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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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작이며 베스트셀러​ 장편소설이다. SF소설이라 꽤 흥미롭게 전개된다. 과학의 발달을 예측하면서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로봇이 산업시장으로 나날이 다가서고 있다. 보완될 단점도 있지만 노동자 감축효과를 기대하면서 수용되는 노동시장의 변화물결은 조심스럽게 성큼성큼 인건비 저비용을 목표로 현대사회를 흔들기 시작하기에 이 소설은 더욱 흥미롭기만 하다. 소설의 배경은 지금과는 다른 과학이 발달된 시대이다.

보경이라는 두 딸의 엄마는 홀로 식당을 운영하게 된다. 소방관 남편의 사연과 연기자가 꿈인 아내가 있다. 아내는 식당을 하루라도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인다.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는 그녀는 책임질 두 아이가 있다. 1인 운영 식당이라 그녀의 아침은 분주하다. 눈뜨면서 시작하는 집안일과 출근 준비로 시작된다. 다리가 퉁퉁 부을 때까지 일하는 그녀의 하루는 시간적으로도 여유롭지가 않다. 큰 딸의 다리가 되어줄 돈으로 식당과 집을 마련한 엄마이다.



둘째 딸에게 '미안해'라며 늦기전에 말하는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부모의 사랑이 공정하지 않았지만 자식은 침묵하면서 버틴다. 부모의 방식을 멈추고 미안하다고 표현한 그녀의 선택이 기억속에 강하게 자리잡는다. 영화 <세자매>에서 자녀들에게 잘못한 부모를 향해 자녀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라고 외치는 장면이 떠오른다. 권위적으로 휘두른 것들이 폭력이었음을, 범죄였음을 무시한 사회적 풍토를 꼬집는다. 이 소설에서는 부모의 사과가 더 늦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화해하고 제자리를 찾는 노력은 가족관계에서도 필요하지만 사회는 견고하다. 완고함으로 자녀들에게 폭력적이다. 멈추어야 하는 기회는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과 늦어버렸다는 후회로 마감하지 않는 가족들이 되도록 안내하는 장면이 된다. 상실과 결핍, 박탈감으로 성장한 자녀의 후폭풍은 상당하다. 부모와 자식관계는 노력이 필요한 관계임을 소설을 통해서 확인시게 된다.



빨리 성숙해진 아이의 모습이 보이는 작품이다. <나의 아저씨> 드라마의 장면과 대사도 떠오른다. 그러한 아이는 아프게 그려진다. <일타 스캔들>드라마에서도 다르지 않다. 남해이가 그러하다. 엄마에게 버려지고 이모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산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를 너무 일찍 알아차린 어린 소녀가 보인다. 그리고 그 상처들을 표현하지 않고 끌어안고 가는 그 어린아이가 내면에 있음을 보여주는 드라마의 인물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소설에서도 빨리 성숙하여 슬픔과 결핍들을 고스란히 안고 가는 아이가 등장한다. 그 아이도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세 모녀의 이야기가 가장 두드러지게 기억된다. 그리고 실수가 기회가 되는 순간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 기회로 다른 사고를 하는 인물도 기억에 남는다. 연구원의 실수로 다른 로봇이 되어 경험하고 배우는 로봇은 인간에게 치유가 되는 말을 건네기도 한다. 질주하면서 빠른 것이 성공이라고 믿는 우리들에게 다른 사고의 접근도 제시해 주는 인물이 된다. 이 소설은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힘든 사회라는 사실도 짚어준다. 장애인에 대한 변화된 총체적인 협력과 이해가 필요해진다. 길거리에서 장애인이 보행하는 시설물은 있지만 한번도 장애인들을 길거리에서 본 적은 없다. 그들은 어디에서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을까. 그들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하지만 유령처럼 길거리에서 보편적으로 목도되지 않는 부유하는 또다른 생명체처럼 감지되는 한국사회임을 일깨운다.



저출산을 막는 정책이 나오지만 무용지물처럼 건조하게 느껴진다. 현실성을 도외시하는 정책은 의미를 잃는다. 장애인을 포용하는 사회가 되지 못하면서 장애인 시설물은 도보에 설치한다. 겉도는 시설물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어느 곳을 갈지라도 장애물이 없는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이다. 한국은 빠른 성장을 이루었지만 기우뚱한 경사도가 심한 사회의 모습이다. 정신적으로 호소하는 스트레스 장애가 다양한 병명으로 다양한 연령층들이 힘겨워한다.

누구를 위한 경쟁사회인지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지각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 소설을 통해서도 놓쳤던 문장들을 다시 주워서 꼭꼭 되새김질을 한다. 무엇을 가장 시급하게 제자리에 갖다놓아야 하는지 다시금 맨윗자리에 올려놓게 된다. 경쟁만이 정답이 아님을 확인시킨다. 왜 오랜시간 많은 독자들에게 계속해서 읽히는 베스트셀러 도서인지 다시금 확인시키는 글귀들을 주워담는 작품이다.



'콜리'가 표현하는 다양한 사고와 다양한 표현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질문들도 놓치지 않게 한다. 콜리처럼 오늘을 살게 해준다. 콜리와 대화중에 "그리움이란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205쪽) 콜리만큼 오늘을 충만하게 살게 해주는 소설이다. 콜리의 낙마 순간이 작품의 시작이다. 그리고 두 번째 낙마가 가지는 의미도 떠올리게 한다. 더불어 시간의 흐름이 상대적이라는 사실도 직시하게 한다. 천 개의 파랑이라는 의미가 더욱 두드러진다. 그 의미를 차분히 생각해 주게 하는 소설이다.

열심히 달려서 취업한 곳이지만 과로사와 스트레스로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택배업무로 쓰러져서 과로사한 한국사회의 단면도 기억나게 한다. 빨리하라는 직장의 과중된 업무방식은 아직도 한국사회에 존재한다. 정당한 권리와 인권을 찾아가면서 일하는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노동권리는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했기에 이들은 묵시적으로 복종하고 순종하다가 쓰러진다. 죽을만큼 아프다고 과부하된 몸의 신호조차도 무시하면서 경쟁사회에 생존하고자 달린 노동자들이다. 고수익을 내는 직장 업무는 그만큼의 과업으로 힘든 일을 해결하는 곳이다. 좋은 직장이지만 행복하지 않다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투데이의 고통은 현대사회의 직장인들을 향한 고통으로 대변된다. "투데이는 달려야 살아 있음을 느꼈지만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지 않게 되었다.채찍 사용 후...아파.아파.아파 " (30쪽)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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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개
이언 매큐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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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을 읽고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소설이라는 이 작품은 시대적 격동을 살았던 이들의 삶을 투영해준다. 사랑하는 두 부부에게 찾아온 이분법적 사고의 폭풍은 이들의 사랑의 중심점을 찾지 못하게 한다. 같은 이념을 가진 공동체였던 두 부부는 신혼부부였고 임신한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내가 경험한 일들은 적잖은 후폭풍으로 남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검은 개'라는 상징적인 어휘로 가족들에게 강하게 자리잡는다. 아내는 남편 곁에 더 이상 머무르지 않는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자녀들도 온전한 가족형태를 유지하지 않는 부모의 양육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자녀들이 더 이상 부모들에게 기대하지 않고 포기한 상태의 노부부의 결혼생활의 원인과 결혼생활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회고록 형태의 소설이다.



동지라고 호명되었다가 사위라고 부르는 장인어른의 굳건한 가치관의 맥락은 공산주의에서 시작된다. 사위가 살아가는 삶의 패턴에서 호명의 변화는 큰 의미를 가진다. 저명한 인사인 장인어른의 인생과 장모의 인생은 방향부터가 확연하게 차이를 이룬다. 노부부의 결혼생활은 팽팽하다. 한치의 느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하지만 절대로 함께 살수 없는 부부이다. 신을 거부하고 신을 믿는 경험들이 접점을 찾지 못하는 부부이다. 갑자기 어느 날 찾아온 기묘한 빛깔의 경험이라는 것을 장모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이다. 위급한 상황에 기도한 그녀가 경험한 것들과 그녀가 본 두 마리의 검은 개의 정체를 전해 들으면서 그녀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큰 물결이 된다.

사랑하지만 서툴렀던 부부가 노부부가 되어서도 자신들이 만든 경계선을 허물지 못하면서 삶을 정리한다. 이 부부가 인생을 낭비한 죄가 전해진다. 지성을 채운 이 부부에게는 각성이 부족하였음을 엿보게 된다. "지성이 세상을 밝히고 각성이 삶을 결정한다고." (은희경 소설. 중국식 룰렛) 서로의 지성은 양극으로 대립하면서 접점을 찾아보지도 못하면서 삶을 마감한다. 악이 내부와 개인, 가정에 존재하면서 아이들을 가장 고통받게 한다는 글귀가 선명해진다. 노부부의 결혼생활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자녀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화자의 누나의 결혼생활로 피해를 본 화자와 누나의 딸 샐리도 같은 피해자가 된다. 폭력적인 어른들의 결혼생활은 답습이 되면서 샐리의 결혼생활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식당에서 식사하는 프랑스 가족이 자녀에게 폭력을 가하면서 울지도 못하게 하는 상황에서 화자가 관여하는 장면도 어린 자녀가 피해자로 드러난다. 자녀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매만진 작가의 시선의 끝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악이 어떤 방식으로 모두에게 존재하는지 살피게 하면서 악의 나라를 향하고 잔혹함이 어떻게 많은 생명을 치워버렸는지도 소설에 등장한다. 수용소를 탐방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것임을 전한다. 쌓여있는 신발들과 악의 잔해물인 검은 개의 존재까지도 매만진다. 마을에서 쫓겨난 여인을 향한 이야기도 기억해야 한다. 술주정뱅이가 하는 말을 믿고 수군거리고 수치심을 준 마을 사람들도 잊어서는 안된다. 검은 개는 우울한 감정을 불러 세운다. 악행의 상징성을 부여받는다. 전쟁, 침략, 아들과 형제의 전쟁으로 인한 죽음, 영국을 향한 원망, 적십자에서 봉사, 동독과 서독의 통일 기대, 국제적 정세가 전해진다. 헝가리, 러시아, 이탈리아, 프랑스 여러 국가들의 상황들을 살펴보게 한다. 장모가 프랑스 남부 시골에 정착하면서 홀로 생활한 이유와 자녀와도 가깝게 지내지 않았던 노부부의 상황들을 들려준다. 적대적으로 서로를 판단하지만 사랑했던 노부부이다. 이러한 부부들과 가족 이야기는 낯설지가 않다.

악은 우리 모두의 내부에 살고 있지. 개인의 내면에, 사적인 생활 속에, 가정에 뿌리를 내리고, 그 결과 가장 고통받는 건 아이들이야. 그다음엔 다른 나라에서, 다른 시기에 끔찍한 잔혹성이, 생명을 억압하는 사악함이 터져 나오고 ... 자기 안에 있는 증오의 깊이에 놀라는 거야... 우리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 244

결핍과 상실을 경험한 이들이 있다. 부모가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화자는 부모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면서 성장한다. 누나의 삶은 너무 빠르게 기울었고 동생이었던 화자는 연애조차도 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게 영향력을 주는 누나가 된다. 노부부의 자녀들도 다르지가 않다. 부모는 존재하지만 자녀와 왕래하지도 않는 상황이다. 가족을 선물받았지만 온전하게 유지하며 보호하고 살피지 않는 부모와 어른들이 자주 등장한다. 악행은 너무나도 쉽게 물들인다. 아집과 폭력은 서서히 그들의 주줏돌을 무너뜨린다. 허물어져가는 가족들과 금이 가는 가족관계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늦지 않는 시점에 멈추어야 하는 악행을 모두가 멈추지 않는다. 가족관계에서도 전쟁과 사상 대립도 다르지가 않다. 어리석음과 광기는 역사와 사회 전반에 유유히 흘러넘친다. 잃어버리고 빼앗긴 것들이 무엇인지 소설을 통해서 펼쳐놓는다. <이제, 곧 죽습니다>드라마가 전하는 강력한 주제가 생각난다. 책 『군중의 망상』에서 니체는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물지만 군중과 정파와 국가와 세대에서는 차라리 규칙이 된다." (45쪽)라고 전한다. 이 소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젊은 남자 무리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인을 구하는 젊은 여자와의 만남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다. 수용소가 휩쓸어버린 마을 사람들의 생명은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뽑힌 손톱의 일련번호, 쌓아 올려진 신발 무더기로 기억하면 되는 걸까.



혐오하는 감정이 불러일으킨 후폭풍은 거대해진다. 유토피아를 꿈꾸었지만 비리와 정당화되는 폭력들이 비일비재하면서 당원들은 떠나게 된다. 미련하게 끝까지 기대하는 것과 노동자와 대화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상가의 유토피아는 모순의 대명사가 된다. 실천하는 사상가가 아닌 머리로 이해하는 사상가의 대표가 장인어른으로 기억된다. 반면 당원을 탈퇴하기 전의 장모는 장인과는 대조적인 실천적인 사상가로 기억된다. 폭행당하는 장인을 구해준 젊은 여자의 모습에서 젊은 날의 아내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분법적 사고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확인하게 된다. 이해하고 포용하며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절실해진다. 사랑의 의미는 경계선을 지니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나의 것, 너의 것, 무수히 많은 구획들을 나눈다. 그렇게 어리석은 군중, 정파, 국가와 세대로 나뉜다. "추상적인 원칙들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장모 준이 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단기적, 실용적, 실현 가능한 목표들뿐" (243쪽)이라고 말하는 그녀가 있다. 어영부영 보낸 세월에는 노부부의 아집과 분노가 혼재한다.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어려운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팽팽한 싸움은 결국 막을 내리게 된다. 유럽 역사에서 선을 기대한다는 것과 망각을 거론하는 작가의 기나긴 고찰이 전해진다. 이들의 역사만큼 우리의 역사도 다르지 않기에 이 부부의 삶은 이 땅의 삶과도 연계하게 된다.

함께 살고 싶어하지도 헤어지지도 않는 부모. 악과 신의 존재를 믿었으며. 공산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확신한 준은 버나드를 설득할 수도 떠나보낼 수도 없다는 걸 확인. 버나드는 준을 사랑했지만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는 그녀의 폐쇄적인 삶에 분노 242

망각은 비인간적이고 위험하며 기억은 끝없는 고문이 될 터...

이런 먼지와 홀씨로 뒤덮인 유럽에서

어떤 선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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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심장을 향한 질문, ​
화려하지만 핏기 없는 존재, ​
냉정하고 이기적인 무리들, ​

인간성의 상실, ​
혐오스럽고 괴물 같다는 것, ​
인습을 향하는 날카로운 비판도 등장한다. ​​




시인다운 환상을 가로막는 것은...
절대적인 이기주의 정신이었다....
혐오스럽고... 괴물 같았다...
인간성은 이미 사라졌다...
돌멩이에 광택제를 바른 우상들이었다.
자신을 숭배하고...

- P221

이 도시에는 심장이 없는 것일까?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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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자, 장자크 상페 그림, 박종대 역자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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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 작품은 처음이 아니다. 『깊이에의 강요』작품이 좋아서 연이어 고른 책이다. 향수』,『좀머씨 이야기』, 『비둘기』, 『콘트라바스』 등의 작품들을 집필한 작가이다. 그림도 있어서 내용과 함께 여러 번 여러 그림들을 반복해서 보면서 읽은 작품이다. 8월 초저녁 뤽상부흐 공원 구석의 한 정자에 두 남자가 체스판 승부를 벌리고 있다. 구경꾼들도 제법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다. 체스의 챔피언이 있고 이에 도전하는 젊은 도전자에게 구경꾼들의 관심이 쏠려있다. 젊은 도전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표정도 변화가 없는 모습에는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이 없는 냉담함을 보인다. 구경꾼들은 이 도전자를 알지 못한다. 그가 체스를 두는 모습에 구경꾼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챔피언인 상대도 그의 속내를 읽어내느라 바쁜 모습이다. 구경꾼들은 젊은이를 향해 '고수'라고 하면서 젊은 도전자를 향한 기대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홀로 서 있는 체스의 퀸을 보면서 감탄하는 구경꾼들의 마음이 전해진다. "그렇게 서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처연하도록 아름답다. 저렇게 아름답고 저렇게 고독하고도 당당하게 서 있던 퀸은 없었다." (27쪽) 체스는 승자가 있고 패자가 존재한다. 이 두 사람의 승부는 어떻게 판가름이 날까? 구경꾼들의 희망이 이루어질까? 새로운 챔피언이 탄생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젊은이는 새롭게 등장한 체스의 고수일까?

호전적인 욕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체스 구경꾼들이 있다. 젊은 이방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체스를 두는 모습을 보인다. 과정의 기쁨과 고통이 전해지는 체스이다. 구경꾼에게 젊은이는 영웅이 된다. 젊은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실행해 옮기는 태도를 보이면서 구경꾼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이 젊은이처럼 두고 싶어하는 구경꾼들은 젊은이의 당당함과 자신감을 부러워한다. 나폴레옹처럼 영웅적으로 싸우고 싶어하는 구경꾼들의 말과 행동들은 젊은이를 대하는 태도와 체스의 챔피언을 대하는 태도가 대비를 이룬다. 상이한 태도에 동요된 챔피언의 불안과 고통스러운 태도를 눈여겨보게 된다. 체스의 챔피언은 결코 즐겁게 즐기는 체스가 아님을 보여준다. 은퇴 후 남은 인생까지도 공원에서 승부를 거는 고통스러운 순간들로 인생을 보낼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는 젊은이의 태도와 젊은이의 거침없는 당당함에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복기하는 시간은 그에게 뜻깊은 가르침이 된다. 그에게 남겨진 날들은 오늘 보낸 공원에서의 날들과는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체스 승부는 어느새 결정난다. 승자는 자신이 방금 치른 판을 하나하나 복기하면서 상대의 자신감과 천재성을 떠올리는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더불어 상대의 젊은 패기도 되짚는다. 구경꾼들의 '질투'라는 감정과 평온을 만끽하고 싶어한다는 자신의 감정을 읽어내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승부는 자신의 것이었지만 실제로 패배한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렇게 인정한 이유들을 파악하는 인물의 시간이 의미 깊어진다. 진짜 승자가 누구였고 진짜 패배자가 누구인지를 깊게 조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승부의 정신적 요소를 요구하지 않는 것을 하고자 마음을 먹게 된다.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놀이를 할 생각이라고 다짐하는 그의 달라진 모습을 보게 된다. 젊은 날에는 승부를 거는 전쟁 같은 날들을 보낼 수 있지만 퇴직한 현재 체스를 통한 승부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반문해 보게 된다. 그의 내면에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평온해지는 날들을 희망하는 의지가 분명해지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고문하는 체스의 승부를 직시하면서 앞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면서 즐겁기만 한 놀이만 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스스로를 고문한다. 24

승부에서는 이겼지만 멘탈 싸움에서는 진 것 73

공원과 복잡한 거리의 풍경 그림들을 살펴보게 된다. 분주한 사람들의 무리들이 즐기는 생활들과 그가 혼자서 고독하게 혼자서 보내는 모습들을 차분히 보여준다. 그에게 체스는 어떤 의미였을까.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는 승부의 순간이 그에게는 고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여가 시간을 보내는 은퇴 생활자가 어떻게 남은 날들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림들을 보면서, 공원에서 보내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고찰하게 된다.

프란츠 카프카의 『돌연한 출발』에 실린 어두운 밤에 집필한 작가가 생각난다. 기나긴 밤에 잠들지 않고 하루를 돌아보면서 거듭나는 숙고의 시간은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 발전의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그림들은 많은 함축적인 상징성을 전달한다. 혼자 외롭게 보내는 시간보다는 둘이 함께 보내거나 함께 보내는 사람들의 무리가 의미심장하다. 외롭지 않은 그의 다른 날들이 기다릴 것이라고 기대해보게 된다. 승부가 주는 고통을 던지고 함께 하는 삶이 주는 즐거움과 질투가 아닌 감정으로 타인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을 보낼 것이라고 믿게 된다.



스스로를 고문한다. - P24

승부에서는 이겼지만 멘탈 싸움에서는 진 것 - P73

그렇게 서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처연하도록 아름답다. 저렇게 아름답고 저렇게 고독하고도 당당하게 서 있던 퀸은 없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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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꽃 소년 - 내 어린 날의 이야기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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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성장 이야기이다. 1960년대의 이야기는 전라도를 배경으로 한다. 가족과 마을, 학교생활에서 경험한 긴 세월이 지금의 시인이 있도록 성장시켰음을 일깨워주는 내용이다. 처음부터 좋은 글귀들이 수북이 쌓여가는 이야기에 반해서 느린 걸음으로 느린 보폭을 유지하면서 꼭꼭 씹어 먹게 하는 글귀들을 가슴에 담으면서 읽게 한다. 지역성을 띠는 지역 음식들을 만드는 요리 과정도 자세하게 서술된다. 요리하다가 크게 다친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기록된다. 할머니가 처음으로 시킨 낯선 길을 다녀오라는 심부름의 여정도 시인에게는 큰 좌표가 되는 여정이 되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음을 일깨워준다. 어린 시인이 보인다. 지금의 시인이 성장하도록 곁에서 등불이 되어준 어른들과 동네 사람들이 있었음을 시인은 하나둘씩 기억하게 된다. 물을 주고 빛이 되고 영양분이 되어준 추억들이 소개된다.

시련을 지금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방황하는 분들에게도 분명히 뿌리 깊은 나무가 되는 말들을 들려준다. 인생이 순탄한 사람들도 있지만 왜 나에게만 오는 고난인지 질문을 하게 하는 순간들도 분명히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거친 바람도 불고 배고픔도 느끼며 기나긴 외로움도 느껴야 하는 학창 시절과 가정환경도 지나가야 하는 긴 터널임을 알게 된다. 그 시간들로 단단하게 뿌리가 내려지면서 큰 나무가 되도록 이끈 주변 어른들과 친구들, 첫사랑, 가족들이 있었음을 들려준다.

인류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이야기이다. 246


가난과 결여는 서로를 부르고

서로를 필요로 하게 했다.

쓸모없는 존재는 한 명도 없었다.

노인들도 아이들도 제 몫의 일들이 있었고...

공동체 속에서 우리 각자는 한 인간으로 강인했다.

선대의 낡은 관념과 관습 241



도련님으로 성장하는 사람보다는 거친 흙바닥을 맨발로 걸어간 사람이 더 좋다. 내면이 단단하기 때문이다. 굳은살이 베여있는 거친 손을 가진 노동자의 손과 깊고 짙은 주름살이 그들의 긴 노동의 삶을 말해주는 역사가 되는 얼굴을 더 좋아한다. 화려함보다는 솔직한 노동의 역사를 지닌 얼굴과 손, 남루하지만 거짓되지 않은 이들의 삶을 더 바라보게 된다. 좋은 세상을 꿈꾸었던 시인의 아버지의 짧은 생애도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아버지의 의지가 움직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족의 희생과 배려가 있었다는 것도 이 책에서 전해진다. 할머니와 젊은 어머니의 노고가 전해진다. 자주 볼 수 없었던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도 느껴진다. 젊은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무너진 젊은 아내는 37살이었다. 4명의 자녀를 혼자서 남은 생애 책임진 여인이다. 무너진 여인이 두 번만 울었다고 시인은 어머니를 회상한다. 울음을 삼킨 여인은 강해져야만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학비를 벌기 위해, 생계비를 벌기 위해 혼자 타지에서 생활한 어머니를 기다린 어린 시인의 기억도 전해진다. 고무신을 보고 기뻐했던 순간과 어린 동생이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씻어놓은 고무신은 그리움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곁에서 지켜주지 못했던 어머니의 삶과 마음, 점점 야위어간 어머니의 인생만큼 시인의 외로움도 깊은 골짜기가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외가에 손을 벌리지 않고 4남매를 키운 어머니의 고단한 여정의 힘은 남편을 향한 그리움과 신앙이 힘이 되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어머니의 이어지는 기도들이 여인의 삶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어머니 / 그들이 내 안에 살아있다. 그들이 내 안에서 말을 한다. 우리는 그 모든 걸 품은 위대한 역사적 존재다. 아무리 오늘이 힘들어도, 다시 고난이 닥쳐와도,... 너에겐 누구도 갖지 못한 미지의 날들이 있고 여정의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어. 그 눈물이 꽃이 되고 그 눈빛이 길이 될 거야. 247 ~ 248

할머니와 청년 이야기 / 미군들도 월남 청년들 많이 죽었다. 힘을 잘못 썼다. 나도 한이 큰데 ... 할머니 말씀처럼 ... 힘을 잘 써야 한다... 그러고 싶어 그러했겠는가... 한 많은 세상 한 많은 사람들... 악한 건 못 들게 선한 마음 북돋아 가거라 178



기도가 유유히 흐른 집안에서 바른 사람이 되도록 일러주신 할머니가 멋지게 기억 속에 남는다. 어른의 진정한 모습이 할머니에게서 보인다. 신부님의 경청하는 모습에서도 배우게 된다. 가난한 이들의 곁에서 들어주는 신부님과 필요한 기도가 무엇인지도 일러주는 동행자가 있었음을 보게 된다. 말없이 어린 시인의 곁에서 촛불을 밝혀주면서 기다려준 선생님도 있다. 책들을 일주일마다 채워 넣어준 선생님의 마음과 손길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벙어리 누나와의 추억도 그를 키워낸다. 초등학교 졸업식날 친구와 나눈 대화와 함께 국밥을 먹었던 사연도 기억에 남는다. 학교란 무엇인지 다시금 살펴보게 된다. 공부 1등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등교 전 논밭일을 몇 시간씩 하고 등교한 친구의 졸음은 노동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친구가 선물해 준 것과 그가 마지막 졸업장이라고 말하는 이유와 목수가 된다는 말과 함께 마을 형과 누나들이 일을 하기 위해 도시로 나가는 상황들도 씁쓸하게 이해하게 된다. 가난하다는 것은 어린 노동자들을 일찍 노동시장으로 데려다 놓는다. 배움의 기회는 사라진다. 식모가 되고 일용직과 공장 노동자가 된다. 이들의 생애까지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먹먹해지는 마음으로 주변에서 사라진 마을 형과 누나들의 사연들도 아프게 그려진다.

몸에 힘을 빼라. 온몸에 힘을 빼고 텅 비우면 절대로 안 가라앉는다. 144

내 눈은 멀었으나 다 보고 느껴지는 것이 있어. 사람의 마음씨는 못 속이는 법. 고생은 피할 수 없는 것. 자네도 우리 숙이도. 힘든 거 아픈 거 쓰린 것 다 영약이니 고생을 달게 삼켜야 해. 원한은 말이야. 참말로 중요한 것. 원은 보듬고 풀어서 해원해야 하나, 한은 깊이 고이 품어 가야 하는 것... 한에서 정도 나고 눈물도 나고 힘도 나오는 게 아니겠는가. 109

굽히지 말고 걸어가소. 선령들이 지켜 줄 것이야. 110



분명한 건 고통과 시련, 절망의 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사실이다. 중심을 잡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지는 내용이다. 머리를 쓰는 노동과 몸을 사용하는 노동의 가치가 균등하게 대우받는 사회가 살기 좋은 세상이다. 악함으로 이득을 취하는 구성원이 아닌 정직한 노동으로 잘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한 사회, 불공정함이 넘치지 않는 사회가 되도록 힘이 되는 등불이 되는 글귀들을 부여잡게 한다. 할머니의 가르침, 말 잘하는 사람보다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전해진다. 학식으로 높아지는 사람보다는 경험으로 일러주는 가르침으로 두려움을 이겨내도록 일러준 이야기들과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훈장님이 일러주는 말들도 밑줄을 긋게 된다. 귀한 말들로 바른 어른이 되어야 하는 이유들이 즐비해진다. 자본주의에 휩쓸리지 않는 지조와 현명함을 일깨워주는 여러 가르침들이다.



친일파를 분별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도 들려준다. 시인이 선택한 것들과 선택하지 않았던 이유들도 드러난다. 지금의 시인의 삶의 지표가 된 가르침들이 이 책에서 전해진다. 시인의 책은 처음이 아니다. 무조건적으로 펼친 책이다. 읽지 않았다면 아쉬웠을 듯하다. 시인의 책들을 릴레이 독서하게 만든다. 시인을 처음으로 알게 된 건 시와 사진들이었다. 흑백의 사진들과 시어들은 강열했다. 그 발걸음과 의지가 무척 궁금했었다. 그렇게 시인의 책들과도 계속 만나게 된다. 어른인지 아이인지 자신을 거듭 살펴보게 된다. 잘 살아가고 있는지 계속 돌아보게 한다. 좋은 어른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는 연습이 필요하다. 미디어의 자극성에 휩쓸리지 않도록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자 책과 영화들을 찾게 된다. 신앙도 다르지가 않다. 기도의 힘은 위대하다. 매일 기도한 시인의 가족들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든든한 힘이 되어주면서 뿌리가 되는 내용들이다.

나에게 성서는 울음의 책... 울음이야말로 복음... 눈물이야말로 은총... 가난하고 불운하고 슬픈 눈을 가진 예수. 고난받으면서도 사랑이 제일이라고, 사랑이 처음이자 전부라고,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애통하고 분노하고 울면서도,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다 이루었다' 기꺼이 죽어간 예수 55

영성체는 영혼의 양식인 것, 나누어 먹는 조각들로 일치를 이루는 것 56

거룩한 마음가짐과 삼가함의 자세와 사랑은 나눔이라는 신비 56

몸에 힘을 빼라. 온몸에 힘을 빼고 텅 비우면 절대로 안 가라앉는다. - P144

쓸모없는 존재는 한 명도 없었다.

노인들도 아이들도 제 몫의 일들이 있었고...

공동체 속에서 우리 각자는 한 인간으로 강인했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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