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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이틀 동안에 도가니를 읽었다. 책은 제목과 저자만 알고 있었고, 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가 폭발적인 흥행에 힘입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온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물론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도. 그 사실이 독자들과 관객들을 분노케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도가니를 읽을 생각은 여태껏 못 했다. 그러다가 대학병원 한 귀퉁이의 가판대에 놓인 도가니를 보고 망설이다가 집어 들었다.(가판대 앞에는 30~70% 할인이라는 광고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으나, 정작 계산할 때는 '신간'은 제외라는 말을 들어야했다. 어쩔까 하다가 이왕 집어든 거 '달려라 정봉주'와 함께 사들고 왔다.)
굳이 리뷰를 쓸 생각은 없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도가니'를 어떻게 읽었나 싶어서 알라딘 리뷰를 눌렀는데, 리뷰가 무려 625개였다.(2012년 1월 20일 기준) 베스트셀러를 꼭 찾아서 읽는 편이 아닌 지라, 아마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리뷰가 많이 달린 책일 것 같았다. '와, 리뷰가 엄청 여러 개 달렸네!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할 말이 많았나 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차례차례 리뷰를 읽어 보는데, 아쉽게도 내가 느낀 어떤 감정과 비슷한 내용은 찾을 수가 없었다. (보통은 리뷰를 쓰기 전에 다른 사람은 어떻게 썼나, 싶어서 리뷰를 읽어 보고, 내 맘에 드는 리뷰가 있으면 추천하고 나는 글을 안 쓴다. 훌륭한-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리뷰가 있는데, 굳이 내 글까지 덧붙여서 사족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 리뷰는 제목처럼 작품의 훌륭함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책의 내용에 대한 아쉬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쓴다. 알라딘에 올라와 있는 엄청난 칭찬 일색의 리뷰를 보면서 '어, 난 좀 아쉬웠는데...'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의 이 아쉬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뭔가 아쉬움은 있는데 아직 그건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뭐 어떻게든 쓰다 보면 조금은 그 실체를 드러낼 수도 있겠지!
내가 읽은 공지영 작가의 전작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는 '우행시'를 읽고는 작가가 좀 더 용감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도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우리 사회에 사형제도에 대한 반대 주장을 폭발시켰다. 그야 책을 읽었으면 당연한 생각의 수순이 아닌가 싶었다. 법원의 판결로 사형수로 확정된 사람이 살인범이 아니라는 소설의 결말은 독자들에게 사형제에 대한 반대 논리를 의심 없이 전파시킨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사형제에 대해서 회의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소설의 결론을 윤수가 살인범이라는 것으로 처리했다면 어땠을까? 윤수는 살인범이지만, 그도 여느 인간처럼 자신의 지난 잘못을 후회하고 뉘우치고 있으며, 다시 한 번 살고 싶다는 욕망을 지닌 존재이며, 사랑하고 사랑받는 어떤 한 인간으로 그려졌다면 어떤 반향을 불러왔을까? 만약에 그랬다면 독자들은 사형제에 대해 반대 논리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잔인하게 사람을 죽였잖아', '살인자를 똑같이 국가가 살인(사형)하는 건 야만적이야'라는 찬반 논란이 조금 더 거세게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작가는 조금 더 안전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아니라면 소설을 자신의 사형제 반대에 대한 신념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수단으로 삼았을 수도 있겠다. 그런 태도가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좀 아쉽다. 나에게 소설(책)은 내 인식의 틀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민'하고 '갈등'하게 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내가 분명하게 본 것을 오히려 흐릿하게 만들어 보여 주는 것, 그게 소설을 읽는 이유다. 당연한 주장은 내 마음이 편안하게 하지만, 내 생각을 확장시켜 주지는 않는다.
도가니를 읽은 리뷰랍시고 어줍잖은 글을 끄적거리면서 '우행시' 이야기만 냅다 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해서 이제 책 이야기를 좀 해 볼까 한다. 여러 사람들의 찬사와는 달리 나는 도가니를 읽는 내내 좀체로 감정이입이 좀 안 됐다. 물론 독자를 소설의 상황에 끌어당기는 흥미진진한 내용과 이를 속도감 있게 펼쳐나가는 전개 솜씨야 이미 정평이 난 데로 훌륭했지만, 나는 소설의 인물들에게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읽으면 읽을 수록 점점 더 소설의 인물들 감정선 밖으로 밀려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소설의 상황에서 자꾸 격리되는 듯 했다.(희곡에서 말하는 '소격 효과'라는 것인가?) 소설을 읽으면서 '어쩜 이럴 수가 있지? 와, 미치겠다, 어떻게 이런 나쁜 놈들이...'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이 아니라, '음, 화가 낫겠네. 세상엔 이런 나쁜 놈도 있겠지? 기득권자들의 행태가 원래 저렇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면 왜 나는 몰입이 아니라, 격리되는 느낌이 들었을까?(그것도 제목이 도가니인데...) 위에 썼던 그런 '감정'이 아니라,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아마도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 때문인 것 같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명확하게 선과 악의 두 편으로 갈라져 있다. 나쁜 놈들에게는 근원적인 악의 야비함과 야만성'만'이 드러나 있고, 정의로운 자의 편에는 진실과 정의에 헌신하는 희생적인 면모만 드러나 있다.(강인호는 예외라고 할 수 있는가? 내가 볼 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도 온갖 개인적인 불안과 어려움을 무릎쓰고 용감하게 진실을 추구하는 편에 뛰어들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이런 사실이 불편하다.
물론 이런 반론도 가능하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최대한 사실에 근접한 내용으로 구성했던 것 뿐이라고. 또,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그 '상식... 그런 게 없는, 말도 안 되는' 일도 많이 일어난다고. 실제 사회에서 나쁜 놈들은 정말 소설에 묘사된 것보다 더 야비하고 파렴치한 짓을 일삼는 자들이라고. 그러니 소설은 단지 그 실체적 진실을 보여주려고 했을 뿐인데, 인물의 성격이 선과 악이 분명해서 불편하다느니 이런 투정(?)은 너무 한가한 소리라는 타박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 소설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모 정당의 정치가를 소설에 대한 최소한의 개념도 없는 사람이라고 비웃는 게 당연하다면, 소설이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한편으로는, 소설가가 일부러 현실 그대로의 모습을 소설에서 묘사했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나쁜 놈들이 있는(많은)지, 그들이 어떻게 기득권을 유지해 나가는지, 그들의 연결시키는 사회적 고리들의 참모습은 또 어떤지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일 수도 있다.
자, 여기서 나는 이 소설이 다시 '우행시'의 결론과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사형제의 찬반에 대해서 조금 더 정공법-윤수가 살인범이라는 결말로-으로 물어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던 것처럼, 가해자들과 그들의 편에 선 자들에게서 보이는 '어쩔 수 없음'을 들여다 보거나, 피해자들과 그들의 편에 선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어쩔 수 없음'도 함께 나타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어떤 상황에서도 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아름다워서 경외감이 들게 하지만 그만큼 독자의 고민의 영역을 줄인다. 반대로 오로지 악마의 화신 같은 모습은 추악해서 분노케하지만 그 감정은 즉자적이다.(물론 이 즉자적인 분노가 한국 사회 특유의 역동성과 결합해서 이번에는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소설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감각한 상황을 고민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점에서 비춰보면 도가니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공지영 작가의 현실 인식이나 거침 없는 소신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꼭 소설의 주제까지 그래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더구나 읽는 이들에게 별다른 고민의 여백을 남겨두지 않는 구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도가니라는 소설과 영화가 이끌어 낸 현실의 변화를 보면서 새삼 문학(예술)의 힘을 느꼈다. 이를 이끌어 낸 소설가의 집념과 노력에 존경을 보내고 있다.(그래서 책 샀다.) 그것은 그것대로 훌륭한 일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에게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그런 소설이다.
*사족* 원래 재미 있게 잘 읽히는 소설인데, 도가니에 대한 칭찬은 다른 리뷰어들이 무척 많이 해 놓았길래, 나는 그냥 이렇게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것을 알리는 정도로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조금 더 나간 점도 있는 것 같다. 워낙 재주가 없으니 할 수 없는 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