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모를까 

 

- 김용택


이별은 손 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 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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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 유행한 말처럼, 별일 없이 산다. 근래에 보기 드문 착한(?) - 교사들의 말을 곧잘 듣는- 아이들의 담임을 맡아 같이 학교에 남아서 아이들이 공부하는 걸 지키고 앉아 있다. 3월부터 지난 주까지는 상담이랍시고, 아이들이 살아온 내력을 묻고, 현재의 성적과 고민을 묻고, 미래의 꿈에 대해서 물었다. 대답하기 힘든 질문도 많았는데, 녀석들은 술술 잘도 풀어놓았다. 

   학교 건물 앞 화단에 핀 영산홍이 진달래보다 붉다. 점심을 먹고 바람이 제법 차가운 학교를 한바퀴 돌았다.그래봐야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연신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건넨다. 나는 손을 흔들거나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서로에게 웃음이 번진다. 수업 시간에도 마찬가지다. 어디서 요렇게 예쁜 녀석들만 골라 왔나 싶을 정도로 멋진 녀석들이 많다. 저희들 속내야 어떤지 잘 모르지만, 내가 보여주는 별 것 아닌 친절에도 감동한다. 나는 그런 녀석들이 신기하다. 

  요즘 늘 슬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사람들은 의외라는 듯, 갸우뚱! 어떤 날은 그래, 괴롭고 힘든 세상, 이만하면 견딜만도 하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갑자기 까닭도 모르게 마음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날도 있다. 그러면서 별일 없이 산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래도 난 별일 없이 산다. 이 분노는 '나는 그래도 아직 건강한 생각을 하는 소시민'이라는 자기합리화의 '알리바이'이다. 정말 세상이 '개똥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별일 없이 살고 있으니, 내가 '개똥 같다'고 욕하는 세상에 대해 아무런 의미 있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책을 열심히 읽겠다고 마음 먹은지도 오래. 그냥 하릴 없이 책만 뒤적이다가 시간을 보내는 게 벌써 두 달도 넘었다. 좀 보다가 밀쳐두고, 밀쳐두고... 책은 왜 읽나? 하는 생각이 너무 자주 드는 게 문제다. 지금도 책은 늘 손에 들고 다니지만, 도무지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슬럼프가 너무 오래간다. 그래도 별일 없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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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학년 O반 학부모님들께

   어제는 휴일이라 화명동에 있는 구민운동장에 나갔는데 거기도 벚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며칠 매섭던 바람은 시나브로 밀려드는 꽃기운에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말았더군요. 이제 곧 초록 물결의 바람을 타고 꽃나무들이 가지를 뻗을 기세입니다. 그렇게 세월은 가고 또 오는가 봅니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 아이들은 조금씩 조금씩 자라는 것이겠지요?

   학부모님, 안녕하십니까? 담임으로서 드리는 두 번째 편지입니다. 저는 새학기 초기에 간단한 기침 감기를 앓았지만 지금은 다 나아서 건강하며, 우리 반 아이들과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학부모님께서도 가정에 별일 없으시고, 가족 모두 건강하신지요?

   지난 3월 한 달의 우리 반은 긴장감과 편안함이 묘하게 공존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저도, 새 학년, 새 교실, 새 담임(학생), 새 친구, 모든 것이 낯선 환경이라 어리둥절한 상황 속에서 맞이한 시간이었는데, 어느덧 자연스럽게 제 교실을 향해 달려가는 발걸음만큼이나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저도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연결짓는데 한 달 정도 걸렸습니다. 이제는 교실에서 수다를 떠는 녀석들이 보이면 누구든지, 누구야, 라고 부를 정도로 낯이 익었습니다.

   지난 한 달은 꼬박 아이들과 상담하는데 시간을 썼습니다. 한 명씩 불러서 가정환경이나 성장배경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현재 공부 상태도 확인하고, 앞으로 꿈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느라 제법 시간이 걸렸습니다. 특히 저는 상담활동에 비중을 많이 두는 편이라 나름대로는 정성껏 한다고 했는데, 아이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오늘 현재까지도 45명 중에서 4명의 학생이 상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루에 두 명 정도씩 하니까 조금 길어져서 기다리는 아이들은 좀 답답할 수도 있겠네요. 뒤로 밀린 친구들은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지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았을 뿐이고 이번 주 중으로 상담할 예정입니다.)

   우리 반은 3월 초부터 학급 일기를 써 오고 있는데, 저는 그 일기장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 쏠쏠한 재미와 녀석들과 마음을 나누고 있다는 것에 교사로서의 보람을 느낍니다. 두 권의 일기장에다 각각 1명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일기’를 써서 저에게 내면 제가 읽고 댓글을 달아서 돌려주는데, 일기에는 지금도 충분히 진지하고 어른스러운 얘기들이 많지만, 앞으로는 이 일기장이 더욱 저와 녀석들이 속 깊은 정을 나누는 통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공부해야 하는데, 하고 걱정하실 부모님이 계실까봐 말씀드립니다. 돌아가면서 쓰는 일기니까 한 명한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차례가 돌아옵니다. 그 정도는 괜찮겠지요?)

   지난 3월 31일에는 모의고사 성적표를 학생들에게 나눠줬습니다. (혹시 못 받으신 부모님도 계신가요?) 모의고사 성적표를 계기로 자녀들의 학교생활과 평소 학습태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얘기를 한 번 나눠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제는 앞으로 4월에 있을 학교 일정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4월 10일에는 김해 연지공원으로 봄소풍을 갑니다. 수능을 치기 전 첫 나들이이자 학창 시절을 통틀어서 마지막 소풍이 될 테지요. 그러나 아이들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학교에서 가는 소풍을 달갑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이들과 소중한 추억, 한 자락을 남겨 오고 싶습니다. 소풍가서 재미있게 놀고 아이들이 싱싱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께서도 그 날 하루쯤은 넉넉한 마음으로 무엇을 하든지 간에 모른 척 눈감아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4월 14일(화)에는 다시 학력평가가 있습니다. 아이들도 다시 긴장해야 할 순간이고, 담임인 저도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아이들이 최선을 다해서 자기 능력의 최대치를 그 시험에 쏟아 붓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3월 시험을 제 능력에 비해 못 친 학생들은 더욱 긴장하면서 마음을 다잡아야 할 순간입니다. 아침에는 실제처럼 시험 잘 치고 오라고 격려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앞으로 4월도 아이들과 재미난 학교생활을 해 보려고 합니다.(저 혼자만 너무 재미있게 지내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보면 늘 똑같은 일상이지만,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날마다 새롭습니다. 늘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은 재미있고 기쁜 일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저의 기쁨과 행복함을 다시 전해드리겠습니다. 학부모님께서도 행복하게 지내시기를 빕니다. 봄빛이 따사롭습니다.

 OO고 3학년 O반 담임, 느티나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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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4-08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님, 3학년 맡으셨군요.
아주 좋은 선생님이실 것 같아요.
이번 작은딸(초등)선생님과 큰딸(고등)선생님도 좋은 선생님이라
감사하고 있어요..

느티나무 2009-04-08 20:49   좋아요 0 | URL
네, 3학년 담임인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좌충우돌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교사입니다. 학부모로서 좋은 담임을 만나면-좋은 담임이라는 판단이 들면- 한 해가 마음이 놓일 거 같습니다. 저도 학부모가 되면 마음이 조마조마하겠지요. 그러니까 좀 더 성의있게 아이들을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됩니다.ㅋ
 

   비가 내리는 목요일 밤, 교실 창밖으로 화단을 내려다보니 목련인지 매환지 하얀 꽃송이가 비에 젖어 바닥에 쓰려져 있었는데, 그게 꼭 쓰다 버린 휴지 같았습니다. 분명 가까이 다가가 보면 저마다 고운 이름을 가진 꽃잎일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습니다. 

   학부모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올해 댁의 귀한 자녀의 담임을 맡은 3학년 O반 담임교사 느티나무라고 합니다. 부모님들께 제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저는 국어 과목을 담당하고 있고 올해 경력 11년차, 고 3담임은 세 번째인 비교적 젊은 남교사입니다. 저는 매를 잘 들지는 않지만, 성격은 꼼꼼하고 진지해서 아이들이 조금 힘들어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덕천동에서 쭉 자랐고, 지금도 화명동에 살고 있는지라 이 동네가 아주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전임지인 OO고에서 올해 3월에 OO고로 발령이 나서, 지금의 환경과 아이들이 조금 낯설긴 하지만 대신 새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가 서 있습니다.

   해마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는 기분이야 늘 설레고 기쁘지만, 올해는 새로 온 학교의 3학년을 맡아 마음이 조급하고, 책임감도 함께 느끼고 있습니다. OO고에 오기 전부터 OO고 3학년들이 성적도 뛰어나고 생활도 반듯하다는 말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소문처럼 반듯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니 담임으로서 기쁩니다. 그렇지만, 이런 학생들이기에 더 잘 가르쳐서 졸업할 때 모두가 원하는 곳으로 진학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게 됩니다. 아이들의 지금 이 마음과 태도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담임으로서 최선을 다해 녀석들을 보살피겠습니다.

   우리 반은 모두 45명인데 보통 교실보다 훨씬 큰 교실을 사용하고 있어서 생활하는 데 그리 큰 불편은 없을 듯합니다. 또 제가 상주하는 교무실 옆에 저희 반 교실이 있어서 늘 아이들의 상황을 살펴 볼 수 있으니 생활지도에 어려움이 덜합니다.

   아침 등교는 7시 50분. 그때까지 교실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대체로 ‘순둥이’들이라 별로 큰 탈 없이 제 시간에 오고 아침 영어듣기부터 정상 수업, 보충수업, 자율학습을 잘 해오고 있습니다. 보충수업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일주일에 모두 10시간을 본인이 선택한 수업에 듣습니다. 저녁식사 시간은 6시 40분부터 7시 30분까지입니다. 자율학습은 10시에 끝나는데, 우리 반에서는 예체능 진학 희망과 건강상의 이유 때문에 6-7명이 불참하고, 교실에는 대략 서른다섯 명 정도가 남아 꾸준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정독실은 11시까지고 성적순이라 우리 반 참가 학생은 두 명입니다.) 토요일에도 휴무일 없이 학교에 나와서 5시 20분까지 자율학습을 합니다.

   앞으로 3월의 중요한 일정으로는 11일에 학력평가가 있습니다. 3학년이 된 자신의 학력을 진단하는 의미가 큰 시험입니다. 자기의 실력을 정확히 알고, 학습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가정에서도 격려해 주십시오. 아마 시험 치고 2주를 전후해서 성적표가 나올 예정입니다. (성적표 나오는 날에는 문자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13일은 3학년 학부모 간담회가 있습니다.[저녁 7시 30분, 시청각실] 그 때 오시면 귀한 아드님의 담임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후로도 학교의 중요한 연락 사항이나 학생의 개별 신상에 관한 내용은 휴대전화기 문자메시지를 이용해서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학부모님께서도 담임인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언제든 전화해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제 연락처는 010-OOOO-0219입니다. 학교전화는 OOO-2195로 하시면 됩니다.[수업 중엔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늘 아이들이 학교에서 행복하게 생활하는 꿈을 꿉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합니다. 멀리서 보면 물 먹은 휴지처럼 보일지라도, 한 걸음 더 다가가 살피면 그 자체로 온전하고 아름다운 꽃인 아이들이거든요.

   자주자주 편지와 문자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동안 저는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낼 테니 학부모님들께서도 가정에서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지금까지 3-O반 담임 느티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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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3-11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학교 처음에 만들 때... 교실 배치랑, 시설때문에 저도 몇 번 갔습니다. ^^
초대교장샘이 교과교실엔 일가견이 있으셨죠. 돈문제로 좀 시시비비를 부르곤 했지만요.
즐거운 학교에서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학생부장인 저는,... 오늘도 무사히...하며 삽니다. ^^

느티나무 2009-03-12 09:54   좋아요 0 | URL
학생부장샘이시네요. 아...아직 한 번도 학생부장샘과 친한 적이 없었는데..언제쯤이면 이런 얄팍함도 가실까요?ㅠ 여기 학교 시간은 무척 빨리 갑니다. 전 좀 느리게 살려고요.(전에 학교는 약간 느슨한 분위기라 전 좀 의식적으로 팍팍하게 살았지만, 여긴 모두 팍팍하게 살아서요. 전 좀 느리게~)

드팀전 2009-03-11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고3이시군요.

느티나무 2009-03-12 09:58   좋아요 0 | URL
네. 고 3 담임입니다.^^;; 이건 뭐 완전 막노동이죠~!! 스스로를 살피기 위해서 여기에 가끔 글도 올리고, 의견도 여쭙고 하겠습니다.
 

방학인 요즘, 여전히 아둥바둥거리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지나고 보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오늘 해야할 일을 감당하고 있다. 

가끔 책도 읽고 있고,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만나며 

저 낮은 곳, 바닥에서 누구에게 들릴지도 모를  

타전소리를 홀로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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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2-05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님 안녕히 지내시지요? ^^

느티나무 2009-03-11 15:19   좋아요 0 | URL
네, 겨울내내 웅크리고 있다가 새봄을 맞아 일어나고 있습니다. 학교를 옮겼고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았서 올해는 약간 바쁘게 움직일 것 같습니다.
한결 같이 열심이신 혜경님! 멋있고 아름다운 모습, 늘 보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지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