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무르익을 무렵이면 떠오르는 길이 있다. 월정사 전나무숲이다. 일주문에서 절까지 이어진 이 숲길은 절로 가는 길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 전나무의 곧추선 기상은 상념을 통렬히 깨트리는 죽비처럼 장쾌하다. 그러나 이 길이 끝이 아니다. 월정사에서 다시 길이 시작된다. 몇 해 전 계곡을 따라 상원사로 가는 옛길이 다시 열렸다. 오대산에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후 스님들이 부처의 향기를 쫒아 오르던 길이다. 이 길의 이름이 천년의 길이다.   

 

적멸보궁과 그곳을 감싼 네 봉우리를 합해 ‘오대’ 

   오대산 옛길은 부처를 찾아가는 길이다. 석가모니의 몸에서 나온 진신사리는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등 모두 다섯 곳에 모셔졌다. 이를 ‘오대 적멸보궁’이라 불린다. 이 가운데 오대산의 적멸보궁은 중대라 불리는 곳이다. 이는 오대산의 중심을 뜻한다. 중대와 중대를 감싸고 돈 4개의 봉우리를 합쳐 ‘오대’라 부르고, 이것이 오대산이란 이름이 됐다. 중대를 찾아가던 길은 한 때 잊혀졌다. 모든 길은 편리함의 상징이 된 자동차에게 내줬다. 그러나 숲과 길, 자연에 대한 성찰이 깊어지면서 잊혔던 길이 살아났다. 월정사~상원사를 잇는 옛길도 천년의 길로 부활했다. 
  

   부도밭이 잣나무 숲 가운데 정갈하게 둥지를 틀었다. 월정사에 주석했던 고승대덕들이 한 점 흙으로 돌아가고 남은 표상이다. 오대산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후 이 산은 속세를 떠나려는 불자들의 사상의 거처가 됐다. 


찻길에 묻혔다 다시 복원된 옛길 

   산사의 새벽. 월정사 일주문부터 길을 잡는다. 전나무숲길에는 차분한 아침 공기가 흐른다. 불자 몇이 산책을 왔다가 소리도 없이 돌아간다. 계곡은 아직 신새벽인데, 월정사에만 아침 햇발이 쏟아진다. 명당이란 이런 것을 두고 이르는 것일 게다. 어디 이뿐인가. 오대산의 오대 암자 모두 천하의 명당에 자리한다. 

   월정사를 뒤로 하고 옛길을 찾아간다. 전나무숲에 들어앉은 부도밭에도 눈길을 준다. 부도밭 곁에 ‘오대산장 4km'라 적힌 작은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에는 ‘봄이 오면 이 길을 맨발로 걸으리라’는 글귀도 있다. 비포장도로만 따라 간다면 맨발로 걸어도 좋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길 앞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월정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다. 아침을 맞아 천년의 길 산책에 나선 모양이다. 일행 가운데는 벽안의 이방인이 있다. 그들은 동산교를 건너자 오른쪽으로 사라졌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옛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섶다리와 징검다리 건너며 옛길 가는 즐거움 

   길은 계곡 오른편으로 나 있다. 계곡에서 바라본 오대산은 이제야 봄빛이 돌기 시작했다. 남도에는 꽃소식이 끊기고, 초록이 지천이지만 오대산은 5월 중순이 지나야 산이 봄빛으로 물든다. 그 전까지는 그저 전나무와 금강송만이 독야청청 푸르다. 1km쯤 갔을까. 징검다리를 건넌다. 장정 둘이 마주 건너도 남을 만큼 널따란 바위들이 놓여 있다. 큰비가 와도 끄떡없을 것처럼 보인다. 천년의 길을 따라 가면 징검다리를 몇 번 건너게 된다. 이 징검다리는 모두 천년의 길을 복원하면서 새로 놓은 것들이다. 길은 계곡을 건너기 무섭게 다시 계곡을 건너간다. 이번에는 나무를 엮어 만든 다리를 넘는다. 다리가 걸린 계곡의 풍광이 아름답다. 이처럼 아름다운 계곡을 눈길도 안 주고 차를 타고 휑하니 상원사로 가는 이들이 안타깝다. 길은 계속 계곡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아늑한 오솔길이 얼마간 이어지다 이번에는 섶다리가 마중을 나온다. 아침 산책을 나온 탬플스테이 참가자들은 이 다리를 건너 돌아갔다. 섶다리를 지나서도 여전히 걷기 좋은 오솔길이 이어진다. 
 

   스님과 탬플스테이 참가자들이 나무다리를 건너가고 있다. 봄이 깊어지는 숲과 계곡에서 세상사의 상념은 잠시 접어두고 자신과 마주하는 일은 뜻 깊다.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오대산장~상원사는 차량과 사람이 함께 가는 길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갔을 때다. 길이 사라졌다. 차들이 연신 오가는 비포장도로만 기다리고 있다. 하릴없이 그 도로를 따라 걸었다. 300m쯤 걸었을까. 다시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차도 오갈 수 있는 시멘트 다리다. 그 다리를 건너자 텃밭이 있고, 정겨운 산막도 있다. 길은 산막을 지나서 키 낮은 잣나무 사이로 이어진다. 그 길의 끝에 다시 징검다리가 나온다. 그 다리를 건너자 오대산장이다. 오대산장부터는 상원사로 가는 비포장길을 따른다. 주말에는 차량이 제법 많다. 이 때문에 자연미를 추구하는 이들은 오대산장에서 발길을 맺음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친걸음이다. 숲에 초록이 드는 기운을 느끼며 천 년 전 깨달음을 찾아 길을 나선 불자를 떠올려본다. 오르막도 아니고, 평지도 아닌 딱 걷기 좋은 길은 하염없이 계곡을 따라 가다 상원사와 만난다. 절 입구에 조선 세조가 목욕을 할 때 의관을 걸어놨다는 조그만 비석이 서 있다. 그때 문수보살이 등창으로 고생하던 세조의 등을 닦아주어 씻은 듯이 낫게 했다고 했던가. 그런 기적이 아니라도 숲길을 걷는 동안, 마음에 깃든 녹진한 마음의 때는 벌써 씻겨 내렸을 것이다.
 

가는 길
   상원사까지는 시내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월정사 주차장에 차를 두고 천년의 길을 걸은 뒤 돌아내려올 때는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월정사 입구나 진부면소재지는 산채정식이 소문났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신록으로 물드는 5, 6월, 단풍 물드는 가을

주소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월정사), (
지도보기)

총 소요시간 : 2시간 30분

총거리 : 8.5km(월정사 일주문~상원사)

   이야기를 나누며 편안하게 걷는 길. 연인이 걷기에도 부담 없다. 숲과 역사, 계곡 등이 어울려 자녀와 함께 하는 체험학습지로도 좋다. 단, 장마철이나 큰 비가 내리면 위험해 걷기 금지다. 

네이버캐스트/아름다운 한국/20100708/글∙사진 김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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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봉산은 한계령을 사이에 두고 설악산과 마주하고 있는 산이다. 설악산이 화려한 산세로 이름을 날리는 반면, 점봉산은 수수하다. 만삭의 여인처럼 불룩하게 솟은 정상부가 그렇다. 그러나 이 산의 품은 한없이 깊고 깊다. 그 깊은 품에서 나무가 자라 숲이 되고, 다시 다른 나무에게 자리를 내주는 천이가 이뤄진다. 이 때문에 점봉산은 ‘활엽수가 이룬 극상의 원시림’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이 원시림 끝에 점봉산을 넘는 부드러운 고개가 있다. 곰배령이다. 이 고개에서 봄부터 여름까지 들꽃이 어울려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 극상의 원시림을 거닐어 만나는 꽃대궐, 여름날의 행복한 추억으로 부족함이 없다.  

 

 눈 많이 오는 점봉산 아래 오지마을 설피밭  

   점봉산 품으로 드는 곳은 진동리 설피밭. 예전만 해도 설피밭은 이 땅 최고의 오지 가운데 하나였다. 양양 양수발전댐 상부댐이 조성되기 전에는 이곳에 마을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현리부터 비포장 길로 40리를 가야 닿을 수 있었던 마을이다. ‘설피밭’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겨울에 눈 많이 오기로 소문났다. 특히, 영동산간에 큰 눈이 내리는 2월 말에는 처마 밑까지 눈이 쌓일 정도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설피밭에 오지란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조침령을 넘어가는 길이 포장되면서 찾아오기가 쉬어졌다. 대신 ‘생태의 보고’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달았다. 산림청은 점봉산이 활엽수로 이루어진 극상의 원시림으로 인정하고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했다. 이 때문에 함부로 점봉산에 드나들 수가 없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한 자만이 강선골과 곰배령을 찾아갈 수 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불편한 일이지만 이 숲을 지킬 수만 있다면, 그래서 후대에도 점봉산의 숲을 볼 수 있다면 그 정도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곰배령 정상에 들꽃이 가득 하다.  

고개 너머로는 운해가 자욱하게 피어나 신비감을 준다.  

활엽수 그늘 아래 나란히 놓인 계곡과 길 

   산길은 설피밭 삼거리에서 시작된다. 왼쪽은 강선골, 오른쪽은 백두대간 단목령으로 간다. 왼쪽 강선골로 방향을 잡는다. 생태체험 프로그램 참가자에게는 노란조끼가 주어진다. 보호림 관리소를 지나면 곧장 활엽수의 깊은 터널 속으로 든다.  

   삼거리에서 강선골까지는 30분 거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길을 꼽으라면 당연히 첫손에 꼽힐 만큼 아름다운 길이다. 이 길은 차는 오갈 수 없다. 사람들만 다니는 널따란 길이 활엽수림 속으로 나 있다. 길은 초입부터 마을과 만날 때까지 계곡과 나란히 이어진다. 계곡은 제 아무리 깊은 가뭄이 들어도 마르는 법이 없다. 한여름 뙤약볕에서도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걸으면 서늘한 기운에 사로잡힌다. 강선마을까지는 오르막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완만하다.  

   강선마을은 예전에는 제법 규모가 큰 화전민 마을이었다. 한때는 강선리라는 별도의 행정조직을 갖추기도 했다. 그러나 화전을 일구고, 산나물이나 약초로 연명하는 삶에 지친 이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마을은 작아졌고, 지금은 몇 가구 남지 않았다. 그러나 상전벽해다. 강선마을이 산림유전자원보호림 안에 들어가면서 이제는 함부로 집을 지을 수도, 들어가 살 수도 없는 곳이 됐다. 오직 끝까지 그 마을을 지키며 살던 이들만 이 숲을 온전히 소유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하늘도 땅도 온통 푸른 초록의 세상

   강선마을을 지나면 길은 오솔길로 변한다. 강선마을에서 징검다리를 건너가면 이제 곰배령을 향해 가는 길이다. 숲은 점점 더 깊어진다. 계곡은 계속 동행을 자처하고 나선다. 가끔은 폭포가 되어 숲을 물소리로 물들인다. 완만한 오르막이 계곡을 따라 나 있다. 호흡이 가빠질 이유가 없을 만큼 부드러운 오르막이다.  

   활엽수 그늘 아래는 양치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고사리류의 식물들은 마음껏 잎을 펼치며 산비탈을 점령했다. 활엽수의 짙은 숲 그늘, 그리고 바닥을 차지한 양치식물로 인해 세상은 온통 초록바다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에 이 길을 걸으면 푸른 비에 젖는 착각이 들 정도로 숲이 깊다. 안개라도 자욱한 이른 아침나절에는 한결 더 신비롭다. 저 홀로 깊어지며 원시의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점봉산의 깊이가 느껴진다. 

   강선마을에서 30분. 한껏 수량이 줄어든 계곡을 건너는 곳에 ‘강선마을 입구 3.7km, 곰배령 1.3km’라 적힌 이정표가 있다. 이제 1.3km만 다리품을 팔면 곰배령 정상이라는 생각에 힘이 난다. 길은 조금씩 경사를 더한다. 그렇다고 가쁜 숨을 토할 만큼 가파르지는 않다. 그저, 오르막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정도다. 여전히 길 곁의 숲은 깊고, 먼 곳에서 들려오는 계곡물소리는 싱그럽다. 
   

강선마을에서 곰배령 가는 길에 있는 싱그러운 폭포.   

깊은 숲에서 쏟아져내려오는 폭포를 보고 있으면 한여름에도 등짝이 서늘해진다.

 

 

곰배령에 펼쳐진 야생화 꽃물결

   이정표에서 30분만 다리품을 팔면 하늘이 열린다. 곰배령에 다 온 것이다. 그 깊고 짙은 활엽수림이 사라지고 곰배령 정상은 드넓은 초지다. 뒤를 돌아보면 백두대간 너머로 웅장하게 치솟은 설악산 대청봉과 중청봉이 보인다. 곰배령을 향해 오르면 초원은 점점 넓어져 축구장만큼 커진다. 그 초원에 기대했던 것처럼 여름 들꽃이 만발했다. 미나리아재비, 쥐오줌풀, 눈개승마, 산수국, 매발톱, 전호 등 형형색색의 꽃들이 ‘꽃바다’를 이뤘다. 마치 식물도감을 펼쳐놓은 것처럼 화려한 꽃물결이 먼 길을 걸어온 탐방객을 반긴다. 곰배령의 들꽃은 여름이 깊어갈수록 더욱 더 만개할 것이다.  

   곰배령에서 시원한 산바람을 즐기며 휴식을 하고 나면 이제 하산할 시간. 하산은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간다. 곰배령~강선마을을 제외한 다른 길은 모두 출입금지다. 강선마을로 내려가는 길도 편안하다. 가파른 오르막이 없었기에, 내려가는 길도 부드럽다. 곰배령만 벗어나면 다시 원시림의 짙은 숲 그늘이라 걷는 게 휴식처럼 느껴진다.  

가는 길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이용 동홍천IC로 나온다. 인제로 가는 44번 국도를 따라 가다 철정 삼거리에서 우회전 451번 지방도를 따라 가면 홍천~상남을 잇는 31번 국도와 만난다. 상남을 지나 현리에서 우회전, 418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조침령 터널 입구. 이곳에서 좌회전해서 4km 가면 설피밭이다. 강선마을~곰배령은 사전에 탐방신청을 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다. 탐방신청은 산림청 인제국유림관리소(033-463-8166)과 진동리 민박협회에서 할 수 있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봄~가을

주소 :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 진동리 (지도보기

총 소요시간 : 4시간(왕복)

문의 : 인제군청 문화관광과(033-460-2080)

   설피밭~강선마을~곰배령은 초등학교 저학년도 갈 수 있을 만큼 길이 좋다. 곰배령 정상부를 제외하면 오르막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완만하다. 곰배령 정상이 부담스럽다면 강선마을까지만 갔다 와도 숲은 제대로 보게 된다. 단, 사전에 탐방예약을 해야 하고, 개장하는 요일과 시기 등의 변화가 많은 점에 유의한다. 

네이버캐스트/아름다운 한국/20100708/글∙사진 김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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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암골이 세간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9년 가을. MBC 예능프로 ‘오마이 텐트’에 소개되면서부터다. ‘오마이 텐트’는 김제동이 MC로 나서 게스트와 함께 캠핑을 하며 진솔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진지한 접근으로 인해 ‘다큐적 예능’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마이 텐트’는 단 1회만 방송되고 종결됐다. 이 프로그램의 처음이자 마지막 촬영지가 살둔마을과 문암골이다. 문암골에는 당시 세운 ‘오마이 텐트가 찾은 걷고 싶은 길’이라는 이정표가 있어 지금도 오지마을을 찾아 나선 이들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세상의 끝 오지마을에서 다시 시작되는 길 

   10여 년 전만 해도 살둔마을은 오지의 대명사였다. 이곳에서 길이 끝났다. 내린천 물길은 이어졌지만 찻길은 없었다. 여행자들은 이 외진 오지마을을 찾아 세상 끝까지 온 듯한 여행의 기쁨을 맞보곤 했다. 그 중심에 살둔산장이 있었다. 내린천 곁에 귀틀집으로 지은 이 산장은 감성이 충만한 여행자의 안식처였다. 그러나 살둔마을이 끝이 아니었다. 길은 끝에서 다시 시작됐다. 그곳이 문암마을로 가는 문암골이다. 살둔산장에서 내린천 건너에 빤히 보이는 계곡. 그 계곡을 따라 오지로 가는 아름다운 길이 있다.  

    

문암골 초입에 세워진 목장승 2기.

이곳에서 내려가면 내린천을 가운데 두고 살둔산장과 마주하게 된다. 

   문암골로 가는 길은 살둔마을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내린천을 오른쪽에 끼고 산비탈을 따라 길이 나 있다. 초입에 ‘자전거 트레킹 코스’라 적힌 이정표가 있다. 문암마을까지는 걷는 것도, MTB를 타고 가는 것도 좋다. 자전거는 생둔분교 오토캠핑장에서 대여해준다.  

   내리막길은 잠시 야트막한 언덕을 지나 부드럽게 이어진다. 언덕을 지나면 남녀형상의 거대한 목장승 두기가 있다. 호랑소라는 비석도 있다. 이곳을 지나면 드문드문 민가가 나타난다. 첫 번째 다리를 건너면서 시멘트포장도로가 끝이 난다. 이곳부터 문암마을 삼거리까지 4km는 아늑한 흙길이 이어진다.  

   다리를 건너 500m쯤 가면 ‘오마이 텐트에서 찾은 걷고 싶은 길’ 이정표가 있다. 이곳부터 민가도 보이지 않는다. 문암마을까지는 이제 둘이 나란히 걷기 좋은 길과 깊은 숲, 소리만으로도 청량감을 물씬 풍기는 계곡만이 있다. 길과 나란히 이어진 계곡은 문암골이 깊어질수록 풍광이 아름다워진다. 바위와 암반이 어울린 협곡이 짙은 녹음 사이로 언뜻언뜻 비친다. 도보여행에 나선 이들은 그 계곡에 발을 담그고 싶어 안달이 나지만 쉽지 않다. 워낙 계곡이 험하기 때문에 내려서는 길이 많지 않다.  

문암골 청량한 물소리는 탁족의 즐거움을 부르고  

 
   이정표가 서 있는 자리에서 10분쯤 가면 첫 번째 삼거리다. 오른쪽으로 가면 운리동으로 간다. 문암마을로 가는 길은 왼쪽이다. 갈림길을 지나면 길은 더욱 아늑해진다. 계곡미도 더욱 빼어나다. 하얗게 포말을 그리며 쏟아지는 물살이 여행자의 마음을 훔친다. 그러나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갈림길에서 1km즘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계곡과 마주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작은 채마밭이 있는 이곳은 물살이 층층이 떨어지며 흘러가는 곳. 계곡물은 발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차다. 걷기는 그만하고, 탁족을 하며 그저 쉬고 싶게 만든다. 이곳에 오마이 텐트가 세운 ‘여기까지 2,500걸음’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여행자를 배려하는 그 이정표가 정겹다. 

   이정표를 지나서도 계곡의 풍광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협곡으로 변해 신비감을 준다. 과연 이 길 끝에 마을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나 끝은 있었다. 다시 ‘여기까지 5,000걸음‘이란 이정표를 만나고 나서 300m만 더 걸으면 잘 포장된 시멘트 도로와 만난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과 달리 말끔하게 포장된 도로여서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 지점이 삼거리다. 직진하면 고개를 넘어가 홍천과 상남을 잇는 31번 국도와 만난다. 문암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넘어 율전리로 장을 보러 간다. 즉, 이 길이 문암마을과 세상을 연결하는 끈이다. 따라서 주민들의 편리를 위해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든 것이다. 반면, 문암골에서 살둔마을로 가는 길은 활용도가 떨어져 점점 아늑한 오솔길로 변하고 있다. 

   삼거리에서 문암마을로 가는 길은 왼쪽이다. '문암마을 감리교회 2km'라 적힌 이정표가 있는 다리를 건너간다. 삼거리에서 문암마을로 이어진 길은 특별하지 않다. 짙은 숲 그늘도 없고, 경치도 특별날 게 없다. 무엇보다도 포장된 도로가 마음에 거슬린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계곡이 한결 가까워졌다는 것. 이제는 틈만 나면 계곡에 발을 담글 수 있다. 
   

빗물로 불어난 문암골의 계곡물이 세차가 흘러가는 가운데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첫 번째 삼거리가 나온다.

 

종교적 경건함이 흐르는 소박한 문암교회 

   삼거리에서 문암마을까지는 20분이면 족하다. 이 계곡 끝에 무엇이 있을까 싶던 의구심은 마을 입구에 닿으면 풀린다. 마을이 터 잡은 계곡은 생각보다 넓다. 부드럽게 흘러내린 산자락 마다 밭이 만들어져 있다. 10가구쯤 되는 집들도 띄엄띄엄 있다. 과거에는 꽤나 큰 마을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마을에 있는 문암교회는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들고나는 길도 험하기 짝이 없던 그 시절에 이곳에 교회가 있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최근에 새롭게 단장한 문암교회는 종교가 추구해야할 진정성과 가치를 조용히 말해준다. 통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황토로 벽을 발라 지은 교회는 아담하다. 하늘을 찌르는 첨탑도 없이 수수하다. 교회 내부도 소박하기 그지없다. 예배당 정면에 세워 놓은, 나무를 켜서 만든 선이 자연스러운 십자가도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창문 너머로는 문암마을의 전경이 펼쳐진다. 무신론자에게도 종교적 감동을 줄 정도로 경건함이 흐르는 검박한 모습이다. 

   문암마을에서 땀을 식히고 나면 이제 돌아갈 일만 남는다.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길이라 조금 싱거울 수는 있다. 하지만, 언제든지 내장까지 시원하게 훑어줄 계곡이 기다리고 있어 발길이 가볍다. 혹여, 밭일 나가는 농부의 트럭이라도 얻어 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가는 길
   살둔마을이 들머리다. 서울~춘천고속도로 동홍천IC로 나와 56번국도 양양 방면을 따라 가면 내면 지나 광원리에 이른다. 광원리에서 우회전, 446번 지방도를 따라 8km 가면 살둔마을이다. 영동고속도로 진부IC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운두령을 넘어가 내면 창촌에서 56번 국도를 갈아타도 된다. 대중교통은 상봉이나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와 직행버스를 이용해 홍천읍까지 간다. 홍천읍에서 내면 율전리행 버스가 약 1시간 단위로 운행된다. 2시간 소요.  

숙박
   살둔마을 주변에 펜션과 민박이 많다. 살둔산장(033-435-5928)은 주말에는 서둘러야 예약할 수 있다. 생둔분교 오토캠핑장(033-434-3798)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삼봉자연휴양림의 산막이나 캠핑장을 이용할 수 있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여름~가을

주소 : 강원도 홍천군 내면 율전2리(지도보기

총 소요시간 : 3시간30분

문의 : 홍천군청 경제관광과(033-430-2546) 

차량 통행도 가능한 편안한 길이다. 아이들과 함께 걸으면서 쉴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도 나쁘지 않다. 여름에는 편안한 샌들을 신고 가도 무방하다. 생둔분교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MTB체험을 할 수도 있다. 계곡의 시원한 그늘에서 탁족을 즐기면 삼복더위도 모르고 지나간다.
  

 네이버캐스트/아름다운 한국/20100805/글∙사진 김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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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피천은 맑은 물의 대명사다. 이 땅의 이름난 물줄기들이 개발바람에 휩싸이고 하나둘씩 오염되어갈 때 저 혼자 독야청청 맑은 물을 흘려보낸다. 경북 영양에서 시작하는 이 물줄기는 낙동정맥을 굽이굽이 돌아 울진을 거쳐 동해에 물을 부린다. 물줄기가 시작된 곳도, 이 산 저 산, 이 골짜기 저 골짜기의 물을 보태 몸이 제법 튼실해질 때도 강물은 산 속으로만 숨어서 돈다. 이 때문에 이 은밀한 강은 유리알처럼 투명하다. 강이 흘러가는 대부분이 사람의 마을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길도 없다. 강물이 길이다. 강물을 거닐어 저벅저벅 걸어갈 수밖에 없는 곳이 널려 있다. 사람의 발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이는 왕피천이 계속 청정하게 흐를 수 있게 하는 큰 힘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이자 청정지역

   왕피천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원해 동해에 닿을 때까지 60.95km를 흘러간다. 이 가운데 울진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오지로 남아 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찾아가기도 어렵거니와 왕피천의 속살로 들어가는 길도 아예 없거나 있어도 아주 불편하다. 왕피천으로 드는 길은 울진 성류굴에서 거슬러 가거나 울진 서면 삼근리에서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다른 하나는 영양 수비면 수하리에서 물길을 따라 내려가는 것이다.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편한 것이 없다. 산을 넘거나 물을 건너다니면서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왕피천 위로 뭉게구름이 피어났다.  

강물은 오른쪽으로 굽이졌다가 산자락 사이를 굽이치며 흐른다.


   왕피천은 최근 환경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보호구역 안에서는 어로나 야영, 취사 등의 행위가 일체 금지됐다. 이것은 왕피천의 자연생태적인 가치가 그만큼 크다는 증거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왕피천의 하류는 은어와 연어가 회귀하는 곳이다. 꺽지와 버들치, 쉬리 등 민물고기도 다양하다. 이처럼 먹이사슬이 풍부하자 수달과 산양 같은 멸종위기의 동물들이 이곳을 무대로 살아간다. 왕피천의 상류는 청정지역의 보증수표인 반딧불이 서식지로 유명하다. 이곳은 반딧불이 애벌레 유충의 먹이인 다슬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러나 함부로 채취할 수 없다. 반딧불이 먹이를 위해 환경감시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키고 있다.  

 우무마을 벗어나면 인적 끊긴 천혜의 외딴 곳 펼쳐져 

   왕피천에서도 가장 외진 곳을 꼽으라면 영양 수하리에서 울진 왕피리 사이를 들 수 있다. 이곳은 군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 길이 전혀 없다. 수하리 끝마을 오무에서 왕피리의 첫 마을 한천까지 6.5km는 오직 강물만이 흘러가는 무인지경이다. 오무마을을 벗어나는 순간, 인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태고의 자연만이 반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강물과 벗하며 걷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오무마을에 닿으면 ‘도로끝’이란 도로표지판이 서 있다. 이곳이 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다. 왼편의 언덕에 왕피천 탐방안내소가 있다. 우선 탐방안내소에 들려 실물과 똑같은 모형으로 제작한 지도를 보면서 왕피천을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또 왕피천의 생태적 가치와 이곳을 무대로 살아가는 동식물도 알아본다. 특히, 한천마을까지 오가는 길의 상태나 강물의 수위에 대해서도 타진한다. 왕피천 트레킹에서 강물의 수위는 아주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왜냐하면 한천마을까지는 수도 없이 강물을 건너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한천마을까지는 강이 길이고, 동행이다

   오두마을에서 강을 건넌다. 강 건너에는 외벽을 근사한 꽃그림으로 장식한 귀틀집이 있다. 이곳을 지나서 강변을 따라 가는 길은 좋다. 그러나 200m쯤 가면 다시 강을 건너게 되고, 마지막 민가를 지나면서는 길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당황스럽다. 어디로 가란 말인가. 정답은 강이다. 강만 따라가면 된다. 강을 따라가는 방법은 각자의 몫이다. 강물을 텀벙거리며 걸어도 되고, 강기슭에 토끼길을 만들며 가도 된다. 분명한 것은 길의 존재 여부를 묻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걷는 길이 길일 뿐이다. 그것이 왕피천의 법칙이다. 그렇다고 험하거나 못 갈 길은 아니다. 바위와 암반이 끊임없이 나타나지만 위협적이지 않다. 강물의 수량만 만치 않다면 요리조리 피해갈 곳이 있다.

   우무마을에서 시작하는 왕피천의 이름은 장수보천이다. 이 물줄기가 산자락을 크게 한바퀴 돌아나가면서 인적이 끊긴다. 혼자 출발했다면 끝까지 혼자일 확률이 99%다. 산이 장막을 친 깊은 강물 위에 혼자 있다는 상상을 해보라. 호젓하기도 하지만 적적하기도 하다. 길동무를 해줄 대상은 강물 밖에 없다. 반면 누군가 동행이 있다면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걷기에 그만이다. 걷다 지치면 강물에 몸을 던져 시원하게 물놀이를 할 수도 있다. 
 

산이 막으면 이리 뒤틀고, 또 산이 막으면 저리 뒤틀고

   왕피천은 한천마을에 닿을 때까지 특색 있는 구간이 별로 없다. 강물이 지나는 계곡의 표정이 거의 비슷하다. 잔돌이 깔린 개울처럼 흘러가다 바위를 만나면 깊은 소를 이룬다. 가끔 급류를 이루며 물살이 거센 곳도 있지만 폭포라 부를 만큼 거창하지는 않다. 그러니 어느 곳도 이름이 없다. 딱히 부를 만한 지명도 없고, 길이 분명치 않으니 딱히 설명할 방법도 없다. 그저 물을 따라 걸어가라는 수밖에 일러줄 것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걸어볼 만큼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이다.  

낙조에 붉게 물든 왕피천.

왕피천은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이자 청정한 자연을 자랑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오무마을에서 멀어질수록 달라지는 것이 있다. 강물의 굽이치는 각도가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다. 초반은 강물이 곧장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반을 지날 때면 점점 곡류가 심해진다. 강은 고작 200m를 가지 못해서 다시 휘어진다. 강물은 산이 막으면 이리 뒤틀고, 또 산이 막으면 저리 뒤튼다. 첩첩산중이다. 그렇게 산이 쉼 없이 막아서 강물이 잠시 숨을 고르는 곳에는 꺽지, 피라미, 버들치가 활보한다. 인적을 느껴도 별로 무서워하는 모양이 아니다. 왕피천은 예나지금이나 물고기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굽이치며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 걷기도 지칠 때쯤, 강을 막아선 산등성이에 인간의 흔적이 나타난다. 산비탈을 따라 밭을 만든 모습이 역력하다. 한천마을에 닿은 것이다. 강물을 따라 크게 한 바퀴 돌아가면 산중턱에 자리한 마을에 닿는다. 여기가 반환점이다. 이쯤에서 돌아서야 오무마을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왕피천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은 협곡을 이루며 동해로, 동해로 향해 간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여름~가을

주소 : 경북 영양군 수비면 수하리 오무마을(지도보기)   

총 소요시간 : 4시간30분

문의 : 영양군청 문화관광과(054-680-6062) 

   오무~한천 구간은 돌아오는 교통편이 없다. 다시 계곡을 따라 원점 회귀해야 한다. 산악회의 안내산행을 따라 가면 왕피천의 주요구간을 편도로 주파할 수 있다. 간식과 도시락, 물은 필수다. 긴 바지와 긴소매 옷을 입는다. 아쿠아 슈즈보다 물에 젖을 각오를 하고 등산화를 신고 가는 게 발이 편하다. 스틱이 있으면 강물을 건널 때 유용하다. 강물의 수위와 날씨는 반드시 체크한다. 중급 이상의 트레킹 경력자에게 추천한다.  

네이버캐스트/아름다운 한국/20100819/글∙사진 김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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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라고 다 같은 소나무가 아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에 따라 모양과 때깔이 다르다. 종자에 따라 뻗어나간 기상도 다르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따라 자라는 금강송. 국내 소나무 가운데 금강송과 견줄만한 소나무는 없다. 제 아무리 아름다움을 뽐내는 소나무라 하더라도 금강송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싱싱한 놈은 껍질도 붉고, 거죽을 벗겨낸 몸통도 붉다. 그래서 황장목(黃腸木)이라고도 불렀다. 이 소나무는 굽을 줄을 모른다. 오로지 하늘을 향해서만 쭉쭉 뻗어 올라간다. 배롱나무처럼 실실 허리를 꼬며 자라는 경주 삼릉의 솔숲과는 견줄 수 없는 품격이 있다. 금강송과 마주하는 순간 자연에 대한 존경과 경이로움이 몰려온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지존의 포스가 느껴진다. 오죽하면, 조선의 황실에서는 금강송 군락지는 함부로 벌채할 수 없는 봉산(封山)으로 지정하고, 궁궐을 짓거나 나라의 큰 일이 있을 때만 베어다 썼을까.  


 

 

생태경영림으로 지정된 우리나라 최고의 금강송 군락지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는 금강송 군락지 가운데 최고로 꼽는 곳이다. 낙동정맥의 깊숙한 품에 자리한 이곳은 늘씬하게 하늘로만 치솟은 금강송이 산과 숲을 빼곡하게 매우고 있다. 헌걸차게 치솟은 금강송의 자태도 자랑거리이지만 이처럼 규모 있는 숲을 찾아보기 어렵다. 워낙 깊은 산속이라 일제와 한국전쟁 등 근대화의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자행된 벌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의 면적은 2247ha. 수령 500년이 넘은 보호수 두 그루와 350년 된 미인송, 200년 이상의 노송 8만 그루 등 총 1,284만 그루의 금강송이 이곳에 자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는 1959년부터 민간인의 출입을 금지했다. 금강송 군락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6년. 남부지방산림청이 ‘금강소나무 생태경영림 에코투어’란 이름으로 일반에 개방했다. 이로써 과거 조선 왕실부터 봉산으로 지정돼 신비에 싸여 있던 이 숲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소광리 금강숲을 둘러보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임도와 산책로를 따라 짧게 돌아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임도를 따라가면서 종일토록 금강송을 찾아다니는 방법이다. 대부분은 2시간이면 충분한 탐방코스를 선택한다.   

 

매끈하게 뻗어나간 금강송의 자태. 금강송은 젊고 싱싱한 것일수록 몸통의 껍질이 붉다.

500년을 살아온 할아버지송에서 풍기는 세월의 무게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 주차장에 도착할 때부터 솔향기가 가득하다. 주차장을 감싼 숲이 모두 금강송으로 빼곡하다. 사람들은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간 소나무를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다. 주차장 주변에 심어진 금강송은 후계림으로 조성된 것. 고작해야 연차가 20~30년 밖에 되지 않는다. 100년 이상 묵은 진짜 금강송들은 산책로를 따라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산책로는 임도를 따라 조성됐다. 부드러운 흙길이라 걷기 좋다. 물론, 길 좌우로 금강송이 사열을 하듯 서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길은 가볍게 굴곡지면서 계곡을 향해간다. 100년 전에 낙동정맥 고개를 넘는 길이 그랬을 것처럼 푸근한 인상이다. 그 길을 따라 600m쯤 가면 길 한 켠에 우람한 덩치의 금강송과 마주보게 된다. 첫눈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젊고 패기 넘치는 여느 금강송과 달리 만고풍상을 다 겪은 눈치다. 이 나무가 할아버지송이다. 

   할아버지송의 나이는 무려 500살. 조선 9대 임금인 성종 때 태어났다. 할아버지송은 여느 금강송과 달리 몸통에서 뻗어나간 가지가 두껍다. 굵기만 두꺼운 게 아니다.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용 모양으로 가지가 심하게 뒤틀렸다. 몸통을 감싼 딱지는 거북의 등짝처럼 두껍고 단단하다. 할아버지송 곁에 금강송과 일반 소나무의 속살을 비교 체험할 수 있는 안내소가 있다. 

전망대에 서면 금강송숲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할아버지송을 지나면 길이 아주 조금 가팔라진다. 임도 좌우에 도열한 금강송의 호위는 여전하다. 왼쪽은 후계림 조성 구역이다. 가파른 산비탈에 금강송이 드문드문 서 있다. 그 빈자리에는 갓 식재된 어린 금강송이 자라고 있다. 어린 금강송은 100년이 지나면 여느 금강송처럼 우람한 청년이 될 것이다.  

   금강송이 군락을 이룬 숲은 초록바다를 연상케 한다.  

초록이 물든 숲에 붉은 기둥처럼 금강송이 수직으로 가르며 서 있다.

   할아버지송에서 400m쯤 가면 다리를 건넌다. 이 다리를 건너면서 탐방로는 왼쪽 계곡으로 든다. 이제부터는 능선을 타고 가며 금강송을 감상한다. 산책로는 임도를 따라 걷는 것과는 느낌이 분명히 다르다. 아주 깊은 솔숲에 든 것처럼 금강송 사이사이를 빠져 다닌다. 길의 기울기도 가팔라진다. 임도를 따라 편히 오던 것과는 달리, 가파른 계단에 가쁜 숨을 토하게 된다. 그러나 금강송에서 뿜어져 나오는 청신한 기운이 몸속 깊이 파고들어 생각만큼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능선을 따라 가파르게 이어진 길은 전망대에 닿는다. 임도 갈림길에서 10분 거리다. 2시간 탐방 코스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이자 주변의 금강송을 조망하는 포인트다. 360도를 돌아봐도 금강송의 바다다. 젊고, 싱싱한, 붉은 빛이 선명한 나무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이마에 흐르는 굵은 땀을 훔치면서도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전망대에는 금강송을 잘라 만든 쉼터가 있다.  

임도에서 다시 계곡으로 들면 지름 120cm 금강송이 기다려 


   전망대에서 두어 걸음이면 다시 임도와 만난다. 이곳에서는 오른쪽으로 돌아내려간다. 왼쪽으로 가면 끝도 없이 임도를 따라간다. 임도를 따라서 200m 내려오면 길은 다시 계곡으로 내려선다. 이정표도 있다. 편한 길을 걷고 싶다면 계속 임도를 따라가도 된다.

   계곡을 따라서도 여전히 금강송 군락지다. 그 중에 하나, 아주 우람한 덩치의 금강송이 길을 막아선다. ‘여러분이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저를 안고 기념촬영하세요’라는 안내판이 서 있는 이 나무의 높이는 35m. 아파트 10층 높이다. 가슴둘레의 지름은 120cm. 어른 둘이 껴안아도 쉽지 않을 만큼 두껍다.

   ‘포토 스팟’을 지나면 작은 계곡을 가로질러 다시 임도 위로 올라선다. 임도를 따라 조금만 내려오면 처음 금강송 숲으로 들던 갈림길이다. 올라오던 길도 그랬지만 돌아가는 길도 발걸음이 편안하다. 여전히 임도 좌우의 숲에는 학처럼 고고한 자태의 금강송이 긴 목을 빼고 작별 인사를 건넨다.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풍기IC로 나와 영주 시내를 거쳐 간다. 영주~봉화~울진으로 이어진 36번 국도는 춘양까지 4차선으로 확장됐다. 춘양부터 울진까지는 2차선이다. 서면 쌍전리 통고산자연휴양림 지나 3km 가면 왼쪽으로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로 가는 917번 지방도가 나뉜다. 주차장까지는 917번 지방도를 따라 13,5km, 약 30분쯤 가야한다.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이고, 폭우가 내리면 물에 잠기는 잠수교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 대중교통은 금강송 군락지로 가는 시내버스가 없어 불편하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여름~가을

주소 :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지도보기

총 소요시간 : 2시간

문의 : 울진군청 문화관광과(054-785-6393)

   걷는 길은 특별히 어렵지 않다. 다만 전망대로 올라서는 곳만 조금 가파를 뿐이다. 또 등산로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말뚝을 박아 새로운 길로 안내하는 곳이 중간중간 있어 자칫 긁히는 상처를 입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임도만 따라서 산책을 하면 노약자도 어렵지 않게 갔다 올 수 있다.

숙박
   금강송 군락지로 들어가는 길에 민박과 펜션을 하는 곳이 두어 곳 있다. 금강송 군락지 주차장에서 1km 아래에 ‘T131’(054-781-6693)이라는 오토캠핑장이 있다. 오프로드 동호회에서 즐겨 찾는 곳으로 캠핑 여건이 좋다. 통고산자연휴양림(054-783-3167)의 산막과 캠핑장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네이버캐스트/아름다운 한국/20100902/글∙사진 김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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