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동안 연극을 두 편 봤다. 가마골소극장에서 본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와 공간소극장에서 본, 'LOVE IS... 2' 였다. 가마골 연극은 글밭 나래, 우주인 학생들 넷과 함께 봤고, 공간 연극은 공부방 고등부 모임 아이들 셋과 함께 봤다.
가마골은 26일에 봤는데, 예약을 미루다 당일날 전화했더니 보조석 밖에 없다고 해서 맨 앞자리에 임시 자리를 깔고 앉아서 봤다. 교육척 학력평가를 치룬 날이라, 학생들은 일찍 마치고 집으로 가서 옷도 갈아 입고 남포동으로 갔다.
남포동 거리는 성탄과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대학 때 가끔 다니던 식당을 찾아갔는데, 아직도 옛맛 그대로여서 무척 반가웠다. 맛있게 저녁 챙겨 먹고, 부산극장 앞으로 가서 호떡도 한 입씩 베어 물고, 소극장에 들어가니 기다리는 사람이 한 가득! 와, 어디서 이렇게 몰려드는 것일까, 싶게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 송년 모임인 듯, 늙수그레한 아저씨들도 단체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는 두 시간 동안 흥겹게 연극 보며 즐겼다. 같이 본 친구들도 재미있다며 다음에 또, 보자고 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서둘러 온다고 왔는데도, 벌써 11시 반이었다. 아래는 간단한 연극 후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제(2008.12.26) 연극을 보면서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프닝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사랑 때문이라는 가사로 극의 성격을 바로 알 수 있다.
극에서 보여주는 대학생들의 풋풋한 사랑에서부터 노년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빼놓고는 도무지 우리의 삶을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사랑이 없는 삶은 얼마나 팍팍하고 건조하고 또 재미가 없을까? 생각하기만 해도 아찔하다. 이 연극은 그것이 곧 인생이기도 한 사랑의 다양한 빛깔-그래서 그게 곧 인생의 여러 모습일 것이다.-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물론 충분히 현실에서 있을 수 있을 법한] 벌어지는 사랑의 전개 방식을 보여준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랑에 대한 명과 암이 잘 나타났으면 좀 더 좋았으면 싶었다. '소묘'가 기본적으로 사물의 명과 암을 드러내는 그리기 방식이라고 볼 때 사랑에 관한 소묘라면, 사랑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접근을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예를 들면, 사랑 때문에 파멸하는 삶이나 이런 것도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았나 싶었다. 물론 극의 일관된 흐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 할 수 없다면 할 수 없는 거지만. (이건 연극의 구성에 대한 아쉬움이었고.)
앞 이야기의 배우가 다음 이야기의 배우로 등장해서 극 초반에 집중력이 떨어졌다. 남자 배우들의 경우엔 바로 앞 이야기의 잔상이 계속 남아 있는 상태에서-그만틈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말도 되려나?- 한 편 건너 뛴 다음 이야기에 등장하니까 아주 슬픈 상황인데도 살짝 웃음이 나왔다. (이건 그날 공연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가마골 연극은 일년에 두 세 편 정도 본 것 같다. 늘 안정된 수준을 꾸준히 보여 주는 지라 가마골에서 공연하는 연극을 선택할 때 별로 걱정이 없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늘 관객을 의식하며 관객이 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한 노력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공연을 보고 즐기면서도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스태프의 노력의 자취까지도 기억하는 관객이 되고 싶다.
* 2008.12.26일 공연 상황 중에
1. 박문자(소연) 씨가 침대 모서리에 부딪쳐서 발등(발가락)을 다친 것 같았는데, 그 때의 즉흥대사가 재밌었다. 스타킹에 구멍이 나서 틈만 나면 그거 챙기는 모습도 보고 좋았다.(?)
2. 그날 나는 보조의자로 맨 앞자리에 앉아서 "멍멍"을 여러 번 했었다. 이런 것도 소소한 재미다.
3. 여대생 역으로 나온 분이 맨 마지막에 인사하실 때 나에게 결혼해 달라고 했는데, 내가 싫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셨다.
4. 극이 끝나고 프로포즈도 재미있었다. (살면서 '프로포즈' 하는 거는 실제로 처음 보았다. 다들 그러면서 사는군, 싶었다. 그 남자 분이 모닝 커피 어쩌구 할 때, 왜 그렇게 헛웃음이 나오던지, 속으로 '한 번 살아 보소~'하는 생각이 들었다.
'LOVE IS... 2'는 27일에 공간소극장에서 봤다. 공부방으로 연극 티켓이 배부되어 왔길래[일종의 초대권], 책읽기 모임을 하는 고등부 아이들이랑 함께 보기로 했다. 고등부 아이들의 모임이 부진한 탓에, 늘 성실한 은이는 오고, 희민, 성은이는 아프다고 못 오고, 소영이는 또 약속이 있는지 펑크를 냈다. 급하게 고 3 졸업을 앞둔 량희랑 수경이에게 물어 봐서 같이 가기로 했다.(물론 전화는 내가 한 게 아니고, 종명선생님이 해 주셨다.)
한 한 달 전쯤에 같은 장소에서 사랑할까요,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 했다. 그래서 이번 연극도 내심 불안했다. 그래도 극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꽤 많았다. 우리 입장 순서가 100번을 넘겼으니 적어도 100명은 넘게 온 셈이다. 연극 내용은 유부남이 채팅을 통해 자신의 이상형을 알게 되는데, 문제는 두 남녀가 자신의 모습을 거짓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결국 둘은 만나게 되고, 지금까지 서로에게 했던 이야기가 거짓임을 알고 실망해서 헤어졌다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사실 내용이 너무 뻔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좀 실망스러웠다. 여배우(이지혜)는 예쁘고 사랑스럽게 나왔지만, 배우들의 연기나 대사는 밋밋했다. 진부한 내용에다 뻔한 결론? 그러니까 연극을 보는 내내 별로 유쾌하지가 않았다. 진짜 내 돈 내고 봤으면 아깝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렇다면 앞으로 공간소극장에서 하는 연극은 주저하게 될 거 같은데... (공부방으로 보내준 연극 초대권이 한 번 더 있는데... 어쩌나? ㅋ)
연극 보고 나서 부경대 앞에서 아이들이랑 감자탕으로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에게 밥 한 번 사 준 적이 없었던 것 같아서 그날(27일)은 내가 한 턱 냈다. 종명샘이 운전해서 부산역까지 왔고, 나는 부산역에서 내렸고 다들 영도로 갔다.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더니 11시가 다 되었다. 피곤해서 인지 지하철에서 책(요즘 읽는 책은, 땅의 옹호(김종철, 녹색평론사))을 펼치고 읽어도, 내용이 머릿 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