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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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랑을 할때는 그 사랑이 영원할 것 같지만 언젠가는 이별이 다가오기도 하더라.

이십대의 나, 누군가를 아주 많이 사랑했었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던 그,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며 그의 하나하나의 몸짓이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았는데도 이슬비에 옷 젖듯 그렇게 그에 대한 마음을 키워갔었다. 그의 발령 그리고 이별.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 이별한 뒤에서 더 아픈 것이리라. 그와 헤어지고 처음으로 직장에 휴가를 냈었다. 못마시던 소주 한 병을 사서 마시고 그렇게 하루를 끙끙 앓았었다. 세상이 막막하기만 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죽을 것 같던 그 마음도 조금씩 색이 바래더라. 아마 그때의 난, 내가 더 많이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은연중에 이별을 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와 헤어지고는 그가 나에게 준 아픈 일들만 내 기억속에 차지할 것 같았는데 함께 했던 여러가지 일들이 추억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를 잊어갔다. 만약, 그렇게 이별 때문에 힘들어 할때 트위터에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을 초대하는 멘션을 보았을때 그때의 나도 이런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을까. 이른아침 일곱시에 누군가들을 만난다는게 나로서는 있을수 없는 일 같기도 하지만.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에 참석한 이들을 보면 항공사의 승무원 윤사강, 대기업의 홍보컨설턴트 강사 이지훈, 그리고 이 모임에 참석한 정미도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들의 사랑과 이별을 이야기한다.

 

 

먼저 윤사강을 보자면, 아버지가 프랑수아즈 사강을 좋아해 딸의 이름을 사강으로 지은 아빠가 떠나고 아빠의 부재 때문에 힘들어한 젊은 날의 자신이 보였다. 항공사 승무원으로서 아내가 있는 기장 정수를 먼저 좋아하고 먼저 헤어지자고 말해놓고 실연의 아픔때문에 힘들어한다. 그가 선물해 준것들을 버리기도 하고 또한 못버리기도 한다. 우연히 트위터에 올라온 글을 보고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이란 식당엘 찾아 왔다.

 

 

두 번째 이지훈, 고등학교때부터 사귀던 대학친구이자 MT도 같이 갔고, 여행과 젊은 날의 고민들을 함께한 십년 지기 연인 현정과 헤어지고 자신의 젊은 날들이 사라졌음을 느낀다. 잠못 이루는 밤을 보내던 그는 트위터에 떠 있는 글을 클릭하고 만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을 나가면 자신의 실연이 좀더 깊게 보일까. 실연에 관한 영화를 보며 실연 기념품을 처치해 버리면 잊어버린 연인을 잊을 수 있을까. 함께 했던 추억까지도 다 바람결에 날려버릴수 있을까. 

 

 

왠지 정미도의 미도 라는 이름을 들으면 우리가 영화를 보러 갔을때 영화 마지막에서 자막이 올라갈 때 보이던 외화 번역가 이미도의 이름이 먼저 떠올라 미도 라는 여자의 이름이 생각보다 깊게 각인 되었다. 그냥 스쳐지나갈 줄 알았던, 일곱시 조찬 모임에서의 미도는 이 작품에서도 마치 영화처럼 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스무살의 앳된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녀 또한 사랑의 상처를 갖고 있는 미도. 이별을 해야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그녀의 생각과 행동이 발칙하기만 하다.

 

 

 

인간이 외로운 건 일평생 자신의 뒷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외로움은 바로 그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존재가 두려움 없이 자신의 어둠을 응시할 리 없다.  (242페이지 중에서)

 

모든 연애에는 마지막이 필요하고, 끝내 찍어야 할 마침표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존재할 것 같지 않던 '다시'라는 말이 가슴속에서 자라날 수 있었다. (412페이지 중에서)

 

 

 이별을 선언했지만 그 이별 의식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일것이다.

자신만의 이별의식을 끝없이 행하고, 함께 했던 이와의 기억들로 침잠할때 실연당한 사람들과 아침을 먹으며 실연의 기념품이나 실연에 관한 영화를 보며 자신이 진짜 이별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될것이다. 이별 의식을 하며 이별했던 사람을 떠나보내고 그 사람을 비우게 되는 일. 그렇게 인정을 하게 되는 일.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정리한 후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이다. 사랑을 잃고 난 사람에게 하는 가장 흔한 한 마디가 생각난다. 이별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꼭 남녀 간의 이별만이 아닌 가족과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이별은 힘들기 마련.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이별의 아픔도 희미해 지는 것이다. 이별을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속에서 주인공 사강의 이름 때문이었는지 『슬픔이여, 안녕』이라든지 지훈이 읽었던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들이 언급된다. 사강의 소설 외에도 몇가지 소설들이 주인공들이 함께 하는 책이라서 다 읽고 싶게 만든다.

 

 

토요일 오전 일곱시. 누군가는 잠을 자는 시간, 누군가에게는 이제 막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실연당한 사람들이 모여 아침 식사를 하는 시간. 과거의 나에게 말하고 싶다. 누워 퉁퉁 부은 눈으로 울고만 있지 말고 조찬 모임에 참석해 보라고. 헤어진 사람보다 더 따뜻하고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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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변 십자가 모중석 스릴러 클럽 31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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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한지 십 년 가까이 된 것 같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 보여주는 일기 정도에서 시작한 것 같다. 주절주절 소소한 일상들을 적다가 내가 좋아하는 책에 대한 간단한 느낌들을 적기 시작했다. 그러다 블로에서 자주 왕래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보여주는 일기에, 책 리뷰 등에 댓글 등을 남기며 서로 그렇게 친해졌다. 사람이 친해지면 개인적인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오늘은 어땠어요. 어디를 가요. 어딘가를 다녀왔어요 등등. 사진을 올리며 얼굴을 알리고 실제로 몇 번 만나보기까지 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세계에서만 알다가 실제로 만나 친구나 언니 라고 부르며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기를 몇번. 그냥 가상세계에서 끝날것 같은 만남이 십 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면 이것은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와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또 그 만남을 지금까지 이어져 오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서로 상대방에게 호감을 갖고 있어야 하고, 공통된 화제가 있어야 하며, 일년에 몇 번씩이라도 연락을 하는 사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동안 무심했던 사이여도 스마트폰을 구입하면서 카톡이라나는 메신저 기능이 있어 멀리 있되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지내고 있다.

 

 

제프리 디버의『잠자는 인형』을 읽고 소설속 사람의 몸짓을 보며 그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 동작학 심리 전문가 캐트린 댄스의 활약에 완전히 반해버린 작품이었다. 이번 책 또한 캐트린 댄스 시리즈라 더 기다렸고 읽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이번 작품 『도로변 십자가』에서는 블로그 상에 올려 놓은 글과 그 글에 관한 댓글에서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지는지, 어떤 것을 무서워 하는지 알게 된다는 것. 그 사람의 행적들이 그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에게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사람의 아이피 주소만 알면 그 사람이 어디에 사는지 다 알수 있고, 또 인터넷 상에서 우리는 개인적인 면들을 너무 많이 노출하고 있다. 그것이 범죄에 관련되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도 모른채. 가상의 이름만 적으면 모를거라는 생각하에 상대방에 대한 비방을 서슴치 않는다.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만 왕따가 있는게 아니다. 인터넷 상에서 한 줄의 글과 몇 마디의 댓글에서도 왕따를 만들고 있다. 그렇게 상처받은 사람이 범죄를 일으킬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그렇게 왕따를 당한 이가 범죄자로 몰릴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억제된 감정은 거의 언제나 몸짓으로 드러난다.  (48페이지 중에서)

 

우린 온라인에서 개인정보를 너무 많이 풀어놓고 있습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89페이지 중에서)

 

 

과거 최약의 살인마 찰스 맨슨의 아들이라고 불리웠던 다니엘 펠의 심리를 꿰뚫고 사건 수사에 나섰던 캐트린 댄스가 이번엔 도로변 십자가에 사람의 이름과 날짜를 적어 죽음을 예고하고 어느 한소녀가 죽을 뻔한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부보안관 마이클 오닐과 수사를 함께하는 캐트린 댄스는 첫번째 죽을 뻔한 소녀 태미를 사건을 수사하던중 컴퓨터 전문가이자 교수인 조나단 볼링의 도움을 받아 태미가 주로 어디 사이트를 다녔는지 소녀의 행적을 조사한다. 사십이 넘어서도 싱글인 조나단 볼링 교수와 왠지 핑크빛 로맨스를 선사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 와중에 다니엘 펠 사건을 수사하던 수사요원 후안 밀라의 안락사를 도왔다는 용의자로 캐트린의 어머니 이디 댄스를 지목하면서 캐트린은 어머니를 보호하고 싶으면서도 도로변 십자가 사건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잠자는 인형』에 비해서 『도로변 십자가』는 걸어다니는 거짓말 탐지기 캐트린 댄스의 심리전문가의 역할이 생각보다 덜했다. 법 집행관이자 수사 요원으로서의 활약이 더 많았달까. 하지만 수사요원으로서의 캐트린 댄스의 역할은 빛을 발한다. 제프리 디버의 추리소설의 반전은 우리의 허를 찌른다. 그의 작품을 읽어 왔던 사람이라면 살인을 저지르려 했던 살인범이 나와도 이게 아닌데, 뭔가 더 있을텐데 하는 기대감이 있다. 또 그런 기대감을 충족시켜 준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반전의 반전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이들, 스스로 게임에 빠져 사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다.

실제 세상보다는 게임속 세상에서 친구들이 있고, 그 친구들과 가족을 이루며 인터넷 세상에서는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있다. 사람을 칼로 베고, 총으로 죽이는 게임이 많다는 사실에 난 두려움을 느낀다. 실제로 게임에 빠져 살았던 학생이 게임속인지 실제 세상속인지 분간을 못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도 있었다. 게임에 빠져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종종 있을 것 같아 아이가 무슨 게임을 하는지 유심히 살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아들 녀석이 피파 게임만 하는 걸 다행으로 알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작품 『도로변 십자가』는 우리들에게 인터넷 상에서 너무 많은 것을 적지 말라는 일종의 경종을 울려준다. 익명을 쓴다는 이유로 인터넷 상에서 언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다는 걸 느낀다.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 그 상처로 인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댓글 하나에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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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전집 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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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내게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영화로 먼저 만나게 되었었다. 내가 오래전에 좋아했는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했던 작품 '프라하의 봄'이란 제목으로. 배우들의 연기와 작품이 말하는 무거운 주제 의식이 오랫동안 머리속에 남아있는 작품이었다. 우리집에 이 책이 있었고 해서 난 당연히 읽은 줄 알았다. 『책은 도끼다』를 읽고 책 속에서 말하는 토마시와 테레자, 토마시를 사랑했던 사비나와 프란츠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가 생각났고, 이들의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 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다른 여자들과 결코 함께 잠을 자지 않는 남자, 토마시.

어느 날 한 번의 우연한 만남 뒤에 테레자가 프라하의 자신의 집으로 찾아왔다. 마치 송진으로 방수된 바구니에 넣어져 강물에 버려졌다가 그의 침대 머리맡에 건져 올려진 아이처럼. 그렇게 다가와 아파 누워있는 바람에 그는 테레자와 일주일을 함께 했다. 아이처럼 그렇게 보살폈다. 그리고 그녀는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 후 그는 고민에 빠졌다. 어느덧 마음속에 들어와 버린 테레자와 같이 살아야 하는지 아닌지. 함께 사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혼자 사는 것이 나을지. 그는 자유롭고 싶어하는 남자였다. 테레자와 함께 살기 시작한 후로도 그는 다른 여자와 만나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화가 사비나를 비롯해 그에게는 늘 여자가 있었다.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테레자, 어느 날 그녀의 가게로 온 한 남자와 잠깐의 만남 뒤 그가 준 명함을 가지고 그의 집으로 찾아가게 된다. 함께 테레자는 아침이 되도록 토마시의 손가락을 꼭 붙들고 잠을 잤다. 아기처럼, 그가 아니면 안되는 것처럼, 그렇게 절박하게.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는 토마시에겐 늘 여자가 있었다. 자신을 곁에 두고서도 다른 여자의 냄새를 묻혀오는 토마시 때문에 너무도 힘들어 한다.

 

 

토마시에게 테레자가 있음에도 토마시를 사랑했던 사비나는 그와 헤어지고 역시 아내가 있는 프란츠와 연인관계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역사를 벗어나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싶어했던 사비나. 그런 사비나를 사랑했던 프란츠. 이처럼 책에서는 토마시와 테레자, 사비나와 프란츠 네 명의 이야기와 과거 체코의 역사와 철학적인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한다. 1968년은 체코슬로바키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민주화 운동을 막기 위해 소련이 군사 개입하였던 시기였다. 공산주의자들에게 감시를 받고 자유롭게 행동을 할 수 없었던 그들의 짙은 외로움과 고통 들이 보였다. 

 

 

그들 네 사람과 체코의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모습 같은 '나'가 등장한다.

그들의 사랑과 삶에 대한 생각들을 우리에게 보이며 작가의 사랑과 삶에 대한 깊은 철학적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또한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삶의 본질과 삶의 이유를 우리에게 묻는다. 이들 네 사람들을 지켜보며 우리는 마음속으로 해답을 찾기 위해 심연속에 침잠할 수 밖에 없다.

 

 

소설 인물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어머니의 육체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상황, 하나의 문장, 그리고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거나, 본질적인 것은 여전히 언급되지 않았지만 근본적이며 인간적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있는 은유에서 태어난다. 

 (355페이지 중에서)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358페이지 중에서)

 

 

삶은 왜 이토록 아픔을 동반하는가.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때론 고통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너무도 사랑하는 일, 내 마음처럼 상대방도 나만을 바라보고 나만을 사랑했으면 좋겠지만 그게 뜻대로 안될 때 우리는 끊임없이 좌절한다. 사랑을 갈구할수록 좌절은 더 깊어진다. 삶 또한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아픔과 함께 성장하고 또 성장하게 된다. 삶의 무거운 짐에 짓눌리기도 하며 또 어느 순간엔 떠도는 공기처럼 그렇게 가볍게도 살아간다. 작가 밀란 쿤데라도 말했든 산다는 것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반복이라는 말에 이번처럼 다가온 적도 없는 것 같다. 삶은 첫 번째 리허설이다. 리허설을 하고 우리가 두 번째 인생을 선택하면 좋겠지만 우리에겐 두 번째 선택권이라는 게 없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 한 마디, 내가 하는 행동들이 돌이킬 수 없는 나의 삶인 것이다.

 

 

 민음사의 밀란 쿤데라 전집으로 나온 이 작품 속 표지들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들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과 책의 내용이 표지와 참 잘 어울렸다. 표지가 마음에 들어 다 소장하고싶은 욕심이 생기는 책이었다. 물론 밀란 쿤데라가 말하는 삶과 사랑의 철학이 보이는 이야기 속으로 빠지고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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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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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작가의 책을 처음 읽은게 『제2회 젊은작가상』수상작인 「물속 골리앗」이었다.

「물속 골리앗」은 크레인 위에서 체불임금을 달라는 시위를 하다 실족사로 죽음을 맞이한 후, 몇십년 만에 찾아온 홍수 때문에 갇힌 아파트에서 당뇨로 죽은 어머니. 흙탕물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구해주지 않을까 애타게 다른 사람의 흔적을 찾는 이야기였다. 암흑이 자리한 도저히 빛이라곤 찾을 수 없던 그곳에서 사투를 벌이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던 작품이었다. 그후 그녀의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인생 』을 읽었었다. 삶은 자신의 마음대로는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강렬하게 느꼈던, 김애란이란 작가를 머릿속에 각인 시켰던 작품이었다. 그런 그녀가 세 번째 소설집을 냈다. 『비행운 』 이란 제목으로.

 

 

소설속 주인공들은 거의 20대의 젊은 이들이다. 「하루의 축」에서 공항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는 기옥 씨를 빼놓고는 거의 20대와 이제 막 서른이 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기 위해 물건을 훔쳐 결국엔 교도소에 들어가면서부터 기옥 씨의 머리는 스트레스성 탈모가 시작되어 머릿수건으로 감추고 묵묵히 청소를 하는 그녀의 삶은 한줄기 희망 조차 보이지 않는다. 삶은 그렇게 고달프기만 한 것 처럼. 그녀가 일하는 공항에서 비행운飛行雲 을 본다. 그러면서 자신도 새로운 삶을 찾아 하늘을 훨훨 날아가고 싶은 기분을 느낀다. 자신의 삶이 비행운非幸運 뿐일지라도. 삶이 비행운非幸運인 사람들은 기옥 씨 뿐만이 아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에서 학교 다닐적에 마음을 두었던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고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그가 있는 곳을 방문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선배는 뚱뚱한 그녀에게 많이 먹기 프로그램에 참여시키자 비참한 기분을 느끼는 미영이 나온다. 전세금이 싸다는 이유로 장미빌라로 이사온 부부. 재개발에 들어가는 A구역에 있는 오래된 나무에서 벌레들이 계속 올라오고 급기야 반지 케이스를 떨어뜨려 남편이 없는 새벽 1시에 반지를 찾으로 간 곳에서 갑자기 양수가 터진 임산부의 이야기가 있는「벌레들」.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택시 운전수 이야기「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친구와 함께 간 동남아 여행에서 그들이 묵었던 호텔, 「호텔 니약 따」는 자신이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곳, 꿈 속에서 서윤은 누군가를 만난다. 이제는 죽고 없는 그리운 사람을. 다단계의 늪에 빠져 허우적 대며 자신이 아끼던 학원 제자를 들이 밀었던 이의 이야기 「서른」또한 우리의 어두운 현실을 나타내고 있었다.

 

 

 

어떤 일을 해도 나쁜 일들만 연속으로 일어나는 이들에게 과연 희망이 보이기는 하는 것일까.

지금보다는 좀더 나은 미래를 꿈꾸지만 현재의 우리 앞엔 어둠만이 깊게 자리한 막막한 어둠뿐이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모레가 훨씬 더 나을거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이들.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우리의 오늘이 너무나 막막할 때 우리는 저 멀리 날아가는 구름을 쳐다보고 푸르기만 한 하늘을 쳐다 볼 것이다. 그러면 조금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자신의 미래에 아주 작은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을까 하고.

 

 

불안하고 막막한 현실에 부딪친 청춘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아직 젊은 작가 답게 그 또래의 고민과 성장통을 보는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 다들 내가 더 힘들게 살고 있다고 여긴다. 우리들의 현실에 다가올 미래는 비행운非幸運보다는 비행운飛行雲이었으면. 이 책을 읽은 나 또한 내게 올 비행운飛行雲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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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 한국의 미를 세계 속에 꽃피운 최순우의 삶과 우리 국보 이야기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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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지역에 갔을때 박물관이 있다면 꼭 찾아가 볼 정도로 우리 선조의 얼이 깃들어 있는 문화재를 들여다보는 일이 즐겁다. 아주 작은 파편 하나에도 그들의 삶이 보이는 듯 하고 우리 문화가 얼마나 고고하고 아름다운지 다시한번 실감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과 떠난 유적지에서도 아이들보다 내가 더 즐거워 앞장서서 걸어다니곤 했다. 내가 아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을 해주고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서를 읽기도 하면서 아이들에게 더 많은 문화 유적을 보여주고자 했고,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알아 주었으면 했다. 전에는 가고 싶은 곳을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다녔다면 요즘의 나는 먼저 우리 문화재에 대한 책을 접하고 그 설명을 기억하면서 유적지를 돌아보고 있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처음 보기 시작했을때와 현재의 나는 좋아하는 기준이 달라진 것 같다. 전과 달리 나는 우리 문화유산 중 아주 소박한 것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특유의 단아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이 빛나는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내 마음속의 잡념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 일본이나 중국의 문화유산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찾고 알리는 일에 평생을 바친 박물관인 혜곡 최순우에 대한 글이다. 그가 개성박물관 서기에서부터 고등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만년 과장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의 관장이 되기까지의 일대기를 담았다. 그의 문화재 사랑, 학력이 짧다는 이유로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으려고 우리 문화에 대해 공부하고 또 공부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를 박물관으로 이끈 첫 스승 고유섭은 선조가 남긴 문화유산의 가치, 내용, 시대를 연구하는 일도 민족에 이바지 하는 길이라며 조선 백자와 조선미에 대해 공부하기를 바랐다. 당대의 미술에는 그 시대 사람들과 세계관과 우리 민족만의 독자성이 있다는 걸 강조하며 그게 바로 조선미의 진가라는 걸 상기시켰다.

 

 

 백자달항아리

   조선시대 17세기, 보물 제143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리의 문화와 유산이 모여 있는 박물관이 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 알게 된 혜곡 최순우는 평생을 바쳐 박물관을 지켰고 발전시켰다. 그의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애정은 수많은 그의 글에서도 나타난다. 문화재 해설, 미술 관련 에세이, 논문, 사료해제 등 모두 600여편의 글을 썼다.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유럽과 미국, 일본 등에서 국보 순회 전시회를 열었다. 또한 박물관의 예산이 없어 구입하지 못한 우리 유물들이 외국으로 밀반출하는게 안타까워 호림 윤장섭을 도와 구입하게 하고, 호림미술관을 여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또한 한국전쟁 중에도 그의 두번째 스승인 간송 전형필을 도와 보화각(현 간송 미술관)의 유물들을 지키고자 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삼국시대 7세기초, 국보제83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최순우는 우리 문화를 철저하게 우리의 안목으로 보았다.

당시 미술연구 대부분이 일본이나 혹은 미국, 서구적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최순우는 우리말, 특히 사라져가는 옛어휘들을 찾아내어 사용했다. 한국미의 근원은 우리나라 산과 들의 편안하고 푸근한 자연환경에 있다고 주장해 온 그는 개성의 해나무골 고향집과 비슷하게 성북동 집을 한국의 아름다움과 기품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꾸몄다. 작은 꽃밭과 갖가지 나무들을 심어 한옥집을 꾸며 우리나라 한옥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나타내고자 했다.

 

 

사진으로 보는 최순우의 옛집은 조선의 백자달항아리처럼 단아하고 소박하게 보인다. 그곳에 가면 뼛속까지 박물관인으로 살았던 최순우의 발자취를 엿볼수 있을것 같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아름다움을 생각했던 최순우의 마음을 깊이 생각할 것 같다. 내년 봄이나 가을쯤에 서울에 가면 성북동으로 가 간송 미술관에 들른후 최순우 옛집을 둘러보고 싶다. 그곳에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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