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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소설 ㅣ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윤성희 외 지음, 강미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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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작엔 사람이 있다. 자기든, 친구든, 가족이든. 동료든. 사람과 더불어 시작하며 사람이 있기에 견딜 수 있다. 그게 취미든, 직장이든, 사랑이든. 사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인 거 같다.
창비교육에서 테마소설집 열두 번째 작품이 출간되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시작하는 소설’이다. 십 대부터 칠십 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모든 시작의 순간을 담았다. 읽었던 작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도 모두 마음속에 와 닿았다. 시작하는 순간의 설렘과 두려움들이 마치 내 경험처럼 여겨졌다. 공감의 순간이었다.
김화진의 「근육의 모양」은 필라테스와 담배를 시작한 재인과 필라테스 강사가 된 지 4년 차인 은영이 주인공이다. 은영은 사람들의 마음이 아닌 몸에 집중하기 위해서 직장생활을 그만두었다. 재인은 결혼을 앞두고 연인과 헤어졌다. 연인과 헤어진다는 건 그 가족과도 단절되는 작업이 필요하다. 마음과 몸이 맞닿는 순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처음 해보는 것이지만 여러 번 해 본 사람처럼 능숙하게 하고 싶다는 사춘기적 마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해야 할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혼자 엉뚱한 짓을 해서 우스꽝스러워지고 싶지 않다는 절박한 마음 같은 것. 때문에 뭔가를 한다는 건 정말이지 부담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재인은 ‘한다’와 ‘하지 않는다’ 사이에서는 ‘한다’쪽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무조건 남는 게 있다고 믿는 편이었다. (80페이지, 「근육의 모양」 중에서)
정소현의 「어제의 일들」은 주차장에 경찰이 찾아오며 소설이 시작된다. 장애인 등록증이 있느냐, 시간당 얼마를 받는지 물어보며 신고가 들어왔다고 얘기했다. 한때는 잘되었으나 지금은 손님이 뜸한 주차장이다. 과거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일한 친구였던 율희. 자기를 괴롭히던 아이들. 그리고 부풀어진 소문들은 결국 사고로 이르게 되었다. 자꾸 기억을 잃는 주인공은 일어난 일들을 메모하고 그림으로 남긴다. 기억나는 모든 일들은 어제의 기록이다. 어제 다녀간 사람들. 그들의 말을 기록하여 떠올린다. 이제 과거의 기억들은 희미해지고 용서를 비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래도 살아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혼잣말이 기억에 남는다.
박형서의 「실뜨기 놀이」를 보자. 가난한 집에 태어나 역시 가난하게 살고 있는 남자에게 아이가 태어났다. 아들 성범수에게 어느 날 달라이 라마를 받드는 사람이 찾아오며 가족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승려들이 낸 세 개의 시험을 모두 통과하며, 아내는 아들이 티베트의 왕이 되었다며 좋아한다. 정작 아들은 부모님과 헤어질까 봐 그들이 원하지 않은 답을 내어놓았다. 아들이 다시 돌아오며 이 가족은 새로이 가족여행을 떠났으며 이러저러한 일을 겪었다. 아내의 죽음 이후 아들과 함께 시작될 삶의 여정을 실뜨기 놀이와 연결된 지점이 인상적이었다.
『여름의 빌라』에서 읽었던 소설을 『시작하는 소설』에서 다시 감동했다. 칠십 대의 할머니는 삶의 터전이었던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이주했다. 손녀와 손자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학교 생활하기 바빴을 때 프랑스어를 할 줄 몰랐던 할머니의 외로움을 추억했던 작품이었다. 홀로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다가 무심코 들려온 피아노 소리에 발길을 멈추었던 할머니를 생각해보라. 리스트를 쳤던 브뤼니에 씨와 가까워지는 순간을 할머니의 일기로 짐작한 주인공의 애틋함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좋은 작품은 다시 읽어도 좋다는 걸 증명했다.
그럼에도 이런 겨울 오후에, 각설탕을 사탕처럼 입안에서 굴리면서 아무짝에 쓸모없는 각설탕 탑을 쌓는 일에 아이처럼 열중하는 늙은 남자의 정수리 위로 부드러운 햇살이 어른거리는 걸 보고 있노라면 할머니는 삶에 대한 갈망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또다시 차오르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232페이지, 「흑설탕 캔디」 중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은 낯선 나라에서 빛처럼 다가왔던 피아노 소리와 브뤼니에 씨와의 우정은 할머니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을 것이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도 말이 통하지 않아 대화할 사람이 없던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우정이었다. 어쩌면 사랑이었을지도.
인생의 시작점에 있을 때,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을 때의 감정을 일곱 편의 소설에서 만날 수 있었다. 과거의 순간을, 현재를 떠올리며 공감하며 위로받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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