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보충수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동아리 친구들 얼굴 봐서 좋긴 한데, 벌써 방학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드니 이 일을 어쩌냐? 참 답이 안 나오는 학교 시스템이다. 전에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우리나라의 학교가 맡은 가장 중요한 사회적 역할은 아마도, ‘탁아(託兒)’기능이 아닐까 싶다. 너희들이 집에서 빈둥거리는 걸 보시면 아마 일주일도 못 참으실 거다. 근데, 뒤돌아서 생각해 보니, 그 빈둥거리는 시간, 참 소중하더라. 빈둥거리는 게 시간을 죽이는 게 아니라, 자기 내면이 성장하는 시간이기도 했거든. [단, 빈둥거릴 땐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게임은 잠깐 멈추시라.]
방학을 핑계 삼아 너희들에게 책 몇 권 추천해 보려고 한다. 너희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이 적어도 300권은 되는데, 앞으로 우린 몇 번 만나지 못할 것 같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 이건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인 거 같다. 아쉬워도 할 수 없이 방학에 읽을 책 서너 권을 추천해도 이렇다. 이 중엔 같이 읽고 얘기 나누고 싶은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꼭 스스로 찾아서 읽어 보도록!! 물론 다 읽고 나면 동아리 활동집에 정리해 두는 건 의무야.
소설 : 희망1,2(양귀자), 아우라지로 가는 길1,2(김원일), 허삼관 매혈기(위화)
인문 :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루쉰), 동양철학에세이(김교빈 외), 녹색평론선집Ⅰ(김종철 외)
예술 : 침묵의 뿌리(조세희),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오주석), 천천히 그림읽기(진중권 외)
르네상스 미술이야기(김태권)
과학 : 생명이 있는 것은 아름답다(최재천), 우주와 인간 사이에서 질문을 던지다(김정욱 외), 물구나무 과학(전용훈), 울지 않는 늑대(팔리 모왓)
역사 : 거꾸로 읽는 세계사(유시민), 대한민국사1-4(한홍구), 십자군이야기1,2(김태권, 만화)
지난 모임 끝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4천원 인생』은 내가 최근에 마음 짠하게 읽었던 책인데, 너희들에게는 그 감동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됐던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웠다. 아무래도 학생이니까 직접 노동하는 삶에 대해서 조금은 남의 일로 여겼던 게 아니었을까, 싶은데……[너희들이 받은 감동은 무한한데, 나만 괜히 이렇게 생각하나?]
이번 책은『한티재 하늘1,2』다들 읽었지? 읽은 소감을 슬쩍 물었더니 다들 등장인물이 많아서 정리하기가 어렵다더군. 그럼 첫 번째 과제로 등장인물의 인생을 정리해 오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의 삶의 여정을 좇아가 보시라. 혼자서 모든 인물을 다 할 수 없으니 좋아하는 인물 서너 명만 정리해 오면 된다. 또 소설에 읽어보니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의 삶이 짠하지. 그런데 이게 과장이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이름 없이 이 땅을 살다간 우리네 조상들의 삶일 거야. 그래서 두 번째 과제는 가만히 이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면 한 없이 마음이 안타까워지는 인물을 생각해 오시라. 왜 특별히 이 인물에게 더 마음이 가는지 그 이유도 가만히 떠올리고 정리해 오시라. 세 번째 과제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역사적인 사건 조사하기. 민초들의 일상적인 삶은 역사적인 사건 때문에 영향을 받기도 하잖아. 그러니까 그런 사건의 배경이라든가, 결과를 중심으로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사건을 조사해 오면 된단다.
우리 모임은 1월 4일(화요일) 오후 2시부터 시작할거야. 다들 알고 있지? 점심 먹고 오면 1학년 7반 교실에서 모여도 좋겠지? 한 4시 반까지 모여서 과제발표하고 토론도 해 볼 계획이야. 혹시, 이번 모임 사회 볼 사람? 요새 왜 진행하겠다는 사람이 없지?
활동집도 만들기로 했으니,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해야 하겠지? 일단 자기 자료부터 꼼꼼하게 정리해 두는 게 준비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것만 잘 해두면 자료 모아서 정리하는 것이야 문제도 아니겠지! 그럼 모두의 건투를 빈다.
겨울방학에 조금 더 자라려고 애쓰는, 느티나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