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열국사연구
윤내현 / 지식산업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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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내현 교수의 저작을 한두권 접하다보니 이 책에 오게끔 되었다. 700여면에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완독에 시일이 소요되었지만 그래도 꽤나 흥미롭게 대할 수 있었고 매우 유익하였다. 결론적으로 기존 우리 고대사에 대한 새로운 지평과 사각을 갖게 되었다고 평하고 싶다.

우선 우리역사에서 열국시대란 용어자체가 낯설다. 흔히 열국시대는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일컫는 용어로 알고 있다. 그래서 '열국지'라는 소설도 있지 아니한가. 여기서 저자는 고조선 말기부터 사국시대 내지 삼국시대가 정립되기전까지를 열국시대로 정의내린다. 교과서에서는 고대국가의 성립은 삼국시대로 그것도 각각 율령이 반포된 이후로 한정하고 있다. 가야는 고대국가 진입직전에 좌절하였고, 부여 옥저 동예 삼한 등은 부족국가로 진정한 국가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고조선이 완전한 국가형태를 갖춘 마당에 그 뒤를 이은 열국이 역사적 퇴보를 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저자의 관심영역은 무척 광대하고 그 깊이는 한없이 깊다. 이 책을 통하여 나는 기존 통설과 배치되는 낯선 역사적 주장을 심심찮게 접하였다. 그것이 역사적 진실일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러한 가설을 도출한 논리와 근거를 살펴보는 것 자체로도 타성적인 역사관에 자극제가 된다고 본다. 출간된지 십년 가까이 경과하였지만 여전히 내용이 참신하다. 이 분야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부족한 연유이리라.

전 세편으로 구성되어 열국의 건국과 주체세력, 열국의 발전과 내외활동 그리고 열국시대에 관한 종합 검토를 담고 있다. 각 편의 여러편의(주로 국가별) 자으로 이루어졌는데 각 장이 자체로 논문상 완결성을 지니고 있어 따로 보아도 크게 지장은 없다. 이것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으로도 작용하여 동일 인용과 표현의 반복이 잦다는 인상을 준다.

전체 내용을 아우를 역량이 부족하므로 내게 새롭게 다가온 가설을 몇가지 언급하고 싶다.

삼한을 제외한 열국은 출발은 오늘날 중국 난하일대라고 가리킨다. 이 지역은 고조선의 거수국이 위만조선이 세력을 확장하다가 한무제에게 멸망당한 곳이다. 이때는 고조선의 말기로 통치력의 약화로 인하여 이 일대의 많은 부족들이 화를 피하여 동부와 남부로 이주하여 새롭게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동부여, 동예, 동옥저 등의 국가명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이주전 국가명과 구별하기 위함이다. 한편 고구려, 낙랑국, 대방국 등과 같이 이주전 명칭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고구려, 사서에서는 그들의 연한이 700년 전도라고 하지만 스스로는 900년이라고 주장한 차이의 비밀이 여기에 있는 듯하다.

중국의 주나라는 봉건제를 실시하여는데 후에 제후국들이 각기 독립하여 춘추전국시대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고조선도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거수제를 실시하였는데 열국들은 모두 고조선의 거수국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체제는 열국들 중 한(마한/진한/변한)과 가야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요즘 드라마 '주몽'이 대단한 인기다. 나도 열렬한 시청자다. 온조의 부인인 소서노는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비류와 온조라는 두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주몽의 전부인 자식인 유리가 후에 나타나서 태자가 되자 남쪽으로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여기서 그 이론(異論)많은 비류국과 백제국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에 의하면 백제국의 건국자는 비류라고 한다. 그런제 비류가 후게자없이 단명하여 온조가 계승하였고 후에 온조의 자손들이 선조를 미화하기 위하여 신화를 윤색하였다는 것. 참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 또한 저자는 백제의 건국지가 하남위레성이 아니라 임진강 유역으로 추정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백제의 중국 동부지배는 교과서에서도 변형하여 언급하고 있는 사실이다. '고대상업세력'이라는 표현이 기억난다. 고대에 그 얼마나 상업과 무역이 활발했는지 의문스럽다. 저자는 백제가 위나라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공할때를 틈타 지금의 난하 서쪽인 요서지역을 공략하고 차례를 세를 확장하여 동부해안 일대 대부분과 남부지역 일부를 수백년간 지배하였다는 것이다. 백제는 한반도 서남쪽에 웅크린 쪼잔한 국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신채호선생은 삼국중 백제가 가장 호전적이라고 평한 적이 있다. 이런 시각에서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백제가 수도를 웅진으로 옮긴 것은 약자의 피난이라는 시각 외에 중국의 식민지를 기만으로 하여 국가부흥을 도모하는 원대한 대계가 아닐까한다. 이러한 백제의 꿈은 분열된 중국이 수나라에 의하여 통일되는 과정에 중국영토를 상실하면서 물거품이 되었고 백제의 급격한 몰락의 원인이 되었던게 아닐까.

일제식민사학의 폐해로 가장 크게 지목되었던 임나일본부설은 여전히 일부에서(그리고 일본에서는 지배적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관개토대왕릉비문을 둘러싼 논쟁은 아직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임나'는 가야인가하는 의문도. 여기에 저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임나는 가야를 가리키는데 한반도의 가야가 아니라 일본열도에 세워진 유민들의 국가며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고구려, 백제 들의 국가도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고구려, 난랑국, 대방국 등이 이주전 구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듯이. 재밌지 아니한가?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궁금한 로망. 강대국 고구려는 왜 중국 본토를 지배하기 위한 공격을 하지 않았을까. 중국역사는 흉노, 돌궐을 비롯한 수많은 이니족들의 침략과 한족의 수성으로 점철된 역사이다. 그렇다면 고구려도 한번쯤 시도해 볼만하지 않았느냐 말이다. 그런데 오히려 고구려는 중국이 분열된 시기에 중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통일중국세력과 치열한 격전을 벌인다. 한나라와의 지속적 공방전과 수나라, 당안라와의 국운을 일대 대전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저자는 그것은 고구려가 고조선의 영토를 회복하는 다물이념을 갖고 있었던데 연유한다고 본다. 즉 요서를 장악하고 신라, 백제를 복종시키면서 다물을 오나성한 고구려는 중국에서 현상을 깨트리지 않는한 자신들도 국경선을 유지하고 싶어하였다는 것. 자신들이 지배하는 영역이 세계의 중심이고 자실들이 천손의 자손이니 굳이 중국땅을 탐낼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이와같이 무섭도록 참신하며 생경하기조차한 주장들이 봇물터지듯 한다. 그럼에도 황당한 재야사서와는 달리 엄밀한 사료고증과 고고학 성과, 그리고 합논리적 추론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있다.

기존 우리역사의 서술에 만족못하거나 역사의 새로운 시각과 접근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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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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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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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수업>, 이 책은 다소 관심이 있었지만 구입 자체는 망설이고 있었다. 표제에서 풍기듯 이런 유형의 저작물은 대체로 소개하고 주장하는 바가 비슷하다는 경험 내지 추정때문에. 나중에 학교 도서관에서 한번 빌려보면 충분하다는 현실적 생각도 한몫한 듯. 하지만 1+1이라고 헤르만 헤세의 <정원일의 즐거움>도 같이 준다고 하여 그만 덜컥 구입하고 말았다.

사실 이 책을 읽은지는 조금 시일이 된다. 순서대로 한다면야 <한국열국사연구>에 선행해야 하나 다소간 사정으로 이제야 몇자 끄적거린다.

저자 자신이 죽음을 앞두고 쓴 책이라서 깨달음의 경지를 얻은 듯 담담한 어조로 글은 이어진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라고 하니 저자와 죽음의 관계는 오랜 동반의 공유하고 있다면 어폐일까? 처음에는 임종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최후의 순간에 깨달은 바를 독백 형태로 서술하는 형식인 줄 알았는데, 사례를 토대로 한 저자들의 서술이 잘 정리되어 개개 항목으로 나뉘어 있다.

유사한 교훈을 담은 저작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번역자 류시화 시인의 브랜드 네임이 크다고 여긴다. 그렇지 않고야 일대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는..하고 꼬리표가 달리기 십상이다.

사람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가장 솔직하고 현명해진다고 한다. 그만큼 사람의 생애는 수많은 잘못과 시행착오와 오해, 갈등이 첩첩이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삶의 종착점에 이르렀을 때라야 삶을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266면)"는 것이다. 더이상 가질 필요가 없을때 의식은 투명하게 빛나고 삶의 반추는 때늦은 후회감으로 들먹이게 된다.

한번 쯤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대단히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간이란 존재는 이무리 좋더라도 '나 아닌 남'의 것에는 별로 감흥을 못 느끼기 마련이다. 게다가 세상에는 이러저러하게 살아야 한다는 무수한 도덕적 종교적 철학적 메시지가 난무한다. 어지간한 이라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그럼에도 세상이 보다 도덕적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없으니 인간의 영원한 숙제이자 굴레이다.

얼마전 이 책의 표절이 지상에 오르내렸다. 표지와 본문에 사용된 삽화의 외국 원저자가 사용허락을 하지 않자 출판사에서 표절하여 실었다는 내용이다. 양서에 나쁜 관행이 병존하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사실 삽화가 꽤 분위기 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이 점 하나만 보더라도 책밖과 책속 세계의 괴리가 확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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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7.2.14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이레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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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헤세 자신이 꾸민 저작이 아님. 후세 편집자가 헤세의 글 중 헤세가 특히 사랑했던 정원에 관계된 글들을 모은 것이다.

오랜만에 헤세의 글을 읽는다. 집중적으로 헤세의 작품(소설)을 독파하고 나름대로 잡설을 끄적거린게 아득하다. 책장을 뒤적거리니 1993년 1월 10일자에 '헤르만 헤세의 소설에 나타난 인식 경향'이라고 적혀 있다. 요지를 대충 옮기면, 헤세는 초기의 '자연'에서 방랑, 각성, 문명비판과 동방정신 수용, 새로운 정신의 수립으로 이어지는 인식과정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그의 삶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또한 그의 인식범위는 개인 자신으로 초기에 국한되어 있었는데 각성이후 범위는 확대되고 심화되어 드디어는 온 인류로 발전하였다. 인류를 위한 새 정신의 모색과 인류에 대한 봉사, 그것은 헤세 자신의 모습으로서 유희 명인 크네히트를 통해 보여지고 있다. 뭐 대강 이렇다. 새삼 훑어보니 낯뜨거운 동시에 대견하기도 하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나은듯.

이 책에서 나는 헤세의 좀 더 내밀한 삶에 다가갈 수 있었다. 이전투구로 점철된 사회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자연과 벗삼아 삶을 영위하는 헤세, 바로 은둔자의 모습이다. 이렇게 자연에 묻힌 삶을 선호하는 것은 그의 후천적 천성이 아닐까? 하지만 그도 제1차 세계대전의 충격파를 비껴가지 못한다. 30대 후반의 헤세에게 그것은 가혹한 체험이었으리라. 여기서 새삼 초기 작풍과 명확히 구분되는 중기 작풍을 생각해 본다. 당시 <서구의 몰락> 등 서구문명의 쇠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드높아지고 있을 당시다. 야만성에 대한 대안 모색이 바로 헤세의 주테마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후기를 읽어보니 헤세에 대한 독일 내 평가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다고 한다. 독일인에게는 조국을 떠나서 스위스에서 안온한 생을 영위하는 헤세가 못마땅할 수도 있었으리라. 어찌보면 죽림칠현이 아니겠는가. 이는 표피로 현상을 섣불리 판단하는 오류에 다름아니다.

<유리알 유희>에서 헤세는 철학과 문학을 고차원적으로 승화시키는데 성공한다. 이것은 인간성 회복에 대한 웅변이며 침묵을 깨뜨리는 행동에의 의지다.

'정원에서 보낸 시간'은 역시 운문이므로 원어를 모른채 번역본으로는 제 맛을 음미하기 어렵다. 언제 독일어 공부를 하려나. '꿈의 집'과 '아이리스'가 특히 흥미롭다. 전자는 헤세 자신의 가족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후자는 헤세가 평생을 천착해 온 주제를 동화의 형식을 빌려 간결하며 깨끗하게 그린다.

'꿈의 집' 중 부자간의 대화에서 소개되는 최고의 곡인 바흐의 '악투스 트라기쿠스'(칸타타 106번)과 모차르트의 '아베 베룸 코르푸스'를 듣고 싶다. 나아가 헤세의 전작을 다시금 읽으면 어떠한 느낌으로 다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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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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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대한 전쟁 2 - 이덕일의 영웅천하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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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 고구려는 어이없이 쉽사리 무너졌다. 특히 백제의 갑작스러운 멸망은 의외였다. 동맹국 고구려에서 뭔가 방도를 강구할 시간조차도 없었다. 고구려가 수십년간 수나라와 당나라의 대공세를 격퇴한 것과는 비교된다. 그만큼 백제의 국세가 허약하지는 않았음은 그후 백제부흥군의 활동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의자왕은 왜 계백의 5천 결사대 외에 의지할 수단이 없었을까? 신라가 5만을 원정군을 보냈다면 최소한 이에 버금가는 군사력을 지녀야하는게 당연할터인데 말이다. 이는 의자왕이 웅진(공주)로 피신후 별다른 대응없이 곧바로 항복한 것과도 관계된다. 넓디넓은 호남벌과 남쪽 영역으로 피난가서 기치를 새로이 했다면 그리 허망하게 몰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제는 본시 경기도에 기반을 둔 국가였다. 수백년간 한성이 수도였다. 충청, 호남은 그들이 정복한 옛 마한 강역이었다. 장구한 세월 한성이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밎 역학을 해왔는데 장수왕의 남하로 부랴부랴 웅진, 이어 사비로 천도를 하지 않을 수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 결과 왕의 권위는 뿌리째 흔들리고 귀족세력과 팽팽한 긴장 관계를 조성하였다. 의자왕 즉위초 대대적인 신라 공세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면 왕권이 확립될 수 있었겠지만 김유신의 등장으로 무위에 그치고 많은 손실을 보게 되어 후년에는 현격히 권력이 약화되었다. 그리고 의기소침한 탓으로 자연 향락에 기울게 된 것이다. 즉위초의 강성한 의지를 지닌 그였다면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그리 맥없이 허물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며, 고구려의 원군을 받게 되어 위기를 넘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추론해 본다. 그리고 호남에서 번격을 도모하지 않은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백제의 중심지는 한강 유역이었고 금강 유역에 자리잡은 것도 백여년에 불과하므로 당시 호남은 머나먼 변방에 지나지 않은 탓이리라.

이처럼 백제가 왕권과 신권의 다툼으로 멸국을 초래했다면 신라는 양 다툼에서 왕권이 확립됨으로써 삼국정복의 대업을 성취하였다. 여기서 새삼 김유신의 활약상이 주목된다. 화랑의 우두머리(오늘날로 하자면 군부정권 시절 육사 생도대표?)로 탄탄출세가 당연해 보였지만 가야계라는 태생의 한계로 한직을 전전하던 그가 나이 50이 되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동안 그는 김춘추와 의기투합하는 등 실망하지 않고 부단한 노력을 경주했다.선덕과 진덕여왕 시절 잇따른 반란을 진압하고 백제의 공격을 물리친 김춘추를 왕위에 올려놓아 드디어 왕권 중심의 신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것이다. 위만조선, 백제, 고구려 등의 멸망에서 알 수있듯이 군민이 합심하면 외세의 침략에도 절대 굴하지 않는게 우리네 역사이다. 항상 분열과 반목으로 내부의 배신자가 나타났을때 왕성은 무너졌다.
저자가 '위대한 전쟁'이라고 지칭했던 일대 휘몰아침은 가라앉았다. 수백년간 중원과 자웅을 겨루었던 고구려는 나라를 상실했고 백제는 신라의 강역으로 흡수됐다. 백제의 멸망으로 왜국은 국호를 일신하여 독립국의 첫발을 떼기 시작하였다.

신라는 삼국통일의 달성했지만 후세에서는 오히려 비난을 받는다. 외세를 끌어들인 민족의 배신자이며, 아울러 광활한 대륙을 상실하고 반도에 주저앉게 한 원흉이라는 것이다. 신라로서는 억울하겠지만 역사는 후대 관점에서 당대를 되돌아보는 법이다.

그리고 비록 발해가 고구려 영토 대부분을 계승하였다고 하지만, 발해에게 부족한 점은 고구려가 지니고 있던 그 치열한 '천손의식'이다.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는 대신 중원과 타협하여 형식적이나마 그들의 지배구조를 받아들였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작금의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오늘날 영토의 크기가 곧 국력의 지표는 아니다. 따라서 잃어버린 국토에 대한 미련이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다만 그들의 정신과 기상과 기백을 일허버리지는 말자. 그게 소위 '위대한 전쟁'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르침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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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7.3.30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그 위대한 전쟁 1 - 이덕일의 천하통일 영웅대전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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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대중역사가인 이덕일의 신작이다. 이전 작인 <오국사기>의 개정판이다. 부제가 '이덕일의 영웅천하'로 중국 수나라 통일이후 여수전쟁에서 시작하여 신라의 삼국토일과 일본의 성립까지 격동의 동아시아사를 다루고 있다.

요즘 SBS에서 방영주인 드라마 '연개소문'과 왜국을 제외한 내용에서는 상당 부분 시기적으로 중첩되므로 비교하여 읽어나가면 많은 도움이 된다.

약 100년 간의 기간이지만 어마어마한 격랑이 휘몰아쳤던 시기인지라 그 복잡다단한 사건들을 2권으로 축약하다 보니 약사(略史)도 전사(全史)도 아닌 애매한 성격의 저작이 되었다는 점이 아쉽게 생각된다. 이를 나관중처럼 대하역사소설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작가가 나타난다면 참으로 좋으련만.

일찍부터 나름대로 우리고대사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 서적을 몇 권 읽었던터라 내용 자체가 참신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다만 일본 당대사를 통해 우리민족과 일본의 관계를 이해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데 참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소위 '위대한 전쟁'이란 가능한가?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대량으로 뺏는 사건이 전쟁이다. 어떤 생명체가 제 정신으로 동종의 생명체를 멸절시키지 못해 안달일까? 이렇게 보면 인류는 뇌구조의 근본적 흠결을 지닌 이상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위대한 전쟁은 있을 수 없으며, 인류의 자유와 행복에 대한 억압 시도에 대하여 필요 최소한도의 무력 사용이 그나마 어느 정도의 정당성을 확보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의 명분으로 함부로 '국익'을 논하지 말라. 당사자 개인에게 그것은 하나뿐인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이며, 그것은 생물체의 가장큰 존재이유인 것이다.

한편 '영웅'은 어떠한가? 우리는 어려운 시기에 영우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혜성같이 등장하여 민족과 국가의 영광을 위하여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초인적 존재. 그를 믿고 따르기만 하면 만사가 오케이다. 다소간의 강압과 폭력과 부정과 잘못은 눈감아주자. 성과만 위대하다면 제도와 법규는 무시해도 좋다. 그래야 진정 영웅이 아닌가? 후훗, 인간은 이렇게 나약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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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7.3.26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