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 활동에 대한 단상(斷想)
느티나무
1. 독서교육 열풍, 문제 없나?
누구나 말한다, 책을 많이 읽어야 생각이 깊어지고 생각이 깊어야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있고 올바른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다고. 학교 밖에서 생각하기에 책읽기는 이제 획일적인 입시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세주가 되기라도 한 듯하다. 그러나 동시에 아무도 살피지 않는다, 왜 지금까지 학교에서는 책읽기를 하지 않았는지, 정말 학교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을 시간을 내기조차 빠듯할뿐더러, 지금까지는 책을 읽으려는 시도를 공부에 방해된다고 막아왔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지 않았나?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에게 책만 많이 읽히면 학교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아이들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는 분명 문제가 있다.
올해 들어 급격히 시들해지기는 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불어와 몇 년 동안 학교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논술 열풍도 같은 맥락이다. 사물이나 세계에 대한 자신의 논리적인 사고력을 바탕으로 창의력과 합리성을 글로 표현하는 방법인 ‘논술’을 기껏 한 두 달 만에 ‘교육’시킬 수 있다는 황당한 인식이 지배하는 우리나라에서 정작 ‘논술’이라는 시험이 목표로 하는 논리적 사고력을 가진 학생이 제대로 선발될 가능성은, 단언컨대, 없다. 또한 애초에 ‘논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고차원적인 사고력을 가진 인간을 기른다는 목표 없이 입시 제도로 한 방편으로 채택된 탓이다. 한 마디로 사상누각이었다.
그런 독서열풍의 상황 속에서 나는 몇 년 동안 아이들과 책읽기 동아리 모임을 꾸려서 운영해 왔다. 처음의 시작은 교육청 심화학습 동아리 공모에 응모를 결심하게 된 것이었지만, 근원적으로 그 동아리 활동 응모에 매력을 느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언젠가부터 ‘앎의 기쁨이 없는 국어 수업’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독서동아리 활동은 국어 교사로서의 내 정체성을 강화하는데 제법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껏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제대로 된 책읽기’에 대한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지만, 어렴풋한 방향은 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현실의 여건을 핑계로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아리 활동을 제대로 하면 제대로 된 책읽기, 진정한 글쓰기를 학교에서도 시작해 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적어도 두 달자리 속성 과외는 아니니까 말이다. 단, 이 학습동아리의 활동이 소수의 재능 있는 아이들의 당면한 입시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모든 학생의 부모님이 낸 세금으로 일부의 아이들에게 비싼 과외를 해 준 셈이니 교사로서는 일부의 아이들에게 특혜를 베푸는 것이라 조심해야 할 것이다.
2. ‘좋은 책’을 바탕으로 삶 읽기
가. 어떤 책이 좋은 책일까?
책읽기를 통해서도 교육이 가능하다면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좋은 책을 골라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론의 여지가 없는 이 명제를 학교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좋은 책을 정하는 게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많이 팔린 책이 꼭 좋은 책은 아니라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그럼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은 괜찮지 않을까? 고전도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아이들의 눈높이나 정서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 보면, 무엇을 골라야 할지 막막해 진다.
그런데, 나는 몇 년 동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과 ‘좋은 책’을 읽었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은 이렇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해마다 스무 권 남짓한 책을 아이들과 읽는다. 해마다 서너 권씩 다를 때도 있지만, 해마다 대개 거의 비슷한 책 목록을 만들어서 책을 읽고 활동을 한다. 이 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책의 영역이나 주제, 내용, 형태…거의 모든 것이 다 다르지만 이 책들은 ‘내가 전에 읽었다’는 것은 공통적이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내가 읽고 좋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또 별로 중요하지는 않지만 꼭 하나 더 꼽자면, 그 책을 읽으며 좋다고 느낄 때, ‘고등학생들이 읽고 이해할 만한 수준이구나’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좋은 책이란, 먼저 읽은 사람(책읽기에 관심이 있는 교사면 더 좋다.)이 좋다고 느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막연하고 억지스럽겠지만 이것에서 한 걸음도 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그리고 누군가가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말해도 결국 읽어 본 사람이 좋은 책이라고 느껴야 하는 것이니 다른 여러 가지 정의도 결국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 책을 읽고 무엇을 할까?
당연히 책만 읽는다고 생각이 저절로 자라는 건 아닐 터. 그러니 책을 읽고 난 아이들과의 활동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책읽기 교육의 핵심이다. 최근 들어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독후 활동의 중심은 독후감상문 쓰기다. 물론 글쓰기 활동은 종합적 사고력을 기르는데 가장 필요한 방법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단편적이고 반복적인 글쓰기 활동은 학생들의 독서 활동에 의욕을 저하시키고 독서 교육의 획일화를 불러온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가능하면 독후감 쓰기 활동은 시도하지 않았다.
물론 과문(寡聞)한 탓이겠지만, 이런 감상문 쓰기 활동을 배제하고 나니 기존의 독후 활동에서 참고할 자료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관련 내용이 부족한 것도 문제겠지만, 어렵게 찾은 자료에서도 내가 선택한 ‘좋은 책’에 꼭 들어맞는 독후 활동이 거의 없어 책을 선택하는 그 순간부터 아이들과 함께 할 의미 있는 활동에 나름대로 고민을 해야 했다.
지난 몇 년간 아이들과 함께 한 독후 활동으로 일반적인 감상문 쓰기는 최대한 지양(止揚)했다. 사실 독후감이 아니면 독후 활동으로 마땅히 할 게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책에 따라서 주제 중심 토론하기(소설), 낭송하기와 시를 이야기로 바꾸어 표현하기(시집), 역할극 꾸미기, 그림 그리기, 사진 찍기, 노래 부르기, 영화 보기(비평문 쓰기), 편지 쓰기, 답사하기, 일기 쓰기, 내용 요약하기, 심층 자료 조사하기, 초청 강연 듣기 등을 함께 했다.
물론 이런 활동들은 아이들이 함께 읽은 책의 특성에 따라 또 다르게 표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다양한 독후 활동은 아이들에게 책읽기의 흥미와 재미를 높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표현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표현 방식의 다양성이 중요하다. 여러 갈래의 표현 방식은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에 따라 적극적인 활동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다양한 독후 활동의 교육적 의의는 학생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표현 방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담기는 내용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담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표현 방식을 스스로 고를 수 있는 능력이 되고, 이는 반대로 표현 방식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기도 할 것이다.
다. 책과 삶은 어떻게 만나나?
그렇지만 이런 독후 활동의 다양성이 궁극적으로 의미 있는 책읽기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표현 활동에 담아내는 내용이다. 그러면 나는 책을 읽은 아이들에게 어떤 내용을 담아오기를 했는가? 늘 의식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되돌아보면 어떤 내용이든, 앵무새 같이 남의 이야기를 되뇌지 말고, 책을 읽은 후 자기 안에서 가만히 차 오른 그 무엇을 끄집어내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내 준 독후 활동의 과제 내용은‘자기가 생각하는…’, ‘자기가 좋아하는…’, ‘자기가 겪은…’, ‘자기가 알고 있는…’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어 있기 마련이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책을 통해 배운 것이 자신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대체 책은 왜 읽어야 할까? 많은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읽은 책을 자신의 삶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책의 내용을 자기 삶의 맥락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교육적 의미가 있다. 이것은 책의 내용을 자기의 입장에서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소화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교육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학습자 중심의 교육 활동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배우거나 읽은 내용을 입장이나 필요에 따라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 교육의 길러야 할 핵심이기도 하다.
3. 독서 동아리 운영, 이렇게 해 보자.
사실, 나는 아이들과 교육청에서 학습동아리를 공모하기 전인 2006년 1월부터 자발적으로 모여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굳이 교육청 공모에 응모할 필요도 없었지만, 지원금이 있다면 책을 사는데 조금 도움이 되겠다 싶은 현실적인 욕심과 아이들에게 조금 더 자극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 응모하게 된 것이다.
동아리를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약속 받은 것 한 가지는, 방학 때도 계속 모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약속은 꼭 지켰다. 오히려 방학 때는 조금 더 여유 있는 활동이 가능해서 좋았다. 답사나 캠프, 체험 활동은 방학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고, 아이들은 이런 방학 활동이 오래 기억이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학기 중에는 이 주에 한 번씩 꼭 모였다. 이 주에 한 번이면 아주 헐렁할 것 같지만, 실제로 운영해 보면, 모임하고 한숨 돌리면 또 모임이다. 모임 활동을 정리해서 인터넷 카페에 올리고, 그 사이에 책 주문해서 책 나눠주고, 숙제 공지하고 나면 다음 모임까지 정말 빠듯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약속한 대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모여서 동아리 활동을 했다는 것이 뿌듯하다.
동아리 모임에 와서 하는 이야기는 어떤 내용이라도 괜찮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내용에 상관없이 말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 동아리에서 자연스럽고 스스럼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까지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생활나누기’가 맡았다.
생활나누기는 본격적으로 독후 활동을 하기 전에 한 명씩 모임에 오기 전날까지의 자기 생활을 되짚어 보면서 말하는 시간이다. 물론, 처음부터 속 깊은 이야기가 나올 수는 없지만, 어색하고 형식적인 말하기 태도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시시콜콜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중요한 온갖 이야기가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흘러 나와 우리를 한 덩어리로 묶었다.
다음으로는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별로 강요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 맡겨 두었다. 당연히 숙제를 해 오고 안 해 오는 것도 99%는 학생의 자유다(100%라고 말하고 싶지만 혹시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야자 시간에 공부하고 싶은 학생은 동아리 모임이 있는 날에도 안 오면 그만이다.
말 그대로 ‘동아리’이니 만큼 스스로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믿음을 끝까지 밀고 나간 셈이다. 숙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내가 제시한 과제는 기본적으로 해 와야 하지만 안 해 와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자기가 준비해 온 만큼 얻어간다는 사실을 학생들도 이미 알고 있는 터라 더 어떻게 해 줄 수가 없었다.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도 있지만, 어떤 상황에 대해 간섭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번듯한 결과에 대한 경계심이 지나친 것이었을까? 아마도 그 경계의 어디쯤일 것이다.
몇 년 동안 동아리를 하면서 다양한 체험활동에 대한 아쉬움이 들 때마다 다른 학교나 단체와 연계되어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아리들이 내심 부러웠다. 내가 좀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책읽기 활동을 시도한다면, 좀 더 체계적이고 수준 높은 독서목록과 계획을 세운다면…… 생각하면 우리 동아리 활동이 너무 정적이지 않나, 싶은 생각을 많이 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늘 자기 변명을 통한 합리화!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착각, 혹은, 스스로에 대한 항변 - ‘책 읽고 생각하고 글쓰기’가 독서동아리 활동의 기본. 이런 믿음이 있기에 다른 동아리 활동이 부러우면서도 지금으로서는 ‘여우의 포도’라고 여기며 한해의 동아리 활동을 마감한다.
4. 그리고, 나의 남은 이야기
네 번째 동아리 활동이 끝났다. 2010년 동아리 활동은 특히 열정이 넘치는 학생들이 많았던지라 끊임없이 나를 자극하는 계기가 많았다. 책 읽고 생각하고 글 쓰는 능력의 편차는 있었지만, 그런 것에 상관없이 조금만 자극을 주고, 도전해 볼 수 있는 주제가 있을 때마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의 열정에 놀랐다. 이 때문에 담당교사인 나도 덩달아 힘을 내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리라.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는 말. 가끔 가식적으로 들렸는데, 이제는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다, 는 말. 늘 관용적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적확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나를 성장시키는 이들과의 만남이 있으니 동아리만큼 좋은 활동도 없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1년을 더 기쁘게 달려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