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 김영사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송시열이 어떤 인물인가는 다음과 같은 소개로 족하다.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 이상 언급된 조선최대의 당쟁가, 송시열. 그는 83세의 나이에 '죄인들의 수괴'라는 죄목으로 사약을 마시고 사사당했으나, 죽고 난 후 성균관 문묘에 공자와 함께 배향되고, 공자 맹자 주자처럼 송자로 불리는 영광을 누리고 있는 인물이다."
즉, 그에 관하여는 '극단적 찬사와 극단적 저주'가 병존하였던 매우 흥미로운 존재인데, 저자가 이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첫 저작이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이다. 또한 <사도세자의 고백>은 노론과 소론간 당쟁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조선시대 당쟁이 본격화된 시기를 선조때 동인과 서인의 분기로 산정하면, 노론과 소론 이전의 동서남북의 사색당파를 거슬러 고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율곡 문하의 서인과 이퇴계 문하의 동인이 처음 학문적 이념 차이에서 구분되기 시작한 후 동인은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져서 광해군때 북인이 정권을 쥐었다가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집권하게 되었음은 조금이라도 역사에 관심있는 이라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후 서인은 노소로 나뉘어졌지만 조선 멸망때까지 부분적인 흔들림이 있을지언정 굳게 정권을 유지하였다. 동인의 분파 중 북인은 완전히 몰락하였고 남인은 숙종시절 잠시 도전을 하였지만 곧 재야에 묻혔다.
송시열의 시대는 바로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는 시점이었고 또 남인의 강력한 도전이 있었던 때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항상 당쟁의 중심에 있었다. 비록 관직에는 불과 수년밖에 머물지는 않았지만. 이런 배경에서 '송자'와 '죄인들의 수괴'라는 상반된 인식이 자리잡는다.
이전까지 나의 송시열에 대한 인식은 지극히 피상적이었다. 당쟁가였지만 효종과 같이 북벌을 추진하였던 나름대로 굳은 신념의 소유자.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송시열이 단 한차례도 효종의 북벌에 찬동한 적이 없음을 지적한다. 그가 정말 대의에 찬동하였다면 권력을 잡은 그때 그는 무엇을 하였던가?
그의 예학에 대한 학문의 깊이가 뛰어났을지언정 주자 외에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편협하고 독단적인 사고는 조선 패망의 뿌리가 되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평가일까. 현상세계는 쉼없이 변해 가는데 고집스레 주자에만 매달린 답답한 모습. 그런 그를 '송자'로 추증하고 문묘에 모실 정도의 고루하고 수구적인 지식층. 이것은 학문이 창의성과 순수성을 상실하고 권력과 결탁하여 사회를 응고시키려는 반동으로 타락한 결과이리라. 애초에 퇴계와 율곡은 그러하지 않았을텐데. 그들이 조선 후기의 사대부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품을지..
이덕일은 참으로 글을 잘 쓴다. 어렵지않게 소설보다도 더 흥미진진하고 잠시라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그러면서도 객관성의 칼날을 놓치지 않으려 무척이나 고심하고 있음을 곳곳에서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도 송시열에 대한 저자의 차가운 시선 또한 의식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조선 후기는 정치적으로 반동의 시기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이미 조선이라는 정치적 실체는 해체되었어야 옳았다. 이러한 흐름을 억압한 것이 바로 주자의 예학이었고 송시열은 예학의 대가였다. 禮라는 것은 사람간의 질서를 의미한다. 부모와 자식, 군주와 신하, 양반과 상민처럼 이미 사전에 고정된 관계를 어떻게 변하지 않고 유지할 것인가가 관심사이다. 禮의 관점에서 변화는 참된 근본 질서를 무너뜨리는 그릇된 흐름이다.
서인은 그들의 나라를 유지하기 위하여 세자를 독살하고 임금을 죽였다. 송시열, 그는 이런 서인의 중심이었으며 노론의 수괴였던 것이다.
혹자는 '당쟁'이란 용어를 식민지사관의 영향이라고 하며, 다른 용어인 '붕당'으로 대체하자고 주장한다. 정권이 뒤바뀌면 숱한 칼바람이 부는데 어찌 '벗(朋)'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 어두운 역사는 아프더라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저자의 강한 호흡을 느끼며 읽다보면 자칫 그대로 저자의 의견에 함몰되기 쉽다. 그래서 난 가끔 이건 혹시 저자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지 않을까 자문하곤 하였다. 그래도 저자가 내놓는 타당한 근거를 살피다보면 역시나 수긍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책장을 덮은 뒷맛이 왜 이리 씁쓸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