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6세 2부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2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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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두 명문가 요크와 랭커스터의 다툼 1

 

셰익스피어의 영국 사극 읽기를 시작하면서 두 번째로 고심한 것은 번역본의 선택이었다. 각 작품이 단권으로 되어 있으면서 한 명의 번역자가 사극 전체를 번역한 사례는 전영옥과 김정환만 해당하였다. 전영옥은 이미 여러 작품을 읽어보았으니 상대적으로 덜 읽었고 근래에 번역이 이루어진 김정환을 택하였다.

 

김정환 번역본은 옮긴이가 시인이라는 특징이 있고, 운문과 산문의 형식미, 원문과 번역문의 행 일치 등을 표방한 면에서 고유한 장점이 있다고 하겠다. 다만 지나치게 원문의 형식에 가깝게 하려다 보니 문체가 딱딱 끊어지고 자연스럽지 못한 점은 우리말과 영문의 차이 상 불가피하다. 독자를 고려하여 매끄럽게 할 것이냐 어색하더라도 원문 준수를 중점으로 할 것이냐는 전적으로 운문 번역의 숙명이며, 번역자의 결단이 필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좋아하고 말고의 차이는 있을망정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1부에서 잠재된 갈등은 제2부에 들어와서 수면 위로 떠 오른다. 2부의 부제가 두 명문가 요크와 랭커스터의 다툼이라고 명명된 까닭이 이를 입증한다. 1부에서 영국이 프랑스 영토를 상실한 결과를 탈봇과 잔다르크의 죽음으로 보여주었다. 2부의 영웅은 단연코 호국경 글로스터 공작이다.

 

(글로스터) , 이렇게 헨리 왕은 목다리를 버리는도다 / 그의 다리가 몸을 버텨 줄 만큼 튼튼해지기도 전에. / 이렇게 양치기가 패퇴합니다 폐하 곁으로부터, / 그리고 늑대를 으러렁대나이다 폐하를 먼저 뜯겠다고. / , 나의 우려가 거짓이기를, , 정말 그러기를! / 왜냐면, 착하신 헨리 왕, 폐하의 몰락을 제가 우려하나이다. (P.82, 31)

 

헨리 왕을 제외한 모든 귀족이 그를 경계하고 싫어하였는데, 이는 당연한 것이 그가 호국경에 있음으로 해서 자신들이 마음대로 행동하는데 제약을 받아서이다. 그가 21장에서 심칵스의 거짓 소경 흉내의 진실을 파헤치는 대목을 보면 그의 현명한 일 처리를 알 수 있다. 마가릿 왕비 또한 그가 자신과 왕의 결혼에 반대하였고, 그의 지위가 군주와 비등할 정도로 큰 것에 불만을 품었다. 그로서는 참으로 우군이 없었던 게 부인조차도 야심에 사로잡혀 적대세력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몰락을 자초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글로스터의 몰락은 헨리 왕의 파멸로 이어진다. 그것은 글로스터의 탄식과도 일맥상통하듯이 그가 헨리 왕의 왕권 버팀목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몰락하자 더는 헨리 왕을 지켜줄 존재가 없어졌고 귀족들은 대놓고 자신들의 이권 쟁탈에 매진하고 군주의 권위를 무시하게 되었다. 야심을 감추었던 요크 공작은 마음 놓고 자신의 발톱을 날카롭게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요크) 가겠소, 추기경,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서포크) 아니, 우리의 권한은 그분의 동의고, / 우리가 정하면 그분이 승인하시는 거죠. / 그러니, 고결한 요크, 이 임무를 맡으시오. (P.87, 31)

 

1부에서 글로스터에 대한 가치 판단을 유보하였는데, 2부에서 그에 대한 극중 인물(귀족들과 왕비를 제외하고)의 평은 전적으로 호의적이다. 이것은 일부 중립적 귀족과 공작 자신의 발언, 그리고 일반 백성들의 인식에서 공통으로 확인할 수 있다.

 

(솔즈베리) 내가 볼 때 언제나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는 / 고결한 신사처럼 행동하더군. (P.18, 11)

 

(글로스터) 언제든 내가 나쁜 생각을 / 나의 왕이자 조카, 미덕이 넘치는 헨리에게 품게 된다면 / 그것이 나의 마지막 숨 되리니 이 필멸 세상에서! (P.23, 12)

 

(글로스터) 이 모든 것들도 나를 해코지할 수는 없소 / 내 충직하고, 진실되고, 죄 없는 한. (P.69, 24)

 

(해적 우두머리) 훌륭하신 험프리 공작의 죽음에 미소 짓던 네놈은 (P.117, 41)

 

체제 밖을 떠도는 해적조차도 글로스터 공작을 높이 평가하는 마당에, 음해를 받고 호국경의 지위를 내려놓고, 끝내는 살해당하는 그의 고결하고 진실한 충정에 마음 한쪽이 뭉클하지 않다면 어찌 진정한 독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호국경의 상징인 직장을 왕의 요구에 따라 내려놓을 때조차도 아무런 사심 없이 기꺼움을 나타내는 충심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글로스터는 극 중에서 유일하게 순수한 인물이다. 이런 그가 비극적 최후를 마치게 된다니...

 

글로스터의 죽음과 대비되는 다른 죽음은 서포크 공작이다. 그는 마가릿을 헨리 왕과 결혼시키는 일등 공신이 되면서 실권을 장악하려고 한다. 자신을 가로막는 글로스터를 파멸시키기 위해 함정을 파서 그의 부인을 빠뜨리고 끝내 글로스터 자신을 제거하는 데 앞장선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왕비의 연인으로서 부정한 애정을 지속한다. 그에 대한 세인의 평가가 좋을 리 없다. 글로스터 살인 혐의로 추방당한 그가 해적에게 잡히자 해적 우두머리가 내뱉은 말은 좋은 본보기다. 해적조차도 경멸하는 존재이자 일반 백성들의 여론 반영이리라.

 

(해적 우두머리) 그래, 이 하수구, 웅덩이, 시궁창 같은, 네 추행과 오물이 / 잉글랜드의 은빛 식수원을 더럽히니, / 이제 내가 둑으로 막아 주마 크게 벌린 네놈 아가리를, / 왕국의 보물을 집어삼킨 죄로 말이다. / 왕비와 입 맞추던 네 입술 땅바닥을 쓸게 될 것이고, / 훌륭하신 험프리 공작의 죽음에 미소 짓던 네놈은 / 무정한 바람에 대고 헛되이 씨익 웃겠지, / 바람은 네놈을 경멸하며 네놈한테 다시 쉿쉿거리겠고. (P.117, 41)

 

마가릿 왕비의 편협한 질투심과 오만함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갈등을 증폭시킨다. 그녀는 끊임없이 헨리 왕에게 글로스터 공작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데, 그럼에도 공작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놓지 않은 헨리 왕이 오히려 대단할 정도다. 그녀의 의심이 남편과 영국의 장래에 대한 순수함에서 나왔다면 용납되겠지만 그녀의 남편에 대한 실망 및 서포크와의 불륜을 염두에 둔다면 별로 동정 가지 않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답답한 인물은 헨리 왕이다. 그는 왕의 지위와 자질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선악 시비를 판단치 못하고, 자신의 의지조차 없이 부평초같이 이리저리 왕비와 귀족들의 뜻에 따라 흔들리는 인물이다. 아무런 대안 없이 호국경을 내쫓는 결과가 자신에게 어떠한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판단 능력조차 없이 그냥 물 흐르는 듯이 떠내려갈 뿐이다. 그가 왕비의 탄원을 물리치고 서포크를 추방할 때의 패기와 결단을 평소에도 보여주었다면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의 꼴을 나지 않았을 터이련만. 극 중에서 유일하게 나타날 뿐이다.

 

(헨리 왕) 고결치못한 왕비로다, 그를 고결한 서포크라니. / 그만, 어명이오! 당신이 정말 그를 위해 탄원한다면 / 더할 뿐이로다 나의 분노를. / 말을 한 이상, 나는 내 말대로 하는 것일 터, / 그러나 내가 맹세를 한다면, 돌이킬 수 없게 되오. (P.104, 32)

 

헨리 왕은 보통 사람으로서 신앙에 몰두하는 사제의 삶을 살았다면 행복하였으리라. 군주라는 자리는 성인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과 자국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벌이고 그래야 하는 게 왕이다. 사서와 역사소설을 읽다 보면 반역죄에 대해 유달리 엄중한 처벌이 가해지는 걸 볼 수 있다. 흔히 삼족 또는 구족을 멸한다고 하는데, 아무 죄 없는 친인척들까지 벌주는 이유는 이 작품에서 요크 공작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의 현재 처지, 왕실에 대한 불만이 결합하며 없던 반항심이 생기는데, 하물며 왕위계승권의 정당성마저 지니고 있다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세조가 단종을 죽이고,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죽이는 행위는 잔인하지만 왕의 관점에서는 불가피한 처사라고 강변할 수 있다. 태종과 세종이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을 살려 둔 게 오히려 이색적인 처사일 정도다.

 

요크의 부추김으로 일어섰지만 잭 케이드의 반란은 극 중에서 나름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의 반란은 당시 봉건 체제가 반란 진압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유화책을 제시할 정도로 취약한 상태였음을 보여준다. 케이드와 백정, 직공의 교차하는 대사를 통해 해학성을 드러내며 케이드를 희화화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모든 학자, 변호사, 궁정 신하, 신사들”(P.135)기생충”(P.135)으로 매도하는 전언을 통해 일반백성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의 일면을 나타낸다. 케이드는 어차피 죽게끔 운명지어진 인물이다.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그의 불굴의 정신이다. 그는 지배당하고 착취당하는 삶을 감수하느니 고착화된 신분 체제를 타파하려고 죽음을 감내하고 행동에 나선 인물이었다.

 

(케이드) 켄트 사람들에게 내 말 전해 주게 그들이 가장 훌륭한 동향인을 잃었다고, 그리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타이르게 겁쟁이로 살라고. 왜냐면 나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굶주림에 굴복하였느니, 용기가 아니라. (P.157, 49)

 

최악으로 치닫는 사태를 막아보고자 하는 헨리 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발발은 피할 수 없다. 전쟁에서 인정과 자비는 기대할 수 없다. 죽음은 원한을, 원한을 복수를 낳고 살육은 물고 물리며 반복된다. 어느 한쪽이 버틸 수 없을 때까지. 아들 클리포드가 아버지 노인 클리포드의 시신을 보고 무자비한 복수를 다짐하듯이, 이것이 제3부에서 파란을 낳는 복선이다.

 

다만, 불쌍한 것은 중간에 치인 무고한 생명뿐. 귀족들의 전쟁이 백성들에게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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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6세 1부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19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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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영국 사극 독서를 시작하면서 출발점을 어디로 삼을지 고민하였다. 집필 순으로 보자면 <헨리 6> 삼부작이 앞서고, 왕위 연대순으로 따지면 <존 왕>이 첫 번째 순서가 마땅하다. 후자는 시대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전개를 따라갈 수 있고 앞선 시기에 벌어진 사건이 후대에 영향을 미치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전자는 셰익스피어의 작가로서의 역량이 발전되는 모습을 작품을 통해 발견할 수 있고, 작가가 시대순에 연연하지 않고 외연을 확장하게 된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할 기대를 품을 수 있다. 나의 최종 선택은 집필 순이다.

 

영국 역사를 극작의 소재로 삼았으니 아무래도 역사 지식이 있으면 전체적 맥락 이해에 유리하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랭커스터가와 요크가의 장미전쟁을 거쳐 튜더 왕조가 성립하는 영국 중세와 근대 초기의 흐름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으면 작가가 강조하거나 생략한 장면, 변용을 가한 대목을 비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삼국지연의> 감상을 위해 <정사 삼국지> 선행 독서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지 않는 것은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셰익스피어는 헨리 6세 시대를 삼부작으로 나누어 집필하였다. 영국사의 분수령이 되는 이 시기를 좀 더 상세하고 치밀하게 파헤쳐 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짐작게 한다. 백년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와중에 어린 헨리 6세를 둘러싼 귀족들의 권력 암투가 점차 두드러지는 모습을 1부에서 볼 수 있다. 귀족들에게 중요한 건 왕권도 백성들의 고통도 아닌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 도모와 권력 확장에 있다. 호국경 글로스터가 통박하듯이 말이다.

 

(글로스터) 당신들은 그저 나약한 군주만 좋아하지. / 그래야 학동처럼, 당신네들이 겁을 줄 수 있을 테니. (P.11, 11)

 

왕의 삼촌인 글로스터 공작은 어린 헨리 왕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인물로 나오지만, 작중 인물들에게 그의 존재와 행동은 의심과 질시의 대상이다. 호국경인 그의 권력이 강해질수록 귀족들은 운신의 폭이 줄어든다. 게다가 왕위계승권 1위인 그의 지위는 그가 행하는 모든 언행을 정치적 의도를 갖고 해석하도록 만든다. 독자는 아직 그의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는 선인인가 악인인가. 확실한 것은 어린 헨리 왕은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사실이다.

 

귀족들의 불화는 두 갈래로 구분된다. 글로스터와 윈체스터는 친척 간이다. 극 중에서 헨리 왕은 두 사람을 모두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양자는 또한 숙질간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촌수로는 윈체스터가 앞서는 건 분명하지만, 직계가 아닌 방계인 듯싶다. 그래서 글로스터가 그를 무시하는 언사를 보이는 게 아닐까. 하여튼 윈체스터는 사제로서 나중에 추기경으로 오르지만 강력한 권력욕을 드러내어 다른 귀족들에게도 평판은 썩 좋지 않다.

 

서머싯과 리처드, 나중의 요크 공작 간 불화는 사소한 언쟁에서 비롯한다. 각자가 자신의 정당성을 천명하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가운데 붉은 장미와 흰 장미로써 무리를 표시하는 장면은 영국사를 아는 독자라면 훗날 장미전쟁의 발단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헨리 왕도 말했듯이 어처구니없지만, 이것이 어디 근본적인 원인이겠는가, 방아쇠에 불과할 뿐.

 

(헨리 왕) 착하신 경,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 어떻게 그리도 사소하고 하찮은 이유로 / 이런 파당적 시샘이 생겨날 수 있단 말이오? (P.111, 41)

 

그럼에도 사소하고 하찮은 다툼은 거대한 불화와 분쟁으로 점화되는데, 엑스터 공작이 이를 31장과 41장에서 반복적으로 예언한다. 그는 극 중에서 독특한 인물이다. 어느 파당에도 속하지 않고 헨리 왕의 곁을 지키는 엑스터는 귀족들의 다툼이 비극을 가져올 것임을 초연하게 언명하는 예언자적 인물이다.

 

(엑스터) 하지만 소용없지,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두 눈으로 / 이 삐걱대는 귀족들의 불화를,/ 궁정에서 서로를 어깨로 밀쳐 대는 꼴을, / 추종자들이 일삼는 이 파당 싸움질을 본다면, / 그것이 정말 불행한 결과의 전조임을 알리라. / 왕홀이 어린이 손에 들려 있는 것도 문제지만, / 시샘이 기괴한 분열을 낳는 것이 더 큰 문제로다. / 거기서 멸망이 오고, 거기서 혼란이 시작되나니. (P.114, 41)

 

귀족들 간의 불화가 본격적인 갈등으로 점화되는 계기는 백년전쟁과 연관되어 있다. 시선을 잠시 프랑스로 돌리자. 초기에 유리했던 영국의 전황은 점차 수세에 몰리고 있다. 군사와 물자를 바다로 실어날라야 했던 영국 입장에서는 군주와 귀족이 단합해야 공세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음에도 제1막 초반부에서 사자들의 전언에서도 보았듯이 귀족들의 내분으로 수세적으로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전쟁 영웅 탈봇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본토의 다툼과는 무관하게 그는 프랑스에서 영국의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순전한 애국심의 상징이다. 그의 막강한 무력은 프랑스군을 두렵게 만들고 오직 잔다르크만이 그의 적수가 될 뿐이다. 하지만 제5막에서 볼 수 있듯 탈봇이 오로지 개인의 능력이라면 잔다르크는 악령의 도움을 받았으니 실질적 비교는 어렵다.

 

() 내 몸으로도 피의 희생으로도 / 간청할 수 없단 말이냐 너희가 늘상 주던 도움을? / 그렇다면 내 영혼을 주마-내 몸, 영혼, 그리고 모든 것을- / 잉글랜드가 프랑스에 패배를 안기기 전에. (P.143, 53)

 

이 작품에서 탈봇과 잔다르크 모두 목숨을 잃지만 양자의 최후는 전혀 다르다. 탈봇은 고결한 전쟁 영웅으로서 장엄한 최후를 마치지만, 성처녀는 마녀로서 고결에서 추악으로 전락한 채 경멸로 목숨을 잃는다. 셰익스피어가 영국인이었으므로 잔다르크를 향한 편견과 비난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만큼 백년전쟁에서 잔다르크의 등장은 영국에게 있어 치명타였으므로, 성처녀가 아닌 마녀라고 믿고 싶었으리라. 탈봇, 요크공작의 그녀에 대한 비난적 언사, 자신의 양치기 아버지를 부인하는 잔의 대사, 그리고 애를 가졌다고 하며 목숨을 구걸하는 잔의 행동을 보면 그녀에 대한 영국인의 악의적 감정을 알게 한다. 따라서 이점을 가지고 셰익스피어를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탈봇) 더러운 프랑스의 적, 그리고 참으로 경멸스러운 마녀야, / 네 음탕한 정부들한테 둘러싸여, / 가당키나 하더냐 네가 그의 용감한 나이를 조롱하고 / 반쯤 죽은 이를 비겁하게 야유하는 것이? (P.91, 35)

 

() 형편없는 늙은이, 비천하고 저열한 놈 같으니, / 난 더 귀족적인 혈통 출신이야, / 네놈은 내 아비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란 말이다. (P.154, 56)

 

() 나는 애를 가졌다, 너희 피비린 살인자들아, / 그러니 살해하지 마라 내 자궁 속 열매를, / 설령 너희가 나를 난폭한 죽음에게로 질질 끌고 갈망정.

(요크 공작 리처드) 저런 하나님 맙소사-성처녀가 아이를 배? (P.157, 56)

 

1부에서는 아직 발아되지 않았지만, 향후 분쟁의 씨앗이 심어지는 대목을 볼 수 있으니 제2부와 제3부의 복선에 해당한다. 감옥에 갇혀 죽음을 앞둔 모티머가 조카 리처드에게 모티머 가문이 몰락하게 된 숨겨진 역사를 설명해주는 25장이 하나다. 리처드는 비로소 자신이 헨리 왕보다 왕위계승권에서 더 정통성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고 반드시 이를 회복하리라 다짐한다. 모티머는 조카에게 신중을 기할 것을 재삼 당부한다.

 

(모티머) 조용, 조카, 신중해야지. / 랭커스터 가문은 확고히 섰고, / 산처럼, 제거할 수가 없어. (P.73, 25)

 

프랑스의 우세 속에 전쟁이 하염없이 길어지자 양국은 화친을 시도한다. 프랑스 왕을 영국 왕의 총독으로 삼는 조약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배치되는데, 영국의 패전을 완곡하게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여기서 서포크는 마가릿을 헨리 왕의 왕비로 삼고자 하는 모종의 책략을 꾸미고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헨리 왕을 미혹시켜 마침내 성공을 거둔다. 그의 의도는 제1부의 마지막 대사에서 확연히 나타나는데 이후 작품의 복선을 깐 셈이다.

 

(서포크) 마가릿은 이제 왕비가 되어 지배하겠지 왕을 / 그러나 나는 지배하리라 그녀, , 그리고 왕국 모두를. (P.166, 57)

 

이 제1부는 삼부작의 서막에 해당한다. 대체로 등장인물 소개와 그들 간의 내재한 갈등, 왕위계승권을 둘러싼 오래된 역사적 불씨를 보여준다. 또한 백년전쟁의 최종 결과를 탈봇과 잔다르크의 두 영웅적 인물의 대결로 압축함으로써 패배한 영국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을 볼 수 있다. 헨리 왕의 결혼이 가져올 새로운 국면과 장미전쟁으로 이어질 귀족 간의 본격적 대립은 아직 물밑에 놓여있다. 이는 제2부와 제3부에서 구체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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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평화 - 삼국지 이전의 삼국지, 민간전래본
김영문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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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삼국지 또는 아류작을 제외하고 <삼국지연의>와 같은 고전으로 다른 삼국지류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삼국지평화>라는 작품이 존재하고, 게다가 나관중의 소설보다 무려 170여 년을 앞선 글이라니 삼국지 매니아인 나로서는 도저히 피해갈 수 없었다.

 

이 책은 내용 자체의 감상에 앞서 작품 자체의 소개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나관중의 것보다 앞선 시대의 것이므로 <삼국지연의>가 순전히 나관중의 창작이 아님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으며, 초기작을 통해 삼국지 이야기의 소설화가 발전되는 방식을 비교할 수 있다. 표제의 평화(平話)는 공연 대본을 가리킨다고 하며, 그림과 텍스트를 나란히 수록하여 시각적 이해와 상상을 돕고 있다.

 

<삼국지평화> 원본에는 맨 위 3분의 1 부분이 삽화, 아래 3분의 2 부분이 문자 텍스트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제목 끝에 붙어 있는 평화라는 말은 당시 이야기 공연 장르의 대본이라는 뜻이다. (P.31)

 

원본은 상중하 3권 구성이며, 번역본은 한 권으로 옮길 수 있어 <삼국지연의>에 비하면 매우 간략하다. 따라서 사건과 인물의 다양성, 표현의 풍부함 등은 당연히 기대할 수 없으리라고 짐작하며 사실 그러하다. 대신 빨리 읽는 독자라면 앉은 자리에서 뚝딱 완독할 수 있을 정도니 속도감과 흡인력은 비교작을 능가한다.

 

전체적 구성에서 <연의>와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데, 특히 삼국 정립의 원인과 통일을 언급하는 도입부와 결말부이다. 삼국분열이 후한말 혼란과 부패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한 고조 유방에게 토사구팽당한 한신, 팽월, 영포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후속 조치로 설명한다. 매우 황당하며 비현실적이다. 뒷날 나관중이 이런 논리를 배격하고 완전히 새롭게 짜 맞춘 것은 합당한 판단일 것이다.

 

세 사람은 천하를 삼분하려는 게 아니라,

한 고조에 참수된 원한 갚으러 다시 왔네. (P.45)

 

사마중달은 세 나라를 남김없이 평정했고,

유연은 한을 일으켜 황업을 공고히 했네. (P.389)

 

결말부에서 주목할 대목은 516국 중 하나인 전조(前趙)의 창설자 유연이 한나라를 계승하여 훗날 그의 아들이 한나라를 멸망시킨 진나라를 멸망시킴으로써 복수를 하였다는 설정이다. 실제로 그렇게 믿었던 건지 아니면 흥미를 끌기 위한 단순한 장치로 도입했는지 알 수 없으나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전혀 터무니없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유씨라는 공통점을 내세웠지만 유연은 촉한 황제의 외손”(P.385)가 아니라 엄연히 흉노족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내용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할 말이 많다. 큰 줄기에서는 우리가 아는 삼국지 이야기가 맞지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연의>와 전혀 다르다.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연의>와 비교하여 당혹해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되지만, 그냥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고 간주하는 게 맘이 편할지 모르겠다. 역사적 기록의 부합 여부는 거의 고려치 않는다는 면에서 나관중보다 작가적 자유분방함의 정도가 훨씬 크다.

 

조조는 여기서도 간웅이다. 후대작의 조조는 여기에 비하면 악독함이 덜하다. 황제의 태자를 때려죽이고 강제로 아들 조비에게 물려주도록 직접 행동의 전면에 나선다. 나관중의 작품에서는 예의를 차리며 관대하게 관우를 보내는 조조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여기에서 조조는 호시탐탐 관우를 죽이려고 한다. 조조 죽음의 계기가 되는 관우의 수급을 보고 놀라는 장면도 여기에는 없다. 옮긴이에 따르면 초한지의 내용을 응용하여 관우를 높이고 조조를 낮추는 의도로 나관중이 지어낸 거로 보인다. 이처럼 초한지와 연결시켜 장면을 추가하는 대목이 많은 게 이 책이다. 반면 훗날 나관중은 무리한 관련성을 배격하고 역사적 흐름을 더욱 중시하고 있으며, 번개처럼 지나가느라 놓친 개개의 사건과 인물에 풍성함을 더하기 위해 다양한 일화와 고사를 추가한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적어도 문학적 재미와 흥미로서는 나관중의 압승이다. 그러기에 현대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겠지만.

 

의형제 삼인방에서 세인과 후인의 추앙을 받는 사람은 단연 관우다. 안량과 문추를 베는 용맹, 유비를 찾아가려고 조조를 떠나는 엄중한 의리, 죽어서도 굴하지 않는 기개 등 그가 민간에서 신으로 승격된 까닭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 작품에서는 장비가 더욱 돋보인다. 의병 창설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이는 장비다. 황건적을 무찌르고 유비를 푸대접한 환관에게 주먹을 날리고 태수와 그의 아내 및 병졸 수십 명을 거리낌 없이 죽이고 독우를 매질하여 죽인 후 토막 내 버릴 정도로 용맹과 흉포함, 잔인성이 결합한 캐릭터는 나관중의 것보다 훨씬 강렬하다. 삼국지 이야기에서 자타공인 최강의 무사는 여포다. 그런 여포가 여기서는 장비에게 꼼짝 못 한다. 장비는 여포의 일기토에서 승리를 거두고, 소패성을 포위한 여포를 무려 세 번이나 뚫고 나온다. 마지막에서 여포를 잡아 가둔 것도 장비니 그야말로 천하무적 여포의 유일한 천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포의 이야기를 덧붙인다면 그와 동탁의 만남은 다른 방식이었으며, 여포와 초선은 원래 부부 사이였다고 한다. 하후돈을 애꾸눈으로 만든 인물도 여포이다.

 

제갈량은 본래 신선인데, 어려서부터 학업을 닦았으므로 중년에 이르러서는 읽지 않은 책이 없었다. 천지의 기미에 통달하여 귀신도 헤아리기 어려운 뜻을 품고 있었다.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었으며, 콩을 뿌려 군사를 만들 수 있었고, 칼을 휘둘러 강을 만들 수도 있었다. (P.203-204)

 

<연의>에서도 제갈공명의 능력은 초인적인데, <평화>에서는 아예 대놓고 그를 신선이라고 칭한다. 초능력자 제갈량을 너무 높인 나머지 한편으로는 그렇게 뛰어난 능력자가 어째서 삼국통일의 대업에 실패하였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민간전래본이다 보니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체계성과 일관성이 부족한 게 약점이다. 공명의 신통력과 도술을 강조하는 대목은 남만 정벌에서도 나타난다. 여기서 제갈량은 하늘을 운행하는 풍륜(風輪)을 제작하여 맹획을 정복해낸다.

 

봉추선생 방통의 역할은 <연의>에서 제한적이어서 그의 참 면모를 알기 어렵다. 여기서는 방통과 주유가 호형호제하는 사이며, 유비에게 인정받지 못한 방통이 형주 4군의 반란을 부추기는 등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물로 나온다. 다만 죽은 방통의 도움으로 승리를 거두고 유비가 서천을 얻게 되는 장면은 황당한데, 죽은 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물리친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평화>에서 죽은 공명이 수레에 타고 의젓하게 나서는 장면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제갈량의 북벌 실패의 가장 결정적인 대목은 마속이 가정을 잃은 데 있다. 훗날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유명한 고사성어의 유래인데, 전투의 상세 원인이 전혀 다르다. 마속은 술에 취해서 수비에 실패하였으며, 그에게 충언했던 왕평은 <평화>에서 남만 정벌에서 일찌감치 제갈량에게 참수당하여 등장할 기회조차 없었다. 언제나 느끼는 점이지만 촉과 제갈량의 북벌 실패 제일 원인은 제갈량 일인의 역량에 대한 과도한 의존 탓이다. 그는 승상이자 총사령관이므로 내정과 국방을 총괄해야 했는데, 전시상황에서 내정을 전담할 수 있도록 후주가 믿고 맡길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하는 만약의 가설이 여전하다.

 

조조의 후손이 그러했듯 사마의의 후손이 조조의 후손에게 황권을 빼앗은 걸 보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수십 년을 지속한 삼국 정립을 끝내고 통일,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을 이루어낸 것은 사마의의 후손이다. <연의>는 제갈량의 사후 통일까지를 다루고 있는 반면 <평화>는 공명의 죽음으로 대단원을 내리고 이후는 간단한 해설로 마무리한다.

 

옮긴이가 누차 강조했듯이 <평화><초한지>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나관중은 그것이 지나친 대목은 깎아내고 없던 장면은 덧붙여서 모방이 아닌 창작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연의>에서는 희석되어 두드러지지 않지만 <평화>에 앞서 <초한지>를 읽으면 두 작품의 관계가 더욱 강하게 의식될 것이다.

 

<연의><평화>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며 우월의 격차는 명확하다. <연의>를 먼저 읽은 독자라면 <평화>의 전개와 서술에 이질감을 느낄 것이다. 역으로 <평화>를 접한 후 <연의>를 펼친다면 <연의>의 뛰어남과 나관중의 재능에 새삼 경탄하게 된다. 이는 <연의>가 수준 낮고 일독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두 작품은 소위 삼국지 이야기를 공통의 배경으로 삼았기에 여러 면에서 겹칠 수 있지만, 별개의 독자적 작품으로 접근해야 한다. <연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평화> 자체로도 감상하고 묘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옛사람들은 나관중 이전에 이 작품 속 이야기에 일희일비하지 않았겠는가. 나아가 우리는 <평화>를 통해서 민간에 전승된 삼국지 이야기가 어떻게 기록으로 정착하고 방대한 소설로 발전해 나갔는지를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비교하고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연의>도 비견할 수 없는 이 작품만의 독특한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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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환타지소설의 원조, 습유기
김영지 지음 / 한국출판협동조합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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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의 지괴소설집의 하나다. 저자는 도교의 방사(方士)인 왕가라고 하는데, 훗날 소기가 잔존한 판본을 오늘날의 형태로 편집하였다. 소기는 단순히 편집에 그치지 않고 주요 고사 또는 각 권의 마지막에 록()이라고 하여 자신의 비평을 추가하고 있다. 사실상 저자가 두 명이라고 할 수 있기에 도가와 유가의 분위기가 묘하게 혼재되어 있다.

 

앞서 읽은 몇 권의 지괴소설집과 비교할 때 이 책은 서술 체계가 독특하다. 언뜻 보면 역사서에 가깝다. 10권 중 1권에서 9권까지는 복희, 신농, 황제에서 시작하여 삼국시대를 거쳐 서진 당대까지의 고사를 담고 있다. 이처럼 시대순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주로 임금과 관련된 고사를 기록하고 있어서 정사를 보완하는 비사(祕史)로서의 성격을 포함한다. 표제조차도 빠뜨린 이야기를 주워서 전한다는 의미가 아니던가. 이런 연유로 과거에는 역사서로 분류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지막 10권은 고대와 당대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8대 명산을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비사와 지괴, 박물지가 혼재된 특이한 지괴소설류로 간주할 수 있다.

 

저자의 서술과 관련한 특색을 추가로 언급하자면 시대순으로 기술하지만 인물과 고사의 선별 기준은 도가에 가깝다는 점이다. 주나라의 목왕, 춘추전국시대의 노나라 희공과 연나라 소왕을 다룬 것은 이들이 신선도에 빠져있던 걸로 정평이 난 군주들이어서다. 8대 명산도 소위 오악(五嶽)과는 무관하게 도가에서 중시하는 산들이다.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은 진시황이 불사약을 구하러 보낸 삼신산이다. 곤륜산은 서왕모가 산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거리에는 붉은 풀들이 가득하고 무성한 수풀 위로는 상서로운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하늘에 제사모시는 흙 단을 쌓아서 아침 해에게 제사를 드리고, 옥섬돌을 꾸며서 달빛을 담아낸다. 구천의 조화로운 음악을 연주하노라니 온갖 동물들이 춤을 추었고 여덟 가지 음색도 잘 어우러지니 나무와 돌에도 윤기가 흘렀다. (P.32, 염제 신농)

 

위의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수록된 고사의 서술 내용 자체가 비교적 세밀하고 때로는 장식적, 낭만적 묘사도 주저하지 않는다. 다른 작품집의 간략하고 사실 전달에 중점을 둔 서술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그만큼 저자의 집필 의도와 필력이 중시된다는 점에서 소설로서 한층 진일보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이 쓰인 때가 서진 시기였으므로 삼국시대와 당대의 고사를 다룰 때면 은연중 자국의 정통성을 표출하는 문구가 자주 보인다. 시대적 상황에 따른 불가피성을 감안하더라도 무리한 견강부회라는 생각을 숨길 수 없다.

 

예컨대 위에서 진으로 넘어가던 무렵 궁궐 문에 작은 참새만한 하얀 빛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금덕(金德)의 길조라고 해석하여 진의 성립을 천명으로 풀이하는 대목(P.233)이 그러하다. 옮긴이에 따르면,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위는 불에 속하며, 진은 금()에 속한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위, , 오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장면도 엿볼 수 있다. 유비를 헌신적으로 도왔던 거부 미축의 사망 원인을 촉이 망하는 바람에 잃어버린 재물이 아까워 한이 되어 죽었다(P.268)고 하는데, 미축은 촉이 멸망하기 이전에 죽었으며 동생 미방이 촉을 배신하여 화병으로 죽은 것이라고 옮긴이가 의미읽기에서 바로잡고 있다. 악의적 왜곡의 전형이다.

 

이국원인(異國遠人)에 관한 관심은 <산해경>, <신이경> 등에서처럼 여전하다. 지리와 교통이 원활하지 않아 정보가 부족한 시절 호기심과 상상력이 결부된 각종 먼 나라 기이한 물산의 이야기는 한낱 터무니없는 걸로 치부하기에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너무나 멀어서 조공을 오는 데 수십 년이나 걸려 어린 사람이 노인이 된다는 연구국(P.87), 선녀가 변신한 무희를 바쳤다는 광연국(P.137), 자유자재로 도술을 부리는 목서국=신독국(P.141), 수명이 삼백 세인 기륜국(P.174) 등은 당대인들의 호기심 충족에 그만이었으리라. 어쩌면 지리적 발달에 다소는 공헌하였을지도 모르겠다.

 

신선에 관한 고사가 많은 경우를 점하는데, 넓게 보면 삼황오제가 모두 신선이라고 할 수 있다. 서왕모를 만났다는 주나라 목왕의 서방 여행, 그리고 서왕모에게서 단약 재료를 얻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만 연나라 소왕 고사(P.141)는 서왕모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 정도를 보여준다. 신화적 인물만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도 신비화하는데 괴력난신과 무관한 공자의 탄생 장면도 신비롭게 미화하고 있어 과연 공자가 이를 알았다면 어떻게 생각했으려나 궁금하다.

 

주 영왕 21, 공자는 노나라 양공 통치 시절에 태어났다. 그날밤 푸른 용 두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어머니 징재 방으로 들어갔는데 그 꿈을 꾸고 공자를 낳았다. 두 명의 신녀가 하늘에서 향기로운 이슬을 받들고 내려와 어머니를 목욕시켜 주었다. 천제가 내려와 하늘의 음악을 연주하여 징재인 안씨 방에 베풀어놓았다. (P.107)

 

도가에서 숭상하는 노자 또한 그만둘 리가 없다. <도덕경> 저술과 관련한 신화화 사례(P.121)를 보자. 부제국에서 선서에 신통한 두 사람이 노자를 도와 저술 작업에 참여하여 골수와 피로 먹물과 등불 기름을 대신하였고, 경전이 완성되자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도덕경>이 최초에는 10만 자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고 하며, 노자가 간소하게 정리해서 5천 자로 줄였다고 하는 점도 기억하자. 서방으로 떠나면서 관윤 윤희의 부탁으로 글을 남겼다는 우리가 익히 아는 사실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신화와 전설 속의 제왕과 군주, 성인이 수록한 고사들의 주된 인물임에 반해 가까운 시기의 문인으로는 한나라 유향(P.210)이 유일하다. 이는 지괴소설의 선배에게 바치는 후배의 찬사다. 마찬가지로 소위 중원인을 제외하면 오랑캐로는 유일하게 등장하는 인물이 석호다. 그는 516국 중 후조(後趙)의 황제인데, 짐작하겠지만 폭정과 사치를 일삼은 안 좋은 본보기로 취급된다.

 

소기가 유학자이다 보니 원전의 내용에 본인의 가치관과 부합하지 않은 고사가 많이 있게 마련이다. 편집자는 이에 대해 두 가지로 반응을 보인다. 우선 지나치게 황당무계한 내용의 고사들에 대해서는 록()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아득히 멀리서 아련히 흘러온 글들은 백가(百家)가 현실과 유리되어 각자 그 기억함을 숭상했을 뿐, 뜻이 깊이 배인 도리는 아니다. (P.63)

 

중원과 외지는 기운부터 달라 이상한 기운이 각기 생겨나 구름과 강물, 초목도 괴이하고 아름다운 여러 형태를 취하나 서적들을 살펴보면 그 유형이 동일하다. 지역이 멀고 변형이 심해서가 아니라 허망하고 괴탄함에 웃을 것이다. 널리 두루 살려 신령하고 기이함이 증험되길 바란다. (P.321)

 

그리고 유가적 가치에 부합하는 고사를 선별하거나 내용을 다듬는다. 주나라 영왕 때 위나라 영공의 악사였던 사연(師涓)이 작곡한 사계를 묘사한 음악에 군주가 미혹되어 정사를 돌보지 않을 지경이 되니 신하가 그 음악이 유해하다고 끊기를 간언하고 임금이 이를 수용하였다는 고사(P.124)를 보면 유가가 지향하는 참된 음악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악사는 부끄러움에 종적을 감추었다고 하는데, 은나라 폭군 주의 악사였던 사연(師延)이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음탕한 음악을 연주하였던 고사(P.79)를 함께 비교하면 음악이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의 마음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 한문 고전 번역본과 비교할 때 산뜻하고 현대적인 인상을 주는데 차별되는 점은 체재에 있다. 번역문과 원문, 주석, 그리고 해설로 이루어지는 게 통상적인데, 여기서는 번역문, 원문 그리고 의미읽기라고 하여 해설과 옮긴이의 감상 및 의견을 한군데 묶어놓았다. 주석은 매우 적어서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고리타분한 고전이 아닌 현대의 젊은 독자층에 다가서기 위한 캐주얼한 접근으로 볼 수 있다. 표제도 원제 앞에 중국 환타지소설의 원조라고 수식구를 넣었듯이. 보다 현실적인 사유인데, 적당한 분량의 한 권으로 편집하기 위한 목적일 텐데 상세한 주석을 넣으면 분량이 대폭 늘어나 두꺼운 학술서적이 될 우려가 있어서이리라.

 

다른 지괴소설집과 비교할 때 별로 중첩되는 내용이 없다는 점, 체재와 서술방식이 역사서와 유사하여 신선하며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점, 기술과 묘사가 세밀하고 낭만적이어서 이야기 자체로서 상대적으로 완결도가 높다는 점, 그리고 편집자의 날카롭고 비판적 평이 추가되어 있다는 점 등에서 이채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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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기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조충지 지음, 김장환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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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충지의 <술이기>는 위진남북조시대 남제의 대표적인 지괴소설(P.159)이다. 시기적으로는 앞서 읽은 <열이전><수신기>보다는 후대에 지어졌으며, 작품해설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수록된 총 95조의 고사 중 거의 대부분이 다른 책과 중복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책은 <수신기>를 시기적으로 보완하는 장점이 있다.

 

초반부의 고사는 신기한 지역을 소개하는 등 박물지 성격을 띠고 있으며, 중반부에 이르러서 비로소 위진남북조시대를 다루고 있는데 대체로 연도와 인물을 명기하고 있어 지괴라기보다는 당해 시기의 비사와 일화를 읽는 기분이다.

 

전대의 지괴소설과 뚜렷이 구별되는 점은 불교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순괴 고사(P.126)처럼 종래의 신선, 선인 및 도사 등도 소수 등장하지만 법사, 부처님, 불경 등에 대한 언급 및 신통력이 더욱 강력하다. 백도유 고사(P.15)에서 자신이 머무는 산에 자리 잡은 법사를 쫓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산신은 방법이 통하지 않자 어쩔 수 없이 그 산을 법사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슬퍼하며 다른 지역으로 떠나간다. 호비지 고사(P.89)를 보면 소란을 피우는 귀신에게 맞대응한 게 무례했다고 지적받고 부처에게 귀의해야 무사할 수 있다고 한다. 나여의 부인 비씨 고사(P.155)에서 죽을병에 걸린 비씨는 오랫동안 법화경을 열심히 독송하였으니 부처의 가호로 자신이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신령과 부처가 공존하는 현실 속에서 도교보다 불교의 위력이 큼을 가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불법의 능력과 정당성을 알리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산신이 직접 그를 찾아가서 말했다.

법사님의 위덕이 이토록 높으시니 지금 이 산을 당신께 드리고 이 제자는 달리 의탁할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백도유, P.15)

 

이 책은 착한 귀신과 올바른 저승 세계에 대한 묘사가 많지 않다. 황묘 고사(P.60)를 보면 신령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황묘에게 벌을 주는 것은 그렇다 해도 괜히 30명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게 만들고 황묘는 목숨을 부지하게 하는 신령의 처사는 납득 불가이다. 진민 고사(P.133)처럼 진민에게만 피해를 주는 게 그나마 깔끔한 조처라는 생각이다. 어쨌든 자신에 대한 약속 위반자에게 무자비한 벌칙을 내리는 궁정묘 신령은 사람들과 가까이하기 어려운 존재다. 이런 귀신이라면 굴복하기보다는 맞서 싸우고 물리치는 자세도 나쁘지 않다. 부양 사람 왕 아무개 고사(P.68)에서 귀신 산소는 자신을 풀어달라고 애원하고 이름을 알려달라고 간청해도 소용없이 불에 타죽는다. 잡귀의 출몰을 목도하고 자신을 위협하는 귀신을 끝내 물리친 박소지 고사(P.78)도 귀신에 겁먹지 않고 의연함을 잃지 않는 전형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저승은 이승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생전의 잘못이 드러나고 처벌받는 사후세계라면 응당 엄정해야 하겠지만, 비경백 고사(P.99)에 따르면 저승사자도 인정과 대접에 약한 면모를 보이며, 뇌물도 유효적절하게 통하는 모습(영천 사람 유 아무개 고사, P.102)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이승에서 유능한 관리를 저승 세계도 탐을 내 관리로 데려가고자 하는 대목(조종지 고사, P.83)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과 귀신 간에는 엄격한 구별이 있으니 유막의 연인이었던 죽은 여인 곽응의 대답을 통해 알게 한다.

 

사람과 귀신은 길이 다르니 날 생각하는 수고는 하지 마세요.” (유막, P.136)

 

귀신, 사람, 동물 구분할 것 없이 자신에게 잘해주는 상대에게 선을, 괴롭히는 상대에게 악을 베풀고자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충견인 황이 고사(P.23)가 전자라면, 석현도 고사(P.71)와 오고지 고사(P.146)는 후자의 사례다. 잡아먹힌 새끼를 그리워하며 울부짖는 어미 개의 모성애를 생각하며 석현도의 병이 나을 수 없는 까닭을 짐작게 하며, 새끼 밴 어미 원숭이를 잔혹하게 죽인 오고지가 신령의 노여움을 사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사필귀정이다. 호랑이가 된 태수(봉소 고사, P.20)에서 봉사군이 호랑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어쨌든 봉소에 대한 평가가 세인에게 좋지 않았음을 당시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봉사군은 되지 말지니, 살아서는 백성을 다스리지 않고 죽어서는 백성을 잡아먹는다.” (봉소, P.20)

 

마지막으로 흐뭇하고 긍정적인 내용도 하나 덧붙인다면, 비견인 고사(P.21)가 그러하다. 비견인(比肩人)은 비익조와 연리지와 같은 의미로 애정 깊은 부부를 지칭한다.

 

이 책이 더욱 특징적으로 인식되는 사유는 지은이의 독특한 배경 때문이다. 조충지는 단순한 문인이 아니다. 작품해설에 따르면 그는 당대의 저명한 수학자, 천문학자, 과학자이자 발명가라고 한다. 원주율을 소수점 7자리 이하까지 계산하고 전문 수학 서적을 썼으며, 새로운 역법인 대명력을 제작하였고, 지남거(나침반 수레), 수대마(물레방아), 천리선(쾌속선) 등을 발명하였다고 하니 보통 능력자가 아니다. 이러한 작자가 지괴 작품을 지었으니 허투루 넘길 게 아니다. 귀신 세계의 실존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바탕에 깔린 게 아니었을까?

 

당시에는 대체로 명계(冥界)와 인간 세계가 비록 그 존재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사람이나 귀신이 모두 실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이한 일을 서술하는 것과 인간세계의 일상사를 기록하는 것에 대해서 진실과 허망함의 구별이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P.168)

 

인용한 루쉰의 발언처럼 당대인들은 귀신 세계 또는 저승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를 유치하고 야만적이며 비이성적이라고 매도할 수 없다. 현대의 우리도 꿈과 환상, 이성과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많은 영역을 알고 있지 않은가. 차라리 그네들의 생각을 그대로 인정할 때 우리가 위진남북조시대 지괴소설의 참된 즐거움과 매력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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