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2003-10-16
개 같은 날의 오후 오늘 교장샘이랑 한 판 했다.(물론 이건 내 입장에서 내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하는 자기 최면적인 표현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교장샘의 억지에 일방적으로 당했다. 나는 흥분하면 마음은 쿵쿵거리지만, 목소리는 가라앉는 편이다.
교장샘의 일방적인 짜증과 고함에 맞받아치지 않고, 최대한 공손하게-여러 선생님들이 보고 계셔서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대응한 건 잘 한 일인 것 같으나...어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랴! 이성은 너무 무력하다, 억지 주장과 목소리 큰 사람에겐 도무지 당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러다가 자리를 피하듯이 회의가 있다며 올라가 버리시는데 무척 황당했다.
나중에는 교장실에 올라가서 교장샘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씀드리고, 이야기를 마무리짓고 내려왔으나 기분은 정말 개떡 같다.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아직까지 속에서 불같은 것이 막 솟아오른다. 그 순간에 좀 더 강하게 나가서 '확 뒤집어 버릴 걸'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이, 소심함이 정말 싫다!! 아무튼 요즘은 정말 되는 일이 없을까? 수업은 안 되는 것에 적응이 된 것인지 몰라도 그냥저냥 할 만한데, 애들도 다시 귀엽게 보이는데... 오늘 같이 어의 없는 일이 생기니...참... 학교는 멀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존중되지 않고, 억지 주장과 큰 소리만 난무하는 학교...지시와 일방통행이 당연시되는 학교...그래서 구성원들의 다양한 생각을 그대로 인정해 줄 수 없는 학교... 상대를 설득하고 대화하려고 하지는 않고, 일방적인 강요를 권위나 리더쉽이라고 강변하는 학교... 웃기지만 내가 당하니 웃을 수가 없다.
정부가 아무리 개혁적인 정책을 세워도 학교에선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학교의 담론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민주적 리더쉽, 학교 자율, 책임 경영 등으로 변화를 요구하지만, 도대체가 민주적이라는 개념이 머리 속에 들어와 있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민주적 리더쉽을 발휘할 수가 있을까? '자율'과 '책임'이라는 말의 진의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학교를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나?' '책임'이라는 말을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부과하는 짐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학교를 어떻게 책임질 수 있나?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이 이렇게 헤매고 있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단위 학교의 책임자들이 이런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는 한 우리 교육은 절대로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외부적인 자극이 주어져도 자극을 내적으로 소화시키는 기능 자체가 움직이지 않거나, 제 활동을 못하고 있으니 외부적인 충격은 오히려 더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책임자 한 사람에 의해서 완전히 분위기가 바뀌는 곳이 사람 사는 곳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앗, 글자 제한이 되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