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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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 글쓰기 프로그램(IWP, International Writing Program)에 한국 시인으로 아이오와에 가게 된 시인 문보영의 일기 형식의 에세이다.

 


IWP30여 개국에서 온 작가들이 3개월간 한 호텔에 머물면서 리딩, 강연, 토론 등 문학 행사에 참여하는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IWP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다양한 나이대다. 시인은 그중에서 비슷한 또래의 작가 코토미와 에바와 특히 친하게 지냈다. 다른 작가들은 아이오와를 떠나면서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은데, 문보영 시인만은 아이오와로 다시 돌아올 거라 말한다. 아이오와에서 그는 한국에 있을 때와는 다른 감정을 느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열렸던 호텔은 아주 낡아서 어둡고 서늘했다. 작가들에게 주어진 전망은 벽에 가로막혀 있는 곳이 많아 전망이 없는 작가들의 모임을 만들었다. 이 작가들은 중정 안에 있는 종이컵을 주제로 글쓰기 모임을 했으며, 해가 비치는, 전망이 있는 곳으로 탈출하고자 긴 호소장을 작성하기도 한다. 호소장을 건네주지 못하고 가방에 품고만 다니다가 IWP 최고령 작가인 메리가 요구는 정당하다며 전달하라는 부추김에 넘어가고 만다. 그러면서 메리는 호텔 기둥에 숨어 지켜보고 있었다.




 


시간 순서대로 이어지는 에피소드는 작가가 아이오와에서 느꼈던 것들을 바라볼 수 있다. 피드백을 해줄 뿐 아니라 자기의 시를 낭독하는데 이때는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은 살짝 들어내기도 한다. 한 문단을 들어내면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효과가 생긴다. 어차피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니 가능하다.

 


아이오와는 뭔가를 잊을 수 있도록 돕고, 그것을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라던 동료 작가의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그 말은 어쩌면 들판의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난 끝없이 들판을 걸어보고 싶다. 반대 방향으로 걸었을 때 우연히 진짜 삶을 발견하게 되어 지금까지의 삶을,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전혀 다르게 바라보게 될지도 모르니까. 한국과 정반대에 있는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유를 발견한 것과 같이. 그것은 들판이 내게 준 것이었다. (5~6페이지)


 

낡은 호텔이었지만 작가에게 좋았던 건 너른 들판이 있었다는 거다. 글을 쓰는 작가들은 타인과 함께 있는 시간보다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할 거로 보인다. 그런 까닭일까. 각자만의 길로 들판을 거닌다. 삶에 뛰어드는 길, 들판의 길이 있는데 작가는 다른 작가들이 가지 않는 나무 길을 걷는다. 이 길은 들판의 나무를 관찰할 수 있으며 마음의 준비라고 부른다.


 

들판을 산책하는 것은 천천히 생각에 잠기는 일이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사색에 잠긴다.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하고, 하늘을 바라보느라 부딪치는 것들이 있다. 산행길의 오르막에서 힘이 드니 하늘과 나무를 바라볼 생각은 하지 않고 땅바닥 혹은 앞사람의 신발만 보고 걷는다. 너른 들판은 다르다. 샛길로 가면 울퉁불퉁한 길이 있으며 그 길에서 혹시 사슴을 만날지도 모른다.


 

노엘은 매일 새벽 5시에 호텔을 떠나 들판으로 향한다. 사슴을 찾으러. 새벽 산책은 그녀에게 의식과도 같다. 길이 아닌 길을 따라 걷는 것, 그것은 진짜 실을 걷기 위한 준비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길이 아닌 길을 충분히 걸어야 사람이 걷도록 만든 길도 걸을 수 있게 된다고 나는 믿고 싶다. (71~72페이지)

 


새로운 경험은 우리 삶을 좀 더 풍부하게 가꿔준다. 타인을 외면하고 살았던 한국과는 다르게 아이오와에서는 세친구와 어울리고 오릿과 뜻깊은 교류를 한다. 영어로 시를 써 서로의 방문 안에 넣어주는 일이다. 모국 언어로 글을 쓴다는 것과 이국의 언어로 글을 쓰는 일은 다르다. 감정 표현 방법도 다르며 새로운 발상일 수 있다.


 

태어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 타국에서 생활하는 작가들이 여럿 있었다. 낯선 언어로 말하는 일이 힘들 것 같은데, 작가는 영어를 사용하며 비로소 자유로워진 것 같았다.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말이 통하지 않은 경우가 있잖은가. 작가는 영어가 서툰 코토미와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코토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영어로 대화를 나눌 때 편안함을 느꼈다고 했다. 언어가 달라도 몸짓과 눈짓으로 통하는 게 있는 법이다.

 


외국에 나갈 때면 영어를 자유자재로 하는 사람이 부럽다. 간단한 인사와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부족하다. 여행을 마치며 한국에 돌아가서는 꼭 언어를 배우겠다 다짐한다. 하지만 결국 여행 때마다 반복되는 서사다. 문보영 시인의 아이오와 일기를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영어를 공부해야겠다. 시인이 하고 있다는 아침 전화 영어도 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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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쌍둥이
홍숙영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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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에 태어나 생일이 일 년이 채 차이 나지 않는 아이들을 아일랜드 쌍둥이라고 부른다. 형 재이는 17일에 태어났고, 존은 같은 해 크리스마스이브에 태어났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재이가 죽자 존은 재이가 원했던 군인이 되었다. 작전 수행 중 피폭되어 피폐한 삶을 살고 있다. 재이의 삶을 대신 살고자 했던 게 문제였을까.

 


군대에서 남동생을 잃은 수희는 견딜 수 없어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상담과 미술치료를 공부하고 있었다. 존의 엄마 조안 집에서 지내다가 그를 만났다. 그를 미술치료로 이끌어 죽음으로부터,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빠져나오는 방법을 배운다.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이 기저에 깔려 있다. 동생이 죽었던 바다에 가지 못하는 수희. 형 재이의 죽음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존의 고통이 전해온다. 과거의 고통은 트라우마가 되어 마음을 지배한다. 고통을 표출해야만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 존과 에바, 수희는 미술치료 워크숍을 하며 비로소 자기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 삼촌, 재이와 함께였던 가족은 이제 뿔뿔이 흩어졌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층에 세를 놨던 젊은 여자와 바람난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계속 기다리는 어머니. 천재 같았던 형의 발병과 죽음은 고통의 시작이었다.




 


부모와 나의 관계, 사랑했던 연인. 두려움을 표현하는 방법은 그림을 통해 이루어진다. 사람의 신체를 본을 떠 표현하는 방법, 오브제와 사진, 종이 등을 이용해 보물 상자를 만들고, 인간을 구성하는 우리 존재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 등 상처를 드러내고 타인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법이다.

 


에바의 사연이 인상적이었다. 에바는 흑인 엄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다지증을 갖고 태어났다. 덧붙여진 손가락은 바로 수술해서 사라졌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근원을 향한 질문을 건네는 인물이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에 대한 상처와 고통의 근원을 표현하는 에바를 보며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가, 그 존재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새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닌다. 알에서 부화하고 어미가 물어다 준 먹이를 받아먹던 아기 새는 이제 독립해서 스스로 날아야 한다. 새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며 날 준비를 해야 한다. 암울함에서 벗어나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야 한다.

 


자신의 그림자를 보기 위해 뒷걸음질을 치며 사막을 걷는 순례자처럼, 빨리 떨어지려고 안간힘을 쓰는 마지막 꽃잎처럼, 높은 골짜기에서 메아리라도 들으려는 산지기처럼 나는 지독하게 외로웠다. (120페이지)


 

한 발 더 내딛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모두에게서, 그리고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고, 침묵했고, 슬픔의 힘으로 버텼다. 너무 많은 나를 가두었고, 북적거리는 내면이 내는 소리가 시끄러워 귀를 막은 채 미움과 원망을 타진할 때까지 시간을 갉아먹으며 살고 있었다. 한 발 나아가려면 나를 응시해야 하는데, 아직도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164~165페이지)


 

슬픔을 그림으로 나타내며 내면의 고통을 치료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상처를 마주할 수 있어야 치유가 가능하다. 누군가 자기의 고통을 말할 때 들어주고 함께 아파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더 이상 마음을 다치지 않게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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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가게 글월
백승연(스토리플러스)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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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이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를 받을 사람이 누군지 상상하며 적는다. 모르는 사람이기에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가슴 속 깊이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친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오래전 펜팔을 한 적이 있었다. 낯선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일이 년을 펜팔 한 것 같다. 부끄럼을 탔던 나는 그 친구를 만나게 되었을 때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였다.


 

편지 가게 글월은 서울 연희동에 실재하는 장소 글월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글월이란 편지를 높여 부르는 순우리말이다. 어떤 책에선가 글월을 올린다고 했던 것을 읽은 것 같은데, 글월이라는 이름부터 우리의 마음을 훔친다.

 





가족의 자랑이었던 효민 언니가 사기를 당하고 사라졌다. 영화를 찍기 바빴던 효영은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영화 촬영을 포기했다. 대학 동기였던 선호가 운영하는 글월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휴대폰 연락도 끊었던 언니의 편지가 오기 시작한 뒤부터였다. 글월은 펜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익명의 수신인을 위해 편지를 쓰면, 글월에 있는 편지를 한 통 가져갈 수 있으며, 직접 수령이 어려울 시 우편 발송도 가능했다.

 


글월이 있는 연희동에서 혹은 인스타에서 보고 온 사람들이 방문하며 꽤 알려졌다. 엽서나 편지지 세트를 고르는 사람, 탁자에 앉아 익명의 수신인에게 편지를 쓰는 사람의 얼굴표정을 상상해본다. 사각사각 글 쓰는 소리와 어떤 사람이 내 편지를 읽을까, 설레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쩌면 이렇게 다정하게 손편지를 썼을까. 소설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라고 여겼다. 영광, 은아, 원철, 민재, 효영, 영은이 뽑았던 일곱 통의 편지는 소설에 실릴 펜팔을 응모해주었던 손님들의 편지다. 실제 연희동 글월과 성수동 글월의 손님이 쓴 편지를 주인공의 사연에 맞게 골랐다. 손편지와 함께 사연들은 더 풍부해졌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던 때가 떠올랐다. 누군가를 상상하면서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는 그 마음이 생각났다.

 


친한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 우리는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과 가깝게 지내는 것 같다. 그 친구가 무엇을 하는지,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 더 알고 공감하게 되니 말이다. 일상에 바빠 만나는 게 뜸해지며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만나고 나면 피로가 쌓이는 걸 보면 아무래도 혼자인 게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건 우리가 익명의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과 비슷하다. 고민을 고백해도 아무런 편견 없이 들어주니 그러는 게 아닐까.


 

글월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에서 고민과 살아가는 모습들을 바라보게 된다. 편지라는 매개체가 있어 다정한 마음을 나누는 것 같다. 삶은 정체되지 않고 물 흐르는 것처럼 나아간다. 일이 풀리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다쳐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상실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좋은 것 같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편지가게 글월의 풍경을 상상해본다. 내가 상상했던 것과 비슷한 사진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글월에 가면 편지 한 장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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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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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십 년 전에 이 책을 읽었다. 몰아치는 슬픔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다시 읽는 소설은 다시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갔다. 삶은 이렇게도 짧은 것을. 삶의 의미를 일깨우는 내용이었다. 내 삶의 마지막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한 남자가 있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던 그는 한순간의 사고로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다. 그는 누워있거나 성채가 보이는 집안에 갇혀 있다. 그의 하루는 지루하고 어제와 다를 바 없었다. 그의 별채에 루이자 클라크라는 특이한 여자가 간병인으로 들어오며 일상과 다른 특별한 날이 시작된다.





 

카페에서 일하다 잘린 루이자 클라크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다가 6개월이라는 한시적인 간병인을 하기로 했다. 부유하나 불행해 보이는 가족이었다. 서른세 살의 윌 트레이너는 루이자를 불편하게 했다. 잘나가는 사업가였던 윌 트레이너는 삶의 의지를 잃고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루이자는 정원으로 윌을 데리고 나오면서 점점 바깥세상을 향해 그를 인도한다. 윌은 더 밝아지고 웃음을 찾기 시작했다. 그가 삶의 의미를 갖도록 노력한 결과였다. 6개월의 유예기간이 끝나고 그의 마음을 돌렸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원래 계획대로 스위스행을 취소하지 않았다.

 


삶의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건네는 소설이다. 루이자를 사랑하고 있으나 휠체어에 갇혀 사는 그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루이자가 미래를 위해 투자하게 하고 변화된 삶을 살기를 바랐다. 조력 자살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이상 좋아질 수 없으며 통증과 고통은 계속되는 상황이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랑의 의미와는 별개로 삶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이 드러났다.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의 결과였다.

 


루이자의 삶은 그가 살았던 도시를 벗어나 본 적이 거의 없었다. 평범한 사람과 결혼하여 평범한 삶을 살 줄 알았다. 윌로 인해서 그녀는 다른 삶을 꿈꾼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가다.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고 여행하고 싶었던 도시에서 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랐다. 루이자에게 미래의 삶을 바꾸게 한 인물이 윌이었다.


 

윌과 루이자의 사랑을 담은 로맨스 소설로 읽힌다. 윌이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장면을 지나며 삶의 선택권은 누구에게 있는지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만약 그 사람이 내 가족이라면,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휠체어에 누워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누구라고 선택의 순간을 맞닥뜨릴 것이다. 더 이상의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걸 선택하지 않을까. 다만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는 조력자살이 불법이라는 점이다. 소설에서도 나오는데, 죽음을 본인이 직접 선택했는가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윌 트레이너는 죽음을 선택하고 비로소 편안해졌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선택에 만족했을까. 그의 죽음을 지켜보는 가족의 고통이 안타까웠다.

 


인생은 한 번밖에 못 살아요. 단 한 번의 최대한 충만하게 사는 게 인간의 의무예요. (30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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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 지음, 김혜영 옮김, 가토 게이키 감수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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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드라마와 영화 때문에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많다. 한국문화를 좋아하지만,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꺼리는 분위기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일본의 역사와 정치를 비로소 알게 되며 책을 펴낸 젊은이들이 있다. 독일의 경우는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정확하게 드러내고 용서를 빌었던 반면, 일본은 역사수정주의를 자행했다. 근래에 일본 젊은 층들은 역사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한일관계의 냉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반일로 보았으며 한국을 여행한다는 이들에게 무섭지 않겠느냐며 우려를 표했다. 개인과 역사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에 온 일본인에게 해코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일본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에게 일본인들도 나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간간이 뉴스에서 나오는 것들은 혐한을 드러내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이 책은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부 대학생들이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일본과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되며 인식의 변화를 나타냈다. 한일관계에서 바로잡아야 할 것 중에서 위안부 문제와 강제 징용 피해자,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한일합방조약,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혐한 의식과 차별에 대하여 심도 있게 논의하고 파악했다.




 


위안부 문제는 정치 문제가 아닌 여성 인권과 전시 성폭력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 그 첫 번째다. 평화의 소녀상을 반일 문제 혹은 걸림돌로 본다는 것은 피해자의 인권 회복과 한일관계 개선을 방해하는 걸림돌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군함도가 일본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한국은 식민지 시기에 한반도에서 강제 동원된 피해자가 존재했다는 이유로 세계유산 등재에 반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책에서는 이 부분도 다루며 군함도에 동원된 한국인을 포함해 중국인들이 본인 의사로 일하러 온 게 아니라 강제로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책이 일본인을 위해 쓴 글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짚어보며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정확히 짚어보는 게 중요하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에 의해 축소되었던 역사도 정확하게 전달해주었다는 사실이다. 극우주의와 혐한에 역사의 진실이 젊은층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던 건 안타깝다. 한국인조차도 역사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드라마나 영화 혹은 책도 역사를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역사 인식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한국에서는 독립운동을 했던 3.1절과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던 광복절을 공휴일로 지정해 기념한다. 한국에서 광복절을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말한다. 한국의 아이돌이 광복절을 기념하는 글을 썼던 것을 반일로 인식한다는 점도 밝혔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불평등조약도 결국은 일본 정부의 자작극이었음을 말했다.


 

일본은 식민지 지배의 책임은 지려하지 않으면서 역사까지 왜곡하려고 한다. 독도영유권 문제를 생각할 때도 이러한 사실을 먼저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한다면 해결의 길이 보일 것이다. (94페이지)


 

일본 대학생들의 작은 움직임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독자들도 이 책을 읽고 제대로 된 역사를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피상적인 역사만 알아서는 안 된다.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우리의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한다. 차별과 인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피부색을 따져 차별하는 경우가 많다. 밝은색 피부를 가진 사람을 선호하고 어두운색 피부를 가진 사람을 무시하는 경우다. 우리가 받은 차별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타인에게 주는 차별도 생각해봐야 한다.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이니 잊어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내 가족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러한 이야기를 가진 개개인이 모여 이루어진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문제가 아니다.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일이다. 그것이 나는 누구인가를 가르쳐줄 것이다. (202페이지)

 


역사는 우리의 현재이며 미래다. 역사를 알지 못하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 것이다. 역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 때에야 우리는 소리를 높일 수 있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 한국의 관계도 조금씩 가까워져야 하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도 더 이상의 역사 왜곡은 안 되며 제대로 사과하고 드러내야 할 것이다. 혐오와 차별, 가해의 역사를 외면하고 살아왔던 일본 대학생들의 고민과 분투의 결과가 일본인을 위한 글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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