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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길 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 작가정신 / 200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신화적 상징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을 거는 회화, 조각, 혹은 건축물을 하나씩 제시하고, 그 대상에 묻어 있는 신화의 의미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추적하는 '신화 거꾸로 읽기'...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걸어 온다. 조각은 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건축물은 스스로 자신을 밝힌다. 우리가 말을 걸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 말도 걸지 않는다. 상징은 독백이 아닌 상호간의 감각적 대화. 고도의 정신작용이다. 신화적 상징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책을 위해 배경지식으로 프로이트나 융이 말하는 상징의 의미를 깊이 있게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신화를 통하여 문화의 뿌리를 더듬더듬 찾아가는 작업은 즐겁고, 재미있다는 것을 느껴 본다는 것에 의미를 두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서역의 금강역사와 고대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라스의 관계, 행사의 장식으로 자주 쓰이는 '풍요의 뿔'이 담은 신화적 의미와 상징 등을 살피다 보면 고대와 현대, 상상과 실제의 영역을 넘나들게 된다.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 찾을 수 있는 무한한 영감을 발견하게 된다. 숨은 그림 찾기가 아닌 숨은 의미 찾기, 신화와의 숨바꼭질, 결국에는 술래가 되는 신화의 영웅과 신들.
음악이 빠진 영화를 본다는 것은 메마르고 건조한 감성의 뒤틀림을 동반할 것이다. 이 책의 커다란 장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영화의 음악과도 같은 수많은 회화, 조각, 건축물들의 사진이 글과 함께 적절 또는 과도하게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당연하지 않게 풍부한 자료들이다. 풍부한 도판에 담긴 몸짓, 눈빛, 행위, 사물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이윤기씨의 신화 지식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지만, 걸음마는 그렇게 떼는 것이라 생각된다.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pegasus)는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페게(pege, 물의 샘솟음)는 영감의 샘솟음이고 그것은 영원할 것이기에 신화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나보다. 이윤기씨의 신화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기도 하고, 신화를 색다르게 읽는 맛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