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무도회 지만지 희곡선집
미하일 레르몬토프 지음, 박선진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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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르몬토프의 대표적인 운문 희곡이다. 그는 소설과 시로 유명하였기에 솔직히 희곡은 전혀 의외였다. 지식을만드는지식은 이렇게 가끔 참신한 놀람을 안겨준다.

 

근세 귀족사회에서 사람들의 만남은 주로 사교계를 통해 이루어졌다. 무도회에서 춤과 대화, 카드게임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가십거리를 주고받으며 짝을 찾는다. 뛰어난 외모와 재치 있는 언행, 그리고 고상한 출신을 뽐내는 이는 언제나 사교계의 총아가 될 수 있다. 반면 사교계는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자 우민화시키는 바보상자라고도 할 수 있다. 사교계는 가벼움과 쾌활함의 표면에 시기와 음모와 비방이 드리워져 있다.

 

(남작부인)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해 버리면, 그때는 행복과 평안을 잃게 되지! 이곳의 사교계란…….비밀 같은 건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 사교계에선 외모로, 옷차림으로 가려내지, 성실한지 방탕한지를 말이야. (P.62)

 

(아르베닌) 사람들과 지겹지 않으려면, 멍청함과 교활함을 바라볼 수 있도록 스스로를 훈련시켜야 하는 것을! 이 두 가지가 사교계를 움직이는 전부이지 않소! (P.130)

 

가면무도회는 익명성을 전제로 한다. 나의 정체를 숨길 수 있다니 엄청나게 짜릿하다. 지위와 신분의 외투를 벗어던지고 본능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여도 나를 질책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솔직과 자유의 가면을 쓴 일탈과 불륜의 용인에 다름 아니다.

 

(아르베닌) 가면 아래서는 모두가 동등한 신분이 됩니다. 가면에는 영혼도, 직위도 없으니까요. 몸뚱이만 있을 뿐이지요. 가면무도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는 가면으로 숨기면서, 자신의 감정을 덮고 있던 가면은 과감하게 벗어던져 버린답니다. (P.22)

 

(남작부인) 행실이 바른 여인이 어찌 발걸음을 향할 결심을 할 수 있겠어요, 온갖 잡다한 인간들과 바람둥이들이 모욕하고 조롱하는 곳으로 말이에요. 누가 알아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P.64)

 

이 희곡은 가면무도회로 대표되는 사교계의 위선적 본질을 폭로하고 있다. 그나마 사교계는 귀족사회에서 필요악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가면무도회는? 가면무도회에 대한 평판은 당대에도 부정적이었음을 쉽사리 알 수 있다. 니나의 유일하며 절대적인 과오는 바로 가면무도회에 참석했다는 점이다. 아르베닌은 니나가 가면무도회 갔었다는 말을 통해 그녀의 배신을 확신한다. 극중에서 니나는 남편이 자신을 죽이는 이유도 모르면서 억울하게 죽어간다.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의 간청도 외면하고 죽이듯이 아르베닌 역시 니나의 애원에도 막무가내다. 사랑을 배반당했다는 증오와 배신감의 위력은 이렇게 극도로 편향적이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주인공 아르베닌의 본성이다. 그는 어두운 과거를 지닌 인물이다. 도박과 방탕에 젖은 생활을 하다 문득 과거를 청산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는 세상의 밝은 면에 현혹되지 않고 숨어있는 어두운 힘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경험과 지성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작중에서 그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냉혹하다.

 

(카자린) 새끼 양 같은 눈빛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짐승이야. 누군가는 고칠 수 있는 거라고 말하겠지, 타고난 천성을 말일세.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자는 바보라네. 제아무리 천사인 척해 봤자 그 속에는 악마가 들어앉아 있는걸. (P.18)

 

아르베닌은 니나를 사랑했을까? 분명 그의 결혼은 순수한 동기에 의한 게 아니었다. 그들의 결혼생활도 행복하지는 못하였다. 니나가 사교계에 몰입하게 된 것도 결국 가정생활의 무미함과 답답함을 벗어나고픈 욕망에서였으리라. 다만 아르베닌은 자신이 그녀를 사랑했다고 믿는다. 그녀의 순수한 사랑만이 자신을 정화시킬 줄로 기대하였다. 나는 비록 더럽고 어두운 시절을 겪었지만 아내만은 한 점 흠결 없이 완벽히 순수한 애정을 나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바람.

 

(아르베닌) 나는 삶과 선을 위해 다시 태어났다오. 하지만 가끔씩 어떤 적대적인 혼이 나를 폭풍 같았던 예전 생활로 데려가곤 하오. (P.46)

 

(아르베닌) ,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지, 사랑하고 있어. 그리고 그녀는 날 처참하게 기만했어...아니, 난 그녀를 사람들에게 양보하지 않겠어...그들은 우리를 심판할 수 없어...내가 직접 무서운 심판을 내리겠어...그녀에게 사형을 내리겠어. (P.125)

 

아르베닌은 위선자다. 그의 인물됨은 <우리 시대의 영웅><리곱스카야 공작부인>의 페초린과 동격이다.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악에 친연성을 갖는 인물. 우리가 레르몬토프의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는 당혹감의 근원은 바로 주인공의 통상적 속성에서 어긋나는 독특한 성격에 기인한다.

 

(아르베닌) 썩 꺼져 버려라, 선인이여. 난 너를 알지 못하니. 난 너에게 기만당했던 것이고, 그렇기에 오늘로써 우리의 짧았던 동맹을 파기하노라. 영원히 안녕! (P.91)

 

아르베닌과 니나를 제외한 여타 등장인물 역시 위선적 요소를 띠고 있다. 모든 비극이 시작되는 단초인 니나의 친구인 남작부인, 사채업자인 슈플리흐, 아르베닌을 다시 어두운 세계로 유혹하는 카자린 등. 공작 정도만이 그나마 낫다고 할 정도. 마지막 대목에서 등장하는 미지의 인물은 모호하다. 그는 사람일까 아니면 사람 이외의 존재일까 분명치 않다. 다만 그는 아르베닌의 영혼을 적나라하게 간파하고 있다.

 

(아르베닌) 인생은 무도회와 같소. 춤추며 돌다 보면 즐겁고 주변은 온통 빛이 나고 밝지...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구겨진 옷을 벗는 순간 그 모든 건 기억에서 날아가고 피로가 덮쳐 온단 말이오. (P.137)

 

인생이 무도회와 같다면, 가면무도회가 암시하는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이 모든 악의 꽃이 번화하는 사교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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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 마차를 탄 기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38
크레티앵 드 트루아 지음, 유희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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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와 관련된 설화 및 이야기는 서양문화에 있어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단 현대의 독자들 뿐만 아니라 중세 시대에도 꽤나 인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 트루아의 작품을 통해서도 익히 알 수 있다. 역설적인 점은 아서 왕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서 왕이 아니라는 데 있다. 친숙한 아서 왕은 사실상 명검 엑스칼리버로 무대에서 퇴장하며 들러리에 불과하다. 랜슬롯, 가웨인, 퍼시벌 등이 사실상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랜슬롯과 귀네비어 왕비의 사랑.

 

기사도 이야기의 필수 요소는 물론 기사의 모험담이다. 기사는 각지를 방랑하며 모험을 겪어야 한다. 그 모험은 불의를 벌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단지 자신의 무용을 자랑하는 도정이기도 하다. 돈키호테가 그러했듯이. 또한 기사에게 사랑이 빠질 수 없다. 기사라면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숭배하는 여인이 있게 마련이다. 소위 궁정식 사랑. 돈키호테에게 둘시네아가 있다면, 랜슬롯에게는 귀네비어 왕비가 있다.

 

납치당한 왕비를 되찾기 위한 기사가 랜슬롯과 가웨인이라는 점은 시사적이다. 전자가 응당 주인공이며 왕비와 특별한 관계에 있는 처지라면, 가웨인은 아서 왕 이야기에서 무용과 아울러 고귀한 품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기사이다. 비록 이 작품에서는 조연에 불과하지만 왕비를 되찾기 위한 그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노력 또한 두드러진다.

 

모든 것이 그의 기억에서 다 지워졌습니다. 그것을 위해 나머지 모든 것을 다 잊어도 되는 한 가지만 빼고는 말입니다. 그는 그 유일한 대상만을 골똘히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P.26)

 

왕비를 향한 랜슬롯의 사랑은 되풀이하여 표현되는데 그것은 너무나도 깊고 커서 어떠한 고난과 유혹도 그를 흔들 수 없을 정도다. 랜슬롯은 시종일관 왕비를 납치한 일행의 추적에 몰두한다. 그는 말이 죽자 다급한 마음에 죄수 마차를 올라탄다. 단순한 죄수 호송용 마차가 아니지만, 그는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무릅쓴다.

 

사랑이 명령한 거라면 설령 죄수 마차를 타는 일일지라도 뭐든 복종하는 것이 내게 영광이었으니까. 그녀는 거기서 사랑의 완벽한 증표를 봤어야 해. 사랑은 그 충실한 수행자를 이런 식으로 시험하면서 알아보거든. (P.110)

 

랜슬롯이 왕비를 납치한 자가 고르 왕국의 멜리아건트 왕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칼다리를 건너 멜리아건트와 대결을 벌이게 되는 대목은 분명 읽는이를 매료시키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이다. 하지만 트루아는 이를 부차적이자 양념으로 생각할 뿐, 랜슬롯과 귀네비어 왕비의 연인 관계이자 주종 관계를 부각시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사랑의 지배력을 시험하고자 하는 왕비는 멜리아건트와의 결투와 이후 마상창시합에서 랜슬롯에 상반된 지령을 내려 그의 순종을 확인한다.

 

왕비는 전혀 염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순종에 기쁠 뿐입니다. 그 기사가 랜슬롯이라는 걸 말하지 않아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하루 종일 그는 비겁한 기사 행세를 합니다. (P.139)

 

왕비는 쉴 짬도 주지 않고 그의 답변을 듣습니다. 하늘을 날 듯이 기쁩니다. 이제 그가 완전히 자기 남자라는 걸, 자신이 그의 여자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P.142)

 

작품 내내 랜슬롯과 대비되는 인물로서 멜리아건트가 등장한다. 그는 용맹하지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간계도 쓸 줄 아는 음흉한 인물로서 기사도적 전범은 아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을 타이르고 만류하는 부친 국왕에게도 화를 내며 분별없이 대들 정도의 심성을 지니고 있다. 반면 국왕 배드마구는 훌륭한 군왕의 태도를 보인다. 납치한 왕비를 예의있게 대우하며 랜슬롯의 기사도를 존중한다. 멜리아건트를 꾸짖는 그가 모든 외국인을 억지로 왕국 내에 잡아두는 정책을 펼친 왕이라는 점이 기묘할 따름이다.

 

죄수 마차를 타는데 순간 망설였다는 이유로 자신을 구하러 온 기사를 냉대하는 왕비. 이것은 사랑의 밀당에 다름아니다. 누군들 감복하여 환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기서 궁정식 사랑은 절정에 달한다.

 

왕비는 손을 뻗어 그를 맞습니다. 그를 얼싸안고 가슴 가까이로 꽉 껴안습니다. 침대 안으로 끌어당깁니다. 극진한 환대를 베풉니다. 그것 심장과 사랑에서 분출한 겁니다. 그녀가 그를 이토록 환대하게 한 것은 사랑입니다......사랑의 기쁨 속에서 나눈 입맞춤과 포옹의 유희가 너무나도 달콤했기에 그는 정말로 환희의 극치를 체험합니다. 이런 환희의 경험은 다른 사람들한테서 들어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저는 그에 대해 더 이상은 언급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건 말로 형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완벽하고 달콤한 그런 환희는 연애 이야기에서 말로 표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P.116~117)

 

왕비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도 숭배하고 환희를 느끼는 주인공이니만치 왕비의 입맞춤과 포옹에서 환희의 극치를 체험할 수 있겠지만, 해당 대목의 암시는 그 이상을 가리킨다. 궁정식 사랑은 제아무리 합리화하여도 그것의 궁극적 지향은 불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적이며 당연한 수순이다. 아서 왕국의 몰락과 아서 왕의 죽음의 계기는 두 사람의 사랑이 너무나도 공공연하게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된 데 있다.

 

트루아는 <그라알 이야기>에서 기사도와 성배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면, <죄수 마차를 탄 기사>에서는 기사도와 궁정식 사랑을 다룬다. 궁정식 사랑의 본질과 함의에 대해서는 이 책의 해설에서 자세히 기술하고 있어 좀 더 깊이있게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간통적 사랑이자 욕망 억제의 에로티시즘 미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결국 불륜적 성격을 지칭한다. 정치적으로 여성판 주종제라는 점은 새로운 관점이지만.

 

내용 자체로서는 궁정식 사랑과 모험담이 흥미롭지만, 배경적 측면을 살펴보면 6세기 전설적 켈트의 영웅들이 12세기 중세 프랑스와 영국에서 되살아난 시대적 요구와 필요성에 관심이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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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힘 설킴 부클래식 Boo Classics 69
테오도어 폰타네 지음, 박광자 옮김 / 부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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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타네는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작가일 것이다. 대표작 <에피 브리스트>와 이 <얽힘 설킴>의 보편적 평가는 고루한 인습에 짓눌려 희생당한 여성의 처지를 부각시키는 데 천착하고 있다. 귀족 청년이 일반 시민계층의 처녀와 사랑을 속삭이다 차버리고 귀족 여성과 결혼한다는 설정은 상투적이면서도 독자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폰타네는 페미니스트였던가.

 

폰타네의 작품은 주로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페미니스트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에피 브리스트>에서 주인공은 분명 희생자다. 늙은 남편 역시 피해자이지 가해자는 분명 아니다. 가해자는 누구일까. 바로 사회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얽힘 설킴>에서도 레네는 외관상 피해자임에도 실상 독자의 시각에 비친 피해자는 보토라고 하겠다. <마틸데 뫼링>에서 동명의 주인공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결코 따뜻하지 않다.

 

전 누굴 사랑하면 그냥 사랑할 뿐이에요. 그것이면 충분해요. 그 사람한테 더 바라는 것은 없어요. 정말이지 전혀 없어요.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그 사람이 오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다시 올 때까지 가만히 못 참고 기다리는 것, 이런 것에 저는 행복해요. 이것이면 충분해요 (P.25)

 

나에게는 이 최고의 것이 소박함, 진실함, 자연스러움이다. 그런데 레네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그래서 나는 레네를 좋아한다. 이 매력에서 내가 쉽게 빠져 나올 수 없다. (P.135)

 

보토와 레네의 애정은 이해타산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이 작품의 두 주인공은 전혀 부정적 인물형이 아니다. 그들의 사고와 취향의 지향점은 매우 유사하여 서로를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두 사람은 모두 사랑의 결말을 애시당초 인식하고 있었다. 엄연히 계급이 존재하고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 비록 사회는 변화하고 있지만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은 현실화의 장벽이 너무나 크다. 가문의 기대, 재정적 안정, 그리고 사회적 인정 등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일이 아닌 탓이다.

 

당신은 나를 잘 몰라요.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이런 순간을 가진 것만으로 행복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런 것은 나는 생각지 않아요. 언젠가 당신은 떠나겠지만...... (P.44)

 

, 하나뿐인 나의 보토. 당신은 나한테 숨기려 하지만, 이젠 끝이에요. 곧 그래요......나는 알아요. (P.127)

 

그렇다면 순수한 사랑이 인정받고 실현되지 못하는 당대의 계급적 인습에 대한 비판으로 보는 게 옳지 않겠는가. 시민계급이 성장했지만 아직 귀족계급과 대등한 수준으로 부상하지 못하였고, 귀족들은 한 가닥 계급의 힘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시대.

 

레네는 보토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을 반복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레네는 보토에게 전부를 바친다. 그녀가 어리숙해서가 결코 아님을 독자는 알고 있다. 순전한 사랑, 조건 없는 사랑을 갈구해서다. 이것저것 따지고 고민하면 그것은 순전하고 진실한 사랑이 되지 못한다. 사랑 그 자체로 만족하고 행복한 것, 그것이 레네의 사랑이다. 그래서 그녀는 행복하였고, 가슴 아프면서도 보토를 순순히 보내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행복했다. 너무 행복해서 이 세상이 온통 장밋빛으로 가득해 보였다. 소중한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팔짱을 끼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 때를 즐기고 있었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설사 이것이 마지막 한때라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후회할 것이 없었다. 이런 하루를 체험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벌써 남보다 나은 무엇을 간직한 게 아닌가? 설령 단 한 번의 일이라고 해도. (P.111)

 

난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요. 당신은 나에게 잘못한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나를 유혹한 것도, 무슨 약속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모두 자유로운 내 결단에서 나온 거예요.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했어요, 그것은 내 운명이었어요. (P.141-142)

 

우리는 레네의 심성과 배려심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인들 어찌 연인을 쉽사리 떠나보내고 싶었을까. 울며불며 매달리고 떼쓰면 마음 약한 보토는 아마도 그녀와의 끈을 놓지 못하였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의연하게 이별을 맞이한다. 그것이 사랑하는 이의 장래와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이 또한 사랑이리라.

 

아름다운 꿈을 꾸었으면 그것만으로도 신께 감사를 드려야 하고, 꿈이 사라져 현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불평할 건 없어요. 지금은 감당하기 어렵지만, 그럭저럭 지나다 보면 모든 것을 잊고 다시 밝은 얼굴이 될 거예요. 당신도 언젠가는 다시 행복해질 것이고 나도 아마 그럴 거예요. (P.141)

 

보토의 또 하나의 여인, 케테는 어떠한가. 보토의 눈에 비친 아내는 여러모로 레네와 대비된다. 신분상의 차이는 당연하지만, 성품은 신분에서 기대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보토는 아내의 언행에 불편함을 지닌다. 그렇다고 케테가 부정적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보토의 벗의 표현에 따르면 케테는 보토에게는 과분한 여인이다. 이렇게 보면 케테는 단지 보토에 맞지 않을 뿐이다.

 

갑자기 그의 웃음에 여러 생각과 불편함이 섞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어떤 것과 마주치든 그녀가 사소한 것, 우스운 것에만 마음이 끌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P.146)

 

나 같은 자연의 사람은 뭐랄까 순수함, 천진스러운 것이 좋아요. 여보, 순수한 마음씨란 정말로 보물이에요. 나는 언제까지나 순수한 마음씨를 간직하겠다고 결심했어요. (P.234)

 

케테의 가벼움과 천진함. 레네의 사려 깊음과 진실됨. 보토의 인간미와 소박함. 개별로 볼 때 세 인물은 차이가 있겠지만 한마디로 좋은 사람들이다. 이 중에서 독자는 특히 보토에게 동정심과 안타까움을 품게 된다. 스스럼없이 시민계층의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으며, 레네 어머니의 무덤을 방문하는 대목은 그의 인성이 어떠한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그를 고민하고 방황하게 만든 동기는 사회와 계급이다. 그는 구름 위 세상이 아니라 대지에 두 발을 딛고 있기에 현실적 선택을 취하였던 것이며, 유사한 처지에 놓인 사촌에게도 동일한 조언을 한다. 그것을 비겁하다고 비난하지 말자. 차라리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편이 사실에 가깝다.

 

애정을 지키고 고집대로 하는 것, 그것을 뭐라고 부르던 그렇게 하면 계급, 가문, 자네의 인생과 결별하게 되는 거고, 그러면 흙탕에 빠진 것은 아니라고 해도 결국 조만간 스스로 끔찍스럽고 짐스럽게 느껴질 거야. (P.222)

 

레네의 결혼식 광고를 보고 웃는 케테를 보며 보토는 자신보다 레네의 신랑이 낫다고 잘라 말한다. 단지 레네 같은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된 기데온에 대한 부러움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한 자신과는 달리 기데온은 레네의 미덕과 함께 흠결마저도 감싸 안으려는 마음을 지녀서다. 레네와 보토, 특히 보토는 크나큰 실수를 하였던 것이다. 회한 섞인 탄식을 들어보자.

 

그래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만두게. 그렇지 않으면 자네의 삶에는 구름이 끼어 평생 빛과 밝음을 얻지 못하게 돼. 많은 것을 해도 되지만, 영혼을 흔드는 일, 마음에 사무치는 일은 하면 안 되네. 자신의 마음이라 할지라도 말이야.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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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자누스 2020-06-03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문을 읽어보고 싶네요 https://www.projekt-gutenberg.org/autoren/namen/fontane.html
 
그라이펜제의 태수 부클래식 Boo Classics 57
고트프리트 켈러 지음, 오청자 옮김 / 부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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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프리트 켈러가 1877년에 발간한 <취리히 단편집>에 수록된 5편의 노벨레 중 한 편으로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었다. 수 년 전 그의 <초록의 하인리히>와 몇 편의 <젤트빌라 사람들>을 읽은 후 일종의 이삭줍기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인 살로몬 란돌트는 실제 그라이펜제의 태수를 지낸 실존인물이다. 즉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대적 배경과 주인공 외 세부사항까지 사실에 기반을 두었는지 아니면 순전한 창작인지는 알 수 없다.

 

내용은 좀 당황스러운데, 주인공이 자신이 한때 결혼하고자 하였던 여성 다섯 명을 모두 한 자리에 초대하여 그들과 함께 유쾌한 시간을 보낸다는 설정이다. 목차를 보면 각 장의 이름이 주로 새의 이름인데, 이는 란돌트가 사랑했던 여성들의 별칭이다. 살로메는 오색방울새, 피구라는 어릿광대, 벤델가르트는 함장, 바바라는 종달새, 아글라야는 지빠귀.

 

예나 지금이나 사랑이 바로 결혼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결혼의 현실성은 무시할 수 없다. 예술에서 순수한 사랑과 결혼을 그토록 찬미하는 것을 보면 역설적으로 현실에서는 무척이나 드문 경우임을 추론할 수 있다. 우선 상대방의 집안과 경제적 조건이 눈에 띈다. 건강 상태도 신경 써야 하고 취미랄까 취향이 맞는지도 고려 요소다. 무엇보다 변치 않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더 조건이 좋거나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곤란할 테니.

 

사랑하는 짝을 얻고자 할 때의 양태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별 차이가 없다. 동물 프로그램을 보면 자신의 힘과 건강을 과시하거나 멋지게 치장한 모습으로 보무당당하게 주위를 배회한다. 불확실은 확실로, 애매함은 긍정적으로 포장하는 과장됨의 미학도 용인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을 결코 시험해서는 안 된다. 그 실수를 란돌트는 살로메에게 했다.

 

자기의 출신과 미래의 전망을 불가사의할 정도로 미심쩍게 묘사함으로써 그녀의 애정이 확고한가를 시험해 보려는 호기심이 그를 자극했다. (P.29~30)

 

다섯 명의 여성 중 란돌트와 가장 잘 어울렸을 걸로 추정되는 인물은 피구라다. 그녀의 밝은 성격과 지적, 정신적 면모 등은 란돌트의 단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을 테니. 피구라와 란돌트는 결단성이 부족했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확실치 않은 가족병력을 우려해서 결혼을 포기하지는 않아야하지 않겠는가.

 

그가 피구라와 더 나아가지 못한 점이 아쉽다면, 함장과의 관계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주변인물 중에는 당사자를 도우려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두 사람의 관계에 개입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완벽하지는 못하다. 도저히 고칠 수 없는 결함이 아니라면 시간과 노력은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사람들은 순간의 인상과 판단에만 의존하여 미래에 눈감는다. 피구라와 그의 오빠처럼. 그들은 오직 란돌트를 위하는 마음에서 함장과 그를 떼어놓았다. 그것이 잘한 행위였는지는 훗날이 알려준다.

 

그는 예술애호가로서 자주성에서나, 근원적으로 풍부한 사고에서, 그리고 자연에 대한 직접적이며 독창적 이해에서 현저하게 높은 수준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방법과 방식으로 과감하고도 신선한 창작활동이 이루어졌는데, 이 창작활동은 가장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원한 사랑의 열기로 충만해 있었다. (P.104)

 

란돌트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의 예술적 취향과 삶의 지향을 공감하지 못한 여성과 결혼한다면 그의 삶은 얼마나 불행해질 것인가. 예술을 포기한다면 종달새와 결혼을 얻을 수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임시방편이며 본성을 속이는 선택임을 란돌트는 너무나 잘 깨달았다.

 

아글라야와의 만남은 차라리 이해될 수 있다. 그녀가 란돌트를 속인 짓도 너그러이 용서된다. 그녀야말로 자신의 사랑을 위해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며, 란돌트의 도움을 간구했던 것이었다.

 

주인공은 매우 마음이 너그럽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떠나간 여성들이 괘씸하고 미울 텐데 한결같이 친절과 호의를 베푼다. 물론 그녀들을 골탕 먹이기 위한 깜짝쇼를 벌이지만 악의를 품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가 다섯 여인을 한자리에 모은다는 발상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은 란돌트가 결혼에 대한 일말의 상념도 품지 않고 있어서 가능하였으리라. 그는 이제 과거의 미래가 불분명한 처지가 아니라 성공한 고위 관리로서 존경받는 지위에 있다. 란돌트의 가슴 속에 과거의 아릿한 사랑은 이제 흐뭇한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부담 없는 상황일 때 마음 편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조성되기 마련이다.

 

나는 어떤 거친 현실의 입김에 의해서도 흐려지지 않은 추억을 다섯 번 들여다보는 거울을 소유하는 행운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오. 나는 지금 사랑의 신들이 다섯 개의 돌들을 포개어 놓은 우정의 탑에 살고 있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것이오! 그것은 진정 시간이 체념의 대가로 내게 가져다준 장미들이오. 하지만 그 장미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영원한가요! (P.146)

 

켈러가 그라이펜제의 독특한 태수를 주인공으로 노벨레를 쓴 연유는 무엇일까. 작품집의 표제처럼 고국의 역사와 인물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도 분명 가졌을 것이다. 사실과 허구를 정교하게 교차시키면서 인물의 행동과 삶을 통해 인간사의 복잡다기함을 보여주고 싶은 의도도 부분적으로 지녔으리라. 무엇보다도 그것이 선과 악의 대립, 탐욕과 증오 같은 격렬한 감정과 행위의 분출이 아닌 자연스러움과 관용의 느긋한 미학과 결부되어 독자에게 흥미와 기쁨을 주고 있는 점이 특필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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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펭귄클래식 123
프로스페르 메리메 지음, 송진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작품해설에서 옮긴이는 이 두 작품을 유혹과 열정의 주제’(P.265)로 파악한다. <카르멘>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콜롱바>가 여기에 해당될지는 조심스럽다. 나로서는 차라리 문명과 야성 또는 이성과 비이성의 주제로 이해하고 싶다.

 

그것은 기이하고도 야만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처음 보고는 놀라지만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특히 눈은 사나우면서도 관능적인 표현을 갖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 나는 그 어떤 인간의 시선에서도 그런 표현을 본 적이 없다. (P.28)

 

<카르멘>에서 초반부의 돈 호세는 이성과 합법의 옹호자다. 카르멘의 유혹에 끌리면서 그는 점차로 비이성과 불법의 영역으로 빠져든다. 이성보다 감성, 합리보다 열정이 주류가 되면서 그는 파괴적 사랑에 함몰된다. 사랑이 상호에게 이익과 발전이 되지 못하고 서로를 파멸로 이끌고 가는 불행한 사랑. 통상 만나서는 안 될 관계라고 치부되는. 사랑과 소유를 위해 법의 울타리를 안중에도 없으며, 밀수, 강도와 살인마저 낯설지 않다.

 

당신은 악마를 만났어. 그래, 악마. 악마가 언제나 검은색인 건 아니야. 당신 목을 비틀지도 않았어. 나는 양모로 된 옷을 입었어. 하지만 내가 양인 건 아니잖아. (P.49)

 

여기서 돈 호세를 비이성의 세계로 유혹한 것은 카르멘의 치명적 매력이다. 팜므 파탈의 하나의 전형으로서 그녀는 세속의 잣대와 이해를 초월한다. 그녀에게는 법률과 도덕은 남의 세상일이다. 순수한 야성. 오직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기에 그녀는 더욱 매혹적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를 가까이 하는 남성은 모두 파멸의 길로 접어든다.

 

우리 사이는 이제 끝났어. 당신은 남편으로서 나를 죽일 권리가 있어. 하지만 카르멘은 언제나 자유로울 거야. 보헤미안으로 태어나서 보헤미안으로 죽을 거야. (P.77)

 

중편인 <카르멘>에 비해 <콜롱바>는 분량 상 장편에 가깝다. 따라서 작품 속 인물의 다중성, 대립과 갈등의 폭과 범위가 한층 심화된다. 작가는 오빠 오르소가 아닌 여동생 콜롱바를 타이틀 롤로 내세웠다. 오르소는 프랑스 문화를, 콜롱바는 코르시카 문화를 대표한다. 근대와 봉건, 이성과 관습을 각각 상징한다. 오르소는 어릴 적부터 육지에서 교육받았기에 이성과 도덕의 가치를 존중하고 준수하려고 노력한다. 콜롱바는 순진한 시골처녀인 동시에 코르시카 전통을 뼛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발라타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무녀적 속성마저 두드러진다.

 

콜롱바의 눈이 지금까지 그녀가 보지 못했던 영악한 기쁨으로 빛났다. 야만적 명예의 관념을 광적으로 신봉하는 이 키 크고 강인한 여인은 이마에 가득한 오만, 그리고 입술을 구부린 냉소적 미소와 함께 무장한 청년을 마치 불길한 원정에라도 데려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리디아 양에게 오르소의 두려움을 떠올리게 했다. 그녀는 악령이 그를 파멸로 이끌고 가는 것을 보는 것만 같았다. (P.147)

 

여기서 독자는 코르시카의 독특한 관습인 방데타가 갖는 깊은 문화적 함의에 놀랄 수밖에 없다. 친족의 살해에 대한 복수는 어느 문화권에서도 불가피성을 인정받는다. 다만 방식에 있어 코르시카는 정면 대결이 아닌 암살과 기습을 허용한다는 데서 제한적 정당성을 지닐 뿐이다. 여기서 법적 판단은 개입하지 않는다. 생각하고 믿는 바대로 행하면 그뿐이다. 공식 사회에서는 매장되지만 산적이 되어 암암리의 영웅이자 권력자로 자리 잡는 모순적 지위를 누린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 상황. 오르소의 바램과는 달리 사태는 일로 악화되며, 복수의 대결은 불가피하게 된다. 그리고 독자는 알게 된다. 사태 전개의 배후에서 모든 것을 주도하며 심지어 조작마저 서슴지 않는 냉혹한 인물로서의 어린 아가씨 콜롱바. 그에 비하면 오르소는 덩치 큰 애기에 불과하다. 콜롱바가 짜놓은 각본에 따라 무대 위에서 쫓기듯이 어설프게 연기하는 풋내기 배우.

 

카르멘은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인 반면 콜롱바는 차가운 열정의 체현자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결코 따뜻할 수 없다. 카르멘은 돈 호세에게 죽임을 당한다. 콜롱바는 복수를 성공리에 마치고 흐뭇해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작가와 세인들의 눈초리는 차갑기 그지없다.

 

저기 저 예쁜 아가씨 보이지.” 그녀가 자기 딸에게 말했다. “흉안(凶眼)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해.” (P.263)

 

<카르멘><콜롱바> 모두 지식을만드는지식 판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다. 다만 <콜롱바>는 첫 번째가 축약본이어서 아쉬웠는데 펭귄클래식 판은 완역본임을 알게 되어 수년 만에 다시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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