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치새가 사는 숲 오늘의 젊은 작가 43
장진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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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고통의 또 다른 이름이다. 과거의 불행한 기억은 현재를 고통스럽게 한다. 과거의 기억을 붙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치도록 과거에 매달리다 보면 현재를 살아낼 수 있을까.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앞에 두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우리들의 열네 살 시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내 이름은 치치림. 치치새가 사는 숲이라는 뜻이다. 치치새는 아주 진귀한 새로, 세상에 존재하는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 새는 마음씨가 고운 사람에게만 보인다. (7페이지)





 

초등학교 때 왕따였던 주인공은 평준화에 의해 온조중학교에 배정되었다. 팥죽색의 교복 색깔 때문에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었던 학교였다. 왕따의 피해자였던 학생이 가해자가 되는 일은 흔하다. 모든 게 완벽해 보였던 달미의 마음에 들고자 했던 행동 때문이었다. 어른이 보기에 발칙한 소녀일 수도 있다. 모두가 보는 사물함 위에 양반다리로 앉아 있었던 소녀라서 그랬던 걸까. 수업 시간에 나가서 쉬라는 교사의 말에 진짜로 쉬고 있었던 소녀는 학주한테 뺨을 맞는다.

 


여상을 다니던 언니가 집을 떠나 깡촌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언니의 생일에 미역국을 가져갔던 소녀는 봄옷을 주러 갔다가 언니 회사의 차장님차에 올라탔다. 소녀는 왜 아무렇지 않게 차장님의 차에 올라탔던 걸까. 그가 차장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걸까.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을 알았던 것일까.

 


소녀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왜 아무도 소녀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것일까. IMF 이후로 엄마는 눈썹을 까맣게 물들이는 일을 하고 엄마를 너무 사랑하는 아빠는 엄마의 곁을 지킬 뿐이다. 그렇다. 부모는 소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어떤 학교에 다니는지, 어떤 친구를 사귀는지. 고작 열네 살 소녀에게 용돈은 스스로 벌어 쓰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방임 또한 폭력의 다른 이름이다. 어쩌면 학대에 가까운 게 아닐까.

 


성폭행당한 게 고작 만 열두 살이었다. 경찰서에서 질문할 때 차장을 보호하려고 했다는 게 안타깝다. 이제 소녀는 서른 살이 넘은 여성이 되었다. 가려움증으로 병원에 다니면서 언니에게 졌던 빚을 다 갚았다. 마지막에야 드러나는 진실은 우리를 아프게 한다. 왜 언니마저 소녀를 고통스럽게 했느냐 말이다. 아무에게도 보호받지 못했던 소녀였다.

 




불행한 과거의 기억과 현재가 맞물려 혼재한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의 숲, 치치림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와 가려움에 온몸을 긁어 차라리 게가 되고 싶은 현재까지. 진짜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는다. 딸들에게 남자를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한다는 게 서글프다. 불안한 사회가 가진 딜레마다. 보호받지 못했던 소녀는 무관심이라는 학대에 노출되고, 또 다른 폭력의 희생양이었다. 불행한 기억은 현재를 옭아매 고통스럽게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가진 두 얼굴을 마주했다. 타인보다 오히려 더 폭력적일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무마하려 했다. 과거의 기억에 그만 아파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 너의 삶을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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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듣는다
루시드 폴 지음 / 돌베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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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루시드폴이 나오는 유튜브를 보았다. 그가 제주에 머문다는 것과 이름만 익숙할 뿐, 그의 사적인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글처럼 조곤조곤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음악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거라는 걸 실감했다. 자연의 소리를 담는다며 마이크와 스피커를 들고 제주 중산간을 헤매는 그를 상상해본다. 자연의 소리가 음악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익숙하게 듣는 바닷소리가 음악의 한 형태로 나타나면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정을 느낄 것 같다. 파도치는 소리, 게나 바다 생물이 살아 움직이는 모든 소리에 집중하게 되지 않을까.


 

모두가 듣는다는 소리로 나타낼 수 있는 음악의 세계를 말하는 산문이었다. 날 것의 소리, 자연이 살아 움직이는 소리, 그것을 녹음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소리의 세계였다. 우리는 귀를 열고 음악을 들을 것이며, 귀 기울여 소리에 집중하지 않을까. 제주에서 감귤을 키우는 농부이기도 한 저자는 소리의 경이로움을 말하였다. 식물이 물소리를 듣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뿌리를 뻗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식물이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본 적은 있지만 햇볕뿐 아니라 물소리를 향한다는 것도 새로운 발견이다. 식물들의 세계, 특히 소리가 가진 영향은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가 말이다.




 


음악은 누구의 것인가, 만드는 이의 것인가, 듣는 이의 것인가. 들려주는 이의 것인가.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하지만 음악은 '흐르는' 것일 뿐, 누구의 것도 아니다. 강물이 누구의 것도 아니고 바람이 그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듯이. 내가 만든 음악조차 나의 것이 아닌, 나와 함께 춤추는 세상 모두의 것이다. (19~20페이지)

 


루시드폴의 녹음수첩을 읽는 순간은 우리로 하여금 음악이 머무는 순간으로 이끈다. 앨범을 만드는 작업의 고유한 느낌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앨범이란 집 하나를 잘 짓는 법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음악을 대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자기의 것을 만드는 사람이야말로 얼마나 신중하고도 열정적인가. 최선을 다하는 자세에서 좋은 작품에 대한 만족과 기대감이 높아지는 것 같다.


 

Being-with위한 라이너 노트에 노트에 실린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변해가는 제주, 나무들을 쓰러뜨리고 새 건물이 올라오며 들리는 삐걱거리는 자연의 소리를 음악으로 나타냈다. 가사가 없어 귀 기울이며 음악에 빠져들게 된다. 루시드폴이 추구하는 세계에 조금은 다가선 느낌이다.


 

아주 오래전, 좋아하는 음악을 테이프에 녹음해 들었었다. LP 음반을 살 수 없을 때 값싸게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게 카세트테이프였다. 음악사에 좋아하는 음악을 메모해가면 얼마간의 돈을 받고 녹음해 주었었다. 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듣던 때, 음악이 가진 행복이었다. 저자의 글을 읽고 있자니 음악을 듣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던 과거의 날들이 떠올라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루시드폴이 화학박사이며 귤 농사를 짓는 농부라는 것, 꽤 많은 음반을 냈던 음악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음악 하는 사람은 아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다.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여 음악으로 표현하는 자체가 새로운 발상이다. 음악을 듣다 보면 처음에는 거슬렸던 소리에 점차 익숙해져 편안한 순간에 이르게 된다. 루시드폴이 추구하는 음악을 이해하는 순간이다. 음악처럼 들리는 부드러운 목소리는 그의 음악과 닮아있다. 이렇게 한 음악가, 한 작가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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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23-12-31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한 시간이 넘는 곡도 있다고 하던데, 루시드폴은 싱어송라아티에서 음향연구가의 길로 가나 봅니다. 귤을 사면 앨범을 서비스로 준다고 했던 홈쇼핑 방송 생각도 나고요.

루피닷 2024-01-01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파친코 (합본 한정판)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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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이니치(在日)’란 식민지 시대에 이주한 조선계 일본인들과 그들의 후손을 일컫는 말이다. 재일조선인에 관한 많은 작품에서 일본의 외국인 차별에 대하여 알았다. 조선인이라는 신분을 속이고 일본인으로 살고 싶어 했다. 이 소설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다. 더불어 선자라는 한 여자의 삶을 통해 격변하는 세계사에서 가족으로 얽힌 과거의 역사를 말한다.


 

부산 영도에서 선자는 하숙집을 하는 엄마를 도왔다. 하숙집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갔다가 일본 남학생들이 괴롭힐 때 구해주었던 한수를 만났다. 그의 아이를 밴 후 그와 혼인을 생각했으나 그는 일본에 아내와 딸 셋을 두었다. 아이와 선자를 거두겠다고 했으나 단호하게 거절했다. 몇 달 후 하숙집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왔다. 평양에서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기 위해 온 백이삭 목사였다. 평생 아픈 몸으로 살아 언제 죽을지 몰랐던 이삭은 선자의 사정을 듣고 아이에게 자기의 성을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선자가 한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백이삭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며 사랑하는 아들 노아와 모자수를 낳지 않았을 터였다. 그리고 백요셉과 경희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엔 선자의 아들과 손자들이 자이니치로 살지 않았을 거다. 우리 삶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


 

가족의 끈끈함은 한국의 고유한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요셉이 오사카로 이삭을 불러들이고, 가장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선자와 경희가 김치 장사를 한다고 했을 때 반대했던 이유도 여자는 집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선자가 돈을 벌기 위해 시장에 나가 김치 사세요하고 외치던 장면. 처음에는 말이 안 나와 조용히 말했다가 점점 더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이삭의 죽음 이후를 걱정했으며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돈을 마련하려고 했다. 선자는 강인했고, 미래를 준비할 줄 알았다.

 


드라마에서 한수를 처음 보았을 때 무조건 나쁜 남자라고만 생각했다. 소설을 읽었더니 그가 선자를 사랑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아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고자 했던 것도. 노아에게 공부를 하라고 말했을 뿐 아니라 무엇이든 열심히 배우라고 했다. 한수는 사업가로서 국제정세를 발 빠르게 읽고 피해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아는 진취적인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무조건 미워할 수만 없었던 인물이었다.

 


아버지가 하나님은 아이들의 기도를 아주 꼼꼼하게 듣는다고 말했는데도, 하나님은 2년 동안 노아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아가 말할 수 없는 가장 큰 비밀이 있었다. 일본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노아의 꿈은 이카이노를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것이었다. (280페이지)

 


일본은 절대로 변하지 않아. 외국인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내 사랑, 너는 여기서 항상 외국인일 거고 결코 일본인이 될 수 없어. 알겠어? 자이니치는 어디로든 떠날 수 없지. (725페이지)

 


선자의 둘째 아들 모자수는 파친코를 운영한다. 파친코는 조선인이 주로 운영했으며 많은 돈을 벌지만, 야쿠자로 인식됐다. 와세다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던 노아조차 파친코에서 일본인으로 근무했던 점은 아이러니다. 아무도 모르게, 일본인으로 살고자 했던 노아는 조선인으로 산다는 게 고통스러웠던 것일까. 한수의 아들이란 게 견딜 수 없었던 것일까.

 


작가의 디아스포라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2024년에 드라마 시즌2가 공개될 예정이다. 공개 시점에 맞춰 합본한정판이 출간되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무척 생생해 방영되었던 드라마를 다시 보고 싶었다. 외국인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나라에서 조선인은 이방인으로 떠도는 삶을 살았다. 아픈 역사가 가진 고통의 한 부분이 아닐까.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는 한국의 디아스포라를 기억해야 한다. 드라마 파친코시즌 2를 기다리고 있다면 먼저 소설을 만나보자.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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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의 후회 수집
미키 브래머 지음, 김영옥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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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죽는 방법은 결국 아름답게 사는 것 뿐이야. (427페이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고통스럽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해도 슬픔은 오래도록 남아 있다. 특히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후회가 크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후회 때문에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하는 클로버의 마음에 동감했다. 후회만 남아 있는 어떤 죽음 앞에서 나는 오늘을 잘 살아내는 일이야말로 후회를 덜 하는 삶이라는 걸 깨닫는다.

 





클로버는 임종 도우미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을 위해 후회하는 삶이 없도록 마지막을 지켜주는 일이다. 죽음을 지켜본 후 그들이 했던 말들을 적는다. 후회, 조언, 고백이라는 노트다. 빼곡하게 적은 노트를 열어보며 오래된 90년대 영화를 즐겨보는 클로버는 여든여섯 살의 이웃 리오 할아버지 외에는 친구 하나 없다.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 어쩌면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떠난 빈자리를 견디기 싫어서일 것이다.

 


내가 알기로 죽는다는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죽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오직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했다. (30페이지)

 


이 작품을 읽기 전 다양한 분야에서 드러나는 사후 세계에 관한 책을 읽었다. 사후 세계에 관한 책은 죽은 이후의 여행자를 위한 책이었던 반면 클로버의 이야기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느끼는 마음을 담았다. 더불어 죽음을 지켜보는 클로버의 과거와 현재의 감정들을 교감했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후회를 안고 죽는 이유는 다들 자기들이 불로장생할 것처럼 살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그 순간이 오기 직전까지도 죽음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지 않아요. (90페이지)

 


생각해보라. 우리는 당장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이기에 마치 생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한다. 발췌 문장에서처럼 불로장생할 것처럼. 얼마나 무모한지 모른다. 누군가는 말한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라고. 그럼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것 아니겠냐고 말이다.


 

클로버는 데스 카페에 갔다가 서배스천을 만나며 삶의 변화가 생긴다. 죽음에 관한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 가족들 틈에서 죽음을 앞둔 서배스천의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친구가 없던 클로버에게 또래 이웃이 슬며시 다가와 그녀의 일상을 흔든다. 가장 큰 건 서배스천의 할머니 클로디아와의 만남이 아닐까 한다. 사랑일까 하는 감정에 휘말렸다가 주춤하는 그를 발견하고 한발 물러서는 감정에 공감하게 된다. 상처받는 게 두려워 누군가 다가오는 걸 겁냈던 거였다.

 




클로디아의 후회는 젊은 날의 사랑이었다. 사진작가였던 클로디아는 결혼하기 전까지만 일하기로 했고 프랑스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죽음을 앞둔 후에야 그를 평생 사랑해왔음을, 그와 결혼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며 행복할 것 같은데도 오래전에 하지 못했던 것들이 생각나는 법일까. 휴고 보버트를 잊지 못해 삶의 마지막에 가서야 후회하는 걸 보며 나의 마지막은 어떨까, 어떤 후회의 말을 할까.

 


클로버는 죽음을 앞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했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배울 수 있었다. 후회가 덜하는 삶을 위하여 조심스럽게 무모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아름답게 죽는 방법은 아름답게 사는 방법밖에 없다는 말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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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를 위한 안내서 - 천국과 지옥 그리고 연옥까지 인류가 상상한 온갖 저세상 이야기
켄 제닝스 지음, 고현석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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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은 밤이면, 죽음에 대하여 생각한다. 오늘 잠이 들었다 내일 아침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죽음은 나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게 두렵다. 죽음 이후의 것을 알지 못한다. 죽음 이후에 내가 천국에 갈 것인지, 지옥에 갈 것인지 생각해본 적 또한 없다. 그저 무의 세계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만약 사후 세계가 진짜로 존재한다면 어떨까. 사후 세계의 상상의 산물이 여기 있다.


 

신화와 종교, , 영화, 텔레비전, 음악과 연극, 기타 다양한 사후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신화 속 고대 이집트 사후 세계의 장점은 물건을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 이집트의 귀족들은 전차에서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다한 것들과 함께 묻혔을뿐더러 우샤브티라는 작은 인형을 일꾼으로 써먹을 수 있었다. 사후 세계를 위해 인형을 준비하고 부장품들과 함께 묻혔다는 건 그들이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티베트 사자의 서 바르도는 조지 손더스의 소설 바르도의 링컨을 떠올리게 한다. ‘바르도는 티베트어로 죽음과 재생의 경계 상태를 뜻한다. 장례식이 끝난 묘지, 서성거리는 영혼들의 세계.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번 글에서 제대로 파악하게 된 것 같다.


 

신화나 종교 등에서 내세우는 천국과 지옥의 경계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이슬람의 사후 세계에서는 세 가지 질문을 건네는 천사가 있다. ‘당신의 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의 종교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선지자는 누구입니까?’. 이와 같이 질문했을 때 정답을 말하면 무덤을 넓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데 반해 그 반대의 경우는 망자의 흉곽을 찌그러뜨리고 아흔아홉 마리의 뱀을 무덤으로 기어들어오게 하여 사자를 고통스럽게 한다.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 정답을 알아야 하지 않겠나. 혹시 길을 잘못 들어 이슬람으로 가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여러분에게만 정답을 살짝 알려주겠다. 정답은 각각 알라, 이슬람, 무함마드다.


 

카리브해의 연안 국가들의 노예들 상당수는 자살을 통해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사탕수수 농장주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예들은 랑 기니로 가지 못하고 아이티의 황량한 들판에서 영혼을 잃고 방황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며 노예들을 단속했다. 현재 서양의 대중문화를 장악하고 있는 좀비의 기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119페이지) 할로윈이나 드라마 <워킹 데드>에 등장하는 좀비들이 사탕수수 농장 노예였다니, 마음이 아플 뿐이다. 이처럼 저자는 각 신화와 종교에 깃든 상상력의 사후 세계를 펼친다. 사후 세계의 여행길에서 어떤 상황을 맞닥뜨릴 것인가. 궁금하긴 하다. 물론 과거의 기억 따위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밀턴의 실락원은 성경을 사탄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쩔지 생각하면서 쓴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지옥을 떠올릴 때면 유황이 들끓는 불과 그 속에 빠진 사자들이다. 단테의 신곡또한 죽음 이후의 삶을 말한다. 그러고 보면 수많은 작품에서 죽음 이후의 세계를 그린다. 영원할 것 같은 현세의 삶은 너무 짧고, 영혼은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믿었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안온한 삶을 사후에서도 바랐다는 점. 죽음이 가진 삶의 통찰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가장 호화로운 사치품의 유혹을 받지만 그것을 누릴 수 없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떤 곳일까? 천국에도 지옥에서와 같은 테이블, 같은 손님, 같은 접시, 심지어 같은 긴 숟가락이 있다. 하지만 천국에서는 아무도 배고프지 않다. 그들은 서로에게 먹여주기 때문이다. (428페이지)


 

이솝우화를 떠올리게 한다. 천국과 지옥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과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과의 차이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힘든 건 나에게서 오는 번민이 아니라 타인이 주는 지옥과도 일맥상통한다. 타인과의 세계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두렵게 한다. 죽음 이후도 마찬가지다. 살아있을 때 타인을 배려하고 도움을 주었다면 죽음 이후에도 천국에서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거다. 결국 죽음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삶의 지침이다. 사후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들은 결국 삶의 지침서를 읽는 것과도 같다는 걸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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