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이지 않는 국가들 - 누가 세계의 지도와 국경을 결정하는가
조슈아 키팅 지음, 오수원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이스라엘과 이란이 미사일 공격을 주고받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수년째 전쟁 중이다. 21세기를 전후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유혈 분쟁의 사유로 종교, 이념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핵심은 국경, 즉 영토이다. 시대가 어느 땐데 영토로 전쟁을 벌이는가 의아해하기 마련이지만, 사실이다.
세계지도는 단순한 그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실선 한 줄, 아니 점선 한 줄이라도 얻어내기 위한 대가는 녹록치 않다. 특히 저자가 언급하였듯이 미국과 EU, UN은 현 국가 체제 유지를 선호한다. 어지간한 분쟁은 국가 체제 내에서 수용하여 정리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지도 변경을 요구하는 집단의 본뜻에 맞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분리와 인정은 나라를 나라로 정의해주는 두 가지 요소다. 요컨대 국가를 국가로 만들어주는 것은 상호 합의 아래 규정된 세계지도상의 장소성인 셈이다. (P.24)
구소련에서 독립한 조지아, 과거에는 그루지야라고 불렸는데, 지도를 자세히 보면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가 국경 내에 점선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들은 국제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조지아 영토이지만, 실질적으로 별도의 독자적 국가로 운영되는 이른바 미승인국이다. 소말릴란드, 언뜻 들으면 소말리아와 동일시되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무정부체제인 소말리아와 구별되는 과거 영국령에 기반한 비교적 안정된 미승인국이다. 압하지야와 소말릴란드는 국제 사회에서 공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데, 그곳 주민 처지에서는 이런 상황이 굉장히 불만스럽기 마련이다. 쿠르디스탄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제국주의 국가가 무분별한 영토 확장을 도모하여 세계를 혼란스럽게 하였다면, 요즘은 다르다. 이미 비할 수 없이 많이 생겨난 국가들로도 모자라 독립 국가 건설을 모토로 하는 갈등이 여전하다. 민족자결주의에 바탕을 둔 민족국가들은 국경 유지와 영토 보존을 신성시한다. 문제는 단일 민족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 국가든지 자국 영토 내에 소수의 타 민족, 문화, 종교 집단이 있기 마련이며, 민족국가의 정체성이 강조되면 이들은 상대적으로 소외감과 불안감, 피해의식이 증폭되기 마련이다. 결국 양파 껍질 벗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최후의 일인이 남을 때까지 계속 쪼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과연 해법인가?
미국과 캐나다 사이, 아크웨사스네는 독특한 성격의 지역이다. 이로쿼이 인디언의 자치권이 어느 정도 인정되는 곳인 동시에 엄연히 국경선에 따른 관할권의 차이가 중첩된다. 이는 법과 행정 측면에서 바람직한 건 아니다. 관할권의 충돌과 모호함은 자칫 부재 상태를 낳고 이는 악의적 목적에 활용될 수 있다.
지정학적 블랙홀은 세계 정치와 국제관계에 대한 종래의 사고방식이 통용되지 않는 장소다. 이런 지역의 법적 관할 여부는 논쟁거리거나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들 지역에서는 밀거래망이 번성한다. (P.116-117)
몰타기사단, 에스토니아의 전자 시민권은 실체 없는 국가 정체성의 한 사례라고 하겠다. 이들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특히 후자의 실효성을 단기간 내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이 책에서 소개된 키리바시는 물론 몰디브, 투발루 같은 여러 섬나라는 실제로 국가 소멸의 위협에 처해 있으므로 전자와는 다른 의미에서 국가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다. 국토가 없는 국가는 존재하는가? 비록 다른 나라에서 땅을 내주어서 이전하더라도 그것을 별개의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게 올바른가.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지칭해야 하겠는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온 상승으로 해안 저지대의 침수 우려도 높아만 간다. 당장은 일부 섬나라 국가의 사안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조만간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현안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키리바시는 세계지도를 재편하는 다음번 주요 물결의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정치적 경계뿐 아니라 물리적 경계라는 문제에 의문을 제기할뿐더러 국가의 탄생이 아닌 소멸 문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P.258)
오늘날 민족국가 체제는 민족과 국경이 불일치하는 많은 사례와 충돌한다. 민족자결이 존중되어야 할 가치라면, 여러 집단으로 구성된 민족국가는 산산이 쪼개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갈등을 야기하는 소수 집단을 청소하는 방안도 있다. 신성한 우리 국토 내에서 이질적인 집단을 제거하는 방안, 그것이 곧 인종청소이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지도 변경을 수반하는 정치적 변동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고착화된 국경선과 변함없는 세계지도는 만족과 불만의 양가성을 지닌다. 압하지야, 소말릴란드, 쿠르디스탄은 불만일 테고, 미국을 위시한 체제 안정을 희망하는 나라들과 해당 국가는 비교적 만족스러울 것이다. 민족국가 체제의 강화가 반드시 평화와 번영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보아왔다.
다만 국가 수립과 지도 변경은 절대불변의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구소련과 유고슬라비아는 차치하더라도 남수단, 동티모르는 독립이 허용되고 이 책에 언급되는 지역은 인정 안 되는 기준은 불분명하다. 어쩌면 일종의 운이 작용하는 것도 있다. 국가의 가장 큰 책무는 자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하는 것이다. 현재의 국경을 유지하는 것과 변경하는 것, 아니면 저자의 제언처럼 현재의 엄격한 국가 주권을 유연화는 방안 등 어느 것이 해법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까닭은 바로 아래에 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효한 세계지도를 만들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악의적인 동기를 가진 주체들이 우리가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현재의 지도를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P.316)
※ 지리와 지도를 핵심적 내용으로 다루는 책에서 의외로 방위, 통계, 지명의 오류가 많다. 귀책이 원서이든, 편집이든 사소한 오류가 신뢰성을 떨어뜨려 양서의 가치가 평가절하되면 안타깝게 마련이다.
· 트빌리시는 주그디디라는 음침한 국경 소도시에서 322킬로미터 서쪽에 위치한 도시다. (P.35)
· 1900년 무렵 경함을 벌이던 5개국 그리고 야심만만한 개인이던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아프리카 대륙의 90퍼센트를 식민지화했고, 1억 1,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고향인 1만 6,100제곱킬로미터의 영토를 자기들끼리 분할해 가졌다. (P.61)
· 2015년 3월 16일, 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도 지도에서 거의 사라질 뻔했다. 대서양에서 기록된 태풍 가운데 가장 강력했던 사이클론 팸(Pam)이 코네티컷 규모의 면적을 가진 이 작은 군도를 덮친 것이다. (P.270-271)
· 물론 이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무장 분리론자들이 러시아 동부 지역을 쪼개기 전의 일이다. (P.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