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쓸모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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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서를 꾸준히 기웃거릴수록 차곡히 쌓여가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 책은 가독성이 쉬워서 어렵지 않게 책장이 잘 넘어간 도서이다. 『모든 삶은 흐른다』 저자의 도서의 ​ "이분법적 이미지는 덫이 될 수 있다." (44쪽)는 문장과 "악행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면 안 된다.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89쪽) 문장까지도 다시 음미하게 한다.

철학 도서 중 가장 큰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인 책이라 기대감이 상당하였던 철학서이다. 철학을 한다는 건 삶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육체의 고통, 영혼의 고통, 사회적 고통, 흥미로운 고통까지 저자는 책을 통해서 언급한다. 철학적 개념과 함께 철학적 지침서까지도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것이 특징이다. 철학서를 읽다 보면 어려운 설명으로 여러 번 읽을 때가 무수히 많아지기도 하는데 이 책은 한 번만 읽어도 쉽게 이해가 된다. 삶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인생을 숙고하지 않고 무수히 흘려보내버리는 순간들에 익숙해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언급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소설의 인물의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이 책이 진지하게, 쉽게 설명하는 철학서를 제대로 바싹 붙어서 몰입하면서 읽은 책이다.

육체적 고통과 영혼의 고통도 상당하였는데 요즘은 사회적 고통도 만만찮아서 상당히 피로감을 호소하게 된다. 혐오와 차별, 댓글 부대와 언론의 편중된 보도와 노출되는 빈도에도 피로감이 상당하다. 평온한 사회가 아닌 분열과 대립이 팽팽해지면서 사회적 분위기와 세계가 평가하는 사건들의 명확한 어휘가 한국 사회가 얼마나 혼돈과 부재로 위험한지도 인식하게 된다. 텅 빈 1층 임대 건물들이 다시 채워지지 않는 분위기이다. 가계 경제도 사회적 분위기에 빠르게 준비를 하면서 사회적 고통에 대비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숲속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

한자리에 머물러 있지도 않으며,

되도록 한 방향으로 곧장 걸어가고,

선택한 길을 바꾸지 않는 것 26





예측하기 어렵고 불확실한 사회에서 무엇도 확신할 수가 없기에 불안한 사회, 셀 수 없는 동굴들을 비유하는 내용에서 철학은 더욱 긴밀하고도 필요한 시간이다. 영혼의 고통과 사회적 고통도 면밀하게 밀접해지면서 철학적 이해는 한층 더 열기를 발산하게 된다. 나답게 존재하기 위해 철학은 필요해진다.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지도 철학은 진지하게 질문을 던진다. 봉착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도록 철학은 무수히 육체의 고통과 영혼의 고통, 사회적 고통들을 제대로 직시하는 힘을 부여하기 시작한다. 어떤 자세로 육체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좋은지도 처방된다. 그리고 영혼의 고통도 다르지가 않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향과 반대되는 선택들을 한 철학자들도 대표적으로 예시를 들면서 이해도를 높여준다. 쉽게 설명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철학서이다. 읽기 쉬운 철학서라 누구에게나 선물하고 권할 수 있는 철학서이다. 최선의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한 권을 읽으면서 가장 잘 맞는 삶을 찾게 될 것이다. 질병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지 저자의 글을 통해서 정립하게 된다.

죽음에 대한 철학적 내용도 인상적이다. 소소하고 일상적인 활동은 몰입하기에 좋아서 다른 생각과 관심사로 고통을 달래면서 마음을 달래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을 어떤 관점에서 말하는지도 책은 다룬다. 더불어 철학자 김진영 애도 일기 『아침의 피아노』, 사노 요코의 『죽는 게 뭐라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 『풀꽃』, 삶과 죽음도 한통속이라고 속지 말라고 말하는 양귀자 소설 『모순』, 죽음을 깊게 응시하는 영화 『경주』와 영화 『더 디그』, 임사체험한 실제 이야기인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가 떠오른다.

철학의 실체도 설명을 아끼지 않는다. 가혹하고 잔인하다고 명명한 철학의 의미는 모진 각성과 성찰을 요하기에 어떤 각고의 노력이 절실한지도 하나씩 메모하게 된 내용이다. 어렵지 않지만 실행이 뒤따르는 무수한 노력이 철학임을 확인할 수 있다.



모진 각성과 성찰 - P35

현재를 즐겨라 - P51

너 자신이 되어라 = 너 자신의 영혼을 돌보라 = 너 자신을 알라 - P20

실패하더라도, 길을 잃더라도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질 수 있어야...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살아가는 것 - P25

숲속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 한자리에 머물러 있지도 않으며, 되도록 한 방향으로 곧장 걸어가고, 선택한 길을 바꾸지 않는 것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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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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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실체가 무엇이며 어떤 형태로 주변을 침식하는지 작가는 <야간열차>소설을 통해서도 이야기를 한다. 어둠과 대치하는 야간열차의 의미와 의지까지도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서 보여준다. 어둠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는 상황적 모순을 통해서 인물이 어떻게 본연의 것들을 잃어버리는지도 화자를 통해서 관찰된다.

대학생이었던 두 사람이 있다. 각자의 사연들을 들려주면서 그들이 지녔던 고유한 영혼들이 주변에 의해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들이 전해진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의 회사원이 된 동결의 빠른 취업의 이면에 진짜 모습을 알고 있는 친구는 화자뿐이다. 한 번도 친구를 집에 초대하지 않았던 동결이가 어느 날 술에 취해서 화자와 함께 자기 집에 늦은 밤에 가게 되면서 동결이 살고 있는 반지하 집과 가족들을 다음날 아침에 보게 된다. 동주라는 쌍둥이가 있다는 실체까지도 선주라는 여동생을 통해서 알게 되면서 선주가 이야기하는 동결이라는 오빠가 얼마나 불안한지도 알게 된다.

반지하에서 살고 일찍 홀로된 어머니의 주름진 모습은 갖은 고생을 상징하면서 큰오빠 동결의 무거운 어깨와 책임감, 여동생 선주가 언제든지 큰오빠를 대신할 가장의 책임까지도 암묵적으로 시사하면서 이 가족이 저마다 무겁게 짊어진 삶의 무게가 얼마나 가혹한지 보여준다. 쌍둥이 동주가 어떤 사연으로 의식을 찾지 못하게 되었는지도 알게 되면서 희망이 없는 것을 무한히 꿈꾸는 동걸 가족의 어둠까지도 드러난다.



어둠은 그렇게 모두를 삼켜버린다. 갇혀버린 이 가족은 저마다 몸부림을 치지만 제자리를 맴도는 상황이다. 그곳에 동걸이가 있고 화자인 나도 존재한다. 화자가 동걸에게 매료되고 그가 들려준 야간열차를 알게 되면서 의미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동걸은 한 번도 야간열차를 타지 않았다. 야간열차를 타는 순간 그가 떠나게 될 것들과 멀어질 것들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드러날 것임을 여동생도 큰오빠도 암묵적으로 인지하기 때문이다.

화자도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그는 집이 더 이상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아버지, 큰형 부부, 자주 오지 않는 작은 형까지 있지만 그에게 이들은 가족의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 긴 시간 방황하며 졸업하고도 취업하지 않았던 이유도 드러나지만 결국 화자도 친구들 중에서 마지막으로 취업을 한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취업한 친구들의 핑계를 들으면서 자신도 그들과 함께 직장인이 된다.

취업하자 달라진 가족의 반응까지도 소설은 놓치지 않는다. 동걸이 집에서 어머니가 세숫물을 주는 모습에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며 세수한 화자가 돌아갈 집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두 사람이 잃어버린 것들과 타인이 부러워하고 기뻐하는 것들은 채워주지 않는 의미로 남는다. 양복과 직장, 명함이 그들의 어둠을 지워내지도 못한다. 꾹꾹 눌어붙은 어둠의 확장은 어떻게 두 사람을 지탱할 수 있을지 위태롭기만 하다.



번아웃을 호소하는 현대인, 과로하는 노동자들이 두 사람을 대변하기 시작한다. 곧 쓰러져서 바스락거리면서 흔적도 남기지 않을 도시 노동자들이다. 사연을 드러내지 않고 굳게 닫고 질주하는 도시인들의 출근하는 모습과 퇴근 후 모습들이 떠오른다. 두 사람이 조용히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통화는 이 두 사람을 야간열차로 향하게 한다. 약속 장소에 나타난 동걸의 옷차림에서 변화한 그의 의지와 선택을 드러낸다. 그리고 달려가면서 야간열차에 올라탄 화자의 의지와 선택도 강직하게 그려낸다.

자의가 없고 타의에 의해 직장, 직업, 일을 하는 독자들에게 어둠의 실체를 문학적으로, 철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라 인상적이다. 헤매고 있는 껍데기이며, 꿈이었던 존재가 있다. 문득 눈앞에서 마주한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마주할 오욕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가 야간열차라는 상징성으로 부각된다. 살아가지만 인생의 완성이 아님을 알기에, 인생의 완성이 야간열차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되면서 용기와 선택, 의지를 드러낸 두 인물의 혼돈의 시간들을 조밀하게 관찰하면서 진지한 질문을 마주서게 하는 소설이다. 더불어 청량리역을 유형의 장소로 떠올리면서 가는 이유도 명확해진다. 야간열차는 상징적인 의미로 부각되면서 우리의 삶과 유형지가 진짜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머리를 푼 혼령 같은 어둠이 검은 산을 적시고 검은 강물에 섞이다가 아득한 지반 아래로 가라앉을 때, 야간열차는... 달려간다. 145

나는 야간열차를 잊었다. 내 안에 생동하던 젊음의 빛이 바램과 함께 야간열차는 서서히 잊혀졌다. 188

내가 어디에 있든 세상이야 달라질 것이 없었다. 178

아무도 날 기다리지 않아. _나

한 번도 나의 집에서는 잠들 수 없었던 몸이 간절하게 잠을 원하고 있었다. 165_동걸의 반지하 집




청량리역. 마치 유형의 장소에라도 가는 것처럼 발걸음이 내키지 않았다. 야간열차 - P155

머리를 푼 혼령 같은 어둠이 검은 산을 적시고 검은 강물에 섞이다가 아득한 지반 아래로 가라앉을 때, 야간열차는... 달려간다. - P145

나는 야간열차를 잊었다. 내 안에 생동하던 젊음의 빛이 바램과 함께 야간열차는 서서히 잊혀졌다. - P188

내가 어디에 있든 세상이야 달라질 것이 없었다. - P178

나는 여전히 껍데기였다. 모든 것이 꿈이었다. 머리를 감는 선주, 아침 밥상, 주름살 투성이의 어머니, 석유곤로에 데워진 세숫물, 아래목에서 뒤척이는 동결의 분신, 그것이 현실이었다... 내가 헤매고 있었다. - P182

혼자라는 것은... 이제는 내 몸에 잘 맞는 껍질이었다. 그 껍질 속에서 나는 편안했다. - P187

용케들 세상 어디쯤에서 쑤셔 박힐 구석을 찾아갔다. (졸업생 동기들) - P183

자신의 인생을 완성시켜 줄 야간열차가 있었음으로... 살아가며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오욕들에게도 그는 무신경할 수 있었다. - P175

한 번도 나의 집에서는 잠들 수 없었던 몸이 간절하게 잠을 원하고 있었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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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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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소설집이다. 새롭게 옷을 입은 매만진 소설집이라 오랜 시간 응시하면서 작가가 길게 응시한 소설의 이야기로 초대받는다. 6편의 소설들 중에서 『여수의 사랑』과 『어둠의 사육제』를 읽을수록 긴 응시와 삶과 죽음, 고독과 질문들을 무수히 마주 보게 된다.

어둠의 사육제』라는 소설에서 어둠을 응시하고 찾아낸 작가의 시선 끝을 여러 번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간암에 걸려서 항암제 부작용으로 빠져버린 머리카락과 교통사고로 횡단보도에서 뱃속의 아이와 함께 죽어버린 명환의 아내가 쏟아낸 하혈에서도 어둠을 직시한다. 같은 교통사고 현장에서 혼자만 살아남았지만 혼은 이미 이 세상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죽은 것과 다름없는 명환의 존재와 집에 가득했을 어둠들을 이야기한다.

명환의 방에서부터 헤엄쳐 온 어둠... 항암제 부작용으로 뽑혀 나간 인숙언니의 치렁치렁한 머리채 같았으며, 뱃속에 명환의 아이를 갖고 있었다는 얼굴 모를 여인의 하혈 같았다. 125

내가 잃은 것이 돈과 신뢰만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나는 삶과 화해하는 법을 잊은 것이었다. 잘 벼린 오기 하나만을 단도처럼 가슴에 보듬은 채, 되려 제 칼에 속살이 베이며 피 흘리고 있었다. 115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사회, 합의금의 의미는 명환에게는 무가치한 것임을 그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보여준다. 아파트의 가격, 화려한 차, 부족함 없는 이모와 이모부의 직업과 삶에서 따뜻한 온기와 사랑은 찾기가 어려운 서울의 본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움켜쥔 것들은 어떤 가치를 환산하고 있었는지 베란다에서 한기와 싸워도 이겨내지 못하고 선잠을 잘 수밖에 없었던 화자의 고독과 외로움을 작가는 무심하지 않게 외면하지 않는다.

인간의 선함보다는 악함이 우세한 사회에서 뻔뻔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방식이 많은 사람들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모순까지도 보여준다. 자식이 많은 집에서 대학교육은 포기하라는 부모의 말에 스스로 희망과 꿈을 가지면서 서울로 상경해서 일을 하면서 모았던 전세금을 고향 언니에게 사기당하고 빈털터리가 되어 이모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이후의 이야기들에서도 고단함과 외로움, 치열한 한 사람의 이야기로만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아버지의 간암과 어머니마저 몇 달 뒤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린 인숙언니의 고단한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과 갑자기 사라진 전세금 사기 사건도 이야기된다. 아무도 자신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인숙의 말과 화장하는 모습의 반복적인 의미는 이미 희망을 잃어버린 인숙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피곤해. 피곤해 죽겠어. 입에 달고 사는 말 _ 인숙언니 노동자 78

전세금은 ... 내가 키워온 희망이었다. 내 대학이었고, 장래였고, 젊음의 담보였다. 그것은 내 인생 전부였다. 86



기회마저도 박탈당하고 노동을 하지만 피로가 가득한 인숙을 보면서 노동시간을 더 늘리려고 하는 기업의 무자비한 횡포까지도 떠올리게 한다. 노동자의 노동과 피로를 우습게 여기고 쓰러지고 죽어도 감정을 느끼지 않는 현대사회의 폭력들을 인숙과 화자가 살아가는 삶과 달동네의 자취방에서도 찾게 된다.

도시 노동자의 경력이 쌓여가지만 그들은 점차적으로 희망을 가지지 않게 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되짚어보아야 한다. 대중교통비 상승, 생활비 물가 상승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큰 비중이 되고 이들은 희망마저도 포기하게 되는데 인숙을 통해서, 화자를 통해서 고스란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양손에는 책들과 이부자리를 들고 어깨에는 작은 살림들을 메고 나온 화자는 어디서 살게 될까. 무거운 짐을 양손과 어깨에 짊어진 서울의 수많은 노동자와 직장인들이 투영된다. 노동의 쓰임이 무용하지 않기를, 노동자의 땀과 희망이 무색해지지 않기를 응원할수록 그 응원과 바램이라는 희망이 퇴색되어버릴까 봐 조바심을 감추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희망을 가졌던 화자의 꿈은 이제 사라져 버렸다. 되돌릴 수 없는 희망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다. 하루 5 페이지씩 읽는 그녀가 잊히지 않을 소설이다.

불빛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시오? 여기 사람이 살고 있어. 나 여기 숨 쉬고 있어. 나도 여기서 밥 먹고 잠자며 살아가고 있어. - P115

피곤해. 피곤해 죽겠어. 입에 달고 사는 말 - P78

전세금은 ... 내가 키워온 희망이었다. 내 대학이었고, 장래였고, 젊음의 담보였다. 그것은 내 인생 전부였다. - P86

내가 잃은 것이 돈과 신뢰만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나는 삶과 화해하는 법을 잊은 것이었다. 잘 벼린 오기 하나만을 단도처럼 가슴에 보듬은 채, 되려 제 칼에 속살이 베이며 피 흘리고 있었다. - P115

명환의 방에서부터 헤엄쳐 온 어둠... 항암제 부작용으로 뽑혀 나간 인숙언니의 치렁치렁한 머리채 같았으며, 뱃속에 명환의 아이를 갖고 있었다는 얼굴 모를 여인의 하혈 같았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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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라는 세계
리니 지음 / 더퀘스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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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부지런함에는 성실함도 필요조건이 된다. 무용해지지 않아야 하는 이유들까지도 필요해지면서 이 책이 던지는 기록이라는 주제가 흥미를 유발하면서 저자가 기록한 필체와 내용들에서 샘솟는 희망들을 마주 볼 수 있었던 내용들이 인상적이다.

기록은 누군가의 삶을 무심하게 지나치지 않는다. 평이한 일상이지만 그 속에 존재하고 끈끈하게 유영하는 용기와 감정들을 주워 담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그러한 진짜가 되는 보물들을 수집하게 된다. 하나하나 모아서 가득해진 보물주머니에서 서로 닮은 것들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기록은 유용한 의미로 서로를 일으켜 세웠음을 확인시켜준다. 나의 기록들도 다르지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기록들을 뒤돌아보면서 확인하는 것의 유용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되짚어보는 시간이 얼마나 유용한지 알기에 주간, 월간 단위로 되돌아보라고 추천하고 있다.

저자의 시간들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기록이란 그러하다.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메모와 기록들을 이야기하면서 들려주는 저자의 기록이 깊어지는 삶, 넓어지는 삶, 길어지는 삶이었다고 고백한다. 성찰하고 숙고할 수 있었던 기록들이 그녀와 함께 하였음을 3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서 진솔하게 들려주는 글들도 만나게 된다. 예쁜 재능을 가졌다는 것에서 반짝거림이 더욱 눈부시게 빛나게 되면서 그녀의 필체와 다양한 영역의 기록들을 구경하게 된다. 수많은 하루하루의 일상을 기록하고, 주간 단위로 돌아보며, 일 년을 살아왔다는 긴 흔적들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기록의 쓸모들을 보여준다.



필사와 감정노트, 탐구일지들을 어떻게 기록하였으며 어떤 발전성을 확인할 수 있었는지도 조목조목 들려준다. 그녀에게 일어난 변화들이 결코 가벼운 변화가 아니었음을 일깨운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려운 것이다. 기록도 다르지가 않다. 그 처음이라는 출발을 단 한 문장, 짧은 메모라도 시작하라고 응원한다. 그 시작이 어떻게 일주일을 채우고 한 달이라는 기록을 남기는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혼자서 하기가 어렵다면 함께 기록하는 sns 이웃들과 서로를 응원해도 좋은 방법이 된다. 실수노트, 오답노트, 실패노트에 대해서도 언급되는데 유용한 기록이 된다는 것을 경험하였기에 고개를 끄덕인 내용 중의 하나가 된다.

사람 관찰 일지 107

자세히 봐야 보이는 마음 107

건강일기, 운동일기, 식단 일기를 복강경 수술을 하고 나서 꾸준히 기록하였는데 이 기록은 큰 변화로 결과를 보여주었음을 잊지 않게 해줘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 책에는 다양한 주제들로 기록할 수 있도록 이끄는 내용들이 즐비히다. 특히 도파민 체크리스트도 제공되면서 도파민 중독과 숏폼 지옥에 대해서 언급하는 내용들이 기억에 남는다. 미래일기를 기록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아이디어 창고가 될 거라는 기록의 유용함도 기억에 남는다.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만 기록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록할수록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저자의 굵직한 조언을 붙잡아야 한다. 만다라트에 대해서도 소개되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3×3 격자로 이루어진 9개의 사각형도 유용한 만큼 최적의 방안을 찾아서 발전하는 양식으로 사용하도록 알려주고 있다.

나를 키우는 단어들 93

운동일기와 식단 일기를 기록할수록 하루하루를 사랑할 수 있었다는 것이 떠오른다. 나날이 좋아지는 건강을 확인할수록 노력하는 것이 배신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기록도 다르지가 않다. 부록에 소개되는 펜과 노트, 만년필에 대한 정보도 도움을 주는 정보가 된다. 정리물건 리스트도 미니멀라이프에 많은 도움이 된다. 가장 만족스러운 정리물건은 텔레비전이다. 최근에 집에 오신 분들이 집에 텔레비전이 없다고 놀라워하셨는데 가족들은 일찍 정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처음 제안하면서 반대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전혀 가족들은 호응도가 높아서 순조롭게 텔레비전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나를 키우는 단어를 매달 정하는 것도 책은 제안한다. 이 내용도 흥미를 유발한 내용 중의 하나이다.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발전하는 사람이 되고 나아가는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물질적인 향락에 도취하는 삶이 아닌 소박하고 간소한 삶의 행복과 희망도 보아야 한다. 그 과정의 연장선에서 만난 도서이다. 일상에 일어나는 변화의 주인공이 되어줄 책이다. <다정소감> 김혼비 , <필사의 기초> 조경국, <여덟 단어> 박웅현, <쓰지 않으면 아이디어는 사라진다> 다카다 히카루,<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한비야 책 내용도 소개된다.

쓰는 일을 꾸준히 ... 잘 살아보고 싶은 의지, 용기, 희망, 마음 8

일기, 루틴, 건강, 단어, 취미, 사진, 필사, 미래 일기.

기록의 과정과 방법. 노하우 8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준 건 기록 - P7

언어의 세계가 곧 나의 세계다. - P93

기록이란 나를 존중하는 마음 - P176

오프라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만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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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루비
박연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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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소설이라 눈여겨 보고만 있다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아야 할 것 같아서 냉큼 펼친 소설이다. 고요한 포옹, 듣는 사람,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책들을 통해서 시인을 알게 되었다. 장편소설은 기대 이상의 넘치는 감동을 선사하면서 수많은 사색의 시간을 선물받게 한 작품이다.

아이를 버리는 여자들이 언급된다. 갑자기 아이들을 버리고 떠나버린 엄마 미옥이 있다. 비난도 쏟아지지만 그만한 사연이 있을 거라는 이해도 듣는 여자의 이야기는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를 받을 수 있을까. 그 여자들이 아이를 버린 이유와 어떤 결혼생활을 하였는지도 소설에 등장한다. 실패한 결혼과 두 아이를 키운 미옥이 아이를 버린 사연은 직접적으로 들리지는 않지만 남겨진, 버려진 아이들이 받아낼 비난의 말과 시선을 작가는 아이들의 시간에 맞추기 시작한다. "어떤 여자들은 애를 버리기도 한다. 그들의 언덕은 얼마나 높고 가파를 것인가." (222쪽)

엄마가 없는 여름이라는 아이가 화자이다. 고모가 키워준 사연과 어느 날 새엄마가 생겨서 고모 집에서 나와서 아빠와 새엄마와 살게 되면서 여름의 성장 이야기도 전해진다. 처음부터 없었던 엄마이지만 여름을 키워준 고모의 양육방식과 할머니에 대한 마음, 새엄마와 대립한 이야기들도 흥미롭게 전해진다. 어른들이 고집스럽게 지키고 자랑스럽게 살아낸 삶의 방식들의 모순을 여름이라는 아이는 뒤편으로 밀어 넣지 않고 기억하면서 하나씩 자신의 과거와 현재까지도 차분하게 살펴보기 시작하는 소설이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들이 또렷하게 이야기되면서 할머니의 시선과 의자가 지닌 의미도 되짚는다. 지금은 지워진 기억이라 할머니는 떠올리지 못하지만 여름은 그날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기억한다. 애처가라고 소문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질질 끌고 다닌 그날의 밤을 기억하고 있었다. 여자들이 숨기고 덮어버린 진짜 이야기들이 어린 손녀에게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이 소설은 언급한다.

허풍과 자랑을 반복하였던 여자들이 소설에 등장한다. 고모의 삶, 할머니가 덮어놓은 진짜 결혼생활의 민낯, 미옥이라는 루비 엄마가 갑자기 아이를 두고 떠나버린 일까지도 소설은 놓치지 않는다. 거짓말을 반복하는 루비의 거짓된 삶에서 진짜를 보게 되었던 여름은 비밀스러운 친구가 된다. 두 소녀가 나눈 우정도 있지만 비열하게 숨어버리고 외면하는 여름의 모습을 루비가 모르지 않는다. 루비 가족이 반지하 집에서 엄마와 루비가 살고, 아빠와 남동생이 각자 다른 방에서 살고 있다는 것도 여름은 알게 된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조숙한 루비의 모습과 뒤라스 소설 『연인』을 읽는 루비의 모습도 기억나는 장면이다. 루비가 여름을 찾아와서 연락하겠다고 하였는데 루비에게서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남기게 된다. 루비가 믿었던 것들이 퇴색되어 루비가 여름을 찾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만 할 뿐이다.



여름의 아빠가 학교 선생님에게 죽도록 맞았다는 것을 고모에게서 듣는다. 아빠는 여름에게도 선생님에게서 맞지 말라고 당부하는데 여름은 아빠가 가르친 유일한 가르침이라 잊지 않고 거짓말로도 아빠에게 약속을 지켰다고 말한다. 선생님이 학생을 죽도록 때릴 일이 있을 이유가 있는지부터 의문을 가지게 된다. 공적인 가르침이 아닌 감정적인 분출을 학생들에게 하였던 폭력이 아니었는지도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사회가 정당하게 부여받은 폭력과 권력이 얼마나 정당하였는지는 지금도 계속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어린 여름은 학교에서 당하는 폭력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우리를 향해 가해지는 부당한 폭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지 거듭 둘러보게 된다. 예측하지 못한 계엄령에 많은 국민과 세계인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던 사건이 있다. 일어날 수 없는 폭력의 현장에 살고 있다는 것에 우려를 감추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여름이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알아버린 엄마의 부재, 엄마의 부재를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아빠, 새엄마와 대립하는 여름에게 갑자기 태어난 동생이 새엄마가 죽이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과 대립하는 감정들을 지루할 틈이 없도록 흥미롭게 전개하는 시인의 멋진 소설이다.

어른이 무심하게 말하는 말들을 어린 여름은 놓치지 않고 곱씹는다. 기억하고 기억하였을 여름의 수많은 유년 시절을 차곡히 만나게 되는 소설이다. 고모 집에서 생활하면서 터득한 필사하는 습관이 여름에게 글쓰기 실력이 월등하도록 이끈 밑바탕이 되었음을 이야기한다. 고모와 고모부 결혼생활도 실패작이지만 고모는 부러움을 사는 위선적인 기혼자임을 이야기한다. 고모의 결혼이 실패였다는 것, 고모가 자랑한 것들은 여자와 전통, 조선과 식민지, 가해자의 문제로 언급하는 문장도 기억나는 멋진 명문장으로 남는다.

죽음도 차곡히 여름에게는 기억된다. 여름의 고모할머니의 자살 사건, 여름의 아빠 죽음, 할머니 집에서 키운 개들의 죽음까지도 이야기되면서 어두운 구멍과 같은 죽음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까지도 놓치지 않는 작가이다. 늙어서 죽는 죽음을 기다리지 못한 것과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도 예리한 사실적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가르침을 남기기까지 한다. 자기 이야기만을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소음과 같은 정보 시대에 이제는 등을 돌리게 된다. 내 이야기만 들어라고 시끄럽게 언론을 장악한 형태에 소등하게 되면서 어떤 분별력이 필요한지도 거듭 확인하게 될 뿐이다. 의도와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면서 치우친 언론의 소음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고모할머니와 다르지가 않다. 고모할머니가 돌아간 뒤 2일 뒤 자살한 이유는 무엇인지 언급되지 않지만 여백은 고모할머니의 언행에서 찾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짓과 허세로 얼룩진 삶은 진짜가 아닌 가짜이다. 가짜는 언젠가는 드러나기 시작한다. 죽음까지도 쉽게 지우지 않고 불러놓으면서 함께 생각해 보자는 소설의 인물들이 있어서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다.

누군가는 남의 애 키우는 어려움을 수군거리고 누군가는 남의 엄마에게 키워지는 모멸감을 끊임없이 회귀해야 하는 인생도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작품이다. 너무 어리고 기댈 곳이 없어서 삼킨 수많은 말들이 있었다는 것을 여름을 통해서 보게 된다. 어리지만 어린 것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과 유년 시절의 기억들이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인생의 수많은 변곡점에서 죽음과 대화를 나누었는지 여름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서 들려준다.

하지 않은 일을 증명하는 일, 그건 미치도록 어렵다. 89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과 늙어 죽음을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동급이 아닐까요. 168 - P168

깨끗해져야 하는 게 정말 우리였을까? - P81

하지 않은 일을 증명하는 일, 그건 미치도록 어렵다. - P89

‘맞으면 아플까‘라는 생각보다 ‘맞는 게 옳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고민의 여파 - P172

‘남의 애 키우기의 어려움‘. 수군거리는 소리. 피부로 흡입해야 하는 이야기들. ‘남의 엄마에게 키워지는 모멸감‘ - P209

어떤 여자들은 애를 버리기도 한다. 그들의 언덕은 얼마나 높고 가파를 것인가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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