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전히 가지런하게 놓인 나막신, 투박해 보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면 단내가 새어 나올 것 같은 질그릇, 아직 할 이야기가 남은 듯 버리지 못한 미련이 담긴 빈 병,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빛과 그림자를 모두 집어삼킨 채 시침을 떼는 테이블 등을 그린 그림에는 "매형이 내 그림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 정도면 괜찮다고 할까?"라는 고흐의 수십 번의 질문이 묻어 있는 듯하다.

한순간 눈에 들어오는 모습 그대로를 붓으로 재빨리 담아내 미완성 같은 완성을 추구하는 이들이 인상주의자라면, 신인상주의는 원색의 작은 색점을 빼곡히 찍어 그리는, 이른바 점묘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이 그림은 고흐가 ‘점묘법’을 익혀 나름대로 구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섬세한 붓질로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린 그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눈, 들판, 지붕, 사람, 개, 진흙, 나무 등 색을 입고 서성이는 이 모든 것에는 묘한 힘이 서려 있어 풍경 속에 뛰어들게 만든다. 캔버스 깊숙이 손을 넣었다 빼면 손목까지 눈이 묻어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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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저자 로이 밀스

해나무

2024-11-30

과학 > 기초과학/교양과학

원제 : Muscle: The Gripping Story of Strength and Movement (2023년)





방금 눈을 깜빡였을 것이다. 일부러 깜빡였든 자신도 모르게 그랬든 그 과정에서 한 세트의 미세한 모터들이 여러분의 눈꺼풀을 닫은 뒤 다른 한 세트의 미세한 모터들이 다시 눈꺼풀을 열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눈의 홍채에 있는 근육들은 자동으로 움직이면서 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고, 수정체 주변의 근육들은 망막에 글자의 상이 정확하게 맺히도록 수정체의 두께를 조절하고 있을 것이다. 생명의 기본적인 특성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운동이다.



해부학은 가장 오래된 의학 분야이며, 지금도 모든 의과대학 1학년 학생들은 육안해부학(거시해부학) 실험실에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고대 이집트나 고대 중국에서처럼 고대 그리스에서도 지식의 기반은 논리와 추론이었고, 논리적 추론이 관찰에 우선했다. 해부학적 관찰은 지중해 연안 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서 헤로필로스와 에라시스트라투스가 최초로 체계적인 인체 해부를 수행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런 관찰과학은 지식과 학문 면에서 그리스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던 로마 제국에서는 널리 확산되지 못했다.

그러던 중 기원전 150년경에 갈레노스가 등장했다.


갈레노스는 원숭이, 돼지, 곰 같은 동물을 해부함으로써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에 대한 지식을 보완하려고 했으며, 그러면서 그는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가 이런 동물들의 해부학적 구조와 같은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했다.



근육이 어떻게 힘과 움직임을 만들어내는지 이해하려면 근육의 미세한 구조와 화학적 특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근육은 수많은 과학자들이 평생에 걸쳐 연구하는 대상이며, 이 연구 분야에서 현재까지 3번의 노벨상 수상이 이뤄졌다. 근육이 분자 수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이 책에서 가장 전문적인 내용이 될 것이지만, 나는 최대한 비전문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여행가방을 들고 가만히 서 있다고 상상해보자. 여러분은 이것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여행가방을 든 채 넘어지지 않고 중력에 저항할 수 있으려면 여러 가지 근육을 “동원”해야 하며, 그 근육들은 짧아지거나 길어지지 않아야 하고, 팔, 다리, 등에 있는 관절들도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이 경우에 일어나는 현상이 등척성(동일한 거리) 근육 활성화(수축)다. 이 경우 근육은 일정한 길이를 유지하면서 힘을 만들어낸다. 이와 대조적인 개념은 등장성(동일한 장력) 근육 활성화다. 등장성 근육 활성화는 근육의 길이가 변하고 관절이 움직이는 경우를 말한다. 여행가방을 올리거나 내리려면 이 등장성 근육 활성화가 일어나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근육은 관 모양이나 모낭을 휘감는 근육 같은 모양 외에도 다양한 모양을 띤다. 이 책의 시작 부분에서 동공의 크기와 수정체의 모양을 조절하는 눈의 근육에 대해 설명했던 것이 기억날 것이다. 여러분이 이 책을 듣지 않고 읽고 있다면, 그 근육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 근육들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조절해야 한다면 얼마나 짜증이 날까?



70세가 되면 근육량의 4분의 1이 소실된다. 운 좋게도 90세까지 생존한 사람들에게 남은 근육량은 50퍼센트에 불과하다. 근육량이 이렇게 줄어들면 호흡 약화나 기침 때문에 사망할 수도 있지만 폐렴에 걸려 사망할 위험도 매우 높아진다. 실제로 근육량이 30퍼센트만 감소해도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근육량이 줄어들면 균형 감각과 민첩성이 근력보다 더 빠르게 없어진다. 이는 빠른 반응을 담당하는 빠른 연축 섬유가 느린 연축 섬유에 비해 크기와 수가 더 빠르게 감소하기 때문이다. 전체 근육량이 20퍼센트만 감소해도 낙상 위험이 증가하며, 엉덩관절이 부러지면 20퍼센트의 환자가 1년 이내에 치명적인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



적절한 단백질 섭취의 이점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예를 들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경우, 현재의 지배적인 조언은 근육이 가장 필요로 하는 때에, 즉 운동 직후에 근육에 20그램의 단백질을 보충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다양한 음식의 단백질 함량을 보여주는 표를 보고, 여러분의 식단과 맞으면서도 맛있고, 고칼로리가 아니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출근하기 전에 스테이크를 먹기는 너무 부담스럽고, 대부분의 단백질바는 칼로리 함량이 너무 높다. 씹는 것을 좋아한다면 육포를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물에 섞어 마시는 단백질 파우더도 좋은 선택이다. 유청 파우더 제품은 초콜릿, 쿠키앤크림, 딸기 등 다양한 맛으로 나온다. 비건인 사람은 완두콩, 콩, 씨앗 등으로 만든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



몸매는 대부분 근육에 의해 결정되며, 정상적인 몸매는 미적으로 매력적이다. "건강이 좋다"라는 말의 의미도 원래는 몸매가 좋다는 뜻에서 변형된 것이다. "사용하지 않으면 잃는다"라는 표현도 고대부터 여러 문명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신체훈련에 관한 한 어떤 사람도 아마추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몸이 가진 아름다움과 힘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늙어가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라고 말했다.



성장통(growing pain)에 대해 알려진 유일한 사실은 이 상태가 200년 동안 잘못된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성장통은 한 프랑스 의사가 1823년에 『성장기의 질병』이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묘사한 질환이다. 4세에서 8세 사이의 어린이들 중 40퍼센트 정도가 매주 한두 번 밤에 종아리와 허벅지에 통증을 느끼며 잠에서 깬다. 그 통증은 몇 시간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이런 발작은 사실 성장 발작과는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에 일부 까다로운 사람들은 ‘소아 양성 특발성 발작성 야간 사지 통증’ 같은 보다 정확한 이름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런 기술적인 이름도 이 증상의 원인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아이가 특히 많은 활동을 한 뒤에는 근육 피로가 이런 증상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비타민 D 결핍, 골밀도 감소, 순환계 문제, 가족 내 스트레스 같은 심리적 요인, 그리고 정상보다 낮은 통증 내성도 어린이가 느끼는 통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요소 중 그 어떤 것도 이증상과 확실하게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이런 통증이 보통 마사지와 열 찜질로 호전되며, 양성이며, 결국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성장통은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가 아니며, 성장통 연구는 주요 연구지원 기관에 의해 자금을 지원받을 가능성이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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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노벨문학상 수상기념 강연 전문



빛과 실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 열어보니 유년 시절에 쓴 일기장 여남은 권이 담겨 있었다. 표지에 ‘시집’이라는 단어가 연필로 적힌 얇은 중철 제본을 발견한 것은 그 포개어진 일기장들 사이에서였다. A5 크기의 갱지 다섯 장을 절반으로 접고 스테이플러로 중철한 조그만 책자. 제목 아래에는 삐뚤빼뚤한 선 두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왼쪽에서부터 올라가는 여섯 단의 계단 모양 선 하나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일곱 단의 계단 같은 선 하나. 그건 일종의 표지화였을까? 아니면 그저 낙서였을 뿐일까? 책자의 뒤쪽 표지에는 1979라는 연도와 내 이름이, 내지에는 모두 여덟 편의 시들이 표지 제목과 같은 연필 필적으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페이지의 하단마다에는 각기 다른 날짜들이 시간순으로 기입되어 있었다. 여덟 살 아이답게 천진하고 서툰 문장들 사이에서, 4월의 날짜가 적힌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의 두 행짜리 연들로 시작되는 시였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사십여 년의 시간을 단박에 건너, 그 책자를 만들던 오후의 기억이 떠오른 건 그 순간이었다. 볼펜 깍지를 끼운 몽당연필과 지우개 가루, 아버지의 방에서 몰래 가져온 커다란 철제 스테이플러. 곧 서울로 이사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그동안 자투리 종이들과 공책들과 문제집의 여백, 일기장 여기저기에 끄적여놓았던 시들을 추려 모아두고 싶었던 마음도 이어 생각났다. 그 ‘시집’을 다 만들고 나자 어째서인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졌던 마음도.


일기장들과 그 책자를 원래대로 구두 상자 안에 포개어 넣고 뚜껑을 덮기 전, 이 시가 적힌 면을 휴대폰으로 찍어두었다.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 빛을 내는 실.


*


그후 14년이 흘러 처음으로 시를, 그 이듬해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다. 다시 5년이 더 흐른 뒤에는 약 3년에 걸쳐 완성한 첫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시를 쓰는 일도, 단편소설을 쓰는 일도 좋아했지만-지금도 좋아한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었다.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1년, 길게는 7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


세번째 장편소설인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종내에는 스스로 식물이 되었다고 믿으며 물 외의 어떤 것도 먹으려 하지 않는 여주인공 영혜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안에 있다. 사실상 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혜와 인혜 자매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악몽과 부서짐의 순간들을 통과해 마침내 함께 있다. 이 소설의 세계 속에서 영혜가 끝까지 살아 있기를 바랐으므로 마지막 장면은 앰뷸런스 안이다. 타오르는 초록의 불꽃 같은 나무들 사이로 구급차는 달리고, 깨어 있는 언니는 뚫어지게 창밖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이 소설 전체가 그렇게 질문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응시하고 저항하며. 대답을 기다리며.


그 다음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간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정체와 이탤릭체의 문장들이 충돌하며 흔들리는 미스터리 형식의 이 소설에서, 오랫동안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왔던 여주인공은 친구의 돌연한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온힘을 다해 배로 기어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쓰며 나는 질문하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섯번째 장편소설인 <희랍어 시간>은 그 질문에서 다시 더 나아간다.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말을 잃은 여자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는 각자의 침묵과 어둠 속에서 고독하게 나아가다가 서로를 발견한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촉각적 순간들에 집중하고 싶었다. 침묵과 어둠 속에서, 손톱을 바싹 깎은 여자의 손이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장면을 향해 이 소설은 느린 속력으로 전진한다. 영원처럼 부풀어오르는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한 부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을 쓰며 나는 묻고 싶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그 질문의 끝에서 나는 다음의 소설을 상상했다. <희랍어 시간>을 출간한 후 찾아온 2012년의 봄이었다.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삶을, 세계를 끌어안는 그 소설을 눈부시게 투명한 감각들로 충전하겠다고. 제목을 짓고 앞의 20페이지 정도까지 쓰다 멈춘 것은, 그 소설을 쓸 수 없게 하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


그 시점까지 나는 광주에 대해 쓰겠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1980년 1월 가족과 함께 광주를 떠난 뒤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이후 몇 해가 흘러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당시 정권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인해 왜곡된 진실을 증거하기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제작해 유통한 책이었다. 어렸던 나는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그러니까 2012년 봄,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려고 애쓰던 어느 날, 한번도 풀린 적 없는 그 의문들을 내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오래 전에 이미 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를 껴안을 수 있겠는가? 그 불가능한 수수께끼를 대면하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오직 글쓰기로만 그 의문들을 꿰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후 1년 가까이 새로 쓸 소설에 대한 스케치를 하며, 1980년 5월 광주가 하나의 겹으로 들어가는 소설을 상상했다. 그러다 망월동 묘지에 찾아간 것은 같은 해 12월, 눈이 몹시 내리고 난 다음날 오후였다. 어두워질 무렵 심장에 손을 얹고 얼어붙은 묘지를 걸어나오면서 생각했다. 광주가 하나의 겹이 되는 소설이 아니라, 정면으로 광주를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9백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이후 광주뿐 아니라 국가폭력의 다른 사례들을 다룬 자료들을, 장소와 시간대를 넓혀 인간들이 전 세계에 걸쳐, 긴 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들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그렇게 자료 작업을 하던 시기에 내가 떠올리곤 했던 두 개의 질문이 있다.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페이지에 적었던 문장들이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 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과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


열두 살에 그 사진첩을 본 이후 품게 된 나의 의문들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걸었던 것처럼.


당연하게도 나는 그 망자들에게,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돌이킬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감각과 감정과 생명을 빌려드리는 것뿐이었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촛불을 밝히고 싶었기에, 당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을 치르는 곳이었던 상무관에서 첫 장면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열다섯 살의 소년 동호가 시신들 위로 흰 천을 덮고 촛불을 밝힌다. 파르스름한 심장 같은 불꽃의 중심을 응시한다.


이 소설의 한국어 제목은 <소년이 온다>이다. ‘온다’는 ‘오다’라는 동사의 현재형이다. 너라고, 혹은 당신이라고 2인칭으로 불리는 순간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


그렇게 <소년이 온다>를 완성해 마침내 출간한 2014년 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다고 고백해온 고통이었다. 내가 이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느낀 고통과,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느꼈다고 말하는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 그 고통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


같은 해 유월에 꿈을 꾸었다. 성근 눈이 내리는 벌판을 걷는 꿈이었다. 벌판 가득 수천 수만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고, 하나하나의 나무 뒤쪽마다 무덤의 봉분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아래에 물이 밟혀 뒤를 돌아보자, 지평선인 줄 알았던 벌판의 끝에서부터 바다가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왜 이런 곳에다 이 무덤들을 썼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래쪽 무덤들의 뼈들은 모두 쓸려가버린 것 아닐까. 위쪽 무덤들의 뼈들이라도 옮겨야 하는 것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지금. 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나에게는 삽도 없는데. 벌써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는데. 꿈에서 깨어나 아직 어두운 창문을 보면서, 이 꿈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꿈을 기록한 뒤에는 이것이 다음 소설의 시작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어떤 소설일지 아직 알지 못한 채 그 꿈에서 뻗어나갈 법한 몇 개의 이야기를 앞머리만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2017년 12월부터 2년여 동안 제주도에 월세방을 얻어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바람과 빛과 눈비가 매순간 강렬한 제주의 날씨를 느끼며 숲과 바닷가와 마을길을 걷는 동안 소설의 윤곽이 차츰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년이 온다>를 쓸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들을 읽고 자료를 공부하며, 언어로 치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잔혹한 세부들을 응시하며 최대한 절제하여 써간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것은, 검은 나무들과 밀려오는 바다의 꿈을 꾼 아침으로부터 약 7년이 지났을 때였다.


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했던 몇 권의 공책들에 나는 이런 메모를 했다.


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


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


죽인다는 것은 차갑게 만드는 것.


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


바람과 해류. 전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


이 소설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의 여정이 화자인 경하가 서울에서부터 제주 중산간에 있는 인선의 집까지 한 마리 새를 구하기 위해 폭설을 뚫고 가는 횡의 길이라면, 2부는 그녀와 인선이 함께 인간의 밤 아래로-1948년 겨울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의 시간으로-, 심해 아래로 내려가는 수직의 길이다. 마지막 3부에서 두 사람이 그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밝힌다.


친구인 경하와 인선이 촛불을 넘겼다가 다시 건네받듯 함께 끌고 가는 소설이지만,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뒤 3년이 흐른 지금,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 책을 완성한 다음에 쓸 다른 소설도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내 삶을 잠시 빌려주려 했던,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이다.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


내가 그렇게 멀리 가는 동안, 비록 내가 썼으나 독자적인 생명을 지니게 된 나의 책들도 자신들의 운명에 따라 여행을 할 것이다. 차창 밖으로 초록의 불꽃들이 타오르는 앰뷸런스 안에서 영원히 함께 있게 된 두 자매도. 어둠과 침묵 속에서 남자의 손바닥에 글씨를 쓰고 있는, 곧 언어를 되찾게 될 여자의 손가락도.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내 언니와, 끝까지 그 아기에게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이라고 말했던 내 젊은 어머니도. 내 감은 눈꺼풀들 속에 진한 오렌지빛으로 고이던,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으로 나를 에워싸던 그 혼들은 얼마나 멀리 가게 될까? 학살이 벌어진 모든 장소에서, 압도적인 폭력이 쓸고 지나간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밝혀지는, 작별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사람들의 촛불은 어디까지 여행하게 될까? 심지에서 심지로, 심장에서 심장으로 이어지는 금(金)실을 타고?


*


지난해 1월 낡은 구두 상자에서 찾아낸 중철 제본에서, 1979년 4월의 나는 두 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사랑은 무얼까?


한편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 가을까지, 나는 줄곧 다음의 두 질문이 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첫 장편소설부터 최근의 장편소설까지 내 질문들의 국면은 계속해서 변하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이 질문들만은 변하지 않은 일관된 것이었다고. 그러나 이삼 년 전부터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정말 나는 2014년 봄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고 난 뒤에야 처음으로 사랑에 대해- 우리를 연결하는 고통에 대해- 질문했던 것일까?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


사랑은 ‘나의 심장’이라는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고 1979년 4월의 아이는 썼다.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그 사랑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움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7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님의 강연입니다.

이날 강연 제목은 '빛과 실'로 32분간 이어진 한강 작가님의 한국어 강연 직후 스웨덴어, 영어 순으로 낭독되었습니다.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


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움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12.3 내란은 특히 작가님의 작품들 겹치다보니 참 아이러니했습니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 때 겪었던 광주 사태는, 특히 아빠께서 직접적으로 겪으셨기에 그 참담함이 전부터 크게 와닿았었는데 처음 속보를 보고선 눈을 의심했죠.

대한민국은 국민 모두의 나라이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다행히 국민들의 염원으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지만 아직 끝이 난 것은 아니기에 끝까지 지켜봐야 합니다.


내란이 터진 뒤, 불안하고 심란한 가운데 강연되었던 한강 작가님의 수상기념 강연은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작가님은 자신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습니다.

"어쩌면 내 모든 질문은 사랑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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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 majesties, your royal highnesses, ladies and gentlemen.


I remember the day when I was eight years old. As I was leaving my afternoon abacus lesson, the skies opened in a sudden downpour. This rain was so fierce that two dozen children wound up huddled under the eaves of the building. Across the street was a similar building, and under those eaves I could see another small crowd— almost like looking into a mirror. Watching that streaming rain, the damp soaking my arms and calves, I suddenly understood. All these people standing with me, shoulder to shoulder, and all those people across the way — were living as an “I” in their own right. Each one was seeing this rain, just as I was. This damp on my face, they felt it as well. It was a moment of wonder, this experience of so many first-person perspectives.


Looking back over the time I have spent reading and writing, I have re-lived this moment of wonder, again and again. Following the thread of language into the depths of another heart, an encounter with another interior. Taking my most vital, and most urgent questions, trusting them to that thread, and sending them out to other selves.


Ever since I was a child, I have wanted to know. The reason we are born. The reason suffering and love exist. These questions have been asked by literature for thousands of years, and continue to be asked today. What is the meaning of our brief stay in this world? How difficult is it for us to remain human, come what may? In the darkest night, there is language that asks what we are made of, that insists on imagining into the first person perspectives of the people and living beings that inhabit this planet; language that connects us to one another. Literature that deals in this language inevitably holds a kind of body heat. Just as inevitably, the work of reading and writing literature stands in opposition to all acts that destroy life. I would like to share the meaning of this award, which is for literature, with you — standing here together. Thank you.



여덟 살 때의 어느 날을 기억합니다. 주산학원의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맹렬한 기세여서, 이십여 명의 아이들이 현관 처마 아래 모여 서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습니다.

도로 맞은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보는 듯 그 처마 아래에서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쏟아지는 빗발을 보며,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느끼며 기다리던 찰나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나와 어깨를 맞대고 선 사람들과 건너편의 저 모든 사람들이 '나'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저 비를 보듯 저 사람들 하나하나가 비를 보고 있다.

내가 얼굴에 느끼는 습기를 저들도 감각하고 있다.

그건 수많은 일인칭들을 경험한 경이의 순간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문학을 읽고 써온 모든 시간 동안 이 경이의 순간을 되풀이해 경험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언어라는 실을 통해 타인들의 폐부까지 흘러들어가 내면을 만나는 경험.

내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을 꺼내 그 실에 실어, 타인들을 향해 전류처럼 흘려 내보내는 경험.


어렸을 때부터 궁금했습니다. 우리는 왜 태어났는지. 왜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지.

그것들은 수천 년 동안 문학이 던졌고, 지금도 던지고 있는 질문들입니다. 우리가 이 세계에 잠시 머무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세계에서 우리가 끝끝내 인간으로 남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가장 어두운 밤에 우리의 본성에 대해 질문하는, 이 행성에 깃들인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일인칭을 끈질기게 상상하는, 끝끝내 우리를 연결하는 언어를 다루는 문학에는 필연적으로 체온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폭력의 반대편인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과 함께, 문학을 위한 이 상의 의미를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수상소감 듣는 내내 한 편의 에세이를 읽는 듯했습니다.

전 그제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한 문장, 한 문장 새겨두었습니다.

꼭, 찬찬히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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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4-12-14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문장들 너무 좋아서 제 블로그에도 올렸다니까요.
한강 작가님의 나즈막한 그 목소리 잊지 못할 거 같아요.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


작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어제 라이브를 통해 수상의 순간을 지켜보는데 얼마나 뭉클했는지 모릅니다.


한참 전에 출간되었던 [소년이 온다]를 처음 읽고선 며칠을 앓았었습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겪었던 순간이었기에, 직접 들었던 이야기들이 있었기에 더 크게 와닿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1항과 2항에 명시되어 있듯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바로 국민입니다.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한국 문학의 위상을 각인시킨, 경사스러운 이 순간에 대통령의 내란으로 인해 나라가 뒤숭숭하니 그저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새벽녘, 제가 쓴 글들을 담은 폴더를 열어 찬찬히 읽어보았습니다.

작가님의 시상식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었는데,

진실과 진정한 마음을 담아 끝내 언어로 잘 풀어봐야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도 노벨문학상 수상자 보유국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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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4-12-12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벨상 수상자 보유국인데... 자그마치 아시아 최초 여성작가인거죠!
구분하지 않으려 했건만... 남자들이 그리 도전을 해도 안되더니...
이 아니 기쁘겠습니까
저도 수상 소감문이랑 심사평 듣고 정말 눈물 났어요
굥 때문에 그 의미가 희석되는거 같아 너무너무 화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