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설 보다 : 겨울 2023 ㅣ 소설 보다
김기태.성해나.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평점 :
김기태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다.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들을 하나씩 주워 담느라 여러 날을 걸었다. 작품은 길지 않지만 빠른 걸음으로 걷지 못했다. 여러 번을 멈추면서 집필한 이유와 목적을 무수히 살펴보게 한 소설이다. 입시제도는 달라졌지만 입시를 앞둔 고3 교실 풍경은 다르지가 않았다. 입시 합격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과 교사들의 태도와 입장, 입시와는 상관없는 또 다른 무리의 학생들의 태도와 입장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학교가 무엇이며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고 어떤 목적을 가진 곳인지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화자인 교사도 학교 교육의 목적을 제대로 인지하면서 「학교- 감옥」이라는 비유가 선명해진다. 공교육이 지닌 가치가 두드러진다. 양각이 되어 그들의 쓸모가 무엇인지 더욱 또렷해지는 공교육을 다시금 확인시킨다.
진정 귀한 것은 지성이며 ...
대학 합격증은 일종의 운전면허증에 불과하다고 생각 41
문학에서 작가들이 언급하는 대학과 학교는 하나같이 같은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변함없이 공교육을 의심하지 않고 자녀들을 줄세우기에 바쁘다. 화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학생이 있다. "선생님도 민주화 운동을 했어요? " 화자는 어중간한 세대이다. 역사 속에서도 학교 교직원 중에서도 어중간한 세대이다. 대학 등록금 동결을 위해 신입생 시절에 시위한 경험은 있지만 사회 변화를 위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역동적으로 움직인 동력은 아니었음을 자각한다.
공교육이란 중산층의 아비투스를 재생산하고
체제 유지에 기여하는,
필연적으로 보수적인 국가 장치 아닌가. 37
바른 자세로 수업을 경청하라는 지도는
규율화된 신체를 양산해
사회적 유용성을 극대화하려는
「 학교- 감옥」의 통치술 37
부와 권력만을 추종하고
소수자를 배척하며
환경을 파괴하는 불량배로 성장 36
입시를 위해 다른 과목의 문제를 풀고 있는 학생을 이해하는 선생님이다. 고전 읽기 수업시간을 위해 공들이며 준비하지만 잠자는 학생들과 비워진 학습지 공란을 무언으로 침묵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는 교사이다. 배달 일을 하느라 피곤해서 잠을 잤다고 말하는 학생의 진심 어린 미안함을 알게 되지만 어떤 변화도 도움도 줄 수 없는 어중간한 교사이다. 누군가는 입시를 위해 달리고 누군가는 사회의 중산층과 노동 계급이 되는 이들이 될 미래의 일꾼을 배출하는 학교의 교사이다. 누군가의 희생을 발판으로 누군가는 성공과 권력, 부를 누리게 될 것이다. 교사인 화자는 어떤 태도로 학교의 졸업식을 대면했는지 차분히 살펴보게 한다. 작가 인터뷰에서도 작품의 교사가 보인 태도는 '이대로 괜찮은 것인지' 질문하는 것이라고 언급한다.
배운 사람의 사고 회로가
이대로 괜찮은지 질문 52
문제를 인지하지만 어느 누구도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배운 사람들의 움직임을 수많은 정권들을 통해서 반복하면서 경험하였기에 그들이 바꾸어 놓은 교육제도에 더 힘들게 휘어지는 어린 자녀들의 고통을 쓰라린 눈으로 보게 된다. 자녀의 수학교육을 직접 가르치면서 무수히 느낀 것이 있다. 왜 이렇게 힘든 문제들을 어린아이들이 풀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 문제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고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안쓰러운 눈으로 학생들을 바라보게 된다. 대안이 있고 방법이 보이지만 한국 사회는 한 번도 시도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가 변화시키는 것만이 대안이 된다. 그것이 저출산으로 한국 사회를 위협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과도한 경쟁 사회는 휘어지는 기울기가 더욱 심해질 뿐이다.
이 소설은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무수히 던진다. 전교조가 간첩 집단 취급당하는 세계관을 꼬집기도 하며, 마르크스 <자본론>을 읽는다는 이유만으로도 색깔론으로 머리띠를 두른 학생 취급하는 교무실의 교사 언행도 예사롭지가 않다.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의 학부모가 학교로 항의 전화하는 상황과 불려가는 교사가 학부모에게 걸려올 전화를 준비하는 상황까지도 한국 사회의 단면이 된다.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 협소한 사고는 위험하다. 진짜 위험한 책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닌가라는 위트에서도 웃음이 나오게 된다. 작가의 작품이 더욱 궁금해진다. 앞으로도 주시하게 될 작가가 된다.
마르크스를 읽고 사회주의자가 되는 게
공자를 읽고
유교 윤리주의자가 되는 것보다 위험한가...
추천 도서 중에서
카뮈의 <이방인>이 제일 위험하지 않나. 30
고전에 귀를 기울이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뛰어난 성취와
풍요로운 삶으로 이어질 거라고 믿었다. 24
학생들이 들어줘야 세뇌를 하고
조합원이 존재해야 저반을 흔들 것 아닌가. 27
전교조를 한국 교육에 암약하는
간첩 집단 취급하는 세계관은
황당하다 못해 순진해 보였다. 27
<작품에 언급된 책들>
공산당 선언, 도련님, 수레바퀴 아래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시민의 불복종, 노인과 바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필경사 바틀비, 시학, 고도를 기다리며, 논어, 작은 것이 아름답다, 침묵의 봄, 역사란 무엇인가, 세계사 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