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보 콩
이시백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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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이시백의 전작, 누가 말을 죽였을까,를 읽고 실컷 웃었던 적이 있었다. 현재의 농촌 현실을 맛깔난 충청도 사투리로 슬쩍 찌르고 눙치는 솜씨가 압권이었다. 읽는 내내 킥킥거렸고 책을 덮고 나서는 마음이 착 가라앉아서 자꾸 생각을 나게 하는 소설이었다. 당연히 주변의 지인들에게 멋진 소설이라고 여러 번 권하기도 했다.  

   그런 작가가 새로운 소설집을 냈다. 야릇한 제목의 갈보 콩. 사실 소설집이 나온 지도 몰랐는데, 알라딘에서 놀다 보니 우연히 알게 됐다. 이번 소설에서도 전작에서처럼 충청도 사투리의 맛은 농익은 감칠맛이 난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자꾸 소리내서 따라하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사투리 표현력에 있어서는 권정생 선생님의 '한티재 하늘'에 나오는 경북 사투리와 함께 최고다. 경북 사투리가 인물의 생각을 단선적이고 직선적으로 표현해서 아주 효율적인 느낌이라면, 충청도 사투리는 의뭉스럽고, 능청을 떨면서도 상대방의 헛점을 찾아 정확하게 찌르는 느낌이다. 아마튼 이시백 소설에서 충청도 사투리 표현은 단연 최고의 미덕이다. (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은데, 충청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는 이 소설가는 정작 충청도에 산 적은 없다고 한다. 기억이 정확한가,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읽는 재미가 무척 뛰어나다. 책을 넘기면서 낄낄거릴 수 있는 대목도 여러 곳이고, 코끝이 시큰해지는 곳도 있으며, 나도 같이 한시름 다 잊고 소설 속 사람들과 어울려서 신나게 놀고 싶은 장면도 있다. 또 이러 장면들을 글로 옮겨 놓을 때는 마치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써 온 것 같은 농촌 생활이 반영된 탁월한 표현이나, 상황에 적절한 해학과 풍자가 곁들여 져서 읽는 내내 싱글거리게 된다. 흠, 나도 이런 표현을 기억했다가 어디 써 먹을 때가 없을까? 싶은 생각이 계속 들 정도였으니까... [갈보 콩이라는 작품을 보면, 여든이 다 된 할머니가 아들이 하는 식당의 손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맷돌을 돌리는데, 날이 너무 더워 "이젠 더 못하겠다. 기생 말년에 거시기 큰 놈 만나서 고생한다더니" 이런 표현이 나오던데, 읽다가 속된 말로 빵, 터졌다. 근데 이 분은 어디서 저런 표현을 배웠을라나?] 

   이시백의 소설에 나타나는 농촌의 현실은 도시인들이 막연히 생각하는 '아름다운' 농촌은 없다. 이곳에도 4대강 사업이다, 농촌체험마을 조성이다, 골프장 건설이다 해서 개발의 광풍이 불고, 이에 따라 시골 사람들도 이런 개발 열풍을 빌려 한 몫 잡으려는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이 떄를 틈타 어떻게든자기 몫(?)을 챙기고자 이런 저런 일들을 벌여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되는 인물들이다. (단편, 두물머리가 그렇고, 물레방아 노래' 역시 그렇다.) 이들이 맞서야 하는 농촌의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은 셈이다. 

   작가는 오늘의 이런 농촌 현실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쌀 직불금 파동을 다루고 있는 '송충이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라는 작품을 보면, 그 당시 뉴스에서는 단순히 직불금 부정 수급 문제만 줄기차게 다뤘지만, 사실은 이 문제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학교는 못 다녔지만 세상 이치에는 누구보다도 밝은 농민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주기 있다. 그렇기 때문에 ' 직불금'로 상징되는 농정의 무능함과 정책의 허구성이 여지 없이 드러난다. 이런 농민의 목소리는 책상에 앉아서 머리로 짜낸다고 해서 나오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놀라웠다. 

   소설의 내용과는 별로 상관 없지만, 책 뒷면의 해설에서 '민중 서사' 같은 말은 이물감이 든다. '민중 서사'라고 하면 왠지 도식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은가?(나만 그런가?) 이미 있는 말로 이 소설을 끼우려다 보니까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딘지 내용에 안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다. 또 하나, 이곳저곳에서 자꾸 이문구의 빈자리를 채운다, 라는 표현도 거슬리기는 마찬가지다. 그냥 이시백은 이시백일 뿐! 이것 역시 그냥 내 생각일 뿐이지만...

   아무튼 그리 많은 소설을 읽어 본 건 아니지만, 최근에 내가 읽은 소설 중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멋진 소설이다. 지인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책이고, 아마도 좋은 책 권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책이다. 이제 작가의 다음 작품은 미리 챙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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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1-21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시백 선생님 소설은 정말 재밌는데, 웃으며 읽다보면 왠지 마음이 무거워지고, 웃고있던 표정이 다시 어두워지게 됩니다. 첫 소설집인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도 엄청 좋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느티나무 2011-01-21 13:54   좋아요 0 | URL
네... 소설보니까 농촌의 현실이 정말 어렵더라구요. 근데, 웃음이 실실 나고, 책 덮어도 계속 생각나고... 씁쓸하고... 딱 맞는 말씀입니다. 일러 주신 대로 주사위 던지기, 방금 주문 넣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실, 리뷰 안 쓰려다가 이 좋은 소설에 리뷰가 한 개 밖에 안 달려서... 썼는데... 아무튼 좋은 소설이 널리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2010년 9월 5일, 일요일 밤에

   방학이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 버렸지만 그 아련해서 더욱 좋았던 기억 한 자락을 남기려고 한다.  

   동아리 여름캠프(금정산 학생교육원) - 우여곡절(태풍으로 하루 연기됨) 끝에 무사히 끝났다. 어설픈 준비과정이었으나 큰 욕심 없이 "즐기자"는 마음으로 진행됐으니, 모두 즐겁게 잘 놀았다. 공부도 하고 놀이도 하면서 재미 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 교사로서 요렇게 노는 게 난 즐겁다.  

   가족여행(덕유산-오도산휴양림) - 역시나 폭우 속에 다녀온 여행길. 특히 오도산에서 바라본 구름의 향연은 장관이었다. 오도산 일출은 합천호 때문에 생기는 구름 때문에 늘 멋진 모습이다. 더구나 오도산까지는 중계소가 있기 때문에 정상까지 차로 갈 수 있다. 구름이 산을 타고 넘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면서 "유연해야 넘는다"는 생각을 다시 해 보았다.  

   2학기 개학을 하고 며칠이 지났다. 항상 시작할 때 마음가짐은 그대로... 수업 준비를 좀 더 알차게 꼼꼼하게 해야지. 동아리 아이들이랑 더 즐겁게 책을 읽어야지, 아이들에게 친절한 교사가 되어야지, 내가 맡은 일은 제대로 해야지, 전교조 분회를 위해 성의껏 노력해야지... 책을 열심히 읽어야지, 교사로서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항상 마음은 가득한데, 문제는 항상 몸이다. 하, 몸이란 녀석은 언제나 이기적이고 예민한지라 마음이 조금만 방심하면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늘 의식하면서 조금 더 가다듬어야 할 부분이다.  

   저번 분회 번개 모임에 진복이를 데려간 이후에 조OO 선생님이 성장클리닉과 작업능력 평가를 권하셨다. 항상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조마조마해서 차마 못 가보고 있었는데... 뒤에서 부추기니 용기를 내서 지난 주 화요일에 성장 호르몬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화요일에 알려 준다고 한다.) 

   마음이 두 갈래인데 성장 호르몬에 문제가 있어서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아 키나 몸무게가 "표준치"에 이르렀으면 하는 것이랑, 아무 문제가 없어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이 문제가 해결됐으면 하는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일단 문제가 해결될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아무튼 이진복이라는 녀석 - 참 사연이 많은 녀석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언제나 -네가 필요하다고 할 때까지 - 지켜보며 응원해 주리라 다짐해 본다.  

   (요즘 EBS에 방송된 "아이의 사생활" 탐독 중! 어렵고도 놀랍다.) 

   2학기에 작은 목표가 있다면, 이 은밀한 일기를 읽는 사람들이랑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는 것! D-데이는 12월 15일 밤. 장소는 지리산? 다들 시간 비워 놓으실 거죠?  

 

   2010년 9월 27일, 월요일 

   진복이 병원은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2박 3일) 겨울 방학으로 미뤘다. 암튼 겨울 방학 때 이 일 때문에 조금 바쁠 듯. 그 전에 녀석이랑 신나게 놀아야겠다.  

   연휴가 무려 엿새간이었다. 처음부터 사흘은 '명절'답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나머지 사흘은 여행을 하기로 했다. 고심 끝에 고른 곳이 경북 울진. 지난 여름 방학 때 가려다가 아내가 아파서 못 갔던 곳인데, 이번엔 결국 다녀왔다. (예약을 8월 1일에 했었다.) 통고산자연휴양림은 말 그대로 깊은 숲속에 있었다. 덕구온천 스파월드에서 물놀이하면서 놀았고(난 음식이 그런 것처럼 온천물도 좋은 거, 안 좋은 거 잘 구별하지 못한다.) 

   히말라야에서의 밤 이후로 가장 맑은 숲에서 이틀밤을 잤다.  

   울진이 자랑하는 소광리 금강소나무숲은 거기에 오랫동안 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좋았다.(스님이 되어 암자를 짓고 혼자 산다면 울진군 서면 소광리에 집을 지으리라.)차로 비포장 도로를 30분 이상 달려야 하는 험한 곳이었지만 2시간을 보낸 그곳의 솔향기가 지금도 아련하다. 

   불영사 계곡과 불영사, 민물고기체험관, 울진 엑스포공원 등도 예상보다 훨씬 알차게 꾸며 놓았고, 잘 가꾸어져 있었다. 또 이 모든 곳이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한적하고 평화로웠다는 사실. 신나는 여행은 사람마다 가치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는 요런 스타일의 여행이 신난다. 보너스로 일요일에 걸었던 휴양림 안에 있는 산책길도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길이었다.  

   앞으로 또 당분간은 휴양림 주변 여행에 꽂혀 있을 것 같다.(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다.) 사실, 다음 여행지로 '영덕'을 생각하고 정보 탐색 중이다.  

   독서 동아리 회원을 새로 뽑았다. 이제 열두 명이다. 뽑아 놓고 보니, 학교에서 예산을 지원해 주지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이제 교육청에서 지원받은 돈은 책을 두 번만 사면 없는데, "사교육 없는 학교" 관련 예산을 지원받지 못하면 큰일이다. (교감샘께서는 항상 애매하게 말씀하신다. 결정권자가 아니시니 어쩔 수 없겠지만...) 

   지난 번 동아리 아이들과 책을 읽으면서 나눈 이야기는, 내 인생을 풀어주는 키워드. 이걸 퀴즈쇼 형식으로 문제를 내면 다른 사람들이 맞히는 거였다. 나는 다섯 문제를 내고 100원-200원-500원-1000원-2000원을 각각 상금으로 걸었다.(슬럼독 밀리어네어처럼) 문제의 정답은 <땅끝마을><베트남><神><책><인큐베이터>였다. 다 내 인생을 이해하는 주요한 열쇠말이다. 참고로, 베트남은 내가 꼭 가 보고 싶은 곳. 스페인의 산티아고, 페루의 마추픽추와 함께 죽기 전에 꼭 보겠다고 결심한 곳이다. (소박한 꿈!)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내 취미는 <책 사 모으는 것-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이다. 이번 달엔 무슨 욕구 불만이 있었는지... 좀 난감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핑퐁><카스테라><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사춘기><난 빨강><나는 유령작가입니다><맑스주의 역사 강의><4월 3일의 사건><B급 좌파 : 세 번째 이야기><휴전><나비 넥타이><월든><가난한 사랑 노래><경제학-철학 수고><로드><자발적 복종><지금이 아니면 언제?><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이걸 어쩐다?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그러나 간결함, 리듬, 그리고 쉬운 문장에 대한 내 모든 태도들은 오로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존재한다. 나는 이오덕 선생이 말씀한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믿는다. 글을 씀으로서 내 일상의 에피소드들은 비로소 내 생각으로 정리되며 그렇게 정리된 생각들은 다시 내 일상의 에피소드에 전적으로 반영된다. 내 삶과 글은 끊임 없이 꼬리를 물고 순환한다. 내 삶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나라는 인간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내 글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결국 문장에 대한 내 태도는 삶에 대한 내 태도와 같다." 

-B급 좌파 : 세 번째 이야기, 김규항, 리더스하우스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김규항의 글을 읽고 일기, 비슷한 글을 블로그에 써 둘까 싶었는데, 역시나 쉽지가 않다. 몸은 정말 예민하고 철저해서 늘 편안한 것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아직 일기를 시작도 못 하고 있지만, 그래도 저 글은 쉽게 잊혀지가 않는다. 그나저나 김규항은 읽으면 읽을 수록 불편한데 왜 계속 읽는지 모르겠다. 자학... 비슷한 심리인가? 

   "독자들의 정신이 번쩍 들게 울분을 토하거나, 학생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는 작품이면 어땠을까 싶지만 내가 목격한 모습들을 최대한 그 온도 그대로 담고자 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제목처럼, '좀 애매한'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처한 상황이 목 놓아 울 만큼 극단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슬픈지 모를 만큼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인생 찌질한 게 무슨 자랑이라고 맨날 그렇게 웃고 떠든대? 찐따 같이..." 

   "낄낄 은지, 나이스~" 

   "그... 그렇다고 울기도 좀 그렇잖아? 하아...하..." 

   "그게 말이지, 나도 그래서 한 번 울어볼라고 했는데... 이게 뭐랄까 참..." 

   "울기에는 뭔가 애매하더라고.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고아가 된 것도 아니고..." 

   "웃거나 울거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 화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 

   "누... 누구한테요?" 

   "그게 문제지" 

   - 울기엔 좀 애매한, 최규석, 사계절 

   만화를 그리는 고등학생들 이야기. 제목처럼 뭔가 좀 애매하다. 하긴 현실이라는 게 좀 그렇지 않은가? 몹시 슬프지도, 몹시 기쁘지도 않은 '그저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애매하다'고 할 수도 있는 두리뭉실함. 양면성이 늘 존재하는 상황!  

   엉거주춤한 상황이 대부분인 현실을 살아가는 고딩들 얘기를 읽으면서 나는 아이들과 소통을 꿈꾼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점점 불통의 벽은 높아지고 내가 노력으로 뛰어넘기엔 힘이 부친다. 아이들의 무심한 표정이 자꾸 눈에 밟힌다. 기운이 쭉 빠진다.  

   "너의 장미꿏이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다" 나는 이런 충고의 진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 삶에서 무엇인가가 소중하다면 그것은 정녕 내가 그것을 위해 고민하고 진땀흘리고 눈물 흘리며 비틀거리던 시간들 때문이다. " 

- 쾌락의 옹호, 이왕주, 문학과지성 

   아이들과 함께 읽기 위해 산 책. 저렇게 멋있는 문장들이 참 많다. 저 글을 읽으며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는 무엇을 위해 고민하며 진땀 흘리며 눈물 흘리며 비틀거렸던 시간이 있는가?<여기까지 쓰고 김OO 선생님의 쪽지(시낭송 대회 참가 안내)가 와서 급하게 동아리 시극 대본을 옮긴다.> 

   그래 문제는 결국, 나 자신이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그런 시간들이 더욱 필요하다. 문제는 이 생각을 얼마나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느냐겠지. 어휴~ 나만 어려운가? 다들 삶이... 

 

   2010년 11월 19일, 금요일 

   노래를 듣고 있다. 디어 클라우드라는 인디 '록'(여기서 '록'인지, '락'인지, '롹'인지 몰라서 국립국어원 사이트에서 검색하니, 록=로큰롤, 으로 나와서 '록'으로 썼다.) 밴드의 "그 때와 같은 공간, 같은 노래가"라는 곡. 3집까지 나온 밴드인데, 노래가 하나 같이 슬프고, 우울하다. 끝 모를 우울함. 그래서 '좋다'고 느낀다. [이런 게 좋으니 좀 이상한 사람인가?] 

   그래 놓고 보니 영화도 흥행이 될 만한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창 영화를 봤을 때도 흔히 말하는 '대박 흥행' 영화는 이상하게 안 보게 되더라.(예전에 '영매'라는 다큐 영화는 우리 동네 영화관에서 나 혼자- 극장에 아무도 없는- 본 적도 있다. 

   나의 어떤 생각이 이런 취향을 만들었는지, 이런 취향의 결과가 내 생각을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비주류적인 취향(이런 걸, 마이너리티 감수성이라고 해야 하나?)을 가진 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아이들은 이런 나를 가리켜 "이상한 샘"이라고 말했었다. "뭔가 좀 다른 샘"이라는 말도 흔하게 듣는 말이었다. 칭찬도, 욕도 아닌 가치 중립적인(?)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늘 애매했다. 씩, 웃으며, "뭐가?" 이렇게 되물으면, 항상 "그냥요. 좀 이상해요." 이런 반응! 조금 더 어릴 때는 늘 '내가 뭐가 이상하지?'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것도 시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지낸다.  

   이렇게 무덤덤하게 지내게 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못난 모습까지도 내 모습이라고 인정하게 되는 순간, 다른 사람의 못난 모습에서 내 못난 모습이 함께 보였으니까, 사람을 말할 때 조금은 조심스러워졌다.  

   이런 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기 어렵지만 이러다 영 물러터진 인간이 돼 있지나 않을지 심히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것 또한 사랑해야 할 내 모습이겠지. 내가 아니면, 그 누가 나의 못난 모습을 사랑해 줄 것인가? 

   디어 클라우드의 노래가 꼬리를 물고 불러 온 내 생각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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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쓴 모둠일기장에서 내가 쓴 일기만 따로 기록해 둔다. 어찌 되었든 내 삶의 소중한 흔적들... 사랑할 수 있을까?

  2010년 4월 5일, 월요일 아침에 

   며칠 전부터 심하던 감기가 좀 가라앉는다. 다행이다. 이번 주말과 휴일은 특별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났다. 어제는 구민운동장에 나갔는데 적당히 따뜻해서 좋았다. (요새 북구청에서 관리하는 구민운동장 때문에 사연이 좀 있었다. 나의 민원 제기에 구청의 답변이 무성의와 거짓말로 일관해서 게시판에 글 좀 썼다.) 난 운동장을 산책하는 시간이 가장 좋다. 평화롭고 한적한 시간. 이 여유로움이 지금 내 삶의 사이클에서 중요한 활력소이다.  

   어제 보니까 꽃이 피기 시작했다. 반갑다. 역시 지금 이 맘 때가 일 년 중에 가장 보기가 좋다. 올해는 이 시기가 너무 늦게 왔다. 그래서 몸살이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몸도 낫고, 꽃도 피고...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기를... 

   학교에서의 일도 슬슬 자리가 잡히고(교무기획 담당이 일이 많다는 건 선입견!) 수업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수업은 여전히 헛발질을 하고 있다.) 보충수업이 끝나면 무조건 바로 귀가! 진복이와 병원에 주로 갔다와서 저녁을 먹는다. 녀석과 대충 놀고 있으면 아내가 와서 가족이 모인다. 녀석의 재롱에 잠시 웃다가 씻기고, 먹이고, 재운다.(물론 주로 아내가 하는 일이지만...) 이런 일상이 좋기 때문에 가능하면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다. 나이가 드니까 점점 인간 관계의 폭이 좁아진다.  

   요즘은 책도 좀 읽는 편이다. '네팔 트레킹'에 대한 책을 시작으로, 등산에 대한 책도 손이 가고, 1Q84도 읽었고, 지금은 '사람은 따뜻한 시선으로 자란다'라는 육아 일기(?) 책을 보고 있는데, 그렇게 마음이 끌리지는 않았다. 그나마 트레킹이 가장 나았다. 좀 재미있는 책을 만났으면 싶다. 

올해 개인적인 바람 

- 입시 부담이 없는 과목(진로와 직업)이니 수업이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 평온한 일상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 전교조 분회에 활기가 넘치고 조합원들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 

- 이 일기장이 1년 동안 잘 굴러갔으면 좋겠다. 

 

   2010년 4월 15일, 목요일 보강 시간에 

   이 일기장의 놀라운 회전력에 경악을 금치 못하다가 그냥 일주일(아니, 6일이네)을 묵혔다. 뭔가 마음 속에 고이기를 기다리기도 할 겸.(근데 여전히 마음이 텅 비었다.) 그 동안에도 평온한 일상이 계속 되었다. 크게 보면 학교와 집을 왔다갔다 하는 생활이 계속 되었고, 작게 봐도 좀 지루한 수업, 아이들과의 소소한 실랑이, 행정적인 업무 처리, 분회 알림 쪽지, 심드렁한 독서까지. 집에 가서는 별로 하는 일이 없으면서 기운이 쭉 빠진 채로 녀석과 잠시 눈을 맞추고 놀아 주기. 주말엔 늦잠과 점심, 저녁이 이어지고 다시 한 주의 일상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한 주를 떠올린다. 그나마 주말엔 산책할 수 있으니까 좀 낫지만... 

   일상이 참 무서운 게 내가 의식을 하든 그렇지 않든 쭉 계속 된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일상의 평온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일까?(아이러니한 얘기일지 몰라도 한 때는 "빛나는 일상으로"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3월에 생각하기를 바쁜 업무만 대충 정리가 되면, 4월엔 수업을 같이 하는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리라고 했건만 아직 시작도 못 했다. 그러니까 아직 아이들과도 데면데면하다. 이런 내 마음이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그래서 좀 서글프다.(현재 내 마음 상태를 볼 때 이 계획은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어제 mp3를 하나 샀다. (기계치라 얼리 어댑터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노래를 좀 담으려고-난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여기저기 검색하다가 세대별 선호곡(100곡)을 봤는데, 깜짝 놀랐다. 심지어 50대들이 선호하는 노래 상위 순서에도 '걸 그룹'들의 노래가 많았다.(그 중에 내가 아는 곡은 서너곡 정도?) 갑자기 '내가 뭘 하면서 사나?'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지만, 갑자기 이상한 반발심에 평소엔 좋아하지도 않는 인터내셔널가와 Bella ciao라는 노래를 다양한 버전으로 줄곧 들었다.(참, 내가 생각해도 성격 이상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상하게도 마음이 착 가라앉으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 제 이름을 느티나무로 지은 이유 : 고향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나무가 느티나무겠지요? 언제나 넉넉한 품으로 시원하는 그늘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지은 별명 "느티나무"(아직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고 싶답니다.) 

 

   2010년 5월 10일 교무실에서, 공책을 받자마자 흔적을 남긴다. 

   어찌 보면 여유로운 일상인데 여유로움을 충분히 즐기지 못 한다. 이 여유 속에서도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 무언가 빠트리고 있는 것이 있어서 나중에 큰 낭패를 당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정작 중요한 건 '행동'인데, '마음'으로만 그치는 일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연구 수업에 대한 압박도 상당하고 독서동아리 활동도 그렇고, 수업 준비도  머리 속은 복잡한데, 거기서 모든 일이 그치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하는 안일한 태도! 지금껏 생각하면 의지로 한 일은 손으로 꼽을 정도가 아닌가 싶다. 늘 시간이, 상황이 내 결정과 행동을 지배해 온 듯 하다.  

   일단 머리속에 든 잡생각은 여기까지 쓰고! 

   자동차를 샀다. 주문을 오래 전(작년)에 했지만 한 달 전에야 나와서 지금은 아내의 출퇴근에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자전거를 타지만. 그 전에 15년이나 된 자동차가 있었는데, 길에서 여러 번 멈춘 적이 있어서 아내는 늘 불안해 했다. 그 차를 폐차시키는 날, 내 마음이 뻥 뚫렸다. 기계가 생물처럼 느껴졌다. 늙고 병들면 저렇게 "용도 폐기" 되는구나 싶었다. 아직도 쥐색 소나타 2만 보면 마음이 아리다. 여전히 새 차는 낯설고! 그런데 아내가 아파트 기둥에다 차를 박아서 문짝이 움푹 패였다. 아, 심란하여라, 내 마음이여! 

   일상이 안정화되어 간다는 것은 마음이 평정심을 찾아간다는 것일까? 여간한 일에는 분노하지 않으며, 또한 처음의 기쁘고 설레던 마음도 모두 집어삼키는 것이라면 안정된 일상은 좋은 것인가? 아닌가? 좋고 나쁨을 떠나 일상은 숙명적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무서운 것이다. (의식적인 노력이 아니라 일상적인 정서를 강조하던 홍세화 선생님의 글이 생각난다.)  

   설레는 마음, 조심스러운 마음, 고마운 마음이 조금 더 오래갔으면 좋겠다. 인간이라는 동물은-물론 나를 포함해서- 영악하거나 간사한 거 같다. (쓰고 보니 좀 과한 표현같지만...) 일기장만 펼치면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온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 쓰고 나면 금방 잊어버릴 생각들... 

 

   2010년 5월 24일, 월요일에 

   오늘은 약간 피곤하다. 어제 부대 '넉넉한터'에 있었기 때문에... 늦게 올라갔지만 공연은 더더더 늦게 끝났다.(11시 16분?!) 부실한 저녁에 간식을 사 먹으려고 어슬렁거리다가 동인고에 계시는 '김호룡선생님'을 만났다.(역시나 '도인'의 풍모를 하고 다니신다.) 집에 오니 벌써 12시다. 모처럼 늦은 귀가. 오면서 월요일 아침에는 꼭 분회 쪽지를 보내야지 했는데...(그렇게 했고) 내일이 모임이다. 

   1,2교시는 수학여행 잔류학생 지도로 약간 바빴다. 3교시는 1-8반 보강. 줄넘기를 하고 싶다는 애들을 주저 앉혔더니 불만이 폭발했다. 살살 달래다가 결국 "빽"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지금은 다시 4교시, 잔류학생들과 앉아서 글을 쓴다.  

   생각해 보니 시간이 참 허망하다. 사흘 간의 연휴를 앞두고 잔뜩 들떠서 이것저것 궁리도 하고 계획도 세웠는데, 시간이 하수구에 물 빠지듯 사라져 버리고 지금은 그 시간이 언제였나 싶게도 아련하다.(그러니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은 진리인가 보다.) 앞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이 다가오더라도 견뎌나가면 그 또한 지나가고 마는 순간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내가 괴로운 순간을 버티는 힘이다. 그러니 위화의 이야기에 끌렸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눈물과 고난의 강을 건너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눈물과 한숨으로 건넌 강의 끝에는 우리가 기대하는 아무 것도 없다. 그저 강을 건너왔다는 사실만 남을 뿐! 그런데 왜 우리는 눈물의 강을 건너야 하는가? 그야,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갈 뿐이라고 한다. 그 강을 건너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쓸데 없이 심각하네. 근데 글 쓰는 순간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자기와 마주하는 글쓰기의 순간이 되면... 이렇다.) 

   분위기를 바꾸는 의미에서 , 어제 김제동 씨에게서 들었던 이야기. 

   복권에 미친 한 사내가 있었다. 얼마나 간절했던지 온갖 신에게 밤마다 기도를 했다고 한다. 꼭 한 번만 일등에 당첨되고 해 달라고 잠들기 전에 신에게 빌었다고 한다. 드디어 이 길고 긴 기도에 감동한 신이 그 사내의 꿈에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자 꿈에서 이 사내가 감격해서 드디어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는 줄 알고 눈물을 흘리는데, 신이 그랬단다. 

   "제발 사고 기도해라" 

   웃음 속에 뼈가 있는 얘기였다. 행동하란 얘기였다. 

   그래서 말인데 요즘은 선거가 좀 걱정이다.(음, 이게 내 문제가 된 거다.) 예전에는 부모님만 어떻게 해 보려고만 했는데, 이번에는 이곳저곳 친구들에게 연락을 좀 했다. 나름대로 최선은 아니더라도 열심히 하고 있다.ㅋ 결과야 뒤에 문제고, 이대로 주저앉기엔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 

   오늘은 보충수업이 없으니 4시 30분에 집에 왔다. 가능하면 진복이가 어린이집 버스에서 내리는 걸 맞으려고 서둘렀지만 이미 집으로 들어간 뒤였다. 이렇게 일찍 오면 꼭 녀석을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 구민운동장이나 대천천을 한 바퀴 돌아오는데 그게 그렇게 행복한 시간일 수 없다. (아, 오늘은 대천천 다리 아래서 담배 피우는 고딩을 불렀더니, 인근 학교 체육복을 입고는 우리 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녀석도 참, 운이 없는 놈이다. 또 다른 다리 아래에서 중학생들이 모여서 돈을 주고 받길래 또 불렀다. 뭐 말도 안 되는 변명만 늘어 놓았지만, 예방 차원에서 딴 데 가서 놀라고 했다. 이 모든 걸 복이를 안고 했다는 사실. 또 한 편으로는 '어른'이라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너무 간섭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리저리 좌충우돌해서 집에 오니까 벌써 6시. 아내는 9교시 수업이라 좀 늦는다고 한다. (근데 참 집에 오면 몸이 천근만근이라 괴롭다. 아, 마음대로 몸이 안 움직여지니까 집에서 슬슬 눈치를 보고... 몸은 무겁고, 마음도 무겁고...)  

   녀석은 눈물이 참 많다. 내 말투가 조금만 달라져도 금방 눈물이 그렁그렁. 나도 눈물이 참 많다. 드라마(거의 안 보지만)나 책을 읽다가 조금만 슬픈 장면이 나와도 찔끔거린다. (녀석은 내 성격을 닮은 것 같다.) 요즘은 어떤 단어만 들어도 자동연상으로 마음이 뭉클한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말만 들어도 마음이 아프다. 눈물이 많은 녀석에게 울음이 적은 세상을 위해 조금 더 열심히 애써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비록, 강 건너엔 아무 것도 없을 지라도... 녀석이 또 살아가야 하니까.

 

   2010년 7월 26일 

   우와, 진짜 오래간만에 돌아온 일기장이네. 한 번 건너 뛰었더니 까마득하네. 앞으로는 빼먹지 않고 잘 써야지. 앞에 일기를 읽으니 다들 힘들고 지친 1학기를 보내거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상에 대한 하소연이 많은 거 같다. 뭐 나도 뾰족한 수가 없었으니, 이 범주에서 크게 다를 게 없었던 듯. 그래도 1학기를 되짚어 보니 좋았던 일도 많았다. 우선 그 기억을 떠올려서 기력을 회복해 봐야 겠다. 

   당연히 첫 번째는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칼퇴근족이라는 사실.(우헤헤) 칼퇴근족은 심리적 여유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 재충전이 (충분히는 아니더라도 적당히) 되기 때문에 수업에도 조금 더 여유가 생기는 게 사실이다. 더구나 나의 수업은 '진로와 직업'. 사실, 이게 마냥 쉬웠던 건 아닌데, 시험 문제 출제에서 해방되는 것만으로도 꽤 행복했다.(난 '그 분'이 안 오시면 문제를 못 내고, 나의 '그 분'은 항상 마감일 새벽에 오시는지라...아직도 나의 '그 분'이 누구신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귀뜸하자면, 그 분은 출제의 신!) 

   독서동아리도 늦게 시작한 것 치고는 녀석들이 잘 따라와 주는 것 같아 재밌다. 호기심이 많고, 학습 의욕이 높은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모든 수업시간이 이럴 수는 없는 걸까?) 

   전교조 분회를 위해 하는 자잘한 일들도 아직은 즐기면서 하는 편이다. 쪽지나 서명, 자료 배포, 모임 준비... 이런 일들이 별 무리 없이 꾸려지고, 사람들의 관심이나 자극을 일깨우는 것 같아 의미 있는 일로 여겨진다. (나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일을 하면서 좋은- 말이 통하는- 사람의 속내도 가끔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 아무튼 분회가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일을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갈등 없이 좋았다. 주변에 앉아 같이 일하는 분들과 큰 마찰 없이 즐겁게 일해 온 것도 운이 좋았다. 아주 친해진 건 아니지만, 적당한 '선'을 잘 지키고 있으니 이것도 좋은 일이었다.  

   집에서야 녀석이랑 잘 지낸다. 쑥쑥 크는 녀석을 볼 수 있어 무척 기쁘다. 아내와도 큰소리는 잘 나지 않고 일상을 지내며 주말엔 나들이를 다닌다. 장인 어른이야 돌아가셨지만, 장모님, 부모님 아직 건강에 큰 이상이 없으시니 크게 근심할 일은 올해 없었다. 아니, 하나하나 또 따지고 들면 불만, 걱정 투성이겠지만 여기에서 멈춰야겠다.  

   방학해도 달라진 게 없는 일상이다. 음 1시에 집에 가는 애들을 보면서 진짜 학교는 이래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매일 한다. 우린 너무 많이 공부하고 너무 많이 일한다. 당연한 게 이상하게 여겨지는 이상한 나라, 이상한 학교. 아무튼 지금이 보충수업이 아니라 학기 중 일과가 되는 날이 꼭 오리라, 믿는다. 그런 날을 살아서, 꼭 보리라. 아, 그런 학교에서 근무해 보고 퇴직하리라. 남들이 그런 학교를 위해 싸울 때, 적어도 뒷배경은 되어 양심에 부끄러움을 덜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 아, 이런, 또 일기가 심각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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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는 청소년, 일반 독자들이 지구 에너지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만만하지 않다. 더구나 대부분의 책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생각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려고 한다면 더욱 더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그런 책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데, 행동이 쉽게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략>

   지난 며칠 동안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를 읽고 다시 한 번 내가 누리는 에너지의 풍족함에 대해 생각한다. 책을 덥고 되짚어 이제 3년 남았다는 강양구 기자의 경고가 머릿속을 맴돈다. 3년이라…그런데 정말 3년 후엔 세상이 확 달라져 있을까? 실감이 나지 않는다. 기자가 계속 경고했듯이 유독 에너지 위기에 천하태평인 우리나라에 사는 무신경한 독자의 한사람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고, 그 위기가 너무 코앞인 3년 후라는 점이 오히려 비현실적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한다. <중략>

  누리는 에너지 소비의 혜택은 조금도 줄일 생각은 하지 않고,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에 대한 당위만 강조하는, 나 같이 평범한 시민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행동할 때 에너지 위기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을 해 본다.

-2008년 8월 12일,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를 읽고 쓴 감상문




   와, 진짜 날이 춥다. 96년만의 맹추위라나? 그래서 어쨌든 우린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시대를 지나고 있는 거니까 이런 경험도 해보는 구나,생각하고 넘겨야겠지? 추운 거야 우리가 어찌해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마음이라도 긍정적으로 먹어야하지 않겠나?

   나도 보충수업이 끝나면 자전거로 쌩하니 집에 가서 따뜻한 방안을 뒹굴거리는 게 일상이다. 그 때마다 아침에 배달된 신문을 펼쳐보게 되는데, 요즘 특히 자주 보게 되는 기사! - “전력 사용 최고 수요, 정전 사태 올 수도……//주유소 휘발유가격 1800대 돌파” 눈으로는 이런 기사를 읽지만, 찬바람 쌩쌩 부는 영하의 추위에 방안에 있는 나는 내복은커녕 러닝셔츠나 얇은 티셔츠만 입고도 신문을 뒤적거릴 만큼 따뜻하게 잘 지낸다. 그러면서도 늘 ‘더 따뜻하게’를 궁리하지만, 전제는 항상 나를 귀찮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를 읽고 나서 내린 결론은 에너지 문제의 핵심이 결국은 ‘나의 불편함’을 얼마나 참을 수 있는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내복을 입는 것, 자동차보다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생각해 보면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많겠지? 좀 식상한 과제지만, 지구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50가지 실천 과제 프로젝트!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 보자. 음, 이건 각자가 50개를 다 만들 수는 없으니까 각자는 20개 정도씩 생각해 오기. 그리고 나중에 모둠별로 토론하고 정리해서 모둠별 리스트를 만들어서 발표할거야. 그리고 모둠이 발표한 자료를 최종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과제를 우리 모두가 의견을 모아 실천과제 50개를 만들고 이 실천과제를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널리 알리는 방법도 같이 고민해 보자.

   두 번째로 개인들이 실천 과제를 지속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부나 사회단체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 에 대한 고민도 함께 찾아보자. 아주 쉬운 예로, 정부가 앞장서서 환경 파괴를 일삼으면 기껏 과제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기운이 쑥 빠져버리겠지? 노력하는 개인과 정부의 정책, 시민사회단체의 조직이 합쳐지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거야.

   책을 읽고 내 생각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은 참 의미 있는 일이지 싶다. 물론 책을 쓴 사람도 보람을 느끼겠지만 책을 읽고 생각이 변한 독자도 못지않게 대단한 일을 한 사람이다. 그런데 생각이 바뀐 것에 그치지 않고 내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독자는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본다. 모든 변화는 행동하는 사람의 노력이니까! 우리 모두 대단한 독자로 재탄생하기를 기대해 봐도 될까?

- 금요일 오후 2시에 예쁜 얼굴 모두 보자, 느티나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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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2010년)에 학교 선생님 몇 분과 교환일기를 썼다. 교환일기는 공책 한 권을 준비하고 순서를 정해 돌아가면서 일기나 단상을 쓰고 다음 선생님께 일기장을 넘기는 형식으로 작년 4월부터 12월까지 적은 글이다. 수업에, 담임에, 업무에, 노조활동에... 끝이 없는 일더미 속에 묻혀 살다가 문득 내 앞 순서의 선생님께 이 일기장을 받아들고는 한숨 돌리면서 내 자신을 되돌아 보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사실, 별 것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직장에서 동료들과 속내를 터놓을 글을 쓴다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 직장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편해보이는-학교라고 해도 말이다.  

    12월 중순에 돌아온 일기장은 방학 동안 우리집에 고이 모셔놓을 생각이다. 문득 작년에  쓴 일기를 다시 읽어보니 그 때 내 고민의 흔적들이 이제는 생경하기도 하고, 여전히 아프게 다가오는 것들도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 일기를 통해 일상적이고 관성적인 삶을 되짚으면서 생각을 가다듬으며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며칠 안에 내 일기는 알라딘에 옮겨 놓을 생각이다. 어차피 공개를 전제로 한 글이었으니 이곳에 있어도 별로 이상할 건 없다. 2010년을 정리하는 내 방식으로 삼아야겠다.

   함께 글을 쓰신 몇 분 선생님께서 이번에 학교를 옮기시는데 내년에도 계속 이 공책을 쓸 수 있을까? 나야, 샘들이 좋다면 언제나 좋지만! 아무튼 이 공책을 보고 있자니 나에게는 작년도 그리 나빴던 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에게 애는 썼다, 라는 평가를 주고 싶다. 무엇보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새로 시작해서 끝까지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사진에 대한 간략한 설명]

1번 - 하늘색 예쁜 표지의 공책. 온 학교를 돌아다녀야 하기에 일부러 표지는 붙이지 않았다.

2번 - 겉장을 넘기면 선생님들께 드리는 말씀과 일기장을 넘기는 순서가 적혀 있다.

3번 - 선생님들께 드리는 내용은 저렇다. 일기 쓰기를 함께 하신 분은 아홉 분.

4번 - 첫 번째 일기는 내가 썼다. 4월 3일이었나? 그랬다. 

5번 - 한 명이 일기를 쓰면 그 뒤에 댓글이 빼곡하게 달린다.

6번 - 한 선생님은 젊은 시절 손석희 당시 아니운서로부터 받은 편지 복사본을 붙이기도 하셨다

7번 - 예쁜 색볼펜으로 정성들여 쓰신 글들이 많다.

8번 - 12월 2일에 "써니" 선생님께서 쓰신 글을 마지막으로 방학 전날(12월 23일)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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