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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젊은 여성들 중 윤동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많은 이들이 윤동주의 시를 읊고 시가 적힌 종이를 가슴에 품고 다니듯 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윤동주의 시가 적힌 연습장을 갖고 있었고 그의 시들을 코팅해서 갖고 다니곤 했었다. 그의 시를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윤동주를 가슴에 품었다. 마치 첫사랑을 좋아하듯 그렇게.
소설가 이정명은 『뿌리 깊은 나무』와 『바람의 화원』로 너무도 유명한 작가이다. 그가 한국인이 좋아하시는 시인이자 스물여덟 살에 옥사한 윤동주(1917~1945)의 이야기인 『별을 스치는 바람』을 새로이 냈다. 그의 신작 만으로도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데 '별 헤는 밤' , '서시' 의 시인 윤동주의 생애 마지막 1년의 삶을 이야기한다. 후쿠오카 형무소를 배경으로 청년 시인 윤동주와 그의 시를 검열하고 불태운 냉혹한 검열관 스기야마 도잔의 이야기이고,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조선인 들을 포함한 사람을 비인간적이고 잔혹하게 다룬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한 사람은 감옥의 창살 안의 죄수로, 한 사람은 감옥의 창살 밖에 있는 간수로, 그들에게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 의문을 풀어나가는 이야기이다.
책속의 화자, '나'는 열아홉 살의 학병으로 헌책방을 하는 어머니 덕에 책속에 파묻혀, 책속에서 말하는 문장들의 영혼을 느끼며 살아왔다. 전쟁 때문에 군복을 입었고, 책속에 숨은 책벌레를 잊었고, 문장이 말하는 영혼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높은 담장에 둘러쌓인 이 차가운 형무소 안에서 점점 영혼이 말라가고 있었다. 그는 근무교대를 하고 나서 한 사람의 시체를 발견한다. 악마라고 불리울 정도로 심한 행동을 했던 검열관 스기야마 도잔의 시체를 발견하고, 누가 스기야마를 죽였는지 사건을 떠맡게 된 와타나베 유이치. 유이치는 스기야마의 품에서 시가 적혀진 종이 쪽지를 발견하며, 누구의 시 인지, 누가 옮겨 썼는지, 그에 따른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윤동주 개인의 삶을 다룬게 아닌 시를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열아홉 살의 학병이자 간수를 내세워 윤동주와 윤동주의 시를 사랑했던 스기야마를 바라보고 있다. 지쳐있던 그의 영혼에 한줄기 빛처럼 다가왔던 윤동주의 시는 스기야마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고, 문장 속에서 서로의 영혼을 들여다 보았다. 단 한 줄의 문장에서도 서로의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거울을 통해 그 사람을 들여다 보듯 한 줄의 시에서 그 사람의 영혼을 들여다 보게 되는 것이다.
시는 영혼을 비추는 우물이에요. 우리는 더두운 영혼의 우물속으로 두레박질을 던져 진실을 깊어 올리죠. 그리고 시로부터 위로 받고, 지금부터 배우며, 시를 통해 구원받아요. (1권, 236페이지 중에서)
문학은 참 여러가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지쳐있는 우리의 영혼을 숨쉬게 하고, 병든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역할을 한다. 한 편의 시를 읽으며 우리는 마음을 달래고 많은 위로를 받는다. 그런 우리들 처럼 스기야마도, 유이치도 윤동주의 시에서 그렇게 한줄기 빛을 느꼈다.
제국을 위해서였다는 그들의 만행에 다시 한번 나라 잃은 설움을. 핍박받는 그 형무소에서도 한줄기 희망을 위한 시를 쓰는 윤동주가 너무도 안타까웠다. 책에서는 윤동주가 사랑했던 시인들, 문학 작품들이 자주 언급된다. 윤동주의 시 21편이 전문 그대로 수록되어 있어서 마치 윤동주의 시집인양 그렇게도 생각되어졌다. 솔직히 윤동주의 시를 사랑했어도 그의 시를 많이 알지 못했는데 제대로 볼수 있어서 그 기쁨이 컸다. 색색의 포스트 잇을 붙여 가며 그의 시를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젊은 날에 가버린 그의 삶이 너무 안타까워서도 읽었다.
고흐의 서간집과 화집을 사랑하고 유난히 별을 사랑했던 윤동주가, 특히 좋아했던 고흐의 그림을 나도 다시 한번 들여다 본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란 그림속에서 고흐를 느끼고 윤동주의 마음을 느낀다. 그림을 보며 나도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란 시를 읊어본다.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넬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후 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