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진짜 노동 - 적게 일해도 되는 사회, 적게 일해야 하는 사회
데니스 뇌르마르크 지음, 손화수 옮김 / 자음과모음 / 2024년 4월
평점 :
진짜 노동
저자 데니스 뇌르마르크
자음과모음
2024-04-16
원제 : Tilbage til arbejdet
인문학 > 교양 인문학
사회과학 > 사회문제 > 노동문제
가짜 노동의 정의
실제 노동시간은 수십 년에 걸쳐 꾸준히 감소해왔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어떤 일을 하든 주당 37시간을 직장에서 소비하던 시기였습니다.
근대에 접어들어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모든 업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지만 1990년이 되자 한계점에 도달합니다.
이때 궁금증이 하나 생기게 됩니다.
"효율성 향상과 자동화가 계속되는데도 근무시간을 동결하기로 결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이용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디지털화되었습니다.
필름을 사진관에 맡길 필요없이 휴대용 프린터만 있으면 누구나 손쉽게 프린트할 수 있게 되었고 우표를 구매해 편지를 보낼 필요도 없어졌지요.
이렇듯 사람이 아닌 기계가 하는 역할이 많아졌음에도 정작 자유 시간이 늘어난 것도 아닙니다.
가짜 노동은 이러한 근본적인 놀라움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그 모든 시간을 무엇에 사용하는 것일까요?
90년대 이후 생산성이 증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산성 증가에서 답을 찾을 순 없습니다.
반면 직장에서 의욕을 잃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은 확연히 눈에 띕니다.
『가짜 노동』에서 영국인의 37%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의미하며, 결근을 해도 회사 일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영국의 한 조사 결과를 언급한 적이 있다. 이 연구는 훗날 네덜란드에서 반복 시행되었고, 응답자의 무려 40%가 이러한 우울한 결과에 동의했다. 2020년 복스미터가 덴마크에서 시행한 조사에 의하면, 덴마크 노동시장의 대표 표본 중 55%는 현재 자신의 직장에서 가치 없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믿고 있었다. 갤럽 역시 이 현상을 조사했는데, 여기서는 질문 및 답변의 옵션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응답자의 무려 76%에 이르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가짜 노동에 익숙하다고 대답했다. 가짜 노동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대답한 사람은 단 21%뿐이었으며, 가짜 노동을 매일 또는 거의 매일 경험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13%에 이르렀다.
(외국인인 저자의 입장에서 작성되었기 때문에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여전히 일을 많이 하고 발명은 너무 적으며, 동시에 자신이 하는 일이 무의미해 의욕 상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자의 전작에 따르면, 이는 진짜 노동이 아닌 가짜 노동이 실제 존재하기 때문에 시간 낭비와 좌절감을 불러일으킨다고 결론짓습니다.
가짜 노동이란, 사회에 지속적이고 의미 있는 자취를 남기지 않는 일을 의미합니다.
과거 우리가 무의미한 일을 하는 사람을 찾아 나섰을 때 사용했던 개념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타인의 가짜 노동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짜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며 우리를 위해 나서주었던 사람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산업 사회에서 사람들은 시간을 노동시장에서 팔았었습니다.
그렇기에 일이 근무시간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근무시간이 우리의 업무를 결정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리 근무 시간을 늘린다 해도 생산성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은 많이 증명되고 있죠.
조직의 정직성 재확립
우리가 가짜 노동을 많이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업이 직원들이 창출한 가치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그 일을 하는 데 투자한 시간에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인센티브 구조가 형성되었고,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장시간 일하기를 원하며, 더 긴 시간을 채울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일하는 시간을 과장해 보고하기도 한다. 근무시간을 과장하는 데 가장 악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바로 컨설턴트들이다. 내가 컨설턴트로 일할 때, 한 고객이 회사의 가치를 창출하고 그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계산해달라고 요청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컨설턴트들은 먼저 고객이 지불할 수 있으리라 예상되는 금액을 산출한 후, 거기서부터 금액을 거꾸로 계산하고 이를 시간당으로 나누곤 했다. 그 결과, 우리는 고객이 의뢰한 일을 하는 데 30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는데, 이는 허공에서 뽑아낸 숫자에 불과했다.
2014년, 노키아의 CEO 스티븐 엘롭이 장문의 이메일을 발송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훌륭하고 전문적일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내용만 길 뿐이지 실질적인 정보값을 주지 못한데다 설명이 구체적이지도 명확하지도 않았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즈」 수석 논평인은 한 칼럼을 통해 이러한 소통 방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꼬집었고 사람들은 그제야 깨닫게 됩니다.
논란거리가 될 것이라 생각지도 못했던 노키아는 이후 꽤 많은 비판과 조롱을 받았다고 합니다.
실제 스티븐 엘롭과 같은 기업인의 말과 글을 이상할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관심하게 받아들이는데, 저자는 이 점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그리곤 덧붙입니다. 헛소리를 배제하고 명확하게 말하라!
"불문명하고 의미 없는 말이 만연하게 도면 그 조직의 핵심 임무는 (그것이 교육이든, 제조든, 환자 치료이든)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고, 조직은 실질적인 일을 하는 대신 말하는 쪽으로 초점을 옮기게 됩니다. 그 결과, 뭔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분위기 외에는 아무런 결과도 얻을 수 없는 가짜 노동이 발생하게 됩니다."
만약 「파이낸셜 타임즈」의 수석 논평인이 용기 있게 언급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했으니 자연스레 묻혔을 겁니다.
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는커녕 회피하는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능력마저도 없다면 가짜 노동이 점점 더 확산되겠죠.
헛소리는 진실 혹은 거짓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을 피하거나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것처럼 들리는 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실제 우리 사회는 전문 용어를 한껏 사용해 깊은 인상을 주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사람들을 기업에 투입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조직에는 비판적 사고와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 직원들의 노력으로 생산해낸 구체적 결과물이 필요한데, 터무니없는 말과 정직성의 부재가 이러한 성공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 됩니다.
그렇기에 조직 내 허세와 헛소리, 거짓된 언어를 인식할 수 있어야만 가짜 노동에 대항하는 면역 체계를 갖출 수 있습니다.
덧붙여, 단순하고 실제적인 말은 헛소리와 정반대의 개념이니 더욱 명확한 언어를 사용하는 습관을 길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말할 사항보다 상대방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에 더 집중한다면 공허한 헛소리를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지를 전달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방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습관을 지녀야 합니다.
가짜 노동의 가장 큰 적은 진실, 정직, 구체성이기에 저자는 가짜 노동을 없애고 싶다면 다음 사항을 따르라고 권합니다.
-조직 내의 헛소리를 없애야 한다. 당신의 계획서에 적힌 것이 마냥 좋은 의도, 유행어, 기분 좋은 콘셉트뿐이라면 의심스러운 컨설턴트와 함께하는 즐거운 연수 여행을 피하라.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메모와 조직의 홈페이지, 프리젠테이션 및 보고서에서 헛소리를 배제하라.
-진실을 말하는 연습을 하고, 허영심과 '설득'에 초점을 맞추는 일을 피하라.
-겉치레에 신경 쓰지 않고 '부적절한' 말을 하는 직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조직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스웨덴 룬드대학교의 경영학 교수인 마츠 알베손은 이런 경우에 직원들은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나 말과 실제로 의미하는 것이 다른 행위, 즉, 표면적으로 화려해 보이는 세계에 익숙해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주변인들의 말과 행위가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 무엇이 좋고 나쁜지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 세상에서는 가짜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상식과 진짜 가치의 재정립
가짜 노동은 직원과 관리자 사이에 불편함이나 당혹감을 조성하기 때문에 금기 사항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다보니 단순히 용기 내어 말 한마디 건넨다는 것이 쉽지 않죠.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고용계약서에서 시간에 대한 사항을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파킨슨의 법칙의 효과를 적용하면 즉, 주 37시간 내에 실질적 업무를 해낸 직원은 그 업무를 완료한 후에는 가짜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와도 같습니다.
좋은 업무는 그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설명하는 구인 광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폭넓게 혹은 애매모호하게 업무를 작성해놓고선 그 어떤 일이든 해내라고 하는 것은 또다른 가짜 노동을 만들어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기에 적합한 지원자를 찾으면 고용계약서에 서명하기 전 그가 해야 할 업무에 대해 올바르고 정직하게 설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덧붙이자면 이 단계에 도달하기 전 경영진은 구인 광고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 구직자가 무엇을 찾아볼 것인지 무엇보다 우리 회사에 실질적인 일자리가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저는 인공지능, 기계학습, 소프트웨어 로봇과 같은 소위 신기술 도구를 사용하여 업무를 보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러한 업무들의 의도는 수동 작업을 더욱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나 불행하게도 이런 작업들은 종종 가짜 노동일 때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결과적으로 더 많은 가짜 노동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한 컨설턴트가 저자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자동화로 급여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실제 업무의 자동화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될 수 있습니다.
근 수많은 컨터런스의 주제 중 하나가 디지털화와 피할 수 없는 변화에 기업이 대처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전직 덴마크 디지털 분야 개척자인 패터 스바레의 저서에 따르면 불가피성에 대한 생각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언급합니다.
"현대 기술은 우리와 상관없는 먼 미지의 세계에서 생겨난 것도 아니고, 매우 구체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우리 인간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독립적인 힘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현대 기술은 특정한 의제와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발명되었으며, 이는 특정한 목표와 특별한 관심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사용됩니다."
이를 피할 수 없어 무시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잠시 멈추고 내면의 중요한 질문을 들춰봐야 합니다.
예컨대, 디지털화 바람이 불게 되면서 학교 교육의 디지털화에 엄청난 비용을 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문해력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모든 학교 지도자들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 믿고 자신들의 공통된 경험을 무비판적으로 무시하게 됩니다.
중요하게 짚어야 할 것은, 이전의 교육 운영 방식에서 벌어진 근본적인 문제는 자문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시다시피 교육 방식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내면의 중요한 질문을 들춰보지도 않고 불가피하다고 단정짓게 되면 결국 엄청난 비용을 쏟아야 하는 가짜 노동 프로젝트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자는 디지털화라는 기차에 몸을 싣기 전에 문제를 식별하고 디지털 솔루션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부터 검토하는 것이 우선이라 강조합니다.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해선 안 되고 이 기차에 올라타 종착역으로 향해 갈 것인지, 지금 여기에 머무를 것인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즉, 먼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실질적 요구사항부터 파악해야 하는 것입니다.
덧붙여 인공지능은 해결책이 아닌 도구에 불과합니다.
물론 기계가 우리보다 더 현명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컴퓨터는 숫자로 작동하기 때문에 전후 상황을 인간처럼 인지하지 못해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상황도 분명 생기게 될 것입니다.
기계보다 더 빠른 말이 필요할 때도 있기에 인공지능을 솔루션 대신 도구로 사용해 초점을 사용자인 인간에게로 맞춰야 합니다.
매일 새벽 하루를 시작하고 매일 저녁 하루를 마무리하는, 쳇바퀴같은 일상을 지내다보니 때때로 노동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를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컴퓨터와 한 몸이 되어 하루하루를 보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입사 결정을 내릴 당시 뭉뜽그린 업무 내용으로 소개받았었는데 막상 입사하고 나니 엄청난 업무량으로 인해 자발적 야근을 밥 먹듯이 할 때가 있었습니다.
억지로 버티고 버티다 결국 사직서를 내게 되었었는데, 그때 처음 가짜 노동을 겪어보았습니다.
잘 참고 잘 버티는 저도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것이 느껴져 제 삶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느껴보았지요.
이렇듯 가짜 노동은 단순히 시간 낭비를 넘어 사람의 삶 자체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가짜 노동에 대한 고발을 담았던 이 시리즈는 실제 덴마크 전역에 변화를 주었다고 합니다.
일 공화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은 이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은 게 현실이지요.
대한민국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진짜 노동』을 읽다가 부족한 내용을 좀 더 보충하고 싶어 급하게 「가짜 노동」을 구매해 두 권 모두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내용이 좀 더 보충되긴 하는데, 풀어쓴 경향도 없지 않아 있어 진짜 노동만 읽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