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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대학살 - 프랑스 문화사 속의 다른 이야기들 ㅣ 현대의 지성 94
로버트 단턴 지음, 조한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고양이 대학살이라… 어떤 요인이 고양이를 학살하게 하였는가?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분석함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역사가 재미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러한 지적 호기심을 유발시킨다는 점이다, 또한 이질성이 주는 사고의 유연함, 유사성을 통하여 이끌어내는 법칙과 이론, 역사의 반복성이 주는 교훈, 변화의 맥을 짚어 미래를 예측하는 등 시공간, 인종, 국가를 초월한 인류의 자취를 더듬어 보는 작업에서 느낄 수 있는 희열은 역사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이다
과거로의 여행, 수수께끼 같은 역사의 실 타래를 풀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료 선정의 표본성과 해석의 객관성일 것이다. 그러나 사건과 인물 중심의 역사가 아닌 망탈리테의 역사, 문화사에 접근하는 방법은 기존 방식과는 분명히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로버트 단턴이 제시한 방법과 시도는 주목할 만 하다.
‘문화적 대상은 역사가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가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그들은 의미를 내뿜는다. 그들을 세는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368p
6개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각각의 독립적인 문헌과 그것을 통하여 살펴본 계층문화를 담고 있다.
‘마더 구스 이야기의 의미’에서는 민초들의 빈곤에 찌든 처절한 삶을 민담에서 발견해 내고, 그러한 민담이 하위에서 상위로 어떻게 이동하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추적해 간다. ‘생-세브랭 가의 고양이 학살’은 직공들이 그들의 고용주에 대한 우회적, 유희적 저항으로써 벌인 고양이 사형식의 의미를 어느 인쇄소의 일화를 통하여 살펴본다. 그리고 상류, 귀족층으로의 편입을 갈망하면서 경제적, 정치적 자유를 외치지만, 노동자와 농민에 대해서는 냉담한 시선을 보이는 부상하는 신(新) 계층 부르주아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텍스트로서의 도시’, 사회 안정에 위협으로 부상하게 된 지식인을 감시하는 경찰관의 주시적 관찰과 기록들이 담긴 ‘문필 공화국의 해부’, 종교적이고 군주적인 문화의 틀에서 변화를 주도하는 지식인들의 영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출판문화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독자들의 독서열풍을 해석한 ‘백과전서의 인식론적 전략’, ‘낭만적 감수성 만들기’ 등 각각의 논문들의 시작은 기존에 터부시 되어 온 민담, 편지, 보고서, 책 주문서 등을 기초로 삼는다. ‘이것들이 과연 사료로써의 가치가 있을까’하고 의구심이 들지만, 저자는 이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조심스럽고도 대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런 방식에서 야기되는 문제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고백한다. 하지만 미시사, 문화사 연구에서 각광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의미 있는 시도였다는 것이 이미 입증된 셈이다.
이 책은 마치 저자가 정신과 의사처럼 농민, 노동자, 부르주아, 지식인 등 각 계층 사람들의 생생한 기록들을 살피면서 정신분석을 하는 듯한 과정의 연속을 보여줌으로써 블록을 짜맞추듯이 책을 구성하였다. 그만큼 각 논문들은 독립적이면서도 치밀한 유기성으로 인하여 서로의 결점을 보완하고 하나의 커다란 흐름으로 결속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각 계층의 시선이 맞물린 17~18세기의 프랑스 문화를 종합적으로 엿볼 수 있는 문화지도를 완성케 한다. 동물원 사파리를 하듯이, 타임머신을 타고 프랑스 문화를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독서를 통한 지적 유쾌함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책이 바로 그것에 해당되지 아닐까 싶다.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버려진 것, 관심 밖의 것에서 발견해내려는 노력과 도전이 역사라는 분야에서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해법의 한 예를 로버트 단턴이 보여주었다. 발견은 이미 알고 있는 곳에 있지 않다. ‘좋은 역사가는 전설 속의 식인귀를 닮았다. 인간 육체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라면 그는 자신의 제물을 그곳에서 발견할 것임을 알고 있다.’ 376p
200백년 후 얼짱 문화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논문에 어느 블로거의 글이 사료로써 차용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