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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 사회 귀족의 나라에서 아웃사이더로 살기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관찰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은 시민으로써의 명백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깐. 그렇지만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성숙함과 미숙함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게 된다. 시민의식의 수준을 결정짓는 가치관의 몰상식과 상식의 기준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똘레랑스와 앵똘레랑스...
홍세화 이외에도 진중권, 박노자, 김규항, 요즘 곰팡이가 활짝 핀 유시민과 쉰밥 강준만 등 이 땅의 좌파 지식인들과 시민단체, 민노당, 노조등이 인권과 진보, 개혁를 외롭게 부르짖고 있다(시민의 지지없이). 좌파 글쓰기는 거의 모두 그 내용이 그 내용이다. 권언유착, 정경유착, 기득권 재생산 구조, 극우주의자들이 판을 치고, 신자유주의의 침공, 시장주의, 국가주의, 반공, 안보지상주의 교육으로 무장한 말 잘듣는 민초들의 몽매함.. 그만큼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점이 고질화되어 있고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없는 이유는?
대한민국은 서로를 잡아 먹고 싶지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는 사회임에 틀림이 없다.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부터 우리는 '경쟁을 통한 생존'을 배우고, 자신 또한 이러한 정글 속에서 귀족세력이 되어 사익만 챙기고 의무를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고', '나만 사회적 불의의 희생양이 되지만 않으면 된다'는 의식은 뉴스를 보면 너무 쉽게 드러난다. 파업만 하면 원인에는 초점을 맞추지 않고, 경제도 어려운데 왜 파업을 해서 나라를 혼란케 하냐고 비난만 해댄다. '내 밥그릇이 초라해 질까봐?'
여중생 압사사건에 분노하는 시민들을 보고, 반미를 외치는 빨갱이 세력 때문에 '한국의 안보가 위태롭다'면서 경기를 일으킨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자기들도 노동자면서 기득권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다른이의 생존권과 인권은 철저히 상대화하고 자신의 목소리만을 내고 있다. 어떤이는 우리가 선진국이 되서 그때가서 해도 된다고 한다. 생존권만큼 절실한게 어디있을까. 누구를 위한 경제발전인지.
사고의 마비가 극에 달한 요즘이다. 노동자들의 목을 친 칼은 분명히 자신의 목을 칠 수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 홍세화는 연대의식의 부족을 교육자들에게 호소하면서 희망을 찾고자 했다. 교육을 통해서 극복하고자 한다. 그런데 어쩌지.. 전교조 또한 여지없이 NEIS 문제로 언론과 학부모, 극우주의자들의 비난에 고전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인권은 '좌파들에게만 있는 것이다'. 민초들에게는 사치다. 오직 자본만이 구세주이다.
사회비평서, 좌파들의 글을 읽다보면 이 나라의 현실에 암담함을 느낀다. 그래도 읽게되는 이유는? 인간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함께 사는 사회','인권을 최상의 가치로',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꾸는 그들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시민의 피와 희생으로 이룩한 '공화국'을 한국 또한 '국'의 수준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으로 태어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마지막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