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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평점 :
절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흥미롭게 읽었기에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전편은 성장소설이었지만, 이번에는 6.25라는 전쟁 피난민으로써, 그리고 성인으로써의 생활을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50년대 서울의 모습과 이데올로기가 가져온 혼돈이었다. 마치 서울의 역사를 보는 듯한 50년대 서울의 풍경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px에서 빼돌리는 물품으로 생존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피난을 떠나 텅빈 서울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겪는 사건들, 생활고로 찌들어가는 일상의 모습들은 다큐멘터리에서도 볼 수 없었던 살아있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더욱 재미가 있다.
또한 '너도 피난을 가도록 해라. 한번은 남쪽으로 피난을 갔다 와야 떳떳해질 수있다는 건 느이 오래비 말이 옳을 것 같다. 다만 피난 못 간 죄로 번번이 얼마나 당했냐?' 삶의 터전을 떠나지 않아서 겪어야만 했던 고통을 읽고, 깃발이 바뀌면 자신의 모습도 바꿔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야만적인 이데올로기 시대속에서 점점 피폐해져 가는 영혼의 시선을 쫓아가다 보면 연민이랄까? 동류의식이랄까? 비록 전쟁을 겪어보지 못했지만, 우리 부모세대가 겪었을 가난과 배고픔이 슬며시 뜨겁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왜 지게가 어드래서? 지겟벌이도 할 수 없을 때, 우리 명서 어드렇게 죽은줄 알기나 아는?' 양반의 체면도, 전통의 가치관도, 인간에 대한 믿음도 모두 전쟁으로 파괴된 시점에서 저자의 말과 생각들은 어머니에 대한 비난과 세상에 대한 경멸감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저자가 간직하고 있던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그것들은 이 책에 나타났듯이 '뛰어난 기억력으로' 기억된다는 것만으로도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싶다. 자본이 점령한 우리 시대와 이데올로기로 점령한 시대는 다를 것이 없다. 다만 그 이전의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것만 다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