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사랑

저자 한강

문학과지성사

2018-11-09

초판출간 1995년

소설 > 한국소설

해외 문학상 > 노벨문학상





여수, 그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대고 있을 것이다. 여수만(灣)의 서늘한 해류는 멍든 속살 같은 푸릇푸릇한 섬들과 몸 섞으며 굽이돌고 있을 것이다. 저무는 선착장마다 주황빛 알전구들이 밝혀질 것이다.

부두 가건물 사이로 검붉은 노을이 불타오를 것이다. 찝찔한 바닷바람은 격렬하게 우산을 까뒤집고 여자들의 치마를, 머리카락을 허공으로 솟구치게 할 것이다.



손목시계는 얼추 오후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열차가 종착역인 여수에 닿으려면 앞으로도 두 시간 가까이 철로를 달려야 했다.



해질녘에 밀려 나가는 썰물처럼 환청은 천천히 귓가에서 잦아들었다. 자취방 유리창 가득 늦가을 오전의 다사로운 햇살이 내리비치고 있었다. 장판 바닥에 엎디었던 몸을 굼벵이처럼 모로 누이며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명치 끝이 찢기듯이 아파왔다. 적요한 햇빛 속으로 무수한 먼지 입자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름답구나, 하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먼지는 진눈깨비 같았다. 먼 하늘로부터 춤추며 내려와 따뜻한 바닷 물결 위로 흐느끼듯 스미는 진눈깨비……, 여수의 진눈깨비였다.



이렇게 고요해질 통증인 것을, 지난밤에는, 또 수없이 반복되었던 그 밤들에는 이런 순간을 믿지 못했었다. 마치 밤이 깊을 때마다 새벽을 믿지 못하듯이, 겨울이 올 때마다 봄을 의심하듯이 나는 어리석은 절망감에 사로잡히곤 했던 것이다.

전철은 어두운 터널을 달리고 있었다. 검은 유리창에 반사되어 음화처럼 어른거리는 낯선 얼굴들을 바라다보며 나는 갈 곳을 잃은 사람처럼 망연히 서 있었다.



자혼은 내 고향이 여수라는 것을 알자 우울한 얼굴에 환희에 찬 경련이 일어날 만큼 반가움을 표시했었다. 그녀는 틈만 나면 나와 함께 여수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어 했다.

난 그곳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곳에 대한 얘기도 마찬가지예요.



여수향의 밤 불빛을 봤어요? 돌산대교를 걸어서 건너본 적 있어요? 돌산도 죽포 바닷가의 눈부신 하늘을 봤어요? 오동도에 가봤어요? 오동도의 동백나무들은 언제나 나무껍질 위로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아요……



……여수가, 여수가 울고 있는 것 같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이야기 미술관

저자 이창용

웨일북

2024-04-05

예술 > 미술 > 미술 이야기





미술사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빈센트 반 고흐는 '태양의 화가' 또는 '해바라기의 화가'라고 불릴 만큼 해바라기를 자주 그려왔습니다. 해바라기 정물화만 열한 점 이상 그렸으니 분명 반 고흐에게 이 꽃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작품들은 아를 시절에 그렸던 그림입니다.

……

아를의 지평선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들은 아침 해가 떠오르면 오직 태양만을 바라봅니다. 이런 맹목적인 사랑을 보이는 해바라기도 화병에 꽂혀 더 이상 태양을 바라볼 수 없게 되면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금방 시들어버리기 일쑤죠.

오직 태양만을 바라보며 그와 멀어지면 금세 시들어버리는 해바라기처럼, 오직 그림 하나만 바라보고 그것마저 할 수 없게 된다면 삶의 의미마저 사라지는 반 고흐였기에 어쩌면 해바라기에서 자기 자신을 투영했을지도 모릅니다.



19세기 인상주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이처럼 여성과 잘 어울리는 사조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여성들의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작품에 많이 담겼기 때문이죠. 어느 때보다도 여류 화가들의 활약이 커서 미술사에서는 처음으로 여류 화가가 그린 작품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인상주의 화풍을 따르고 인상주의 전람회에 직접 참여한 여류 화가만 보더라도 드가의 친구이자 프랑스로 귀화한 미국인 메리 카사트, 동판 화가인 펠릭스 브라크몽의 아내인 마리 브라크몽 그리고 흔히 에두아르 마네의 뮤즈이자 제비꽃 여인이라 불리는 베르트 모리조 등이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고작 9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화가로 활동하며 2천여 점이 넘는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채색화만 보더라도 900여 점에 달합니다. 이는 거의 3일에 한 점씩 그려야 하는 수준이니 반 고흐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을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미술사를 살펴보면 반 고흐보다 더 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들도 있지만 작업 시간을 두고 보았을 때 그보다 '절박'하게 그림을 그렸던 화가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반 고흐를 천재라고 부르기보다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화가, 누구보다 성공을 갈망했던 화가라고 보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려왔음에도 살아생전에 반 고흐가 팔아본 작품이라고는 단 한 점뿐이었죠. 프랑스 도시 아를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시절에 그렸던 <아를의 붉은 포도밭>이라는 작품입니다.



밀레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그레빌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 출신입니다. 화목했지만 여유롭지만은 않았던 농부의 집안에서 8남매 중 장손으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짓는 삶을 살아갔죠. 밀레에게 농부라는 직업은 자신의 아버지고 가족이며 자기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훗날 그가 농부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아내게 되었던 것 또한 당연했던 일인지도 모릅니다.



한 여인이 싱그러운 풀과 꽃들에 둘러쌓인 채 노래를 부르며 누워 있는 이 작품은 레드벨벳의 뮤직비디오와 다양한 영화 그리고 패션 잡지와 화보 촬영까지 끊임없이 예술가들과 작가들이 영감을 받고 오마주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마냥 아름다워 보이기만 하는 이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잔혹하리만큼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

오필리아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입니다.

……

보통 이런 역사화들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강조하며 풍경은 그저 배경으로 전락해 장식처럼 치부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직접 감상하다 보면, 슬픔에 잠겨 죽어서는 오필리아의 감정보다는 오히려 주변 풍경에 더 많은 힘이 실려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손은 그 사람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이기에 작가들은 때때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손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곤 하는데요. 그래서 저는 언제부턴가 작품을 감상할 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손을 먼저 보는 버릇이 생겼을 만큼 손에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손이 바로 폴 들라로슈의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에 등장하는 손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무한

저자 채사장

웨일북

2024-12-24

인문학 > 교양 인문학





가끔은 궁금하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나는 혼란스럽고 주저앉고 싶은데, 어떻게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바쁘게 걸음을 옮길 수가 있는 걸까? 모두가 삶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환상에 빠진 자가 현실을 보지 못하듯, 현실에 빠진 자는 의문을 품지 않는다.



유물론과 과학이 정신적인 요소를 완벽히 배제함으로써 얻은 것은 무모순성이다. 모든 신념이 제한적인 영역에서만 언제나 무모순적일 수 있듯, 경험의 의미를 제한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유물론과 과학은 물질의 울타리 안에서 완벽히 무모순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대중으로 하여금 유물론과 과학이 하나의 이념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설명하는 객관적인 진리라고 상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실상은 세계를 축소했다고 할 수 있다. 무모순성의 영광은 정신과 관련된 모든 가치를 세상 밖으로 쫓아냄으로써 얻게 된 반쪽짜리 승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얻게 된 승리는 오늘날의 학계와 대중의 유물론 편향 패러다임으로 작동하고 있다.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데도 무언가 부족하다. 더 많은 콘텐츠를 욕망하게 되고 그것을 향유하지만 부족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는 이 갈증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디어의 형식에 따라 담아낼 수 있는 콘텐츠의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짧은 길이의 미디어는 당연하게도 긴 길이의 콘텐츠를 담아낼 수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소비자가 극도로 많은 양의 콘텐츠를 접하게 되지만 동시에 극히 제한된 콘텐츠만을 소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머릿속을 정돈하려 마음먹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생각의 반복을 끊어내는 일이다.



마음이 어지럽고 스스로 자극에 취약하다 느끼는 것은 실제로 당신이 취약해서가 아니다. 세상이 어떻게든 당신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극단적으로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이러한 자극에 쉽게 휘둘리고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반면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그 자극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그것과 적절한 거리를 두려 한다.



바다를 보라. 행복, 분노, 질투, 혼란, 우울, 쾌락, 즐거움. 이 모든 감정의 파도는 바다의 표면에서 일어나고 사라진다. 하지만 이 모든 파도의 바탕이 되는 깊은 마음의 심해, 텅 비어 있음은 파도치지 않고 흐르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가 깊게 침묵한 이유는 이 움직이지 않는 심해에 닿기 위해서다. 이제 이곳에 이르렀고 이곳이 어떤 모습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고요와 평온이다. 사람들은 고요와 평온도 감정의 하나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고요와 평온은 인간적 감정에서 비롯된 무엇이 아니라 마음의 본질적 상태다. 이것은 바탕이자 배경으로, 모든 인간적 감정은 여기에서 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인간이라는 종은 인간을 가장 좋아하고 인간을 가장 미워한다. 인간의 마음은 인간으로 가득하다. 당신이 종일 들여다보는 스마트폰을 한걸음 떨어져서 보라.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나? 당신은 종일 이 사람의 얼굴과 저 사람의 얼굴, 이 사람의 신체와 저 사람의 신체를 들여다보며 좋아하고 미워한다. 당신은 종일 인간의 말과 글을 들여다보며 좋아하고 미워한다. 당신은 종일 인간의 사물을 들여다보며 좋아하고 미워한다. 당신의 의식 세계는 인간으로 가득하다. 당신은 인간이었고 인간이며 인간으로 돌아올 것이다.



꿈이 환영인 것처럼 현실도 환영이라는 진실이 우리를 반드시 무기력과 허무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같은 깨달음에도 어떤 이는 이 순간이 환영이라는 진실을 긍정적인 삶의 태도에 연결한다. 꽃이 지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꽃병에 꽂아두듯, 그는 환영처럼 사라질 현실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 현실이 환영이고 유한하다는 것은 존재론적 사실이지만, 그것을 무기력으로 연결할지 혹은 긍정적으로 수용할지는 주관적 해석이다. 삶을 허무로 평가하고자 하는 사람은 삶이 유한하다 해도, 삶이 영원하다 해도 그것이 가치 없고 무의미하다 평가할 것이다.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삶이 유한하다 해도, 삶이 영원하다 해도 그것이 가치 있고 의미 있다 평가할 것이다. 현실이 환영임을 직시한다는 것은 그저 삶에 너무 빠져들지 않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시야가 좁고 지혜가 부족한 사람일수록 극단적인 평가에 익숙하다. 그들은 좋아 보이면 긍정하고 나빠 보이면 부정한다. 매력적이면 끌어당기고 혐오하면 밀어낸다. 눈에 보이면 있다고 생각하고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생각한다. 존재는 실재라고 생각하고 부재는 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이렇게 쉽게 판단해버리는 이유는 이들의 사유가 거칠어서다. 하지만 세계의 실상은 언제나 섬세하다. 세상을 섬세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충분한 지혜가 요구된다. 미각이 섬세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달고 짠 맛에만 끌리듯, 지혜가 섬세하지 않으면 극단적 사유에 쉽게 이끌린다.



말과 판단은 언제나 어리석음과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말의 본질은 세계를 분절하는 것이고 판단은 언제나 좋고 나쁨의 이분법적 분할이기 때문이다. 실제 세계는 분절되어 있지 않고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다. 그래서 세계의 실상을 보는 사람은 말을 줄이고 판단을 멈춘다. 우리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혜로워지는 방법은 말과 판단을 멀리하는 것이다.



물질은 중독적이기에 당신이 그것을 너무 적게 가질수록, 또는 너무 많이 가질수록 그것을 더 사랑하게 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물질이 필요한가? 그것은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샤워를 할 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찬물과 더운물을 미세하게 조절하여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온도를 맞추듯, 자신의 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한 정도의 물질을 마련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저자 에쿠니 가오리

(주)태일소담출판사

2024-12-09

소설 > 일본문학





고개를 돌리자 콘센트에 마냥 꼽혀 있는 집 전화의 플러그에 쌓인 먼지가 보였다. 평소 웬만큼은 청소를 하고 있다 여겼는데,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소파 밑에서도 얇게 쌓인 먼지가 눈에 들어왔다.



세이케 리에는 다미코의 대학 시절 친구다. 외국 금융회사에서 일하느라 영국에서 오래 생활했다. 한 달 전, 일을 그만두고 귀국할 텐데 살 곳이 정해질 때까지 당분간 너희 집에서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와서, 다미코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 집에는 남편과 아이가 있지만,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다미코는 그 어느 쪽도 없다. 게다가 어머니와 리에는 옛날부터 신기하게 죽이 잘 맞아, 학창 시절에는 다미코가 집에 없을 때도(다미코는 강의가 있어 학교에 갔는데, 리에는 강의를 잘 빼먹었다는 뜻이다) 집에 놀러 오곤 했다.

리에는 전에도 간간이 귀국한 적이 있다. 그런 때면 늘 친가에서 지냈는데,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지금 친가에는 남동생 부부가 살고 있다.

"나, 집 없는 아이가 되었어."

본인은 그렇게 말하지만, 일찍부터 재테크에 열심이었던 리에가 도쿄 도내에 아파트를 몇 채나 갖고 있다는 사실을 다미코는 알고 있다.



시스템을 알지 못하면 다룰 수도 없을 것 같아 사러 나가 봐야 가게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혼란스러울 게 뻔하니까, 결국은 주저하게 된다. 이런 게 나이를 먹는다는 거겠지, 하고 다미코는 생각한다. 예전 같으면 새로운 것이라도 바로 사러 갔을 것이다.



눈앞에 있는 세 사람이 반가웠던 게 아니라, 세 사람을 통해 환기되는 그 옛날의 자신이 반가웠다. 부모님과 같이 살았고, 남편도 아들도 없어 홀가분했던 자신이다.



그런데도 언젠가 자신에게도 그런 남자들과 다른 상대가 나타나 가정을 꾸리게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생각을 했으니, 지금 돌이켜 보면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어느 시기부터는 그런 남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허탈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안도감이 컸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에이, 뭐야, 그런 거였어. 자욱하던 안개가 걷혀 시야가 깨끗해진 듯한, 그런 안도감이었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계속 놀라면서 다미코는 옛 사진들을 바라본다. 셋 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인간 같은데, 리에는 틀림없는 리에이고, 사키 역시 고집스러우리만큼 사키이고, 자신도 보나 마나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자, 왠지 으스스 소름이 끼쳤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여자의 연애담 따위는. 남편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하고 사키는 생각한다. 오십 대쯤 되면 가정에 안주하고 있든지, 그렇지 않으면 일에 매진하며 남녀관계와는 무관한 생활을 하고 있든지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저자 이호

웅진지식하우스

2024-12-23

인문학 > 인문 에세이





아침 9시, 지하 부검실에 들어선다. 어제 늦은 오후 갑작스럽게 부검이 잡힌 40대 남성의 시신이 부검 테이블에 누워 있다. '갑작스럽게'라고 표현했지만 적절치 못한 것 같다. 어떤 죽음인들 갑작스럽지 않을까. 부검 시작에 앞서 담당 경찰관과 검시관으로부터 사건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을 듣는다. 이번 시신은 물에 빠져 죽은 채 발견됐고, 한시라도 빨리 사인을 밝혀야 해 부검팀원들과 서둘러 준비를 시작한다.



죽은 자는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경위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의 애달픈 사연을 굽이굽이 알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가 자신의 몸을 통해 전하는 마지막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의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죽은 사람은 이제 자신의 몸을 의사에게 보여줄 기회는 마지막 단 한 번뿐이 남지 않았기에 더욱 절실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 침상에 누운 그들을 내려다봐줄 의사가 되어주는 것, 법정에서 그들을 대신하여 억울함을 밝혀줄 증언자가 되는 것, 그것이 법의학자의 역할이다.



법의학자는 의사이자 고인의 대변자이며, 철저한 과학적 증거로 사실만을 말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랬듯 모든 법의학자는 직업 선택의 십계를 따른 사람들이다. 월급이 적은 곳,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고, 오려는 사람이 거의 없는 황무지 같은 곳, 부모나 아내가 결사반대하는 곳으로 기꺼이 걸어온 사람들이다. 자신이 원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한 사람들,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을 택한 사람들이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던 박종철 열사의 사인이 고문 치사였음을 목숨을 걸고 밝힌 사람도 사실은 법의학자 황적준 선생님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 격변의 시기에 법의학자가 국가 권력의 편에 섰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권력과 자본에 양심을 속이려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이 길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기에 안전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정당하고 완전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죽음은 바로 그 당사자에게 원인이 있을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불의의 사고나 혹은 범죄로 누군가가 사망했다면 가장 먼저 그 사람의 부주의에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가 부주의했기 때문에, 혹은 그 옆의 누군가가 부도덕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 뿐, 완전하고 주의 깊은 우리는 안전하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그래야 나는 안전하다는 착각 속에서 불안을 다스릴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사실 얼마나 위험에 가까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든 우리를 스칠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인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조금 이르거나 느리거나 방법이 다를 뿐 인간이 죽는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니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겼지?'라며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의 답을 찾으려고 평생을 바치지 않았으면 한다. 그 부조리의 답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겠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한 의미를 찾아가길 바란다. 그것이 무한한 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먼지 같은 존재인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저항이다.



통상 하나의 사건으로 3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면 대형 참사라고 한다. 화재, 폭발, 붕괴, 추락, 침몰, 자연재해 등의 원인으로 수십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들을 말한다. 대형 참사가 벌어지면 사람들은 흔히 구조대원, 의료진, 소방, 경찰, 군인 등이 현장에 뛰어드는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에 반드시 필요한 또 한 축의 인력이 바로 법의학자다. 시신을 찾고 해당 시신의 신원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화재나 폭발, 건물 붕괴,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는 시신의 외형이 훼손된 경우가 많아 육안으로는 신원을 파악할 수 없기에 법의학자의 역할이 절실해진다. 그래서 법의학자는 평시에는 '사인(死因)을 찾는 사람'이지만, 이때만큼은 '사람을 찾는 사람'이 된다. 정식 법의학자가 되기 전 경험을 쌓기 위한 파견 근무 형식이었지만, 그렇게 삼풍백화점은 나의 첫 법의학 현장이 되었다.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법의학자로 일하며 어림잡아 4천여 건의 부검을 진행했다. 화재로 사망한 사람, 물 속에서 부패된 사람, 교통사고로 처참하게 부서진 사람, 다투다 칼에 찔려 죽은 사람, 너무 많이 맞아서 숨진 사람…. 갖가지 이유로 허망하게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을 보았다. 그러나 그런 참혹한 손상들은 내게 전혀 트라우마가 아니다. 진짜 트라우마는,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나의 트라우마는, 오히려 몸 어디에도 아무런 손상이 없었던 시신이다. 30여 년간 시체를 보아온 나조차도 충격에 말을 이을 수 없었던 그날의 시신들, 가장 깨끗했던 299구의 시신들이다. 세월호에서 인양된 시신들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놀란 것은 모든 희생자가 빠짐없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만 보더라도 비난의 화살이 한 개인을 향했다. 처음에는 배를 몰았던 이준석 선장에게로 비난이 집중되었고, 수사가 진행되면서는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유병언 회장에게 과녁이 옮겨갔다. 마치 이준석 선장만 아니었다면, 유병언 회장만 없었더라면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듯이 상황이 흘러갔다. 물론 그들에게는 명백한 잘못이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참사 원인의 전부일까? 건강한 사회라면 유병언 같은 사람이 100명쯤 있다 해도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혹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수백 명의 아이들이 희생당하는 결과에는 이르지 않도록, 사전에 막아주는 안전장치가 더욱 탄탄히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단 하나의 요건으로 구멍이 뻥 뚤리는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