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gging C++
Chris H. Pappas & William H. Murray 지음, 이준하 옮김 / 인포북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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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프로그래밍은 벌레(bug)를 양산하는 일이라고 말을 한다. 인간이 하는 일이라서 알게 모르게 많은 버그를 만들게 되고, 그것을 찾아내고 수정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비하기 때문에 이러한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특히 프로그램을 만든 시간보다 버그를 찾아내어 수정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경우가 꽤 있어서 디버깅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정작 디버깅에 관한 책은 거의 없다. 일반서적에서는 단 몇 페이지로만 다루기 때문에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아 있어서 이 책은 사서 볼만 하다.

이 책은 버그를 잘 잡는 법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버그가 생기는 원인과 프로그래머의 습관을 애초에 박멸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바퀴벌레처럼 박멸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결과에 대처하는 것보다 원인을 파악하고, 발본색원하는 것이 더욱 현명하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는 듯 하다. 보기 좋게 코드를 작성하는 습관, 그렇게 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코딩기법들을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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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체성 -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01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
탁석산 지음 / 책세상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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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을 쫓아가기도 버거운 현재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고 있다. 문화, 유행, 사람, 정보의 교류가 쉴새 없이 이루어지고, 나를 억누른다. 사회, 조직, 국가, 사람에 휩쓸리다 보면 나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하여 회의를 하게 되고, 이를 발견하기 위해 애쓰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은 개인이 아닌 '한국'을 대상으로 정체성을 말하려 한다. 몇 년 전인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문구가 한참 유행했었는데 저자는 이것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세계화가 미국화임을 감추고,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세계화해야 하는지도 모른체 말로만 떠든다고 일침을 놓는다.

탁석산씨가 말하듯 그것은 모호하면서도 형이상학적인 문제이다. 게다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선동만 한다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와 현상을 제대로 바라 볼 수 없다. 저자는 대중성, 현재성, 주체성으로 정체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방향'만 제시해 놨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야만 하는게 한국의 현실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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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국의 딸들 - 나남창작선 29 나남신서 105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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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라는 명성만으로 읽게 된 책이다. 부잣집이 3대에 걸쳐서 철저하게 망해가는게 주된 내용인데, 전형적인 비극으로써 다 읽고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에서 말하듯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운명처럼 끈질기게 쫓아오는 불행은 무당굿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고, 기독교적 신앙으로도 저항할 수 없었다. 무기력하게 살아 남은 자들의 슬픔을 묵묵히 바라보는 우리에게 밀려오는 공포감과 연민을 막을 수 없듯이...

운명은 절대적이다. 우리는 왜 비극을 좋아할까? 남의 불행에 우울함을 털어버리게 하는 묘한 감정적 동요는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불행하지 않은 나의 현 모습에 안위를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감정이란 분출되면 해소되는 휘발성 현상인가... 토속적이고 샤머니즘 성향이 짙은 세대와 서양사상과 물질적 가치가 중시되는 사회적 변동이 가져오는 혼란 속에서 김약국 집안의 몰락은 기존의 질서의 파멸과 새로운 질서, 운명의 시작을 예고한다. 용빈과 용혜가 통영을 떠난다는 것이 바로 그 의미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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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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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겉표지부터 매력적인 책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영화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가 연상되기도 하고, 겉표지의 하얀 배경에 무질서하게 엉켜있는 알파벳은 눈먼 세상의 한 모습일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환상과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했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다른 책들과 확연히 다른 특징으로 인하여 읽기가 힘들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없다. 의사, 의사의 아내, 첫번째로 눈이 먼 남자, 검은 색안경을 쓴 여자, 검은 안대를 한 노인, 눈물을 핥아주는 개처럼 눈이 멀기 전의 '잔상'과 눈이 먼 후에 느낄 수 있는 '특징'만으로 그들을 구분하고 있다.

게다가 작은 따옴표, 큰 따옴 등의 기호가 없어서 그들의 대화나 진행에 조금이라도 집중을 느슨히 하면 누가 어떤말을 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단락조차 없이' 빽빽한 글자가 460페이지에 달하니 한장 한장을 넘기는 것은 고행처럼 느껴진다.

책의 2/3쯤 읽었을까. 몇 가지 실망스러움은 나의 기대감을 무너뜨렸다. 첫번째로 실망한 것은, 눈을 멀게 하는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정부와 조직의 대응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야만스러웠다. 우리에 가두듯이 수용소에 격리시키고, 음식만 던져주며, 치료는 물론 위생, 질서에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는다. 게다가 군인들이 '학살'까지 했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 오히려 당연시 하는 군인들을 보며 작가가 보여주는 군인에 대한 혐오감이 어느 정도이지 알 수 있다.

얼마 전 사스가 전 세계를 위협할 때 중국조차도 많은 의료진을 투입하며 이를 극복하려 애썼고, 의료진 또한 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렇기 때문에 눈먼 자들이 처한 '극한상황은 조작된 것이다'라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느낌은 소설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든다.

두번째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수용소 내의 폭도 20여명의 행패에 굴복한 300여명의 다른 눈먼 자들의 비굴함이 극에 달한다. 자기 아내들을 성노리개로 바치면서까지 음식을 얻어먹는 상황 설정은 역겹다. 왜 그들은 저항하지 않았을까? 눈이 멀고, 굶주렸다고 인간이기를 포기했는가? 소설 안에서는 처절하지만, 소설 밖의 나는 물음표만 생긴다.

세번째로, 모두가 눈이 먼 새로운 세상이 되면 '기존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면을 보여줄 것이다' 또는 '눈이 가지고 있는 다른 의미'를 보여줄 것이라는 나의 기대가 빗나갔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몸부림만 보여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생존이 가장 커다란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정도'는 눈을 감고 상상해도 될 만큼 일반적인 것이다. '문명', '눈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 무너진다고 '인간성'도 무너질 수 있는가? 글쎄...

이러한 물음표를 안고서, 기존의 질서가 무너진 아노미 상태를 통하여 작가는 나에게 어떤 메세지를 던져 줄 것인가? 인내심으로 끝까지 읽어내려 갔다.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6줄은 나의 뒤통수를 친다. 장자의 호접지몽이 떠오른다. 현실사회의 획일적이고 고착화된 가치관에서 벗어나 그 어떤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봐야할 진정한 눈.

'꿈에서 깨어난 느낌'. 악몽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다. 쓰레기가 뒤덮인 세상, 그것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눈을 뜨고 있지만, 향기에 취해 눈이 먼 사실을 모르고 있다. 소설 속의 눈먼 세상과 현실의 차이는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459페이지를 소비했구나. 무지... 나의 무지를 작가는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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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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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했을 때의 느낌과 감추어진 그것의 내면을 보게 했을 때 주는 느낌은 천지 차이이다. 이 차이를 결정 짓는 것은 '주어진 것이냐', '찾아내는 것이냐'이다. 즉 나의 느낌이 주체가 되어, 의미를 부여하고, 가슴에 담아 내는 과정은 책을 읽는 목적이자, 책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쾌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동 한그릇>이라는 이 책은 '전형적인 도덕 교과서'라는 느낌만 강하게 들었다. 맛으로 비교한다면 억지로 맛을 내는 '인공 조미료'쯤이라고 생각 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감동은 내가 저절로 느끼는 것이지, 감동을 받으라고 온갖 상황을 연출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가공된 것은 자연미를 훼손시킨다.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진실되지 못하다. 진실하지 않은 것에서 중요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다. 이 책은 단지 착한 이야기일 뿐 나에게는 그 어떠한 감흥도 주지 못했다. 물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입장마다 틀리겠지만... 이 정도의 이야기에 감동하는 그들의 '순수함'이 오히려 나에게는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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