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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4 - 조선의 칼, 조선의 방패
김탁환 지음 / 황금가지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제4권에 이르러서 드디어 우리가 알고 있는 영웅 이순신의 위업이 시작된다. 옥포해전에서 한산도대첩 직전까지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왜냐하면 작가의 목적은 해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벌이고 이순신의 뛰어난 업적을 화려하게 드러내는데 있지 않다.
작가가 누누이 드러내고 싶어하는 이순신의 강점이 바로 '패배의 가능성을 말끔히 제하는 일'이다. 이순신은 섯불리 왜적에게 덤벼들다가는 몰살당하고 말며, 그러면 조선은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따라서 같은 편이 보기에도 때로는 비겁해 보일 정도로 안전하고 조심스럽게 모험을 회피한다.
얼마전에 며칠동안 남도를 돌아다니며 문득 느낀 바가 있다. 말로만 듣고 화면으로만 보던 조수간만의 차가 빚어내는 엄청난 넓이의 갯벌. 그것은 단지 물이 빠진 공간이 아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막막한 그 곳. 경운기로 오가야 할 정도의 광막한 공간이 바로 갯벌이었다. 자칫 해전을 벌이다가 까딱 시간을 놓치면 그대로 함선은 갯벌에 주저앉고 만다. 이순신은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시각까지도 절묘하게 계산하여 나아감과 물러남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다.
시야를 가릴 것 하나 없는 망망대해에서의 해전과 남도처럼 해안선이 들쭉날쭉하고 크고 작은 섬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는 곳에서의 해전은 방법론이 동일할 수 없다. 전자에서라면 오로지 힘과 힘의 대결이 가능할 것이다. 군사들의 사기를 추스리고 용맹을 발휘하여 적선을 깨뜨릴 수 있는 측이 승리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후자라면 사정이 다르다. 대책없이 돌진하다가는 순식간에 후면과 측면에서 복병을 맞이하고 포위당하기 십상이다. 더우기 섬을 끼고 빙 돌아서 후방이 공격당할 위험도 있다. 그래서 이순신은 꼼꼼하게 적이 있을 만한 곳을 하나하나 살펴가며 부수고 전진한다.
며칠전 서점에서 신간들을 들치다가 「이순신은 전사하지 않았다」(남천우, 미다스북스)를 약간 훑어볼 기회가 있었다. 과학자인 저자답게 논리적 근거로 이순신과 거북선에 관한 통념을 비판하고 있어 참신했다. 그중에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조선군의 판옥선과 왜선의 크기 비교에 관한 것이다. 흔히 판옥선이 크고 단단하여 상대적으로 작은 왜선을 돌진하여 깨는데 유리하였다고 사서나 소설에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왜선의 크기가 더 크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왜선은 대양항해를 견딜 만큼 크고 강하다는 것이다. 확실히 난중일기 등을 보면 왜선의 대선에는 삼층 누각이 놓여진 경우도 있다고 하니 단순히 무시할 만한 것은 아니다. 왜선 한 척에 수백명에서 천명 가까이 탑승했다고 하며, 따라서 이순신이 해전을 통해 몰살시킨 왜군의 숫자는 이십만에 가까우리라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확실히 이 정도의 전사자가 발생했다면 왜군에게는 치명타일 것이며, 부산포에만 웅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순신이 왜군이 서해로 돌아서 직접 의주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고 전라도를 지킨 공적외에 왜군 전력의 절반 가까이를 궤멸시켜 전투력을 급격하게 줄인 공로도 엄청나다는 것이다.
우리는 구국영웅의 이순신이라는 고정관념에 익숙해 있다. 나또한 어릴적부터 '성웅' 이순신을 존경해 왔다. 그것은 목숨을 희생하며 나라를 구한 위인에 대한 상투적 존경심이었다. 이순신의 무엇이 위대하며 전쟁에 임하는 이순신의 심정이 어떠했으며 쫓겨났을때 그 슬픔과 괴로움과 분노가 어떠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김탁환의 이 작품은 사실과 가능성 여부를 떠나 새삼 역사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