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 ABC - 안나 푸르나 베이스 캠프
     
  • 안나 푸르나 - 8091m(세계에서 10번째로 높은 산). '풍요의 여신'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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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 OOO 

   오늘 너무나도 서둘러서 나오는 나머지 시험기간이 아니고는 언제나 들고 나왔던 신문을 들고 나오지 못했다. 습관의 동물이라서 그런가? 그 습관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니 나도 모르게 답답함과 짜증이 느꼈다. 언제나 들고 나오는 신문이었는데... 내가 신문을 고등학교에 들고 와 읽기 시작하면서 변한 게 있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나도 한쪽으로 몰려 확고하게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비문학 독해에서 필요한 글의 구조를 파악하고, 주제를 정리할 줄 아는 능력을 갖고 논술에 대비하리라 하던 게, 어느새 보수 우파 할배들과 똑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으니 완전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다.  

   나의 관점이 변했다고 느낄 때가 언제였는가 하면  그 시초는 광우병 파동 때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전문가들이 오히려 말도 못 하고, 어리숙하고 미숙한 아이들과 사람들이 이상한 망상(미국산 소고기가 우리 머리에 구멍을 만듭니다! 하는 개소리 등등)에 사로잡혀 정권 퇴진까지 부르짖었던  촛불 부대를 보며 한심함에 분노가 일었다. 이런 내 생각에 주변 사람들은 신문이 아이를 망쳐놨다는 말만 지껄일 뿐. 그 순간이었지만, 아, 내가 아이들과 혹은 좌파적 입장과는 확연히 대조되는 시선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도 회사의 노동조합을 옹호하는 입장인데, 나의 발언(노동조합은 투쟁을 수단과 목적으로 삼고 있다.)에 신문을 보지 말라고 하셨고, 작년에는 한겨레를 찬양하던 OOO선생님이 신문으로 길러진 나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우려된다고 하셨으니... 휴! 

   그렇게 나의 성향을 숨기고 올라온 3학년. 담임을 맡으신 선생님의 행동이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파악해 보니 '아, 나와는 반대되는 성향을 가지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에 2학년 때 선생님처럼 쉽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는 이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좌파니 우파니 하는 성향들은 서로 대립되어야 한다고 배워 왔으니. 

   하지만 2개월 정도 지난 지금 생각에 변화가 왔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다른 성향이라는 자체만으로 대립되고 충돌해야 할 이유가 없고, 또한 서로와의 다름이 증오가 아닌 서로 다름으로 인한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내는 점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샘이 얼마나 재밌는지 모른다.ㅋㅋ)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고 또한 꿈틀꿈틀 살아 숨쉬는 사회에 옥죄는 감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얼마나 다양하고 활기 넘치는 사회인데, 이것을 단지 두 부분으로만 나누려 한다는 건지... 나, 원, 참ㅋㅋ 

   나의 보수적인 시각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담임선생님을 만나 변한 게 있다면 급진에 상대되는 보수가 아닌 다양성 위에 존재하는 한 부분으로서의 보수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신선한 변화, 앞으로 남은 7개월이 기대되는 점이다.  

   P.S 일기의 제목이 가볍게 읽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OOO아, 내가 아무리 생각이 보수적이라도 기회주의자 주광수라고 하진 말아다오. 가문을 욕보이긴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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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9-04-24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어리둥절하기는 한데(내가 뭘 어떻게 한 게 없으니까...) 이런 일기를 읽으니 기분은 좋다. 명백한 자랑질, 한 번 해 봤다.

BRINY 2009-04-24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정도의 글솜씨를 가진 제자를 가지셨다는 점도 자랑하실만 합니다.

느티나무 2009-04-24 19:53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제가 이 녀석을 야심만만 OO이, 라고 부르거든요. 국가나 사회를 위해 일하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하네요. BRINY님도 잘 지내시지요? ㅋ
 

  • 알라딘 메인에 자주 보이는 소가죽 필통 쿠폰에 당첨되었다. 냉큼 주문해서 오늘 저녁이면 내 손에 들어올 것이다. 음... 명품 수첩과 명품 도장(장서인)에 이어, 명품(?) 필통을 가지게 되었다. 알사탕 있는 걸 하루에 다 적었더니 당첨되었다. 당첨 된 줄도 모르고 있다가 오늘 계정을 보니까 새 쿠폰이 있어서 뭔가 싶어 봤더니 바로 필통 쿠폰이었다. 나는 가끔 응모할 땐 꼭 내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번 사건으로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는 거 아닌지 몰라.ㅋ 암튼, 자랑해야지.    

  • 오늘이 어머니의 음력 생신. 예순 번째다. 환갑인 셈이다. 어머니의 삶을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우리 어머니 사연도 남들 못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며칠 있다가 이번에는 환갑 기념으로 중국여행을 가신다. 첫 해외여행이다. 이 여행도 예약과 취소를 반복하다가 일주일 전에야 최종 결정이 되어 떠나시는 거다. 빠듯하게 사는 세 남매가 각자 형편대로 돈을 마련해서 떠나시는 첫 여행이다. 이 여행의 두 분의 삶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일, 일 밖에 모르시는 부모님,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고 아직도 당신이 노동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팍팍한 삶은 계속 되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고된 현실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다. 부모님의 무사 귀환을 바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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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4-23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에 남은 알사탕 몰아서 응모했을 때 당첨된 적이 있었어요.^^
어머님 생신 축하해요~ 첫 해외여행 즐거우셨으면 좋겠어요. 패키지지요? 중국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패키지가 더 좋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느티나무 2009-04-23 16:26   좋아요 0 | URL
아마도 마노아님의 서재에서 필통 당첨된 거 읽고 저도 그랬던 거 같아요. 패키지인가요? 그냥 몸만 가면 되는 여행이던데... 내일 가시는 데 조금 걱정입니다. 아무튼 관심을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노아 2009-04-24 13:17   좋아요 0 | URL
알사탕 몽땅 털어서 필통 당첨되신 분은 하이드님이에요. 저는 알사탕 몽땅 털어서 앨범을 받았지요. 오늘 날이 흐려서 좀 걱정이에요. 중국은 땅이 넓으니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어요.^^

느티나무 2009-04-24 13:46   좋아요 0 | URL
필통 받으신 분은 하이드님이셨군요.ㅎ 어디선가 봤더라 했는데, 요즘은 알라딘 서재는 잘 들여다보지 않으니까요, 마노아님인 줄 알았지 뭡니까? 부모님께서는 지금까지 별다른 연락이 없으니 무사히 출발하신 거겠지요?ㅎ
 

   올해는 정말 이상한 해다. 몇 년을 가야 한  번 걸리는 감기가 벌써 올해 들어서 두 번째다. 학교를 옮긴 것 말고는 특별히 달라진 일도 없는데, 콧물이 슬글슬금 내려오기 시작한다. 역시, 학생들이 재빨리 눈치를 채고 툭 던지는 말 - 샘, 오늘 왜 이렇게 초췌해요? 

   며칠 동안 약간 바쁜 일은 있었다. 지난 토요일, 점심시간에 우리 반과 다른 반에서 보물찾기를 했다. 소풍가서 학년 전체로 보물 찾기를 했는데 우리 반 녀석들이 거의 찾지 못해서 특별히 우리 반만 참가하는, 보물 찾기를 했다. 우리 반 교실에 쪽지를 숨겨두고 찾는 학생에겐 바로, 선물!(그래봐야 아이스크림 하나나 과자 한 봉지) 그래도 아이들이 좋아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자주 사 주는 편인데, 그게 좀 못마땅한 사람도 있는가 보다. 그걸 보고 '거지 근성'이라고도 표현하던데, 순간 마음에 돌덩이가 쿵하고 떨어졌다. 내가 느끼기엔 아이들이 간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게 맛있기도 하겠지만(간식 싫어하는 사람이 그리 많겠나? 더구나 공짜라면 더욱!) 선생님이 사 준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적어도 난 그랬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거라도 선생님께서 주시면 왠지 모르게 특별히 아낀 경험이 있었으니까. '이 동네...', '거지 근성'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굳어지면서 '이 동네'에 살고 있는-앞으로도 이 동네서 학교를 다닐 진복이가 선생님으로부터 저런 소리도 듣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착, 가라앉더라. 

   아무튼 보물찾기가 끝나고는 지난 소풍에서 보물 찾기에서 <느티나무샘과 데이트>를 찾은 학생과 점심 먹으로 나섰다. 둘이서 근처 피자가게에서 피자를 먹으며 신나게 떠들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하나. 데이트라면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게 필수 코스처럼 느껴지던데... 점심 잘 먹고, 얘기도 잘 하고 자습하는 학교로 돌아오니 벌써 3시 반. 자습하는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 앉았다. 

   그러다가 정독실에 아이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더니 감기 몸살로 한기가 들어서 몸을 덜덜 떨고 있길래, 교무실로 데리고 와서 무릎 담요를 여러 장 덮어 한기를 좀 가라앉히고 나서, 내가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더니 한사코 거부했었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꼭 혼자 가야한다고 해서 담당선생님께서 허락을 하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시 정독실에 올라와서 자습시간을 다 채우고 집에 갔다고 한다. 독하다고 해야 할 지, 미련하다고 해야 할 지... 스스로 정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는 얘기를 오늘 했었다. 

   저녁에는 모처럼 의주샘과 선희씨가 놀러왔었다. 진복이 신발을 사서 왔는데, 매번 올 때마다 선물을 들고 와서 고맙고 미안하다. 게다가 저녁까지 우리가 얻어먹었다. 저녁을 먹고 밤인데도 상쾌해서 구민운동장을 한 바퀴 산책했다. 구민운동장 산책은 진복이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다. 운동장 옆 낙동강에 가서 돌맹이 던지는 게 그렇게 재미있나 보다. 집에 와서 차 한 잔 마시고 일어나니 벌써 10시 가까이가 되었다. 

   일요일 아침, 7시. 복이 때문에 잠이 깼는데, OO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라고 하는데 또 한 번 마음 속에 뭔가가 쿵 떨어졌다. 20년 동안 알고 지내온 친구. 나는 그 어머니가 해 주신 밥을 얻어 먹기도 했었는데. 아주 담담하게 말하는 녀석이 좀 낯설었다. 나도 저럴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쨌든 오후와 저녁은 조문을 가야 한다. 전화를 받고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니까 오전 10시 반이었다. 3월부터 일요일 오전 늦게 운동장을 산책하고 점심은 외식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이번에는 토요일 밤에 운동장에 다녀왔기 때문에 복이랑 학교로 갔다. 학교 운동장 주변과 교사(校舍) 구석구석을 천천히 돌았다. 붉게 영산홍이 핀 화단은 예뻤고,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조용하고 고즈넉해서 좋았다. 복이가 나중에 학교랑 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점심으로 국수를 먹었다. 집에 와서 낮잠을 자는 것도 익숙한  휴일 일과. 그만큼 편안하고 고요한 일상이다. 

   오후 5시 OO 병원으로 조문을 갔다. 아는 얼굴이라곤 후배 한 명. 아직 이른 시간이라 문상객은 별로 없었다. 한 두어 시간 앉아 있으니까 장례식장은 조문객으로 붐볐다. 녀석이 꽤 정력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지라 지인이 많은 덕이다. 멀뚱하게 있다가 뒤늦게 찾아 온 동기들이랑 이런 저런 얘기! 모두 학교 선생들인지라 늘 그 얘기가 그 얘기다. 그래도 여느 학교의 선생님들보다는 편하고 속내를 털어놓기에 좋다. 이젠 서로의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가끔은 치대고 싶은 동기들이니까. 

  10시가 넘어서 일어섰다. 택시를 탈까 하다가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에서 두리번거리는 게 재미있었다. 아내와 밀린 얘기를 나눴다. 나는 주로 문상갔던 얘기고, 아내는 진복이랑 있었던 일을 말했다. 진복이가 차츰 제 엄마와 친밀해지고, 나를 조금씩 밀어내고 있다. 귀가 시간이 늦은 탓이 아마 클 것이다. 분발해야겠다. 

   다음날 출근을 앞둔 시간. 울리는 전화벨 소리. 낯선 번호, 낯선 목소리. 착 가라앉은 목소리다. 우리반 학부모님. 아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학생이 상주(喪主)라 오늘부터 학교에 갈 수 없단다. 어제 아침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일단 서둘러 출근을 했다. 머리가 멍했다. 밖에는 날이 습했다.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아침 조례시간에 OO가 학교에 못 나온 이유를 말했다. 저녁에 조문 갈 사람은 나에게 말하고 가도 좋다고 했다. 나도 1교시 후에는 다음 수업이 오후에 있었기 때문에 문상을 가기로 마음 먹었다. 어느새 밖에는 빗방울이 굵어졌다.  

   양정까지는 꽤 멀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오전이라 문상객은 거의 없었다. 빈소에 절을 하고 나서 녀석과 마주 앉았다. 학교에 있을 때는 얘기해 볼 기회가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녀석이 겪었을 불안과 고통과 답답함이 쉽게 와 닿지 않았다. 더구나 앞으로 녀석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더욱 가늠이 되지 않는다. 녀석의 귀에 가 닿지도 않을 힘없는 소리인, '기운을 내야 한다'고 여러 번 중얼거렸다. 

   수업이 시작되기 10분 전에 학교에 도착했다. 더구나 오후 수업은 토요일 수업까지 포함해서 5,6,7,8교시가 연강이었다. 마음도 심란한데다가 기운도 없어서 영 수업이 힘들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사탕 사 준다는 약속이 생각나서 막대사탕 하나씩 물려줬다. 나는 수업 시간에 슬쩍 눙치면서 한 마디! "얘들아, 사는 건 슬픈 일이데이", 아이들은 "우하하"   

   저녁에 별다른 일 없이 학교에 남았다. 아이들이 자습하는 걸 지키고 앉아 있었다. 자습시간에 아이들이 쓴 우리 반 일기장을 읽고 답장을 써 준다. 날마다 돌아가면서 쓰니까 매일 공부해야 하는데, 몸이 안 따라준다는 내용으로 가득 채운다. 나도 지치지 않고, '그래도 해야한다'고 쓰고 또 쓴다.(쓰면서도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다.) 10시에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몰려나간다. 서둘러 가방을 챙기고 학교를 나온다. 길고 긴 주말과 휴일, 그리고 월요일이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오늘(화) 아침에 일어나니 편도가 부었는지 침을 삼키기가 몹시 어렵고 코도 막혔다. 지금도 여전히 콧물이 흐르고 있다. 다시 감기에 걸렸나 보다. 올해 들어 두 번째다. 참 이상한 한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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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4-23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 버거운 사람들이 늘 우리 주변에 있지요. 남겨진 사람들이 덜 힘들어졌으면 합니다. 느티나무님도 감기 어여 떨치시구요. 멋진 선생님과 함께 하는 아이들이 복 받았어요.

느티나무 2009-04-23 16:26   좋아요 0 | URL
네, 얼른 감기 떨쳐야지요. 어제는 9시부터 자고 오늘 아침에 일어났더니 감기가 좀 떨어지는 것 같더라구요. 학교 와서 일하니까 그대로였지만... 삶이 버거운 사람들... 한편으로 내 삶을 견주면서 그들 만큼은, 이라며 속으로 안도하곤 합니다. 얄팍하지요....
 

   "내 안에, 이명박, 있다"

   이 말을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얘기하면 아이들은 와, 하고 웃는다. 진지하게 말했던 나는 아이들이 웃는 영문을 알지 못한다. 아마도 드라마 대사가 떠올라 그렇겠지하고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고백해야 하는 나는 슬프다. 내 안에 있는 이명박을 어쩌지 못해서 더욱 슬프다. 

   동학년 선생님들과의 회식-동학년 선생님들 뿐이랴? 업무의 연장 같은 공적(?)인 모임은 모두 싫다-을 정말 싫어한다. 그래도 학년 초라 어쩔 수 없이 두 어번 따라 갔었다. 일상적인 이야기들 끝에 이명박,에 대한 이야기.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 누구도 그의 교육정책을 옹호하는 사람이 없다. 소수의 큰 목소리와 침묵으로 말하는 다수의 동조! 

   그러나 그 속에서는 나는 슬프다. 지금 이명박의 정책에 대해 씹어대는 그 분이야 말로,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이명박적 사고를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분이 아니신가? 가령 이런 식이다.

   잘 될 놈 몇 놈만 키우면 된다-성적순으로 정독실에 배정하자./ 어차피 학교를 빛내는 것은 상위 몇 명 아니냐-특별반 영어-수학 수업하자./ 담임이 벌금 받으면 애들은 꼼짝 못한다-지각하면, 벌점 받으면, 도망가면... 돈 내라면 애들은 무조건 말 잘 듣는다./ 머리카락이 단정해야 몸가짐도 바르다-머리카락 단속이야말로 교육의 시작이다./ 핸드폰은 학교에 오면 맡겨라-이것도 안내면 벌점이다/말 안 듣는 놈은 몽둥이가 약이다-안 될 때는 때려야 한다. 매 앞에 장사 없다./......[학교에서는 이명박적 사고엔 끝이 없다.] 

   그러나, 내가 슬픈 건 나도 그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공부로 아이들을 위협하는 것도 그렇고, 내 마음 속으로 성적에 따라 아이들을 줄세우기도 하고, 계속 말을 안 듣는 녀석은 매를 들어야 하나, 하는 고민도 한다.(때려서 말 듣도록 하는 건 사육사가 제일 잘 하는 거 아닐까?) 그러니 아마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나도 분명히 지금 내가 욕하고 있는 정책을 폈을지도 모른다. (괴로운 척은 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대안이 없다면서 뭉그적거리지 않았을까?)  

   이명박을 욕하는 건 쉽지만, 이명박과 다르게 생각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고, 그렇게 다른 생각을 나부터 실천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내 안에 있는 이명박의 그림자가 지워질 때, 나는 진정한 교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은 괜찮은 척, 폼만 잡고 있는 엉터리 교사다.(아이들에게 따뜻하고 정 많은 교사로 인식되는 것도 물론 중요하긴 한데, 그게 그렇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자꾸만 든다.) 갈 길이 멀다. 그래서 슬프다. 요즘 인생은 슬픈 것이라는 말을 달고 산다. 참, 사는 건 슬픈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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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4-14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고민하고 닦아보고 하다보면 나아지겠지요...
저도 늘 그런 고민입니다.^^ 김규항이 예전에 쓴글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두 가지의 이명박과 싸우자는 말이었습니다. 잘 지내세요. 세월이 험난하군요.
진복이의 웃음이 위안이 되시길..제가 그렇듯이.

느티나무 2009-04-14 23:56   좋아요 0 | URL
햐~ 진복이 요녀석도 지금 저에게 배신을 때리는 건지...(사실, 제가 먼저 그랬겠지요.) 퇴근이 늦다 보니, 제 엄마에게만 달려들고, 저에게는 약간 소원(?)합니다. 일찍 귀가해서 자주 놀아줘야 하는데, 안밖으로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늦는 날이 많습니다.
하다보면 나아진다고 믿고 싶지만, 안 나아진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겠지만, 가끔 이런 결심들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날도 있더라구요.
김규항 칼럼 읽었었는데. 제 고민의 영역을 훨씬 벗어난 이야기들이라 좀 낯설더라구요. 정말 시절이 하 수상합니다.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저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ㅋㅋ

심상이최고야 2009-04-23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신문에 보니까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프랑스 문호 로망 롤랑의 글귀 '이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를 생각하제요. 비관하고 실망하고 냉소할 것이 아니라, 인내하고 노력하고 실천하자네요.^^;

느티나무 2009-04-23 16:30   좋아요 0 | URL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로망 롤랑의 말이었군요.ㅋ(홍세화 선생님이 자주 쓰는 말이지요.) 그러고 싶지만, 역시 사람이 아직 덜 된지라 자꾸 회의적인 상태로 빠집니다. 인내, 노력, 실천... 다 버거운 말이네요.ㅠ(그렇지 않나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