 보완하는 생동적 인물이 바로 화연이라고 하겠다. 여인의 정조가 목숨과 맞바꿀 정도로 중시되던 조선 사회에서 작품해설에서도 평했듯이 정조까지도 거침없이 버리는 여성들을 서술자가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P.532)인 게 이 작품이다.

 

왕석작의 일편단심 부인 사랑도 작품의 중요한 요소다. 왕석작은 자의든 타의든 동예아와 헤어질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특히 황귀비의 조카와 혼인하도록 압박받았을 때 황제의 명령을 핑계 삼아 동예아를 버렸다면 모두를 평안케 하였을 것이다. 그는 그러하지 않았다. 이것이 이 소설의 또 하나 주제의식이라고 하겠으니, 부부간 인연의 소중함과 책임감이다.

 

그대를 잃는다면 나 혼자 무슨 마음으로 세상에 있으리오. 그대가 만일 죽을 마음을 끝내 바꾸지 않으면 나 또한 살 이유가 없소. 이 일은 그대가 멀리 생각하지 못한 것이오. 만일 그대가 이곳에서 죽으면 내가 더욱 버리고 가지 못하고 서럽고 아득하여 죽을 것이오. (P.203)

 

우리 부부가 그동안 유리하고 고난을 겪은 것을 생각하면, 부인은 예사 조강지처가 아닙니다. 결코 세상 권세를 탐내어 부인을 두고 그냥 돌아가지는 못하겠습니다. (P.346)

 

우리는 애초에 언약을 하였으니 차마 중간에 저버리지 못한다. 죽기를 각오하고 찾아보고 그래도 끝내 만나지 못한다면, 그 사람과의 약속을 지켜 지하에 가서 선친을 뵙고 죽은 아내를 찾는 것이 좋겠다. (P.406)

 

다만 두 부부가 갖은 난관을 헤치고 절개를 지키는 의의를 현저히 강조하려다 보니, 이별과 재회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우연성이 남발되고 말았다. 고전소설의 특징 중 하나가 우연성이라고 하겠지만, 여기서는 지나친 측면이 있다. 한두 번이 아닌 우연한 상봉은 작품 전개의 필연성을 약화시키는 역효과가 있는데, 특히 과거보러 온 왕석작이 죽을 위험에 처해 정말로 우연히도 혜랑과 화연의 배에 구조되는 대목은 어이없을 정도다. 작가도 일말의 부담감을 느꼈는지 왕석작으로 하여금 훗날 면피성 발언을 하게끔 한다.

 

저희 부부는 유달리 천신만고를 고루 겪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항상 기이하게 재회할 것이라 기대하겠습니까? (P.464)

 

이외 성적으로 자유로운 언행과 상황 설정도 유달리 두드러진다. 청루를 배경으로 하였으니 일정 부분 불가피하겠지만, 이후에도 남장한 동예아가 왕씨와 결혼하여 남자인 척 행동하는 장면이나 마지막 대목에서 왕석작과 혜랑이 부부 간 잠자리 사랑을 소재로 주고받는 희언이 그러하다.

 

이 작품이 우리나라 작품인지 아니면 중국 작품인지 논란은 작품해설에 따르듯이 동예아의 앵혈로 분명하다. 왕석작이 동예아와 대화 중 도미 부인과 개루왕 고사를 언급하는 장면은 매우 자연스럽기에 이 또한 우리 고전소설이라는 증거로 삼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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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문록 : 현대어본 조선 왕실의 소설 5
임치균.송성욱 옮김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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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표지의 대여섯 줄 작품 소개 문구를 읽더니 큰아이가 대뜸 말한다. <사씨남정기>랑 비슷한 것 같다며. 맞다. 작품 해설에서도 밝혔듯이 이 작품은 처첩간의 쟁투를 그린 이른바 가정소설의 하나”(P.305)에 해당한다. 하지만 단지 평범한 가정소설에 불과했다면 현대에 이르기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며, 소위 낙선재본에 포함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어떤 점이 독자에게 호소하였을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남녀의 혼인 관계에 있어 가장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유형이 일부일처제다. 사랑하는 한 명의 배우자와 평생을 보낸다는 상상은 매우 윤리적이며 이상적이기까지 하다. 다만 사랑으로 충만한 현대의 결혼 관계도 끝까지 유지되기 어려운데, 사랑은커녕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부모의 결정에 따라 평생이 좌우되던 과거에 부부 관계가 정말로 이상적이었을지는 의문스럽다. 세월이 흘러 정이 든다고 하지만, 정과 사랑은 다른 차원이다. 그래서 남성중심 사회의 여유 있는 남편들이 정실로서의 부인 외에 측실을 두고 집안 대 집안의 결합이라는 혼인의 의무와 부담을 벗어던진 채 홀가분한 감정 유희에 빠지는 사례가 비일비재다.

 

[화경] 제가 비록 호방하지만 절대 미인을 얻어 금슬이 화평하면 어찌 다른 여자를 넘보겠습니까? 저는 이미 호씨 집안의 규수를 다른 남자의 노리개로 만들지는 않으리라 뜻을 정하였습니다. (P.14)

 

[이혜란] 이혜란의 완전하고 맑고 깨끗한 모습은 세상의 어떤 미인보다도 아름다웠고, 높고 고상한 태도는 비할 곳이 없었으니 그 자태를 어찌 호홍매의 한갓 낮은 태도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P.21)

 

[호홍매] 제가 사대부 규수로서 이미 화 공자와 서로 만나는 비례를 저질렀습니다. 비록 정식 절차를 거쳐 혼인한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허락하여 부부의 의를 가졌으니 어찌 차마 다른 성씨의 남자를 섬기겠습니까? (P.24)

 

화경과 이혜란, 화경과 호홍매의 관계가 그러하다. 화경과 혜란은 부모가 정해준 인연이다. 양가가 당당한 명문집안이요, 양자는 진부하지만 군자와 요조숙녀다. 양자가 행복하게 결합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불행하게도 화경은 혜란에 앞서 홍매를 만나게 되고 마음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후에 그녀를 둘째 부인으로 맞아들인다. 여기까지는 세상의 법도를 크게 벗어난 상태가 아니다. 각자 자신의 직분에 만족하고 원만한 가정을 유지한다면 말이다.

 

사람의 마음은 제아무리 잘난 인물일지라도 어찌할 수 없나보다. 분명 인물로나 품성으로나 첫째 부인이 우월하지만 애정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더욱이 혜란의 성품은 고고하여 위엄이 있기에 허물없이 대하기가 어렵다. 작중 영웅호걸인 화경은 홍매에게 홀딱 빠져버렸다. 홍매는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첫째 부인의 지위를 누리고 싶어 한다. 여기에 더해 작가는 부인에게 매정한 남편의 태도와 이후 끊임없이 고초를 겪는 부인의 운명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늘의 뜻을 끌어오기까지 한다.

 

[화경] 제가 평생 원수를 만나 신세가 잘못되었으니 원통할 뿐입니다. 이씨의 아름다움을 듣기는 하지만 참으로 비위가 뒤집히니 아예 듣고 싶지 않습니다. (P.26)

 

화 공자가 마음속으로 사랑스러워 하면서도 호홍매를 본 후로부터 오로지 한 생각에만 얽매여 잊지 못하고 있었고, 이혜란의 액운 또한 심상치 않은 탓에 결국 화 공자의 마음은 돌이켜지지 않았다. 하늘의 뜻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P.23)

 

혜란의 액운이 다하지 않은 탓이니 어찌 한갓 홍매의 간사함과 시녀의 악랄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홍매가 그 틈을 잘 타서 큰 계교를 행한 것일 뿐이다. 결국 혜란을 폐출하고 첫째 부인 자리를 빼앗으려 한 것이지만 이 일은 하늘이 혜란의 어진 성덕과 정숙한 행실이 천고에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사단인 것이다. (P.77)

 

최초에 홍매는 비록 혜란보다는 떨어지지만 제법 요조숙녀로서 묘사되었는데, 어느 순간 사특한 인물로 기술되더니 나중에는 철저한 악인으로 변모한다. 본성이 그러한지 아니면 사랑과 질투의 소산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남편과 시부모에게 미약을 먹이고 혜란의 살인을 수차 사주하는 등의 악행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것으로 봐서는 단순한 투기는 아닐 것이다.

 

[호홍매] 하늘이 이미 나를 내시고 어찌 또 이씨를 내셨는가? 만일 이씨가 세상에 있으면 내가 어떻게 기운을 펼 수 있으리오? 이씨를 어떻게든 처단하여 이 세상에 같이 있지 않게 하리라. (P.47)

 

[호홍매] 이처럼 용모는 비록 절묘하나 마음이 요사하고 소행이 간악하여 사특한 기운이 외모에 현저히 드러나니, 그저 아쉬울 뿐이다. 화운 부부가 이를 한눈에 알아보고 그 불행함을 탄식하면서도 겉으로는 애중하는 표정을 지어 주위의 의심을 막고, 부드러운 기색을 보여 신부의 마음을 편하게 했다. (P.38)

 

결국 혜란은 내쫓기고 죽을 위기에 처하는데...이렇게 소설이 끝나면 비극에 해당될 테지만 고전소설은 대개 해피엔딩 아닌가. 화경은 서서히 심경의 변화가 생기고 홍매의 언행에서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하고 마침내 홍매의 투기에서 사단이 생겼음을 알고 홍매를 또한 내쫓는다.

 

작품의 후반부는 살아난 혜란을 찾아서 화경이 재결합하기 위한 필사적인 분투의 노력 이야기다. 가뜩이나 냉대로 미덥지 않은 남편인데 정나미가 떨어진 이 마당에 혜란은 재결합을 극구 거부한다. 양자 간에 계속되는 밀당에 더해 혜란의 오라버니가 가담하는 화경 놀리기 에피소드가 추가된다.

 

혜란이 죽기로 결단하여 보지 않기로 작정하였기에 어찌할 수가 없었다. 꾸짖어 보기도 하고, 달래어 보기도 하였지만 끝내 듣지 않고 돌아가 먹지도 않고 누워만 있으니 집안에서 다시 권유하지 못하였다. (P.174)

 

본래 혜란은 세상을 살 마음이 없어 화경을 대하는 마음이 식은 재처럼 차가워 다시 부부 동락할 뜻이 없었다. (P.194)

 

거부하는 혜란과 잘못을 뉘우치고 간절히 애원하는 화경, 이후 재결합한 부부를 보며 혜란을 다시금 제거하기 위해 온갖 모해를 꾸미는 홍매. 자중지란으로 인한 시녀 난화의 죽음과 호빈 집안의 풍비박산, 그리고 이어지는 홍매의 낭패. 그럼에도 홍매의 사악함은 그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작품은 혜란의 올곧은 마음씨와 고매한 품성으로 홍매가 개과천선하며, 결국 화경도 홍매를 다시 받아들여 모두가 영화를 누린다는 결말로 맺는다.

 

여기서 짚어볼 점은 홍매의 악인성이다. 작품해설에서도 언급되었듯이 “<화문록>이 여타의 가정소설 작품과는 다른 독특한 부분이 바로 악녀의 형상이다”(P.306). 분명 악녀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지향점은 오로지 화경에게 향해 있다. 에로스적 사랑은 대상에 대한 강력한 독점욕을 수반한다. 후에 곤경에 처한 홍매가 절개를 지키려고 애쓴 대목은 그녀가 일반적인 악녀의 전형과는 다름을 보여준다.

 

옛날 첩이 허물을 지은 것은 명공이 집안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편벽하게 하여서입니다. 명공이 만일 가정을 공정하게 다스리고, 첩은 엄정하게 경계하였다면, 첩이 어찌 방자하게 첫째 부인을 해칠 수 있었겠습니까? (P.296)

 

홍매의 항변처럼 화경이 처신을 올바르게 했더라면 이 모든 분란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아무리 영웅호걸이며 탁월한 지성의 소유자로 묘사되지만 화경의 잘못도 매우 크다. 가정의 화목에 남자의 역할이 중요함을 알게 해준다. 또한 혜란도 완벽히 무구하지는 못하다. 하늘의 뜻이라고 변호해봤자 혼인 초 화경에 대한 혜란의 데면데면함은 여인의 따뜻한 애정을 기대한 남자를 실망시켰을 뿐이다. 혜란 오라버니의 말은 비록 구시대적이지만 혜란을 꿰뚫어 본 것이기도 하다.

 

혜란의 시는 너무 고결하여 옥구슬보다 맑고 얼음보다 깨끗하다. 이런 탓에 젊은 날에 박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재앙이 다 지나고 길운을 만났으니, 고집스러운 마음을 돌려 부부가 다시 만나 과거의 원한을 떠올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 여자의 도리는 유순함이 제일이다. (P.147)

 

오늘날 많은 여성들이 막장이라고 비난을 받는 드라마에 몰입하여 울고 웃는다. 예전 여인들도 재자가인을 주인공으로 파란만장한 운명이 전개되는 막장성의 이야기책을 돌려 보았으니 시대가 달라도 시정이나 궁중이나 마찬가지로 세태의 비슷함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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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비룡 문장풍류삼대록 징세비태록 : 현대어본 조선 왕실의 소설 1
배영환 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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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창덕궁 낙선재의 소위 낙선재본 소설을 조선 왕실의 소설이라는 명칭으로 출간한 첫 번째 결과물이다. 낙선재본에 대해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 작품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실체를 대할 수 있게 되니 반갑기 그지없다. 이 책은 모두 세 편의 장편 및 중편 소설을 수록하였다.

 

1. 낙성비룡(洛城飛龍)

 

영웅호걸은 출생과 용모, 습벽까지 범인과는 오롯이 구별된다고 선조들은 생각하였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이경작이 그러하다. 범상치 않은 태몽과 기이한 풍모가 그러하며, 시도 때도 없는 잠과 엄청난 식사량도 일반과는 현저히 다르다. 초 장왕도 처음에 향락에 빠진 일개 범용한 군주에 불과한 듯 보이는 것처럼. 그런 면에서 이경작의 가리어진 참모습을 발견한 양자윤의 안목이 대단하다.

 

이 사람은 용과 호랑이의 기상과 금빛 봉황새의 재질을 가졌습니다. 제비와 참새가 어찌 기러기의 큰 뜻을 알겠습니까? (P.37)

 

영웅은 나면서부터 영웅의 자질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지만, 특정 자극과 계기로 절치부심하여 비로소 영웅성을 발휘하는 사례도 있다. 이경작도 처가의 박대로 가출한 후 오래도록 공부에 힘써 장원급제하고 병란을 진압하여 일대에 명성을 날린다.

 

주인공이 이후 아내와 재회하고 해로와 영화를 누리게 됨은 여타 고전소설과 유사한 전개이므로 특이사항이 아니다. 다만 이경작의 이채로움은 공부 시절에 만난 두 벗과 변함없는 우정을 나누며, 통상적 세속사에 함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매일 조회 후 여가 때면 서로 모여 바둑과 해학을 주고받으며 소일하는 것으로 인간 세상의 즐거움을 삼았다. (P.162)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아내인 양경주는 시종여일 남편을 향한 믿음과 공경을 저버리지 않는다. 미모와 심성을 겸비한 뛰어난 인물로서 그녀는 친정의 개가 권유를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의지마저 갖추었다. 또한 훗날 벼슬길에 나선 남편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주저 없이 직언하고 훈계하는 강직한 풍모도 지녔으니 당대가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여성상을 구현한 것이리라.

 

2. 문장풍류삼대록(文章風流三代錄)

 

<적벽부>의 소동파라고 하면 어지간한 식자는 이름이나마 들었음 직한 중국의 유명한 고전 시인이다. 본명이 소식인데, 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과 함께 부자가 모두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로 유명하였다. 정치적으로는 다소 불우하였지만, 이것이 그가 시인으로서 명작을 남길 수 있었던 계기였다.

 

이 작품의 작가는 소동파를 추앙하였음이 틀림없다. 곳곳에 소동파에 대한 극진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소씨 집안을 배경으로 어찌 보면 시시콜콜한 가족사를 이야기로 엮어 나가며 소동파의 노년마저 행복한 장면으로 바꿔치기한다.

 

이 반드시 소동파 선생이 지은 바다. 진실로 신선의 풍모를 지녔으며 정의로운 군자도다. 내가 규방의 아녀자이지만 어찌 깊이 감복하지 않을까? (P.191)

 

참으로 이 시대의 문장가요, 만대에 빛날 학자입니다. 어찌 시속의 보잘것없는 문인들에 비기겠습니까? 품격이 고상하여 속세에 찌든 사람 같지 않으니 틀림없이 동파 선생이 지으신 것입니다. (P.256)

 

이 작품의 진짜 재미는 후반부라고 하겠다. 소동파의 조카인 소원은 인물과 재주가 유달리 뛰어났는데 이의 혼인을 둘러싼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두씨와 여씨 집안에서 함께 소원과 혼인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소원의 호탕함에 대한 여자 측 집안의 우려와 미인을 아내로 얻고자 하는 소원의 바램이 절묘하게 교차하면서 두 명의 요조숙녀가 한 명의 군자와 결합하는 요즘 기준으로서는 낯설지만 당대로서는 익숙하면서 만족스러운 결과로 이어진다.

 

세상에 속 좁은 무리들은 부부간의 정을 중히 여겨서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것을 꺼리지만, 나는 그렇지 않지. 내 마음에 맞는 숙녀가 있으면 서로 친구가 되어서 남편을 함께 섬기고 옳은 방법으로 내조하는 것을 더 좋아하지. (P.263)

 

네가 날 적부터 비범하더니 팔자가 이렇게 대단하구나. 스무 살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고 절세미인을 둘이나 얻었으니 참으로 기특하다. (P.300)

 

여기서 당시 사대부들의 모순적 도덕관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즉 겉으로는 내면의 심성을 중시하지만 결국 보다 중시되는 것은 외모인 것이다.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은 옹색할 따름이다. 비단 이 작품뿐만 아니라 소설 속 선호되는 여인상은 빼어난 미모를 기본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얼굴은 월나라 서시 같고, 덕은 주나라 태임과 태사 같은 여자를 얻어야 일생이 행복할 것입니다. 만일 이 가운데 하나라도 제 뜻과 다르면 어찌 절대가인이라 하고 요조숙녀라 할 수 있겠습니까? (P.220)

 

조카는 풍류호남자다. 미인을 많이 모을 것이니 만일 조강지처를 이런 희한한 박색으로 얻으면 반드시 금슬의 즐거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저 두공의 외동딸은 평생을 외롭고 힘들게 살 것이다. (P.245)

 

3. 징세비태록(懲世否泰錄)

 

단편에 가까운 분량이지만, 이야기 속 사건과 우여곡절은 빼곡하기 그지없다. 충신과 간신의 대립과 이로 인해 핍박받는 충신(과 그 자식)의 사연이 작품 전체에 깔린 배경으로서 사건이다. 구체적 사연으로서 장자의 혼인담과 차자의 피살이 뒤따르고 더불어 차자 아내의 절개와 그 동생의 혼인담 등 간계와 모략, 기만과 사랑이 뒤얽힌 복잡한 스토리가 정치적 격변과 함께 전개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유달리 주목되는 장면은 정작 따로 있다. 작품 배경이 청나라인 점이다. 충신이 충성을 바치는 대상은 결국 오랑캐인 청나라이며, 이들이 토벌에 나서는 반역도당의 대의명분은 명나라로 대변되는 중화문명의 복원인 것이다. 운남성의 이극과 절강부의 임상문이 그러하다. 하지만 작가의 뜻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이 작품의 시대적 인식을 보여줌과 동시에 여타 소설과 차별되는 점이다.

 

우리 청나라가 비록 오랑캐라 하나 선대로부터 공자와 맹자를 숭상하고 윤리와 기강을 밝히신 바, 하늘이 친근히 하시어 세종 임금에 이르러서는 요순의 다스리심을 본받아 천하가 모두 마음을 돌려 따랐으니 어찌 오랑캐라 하겠는가? (P.345)

 

더러운 오랑캐가 중국을 어지럽게 하고 분수에 맞지 않은 지위에 있은 지 오래되었다. 내 천명을 받고 너희 나라를 쓸어 없애버리고자 하거늘, 늙은이가 어찌 하늘의 뜻도 모르고 목숨을 재촉하느냐?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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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둘러싼 바다 레이첼 카슨 전집 2
레이첼 카슨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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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카슨 전집의 둘째 권이자 카슨의 이른바 출세작이다. 이 책이 평단의 찬사와 함께 상업적 성공을 거둠으로써 그의 초기작마저 재출간되어 주목받는 성과도 함께 했다. 그러면 이 책이 그토록 각계의 호의적 반응을 이끌어낸 연유는 무엇일까? 이 책의 독자라면 대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1950년대에 접어들어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대부분 복구하였다. 그리고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경제적 번영에 힘입어 유례없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자신의 역량을 외부로 뻗쳐 지구와 우주를 정복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전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지구 최고봉의 최초 등정,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와 우주비행사가 등장한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관심은 미지의 영역이었던 바다에까지 이르러 심해 탐사가 추진되었다.

 

증폭되는 대중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정작 바다와 바다 밑 세상에 대한 지적 욕구를 채워줄 만한 마땅한 저작물이 없는 상황에서 정확한 과학적 지식과 충만한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카슨의 글쓰기가 세상에 선보였으니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개인적으로는 초기작의 다큐에세이로서의 짙은 문학성이 다소 퇴조하고 설명조의 스타일이 다소 불만이지만, 보다 과학적 지식의 전달에 주안점을 둔 계몽 목적의 글이라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바다에 관한 거의 모든 영역을 터치하고 있다. 1부는 바다의 탄생에서 비롯하여 바다의 표면과 심해, 바닷속 땅과 바닷물에 충만한 미세생물에 대해서 요모조모 살펴본다. 2부에서는 자전, 바람 그리고 조석에 의해서 움직이는 바다의 역동성에 주목한다. 마지막 3부는 바닷물의 거대한 흐름과 이것이 갖는 지구적 의미, 그리고 바닷속 자원을 다루며 바다가 우리에게 갖는 상징과 실체를 환기시킨다.

 

깊은 바다의 바닥을 생각하노라면 내 상상 속에 떠오르는 가장 압도적인 장면은 바로 켜켜이 쌓인 퇴적물이다. 내 눈에는 언제나 각종 물질이 끊임없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조각 위에 조각이 쌓이고, 층 위에 층이 쌓이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하다. 이런 현상은 지금껏 수억 년 동안 이어져왔으며, 앞으로도 바다와 대륙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P.133)

 

바다에 관한 어지간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저자가 드러내고 보여주고 들려주는 바다 이야기에 무한한 지적 흥미와 상상력에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만큼 카슨의 글쓰기는 과학적 글쓰기와 문학적 글쓰기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든다. 거기에 글쓴이가 품은 바다에 대한 애정은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문장에 온기와 생기를 불어넣는다. 뗏목을 타고 태평양 횡단 여행에 나선 동료 학자를 향한 부러움과 심해탐사선을 타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진하게 표출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카슨의 글에서 바다는 단지 글쓰기의 대상을 넘어선다. 글의 소재가 되는 모든 존재와 현상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며, 그는 인간적 감정을 그들에게 품는다. 애정과 연민, 그리고 안타까움마저. 엄연한 자연의 질서와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스러져가는 존재에 대한 차마 어찌할 수 없는 상념. 더구나 그것이 온전히 자연의 작용이 아니라 인간의 인위적 개입에 의한 파괴와 훼손일 경우 슬픔과 분노는 배가된다. 이것이 훗날 대표작을 쓰게 된 계기가 아니었을까.

 

세계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고유 동식물 종이 사라져간 하와이제도는 자연의 균형에 간섭하면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 똑똑히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동물과 식물, 식물과 토양의 관계는 수 세기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난데없이 끼어들어 제멋대로 그 균형을 깨뜨림으로써 붕괴로 치닫는 연쇄 작용을 촉발했다. (P.160)

 

우리는 글을 통해 바닷물이 단지 짭짜름한 소금물이 아님을 알게 된다. 대낮에 해변에서 또는 선상에서 접하는 바닷물과는 전혀 다른 풍성한 생명체의 향연이 매번 심야에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날치도 아닌 오징어 떼의 해면 위 점프 광경을 목도하는 감흥이 어떨지 상상해본다. 그리고 바닷속 생명을 가능케 하는 규조류와 플랑크톤의 존재도.

 

규조류는 마치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들판 아래 웅크리고 있다 봄이 오면 싹을 틔우는 밀알처럼 겨울 바다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잠자고 있는 규조류의 씨앗’, 거름이 되는 화학 물질, 봄 햇살의 따사로움, 이것이 바다에서 봄의 개화를 재촉하는 요소다. (P.73)

 

자연의 현상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그것이 인간의 예측과 상상을 뛰어넘을 때 우리는 경이로움과 동시에 압도감에 지배된다. 이는 인간이 축조한 일체의 사물과는 견줄 수 없는 차원이다. 2부에서 다루는 바다의 위력은 일찍이 각종 매체와 뉴스를 통해 접한 바로 그것이다. 지진 해일, 폭풍 해일, 너울과 3부에 나오는 해소(海嘯) 즉 조수 해일 등. 앞의 두 가지야 그렇다 하지만 너울과 조수 해일의 위력은 일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부두와 방파제를 쪼개 버리고 수십 미터 높이의 등대조차도 뒤흔들어버리는 파도의 괴력.

 

파도는 한평생 숱한 사건을 겪는다. 파도의 수명이 얼마인지, 어느 정도 먼 곳을 여행할지, 어떤 최후를 맞이할지는 모두 바다를 여행하면서 만나는 상황에 좌우된다. 파도의 중요한 속성을 하나 꼽으라면 움직인다는 것이다. 파도는 움직임을 지연시키거나 가로막는 것들 때문에 해체 또는 죽음을 맞이한다. (P.187)

 

파도의 속성이 움직임에 있다면, 너울과 해일은 분노로 일그러진 바닷물의 얼굴이라고 하겠다. 반면 일상적인 평온한 얼굴 모습은 조석과 해류에서 관찰할 수 있다. 저자는 특히 해류야말로 지구의 온도와 기후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미국과 유럽에서 중시하는 멕시코 만류와 훔볼트 해류 등 여러 해류가 지구 순환계에 미치는 영향은 막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엘니뇨현상 역시 바닷물의 흐름에 기인한 게 아니겠는가. 그러하기에 카슨은 해류를 조정하려는 인위적 개입이 가져올 위험성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영속적으로 흐르는 해류는 어쩌면 바다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장엄한 현상일 것이다. 우리는 해류를 떠올리면 즉각 지구의 자전, 지표면을 거칠게 할퀴는가 하면 부드럽게 감싸는 바람, 태양과 달의 영향력에 관심을 갖는다. (P.210)

 

바다는 결코 고요하지 않다. 바다의 쉼 없는 움직임은 가까이는 바람에 의하여, 아주 멀리는 태양의 작용에 따라, 그리고 중간에서는 달의 인력과, 지구의 자전에 의해 비롯된다. 바닷물의 흐름은 해수면을 따라 횡적으로 움직이지만, 온도에 따라 종적으로 섞이거나 역행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단기적으로는 날씨를 좌우하며,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를 촉발하기도 한다. 그만큼 지구와 인간에게 있어 바다가 갖는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바다를 알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친근감과 동시에 본능적 두려움을 안겨준다. 카슨의 이 책 이후 수많은 바다 관련 저작이 넘치지만 여전히 바다는 신비로움이다. 지표면의 대부분을 점유하는 바다. 바다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가 대륙이라 부르는 땅덩어리는 이른바 커다란 섬들에 불과하다. 저자 말마따나 바다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옛사람들이 생각한 바다의 개념은 좀더 넓은 의미로 보면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정말이지 바다는 우리를 온통 둘러싸고 있다......신비로운 과거에 바다는 모든 흐릿한 생명의 기원을 감싸고 있었으며, 마침내 수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스러져간 뭇 생명의 잔해를 받아들인다. (P.313)

 

앤 즈위거의 비교적 긴 서문과 제프리 레빈턴의 상당히 긴 후기가 덧붙여져 있다. 서문은 저자가 이 책을 발간하게 된 배경과 경과를 알려주는 차원인 것 같고, 후기는 이 책이 발간된 이후 성취한 과학적 결과물을 토대로 책의 내용을 보완하는 성격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도대체 그들은 누구인가? 자그마한 배려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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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을 맞으며 레이첼 카슨 전집 1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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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침묵의 봄>을 우연히 읽고 알게 된 인물.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저자와 저작의 무게감과 깊이, 파장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제 레이첼 카슨 전집이 출간되었다. 첫째 권이자 카슨의 1941년 첫 책이다. 의외로 그의 학문적 배경이자 주요 작품은 모두 해양생물학에 기반을 둔 것이다. 학술적 업적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해양생물학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전달하는 과학저술가로 그의 면모는 초기작에서부터 여실히 찾을 수 있다.

 

나는 공식적인 과학적 글쓰기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 표현법을 사용했다......물고기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심리 상태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P.29~30)

 

오늘날 동물과 자연을 소재로 하는 많은 다큐멘터리는 동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내레이터가 동물과 한 몸이 되어서 마치 자신이 동물인 듯 또는 그들과 동족인 듯 의인화하여 감정과 행태를 공유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새삼 생경하거나 이질감조차 들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온 당시에는 익숙하지 않은 서술방식인 듯 저자는 이 방식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쥐는 새끼 거북을 잡아채더니 이빨로 물고 늪을 건너 조금 높은 지대로 올라갔다. 새끼 거북의 얇은 껍질을 깨물어 갉아내는 데 정신이 팔려 물이 차오르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 섬 해안 주위를 날아다니던 왜가리가 쥐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낚아챘다. (P.42)

 

위는 <장자>의 한 대목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그리고 책 전체를 통해 철저하게 관찰자의 시각에 머문다. 비록 간혹 전지적 시점을 채택하기는 하지만. 주인공 동물에 감정이입을 아끼는 그의 글쓰기에서 고요한 호흡과 함께 관찰의 세부적 적확성을 통해 동물 다큐의 파노라마와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바닷바람을 맞으며>는 해안과 넓은 바다, 해저에서 살아가는 바다 생물체 이야기가 연이어 펼쳐진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거의 아무런 부연설명 없이 등장하는 사건의 관찰자가 된다. 아마 약간의 프로그램 해설문정도가 순서대로 등장할 것이다. (P.28)

 

이 책의 주인공은 모두 15개의 장에 등장하는 무수한 생물들이다. 이들은 바다 속에서 또는 바다와 밀접한 관련을 맺은 채 자신의 삶을 꾸려나간다. 그중에는 제비갈매기, 세가락도요, 멀릿 등 다소간 비중 있는 배역을 맡은 녀석들도 있고, 스콤버나 앤귈라처럼 별도의 이름을 부여받아 몇 개의 장에 걸쳐 자신의 일생을 온통 보여주는 특별한 개체도 있다.

 

특이한 점은 이 모든 개체를 단지 피동적 관찰대상에 놓지 않고 자체로서 생명을 지니고 주동적으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개체로 만드는 저자의 글쓰기 솜씨와 필치다. 솔직히 자연 다큐는 외부인의 시각에 머물기 쉬우므로 맥 빠지기 쉽다. 그나마 영상 다큐라면 화면 보는 맛이라도 있으련만 활자 다큐의 경우 학술과 문학(소설 내지 동화)의 경계에 어중간하게 걸칠 위험성이 있다. 저자는 이 책을 문학에 가깝게 위치를 설정하였지만, 과학적 진실 전달이라는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1부는 해안가를 배경으로 지상과 수중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생물군과 생활상을 소개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다기로움에 언뜻 어수선한 인상을 받지만 바다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생물들의 수효와 그들의 드러나지 않은 생태를 대중에게 소개하여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함을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제비갈매기, 세가락도요, 멀릿이 여기에 등장한다.

 

반면 제2부는 주인공 하나를 전적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바로 고등어 스콤버다. 알에서 깨어난 어린 고등어가 온갖 모험을 겪고 위험을 무릅쓰며 성장해 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서술한다. 갓 태어난 새끼 스콤버가 앤초비와 해파리에 잡아먹힐 뻔하다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장면, 어린 고등어들이 오징어, 대구 그리고 참치의 먹잇감으로 사냥당하는 대목은 극적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이렇게 천적과 인간의 위협을 간신히 벗어난 스콤버 또한 생존을 위해 플랑크톤과 나아가 청어를 사냥한다. 카슨은 스콤버를 동정하지 않으며, 천적에 분노하지도 않는다. 생존을 위한 엄정한 자연의 먹이사슬이므로.

 

3부는 육지와 대양을 넘나드는 뱀장어 앤귈라가 주인공이다. 이 글을 읽기 전에 담수와 염수를 오가는 어류는 연어 외에 알지 못하였다. 연어와 뱀장어는 행태가 대비된다. 민물에 살던 뱀장어는 산란을 위해 수천 킬로미터를 내려가 대양 한가운데로 향한다. 태어난 새끼들은 다시금 미지의 고향으로 거슬러 헤엄치며 자연의 부름이 있을 때까지 일생을 민물에서 보낸다. 그네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여정을 무릅쓰는 것이 오랜 본능의 감각인지 또는 단순히 호르몬의 작용인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자체로서 신비스럽고 기이하다. 대양 한복판에서 뱀장어는 생과 사의 교차를 경험한다.

 

어린 뱀장어들이 해안으로 향할 때 또 다른 무리가 바닷속을 지나갔다. 이제 거의 자라서 검은색과 은색으로 빛나는 뱀장어들이 자신의 첫 번째 고향을 향해 이동하는 것이었다. 이 두 세대의 뱀장어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한쪽은 새로운 삶의 문턱을 넘고 또 다른 한쪽은 깊은 바다의 심연 속에서 생을 마감할 터였다. (P.221)

 

이 책은 해양생태계를 소재로 한 자연에세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이가 순수한 애정으로 자연의 경이로움을 세상과 공유하고자 하는 시도. 학술적, 과학적 사실조차도 그의 담백하면서도 유려한 문체에 녹아들어가 일체 위화감 없이 독자에게 스며든다. 지저분한 수사와 공허한 과장, 씁쓸한 감정과잉 없는 그의 글은 읽은 후 개운함마저 안겨준다. 본문 자체는 그다지 길지 않다. 서문과 용어 설명을 제외하면 이백 면 남짓. 그런데 서문을 쓴 린다 리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레이첼 카슨의 다음 작품이 무엇일지는 이 책 말미에 암시된다. 해양생물이 삶의 터전으로 삼는 곳, 지구 표면의 대부분을 점유하는 곳. 지구상의 생물과 기후와 지질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곳, 그 자체에 대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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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9 09: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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