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 바람소리 법정 스님 전집 3
법정(法頂) 지음 / 샘터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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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물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사람의 소리 ]

넒은 의미의 수상록 즉 수필, 일기, 서간 등을 읽는 커다란 재미는 필자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육박할 수 있다는데 있다. 독자의 상상력과 사실과 허구의 판단을 요한다는 점에서 소설이나 시 등 문학작품과도 구분되는 특성이다. 그것이 시간의 흐름을 좇아 꾸준히 서술되어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하겠다.

『물소리 바람소리』는 1980년대에 초중반에 걸쳐 씌어진 글들이다. 일찍이 손에 들었던 『텅빈 모음』이 1970년대 초반,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가 1990년대 초반에 씌어진 글이기에 시간적 간극이 확실히 구분되는 셈이다.

며칠전에 신문지상에서 우연히 저자의 세속 나이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이 씌어진 무렵은 그가 오십대 초반이다. 오십이면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던가. 확실히 저자의 글에는 수도생활에의 정진과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라는 양날의 줄타기가 절묘하게 표출되어 있다. 자칫 삐끗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곡예다.

그의 글은 여전히 서슬이 시퍼렇다. 정치, 사회, 교단 내부의 부조리와 비리에 대한 통렬한 일갈은 왜 그가 군사정부에 의해 리스트에 올려졌는지를 알게끔 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치열한 자기반성과 구도의 삶을 통해 우리는 그가 본연의 자세를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정신을 깊이 하려면 먼저 예절과 신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남모르는 사이에는 딱딱하게 여겨질 만큼 예절을 차린다. 그리고 서로가 친숙한 사이가 되면 허물없이 대한다는 핑계로 예절을 무시한다. 친구간, 부부간, 부모자식간에도 그러하다. 허물없음이 좋은 방향으로, 긍정적으로 귀결되는 일은 별로 없는데 문제가 발생한다. 예절은 상호간의 일차적인 필터 즉, 여과기능을 담당한다. 감정과 태도가 직설적으로 표출된다면 얼마나 뻑뻑할까. 뼈와 뼈 사이에 연골이 존재하는 이유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나 역시 이러한 잘못을 수차 저지렀고 그때마다 후회하곤 한 아픈 경험이 있다.

좀 모자라고 아쉬운 것도 있어야 그것을 갖고자 하는 기대와 소망도 품게 되는 것...할 수 있는 한 그 기간을 뒤로뒤로 미루는 것이 보다 오래 행복해질 것이다.

학생시절에는 갖고 싶은 것은 많은 반면에 내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경제적 자원이 부족했다. 그래서 항상 입맛만 다셨고, 오랜시간 공들인 끝에 획득할 수 있었을 경우에 그 기쁨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닳을세라 아끼고 조심조심 다룬다. 내게는 음반이 그러했다. 이제 직업인으로서 원하는 음반을 구입하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다. 서가에는 음반의 숫자가 날로 넘쳐흐른다. 하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기쁨과 행복감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어디 음반 뿐이겠는가.

아는 것과 삶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한낱 공허하고 메마른 지식으로 처지고 만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은 유가나 불가나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으로 보아서 매우 중요한 사안임은 틀림없다. 여기서의 지(知)는 지(智)가 아닐까. 단순한 지식(knowledge)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지혜보다는 지식을 강조한다. 지식인이나 지식기업, 지식사회를 언급할 때 지(知)와 지(智)가 혼재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행동과 연계되지 않은 창백한 지식은 지혜가 아니다. 오늘도 여전히 자기계발에 관한 학습을 하고 서적을 탐독한다. 모든 자기계발서적의 최대 약점은 독자가 지행합일(知行合一)하지 않는다면 썩은 글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나같은 범인들은 타성에 빠져 남의 인생처럼 건성으로 사는 사례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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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4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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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법정 스님 전집 7
법정 지음 / 샘터사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간단하고 단순한 글 속에 배어있는 산문의 향기]

여기에는 1993년에서 1996년 사이에 쓴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첫 수상집인 <영혼의 모음>이 1970년 전후인 것에 비하면 이십여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시간의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법정 스님의 세상과 만물을 보는 안목의 깊이와 너그러움이다. 반면에 무소유의 생활과 정신은 더욱 심화되고 치열하게 수련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쉽고 가벼웁게 읽히는 탓에 섯불리 대단치 않게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경지에 오른 이라야만 가능하다. 지난 번 책에는 아직도 학승(學僧)의 면모가 은연중 빛을 발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면, 이번에는 모든게 하나로 융화되고 삶 속에 스며들어 인위적으로 현학을 과시하고자 하는 풍모가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투명하고 은은한 영혼을 느낄 수 있다.

수십년을 산중에서 홀로 수행하는 삶은 아무나 흉내낼 수 없다. 얼핏 빼빼 마르고 꼬장꼬장한 노인네가 아닐까 상상이 된다. 도처에 풍기는 따뜻한 인간적 내음은 이러한 나의 생각이 기우에 불과하였음을 보여준다.

부모곁에서 떨어져나와 아파트에서 홀로 지낸지 벌써 한해반이 다가온다. 스님의 말대로 자기 식대로 살려면 투철한 개인의 질서가 전제되어야 함을 뼈저리게 된다. 특히 게으르지 않아야 된다는 말이...아무도 일깨워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스스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

요즘 일상이 너무 나태해지고 있음을 절감한다. 특히 아침 출근시간은 완전히 고역이다. 툭하면 늦잠에 지각이 일쑤다. '아침형 인간'이 각광받고 있는 시대에 추세를 반영하지는 못하더라도 오히려 퇴행하고 있는 자신에 씁쓸함마저 느낀다. 하지만 어찌하랴, 이러한 대오각성도 그 효과가 불과 하룻밤에 지나지 않는데..

보다 간소하고 단순하게. 아마도 이게 법정 스님의 좌우명이 아닐까. "우리가 행복하고 보다 뜻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 것인지, 자신의 분수와 처지에서 냉정하게 생각을 가다듬어야 한다." "행복의 비결은 우선 자기 자신으로부터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일에 있다." '적게 가질수록 더욱 사랑할 수 있다."

마지막 문구가 나의 가슴을 절절히 때린다. 내가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된지 이십년이 되었다. 첫음반을 구입한지는 십오년 정도일까. 그때는 부족한 용돈을 아끼고 아껴서 겨우 레코드 한 장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것도 매장에 가서 들었다 놓았다 하기를 수십번이나 망설이면서. 살며시 바늘이 판에 내려 앉으면서 울려퍼지는 아름다운 음의 향기. 한번 사면 적어도 열번을 되풀이하여 감상하였으며, 해설지도 꼼꼼히 숙독하였다.

직장인인 요즘 아무래도 자금사정이 넉넉한 탓에 평균 한달에 십여장 이상의 CD를 구입한다. 직접 매장에 가서 사는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대개는 온라인으로 주문한다. 오디오도 과거와는 비할데 없이 고가이고 뛰어나다. 음악을 듣는 즐거움도 응당 늘어나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다. 음악에서 순수한 감동의 눈물을 흘린 적이 언제적이었던가. 과시하기 위하여 음반을 구입하는 것은 아닐까 자문하곤 한다.

그가 세상사에 초연한채 암자에 은둔하고 있지는 않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에 비통함을 드러내며, 각박하고 비인간적인 현대사회의 냉혹함과 무자비에 혹독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무한한 경쟁만을 치르면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고? 이류 삼류로도 얼마든지 살아남아 왔다."

얻는 것만큼 잃는 것도 있다.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있지 않고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워졌느냐에 있다." 우리는 지식의 많음을 자랑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다.

법정 스님의 글은 평이함 속에 깊은 함의를 통해 되새길수록 심오한 맛이 우러나오는 좋은 글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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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4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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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모음 법정 스님 전집 6
법정(法頂) 지음 / 샘터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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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소유의 글쓴이가 말하는 영혼의 목소리]

수필집 가운데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꽤나 유명하다. 그런데 '무소유'의 출전이 이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은 법정 스님의 여러 수상집 가운데 첫번째에 해당한다.

짤막짤막한 글들이 읽기에 부담없이 다가온다. 그러면서 흩날리지 않고 따뜻하게 때로는 스산함마저 자아낸다. 문체는 꾸밈없고 담백하다. 화려한 수식어는 배제하였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가슴에 다가오는 것은 저자가 마음으로, 영혼으로 소리를 내는데 연유하지 않나 싶다.

역시 기본 줄기는 '무소유'의 정신. 제목만으로도 유명한 글을 제외하더라도 곳곳에 그 뜻이 오롯이 자리잡고 있다. 물건에 대한 집착은 마음마저 빼앗기게 된다. 아끼던 물건을 잃었을때의 그 분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불안과 초조. 본래 무일물이요 무소유라고 하지만 범인들은 여전히 범속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

도처에 금과옥조가 널려 있다. 어떻게 이 귀중한 샘물을 흘리지 않고 퍼올릴 것인가.

'홀로 있을때 본래적인 나로 돌아갈 수 있는데, 그 순간은 견뎌내지 못한다' (비가 내린다)

'남을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이해하고 싶을 뿐이지.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타인이다' (오해)

'잘산다는 것은 결코 편리하게 사는 것만이 아니다' (흙과 평면 공간)

'만난다는 것은 개안을 의미한다. 생명의 환희와 감사의 염이 따르지 않는 것은 만남이 아니라 마주치는 것이다. 만남에 의해서만 인간이 형성되는 것이다' (만남)

'모진 비바람에도 끄덕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눈이 덮이면 꺾이게 된다' (雪害木)

어떤 경지에 도달해야 이렇게 천의무봉을 갖출 수 있을까. 아무 것도 갖지 않는 대신 모든 것을 갖는 지고의 지혜.

오늘 이 순간에도 나는 시끄러운 소음속에서 리모콘을 손에 쥔채, 내 소유물을 지키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탐욕의 눈길을 두리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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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4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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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켄 블랜차드 외 지음, 조천제 옮김 / 21세기북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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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진리는 가깝다! 그러나 실천은 아직 멀다!]

작년도 비즈니스부문의 대표적 베스트셀러이다. 가정과 회사에서 생산성과 관계향상을 고민하고 있던 한 사나이가 우연히 보게된 범고래쇼를 통하여 인간사회의 절묘한 비법을 알게 되고, 이를 가정과 회사에 적용하여 성공을 거둔다는 스토리를 갖추고 있다. 스토리가 기초를 이루지만 중심이 아니라 고래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교훈을 어떻게 조직(가정, 사회)에 적용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담겨있다.

저자의 주장은 매우 단순하다. 엄청난 덩치와 야수성을 간직한 범고래에게 쇼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강제적이고 물질적인 방법을 통해서는 한계에 봉착한다. 예전에 종종 뉴스에 나왔듯이, 서커스쇼에서 맹수들이 조련사사를 공격하여 죽이는 사례처럼. 반면 조련사와 범고래 사이에 우정과 신뢰를 키워나가면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고래는 행동하게 되고, 마지못해가 아니라 진정으로 쇼를 하게된다는 것이다.

신뢰와 우정을 키워나가려면, 맨먼저 해야 할 일은 칭찬(!)을 해주는 것이다. 그것도 일회성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그리고 진심에서. 우리는 너무나 칭찬에 인색하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자기자신과 타인에 대하여 칭찬보다는 비난이 압도적임을 깨닫게 된다. 잘한 일보다는 잘못한 일에 관심과 주의를 집중한다.

조련사의 입을 통해 저자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소위 '뒤통수치기'에 길들여졌는지를 폭로한다. 이미 우리의 두뇌는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에 친숙하다. 누가 업무나 행동을 잘 하고 있으면 으레 그러려니 넘어간다. 그러다 어쩌다가 잘못하게 되면 마침 잘되었다는 셈으로 꼬투리를 잡고 달달 들볶는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신뢰가 아니라 불신이, 우정 대신 적대감이 싹트게 된다. 무언간 잘해보겠다는 태도 대신 복지부동의 자세만이 은연중에 배태되는 것이다.

범고래 조련에서 유추된 것이지만, 원래 진리는 간결하고 단순한 법이다. 불교나 기독교의 교리를 포함하여 유가 경전 등 핵심은 간명하지 않던가. 하지만 간명한 진리라고 해서 실행마저 쉽지는 않다는 것을 우리는 많은 경험에서 체득한 바 있다.

칭찬을 해라, 진심으로. 하지만 스스로 해보아라. 아마도 너무나 어색하고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머리 뿐만 아니라 혀마저도 이미 굳어 있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사무실에서 한번 해보려고 했다가 우물쭈물하고는 유야무야 말았다.

비즈니스 부문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기에 매우 실용적이고 자기계발적인 성향의 책들이 많이 나온다. 태양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사실 내용이 충격적이지는 않다. 이전에 <아침형 인간>을 한번이라도 시도해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었던가. 이제는 실천의 문제다. 아무리 금과옥조의 진리도 실천을 동반하지 않으면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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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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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광의 자치통감 1 - 진시황의 중국 통일과 멸망
사마광 지음, 권중달 역주 / 세화(도서출판)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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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한 중국사, 그 핵심에 이르는 힘들지만 보람찬 길]

중국사 고전의 번역본은 현재 <사기>가 나와 있다. <사기는> 잘 알고 있듯이 중국 태초시대부터 한무제 시기까지를 기전체로 정리한 것이다. 한나라 이후의 시기를 다룬 사서로 유명한 것이 바로 이 <자치통감>이다.

공자의 <춘추>에서 중단된 시점 즉, 전국시대부터 이 책은 출발한다. 그리고 바로 중국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의 멸망 까지의 8권을 다루고 있다. 역자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번역작업을 진행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는데, 그 뒤 한나라 부분을 타출판사에서 펴냈으니, 약속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사마광은 송나라 말기 사람이다. 머리말에서 역자도 언급했듯이 그는 사마천을 계승하기 보다는 공자의 역사필법을 계승하였다. 즉, 기전체가 아닌 편년체로 기술한 것이다. 따라서 진시황 통일 이전에는 주나라, 이후에는 진나라를 기준으로 연도를 정리하고 있다.

편년체이기에 한 해에도 각 제후국 별로 다양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어 당시 중국사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는 독자는 상당한 혼란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이 다루는 시기가 <사기>와 중첩되는 까닭에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기술방법 자체가 다르고 또한 사마천과 사마광의 시대적 차이, 역사관의 차이 등으로 또다른 읽는 재미를 놓친다면 아까울 것이다.

새삼 내용 하나하나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이미 열국지에서 획득한 상당한 지식이 있지 않는가. 각종 고사성어의 유래를 찾는 즐거움도 존재한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우리가 역사를 읽고 알아야만 하는 이유다. 그것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차원이 아니라, 과거의 교훈을 오늘에 되새겨서 미래 개선을 위한 토대로 삼고자 함이다.

E.H.카가 지적했듯이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역사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들은 학교에서 역사(국사, 세계사)를 단순한 입시도구로 교육받은 탓에 역사를 통하여 선조들이 후세인에게 전하고자 하는 진실한 목소리를 들을 기회를 박탈당했다. 더우기 현대사회는 눈앞에 이익이 되지 않으면 철저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더욱 역사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 싶다. 역사를 원전(비록 번역본이지만)을 통해서 습득하는 기회가 더욱 많이 주어지기 바란다. 역자의 번역작업이 쉼없이 지속되기를 다시 한번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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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4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4.3.7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