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롯의 거미줄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5
엘윈 브룩스 화이트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화곤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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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의 뉴베리 아너 상이라는 은색 라벨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구태여 이야기를 읽지 않아도 탁월한 수준의 동화임을 무언중에 웅변하는 듯하다. 다 읽고 난 소감은 글쎄, 명불허전이라고 할까. 대단한 돼지라고 써진 거미줄 아래서 순진하게 서있는 아기돼지의 이미지는 전혀 낯설지 않아 분명 어디선가 본 듯이 친숙하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차라리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표현은 윌버에게 모욕적이다. 윌버는 배부름과 함께 따뜻한 우정을 갈구한다. 마음과 감정을 나눌 수 없는 외로움에 식욕조차 잃을 정도다. 동물 사이에 우정이 가능할까? 더구나 돼지와 거미라는 전혀 조화롭지 못하고 상관없는 관계에 있어서. 작가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여준다.

 

나한테는 네가 근사한 돼지야. 바로 그게 중요한 거야. 너는 나의 가장 친한 벗이고, 나한테는 네가 놀라워.” (P.124)

 

전혀 다르기에 오히려 더욱 가능한 법이다. 아니 그 이상이니, 거미 친구는 윌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하였고 한계를 뛰어넘었으니. 덕분에 윌버도 평범한 돼지에서 대단한 돼지로, 근사하고 겸허한 돼지로 명실상부하게 진화할 수 있게 되었다. 쥐 템플턴조차도 순수하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나름대로의 우정을 윌버에게 발휘한다.

 

윌버와 거미 친구의 우정이 깊어질수록 초반부에 두드러졌던 윌버와 펀의 관계 밀도는 옅어진다. 동물 간의 우정과 동물과 인간의 우정은 동등할 수 없음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일까. 아니면 동물이 인간 의존성을 탈피하고 홀로서야 비로소 동물로서의 자아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속뜻인지 알지 못한다. 인간 입장에서도 동물 애호의 과도한 몰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를 지닌 것인지도. 후반부에 펀은 더 이상 윌버를 찾아오지 않으며, 품평회에서 만난 헨리와 즐겁게 놀았던 생각에 푹 빠져있다.

 

윌버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난 죽고 싶지 않아.” (P.87)

 

윌버는 시한부 목숨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도축되어 햄으로 만들어질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가련한 존재. 인간은 닭, 돼지, , 소 등의 육식을 애호하여 집단 사육하고 도축한다.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면 고기 굽는 냄새에 코가 킁킁거리고 침이 흐르지 않을 수 없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면서 자기합리화를 한다. 역지사지라고 우리들이 그런 처지에 놓여 있고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괴롭고 비참한 심정일까. 문득 영화 <혹성탈출>이 연상된다. 인간이 유인원에게 동물처럼 부림당하는 장면. 작가는 인간의 야만성을 슬쩍 꼬집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거미줄의 문구에 깜빡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의 단순함은 샬롯의 침착한 이성과 매우 대조적이다. 샬롯은 자신의 시도가 분명히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확신한다.

 

윌버의 목숨을 구하려면 주커만을 속이면 돼. 내가 벌레를 속일 수 있으면, 분명히 사람도 속일 수 있어. 사람들은 벌레만큼 영리하지 않으니까. (P.93)

 

샬롯은 혼신의 노력으로 윌버를 구해주었고, 윌버는 샬롯의 필생의 역작을 지켜내었다. 생을 달리하고 세대가 달라졌지만 두 동물 간의 우정은 오래도록 계속될 것이다. 매우 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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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에 가고 싶다
조헌주 지음, 김녕만 사진 / 동아일보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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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초반에 부모님을 모시고 강진과 완도, 해남 일대를 여행하였다. 띄엄띄엄 몇 차례 다녀본 곳이어서 생소하지는 않지만 이번에 좀 더 깊이 있는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사전에 읽게 되었다.

 

강진군 여행안내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유형의 책은 대체로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순전한 가이드북으로서 여행정보 제공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 실용적이다. 반대편에 해당하는 게 여행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인이나 여행 작가들이 여행하면서 겪은 경험과 소회를 글로 녹여낸 것으로 읽는 재미가 가장 쏠쏠하다. 이 책은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데 강진군의 볼거리, 먹을거리 등 여행정보를 위주로 하면서 딱딱하지 않게 글쓴이의 감상과 소회를 적절히 첨가한다.

 

강진군에서 기획하였지만 글쓴이에게 집필을 의뢰한 것은 그가 강진 출신인 연유이리라. 자신의 고향을 널리 소개하고 홍보한다는 점에서 저자의 감회도 남다를 것이다. 기자답게 글이 깔끔하고 질척대지 않아 좋다. 역시 기자 출신의 사진작가가 촬영한 생생하고 절묘한 사진도 자체의 영상미와 함께 독자의 이해와 흥미를 한껏 유발한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그곳에 가서 내용과 부합되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솟구칠 정도니 일단 성공한 셈이랄까. 물론 출간된 지 십년 가까이 경과했으니 정보 업데이트가 필요한 대목도 군데군데 있지만 대도시만큼 정신없을 정도로 변하지는 않아 아직까지는 유용하다. 부록으로 커다란 강진군 관광지도도 제공하니 만치 실용성도 갖추고 있다.

 

강진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그곳이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라는 사실이다. 교과에서 익히는 다산의 명저가 저술된 곳이 강진의 유배처다. 다산초당과 다산기념관, 그리고 다산과 인연 깊은 백련사까지. 다산초당에 과거 두 차례 가본 적이 있어 이번 여행길에는 들르지 않았지만 백련사 정도는 다시 갔었으면 어떨까 뒤늦게 후회한다. 책에서 한 단락을 할애할 정도면 굳이 다산이 아니더라도 천년고찰의 유서 깊은 아름다움을 여실히 목도했을 텐데. 한편 최초 유배지였던 강진읍내의 사의재는 강진군에서 한옥체험관으로 개발 중인데 작년에 이색적 숙박 경험을 가져 기억에 남는다.

 

이번 여행길의 주안점은 강진군의 북부권역에 두었는데, 이 책의 도움 덕분이다. 북동쪽의 하멜기념관과 전라병영성은 개발과 복원 때문에 현장이 어수선하지만 정비가 완료되면 거대한 규모의 명소로 자리 잡을 것이 확실하다. 조선에 조난된 후 십여 년간 억류되었다 간신히 탈출한 하멜이 오늘날 자신을 테마로 한 관광자원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마을 곳곳의 네덜란드식 돌담이 인상적이다. 천연기념물인 은행나무와 (책에는 소개가 없지만) 다소 거리가 있던 비자나무도 위용을 자랑한다.

 

북서쪽은 소위 무위사 지구다. 많은 보물을 품은 무위사를 중심으로 넓게 펼쳐진 차밭의 시원한 정취, 새로이 복원 중인 호남 삼대정원 중 하나라는 백운동정원과 월남사 터까지 역사와 자연을 함께 아우를 수 있다. 백운동정원은 책에 소개가 없는데 최근에야 복원이 진행 중이다. 다산이 연작시를 남길 만큼 빼어난 정경을 자랑하는 곳인데 잘만 정비되면 담양 소쇄원 못지않은 인기를 누릴 곳이다.

 

읍내의 영랑생가 뒤편에 모란테마공원이 조성되었는데 역시 책 발간 이후의 일이다. 그밖에 동부권역의 청자박물관과 마량항은 물론 강진군의 특산물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옴천 토하와 군동 메주가 기억에 남는다. 먹을거리로는 강진한정식이 유명세를 지니며, 짱뚱어탕도 토속음식으로 먹을 만하다.

 

강진군의 으뜸산은 단연 월출산이지만 읍내에서 남쪽으로 드라이브하다 보면 제법 산세가 날카롭고 웅장한 바위산들이 줄줄이 공룡의 등뼈마냥 늘어서 있다. 저자가 책에서 눈맛이 좋은 산으로 소개한 (만덕산과) 석문산, 덕룡산, 주작산이다. 이 산세가 해남으로 더 이어지면 두륜산과 달마산을 거쳐 땅끝마을의 사자산까지 연결된다. 석문계곡에 공원을 꾸며 놓았는데 계곡의 양측을 최근에 아찔한 구름다리로 연결하여 사랑의 구름다리로 칭한다. 앞서 언급한 바위산의 굳건한 기세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포인트다. 가우도의 출렁다리와 짚라인과 함께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끌기에 충분하다.

 

군 하나를 오롯이 소개한 여행 책자는 흔치 않다. 요새는 지역마다 관광유치에 힘을 기울이다 보니 홈페이지에 관광자료를 신청하면 브로셔 및 관광지도를 보내주는 곳도 많이 있다. 그것도 의미가 있지만 결국 단편적 정보에만 치중하게 된다. 이런 안내책자가 있다면 보다 깊이 있는 정보를 접할 수 있고 간과하기 쉬운 곳에도 관심의 빛을 던질 수 있다. 그것을 군청에서 기획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 실용성을 무시할 수 없다 보니 대놓고 음식점이나 토산품점 연락처 등을 제공하는 점도 너그러이 이해할 수 있다. 강진지역을 여행할 계획이 있는 이들이라면 사전에 일독하며 여행코스를 짜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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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선비의 의주 금강산 기행 - '금강일기 부 서유록(金岡日記附西遊錄)' 역주
작자 미상, 조용호 옮김 / 삼우반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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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대 조선 후기의 한 선비가 오늘날의 의주와 금강산 일대를 거닐고 기록한 기행문이다. 처음 가본 알라딘 중고서점을 둘러보다 우연히 구하게 되었으니 이것 또한 일종의 기연이다. 개인적으로 기행문 류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의 풍물과 인정을 먼저 겪고 후기지수에게 소개하는 글을 통해 일종의 대리만족과 대리체험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더구나 요새는 네이버와 다음의 지도 서비스, 해외의 경우 구글맵을 통해 여정을 시각적으로 따라갈 수 있어 보다 사실적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에서 강씨로 추정되는 선비가 답사한 곳은 공교롭게도 오늘날 모두 북한 영역이므로 가볼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움과 흥미로움을 안겨준다.

 

의주로 가는 길은 당대의 굴곡진 역사 순례의 여정이기도 하다. 개성과 평양을 거쳐 의주에 이르면서 풍경의 기묘함과 아름다움을 찬미하지만 작가의 의식은 왜란과 호란의 수치를 상기한다. 임금이 국토의 북쪽 끝자리에 몰려나 궁색하게 지내게 된 사실, 여진족이 무인지경으로 남하하여 임금이 사상 초유로 항복의 예를 거행하게 된 점이 당대 지식인에게는 뼈저리게 다가왔을 것이다. 더욱이 호란은 일단락되었지만 그 여파와 굴종은 당대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저자의 심경은 곳곳에 읊은 한시에 잘 드러난다. 기실 이 기행문은 산문 반, 운문 반이라 칭할 정도로 시의 비중이 제법 크다. 그럴듯한 시 한 수를 지을 수 있어야 인정받는 풍조를 새삼 알게 된다.

 

평양의 명소와 기생에 대한 대목을 제외하면 가장 중요한 장면은 의주에서 이루어진다. 저자는 의주를 출발하여 압록강을 도강하고 봉황성을 지나 책문에 다다르는데 이곳이 바로 양국의 실질적 국경인 것처럼 기록되어 다소 의외로 여겨진다. 책문까지 의주부윤의 공권력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일종의 중립지역인지 궁금하다.

 

의주 여행이 홀로 이루어져 조금은 쓸쓸한 기운이 엿보이고 서둘러 여정을 밟는데 비해 금강산 기행은 벗들과 함께 해서인지 보다 느긋하고 유람에 충분한 시간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금강산 기행의 최고봉은 정비석의 <산정무한>이다. 양자를 비교해보면 재미있으리라. 저자는 내금강과 외금강, 해금강의 순으로 돌아본 후 귀로에 접어든다. 주마간산 식으로 훑는 게 아니라 장안사와 표훈사를 거점으로 삼아 명승지를 꼼꼼하게 챙기고 있어 일생일대의 금강산 기행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욕을 알 수 있다.

 

만폭동, 비로봉, 구룡연, 총석정 등 빼어난 명소의 경우 저자 본인과 동행한 벗들의 시가 차례가 실려 있다. 이로써 일행의 흥분된 감회와 고양된 정서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다만 저자가 제아무리 영탄사를 늘어놓은 다 한들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솔직히 공감하기 어렵다. 훗날 기회가 될 때 금강산을 방문한 후 이 책을 다시 둘러보면 저자의 감흥에 동조하려나. 오히려 저자가 가는 길에 영평팔경을 찾아보는데 오늘날의 포천 지역이라고 한다. 기회가 되면 영평팔경이나마 목도하고 싶다.

 

이 책의 가치는 내용 자체에 역자와 출판사의 노력이 더해 빛을 발한다. 옮긴이는 단순히 번역에 그치지 않고 해제를 통해 내용 소개, 저자 추정 및 작품의 의의를 명쾌하게 밝히고 있어 독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기행문에서 흔히 간과하기 쉬운 부분인데 본문 곳곳의 주석과 사진 및 지도를 삽입하여 저자와 독자의 간극을 조금이나마 좁히려고 친절을 아끼지 않는다. 한문에 지식이 있는 독자를 위해 말미에는 기행문의 원문조차도 수록하고 있어 완성도를 높이고 있음은 상찬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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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전쟁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0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손현숙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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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상영된 스필버그 감독의 동명의 영화 원작이다. 이제는 너무나 식상한 인류 대 외계인의 전쟁이라는 제재. 하지만 120년 전 홀연히 이 소설이 발표되었을 때의 참신성과 충격은 남달랐을 것이다. 후에 모 방송국에서 뉴스 형식을 빌어 화성인의 침공을 라디오로 중계했을 때 일대 소요가 발생한 것은 유명한 에피소드다. 그러고 보니 팀 버튼 감독의 <화성 침공>도 이 컨셉에서 멀지 않다.

 

우주에 인류를 제외한 또 다른 지능을 가진 존재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들은 인류 문명보다 수준이 낮을 수도 있으며, <트랜스포머> 시리즈처럼 인류를 개미 수준으로 하찮게 여길 정도의 압도적인 역량을 지닐 수도 있다. 그런 그들이 지구를 정복하려고 든다면. 단순히 유희가 아니라 생존의 목적으로.

 

그들의 눈에는 인간들이 어떻게 비쳤을까. 아마도 자기들보다 덜 발달한 생명체로 보였을 것이다. 우리가 원숭이를 그렇게 보듯이 말이다.

화성인들로서는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태양 쪽으로 좀 더 가까이 가야 했다. 그래서 생명체로 가득한 지구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그런 화성인을 무조건 잔인하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 (P.11)

 

작가의 문제의식은 첫 번째 장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우리는 오늘날 화성 탐사의 결과로 화성에 우리를 위협할만한 지적 존재가 없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위협은 다른 태양계 또는 은하계에서 올 수 있다.

 

작품의 줄거리는 영화 스토리마냥 화성인의 대학살과 주인공의 무조건 도망치는 장면이 내내 이어진다. 다른 대항 수단이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인류의 절멸은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군대와 화성인 간 치열한 교전과 이어지는 전멸, 생사를 넘나들며 강행하는 주인공의 험난한 여정. 런던 침공에 따른 시민들의 일대 혼란과 소요. 런던을 간신히 탈출하는 주인공의 동생. 화성인의 침공을 두 곳의 다른 시선을 통해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이 모든 극적인 전개는 독자의 눈을 책에 뗄 수 없도록 강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전적으로 작가의 뛰어난 솜씨 덕분이다.

 

문명의 패배요, 인류 대학살의 시작이었다. (P.93)

 

이 끔찍한 순간에 온갖 욕을 화성인에게 퍼부어도 시원찮은 마당에 작가는 인류와 화성인의 행동양식을 비교한다.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인류가 다른 동물들에 저지르는 것과 화성인의 그것이 다를 바 없다고 하며. 당하는 처지로서는 오십보백보이리라.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다. 하지만 소나 돼지, 토끼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이 고기를 먹는 관습 역시 얼마나 혐오스럽게 여겨질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P.114)

 

인간의 피를 뽑아 먹는 화성인에 대한 한 설명이다.

 

모든 것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인간은 더 이상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화성인의 지배를 받는 보잘것없는 동물에 불과했다. 다른 동물들이 인간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 적들을 살피고 도망가고 숨는 신세가 되었다. 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은 이제 끝이 났다. (P.130)

 

인간의 참모습은 한계상황에서 잘 드러난다. 더 이상 이성과 위선의 가면을 쓸 필요도 이유도 없어서다.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공포에 내내 휩싸이는 와중에 주인공이 만난 두 유형의 인간이 대표적이다. 정신을 잃어버린 목사와 정신이 돌아버린 몽상가 군인. 우리는 그들을 비난하지 못한다. 동일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들도 그러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누구도 갖지 못하므로.

 

자연의 힘으로 위기는 극복되었지만,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이제 지구는 인간에게 안전한 곳이 아니다. 언제 갑자기 우주 어딘가에서 어떤 존재가 우리를 찾아올지 알 수 없다. 그것이 선한 존재이든 악한 존재이든 간에 말이다. (P.166)

 

우리의 바람과는 다르게 화성인들은 다시 이곳을 지배할 수도 있다. 미래는 그들에게 달린 것이지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P.167)

 

이 작품이 외계인을 등장시킨 일개 오락물에 불과하지 않음은 자명하다. 기저에는 철저한 문명비판이 드리워져 있다. 인류의 오만성과 비인간성. 최첨단 과학기술의 남용과 오용에 따른 인류 멸절의 위험성.

 

이 책의 유일한 아쉬움은 원작에서 상당부분을 삭제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청소년용으로 기획된 만큼 부적절한 대목은 빼버린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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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세계의 클래식 11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조호근 옮김 / 가지않은길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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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은 매력적인 제재다. 지금이야 다소 식상하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19세기말이라면 획기적이었으리라. 훗날 잘 알려진 영화 <백투더 퓨처>조차도 관객에게 스릴과 함께 흥미진진함을 가져다주었으니. 그런 기대감을 안고 책을 펼친다면 한가득 실망만 갖게 된다. 웰스는 SF소설을 개척한 것이지 액션 어드벤처 작품을 쓴 것이 아님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웰스의 다른 작품들, <우주전쟁>, <투명인간> 또는 <모로 박사의 섬>을 보면 작가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인류 문명의 낙관적 진보관에 매우 부정적임을 알 수 있다. 그에게 과학기술의 진보는 인간성과 문명의 퇴보를 암시한다. 서기 802701년 지구의 미래상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어렴풋이 닮은 지상의 연약하고 순진한 존재. 어둠과 지하에서 기술과 지능이 우월한 기분 나쁜 그림자 같은 존재. 이 두 유형이 인류의 미래라고 하면 어떤 이들이 기꺼이 반기겠는가만, 웰스의 설정은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주도면밀하다. 또 매우 냉소적이다.

 

과학기술과 문명의 궁극적 지향점은 완전한 평화와 행복의 구현이다. 모든 사람이 노동의 굴레에서 가난과 질병의 함정에서 벗어나 삶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지상천국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영원한 발전과 지복(至福)?

 

내가 꿈꿔 온 인류의 위대한 승리는 다른 모습이 되어 버렸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은 윤리 교육과 보편적 협력에 의한 승리가 아니었던 거야. 내 눈 앞에 있는 것은 완벽한 과학으로 무장하고, 현대 산업 조직의 논리적 귀결을 이끌어 낸 진정한 귀족 정치였단 말이네. 그 승리는 단순히 자연에 대한 승리가 아니라, 자연과 동료 인간에 대한 승리였던 것이지. (P.106)

 

웰스는 당대 심화되어 가던 자본과 노동의 분리, 빈부 격차로 인한 계급화 현상을 여기에 대입한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는 지상과 지하로 삶의 영역이 재편된다. 지상의 귀족은 엘로이, 지하의 노동자는 몰록이라는 인류의 미래 종족으로 퇴화된 것이다. 그리고 힘의 우위는 역전되었다.

 

엘로이들은 그저 살찐 소일 뿐이고, 개미와 같은 몰록은 그들을 보호하고 잡아먹을 뿐인데, 아마 번식도 시키겠지! (P.133)

 

이 소설은 불편하다. 독자가 기분 나쁨과 불편함을 느끼지만, 더 큰 긴장과 불안과 호기심을 품은 채 자신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것 같은 낯설고 기묘한, 절대 좋은 경험은 아닌.

 

나는 인류의 지성이라는 꿈이 얼마나 단명했는지를 생각하며 애도했다네. 인류의 지성은 자살한 거야. 인류는 지성을 사용해 안락함과 여유로움을 추구하고, 안전과 지속성을 표어로 내세운 균형 잡힌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그 모든 것을 이루고 말았네. 그리하여 마침내 이렇게 되어 버리고 만 거지. (P.166)

 

웰스는 이렇게 선언한다. 작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끔찍한 미래사회를 탈출한 주인공. 상상할 수 없는 머나먼 미래로 다시금 시간여행을 계속하는데. 이미 인류라는 종의 자취는 사라지고 지구 자체마저 쇠퇴와 소멸을 기다리는 암울한 광경. 작가는 굳이 이곳에서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가?

 

타임머신하면 흔히들 미지의 미래 탐험과 역사적 순간의 참여를 떠올린다. 그 바탕은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이른바 장밋빛 전망에 근거한다. 줄기세포와 게놈 프로젝트, 그리고 로봇의 발달은 어쨌든 인류에게 유익하다는 믿음. 웰스는 형이상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이 정말로 종국적으로 인류에게 바람직한 것일까. <타임머신>의 내용은 순전히 터무니없는 공상으로 치부해도 좋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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