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고민이 많았던, 그리고 지금보다도 훨씬 더 소심한 그런 학생이었다. 겉으로는-그런 면도 가지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착한 학생이었던 것도 같다. 친구들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그러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좋은 선배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생각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토요일마다 선배들과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했고, 신앙심도 깊어졌으며, 동아리 활동을 통해 가까운 여학교의 학생들을 만나면서 설레기도 했다. 또, 이런저런 행사를 하면서 대학생 선배들을 만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 만났던 그 형들을 잊을 수 없다.
나름대로는 우여곡절을 거쳐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이미 대학 동아리의 분위기를 익혀버려 약간 건방졌던, 나는 대학 어디에서도 흥미가 없었다. 대학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고등학교 동아리의 4년 선배를 만났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선배가 도시빈민지역의 공부방이라는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같이 해 보자고 제안을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공부방에 갔었는데, 그 동네가 완전 별천지였다. 혼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미로의 골목들하며, 곧 허물어질 것 같은 집들. 악취나는 공중변소. 그리고 비탈길의 경사는 왜 그렇게 심하던지.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그리고 '공부방'은 그 골목끝 그 동네 맨 마지막, 그러니까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로운 아이들이었다. 학교 가면 준비물 안 챙겨왔다고 혼나고, 공부 못 한다고 야단 맞고, 깨끗하게 안 씻는다고 다른 친구들에게 놀림당하는 아이들이었다. 공부방이 아니면 '잘 했다'는 칭찬 한 번 제대로 받기 어려운 녀석들이었다. 부모님들은 맞벌이를 해야 겨우 먹고 사는 정도였고, 그나마 부모가 있는 경우는 드물게 운이 좋은 것이었다. 공부방도 지역의 아이들이 공부할 곳 없이 공터에서 방치되어 있는 걸 안타깝게 여긴 '수녀님'들이 빈민사목을 목적으로 처음 시작한 것이다.
공부방에서 만난 여러 선생님의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나무에게 물을 주듯이 정성껏 돌보면 우리 아이들의 삶도 달라질 것이라는 말씀. 나무가 자라는 모습이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그 만큼 나무도 자란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한다고 하신 말씀. 아니, 그 말씀을 진정 몸으로 옮겨 놓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마음으로, 진정으로 말씀하시는 분을 보게 된 것이다.
또 우리가 매일 올라와서 두 세명, 또는 서너명의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효율성을 따지거나 학생이 너무 적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도 하셨다. 한 아이가 온전하게 자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하셨다. 한 아이가 제대로 컸을 때 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여러 명이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 사람이 바른 사람이 되지 못하면 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사람의 삶도 함께 힘들어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 오신 분이었기에, 아이 한 명을 제대로 키우는 교육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계신 분이기도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씀들이 생생하다. 공부방에 올라오면서 한 번도 이 이야기를 잊은 적이 없다.
따지고 보면, 공부방에 올라가기 전에는 '대학생의 삶을 누리는 사회적 혜택'에 대한 어줍잖은 나름의 부채의식이 있었다. 내가 세상에 갚아야 할 몫이라는 생각, 나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 선뜻 공부방에 올라갔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들을 본 순간,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의 안쓰러운 삶을 너무나 자연스러운 받아들이는 일상에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생기면서, 안타까운 아이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 차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소박하지만 진실로 아름다운 사람들.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는 기쁨을 아는 사람들과 함께 일해서 늘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정말이지 단 한 번도 공부방선생님들께 실망한 적이 없다. 어떤 상황에서든 유연하게 판단하고, 헌신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니까. 스스로에게 즐거운마음으로 일하자는 원칙이 당연하게 실천되는 곳-해돋이공부방이다.
올 한 해도 매주 목요일 저녁을 공부방에서 아이들과 보냈다. 중학교 2학년 말썽쟁이 7명! 늘 아이들에 대한 기대를 낮춘다고 낮추어도, 어느새 아이들을 다그치는 자신을 볼 때 아직 많이 멀었다는 생각이다. 이 녀석들이 진 짐을 생각하면 공부방에 나오는 것만도 대단한 일인데, 나는 항상 욕심을 많이 부린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갈등을 겪을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나는 늘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그리고 돌아서면 이내 후회한다.
어제는 해마다 해 온 성탄잔치를 했다. 몇 년 전까지는 동네 놀이터에 무대도 만들고 해서 마을 잔치처럼 했지만, 얼마 전부터는 그냥 공부방 큰방에서 우리끼리 준비한 장기자랑을 연다. 이번 성탄 잔치에도 초등학생들은 열심히 준비해서 흥겨운 분위기가 났다. 그러나 중학생들은 의욕도 없고, 준비도 부실해서 관객들의 호응이 전혀 없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이들에게 또 잔소리를 했다. 늘 이런 식이다. 아무튼 준비한 프로그램이 끝나고 즐거운 저녁시간! 아이들과 함께 먼지를 풀풀 날리며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과 함께 보낸 기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아이들과 선생님과 함께 보낸 시간이 이젠 제법 길다. 처음 공부방에 올라와 본 7살짜리 꼬마가 어느새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선머슴애 같았던 중학교 2학년이 몰라 볼 정도로 이뻐져서 이번에 전문대학에를 들어갔다. 내가 키운 것도 아닌데, 마음이 뿌듯하다. 언제까지 여기서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을까? 나 자신도 잘 모를 일이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되는 한 계속할 것 같다. 그래서 해돋이공부방은 내 인생에 여러가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공간이자 시간이다.
덧붙임 - 오래전에 단체로 맞춘 공부방 티셔츠를 입고 학교에 갔는데, 그 촌스러움이 아이들의 기억에 오래 남았는가 보다. 아직도 그 여름 티셔츠를 기억하며 나를 "해돋이 선생님"(물론 애들은 해돋이가 무엇인지 모른다.)이라고 부르는 학생들이 있으니! 나? 그렇게 불러주면 나야 당근, 아주 자랑스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