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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걸들에게 주눅 든 내 아들을 지켜라 - 자신감 없고 의욕도 없는 우리 아들 '기 살리기' 프로젝트
레너드 삭스 지음, 김보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남자아이 여자아이>의 후속편이다. 전작을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은 나로서는 기대가 크다. 그런데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겉표지가 영 마뜩찮다. 원제가 <Boys Adrift>다. ‘표류하는 소년들’ 또는 ‘방황하는 소년들’이 직역이지만, 조금 양보해서 <내 아들을 지켜라>도 아주 틀리지는 않다고 본다. 문제는 쓸데없이 앞에 붙은 ‘알파걸들에게 주눅 든’이라는 수식구다. 출판사가 이 책을 어떤 관점에서 보는지 이 한 줄로 확연히 드러난다. 소위 알파걸과 대립각을 세워서 아들 양육에 고민하는 부모들을 낚아보자는 상술.
레너드 삭스의 문제의식은 남녀 아이의 성별을 가리지 않음은 전작에서 알 수 있다. 남녀의 생물학적 성 차이를 외면한 현대 교육제도가 남녀 아이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알파걸에 관심 없다. 관심의 초점을 남자아이에게 두고 있다. 현대 교육제도 하에서 입는 피해는 남자아이가 상대적으로 크다고 그는 보고 있기에 먼저 남자아이에 관한 책을 쓴 것이다. 그의 이후 저작이 <Girls on the Edge>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따라서 출판사의 상술은 일단 무시하자.
아들 키우기는 힘든 과제다. 저자가 주장하는 생물학적 특성상 여자아이는 학교생활에 적응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주의가 산만하다고 지적받는 일도 덜 하며 말썽도 덜 부린다. 초등학교 교사의 대다수는 여자이므로 남자아이의 특성에 대한 이해도도 덜하다. 가정에서는 양육에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는 엄마 또한 아들에 대해서는 이해의 한계가 있다. 게다가 가정이나 학교에서 듣는 말은 대부분 “~ 하지 말라”는 금지 명령어의 연속일 뿐이다.
저자는 남자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다. 지나친 조기교육, 경험적 지식에서 배움의 지식으로 전환된 교육 그리고 남자 아이의 특성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는 교육 방식이 특히 남자아이들의 학습의욕을 저하시킨다. 단순화시킨다면 현재의 학교교육은 남자아이들에게 해롭다는 것이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에 비해서 학습능력과 신체적 발달이 다소 늦기에 경쟁적인 조기교육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책상에 얌전히 앉아서 하는 수업은 남자아이들에게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이라는 등.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은 전화기가 아니라 게임기에 불과하다.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조르는 것은 게임에 빠지고 싶다는 비유적 표현이다. 예전에는 오락실 게임, 컴퓨터 게임이나 비디오 게임이 주류였다면 확실히 지금은 모바일 게임이 대세다. 현실보다 화려하고 맘먹은 대로 행동할 수 있으며 쉽사리 획득할 수 있는 게임 속 세상이 현실 세상보다 구미에 당기는 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아이들에게는 지나친 몰입이 장기적으로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라는 진단을 내 아이가 받는다면 무척이나 낙담과 상심이 클 것이다. 책에서 제시한 ADHD의 공식 기준을 보면 큰아이는 틀림없이 여기에 해당한다. 아니 내가 어릴 때라면 상당수의 남자아이들이 여기에 저촉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들 모두가 아이 때 정신적 장애를 지녔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 역시 여기에 동의한다. 그에 따르면 <톰 소여의 모험>의 주인공도 요즘 기준으로는 신경자극제를 장기적으로 처방받아야 할 형편이다. 문제는 신경자극제가 아이의 뇌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저자의 견해다.
아무리 단기간 소량을 투약해도 그것(신경자극제)이 측위 신경핵에 영구적인 손상을 주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측위 신경핵은 동기를 행동으로 전환해주는 역할을 하는 영역이다. 남자 아이의 측위 신경핵이 손상을 입는다 해도, 아이는 여전히 허기나 성적인 흥분은 느낄 수 있다. 그저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뭔가를 하고 싶은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P.133)
이것이 미국에서만 만연하는 현실인지 아니면 우리네 초등학교에서도 ADHD 처방이 광범위한지 알 수 없으나 남자아이가 받는 피해가 여자아이보다 심각하다고 한다.
게다가 환경호르몬은 남자아이들에게 더 치명적이라고 하니 설상가상이다. 환경 호르몬이 남자 아이들의 성 발달을 지연 혹은 교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성 발달의 지연, 과체중, ADHD의 세 가지 현상이 남자 아이의 경우에 훨씬 더 자주 동시에 발생한다고 보고한다. (P.163)
이상의 문제점들이 교육제도, 환경적 요소에 기인한다면, 문화적 변화에 따른 요인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소위 남자아이들의 롤모델이 부재한다는 참담한 현실이다.
모범이 되는 남성상을 만들어줘라 (P.178)
핵가족 제도 하에서 세대 간의 단절은 이미 오래되었지만 궁핍한 현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생존하기 위해 가정 내의 남성 어른은 불철주야 돈벌이에 급급하며 이제는 여성 어른도 사회생활에 동참하며 가족 간의 유대는 나날이 옅어져만 간다. 더욱이 남성 어른조차도 이미 부재와 단절을 겪은 세대이므로 스스로가 후대를 위한 모범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자질조차도 부족하다. 소파에서 빈둥거리며 TV 채널이나 돌리고 아니면 비디오와 게임에 빠져있는 아빠에게서 아들들은 무엇을 보고 배울 수 있겠는가?
우리는 진정한 남자가 되고 싶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 어른들의 가르침을 받지 못해 집단 폭력이나 거리 폭주, 약물 남용 등을 선택하는 무서운 젊은이들을 많이 보아왔다. 진정한 남성다움의 역할 모델과 본보기를 무시한 것, 그것이 바로 아들의 위기라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 다섯 번째 요인이다. (P.192)
상기와 같은 혼란을 겪고 자란 아들들이 성인이 된 후에 진정한 남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저자는 7장에서 독자들의 다양한 이메일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일자리도 귀찮고, 여자와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싫어하고 부모에게 생계를 의존하는 퇴행적 젊은이들의 모습을 마주치게 된다.
문득 며칠 전에 읽은 기사가 생각난다. 일본에서는 남녀의 데이트 경험비율이 계속 감소함에 따라 이것이 결혼율과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되어 소위 데이트기술을 가르치는 학원이 성행중이라는 뭐 그런 내용이다. 이것이 단지 이웃나라만의 희귀한 현상에 그친다면 바랄뿐이다.
여기서 제시된 각종 문제점들에 대한 해법은 이렇다. 조기교육을 지양하고 남자아이의 특성을 고려한 교육을 시행하며, 게임을 조절하고 ADHD 진단을 남용하지 말며 환경호르몬 감소를 위해 노력하고 무엇보다 가정과 사회에서 바람직한 남성상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매우 간단하지 않은가?
저자는 여의치 않으면 남녀공학이 아닌 단성으로 구성된 학교, 즉 남학교와 여학교로 구분하여 교육시키라고 한다. 그것이 성별의 차이를 반영한 교육을 가능케 하고 상대방 성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자유로운 학습과 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오히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가르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네 현실과는 완전한 상반을 이룬다. 단순 유치원에 만족 못하며, 비싼 돈을 들여서 영어유치원에 보내지 못해 안절부절못한다. 학교수업으로도 성에 차지 못하며, 보습학원과 예체능학원, 그리고 학습지에 올인 한다. 영재로 뽑히기 위해 영재프로그램에도 기웃거려 본다. 열에 아홉이 넘는 여교사 비중을 차지하는 초등학교에서는 남자아이들의 튀는 행동과 장난은 눈에 거슬릴 뿐이다. 단성학교는 점점 과거화 된 유물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네는 대안학교가 그나마 조금씩 득세하고 있다.
이 책은 미국 교육현실에 기반을 두었지만 우리네와도 상통한다. 우리의 교육방식은 미국 제도를 상당히 준거하고 일상의 문화 역시 베끼다시피 하는 형편이다. 저자의 주장이 현시점에서는 과하지 않나 생각하다가도 10년 후의 시점을 감안하며 그렇지도 않다. 바위에 계란치기며 바다에 모래알 던지기에 불과할 수 있다. 그만큼 저자의 주장이 실현될 가능성은 국내에서는 희박하다. 다만 적도 남자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교육관과 아이를 양육하는 방식을 한번쯤 되돌아보고 응용해 볼 수 있는 계기는 될 것이라고 본다.
당장 나부터도 아이들의 게임 시간을 조절하여 과도하게 몰입되는 것을 어찌하면 방지할까 적용 중이며, 경험적 지식과 롤모델을 강화하기 위하여 아이들과 같이 운동을 해볼까 아니면 아이들을 어디 캠프 또는 체험교실에 보낼까 목하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