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서 생일 잔치를 했습니다. 사실은 29일이 생일인데, 일요일이라 지난 목요일에 미리 생일 잔치를 했지요. 다섯 번째 생일 기념으로 외할머니께서 사 주신 옷을 입고 어린이집 친구들이 불러 주는 축가를 듣고 흐뭇한(!) 표정이네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쉽지 않은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고, 앞으로도 만만치 않은 길이 펼쳐지겠지만, 여태껏 해 온 것처럼 밝고 씩씩하게 잘 넘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복이가 가는 길을 말없이 지켜보며 응원할래요.

 

 

   진복이네 반 친구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입니다. 모두 모두 예쁜 친구들이랍니다. 진복이의 생애 첫 친구들이겠지요?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가물가물하겠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 만난 사람들이 참 중요하지요. 행복반 친구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으며,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는 이진복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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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 도종환   

 

우리 가는 길에 화려한 꽃은 없었다. 

자운영 달개비 쑥부쟁이 그런 것들이 

허리를 기대고 피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빛나는 광택도 

내세울 만한 열매도 많지 않았지만 

허황한 꿈에 젖지 않고 

팍팍한 돌길을 천천히 걸어 

네게 이르렀다 

 

살면서 한 번도 크고 억센 발톱과 

쩌렁쩌렁 울리는 목청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귀뚜라미 소리 솔바람 소리 

돌들과 부대끼며 왁자하게 떠드는 여울물 소리 

그런 소리와 함께 살았다 

그래서 형제들 앞에서 자랑할 만한 음성도 

세상을 호령할 명령문 한 줄도 가져보지 못했지만 

가식 없는 목소리로 말을 걸며 

네게 이르렀다 

 

낮은 곳에는 낮은 곳에 어울리는 목소리가 있다 

네 옆에 편안히 앉을 수 있는 빈자리가 있다 

 

- 해인으로 가는 길, 문학동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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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개학을 하고 나서의 첫 편지는, 얘들아 방학 잘 보냈니, 이렇게 인사를 하며 시작해야 하는데 서로가 뻔히 방학 동안의 상황을 아는 지라 저렇게 묻는 게 조금 쑥스럽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방학은 좀 짧았다, 그치? 그래도 모든 일에는 어둠이 있으면 밝음도 있는 법! 오늘로 125일이 남은, 무척 길다는 겨울방학을 기다려 보자. 

   보충수업이 끝나고 나서 독서캠프 다녀오니 개학이 코앞이었지? 금덩어리 같은 방학을 쪼개 다녀온 캠프가 너희들에게 시간 낭비였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을까 모르겠다. 내 생각엔 준비팀이 계획하고 준비한 활동의 50% 밖에 못 한 거 같아서 좀 아쉬웠지만, 다른 학교와 함께 꾸린 캠프가 처음이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으려 한다. 이번의 아쉬움을 밑거름 삼아야 다음에 더 멋진 캠프를 준비할 수 있겠지? 내년에도 혹시 이런 캠프 준비팀이 구성된다면 너희들이 적극 참여해서 기획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 동아리 멤버는 원래 이런 캠프 다녀오면 자기 손으로 후기를 정리해야 하는 게 기본이라는 거 알고 있지? 하루 이틀 미루기 시작하면 결국엔 못 한다. 이 글을 읽고 ‘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고 오늘 중으로 반드시 정리해 보렴. 적는 방법은 의외로 쉽지. 간단히 일정을 소개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들었던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정리하면 훌륭한 후기가 될 거야. 특별히 인상적인 활동이 있었으면 소개하고 왜 그랬는지도 기록해 두면 더욱 ‘엣지’ 있는 글이 될 듯싶다. 동아리 모임에서 너희들이 써 온 글을 바탕으로 30분 정도 평가회를 할 예정이니 생각을 잘 정리해 오너라.

   이젠 이번에 받은 책 이야기 좀 해 볼까? 책의 제목이 좀 낯설지? 호모 코레아니쿠스(진중권, 웅진지식하우스). 제목을 알기 쉽게 번역하면 그냥 ‘한국인’……? 지금의 한국인,이라는 사람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한국인’이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책이야. 100년 전에 한반도에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은 지금의 우리와 얼마나 닮았을까,를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아마 피부색을 빼고는 하나도 닮지 않았다, 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 오늘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한국인’은 언제, 어떻게 나타났을까, 하는 궁금증이 당연히 생기겠지? 이 책은 이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오늘날(근대적) 한국인’의 탄생 과정과 이들의 보편적인 사고 구조를 탐색하고 있는 재미있고도 의미 있는 책이야.

   다음 주 수요일 모임 이야기를 해야겠지? 7교시부터 모임을 시작한다는 거 알고 있을 테고( 7,8,9교시로 마무리하자.), 수현이가 던진 이야기 주제도 다들 준비하고 있을 것이고, 캠프 평가회도 해야 하니, 난 좀 쉽고 재미있는 활동 과제를 내려고 머리를 쥐어짜 본다. 또 우리가 읽을 책이 그리 술술 넘어가는 책이 아니니만큼 숙제는 간단하고 쉽게 내려고 나름 고민했단다.

   이번 독후활동 과제는 뇌구조 그리기다. 자신의 뇌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면서 뇌구조를 만들어보렴.(따로 받는 종이에 적어 넣으면 된단다.) 그리고 한국인의 뇌구조도 나름 분석해 봐야 할 테니까 10대의 뇌구조(남/여), 20대의 뇌구조(남/여), 30대의 뇌구조(남/여), 40대의 뇌구조(남/여), 50대의 뇌구조(남/여), 기타 세대의 뇌구조(남/여) 중에서 스스로 한 세대를 정해서 뇌구조를 파악해 오는 것이 이번 과제다. 이 과제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어떤 특정한 사람의 뇌구조를 통해 특정 세대의 보편적 뇌구조를 들여다보는 것이 목표다. 예를 들면, 오늘날 한국의 20대 여자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을까,를 생각해 보자는 거지. 여러 사람의 뇌구조를 모아서 공통분모를 찾아도 되고, 특정한 사람이 어떤 세대의 ‘전형’이 된다는 생각이 들면 그 사람의 뇌구조를 소개해도 된단다. 우선은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과 얘기를 나눠보는 것이 좋겠지?

   쪽지에 정리하고 보니 숙제가 제법 많다. 그래도 씩씩하게 잘 해 오겠지? 풍성한 식탁을 위해 넉넉하게 준비해 오렴.

그럼, 행복한 수요일 밤을 기다리며, 느티나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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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폭우가 쏟아지더니...[덕유산자연휴양림에서]

내 삶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휴양림내 독일가문비나무 숲에서]

보이진 않지만 맑은 공기의 숲이기도 하지 [독일가문비나무 숲에서] 

1614m? 내 발로 걷지 않은 길이 무슨 의미?[덕유산 향적봉에서] 

사실일까, 전설일까? [라제통문 앞에서]

1500년전부터 이 문을 통해 나라와 나라가 소통했으리라[불통의 시대에 라제통문에서] 

구름 바다의 황홀경에 빠지다.[오도산 정상에서]

죽기 전에 이만한 광경을 볼 수 있었던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오도산 정상에서] 

유연한 구름은 파도가 되어 바위 같은 산을 타고 넘는다.[오도산 정상에서]

400년의 풍상을 겪고도 저렇듯 당당하고 기품이 넘치는 소나무 앞에서 마음을 여미다.

 [합천군 묘산면 소나무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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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가족이 여름이면 항상 찾아가는 통도사 자장암 계곡. 진복이는 이번 여름에도 두 번이나 이 계곡 물놀이를 다녀왔다. 딱 진복이 수준에 놀기 좋은 계곡이다. 작년 여름에 해수욕장에서 샀던 튜브도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 이제 막 계곡에도착해서 물놀이 하러 들어가는 중이다. 

 

   간식으로 옥수수를 먹는 중. 물에 몇 번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배고프다고 간식 찾는다. 집에서 챙겨 온 옥수수로 간식 먹는 중. 어린 녀석이 앉을 땐 꼭 저렇게 양반 다리를 하고 앉는다. 한 가득 베어물고 우물우물거린다. 


   남들이 뭐라든 신경 안 쓰고 옥수수만 물고 앉아 있다. 이 때가 두 번째로 갔을 때인데, 작년에도 왔던 곳이라 익숙해서인지 간식 먹고 금방 물놀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덕분에 다리는 온통 상처 투성이. 통도사 자장암 계곡은 어린이가 있는 가족이 조용하게 물놀이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금정구 스포원에 있는 키즈랜드 유아 놀이방. 여전히 겁이 많아서 미끄럼틀도 무서워서 못 타고 유아들이 노는 곳에 와서 이런 완구를 타며 논다. 사실, 올 봄에 왔을 때는 움직이는 이 완구도 무섭다며 안 탄다고 도망다녔는데... 그러고 보면 제법 큰 건가? 

 

   이것도 유아방에 있는 장난감으로 만든 집 안이다. "딩동", "누구세요?", "아빱니다." , " 들어오세요~" 요런 놀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올해는 키즈랜드 뿐만 아니라 옆에 붙은 실내수영장에도 두 번 다녀왔다. 수영장에서도 어찌나 무서운 게 많은지, 미끄럼틀은 아예 무서워서 타지도 못 하고, 아무 곳에도 안 가려고 하고, 오직 25m 수영장에서만 줄창 놀았다. 


   집에서 사진기를 들이대니 잡은 자세. 나름 V. 요즘엔 항상 사진 찍는다고 하면 훼방을 놓는다. 얼굴을 왕창 찡그린다거나 무척 빨리 움직인다거나 자리를 피한다거나... 아무튼 사진 찍히는 게 싫은가 보다. (생각해 보니 나도 어릴 때 그랬던 거 같다. 사진에 나온 내 모습을 보면 괜히 어색하고 이상해서 언제부턴가 사진 찍는 순간이 무척 고역이었다.)

 

   덕유산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을 자고 산책하다가 발견한 그네를 타고는 무척 좋아했다. 그냥 의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네라서 더욱 기분이 좋은 듯하다. 진복이가 앉은 자세가 편안해 보여서 좋다. 그러나 정강이쪽에 보면 어찌나 상처가 많은지... 그런데 녀석은 넘어져서 꽤 아플텐데도 잘 울지 않는다.(대신 내가 화난 표정을 짓거나 말투가 조금만 달라져도 금방 눈치를 채고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덕유산에 올랐다. 물론 곤도라를 탔지만... 구름으로 날이 잔뜩 흐려서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사진 찍은 곳은 곤도라 정상에 있는 식당. 물론 모두 배도 살짝 고팠지만, 녀석은 구름이 무서워서 밖으로 조금도 나가려 하지 않는다. 꼼짝도 하지 않고 식당에서만 있어야 한단다. 완전 겁쟁이라고 놀려도 소용 없다. 그냥 구름이 무섭단다. 

 

   오도산 정상에서 구름바다를 보았다. 새벽까지 비가 많이 내려 계획했던 일출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싶어서 올라 간 오도산 정상. 정상까지 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아무도 없는 오도산 정상에서 산을 타고 넘는 구름 바다의 변화무쌍한 향연을 보고 감동! 그러나 진복이는 경치와는 상관 없이 전망대 나무바닥이 좋은지 계속 전망대를 뛰어다니며 달리기 시합에만 열중하고 있다.  

   "진복아, 저기 구름 좀 봐!" "난, 구름 싫어. 무서워"  진복이와의 대화 내용이 이렇다. 그러면서 사진 찍자고 달래서 겨우 찍은 사진 한 장!  

   이제 곧 만 네 살이 되는 이진복 어린이. 올 여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사진에서 보듯이 계속 자라고 있다는 것이겠지? 진복아, 더 많이 먹고 쑥쑥 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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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08-19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해람군과 성향이 비슷한 듯. 계곡에 놀러가도 딱 발만 적시고 바로 나왔답니다. 무섭다구요. ㅋㅎ

느티나무 2010-08-19 17:12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그래도 물이나 높은 곳... 이런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구름이 무섭다니... 황당했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이해 너머의 존재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