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비실
이미예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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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비실 #이미예 #한끼

 

직장인에게 가장 안온한 공간이 탕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화장실과 순위 다툼을 할 수도 있겠다. 탕비실에서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고 동료와 대화를 나누며 누군가를 험담하기도 하는 곳. 하지만 비밀은 없다. 누군가는 지켜볼 것이며, 가장 꼴 보기 싫은 인간으로 추천할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소설 탕비실처럼.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이미예 작가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다소 실망스러운 두께이긴 하지만 책 내용이 괜찮았다. 직장인으로서 공감하기 좋은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소설이 좀 더 이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탕비실은 누가 가장 싫습니까? 라는 예시에서 시작한다. 누군가는 배려라고 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걸 모른다는 게 안타깝다.

 



공용 얼음 틀에 콜라, 커피 얼음을 얼려놓는 사람.

공용 싱크대에 안 씻은 여러 개의 텀블러를 늘어놓는 자칭 환경운동가.

인기 많은 커피믹스를 잔뜩 집어다 자기 자리에 모아두는 사람.

탕비실에서 혼자 중얼중얼 혼잣말하는 사람.

공용 냉장고에 케이크 박스를 몇 개씩 꽉꽉 넣어두고 집에 가져가지 않는 사람.

 



탕비실TV 방송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탕비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하이퍼리얼리즘 소설이다. 7일간 합숙 리얼리티쇼로 같이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함께 탕비실을 쓰기 싫은 사람으로 선정된 이들이 주인공이다. 규칙을 깨면 힌트 교환권이 주어지며 탕비실에서 머무는 시간은 100분만 허용한다. 직장에서와 같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고, 안쪽에는 침실이 있으며 자유롭게 탕비실을 사용하면 되었다. 이들 중 프로그램 제작진에서 가짜로 끼워 넣은 사람을 술래라 하고 그가 누구인지 밝히는 게임이다. 물론 상금이 걸려있다. , 이제부터 탐색전이다.



 

소설의 화자 얼음은 상대방의 배려 차원에서 콜라나 커피 얼음을 만들었다. 그게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게 문제다. 어디든 편을 가르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서로 돕자는 차원에서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리고 눈치를 보며 내게로 올 이득을 생각하는 것 말이다. 다른 출연자의 비밀을 들으려고 탕비실의 싱크대 하부장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앉아있는 장면에서 인간의 이기주의적 본능을 발견했다. 같은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얼음처럼 행동했을 거였다는 게 문제다.

 



실제로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상당히 난처할 것도 같은데, 최근엔 일반인들도 TV 프로그램에 자연스럽게 출연하는 추세다. 소설에서도 밝혔지만 구석구석 숨어있는 카메라도 신경 쓰지 않고 어떻게 하면 게임에서 이길까, 그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책을 읽은 직장인들은 자기를 돌아보지 않을까. 직원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비치는지 궁금해하며 탕비실 사용하는 걸 신경 쓸 거 같다. 얼음처럼, 친절과 배려라고 했던 행동이 타인에게는 싫을 수도 있겠다는 거다. 나 또한 텀블러처럼 종이컵을 자제하고 텀블러나 도자기 컵을 사용하는 게 어떠냐?’, 라고 제안했었는데 그 또한 잔소리쟁이로 여긴다는 거다. 마냥 웃을 수만 없는,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여기서 질문, 당신은 탕비실에서 어떤 유형이세요? 혹은 어떤 사람이 싫어요?

 

 


#탕비실 #이미예 #한끼 #오팬하우스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한국소설 #한국문학 #리얼리티쇼 #하이퍼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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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 마음
홍기훈 지음 / 득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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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마음 #홍기훈 #도서출판득수


 

사진 한 장을 보았다. 북한군 시체로 보이는 사진이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군이 투입되었다는 건 이미 뉴스로 확인했었다. 러시아가 북한군을 총알받이로 사용한 것처럼 보여 마음이 좋지 않았다. 쿠르스크 작전이었다. 몇 년 전 콜린 퍼스와 레아 세이두가 나오는 영화라고 해서 <쿠르스크>를 보았다. 나는 이 소설이 그 영화를 재구성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영화의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레아 세이두가 남편을 찾아다녔던 장면과 공허한 눈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죽음은 이렇듯 슬픔을 안긴다.


 

가라앉는 마음은 미국 시애틀의 기자가 쿠르스크 관련자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내용이다. 러시아 잠수함 쿠르스크가 바렌츠해에서 침몰하며 118명의 승조원이 사망했다. 가족을 잃은 사람, 잠수함의 제독 등 그들의 시선으로 쿠르스크 사건을 바라본다. 먹을 것이 부족해 잠수함의 부품 등을 몰래 팔아야 했던 대화에서 러시아의 경제적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2014년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분리하여 생각하려고 해도 자꾸만 겹치는 상황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힘들었던 것 같다. 쿠르스크가 침몰한 뒤 한 명의 사상자도 없으니 안심하라고 했던 것과 책임 회피를 위해 침몰한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던 장면은 세월호 사건과 흡사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들은 절규했지만, 그들만의 사정일 뿐이었다. 쿠르스크 침몰 후 관계자들이 했던 행동은 세월호 사건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건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감추고자 하는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들은 몰랐던 것일까. 가족을 잃은 슬픔을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며, 사건이 일어났던 때 군 관계자로서 회피했던 책임을 다하고자 했던 것도 다르지 않다. 기자가 인터뷰하러 갔을 때 가족들은 경제적 상황이 어려움에도 다과를 내어 넣고 함께 식사하기를 권하며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사고라는 건 많은 징조를 무시한 대가로 발생한다. 수직적으로 얽힌 윗사람들은 지탄받는 듯 보이다 어영부영 승진한다. 유족들은 운다. (177페이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데도 안전 불감증을 마치 습관처럼 가지고 있다. 병으로 아프든, 사고나 사건이 생기는 데는 징조가 있는 법이다. 무시하다가 수많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인가. 그러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마야 카슨이 왜 그토록 쿠르스크 사고에 대하여 파고드는지 궁금하다. 물론 기자로서 취재를 위해 열정을 다한 걸로 보이기도 했지만, 사정이 있는 듯하다. 그들의 슬픔을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희생자들의 가족과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마야 카슨이 왜 슬픔에 잠겼는지도, 사고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에게 오래도록 묻어두었던 아픈 이야기를 한다. 낯선 사람에게 말할 수 있다는 건 그들과의 감정의 전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쿠르스크 사고를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와 사고를 말하는 듯했다. 우리는 사고를 겪으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배운다. 같은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지켜봐야 한다. 주변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좀 더 솔직해지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작가가 자료 조사를 많이 한 것 같다. 쿠르스크 영화를 보는 듯, 마야 카슨이 인터뷰를 하는 장면들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장면들을 그려본다. 정국이 시끄럽다. 다시, 평온했던 날들로 가기를 기원한다.

 

 

#가라앉는마음 #홍기훈 #도서출판득수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한국소설 #한국문학 #쿠르스크 #책방수북 #한국젊은남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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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에센셜 한강 (무선 보급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디 에센셜 The essential 1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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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에센셜 한강고통으로 일그러진 것들

 

#디에센셜한강 #한강 #문학동네

 

2024년은 한국에서 특별한 해다. 해마다 10월이 되면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관심을 두고 지켜본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노벨상 수상자 발표 즈음에 투표를 하게 되는데 이번 명단에서 우리나라 한강 작가의 이름이 보이길래 간절한 마음으로 투표했었다. 그리고 노벨문학상 발표 소식에 우리나라 문학계와 문학 독자들은 축제를 경험하였다. 마치 큰 선물을 받는 느낌이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다가오는구나. 내가 살아있을 적에 동시대의 작가가 수상했다는 건 분명 감동할 만한 일이다. 내가 읽은 한강 작가의 책 외에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문학동네에서 나온 디 에센셜 한강을 골랐다. 장편 희랍어 시간과 단편 두 편, 시와 산문이 수록되어있어 한강의 작품 세계가 망라되어있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사어에 가까운 희랍어를 배우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희랍어 시간은 언어가 가진 역할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말을 잃은 여자가 희랍어를 배우고, 눈을 잃어가는 남자가 희랍어 강사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대화 혹은 쓰임 때문이라고 여겼다. 학문적으로 좀 더 깊이 있게 파고드는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말을 잃은 여자가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 못할 텐데도 여자는 희랍어 강의에 꼬박꼬박 나온다.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여자를 지켜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희랍어 강의가 이루어지는 아카데미 외에 각자가 가진 기억들은 모두 고통이다.

 

여자는 아이의 양육권을 잃고 홀로 지낸다. 말을 잃은 여자는 하던 일을 멈출 수밖에 없어 아이를 되찾아올 경제적 상황마저 좋지 않다. 그녀가 희랍어를 배우는 건 낯선 언어 때문에 잃었던 말을 되찾았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희랍어를 배우는 작업은 언어를 되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다. 필름 조각을 통해 해를 바라보는 아이의 행동을 배웠던 남자는 독일에서의 기억과 잃어가는 시력으로 고통스럽다.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

단어들이 보도블록에, 콘크리트 건물의 옥상에, 검은 웅덩이에 떨어진다. 튀어오른다. (195페이지, 희랍어 시간중에서)

 

침묵은 언어를 향한다. 언어가 침묵을 향해 나아간다. 침묵은 또 하나의 소통일 수도 있다. 손바닥에 써 내려간 글자들이 춤을 추지만, 그 춤은 희망으로 향하는 것만 같다. 말을 잃은 여자가 언어를 향해 달려가고, 눈을 잃은 남자는 언어를 통해 침묵으로 향한다. 그들에게 있어 침묵은 어떤 간절함이다. 말을 하겠다는 것.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것을 기억하겠다는 것. 가끔 눈이 부옇게 되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꿈을 꾼다. 답답한 상황에서 꿈을 꾸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다만 답답함을 대변하지 않았나 싶다. 꿈을 꾸고 난 아침, 내가 눈을 뜨고 있다는 것.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언어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중 가장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역사의 기록도 언어가 있기에 가능했다. 언어를 통해 빛에 가까워지는 순간을 말하는 것 같았다. 2024년 또 하나의 아픈 역사가 재개되었다.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인가. 한 사람의 잘못된 시각이 국민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이 촛불의 역사도 언어에 의해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게 된다.

 

디 에센셜 시리즈는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파악하기에 좋은 책이다. 출판사에서 엄선하여 선택한 장편소설과 단편소설, , 산문이 수록되어있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던 한 소녀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추구하는 세계에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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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윤성희 외 지음, 강미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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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소설 #창비교육 #윤성희 #장류진 #조경란 #김화진 #정소현 #박형서 #백수린

 

모든 시작엔 사람이 있다. 자기든, 친구든, 가족이든. 동료든. 사람과 더불어 시작하며 사람이 있기에 견딜 수 있다. 그게 취미든, 직장이든, 사랑이든. 사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인 거 같다.

   



창비교육에서 테마소설집 열두 번째 작품이 출간되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시작하는 소설이다. 십 대부터 칠십 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모든 시작의 순간을 담았다. 읽었던 작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도 모두 마음속에 와 닿았다. 시작하는 순간의 설렘과 두려움들이 마치 내 경험처럼 여겨졌다. 공감의 순간이었다.





 



김화진의 근육의 모양은 필라테스와 담배를 시작한 재인과 필라테스 강사가 된 지 4년 차인 은영이 주인공이다. 은영은 사람들의 마음이 아닌 몸에 집중하기 위해서 직장생활을 그만두었다. 재인은 결혼을 앞두고 연인과 헤어졌다. 연인과 헤어진다는 건 그 가족과도 단절되는 작업이 필요하다. 마음과 몸이 맞닿는 순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처음 해보는 것이지만 여러 번 해 본 사람처럼 능숙하게 하고 싶다는 사춘기적 마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해야 할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혼자 엉뚱한 짓을 해서 우스꽝스러워지고 싶지 않다는 절박한 마음 같은 것. 때문에 뭔가를 한다는 건 정말이지 부담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재인은 한다하지 않는다사이에서는 한다쪽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무조건 남는 게 있다고 믿는 편이었다. (80페이지, 근육의 모양중에서)

 



정소현의 어제의 일들은 주차장에 경찰이 찾아오며 소설이 시작된다. 장애인 등록증이 있느냐, 시간당 얼마를 받는지 물어보며 신고가 들어왔다고 얘기했다. 한때는 잘되었으나 지금은 손님이 뜸한 주차장이다. 과거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일한 친구였던 율희. 자기를 괴롭히던 아이들. 그리고 부풀어진 소문들은 결국 사고로 이르게 되었다. 자꾸 기억을 잃는 주인공은 일어난 일들을 메모하고 그림으로 남긴다. 기억나는 모든 일들은 어제의 기록이다. 어제 다녀간 사람들. 그들의 말을 기록하여 떠올린다. 이제 과거의 기억들은 희미해지고 용서를 비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래도 살아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혼잣말이 기억에 남는다.

 



박형서의 실뜨기 놀이를 보자. 가난한 집에 태어나 역시 가난하게 살고 있는 남자에게 아이가 태어났다. 아들 성범수에게 어느 날 달라이 라마를 받드는 사람이 찾아오며 가족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승려들이 낸 세 개의 시험을 모두 통과하며, 아내는 아들이 티베트의 왕이 되었다며 좋아한다. 정작 아들은 부모님과 헤어질까 봐 그들이 원하지 않은 답을 내어놓았다. 아들이 다시 돌아오며 이 가족은 새로이 가족여행을 떠났으며 이러저러한 일을 겪었다. 아내의 죽음 이후 아들과 함께 시작될 삶의 여정을 실뜨기 놀이와 연결된 지점이 인상적이었다.

 



여름의 빌라에서 읽었던 소설을 시작하는 소설에서 다시 감동했다. 칠십 대의 할머니는 삶의 터전이었던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이주했다. 손녀와 손자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학교 생활하기 바빴을 때 프랑스어를 할 줄 몰랐던 할머니의 외로움을 추억했던 작품이었다. 홀로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다가 무심코 들려온 피아노 소리에 발길을 멈추었던 할머니를 생각해보라. 리스트를 쳤던 브뤼니에 씨와 가까워지는 순간을 할머니의 일기로 짐작한 주인공의 애틋함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좋은 작품은 다시 읽어도 좋다는 걸 증명했다.

 



그럼에도 이런 겨울 오후에, 각설탕을 사탕처럼 입안에서 굴리면서 아무짝에 쓸모없는 각설탕 탑을 쌓는 일에 아이처럼 열중하는 늙은 남자의 정수리 위로 부드러운 햇살이 어른거리는 걸 보고 있노라면 할머니는 삶에 대한 갈망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또다시 차오르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232페이지, 흑설탕 캔디중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은 낯선 나라에서 빛처럼 다가왔던 피아노 소리와 브뤼니에 씨와의 우정은 할머니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을 것이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도 말이 통하지 않아 대화할 사람이 없던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우정이었다. 어쩌면 사랑이었을지도.



 

인생의 시작점에 있을 때,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을 때의 감정을 일곱 편의 소설에서 만날 수 있었다. 과거의 순간을, 현재를 떠올리며 공감하며 위로받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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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 창비교육 성장소설 13
보린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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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 #보린 #창비교육

 


우리는 미래의 어느 세계를 상상해본다. 또 다른 나의 자아가 있는 세계, 현실은 숨 가쁘게 지나가지만 다른 자아와 동시의 삶을 산다면 그건 어떤 느낌일까. 소설 속 연우처럼 미지의 존재로부터 채집되어 정육면체를 이루는 큐브에 갇혀있다면 진짜 나와 복제된 자아의 나는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지부진한 고3의 생활에서 또 다른 자아는 새로운 삶을 향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이때야말로 우리가 누렸던 현실이 가장 행복했었다고 여기게 되지 않을까.


 

3 수험생 연우는 독감 기운이 있어 체육시간에 홀로 교실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어느 순간 푸딩 같은 투명한 물체에 채집되었습니다라는 글씨가 보이고 투명막으로 된 큐브에 갇혔다. 열이 오르거나 감정이 끌어 오르면 의식이 통제되었다. 배가 고파서 깨어 유부초밥을 꺼내어 먹었다. 그러다 리셋되면 다시 똑같은 유부초밥을 먹어야 했다. 큐브 안에서 보이는 교실의 창문 밖은 푸른 지구가 떠다니고 있었다.

 





안정을 위해 항상성 시스템을 작동합니다.” (104페이지)

 


감정이 통제되는 생활에 적응할 즈음 큐브 바깥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쪽 세계에서는 1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원양어선을 탔던 아버지는 문어 낚싯배 선장이 되어 연우를 살피고, 대학을 포기한 해고니는 서퍼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연우를 보고 경찰과 주변 사람들은 정신이 나갔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었다. 그래도 연우는 현실로 돌아와서 좋았다. 다만 복제된 자아의 젤리 곰은 그의 의식 상태 혹은 신체 상태까지 최적의 조건에 이르게 했다. 예를 들면 집에 에어컨이 고장 났는데 연우는 전혀 덥지 않았고, 바다에 빠졌을 때도 주변에 투명한 막이 생겨 그를 보호했다. 투명한 막 너머에는 바닷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또 다른 큐브에 갇힌 듯했다.

 


해고니에게 좋아한다는 고백까지 한 터라 현실에서 다시 채집되고 싶지 않은 건 당연했다. 연우가 없는 1년 동안 해고니에게도 어떤 사연이 있었던 듯한데,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이쯤 되면, 연우가 큐브 안에 갇힌 게 궁금해진다. 미지의 존재는 왜 그를 채집하였는가. 그가 죽기를 바라지 않아 주변 환경을 그대로 복제해 비슷한 환경을 제공했다. 복제한 자아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궁금했다. 그러한 궁금증을 해결해주지는 않았다. 다만 해고니와 연우, 해고니를 좋아하는 나루, 도서관에서 재수를 하던 윤찬의 우정과 연애, 청소년 시기를 지나는 감정들과 성장을 담았다.

 


다른 소설에서 볼 수 없는 인물들의 특성을 살펴보자. 소설 속 고등학생들에게 대학은 큰 의미가 없다. 서핑이 하고 싶어 서퍼 가게에서 일하는가 하면, 부모님의 식당을 물려받고 싶어 대학을 다니는 중 푸드트럭을 운영하기도 한다. 1년 만에 현실로 돌아온 연우는 원래 수도권 대학에 가려고 했었지만, 대학을 포기하고 해고니 곁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 같은 인물로 비친다.

 


소설의 배경 또한 강원도 바닷가 마을이다. 서울과는 면학 분위기가 다른 건 당연하고 그들 곁에는 푸른 바다가 있다는 거다. 언제든 서핑을 하고 싶어 서퍼 가게를 차린 진호는 눈여겨봐야 할 인물이다. 현재 청년들이 꿈꾸는 인물이 아니던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급여가 보장되는 직장을 과감하게 버리는 청년들이 많다. 소소하지만 진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소설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 갇혀 살지 않겠다는 강한 바람을 담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고, 대학을 졸업하고는 타인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라는 강력한 메시지다. 주변을 둘러보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청소년들이 어떤 미래를 살아갈지 여러 갈래의 길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많이 고민했으면 한다. 폭넓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길 원하는 작가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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