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 - 신화에 가려진 여자
제시 버튼 지음, 올리비아 로메네크 길 그림, 이진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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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누구의 관점에서 서술되었는지가 중요해진다. 신화에 가려진 여자가 있다. 읽고 나서 마녀에 대한 책들도 함께 떠오르면서 14살 여자의 머리카락을 사라지게 하고 뱀들이 머리카락을 대신하도록 벌을 내린 아테나라는 신과 포세이돈과 제우스라는 신도 살펴보게 된다. 아름다운 메두사를 질투하는 사람들과 아테나의 질투는 메두사에게 가혹한 징벌과도 같은 괴물이라는 신화로 남겨지게 된다. 사람들에게 전해진 메두사는 괴물이었지만 진짜 괴물들은 누구였는지 이 책을 통해서 되짚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아름다운 여자 14살 메두사를 질투하는 타인들의 시선과 말로 메두사를 거침없이 베어내는 말들은 칼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메두사에게 남겨놓는다. 포세이돈과 제우스라는 신이 아름다운 여자들을 어떻게 불행하게 만들었는지도 이야기로 전해진다. 신화 속의 여자는 괴물로 남겨지면서 흉측한 여자로 상징된다. 하지만 14살 메두사가 괴물이 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름다운 여자라는 이유로 괴물이 된 메두사의 남겨진 삶은 합당한 벌이었는지 질문을 던진다. 다니에라는 아름다운 여자도 메두사와 다르지 않는 여자의 삶으로 전개된다. 그녀는 폴리덱테스와 결혼을 하였는지 운명에서 탈출하였는지도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의미심장하다.

여자로 태어나면서 감당해야 하는 삶은 순탄하지는 않다. 신화에 등장하는 메두사는 모든 여자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던지는 인물이 된다.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서, 자신을 괴물로 볼까 봐 두려워서 자기가 성장한 밤의 변방이라는 아름다운 곳을 떠나게 되었던 이유들도 살펴보게 된다. 두려움에 침식당하고 섬에서 두 언니들과 생활한 메두사는 동굴에서만 생활하게 된다. 우연히 섬을 찾아온 어느 젊은 남자를 발견하면서 동굴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된 메두사에게도 희망이라는 빛이 찾아올 수 있을지 응원하면서 읽게 된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그가 받아들일 수 있기를 수없이 응원하지만 그는 메두사라는 존재를 알게 되면서 돌변한다.

메두사가 사랑한 남자 페르세우스는 자신의 의지로 섬을 찾았다. 그리고 메두사의 진실된 이야기들을 모두 들었지만 그는 메두사가 가까이 오지 말라는 말도 무시하게 된다. 메두사의 부탁도 무시하면서 찾아오는 재앙은 되돌릴 수 없는 마지막 말을 남기게 된다. 절벽 끝에 세워진 동상은 메두사에게 거울이 되는 가르침으로 남는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는 다짐에는 당찬 의지를 담으면서 세상 속에 두려움으로 자신의 동굴 속에서 숨어지내는 여자들에게 응원을 아끼지 않는 여자 메두사로 남는다.

세상 밖에 사는 여자이지만 절대 외롭지 않다는 메두사가 있다. 여성들을 명예와 자유와 기적으로 이끌 것이라고 당찬 의지를 전하는 메두사는 신화를 얕은 무덤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찬란하게 솟아오르도록 스스로 기억되는 길을 찾도록 이끌 것이라는 의지를 전한다. 높이 든 방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메두사는 말한다. 창문에 비친, 거울에 비친 여자의 모습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강한 어조로 말한다. 메두사는 더 이상 아테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더 이상 도망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평생 다른 이의 힘을 두려워하느라 나의 힘을 생각하지 못했다. 205

페르세우스 동상. 절벽에 세워둘 거야.

우린 늘 도망치며 살아야 할까?

아니 이제부터 우린 도망치지 않아. 210

사악한 의도로 접근한 포세이돈과 메두사의 목을 잘라서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페르세우스, 제우스, 폴리덱테스까지도 메두사 신화를 통해서 면밀하게 살펴보게 된다. 신화를 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의도가 무엇인지도 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살고 싶고, 친구가 필요했고 연인이 나타나서 사랑한 메두사가 절망하면서 깨다는 것은 확고해진다. 아름다웠던 메두사는 바다를 좋아했고 낚시를 좋아했지만 포세이돈에 의해, 아테나에 의해, 타인의 질투와 말과 시선 때문에 섬을 떠나게 된다. 동굴 생활을 하고 외롭게 고군분투하면서 섬생활을 하였을 4년간의 메두사는 고작 18살에 불과하다. 여자이기에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생활과 외로운 생활을 하였던 메두사는 두려움에도 침식되었다는 것이 전해진다. 하지만 절벽 끝에서 메두사의 목을 베려고 나타난 메두사가 사랑한 남자가 메두사의 모습을 보고 나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확인하면서 메두사는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이 아님을 알게 된다. 강해졌고 도망가지 않는 여자가 된다.

그만 눈을 뜨고 똑바로 봐.

난 살고 싶은 것뿐이야.

그저 나 자신이고 싶은 것뿐이라고. 193

누구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

그동안 사람들은 너에게 친절하지 않았어.

사람들은 너를 질투하고 탐냈어.

그다음엔 너에게 잔인했고, 너를 함부로 판단했지.

넌 매번 사람들이 하는 말을 믿었어. 163

세상 속에는 메두사처럼 괴물과 같은 여자를 만드는 사건들이 많이 전해진다. 최근에 경찰에 사건을 접수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들을 자주 듣게 된다. 그 사건들을 들으면서 신화에 가려진 여자, 메두사가 자주 떠올랐다.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으로 살고자 용기를 내지만 비협조적인 권력집단의 행태를 호소하는 사연들을 들으면서 여자가 싸워야 하는 사회적 벽은 너무나도 두껍고 높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고단하고 고통을 수반하는 여자의 삶이지만 좌절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동굴에 숨고 두려워한다면 변화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자의 명예와 자유, 기적은 행동하는 여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 된다. 단단한 관습과 신화에 길들여져서는 안 된다. 얕은 무덤이라고 작가가 언급하였듯이 그 얕은 무덤을 부수고 나와야 하는 것이 여성의 삶이다. 순응하고 순종하며 괴물이라는 메두사 신화만을 믿고 살아서는 안 된다. 여자는 더 이상 괴물이 아니다. 이 책에서 여자는 약자이며 권력조차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왕이라는 권력으로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고자 하는 자, 포세이돈의 악의와 아테나의 질투 때문에 괴물이라고 소문난 신화가 된 메두사가 우리 사회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포세이돈과 아테네가 저지른 일은 오랜 세월 동안 통제할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페르세우스가 나를 베려고 칼을 들고 동굴로 들어온 그날, 무언가 바뀌었다. 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내게도 살 권리가 있었다. 모두가 나를 시험하고 내가 무너지는지 알고 싶어했다. 내 행복과 감정을 제멋대로 쥐고 흔드는 존재라면 사람이든 신이든 이제 지긋지긋했다. 212

나는 세상 밖에 산다. 절대 사람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된다. 나는 외롭지 않다. 바다는 나의 벗... 나는 여성들을 명예와 자유와 기적으로 이끌 것이다... 신화는 얕은 무덤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찬란하게 솟아오른다. 216







아주 오랫동안 포세이돈이 두려워 바다에 나오지 못했다. 이제 더는 그가 두렵지 않다. 오래전 그날 밤 그가 저지른 짓은...작은 벽돌 한 장일 뿐이었다. 포세이돈이 사악한 의도를 품긴 했지만 나의 집은 거대했다. - P212

나는 여성들을 명예와 자유와 기적으로 이끌 것이다... 신화는 얕은 무덤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찬란하게 솟아오른다. - P216

우린 늘 도망치며 살아야 할까? 아니 이제부터 우린 도망치지 않아. - P210

평생 다른 이의 힘을 두려워하느라 나의 힘을 생각하지 못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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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설명하는 앤드류 세이어의불로소득 시대 부자들의 정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장편소설 『바닥에서 일어서서』, 대럴 M. 웨스트의 부자들은 왜 민주주의를 사랑하는가』책들을 살펴보면 꽤 흥미롭다. 부자들의 부가 대부분 불로소득에서 생겼다는 사실과 부자들의 권력이 부당하고 비민주적이며 착취적인 것이라고 책은 설명한다. 더불어 부자들에게 지원하는 체제와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언급하면서 부자들이 누리는 지원을 멈추어야 하는 이유들을 명확하게 설명한다. 골목상권과 산골 시골마을까지도 대기업이 장악한 모습을 목격하면서 씁쓸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빽빽하게 골목상권을 다양한 상호들로 장악한 대기업의 모습에 99%는 힘없이 무너지는 것이 현대사회의 현주소임을 목도하게 된다.



땅을 소유한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세금이 어디에 쓰이며 어디에 사용되지 않는지도 어렵지 않게 확인하게 되는데 소외된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얼마나 부당함을 당하는지도 쉽게 목도하게 된다. 선택받지 못하는 집단이 누구인지도 지속적으로 살펴야 한다. 공정하지 않는 사회는 부패하고 부정한 사회임을 공포하는 것과 다름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상위 1% 부자들의 투표율은 일반인보다 두 배가 더 높다'라는 내용은 전하는 『부자들은 왜 민주주의를 사랑하는가책을 다시펼쳐보게 된다. 짖지 않는 개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가져다 놓는지도 경각심을 가지면서 확인하게 된다. 불평등한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언급되는데 국가 정책을 만들고 정치를 쥐고 흔드는 자가 누구인지 제대로 살펴야 하는 시대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무관심과 냉소에 익숙한 자는 또 누구인지도 질문을 아끼지 않는다. 부자들의 민주주의와 99% 에 해당되는 노동자들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대조되는지도 쉽게 설명한다.





주제 사라마구는 소설에서 고난과 노동시간에 대해 언급한다. 고난이 노동자의 피부를 두껍게 만들어주었다는 것과 8시간의 노동권리를 얻기 위한 싸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무관심과 냉소가 아닌 관심과 외침이 정당한 것을 요구하게 이끈다는 것을 확인할수록 격차가 벌어진 부의 불평등을 여러 책들을 통해서 진단해 보게 된다. 접점이 없을 듯하지만 묘하게도 이 책들은 같은 의지, 같은 열정과 관심을 표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땅을 가진 자들, 지대가 불로소득이라는 사실도 설명되면서 그들을 위한 정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이해시킨다.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이 소외되지 않는 사회, 일할 권리와 쉴 수 있는 권리가 조화롭기를 기대하게 된다.

자본을 가진 자들과 노동하는 자들의 임금과 노동시간까지도 무심하게 지나치지 않았던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은 더욱 가치가 가중된다.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 소설도 다르지가 않다. 『반 고흐를 찾아서』 책에서 고흐가 그린 그림들과 관심을 가진 노동자들의 모습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한국의 현대사회에서의 깜박거리는 신호들이 지금도 울리고 있다. N 잡을 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알지는 못하지만 노동자의 삶과 죽음은 어둡게 현대사회에서도 유유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목도하는 사회임에는 분명하다.





부당함을 외치지 않는 사회, 불평등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회는 희망이 있는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여행지에서 도로가 포장되고 도로차선과 횡단보도가 설치되는 과정을 3년만에 본 적이 있다. 거주지는 동시다발로 1시간도 걸리지 않는 작업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데 왜 여행지는 불편함을 호소하지 않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수가 없었다. 최근에 여행하면서 이제서야 시민의 안전과 불편이 해소된 것을 경험하면서 이들의 세금과 정책은 한쪽으로 많이 치우친 것임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소외된 자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보이는 세상이다.




무엇을 유심히 관찰하는지, 무엇을 질문하는지가 중요해진다. 눈을 감고 등을 돌려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시인들이 끊임없이 고뇌하며 질문을 던지는 시들은 누구의 노래인지 외면하여서는 안 된다. 소설가들이 부조리한 사회를 고발하는 작품들도 같은 맥락에서 흐르는 목소리임을 잊어서는 안되기에 사회학 책들을 기웃거리게 된다. 살기 좋은 사회인지, 불안에 침식당하는 사회인지는 현대인들의 글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하게 된다. 누군가의 눈물, 누군가의 외침을 듣고 보는 사람이 되고자 여러 책들을 다시 펼쳐보게 된다. 땅과 길에 대해 사유한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을 다시 음미하는 시간으로 마무리한다.



















< 불로소득 시대 부자들의 정체 >


부자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체제를 감당할 수 없다. 그들은 우리와 지구가 제공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살고 있으며, 그들의 이익은 99%는 물론이고 환경의 이익과도 상충한다. 우리는 이제 부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524


부자들에게 책임을 묻고,그들의 부가 대부분 불로소득에서 생겼음을 폭로하고, 그들의 권력이 부당하고 비민주적이며 착취적임을 드러내는 것 523
















< 바닥에서 일어서서 >

주제 사라마구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일부가 다 갖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는 한

정의는 있을 수 없어. 320

결의의 옷을 입어야 한다.

광야의 외로움이라는 옷을 입어야 한다.

고난은 그의 피부를

아주 두껍게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여덟 시간 노동의 권리를

얻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는데...



































부자들에게 책임을 묻고,그들의 부가 대부분 불로소득에서 생겼음을 폭로하고, 그들의 권력이 부당하고 비민주적이며 착취적임을 드러내는 것 _ 불로소득 시대 부자들의 정체 - P523

일부가 다 갖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는 한 정의는 있을 수 없어. _바닥에서 일어서서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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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에세이&
박연준 지음 / 창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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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고용한 포옹』, 『듣는 사람』를 읽고 펼친 신간 에세이집이다. 들어가는 글에서 인간에게는 '다락'이라는 은신처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세상과 거리를 확보해 세상을 그리워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이유들을 시인의 글에서 거듭 확인하게 된다. 바닥에 앉아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 낡고 사라져 가는 것, 존재하지만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을 글로 전하는 마음들이 전해진다. 다락이 높다면, 마음이 깊다면 무엇을 두고 싶은지 질문을 아끼지 않는 시인이다. 멈추지 않는 질문들을 가득히 마주서게 하는 글도 만나게 된다. 질문이 철학과 예술과 시의 근원이라는 것을 힘껏 바라보게 한다. 정현종의 『질문의 책』 책중에 특별한 질문이 시가 된다는 것과 아름다운 질문을 쏟아놓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사소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느긋한 성정을 가져야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마음을 유지하고 노력해야 하는지 한 권의 에세이집을 통해서 보여준다. 불면과 숙면, 상상, 소설을 읽는다는 것, 화양연화, 선물, 말하기와 듣기, 적산가옥, 소풍, 뼈 헤는 밤, 명상, 새벽, 기다림, 유실물, 유년 등 무수히 쏟아지는 제목들을 남김없이 동행하면서 시인의 말을 귀담아듣는 시간은 아깝지가 않았다. 부지런히 책들을 살피고 문장들을 읽으며 꾸준히 책들을 산다. 읽지 않았다면 시인의 마음들을 놓쳤을 것이다. 시인이 새벽에 일어나 글을 남기고 고양이를 오랜 시간 관찰한 흔적들과 일 년 넘게 가지고 다닌 책에 대한 이야기와 밀란 쿤데라의 『커튼』까지도 읽어봐야겠다는 좋은 자극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예상하지 않은 순간에 시인이 읽은 책들과 글귀들을 소개받고 사유한 흔적을 떠올려볼 수 있는 에세이집이다.

메리 루플의 『나의 사유 재산』 과 『가장 별난 것』 책도 소개받는다. 짧은 산문을 쓰는 방식과 짧고 강렬하게 빛나는 것이 무엇인지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밀려난 자의 오랜 슬픔, 안개의 시간이라는 메리 루플의 산문 제목까지도 긴 시간을 맴돌게 한다. 사랑하여 읽을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말하면서 시인이 사랑한 작가와 이유도 전해진다. 자신의 헝클어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가를 사랑한 이유, 누군가의 흠결에 매혹된 이유와 흠결이야말로 그 사람 고유의 것이라는 사실도 대면하게 한다.

인생을 여러 번 살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 소설을 읽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설 읽기를 그만둔다면 빠른 속도로 늙을지도 모른다고, 인생의 오솔길은 보지 못하고 대로변으로만 다니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를 커다랗게 키우고 싶다면 남의 삶에 개입해 그 사람이 되어봐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들이 전해진다. 삶을 웬만큼 사랑했다고 자부하는 기성세대와 현학적인 글을 읽으며 우월감을 느끼는 어른들은 더는 소설을 읽지 않는다고 말한다. 소설을 좋아해서 겁없이 첫 장을 펼치지만 웅장하고 깊은 수많은 삶들을 만날 때면 매번 놀라움을 감추기가 어려워진다. 소설 읽기는 '나'를 희생해야 하는 독서이며, 소설을 읽는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집중력을 요하는 일인지도 언급된다.

인생을 여러 번 살 수 있는 가장 쉬운 길.

소설 읽기 174

화양연화를 읽을 때는 화양연화 영화와 화양연화 드라마를 다시 떠올렸다. 아름다운 시절이 떠내려가는 속도라고 말하는 시인의 글도 긴 시간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소설, 조지 오웰의 『1984』, 『동물농장』,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 소설들을 언급하면서 감시하는 빅 브라더와 타락한 독재자, 슬픈 괴물인 AI가 현대사회에 실존하고 있음을 각인시킨다. 21 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넘치게 가진 것은 욕망이며 간절함이 촌스럽게 치부되는 현실과 간절함이 욕망을 이길 때 비로소 특별해진다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불면을 호소하는 현대사회가 지닌 불안과 경쟁을 숙면으로 이어지게 하는 방법까지도 스스로 찾도록 질문을 던지는 글을 만나게 된다.

'고졸하다'라는 말도 새롭게 알게 되는데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귀가 사랑하는 말이 듣기라고 말하는데 『67번째 천산갑』 소설의 남자 인물이 말을 하지 않고 듣는 일만을 하였다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말만 하고 듣지 않았던 여자 주인공이 뒤늦게 깨닫는 것이 바로 듣지 않았다는 것이기에 듣기와 말하기는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시인 아버지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지방간, 간경화, 당뇨, 고혈압, 피부 변이, 간성혼수. 10년의 노력이 무너진 것이 전해진다. 죽음이 오기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인지도 전해진다. 서울, 군산, 목포, 강릉에서 본 적산가옥들에 대해서도 전해진다. 적산가옥은 적의 소유였던 집들을 의미한다. 한 권을 읽고 나니 소복하게 쌓인 것들아 선명해진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수북해진 문장들을 주워 담는 에세이집이다.


김수영 시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202



여기저기에서 우리를 감시하는 빅 브라더,타락한 독재자,인간이 만든 슬픈 괴물 AI 우리 주위에 실존한다 - P165

우리는 때로 누군가의 흠결에 매혹된다.흠결이야말로 그 사람 고유의 것이기 때문이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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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번째 천산갑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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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아들을 찾아나서면서 찾아내는 단서들과 빵부스러기 흔적들이 있다. 남아선호사상과 남녀평등시대를 지긋하게 그녀의 삶을 통해서 보여준다. 연쇄살인자가 된 사람의 고백,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무수히 많은 시대의 가해자들도 선명하게 찾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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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번째 천산갑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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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의 땅> 베스트셀러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어린 시절 아역 배우였던 그녀와 그가 있다. 매트리스 광고를 촬영하고 영화도 촬영했던 그들이 있다. 세월이 흘러 그녀는 정치인의 아내로 4명의 아이의 엄마이며 아내이다. 하지만 그녀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유일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것은 그의 곁에서만 가능하다. 이유도 모른 채 그녀는 그를 만나고 싶지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그동안 살아온다. 그들이 어렸을 때 촬영한 영화가 복원되어 상영한다는 행사가 전해지면서 초대를 받게 되면서 그가 파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찾아간 그녀가 확인한 그의 삶은 그녀가 상상한 것들과 극명하게 대비를 이룬다는 사실도 경험하게 된다. 코끼리 같은 그녀의 여행 가방과 그의 작은 집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너 없이,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우리 같이 천산갑을 보러 가지 않을래?

아역배우 시절 산 아래에 살았던 그녀와 산 위에 살았던 그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의 아버지와 그의 어머니, 천산갑을 키우기까지 그의 아버지가 추구한 사업들과 그의 수많은 여자들과 그의 어머니가 찾아낸 아버지의 여자들까지도 이야기로 전해진다. 어머니가 그를 남겨놓고 영원히 떠나버린 그날을 그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의 아버지가 죽기 직전에 아들에게 말하는 대화 내용에서도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자신의 과오는 흔적을 지우고 아들을 향하는 날카로운 말들에 깊게 팬 아들의 상태를 짐작하게 된다. 어머니가 떠난 이유를 아들에게만 전가시키는 아버지의 언행을 그려낸다. 아들이 보편적인 삶을 살지 못했던 이유들을 그의 성장환경에서도 유추해 보게 된다.

그녀가 아역배우 시절에 학교의 선생님들과 학교 친구들이 건네는 말에서는 거침없는 폭력들이 넘쳐나기 시작한다. 의미를 알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가해지는 수많은 언어폭력들은 난폭함을 넘어서기까지 한다. 그녀의 성장환경도 놓치지 않게 된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드러내는 둔 요구와 보통의 삶을 살아가지 못했던 날들의 무수한 시간들은 그녀의 불면증의 원인이 되기까지 한다. 무력하게 가해지는 어머니의 수많은 요구들을 수긍하면서 살았던 그녀의 이야기는 대학시절 의대생 남자친구에게서 가해진 성폭력과 사진 유출 협박까지도 감당한 이유도 드러나기 시작한다. 여러 번의 불법적 낙태 시술을 감행하고 위험한 상황들을 경험한 그녀의 20대 이야기도 전해지면서 그녀의 곁에서 보호해 주고 돌보았던 그의 존재도 담담하게 전해진다.

그의 눈물은 무수히 멈추지 않는다. 바다가 되는 그의 눈물은 그에게서 말을 가져가게 된다. 말을 하지 않는 그, 힘겹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들을 발견하게 된다. 말과 언어의 힘, 눈물의 힘까지도 그를 통해서 확인하게 한다. 그가 선택한 삶의 이유들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빛보다는 어둠, 화려함보다는 소박함, 물질주의보다는 단출함을 보게 된다. 그녀에게서는 명품 소비와 넘쳐나는 물건들이 주를 이루지만 그녀는 불면증으로 일상적인 삶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그는 작은 집에 하나씩 소박하게 가진 물건들, 걷는 활동이 가진 의미까지도 살펴보게 된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고 택시를 부르는 삶이 익숙하지만 그는 걷는 활동과 자전거만을 이용한다. 그의 곁에서 잠이 잘 오는 이유, 나무와 흙냄새, 숲 냄새가 나는 그를 서서히 이해하게 된다. 그녀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도 점차적으로 확실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녀는 현대사회의 현대인들을 보는 분위기이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삶을 구축하면서 사는 인물이다. 말과 신호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그에게서는 어떤 말도 들리지가 않는다. 그 이유는 후반부에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는 듣는 사람이었고 그녀는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삶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그녀가 그에게서 보호받고 보살핌을 받았음을 알게 된다.

부모라는 어른들은 온전한 어른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의 아버지도 그의 어머니도 그녀의 아버지도 그녀의 어머니도 다르지가 않다. 의대생인 그녀의 남자친구가 보이는 여러 모습들은 도망치고 듣지 않는 이기주의적인 모습만을 보인다. 그녀가 자신을 연쇄살인자라고 말했던 이유가 서서히 드러난다. 그녀가 자책하면서 살았던 이유, 남아선호사상이 아직도 흐르는 사회적 분위기도 작가는 매만진다. 태어나지도 못하고 낙태되었을 아기들을 향한 죄책감은 온전히 그녀만이 느끼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상대 남자들은 어떤 죄책감도 찾을 수가 없다. 의대생에게서도, 그녀의 정치인 남편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녀 딸의 죽음은 상당한 의미를 남긴다. 첫째 딸과 둘째 달의 뛰어난 외모와 다른 외모를 가진 셋째 딸의 죽음에 남편이 보여준 모습은 충격적이다. 시어머니도 자신의 외동아들을 아끼는 모순적인 모성애가 고발되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형태를 보이지만 부모인지, 가족인지 매 순간 의문점을 가지게 하는 이상한 나라가 전개된다. 정치인 남편의 외도와 루머를 대처하는 아내의 모습과 남편이 아내를 감시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무시한 그녀만의 방식들도 전해진다. 남편의 부지런함과 아내의 게으름이 이 부부에게 어떻게 적용이 되었는지도 위트있게 작가는 매만진다.

동성애와 사회적 분위기가 전해진다. 천산갑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구멍과 슬픔들이 조명된다. 그녀에 몸에 아로새겨진 수많은 천산갑의 구멍 흔적들이 그녀가 감당한 슬픔의 흔적임을 알게 된다. 불면증으로 잠을 잘 수 없었던 그녀가 어느 순간 개운하게 잠을 자고 일어나게 된다. 물론 그도 다르지가 않다. 그녀와 그가 잘 자고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소설 후반부에서 드러난다. 그녀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아들은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랐던 이유와 아들이 남긴 빵 부스러기 흔적들이 어떤 의미였는지도 그녀는 서서히 알아채기 시작한다. 함께 도망치고 함께 잠들자는 작가의 깊은 의도를 깊게 호흡할 수 있는 소설이다. 잠의 의미와 눈물의 의미, 말의 의미, 경청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소설을 통해서 보여준다.

1부와 2부, 3부 하나씩 끝날 때마다 감탄을 하게 된다. 기대감으로 다음 이야기를 만나고 또다시 놀라움을 선사한다. 마지막 3부도 다르지가 않았다. 그렇게 하나의 긴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가 않고 묵직한 작가의 음성과 집필된 의도, 꼬집는 날카로움까지도 가득하게 주워 담게 된다. 우리가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질문을 반복할수록 그 질문은 우리에게로 되돌아왔다. 지금 우리는 어디를 가고 있는지, 어디로 발걸음을 내딛는지 잘 살펴보게 한다. 오늘의 선택과 집중, 오늘의 기쁨과 행복을 잘 들여다보게 한 소설이다. 사라진 아들을 찾아나서면서 찾아내는 단서들과 빵부스러기 흔적들이 있다. 남아선호사상과 남녀평등시대를 지긋하게 그녀의 삶을 통해서 보여준다. 연쇄살인자가 된 사람의 고백,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무수히 많은 시대의 가해자들도 선명하게 찾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우리 대체 어디로 가는 건데? 67

화를 내려면 진심이 필요했다. 237


이처럼 미친듯이 걸은 건 정말로 아주 오랜만이었다. 51

좀 더 기다리고, 또 다른 사람을 기다리는 것.

기다림은 수동이 아니라 능동의 상태였다. 12




명품 벡만 살 줄 아는 한물만 여배우.가짜 얼굴이야... 수술을 몇 번이나 한 거야? 공허하다는 평가를 그녀는 인정했다. - P44

수많은 명품을 샀다. 남편은 그걸 보고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걸 다 쓸 생각이야?" 쓴다고? 쓴다는 게 뭔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이나 콩쿠르 수상작 문학 전집을 넣고 다니면 이것을 쓰는 것인가? 그녀는 이 명품들을 전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가져가서 약간 과장된 부러움을 끌어낼 작정이었다. - P43

얼굴이 팽팽하면 청춘인가? 그것이 세월을 이기는 법인가? 아무리 작아도 세월의 흔적은 감출 수 없었다. 어떤 성형 기술로도 눈빛 속의 아픔을 지우진 못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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