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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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편의 단편소설들 중에서 『일 년』『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소설을 떠올려본다. 평이한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무엇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 것이 최은영 작가만의 장점이 된다. 병문안을 온 큰아버지 부부의 통성 기도와 찬송가는 그녀에게 어떤 의미로 남겨지는 흔적이 되고 어떤 큰아버지 부부였는지도 지긋하게 눌러서 흔적을 남긴다.

신앙인의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하는 큰아버지 부부이다. 대외적으로 사회적으로 종교활동을 할지 모르지만 내면에는 정이 없는 종교인, 가족을 아프게 한 사람들임을 부각시킨다. 신약성경 말씀이 무수히 떠오르게 한다. 드러나는 종교적 활동이 아닌 마음을 살피시는 분의 음성과 말씀이 『일 년』소설을 통해서도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종교적 발걸음과 목소리보다도 마음을 깊게 살펴야 하는 이유가 소설에서도 등장한다.

그녀와 별다른 정이 없는 큰아버지 부부가 찾아와

통성 기도를 해주고 찬송가를 불러 줬다 88

그들이 한때 누구보다도 그녀를 아프게 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은 건 아니었지만 88



사회생활의 고충이 전해진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나빠서 겉도는 생활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일침도 작품에서 전해진다. 우리의 얼굴과 몸짓, 목소리들은 어떤 울림을 던지는 존재인지도 지긋하게 살펴보게 한다. 혐오스러운 존재로 사회적 생활을 유지하고 있지 않는지도 질문한다. 가해자가 되어서 웅장한 몸짓으로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존재는 아닌지 예리함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좋은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인턴 제도, 계약직이라는 말의 근원과 의도부터 살펴보게 한다. 쉽게 정리 해고하는 제도가 이 사회에 정착하면서 젊은 청년들은 순응하면서 기업이 원하고, 자영업자들이 원하는 알바에 순종하는 시스템임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조건을 갖추어도 청년들은 쉽게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



3년 차 사원과 1년 계약 인턴인 그녀와 다희의 이야기와 대화가 흐르는 소설이다. "그녀는 다희의 삶에서 비켜나 있었고, 다희 또한 그녀에게 그랬다." (124쪽) 서로의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상태로 이들은 그렇게 비켜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지긋하게 바라보게 한다. 사회문제까지도 소설을 통해서 묵직하게 고찰하게 한다. 겹겹이 쌓여서 미묘하게 흐르고 있는 이 사회의 문제들을 뾰족하게 세워올리는 작품이다.

내가 회사에서 좀 겉돌았어요... 사람들 사이에서...

왜 선배 잘못일 거라고 단정해요?

다른 사람들이 나빠서일 수도 있지. 109

회사 사람들의 얼굴, 목소리, 몸집...

그들을 혐오할 수밖에 없는 혐의를 발견해냈다.

자기 속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도 모르는 채로 109

다희라는 사람의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113

기업에서 요구하는 것을 최대한 빨리 갖추어도

좋은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세상 111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소설에서 기남의 부모는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그저 키우기 귀찮아서 헐값에 다른 집에 치워버린 아들 없는 집의 여섯 번째 딸이다. 그집에서 식모로 성장하면서 무보수로 일한 여성이다. 자신의 존재를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기남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가부장제와 유교주의가 낳은 병폐가 전해진다. 키워준 집에 고마움을 느끼며 성장했지만 그들의 속내도 알게 되면서 더욱 큰 상처가 덧칠해지는 기남의 삶을 짐작하게 된다. 나중에 연락이 된 큰 언니와 친어머니의 생신잔치에서의 모습도 놀라움을 전한다. 버려진 딸아이를 만난 친어머니의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하게 하는 작품이다.

사람 가죽 쓰고서 무슨 죄를 받으려고 딸아이를 다른 집에 헐값에 치워버린 부모의 죄가 언급된다. 가장 추운 날에도 냉골 같은 기남의 방도 잊어서는 안된다.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용기를 내어 월급을 요구하는 기남의 외로운 의지도 기억해야 하는 소설이다. 어린 기남이가 느낀 깊은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분노는 기남에게 약이 되었다." (282쪽)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가부장제와 유교주의가 소설을 통해서 드러난다. 잊고 지낸 이 사회의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이 선명해진다. 『세 자매』 영화의 대사처럼 가해자들로부터 미안하다고 사죄하는 말을 들어야 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지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반복되지 않는 역사가 되어야 한다. 여성의 인권이 유린되지 않도록 무참하게 지워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하는 작품이다. 작가의 소설들을 좋아한다. 준비되지 않은 마음으로 읽다 보면 무수히 작가 시선의 끝에 머무르게 된다. 전개되는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인물들의 내면에 깊게 자리 잡은 악습과 관습의 뿌리가 얼마나 견고하진도 매만지는 작품에 매번 놀라게 된다. 악습의 견고함 속에서도 단단하게 목소리를 전하는 작가의 작품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이번에도 여러 번 작가의 작품에 푹 빠져서 천천히 읽은 도서이다. 아끼면서 조금씩 한 편씩 읽었다. 빨리 보내고 싶지 않은 작가의 소설들이었기에... 오랜 시간 곁에 쌓아두면서 꾸준히 읽었던 소설들이다. 마지막까지 감탄하게 하는 작가이다.

부끄러워해도 돼요. 부끄러운 건 귀여운 것이라고 말하는 손자가 건네는 말과 함께 기남의 부끄러운 역사들이 열거된다. 기남의 부끄러운 역사들에는 우리의 할머니, 우리의 어머니, 우리들의 이야기가 녹아흐르고 있음을 보게 한다. 한국 사회의 여성의 역사가 어떻게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는지 보면서 수치스러운 역사가 멈추었다는 것도 확인하게 된다. 이 시대 우리들의 딸들은 이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기남은 부끄러웠다. 남편에게 단 한 번도 맞서지 못하고 살았던 시간이, 그런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자란 것이...... 기남은 부끄러웠다. 부모에게 단 한순간도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의 존재가. 하지만 그 사랑을 끝내 희망했던 마음이...... 기남은 이 모든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워서. 기남은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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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
유영광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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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죽은 아빠의 유품인 오래된 라디오를 듣는 여고생 세린에게는 식당에서 일하는 엄마와 여동생이 하나 있다. 말없이 가출한 여동생은 소식도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 화재 사건으로 반지하에서 살고 있는 모녀는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만 하는 곳에 살고 있다. 모두가 입시 학원을 향하지만 세린이는 학원도 다니지 않고 집으로 향한다. 재개발 반대하는 현수막과 소리가 있는 곳에서 마지막까지도 떠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세린이는 유일하게 태권도 시범단을 꿈꾸는 여고생이다. 재능도 없지만 꿈을 꾸는 유일한 하나가 태권도 시범단이다.



구멍이 난 양말을 꿰매는 엄마, 소식도 없는 여동생, 막막한 상황이지만 세린이는 소문처럼 들리는 장마서점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이에 관한 책도 읽으면서 저자의 이야기를 믿으면서 사연을 보내게 된다. 채택이 되면 초대받는 편지가 도착한다는 소설의 내용을 기대하는 꿈꾸는 여고생이다.

어느 날 집에 도착한 우편물은 장마서점에 초대받는 편지이다. 골드빛을 띄는 특별해 보이는 우편물이 초대장이다. 안내되는 날씨, 안내된 장소를 찾아가는 세린이에게는 기묘한 경험들이 시작된다. 그곳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도깨비들과 구슬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취업에 실패한 명문대생,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 유명한 회사에 다니는 사람, 술에 취해 쓰러져 있던 여행 작가, 돈은 많지만 젊은 날의 추억이 없는 사람도 상징적인 의미를 전하게 된다.


세린이는 막연하게 가졌던 소원들을 하나씩 생각하기 시작한다. 진정 자신이 원하는 소원이 무엇인지 서서히 알아가게 되면서 성장한 세린이를 만나게 된다. 말 한마디에 상처를 주고 나서 후회하면서 위험을 무릅쓰면서 사죄하고 미안하다고 진심을 전하기도 한다.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진심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조금 더 멀리 보면 좋은 직장을 갖는 게 낫겠어.

명문대 간다고 무조건 취업을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111

걱정할 일 없이 몸도 마음도 편하게 살고 싶어.

카페 사장. 매출과 월세 걱정 160

마음속에서 이상한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겨우 이런 평범한 도깨비 구슬 따위로 만족할 거야? 245



편하고 안정된 삶을 보장해 주는 구슬을 장마가 끝나기 전까지 모아야 한다. 그곳에는 인간의 마음을 훔쳐 와서 살아가는 도깨비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쓸모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니랍니다. 그동안 남들은 볼 수 없는 깊숙한 곳까지 뿌리가 뻗어 나가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뿌리가 다 자르고 나면 순식간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높이까지 자란답니다." (180쪽) 대나무를 처음으로 사유하게 하는 글귀이다. 우리의 수많은 시간들도 다르지 않음을 대나무를 통해서 성찰하게 한다.

포포라는 노파 정원사도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인간이 남몰래 흘린 눈물과 땀을 가져와 꽃과 나무를 가꾸는 일을 하는 정원사이다. "가장 적당한 시기에 활짝 피어나도록" (169쪽) 노파의 진심이 잔잔하게 여운을 남긴다. 세린이 선택한 구슬은 어떠한 운명으로 펼쳐지게 될까. 세린은 어떠한 깨달음과 희망을 간직하게 될지 기대하면서 읽은 소설이다. 룰렛과 게임에 빠져든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도 짐작하게 한다. 주인을 잃은 짐들을 기다리고 있는 이와 짐들의 주인은 어디에서 부유하고 있는지도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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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곳으로 오늘의 젊은 작가 16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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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구의 증명』 최진영 작가의 소설이다. 두 소설들이 너무나도 강하게 자리 잡았기에 릴레이 독서를 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기 상황으로 몰아가는 세상이 시작된다. 정부와 국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어린아이의 장기를 먹어야 살 수 있다는 헛된 욕망에 값비싼 가치로 어린아이를 죽이는 위협에 노출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세상이 도래한다.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죽으면서 어린 동생 미소를 부탁하게 된다. 여대생인 도리는 미소를 지키고자 한다. 동생을 지키고자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 땅에 도착한 도리와 미소는 안전했을까? 한국에서는 어떤 희망도 없었기에 떠난 러시아의 땅은 안전한 곳이었을까?


도리와 미소의 이야기, 지나와 지나 아버지, 가족들의 이야기도 강열하게 자리잡는다. 생존을 위해 무작정 달리는 이 가족의 여정은 종점이 있을지 계속 의문스러울 뿐이다. 계속 달리는 것이 안전한 세상을 보장받는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지나가 이 차량에 태워준 건지와 도리 자매에게 어른들이 보이는 모습은 매우 대조적이다.

생존게임이 시작된 세계에서 그들이 선택하는 행동과 선택들은 이성적이지 못하다. 지나의 아버지와 가족들의 모습, 무장 단체들의 반사적인 행동들은 머뭇거림이 없다. 총기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발사한다. 강간하고 분노하고 증오하는 언행들에는 부조리한 모습이 연속적이다. 지나의 눈에 아버지는 그러한 모습이 계속된다. 자신의 딸이 노예처럼 동물 취급을 당하고 있지만 아버지는 괴물이 되어버린지 오래되었음을 상기시킨다.

지나가 지옥과 같은 노예생활을 하면서도 반복적으로 다짐하는 것이 있다. 여기서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무수히 한다. 지나가 손 놓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펼쳐보게 한다. 건지와 지나 어머니의 언행들과 선택들, 도리와 미소를 향했던 마음들이 그러하다. 더불어 류 가족이 도리 자매에게 보여준 행동들도 기억하게 한다. 풍족하지 않는 세상에서 먹을 것을 나누는 류 가족의 모습과 사탕을 건네받고 미소가 먹었던 사탕은 무엇이었는지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무미건조하게 연애하고 결혼생활을 하였던 류 부부는 사랑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된다. 죽음과 위험을 각오하면서 남편을 찾아야 한다는 이 부부의 이야기의 지난날들의 이야기도 꽤 인상적으로 전해진다.

인류가 멸망하는 시간에 일어나는 일들이 전개되는 소설이다. 혼돈과 희망이 사라진 세상을 펼쳐놓는다. 나라도 없고, 정부도 없다. 체계도 없고 무차별적으로 혼돈의 시대가 시작된다.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한 도리 자매, 지나, 건지, 류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낯설지 않은 인간의 군상들이 하나둘씩 펼쳐진다. 십자가의 의미를 깊게 조명하면서 읽게 되는 소설이 된다. 중심에 있는 소중한 것을 지킬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고요하게 살아남도록 지켜준 내면의 중심에 존재하는 사랑을 여러 인물들에게서 만나게 하는 소설이다.

사형 도구였다가 구원의 상징이 된 십자가 164

나는 아주 고요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좋은 것은 소중한 것.

죽는 날까지 좋은 것을 지킬 것이다.

내 중심에 있는 이것. 131



거듭 강조되는 것들이 있다. 한국에서의 삶과 생활에서 미루고 있었던 것들이 무엇인지 열거된다. 현대인들이 한국에서 무엇을 미루고 놓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가족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이유, 사람이 무엇인지도 거듭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지금 여기서 시작하면 좋겠어. 새로운 인생... 오랜만에 해 보는 좋은 생각" (52쪽) 지금까지 놓친 것들을 돌아보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이 되도록 도움을 준다. 부모가 대출을 갚기 위해 바쁘게 살았던 날들, 자녀도 대출로 시작하는 사회생활을 예리하게 관찰해야 하는 소설이다. 한국 사회를 축약해서 보여주는 가족의 이야기들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바짝 긴장하면서 읽었던 이야기이다.

세상이 지옥이어서 우리가 아무리 선하려 해도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악마야...

사람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해. 97

지킬 것을 지키고 경계할 것을 경계하고 함부로 사람을 믿지 않는 것.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게 되더라도 수치심만은 간직하는 것. 오늘 내가 살아 있음에 의문을 품는 것. 한국에서의 삶이 그랬다...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소중한 사람을 미뤘다. 기나긴 미래가 있다고 믿었으니까. 99

미루는 삶은 끝났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지켜야 한다.

사람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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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스 자격증시험연구소 지음 / 해커스자격증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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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 오늘의 젊은 작가 40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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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에 빠지면 수면으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소방대원인 도담의 아버지가 딸에게 일러준 말이다. 아버지와 나눈 추억들이 가득한 도담에게 어느 날 일어난 사건은 도담에게는 엄청난 여파가 할퀴고 간다. 급류에 떠내려온 두 사체에 많은 소문이 작은 마을을 뒤덮는다. 도담의 아버지와 마을의 미용실 사장인 해솔의 어머니가 발견된 것이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도담과 해솔은 경찰에 진술을 하면서 작은 마을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소문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도담과 해솔은 동갑이며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다. 둘은 사랑을 느끼지만 각자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과 사건 현장에서 일어난 일들로 힘겨워하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섭섭함이 지배적인 도담과 해솔의 감정은 또 다른 감정이 되어 팽팽해진다. 십대의 나이에 감당하기 힘겨운 일을 경험하면서 도담과 해솔은 20대의 시절을 보내게 된다. 술에 취해서 살아가는 도담의 대학생활과 긴장감을 놓지 않는 해솔의 일관된 대학시절의 모습도 대조적이다. 평범하지 않았던 그때의 일들로 도담과 해솔은 일반적인 20대 시절의 연애와 감정들을 온전하게 보내지 못한다.



자유로워지고 싶어. 158

분노는 그 분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 앞에서 더욱 쉽게 뿜어져 나온다. 상처도 아무도 모르는 상처보다 그 상처의 존재를 아는 사람 앞에서 더 아프다. 159

너무 아팠다. 결국 화살은 자신에게 돌아왔다... 처음 해 보는 자해... 왜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는지 알 수 있었다. 82

도담은 엄마를 위로할 줄 몰랐고, 정미도 딸을 위로할 줄 몰랐다. 이런 일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디서도 배운 적이 없었다. 정미의 텅 빈 눈... 점점 대화를 피했고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83




작은 마을 사람들이 지어내는 가짜 소문들에 침묵하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감당한 도담은 무척 안쓰럽게 비추어진다. 도담의 어머니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서 불행한 시간들을 보낼 뿐, 딸의 상처와 슬픔은 돌보지도 않는다. 도담의 어머니는 한 번도 아버지 죽음으로 상처 입은 도담을 살펴보지 못한다. 모두가 피해자이다. 사건의 가해자들은 죽음으로 떠났기에 어떤 경위로 사건이 일어났는지도 알 수가 없다. 피해자들로 남겨진 도담과 도담의 어머니, 해솔은 부유하는 존재로 기나긴 세월을 보내게 된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고통의 시간들을 견디지만 정상적인 범주에서 치유의 시간들을 보내지는 못한다. 연애, 대학생활, 가정생활도 일그러진 자화상이 되어 균열이 일어난 20대를 보내는 도담과 해솔이만 있을 뿐이다.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왜 사랑해 빠진다고 하는 걸까. 물에 빠지다, 늪에 빠지다, 함정에 빠지다, 절망에 빠지다, 빠진다는 건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100



해솔의 외할머니가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할머니의 삶에는 남편과 사위, 딸의 죽음을 떠나보낸 기나긴 세월이 있었을 것이다. 긴 상흔으로 남는 죽음들이 드리워진다. 그 많은 죽음들을 어떻게 이겨냈을지 짐작조차도 하기기 어려워진다. 해솔이라는 외손자와 함께 살면서 보여주는 할머니의 언행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는 말은 도담과 해솔에게도 치유가 된다. 닫힌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는 도담과 해솔을 계속 보게 되지만 긴 세월이 흐르고 나서 달라진 두 사람은 예전의 자신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단단하게 변한 해솔과 움츠리게 된 도담이 그러하다.

예전과 달라진 두 사람이 재회하면서 나누는 대화들도 인상적이다. 원을 맴도는 느낌으로 살아간 두 사람이 드디어 자신의 인생과 사랑을 시작하고자 한 걸음 걸어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행복해야 한다는 것!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두 사람은 이 두 가지를 한 번도 해보지도 못하고 자신만을 상처내고 죽음속으로 자신을 던지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자해하는 도담의 모습, 죽음속으로 달려가는 소방대원이 된 해솔의 불안한 모습들이 주변인들에게도 감지된다.

너를 미워하지 마라.

언제나 이 할미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마라 95


둘은 세상 누구보다 귀하고 누구보다 행복해져도 될 것 같았다.

두 사람을 축복해 주었다. 141


활머니가 사준 떡볶이. 오늘 잠시 진평을 잊고 오롯이 행복했다. 142



외할머니가 기도한다는 말과 두 사람을 축복하는 것이 감동적이다. 매서운 말로 할퀴는 마을 사람들과 도담의 어머니 모습과는 상반된다. 희진이 느꼈을 죄책감도 잊어서는 안된다. 모두가 피해자가 되어서 긴 시간을 그 사건에 갇혀서 살아왔음을 알게 해준다. 자신을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큰 등불이 되어준다. 해솔의 외할머니가 말해준 그 말은 모두에게 치유의 말이 된다. 자신을 사랑하며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면서 모두가 서로를 안아주게 된다.

가까운 소중한 사람의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큰 상실로 남는다. 부조리한 죽음까지도 이겨내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치유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게 된다. "사랑한다는 말은 과거형은 힘이 없고 언제나 현재형이어야 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 (290쪽) 사랑이 무엇인지 무수히 질문하고 찾아헤매는 소설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현재형이어야 한다는 것과 "창석이 살아있을 때 싸우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해졌다. 죽음... 창석은 그 무서운 것과 싸우던 사람이었다." (293쪽) 소방대원으로 무수히 위험한 상황속에서 죽음과 싸웠을 도담의 아버지를 알게 된다.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었던 도담의 아버지, 해솔과 도담도 마지막 장면에서도 머뭇거림없이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아이를 구하게 된다. 죽음이라는 공포보다도 타인을 살리는 모습을 보게 한다.


두렵지만, 구해야 한다. 203


도담과 해솔을 죽음과도 같은 늪속으로 밀어넣었던 마을 사람들의 말과 가짜 소문에서 이겨낸 도담과 해솔의 변화된 모습들에 응원을 보내게 된다. 희진도 도담에게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응원을 한다. 행복을 찾도록 응원해 주는 사람들인지, 불행을 겪고도 어떻게 웃을 수 있느냐고 의아해하는 학교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인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 된다. 기나긴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두 사람을 바라보느라 무척 기운이 빠졌는데 외할머니의 기도와 축복, 희진의 응원에 빛을 볼 수 있어서 좋았던 소설이었다. 지옥같은 사회이지만 등불이 되어주는 한 사람, 말 한마디, 응원이 되어주는 가슴이 되어주도록 이끌어준 인물들에게 치유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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