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은 잘 치고? 이제 고통의 밤은 지났고, 어제 밤은 편하게 잘 잤나? 또 시험기간에는 또 시험만 끝나봐라 이러면서 버텼던 건 아니었나? 그런데 정작 시험이 끝난 후에도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지? 좀 허탈하기도 할 테고, 아쉬울 수도 있고, 무덤덤할 수도 있겠지. 사실 모든 일이 그래. 마냥 좋을 것 같은데, 정작 시간이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대부분이지. (사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단다. 동아리에 새로 들어온 친구들도 동아리에 들었다는 그 기쁨의 순간은 잠깐이고, 공부하다 보면 마냥 좋기만 할 수도는 없겠지?)
시험의 결과는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이면 된다. 노력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며 억울해 할 필요도, 은근히 결과가 잘 나왔다고 안도할 필요도 없다. 그 억울함은 다음에 보상을 받을 것이고, 그 안도감은 다음에 되갚아야 할 테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을 경험으로 깨우치게 된단다. 어쩌면 이런 걸 인생이라고 하는 것일까?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다시 모이는 글밭 나래, 우주인은 거의 새롭게 시작하는 모임이다. 지금까지는 문학을 중심으로 해서 읽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활동을 계속해 왔는데, 앞으로는 방향을 약간 바꾸어 사회과학 책을 텍스트로 삼아 나와 사회와의 관계를 파악해 보는 활동을 해 보려고 한다. 그러니 게으름 부리지 말고 더욱 정진해서 괄목상대할 수 있도록 애써주렴. 이제부터는 뒤처지면 다른 친구들과의 차이가
이번에 고른 책은 ‘신문 읽기의 혁명(손석춘)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된단다. 또 우리가 당연하다가 여기는 많은 사실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아래는 내가 예전에 이 책을 읽고 썼던 리뷰.
…… 신문이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다 전해 줄 수 없기에 중요한(사실은 ‘중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이 신문이 등장한다. 여기서 결정적인 문제가 생긴다. 바로 ‘누구에게 중요한가?’와 ‘누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가?’의 문제다. 보통 사람의 상식이라면 ‘다수의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모범 답안이 될 테지만,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너무나 모범 답안이기에 신문사의 어느 벽에 아무도 쳐다보지 않은 ‘액자’로 고이 모셔진 글자로 남아 있을 뿐이다. …… (중략)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신문사의 사정을 잘 모르면 모든 신문이 다 비슷하다고 여기게 된다. 자세히 보면 신문의 논리적 어조에 아주 중요한 차이가 나는데도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그게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무서움이 있다. 우리가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우리가 신문을 읽는 행위는 ‘여론’으로 포장되고, 거기에 따라 사회적 의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신문 하나 읽는 것에도 세심한 주의와 선택이 필요하다. 이렇게 신문을 읽을 때 주의를 기울이는 독자를 현명한 독자라고 할 수 있다. …… (중략)
이 책은 우리가 매일 읽는 신문 기사가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상 소식을 신문에서 찾아 볼 수 없을 때나, 갑자기 신문이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이 옳다는 근거를 오직 신문에 나왔다는 걸로만 주장하는 사람을 볼 때나, 청소년들에게 신문이 객관적인 진실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줄 때 꼭 필요하고도 기본적인 설명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주변의 신문들이 좀 다르게 보일 거다. 어느 신문이 좋다, 나쁘다 같은 단순한 관점이 아니라 모든 신문이 각자의 관점에서 사실을 다르게 해석한다는 진리를 알 수 있다. 그 신문사의 관점이 곧 내 관점이 되는 게 문제겠지만…… 그래서 너희들이 직접 신문사의 입장을 드러나는 기사를 분석해 오는 작업을 해 오는 게 이번 활동 내용이다. 어떤 사건을 두고 다르게 해석하는 두 신문사의 입장이 드러나는 사설을 찾아서 그 차이를 분석해 오렴. 모임할 때까지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거든 언제든 찾아와서 물어도 좋다.
새로 온 친구들 모두 환영한다. 그럼, 다음 주 수요일 모임(도서실)인 거 알지?
-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느티나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