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함브라 1 기담문학 고딕총서 5
워싱턴 어빙 지음, 정지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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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 지명과 기담문학 고딕총서성격으로 미루어 미스터리와 에로티시즘이 결합된 작품을 기대하며 책을 펼친다. 헛된 기대는 바로 저버림을 당하였지만 이야기는 흥미롭게 이어진다. 이 작품은 작가 워싱턴 어빙의 스페인 알함브라 체류기다. 잠시 머무르다 떠나는 주마간산의 여행기가 아니며, 낯설고 신기한 풍경과 인물, 문화를 소개하는 기행문과도 다르다.

 

작가가 알함브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연유는 스페인 주재 외교관이 된 계기가 크지만,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의 방랑벽 내지 모험벽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서두에 어빙은 알함브라를 방문하여 자리를 잡는 과정을 기술하고, 알함브라 궁전과 역사에 대한 개략적 소개와 인상을 적고 있다. 여기까지가 통상적 여행기에 부합하는 전부다. 이후로 어빙은 궁전에 머물고 주위를 산책하면서 만나는 에스파냐 사람들과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든다. 그리고 알함브라의 진기한 매력을 독자들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타 연주로도 널리 알려진 알함브라는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근거지인 그라나다 왕국의 왕궁이다. 15세기 말 기독교 세력의 수복 이후 잠시 궁전으로 사용되다가 어느덧 방치되어 쇠락한 상황이었던 듯하다. 오늘날 수많은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명소와는 전혀 다른 처지다. 어빙은 관리인의 배려로 궁전 안의 호젓한 홀에서 수 개월간 머물게 되는데, 이 점만 보더라도 당대에 유적에 대한 관심 및 관리가 매우 부실함을 짐작할 수 있다.

 

코마레스 탑, 린다락사 정원과 사자의 정원을 거닐면서 작가의 상념은 알함브라의 마지막 임금인 보압딜에게로 향한다. 그라나다 왕국의 마지막 임금, 이베리아를 영구히 기독교 세력에게 넘겨준 인물, 그에 대한 세인들의 평판은 왜곡과 악의가 증오와 결합하여 그를 희대의 폭군으로 간주하였다. 작자는 그것이 정당한 근거가 없음을 밝히고 있다. 보압딜은 쇠퇴하는 왕국을 지켜낼 영웅적 기개를 지니지 못한 평범한 인물이었을 따름이다.

 

이슬람 세력이 스페인을 점령한 지 거의 8백년, 그들은 이베리아를 알라 신이 지배하는 강토로 만들었고 무수한 세대를 거치면서 곳곳에 이슬람의 자취를 아로새겼다. 애초에 무어인들이 아프리카로 쫓겨났을 때 그것이 영원한 철수로 믿었던 이들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잠시 사세 부득하여 후퇴한 것일 뿐 다시 힘을 회복하면 되찾으리라고 믿었다. 이베리아는 기독교인들에게도 무어인들에게도 모두 자신의 땅인 동시에 고향이었다.

 

- 아벤 하부즈 왕과 아라비아 점성술사의 전설: 풍향계의 집과 정의의 문

- 아름다운 세 공주의 전설: 왕녀들의 탑

 

작가는 알함브라에 얽힌 전설에 주목한다. 사랑을 가로막는 종교, 사랑에 눈먼 이성, 사랑과 가족 간 갈등. 구구절절한 사연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동질적이다. 오랜 이교적 문화의 존재, 상당 기간 영토를 마주하고 대치하였던 역사, 정복이 완수된 지 3백년 남짓 경과한 시점, 해독할 수 없는 낯선 상징과 문자, 가난한 당대 서민들. 이런 요소들이 뒤섞여 알함브라는 마법에 걸린 채 모든 장소와 유적은 한층 신비스러운 전설과 설화를 품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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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중문예의 시원, 에도희작과 짓펜샤 잇쿠
강지현 지음 / 소명출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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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사는 17세기 이후를 근세로 분류하는데, 근세 전기는 오사카와 교토 중심의 상방문학으로, 18세기 이후는 근세 후기로 에도 중심으로 구분된다. 근세 문학은 문예의 중심이 무사에서 상인계층으로 이동하여 죠닌문학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정치적 안정에 따른 상공업의 발달, 막부와 영주 간 통치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인프라의 구축, 사회계층 간 신분이동의 곤란 등이 주된 배경이다.

 

저자는 18세기 이후 에도 문학의 중심인 희작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희작은 상품으로서의 문학을 뚜렷이 인식하고 (교훈이 아닌) 우스움을 유일한 미의식으로 표방하는 소위 희작정신을 지닌다. 보편적, 통속적인 대중의 도덕과 인정세태를 묘사하고 다양한 언어유희를 동반하여 극도의 재미를 추구한다.

 

먼저 제1장에서는 골계본의 대표작 <동해도 도보여행기>를 통해 이 작품이 당대와 후대의 대중 문학과 타 장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변용되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동해도 도보여행기>는 풍경 묘사를 생략하고 특산품과 풍속을 골계적으로 묘사하며, 여관여인들과의 유희와 장난, 억지 빗대기와 농담이 두드러지는 교카 등 당대 서민들의 기호에 철저히 충실하고 있다.

 

저자는 일대 베스트셀러인 <동해도 도보여행기>가 이후 우키요에와 주사위판 그림으로 확장되면서 장르 간 결합 현상을 보이는데 주목한다. 주사위판 그림을 통해 역으로 에도시대 풍속을 엿보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표상문화론에 입각한 통합적 사고에 의한 접근”(P.46)으로 분석한다. 이하에서는 주사위판 그림을 통해 <동해도 도보여행기>를 읽고 있는데 상당 분량(170여 쪽)을 차지하여 이 책의 주 콘텐츠라고 할 만하다. 5편의 주사위판 그림과 원작 소설의 삽화를 통해 원작 내용의 반영과 변용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 전문적이고 기계적인 기술이 많아서 비전공자로서는 재미없는 대목인데, 그래도 번역된 2편 이외의 원작 내용을 감상하는 묘미가 있다. 주사위판 그림은 원작 내용과 달리 사건 순서의 변경과 차용, 발화자의 역전 등 수법을 구사함이 특징이다.

 

이후 생산되는 만화, 영화 및 TV 드라마 등의 경우 원작을 토대로 하지만 원작의 틀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각색의 모습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원작의 이름만 빌린 것이라고 하겠지만, 당대 관객층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긍정적인 평가도 가능하다.

 

2장에서는 그림소설[쿠사조시]에 대한 분석으로 황표지와 합권을 다루고 있다. 황표지와 합권은 표절과 모방을 주요 기법으로 재창작 방식을 도입하는 사례가 많으며, 특히 작가 자신을 희화화시켜 등장시키는 수법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친근미와 해학성의 이중적 효과를 의도하는 것으로 나체 취향과 다복녀, 즉 추녀 취향도 해학미 부여라는 동일한 목적에 기여한다. 그리고 황표지와 합권은 그림소설답게 삽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독자에게 즉각적인 흥미와 아울러 웃음 유발을 의도하고 있어서이다.

 

여기서는 <짓펜샤 잇쿠 작품 선집>에서 소개된 <잇쿠, 겨우 창작하다><미남 대할인 판매>외에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한다. <귀명정례 기묘한 자식받침대의 지팡이>, <돋보기 들판의 어린 풀>, <적본의 쥐 흑본의 여우 두 이야기 혼인 기담>, <다케모토 기다유가락 무사>, <여행 중 수치를 써서 버린 한 통>, <여행 중 수치를 써서 버린 한 통>, <어설픈 귀동냥> 등은 짓펜샤 잇쿠의 작품이고, <교덴 덧없는 세상 술에서 깨다>(시키테 삼바), <손수 담근 아코젓갈>(혼젠테 즈보히라) . 제목만으로도 무척 흥미진진할 것 같아서 읽고 싶지만 아쉽게도 불가능하다.

 

오늘날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아동뿐만 아니라 성인 대상으로도 확고한 전통을 차지하고 있다. 저자는 이것이 에도희작의 골계본과 그림소설 등에서 연원하는 것으로 주장한다. 기발한 착상, 황당무계한 스토리, 그로테스크한 묘사 등은 현대에 들어와 무에서 생성된 특성이 아니다. 이것은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에 대한 일람만으로도 충분히 공감과 동의가 가능하다.

 

전문적이고 학술적 성격의 저작이지만 중간의 기술적 부분을 건너뛴다면 흥미를 잃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다. 더구나 잇쿠의 작품집을 읽었다면 저자의 분석 도중에 작품 내용을 쉽사리 떠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소개되지 않은 다른 에도희작들에 대한 지적 호기심도 충족할 수 있어 유익하다.

 

저자는 부록으로 자신의 에도희작 연구논문 요약본과 짓펜샤 잇쿠 연보를 수록하고 있으며, 일본문학의 흐름도 간단히 정리하고 있어 독자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저자가 번역한 <짓펜샤 잇쿠 작품 선집>을 읽고 나서 부족한 해설에 미흡함을 느껴서이다. 작가 및 작품세계, 나아가 에도희작에 대하여 더 자세히 알고 싶었는데, 마침 옮긴이가 집필한 저서가 몇 권 있는 걸 알게 되어 살펴보고 이 책을 읽기로 하였다. 2009년의 <근세일본의 대중문학>은 용어 자체가 통일되어 있지 않은 게 큰 난점이다. 작품명과 인명을 한자 독음 그대로 표기(동해도중슬률모, 굴신일구저, 색남대안매 등)하여 이해에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2013년의 <일본근세문예의 웃음, 도보여행기물과 충신장물>도 마찬가지며 한자가 직접 노출되어 있어 문외한은 섣불리 다가가기조차 어렵다. 즉 상기 두 책은 아마추어가 아닌 모두 관련 전공자의 연구를 위한 것이다. 참고로 이 저작은 2012년에 출판되었으며 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되어 한층 신뢰감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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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인의 사무라이 - 완역 가나데혼 주신구라 일본명작총서 1
다케다 이즈모.미요시 쇼라쿠.나미키 센류 지음, 최관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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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초에 발생하였던 실제 사건을 모델로 일본의 대표적인 명작 조루리로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무라이의 본 모습, 즉 충성과 복수, 할복이라는 극적 요소가 여기에서 모두 드러난다. 발표 당시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인 인기를 놓지 않고 소설, 영화, 드라마 등으로 각색될 정도로 일본의 국민연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배경이 된 실제 사건인 아코 사건에 대해서는 책 후반부의 해설에 자세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당대의 사건을 실명 그대로 쓸 수가 없는 무대극의 제약 상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 무로마치 막부 시절을 배경으로 한 군기 모노가타리인 <다이헤이키>를 차용하고 있다. 작중 인물과 실제 인물이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묘사되어 있어 혹자에 따라서는 다소간 혼동의 여지가 있다.

 

일본인들이 이 작품에 그토록 열광한 연유는 작품이 내세우는 지향점이 대중들의 가치관과 일치하였기 때문이다. 베네딕트가 일본을 상징하는 사물로 국화와 칼을 내세웠을 정도로 사무라이 정신, 즉 무사도는 오랜 전란의 시기를 겪어온 그들에게 인생관과 세계관의 핵심적인 기준이 되어 왔다. 그것은 외적으로는 절대적인 주군관계, 내적으로는 맹목적인 명예심을 근간으로 한다. 충성과 명예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체제를 지탱하는 기본 가치다. 이를 지키기 위해 무사는 스스로와 가족의 희생을 기꺼이 무릅쓴다. 개인적 감정과 애상을 드러내는 것은 무사의 수치이자 무사로서의 자격에 미달된 자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47인의 사무라이는 주군의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그리고 복수에 성공하였으며, 당당한 자세로 할복을 받아들였다.

 

또 하나, 무도한 지배층에 대한 반감과 약자에 대한 동정. 엔야 한간을 모욕한 고노 모로나오와 그를 비호한 막부는 신분과 세력 면에서 절대 지배층이다. 비행과 부정의를 자행하는 지배계급을 상대적 약자들이 통렬히 비판하는 행위를 감행할 때 대중들은 통쾌감과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작중에는 복수까지만 나타나고 할복과 관련한 내용은 생략되어 있지만 실제 사건에서 막부가 이들의 처리에 고심했던 연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는 단선적으로 흘러가기 쉬운 작품 구조에 다양성과 입체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몇 가지 날줄을 덧붙이고 있다. 하야노 간페이의 충성과 비극적 죽음은 장렬한 여운을 남겨주며, 리키야와 고나미의 우여곡절의 결합은 슬픈 결말을 목전에 두고 있어 비극미를 고조시킨다. 여기에 별도의 단을 할애하여 상인 기헤이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꿋꿋한 의리를 보여주어 무사가 아닌 서민계층에도 의리의 귀감이 존재함을 알려준다. 반면 오노 구다야 부자와 사기사카 반나이는 인물 간 갈등과 긴장을 끌어올리고 사건을 악화시키는 악역을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오보시 유라노스케와 무사들이 온갖 고난을 감내하면서까지 복수에 매달릴 정도로 그들의 주군 엔야 한간이 훌륭한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그에 대한 작중 인물평은 얕은 심기라든지 급한 성격처럼 다소 부정적인데 가깝다. 당시 엔야 한간의 주위에 오보시가 있었더라면 모모노이 와카사노스케를 가신 가코가와 혼조가 구했듯이 어떻게든 원만하게 처리하였을 것이다. 오보시와 동료들이 자신들을 희생한 이유는 오로지 엔야 한간이 자신들의 주군이었다는 점, 그에게 생계를 의지하였다는 점이다. 그것만으로 충성의 이유는 충분하다.

 

장한 일이로다. 누구라도 주군을 모시는 자의 마음은 당연히 이렇게 되어야 하는 법이다. 무언가 힘이 필요하다면 사양 말고 말하시오.” (P.215)

 

큰 공이다. 큰 공을 세웠다라고 모두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후세 후대까지 전해지는 이 의사들의 이야기. 이것이야말로 실로 천황의 치세가 계속되는 것처럼 길이 남을 것이다.” (P.221)

 

그들의 맹목적 충성은 이렇게 대다수에게 찬양받는다. 그것의 바람직성 여부에 대한 가치 판단과는 별도로 당대 및 후대 일본인들의 가치관이자 근원적인 정서임은 인정해야 한다. 앞서 읽은 <소네자키 숲의 정사>가 인정(人情)의 경계에 도달하였다면, 이 작품은 일본인들의 정서의 다른 측면, 즉 의리(義理)의 극한을 보여준다.

 

정서와 문화 깊숙이 내재한 고유한 코드를 건드린 작품이 오래도록 회자되는 고전으로 정착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상이한 문화적 시각에서 볼 때 공감과 납득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이해는 할 수 있다. 비판적 관점은 유지하더라도 일본 및 일본인들을 이해하기 위한 창문으로서 접근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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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펜샤 잇쿠 작품 선집 - 근세일본의 대중소설가
짓펜샤 잇쿠 지음, 강지현 옮김 / 소명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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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작품>

1. 동해도 도보 여행기 1

2. 동해도 도보 여행기 2

3. 유곽의 의리

4. 잇쿠, 겨우 창작하다

5. 미남 대할인 판매

 

짓펜샤 잇쿠라는 이름은 몇 번 스쳐지나가며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근대일본 문학작품을 읽어나가던 중 이즈미 교카의 소설을 통해서 언젠가는 펼쳐들어야지 생각하였다. 막상 망설인 연유는 흥미로움에 대한 기대감에 못지않은 이질성과 실망감의 우려로 인한 것이었다.

 

잇쿠는 전형적인 대중소설가다. 도쿠가와 막부 집권 후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은 서민 대중, 특히 상인 계층의 급성장을 불러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서 근세일본 문학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옮긴이는 잇쿠의 희작들을 처음 국내에 소개하면서 그의 다양한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있도록 골계소설, 화류소설, 그림소설에서 골고루 추려내고 있다.

 

<동해도 도보 여행기>는 그의 대표작이다. 일단 전체 8편 중에서 두 편만 수록하고 있어 아쉽기 그지없다. 동해도는 근대 일본지명 중 도쿄에서 교토까지 이르는 지역의 명칭이자 동서로 관통하는 주요 도로를 가리킨다. 두 주인공 야지로베와 기타하치는 도로를 따라 교토와 오사카를 구경하기 위하여 도보 여행길에 나선다. 이들의 여정은 도로의 역참을 따라 진행되고 여행 중 겪는 사건과 일화 위주로 서술되어 있다. 자연 풍경 등은 거의 다루지 않으며, 무사와 서민, 유녀 등 마주치는 인물들의 생활상을 사실적이면서도 해학적으로 묘사하는데 특색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잇쿠가 제공하는 웃음의 방식은 우스꽝스러운 상황 설정과 행동도 있지만, 대부분은 언어유희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어의 동음이의어와 연상어구 등 언어 자체의 기발한 재치를 통한 맛을 보여주고 있어, 일본어가 아닌 번역된 언어로는 재미를 알아차리기가 매우 어렵다. 내용과 상황을 보면 굉장히 해학적이어서 웃음보가 터질 지경이 되어야 마땅한데도 각주를 읽어야지 그렇군! 하고 의미가 이해되는 경우가 속출한다.

 

1편은 이러한 난점에다 작가의 독특한 스타일이 아직 정립되지 않아서 약간은 어수선하고 산만한 인상마저 들어서 조금은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반면 2편부터는 잇쿠 특유의 골계와 해학적 장면, 상황, 행동, 어조 등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작품 몰입이 가능하다. 한창 작품의 맛을 느껴보려고 하는 찰나에 중단되는 점이 섭섭하다.

 

<유곽의 의리>는 화류소설 장르에 속한다. 샤레본은 유곽과 유녀를 중심적 소재로 삼는다. 근세일본의 독특한 유곽문화는 이런 장르마저 낳을 정도다. 이 작품의 문제적 인물은 이사부로다. 그에 대해 작가는 호의적인 인물평으로 시작하면서도 방탕아, 흑심 등의 표현으로 훗날 사건의 복선을 깔아놓는다. 이사부로는 오나미와 부부의 연을 맺었으면서도 유녀 하나조노와 관계를 맺는데. 그녀는 집안의 가난 때문에 유녀가 된 오나미의 언니이다. 이사부로는 여색에 대한 욕심으로 두 자매를 희롱하는 우를 범하게 된 것이다. 사실을 알게 된 하나조노는 인정과 의리에서 갈등을 겪는다. 이사부로와 헤어져야만 하는 게 마땅한 도리임을 알지만 그에 대한 애정을 끊을 수 없는 유녀의 심정. 후편을 기약하며 작가는 여기서 그친다.

 

<잇쿠, 겨우 창작하다><미남 대할인 판매>는 그림소설로 분류된다. 역자에 따른 삽화와 문장이 혼연일체가 된 성인을 위한 그림소설책이라고 한다. 확실히 삽화와 번역문을 비교해 보면 큼지막한 삽화가 중심을 이루고 여기에 지문과 인물의 대화가 여백에 쓰여진 방식임을 알 수 있다.

 

<잇쿠, 겨우 창작하다>는 잇쿠 자신의 창작과정을 소재로 삼아 해학적 전개를 하고 있다. 인물의 행위와 내용 전개가 비현실적이고 황당하지만 거침없는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어 판타지적 요소도 다분하다. 배를 째어보니 각등 파편이 들어있다든가, 배 북을 치는 모습, 지혜가 몸에서 가출하고 쥐어짜는 대목, 문수보살과 장군의 지혜를 얻으려다가 실패하고 원숭이의 잔꾀를 빌려 겨우 하찮은 글이나마 쓰게 되었다는 등등. 특히 지혜가 가출한 동안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농담, 잡담, 동음이의어, 서문 등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잇쿠 특유의 골계미가 드러난다.

 

<미남 대할인 판매>는 사이카쿠의 <호색일대남>을 연상시킨다. 타고난 미남자 엔지로는 연애편지를 폐지장수에게 넘길 정도로 여인네들에 둘러싸여 방탕한 나날을 보내지만, 어느덧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미모도 서서히 퇴색한다. 가진 것, 배운 것 없는 그는 점차 초조함을 느껴 적당한 아내를 골라 정착생활을 하려고 하지만, 유녀와 과부에게 속임을 당하고 기껏 야반도주했더니 여자가 뒤바뀌는 등 만사가 여의치 않다. 그러다가 부지런한 시골여자와 인연을 맺고 부뚜막신의 조언을 받아 훗날 부자가 된다.

 

작가가 엔지로의 일생을 보여주면서 독자에게 교훈적 의도를 부여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독자는 미남자 엔지로의 호색적인 일화와 장면을 보면서 외설적 흥미와 해학적 재미를 동시에 느낀다. 엔지로를 차지하기 위한 여인들의 절구공이 싸움 대목, 엔지로를 사이에 둔 자매의 치열한 경쟁 장면, 우산 같이 쓰기 작전으로 여인을 유혹하려다 오히려 무전취식 신세가 된 엔지로의 일화 등을 보고 읽으면서 당대 대중은 킬링타임과 동시에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꼈을 듯하다. 서민과 대중의 기대와 취향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것, 이것이 소위 에도 희작의 정신이 아니었을까.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작가와 작품이니만치 독자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생경하다. 충실한 작가와 작품 해제가 뒤따르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터인데 간단한 역자 서문 밖에는 없다. 내용과 번역, 만듦새 등 여러모로 좋은 책이지만 독자에 대한 자그마한 배려가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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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자키 숲의 정사 일본명작총서 2
자카마쓰 몬자에몬 지음, 최관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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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카마쓰 몬자에몬.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18세기 초 일본 근세 전기의 극작가. 그는 평생 조루리와 가부키 같은 무대상연용 작품을 많이 남겼다. 신주(心中)는 정사(情死)를 의미한다.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에 절망한 연인의 동반자살.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말을 떠올리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셰익스피어의 것에 비견하기도 한다. 본문 60쪽 정도의 짧은 분량이며, 권말에 원문을 수록하고 있다.

 

서민 대상의 인형극인 조루리로 쓰여진 만큼, 영국 작가와는 인물들의 사회적 신분이 다르다. 남자는 상점 종업원, 여자는 유녀(遊女)로 아무리 좋게 보아도 결코 사회적으로 우대받는 계층은 아니다. 상업이 활발히 전개되던 시대상을 반영하여 연인의 미래를 불행으로 만드는 사기 사건이 발생한다. , 믿었던 이의 배신, 이것은 데릴사위 제안을 뿌리치고 사랑의 승리를 위해 나아가려던 도쿠베에게 치명타를 날린다.

 

일본 근세에서 유녀(遊女)의 지위는 이중적이다. 도덕적 가치 기준으로는 천시 받게 마련이지만, 사회적으로 공인되고 보편화되다 보니 실제적으로는 일개 직업의 하나로 당당히 간주되었다. 그렇더라도 인연과 기회만 주어지면 유곽을 떠나 평범한 여인네의 삶을 간구하는 희망을 버릴 수는 없었다. 오하쓰처럼 진실한 사랑을 찾은 경우라면야.

 

작품의 기본적 갈등구조는 의리와 인정의 상충이다. 도쿠베는 의리상 데릴사위가 되어 숙부의 가게를 물려받는 게 마땅하다. 어릴 때부터 보살펴주고 키워주다시피 한 은혜와 정해진 수순을 거부하는 순간 그는 의리를 저버린 셈이 되어 더 이상 숙부의 가게에 머물 수 없다. 인정(人情)은 남녀 간의 사랑이다. 의리를 끊고 인정을 선택했지만, 돈을 갚지 못하는 형편이 되고 오히려 죄를 뒤집어 쓸 지경에 놓이게 된 도쿠베. 의리도 인정도 불가능하게 된 순간, 그에게는 오직 하나의 길만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정사(情死)는 우발적 사건이었던 반면, 도쿠베와 오하쓰는 상호 동의에 따라 의식적으로 감행하였다. 두 사람은 현세에서는 맺어질 대안이 없음을 절감하고, 내세의 기약을 도모한다. 신주(心中)를 먼저 결심한 이는 의외로 오하쓰다. 툇마루 밑에서 오하쓰의 발을 통해 주고받는 그들의 무언의 대화는 실로 장엄한 비극미마저 느낄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도쿠베 님, 같이 죽어요! 저도 같이 죽을 거예요!”하고 발로 뜻을 전하니 툇마루 밑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끌어안고 애타게 운다. 여자도 본심이 드러나는 것을 감추기 어렵고, 서로 말은 못하지만 마음과 마음으로 주고받으며 남몰래 울고 또 울고 있다. ” (P.50)

 

사랑의 죽음, 죽음을 통한 사랑의 완성은 동서양의 문학과 예술에서 막론하고 마르지 않는 테마였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등은 표면상 비극으로 끝나지만 내면으로는 사랑의 불멸의 힘을 재확인하는 진군의 나팔 소리가 아니겠는가. 신주(心中)는 단순한 자살 행위를 초월한다. 불가항력의 사유로 이승에서 인연이 맺어지지 못하는 연인은 죽음의 시련과 경계를 넘어서 저승에서 부부로 영원한 결합이 가능하게 된다. 즉 신주는 내세의 결혼을 서약하는 행위인 것이다. 작중에서 도쿠베와 오하쓰를 지칭하는 호칭이 신주의 실행 직전에 돌연 달라지는 까닭이 여기에서 비롯한다.

 

극작품은 대개 극 상연과 분리하여 단독으로 읽으면 온전한 제 맛을 구현하는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무대에서 상연될 때 비로소 빛을 얻고 의미를 띠게 되는 대사나 행위, 배경 장치 등 때문이다. 이 작품을 조루리나 가부키로 실제 상연되는 장면을 보면 어떤 감흥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럼에도 뛰어난 작품은 조건의 유·불리, 분량의 다소에 상관없이 어느 순간에도 자체의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바로 이 작품처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된 후 청년들의 자살이 속출하였듯이 몬자에몬의 이 작품 또한 무수한 아류작과 아울러 신주를 양산하였다. 결국 당대인, 그리고 후대인들의 마음줄을 건드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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