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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투명한 빨강
김지운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소설을 만났다.
사람이 사랑을 한다는 것. 그 어떤 모든 것보다도 마음이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마음 외에 주변의 것들이 더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의 얼굴이라든가, 몸매라든가, 풍기는 분위기라든가. 그 사람의 마음을 알기 전에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되어 마음속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그가 건네는 장난 스러운 말 한 마디. 그윽한 목소리, 다정함이 묻어나는 말투에서도 사랑을 예감한다. 아,,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 같구나. 하고 느껴지게 되는 것. 소소한 일상들 중에서도 마음이 가는 것은 아무도 붙잡을 수가 없다. 그가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던 간에 이미 사랑에 빠져 버린 사람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가장 투명한 빛을 발했을때 만난 사람.
그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그때부터 사랑이었단 걸 너무 뒤늦게야 깨닫게 되는 사랑. 그때 마음을 고백했더라면, 그때 어떻게든 말을 붙였더라면 하고 만약이란 가정을 자꾸 하게 되는 것. 우리는 항상 뒤늦게야 알게 된다. 그런 안타까움.
연홍주 냄새다.
불량스러운 말투며 시비를 거는 듯한 태도를 하고 있지만 그가 웃을때면 드러나는 해사한 웃음. 이토록 투명한 웃음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 차경욱. 연홍주라는 예쁜 이름을 두고 아주 달콤한 술 같다는 말을 하며 '술이야'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남자가 점점 좋아진다. 그림을 가르치기 보다는 그리는 것을 곁에서 봐주는 그림 선생님인 연홍주에게 그는 처음에 은돌의 삼촌으로 다가왔다. 그에게 그렇게 한걸음, 두걸음, 세걸음 다가가게 된다. 자기도 모르게.
강영흔 작가 좋아하세요?
응, 좋아해.
얼마나요?
무지 무지 무지 무지 무지
사랑은 기쁘기만 한 줄 알았더니 꼭 그렇지만은 않는가 보다.
너무도 투명한 빛을 발하던 그때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고 있을 그들의 모습들. 나는 그마저도 가슴이 먹먹해져 와 한동안을 꺽꺽대고 있었다. 연홍주가 차경욱을 바라보는 모습. 차경욱이 연홍주를 바라보는 그 애틋함에 막 가슴이 아팠다. 그동안 너무 아팠을 차경욱이 안타까워서. 그런 차경욱을 바라보는 연홍주가 애틋해서. 차경욱이 지구상에 없다면 지구가 떠내려가게 울 연홍주의 그 마음이 너무 애틋해서. 책속 주인공의 슬픔이 나의 슬픔을 끌어낸것처럼 그렇게 먹먹해 했다. 그냥 사랑이야기를 읽을 뿐인데 왜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지. 연홍주와 차경욱을 내 사랑으로 동일시 했나 보다. 이들이 언제나 행복하기를. 만일, 만일 그때 ... 그랬더라면. 이런 말들을 두 번 다시 하지 말기를 간절함을 담아 말하고 싶다.
김지운 작가의 이런 말투가 좋다.
어리광을 부리는 주인공 들의 모습. 단문에서 우러나는 그 마음들. 통통 튀는 단문 속에 드러나는 그런 풋풋한 주인공들을 보면 우리를 추억속에 젖게 하기도 한다. 우리가 가장 풋풋했던 그때를 기억하게 만든다. 책 속에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 속 인물들을 만나는 일도 즐겁다. 다 연결되어 있는 그들의 이름들이 희미해져 다시 그들이 나왔던 책들을 훑어보고 싶게 만든다. 그리고 작가의 말에서 왠지 편안함을 느꼈다. 전보다 편안해진 느낌.