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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과 권력
시드니 민츠 지음, 김문호 옮김 / 지호 / 1998년 1월
평점 :
품절
설탕과 권력. 너무도 상이하고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개의 단어로 된 제목은 생경한 느낌마저 준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나면 이 둘의 관계는 유사한 점이 많고, 어떤 의미로써 권력에 설탕이 이용되어 왔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류학적 관점으로 설탕의 역사와 관계지어 인류의 변천과정과 그 뒤에서 그것을 조정하는 거대한 힘, 그리고 어떻게 인간을 길들여 왔는가에 대하여 매우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슬람에서 유럽으로 전파된 설탕은 희소성의 가치로 인하여 특권층을 일반인들과 구분하게 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특권층은 그러한 상징적 의미를 포기하고, 대중적인 식품으로 대량의 소비를 이끌어 냄으로써 그들은 부유함을 얻었다. 이러한 과정은 해외 식민지 노예들의 착취로부터 이루어진 것이고, 그것은 자본주의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노예들의 착취로 생산된 설탕은, 프롤레타리아의 배고픔을 충족시켜 주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도구로써 자본가들에게 이용되어졌다. 그리고 설탕 소비를 위한 생산에 전념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설탕의 이면에는 권력과 지배의 논리로 사회를 변화시켜 온 자본주의 역사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먹을 것들에 대한 자유'에 대한 인식도 이 책에서는 색다르게 해석한다.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이미 환경적으로 정해져 있고,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자유라고 한다. 기술은 인간을 구속하고, 더욱 바쁜 삶으로 인도한다. 설탕의 힘은 바로 이러한 구조를 잊게 만들고, 이익을 위한 투쟁 안의 산물로써 인류를 길들이고 있다.
이러한 설탕의 생산과 소비과정,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에서 소비를 위한 대상이 아닌, 인간다운 인간으로써, 자아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는 노력이고, 주체적인 변화의 갈망에 대한 실천이다. 세계화라는 미명 하에 개발도상국의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막대한 이익을 보는 거대한 세계기업들의 생산구조와 소비과정이 설탕과 너무나 유사하지 않은가... 그래서 더더욱 이 책의 가치는 높은 것 같다. 어색하고, 이해하기 힘든 번역으로 보기드문 수작을 망친 것은 아쉽게 생각한다.
인용: 알코올이나 담배처럼 그것들은 현실을 잠시 잊도록 만들어주고, 배고픔의 고통을 잠시 마비시켜 준다. 커피나 초콜릿이나 차처럼 그것들은 영양가를 공급해 주지도 않으면서도 더 큰 노력을 자극한다. p.337
영국인 노동자 한 사람이 최초로 뜨거운 차에 설탕을 타서 마셨던 것은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역사적 사건이었다.p.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